(資料) <숨겨진 진실 권력자들의 계보, 로스차일드의 세계혁명 행동계획>과 사례
2024-12-30 https://cafe.daum.net/flyingdaese/Vz9V/625
<숨겨진 진실 권력자들의 계보, 로스차일드의 세계혁명 행동계획> 과 사례
프랑스 혁명
이 혁명의 주체가 된 것은 프리메이슨이었다. 후에 프리메이슨 자신이 "프랑스 혁명은 우리의 혁명이었다"고 인정했다. "자유·평등·박애"를 내건 프랑스 의회가, 유대인에게 평등의 권리를 인정해, 나폴레옹이 게토를 해체. 박해받던 유대인들은 풀려나 정치인, 장군, 지식인, 예술가 등으로 사회라는 표면의 무대 위에서 춤을 춘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일족인 모제즈 모카타은행을 통해 프랑스 혁명에 자금을 제공. 다른 자금 제공자들도 다니엘 이츠히, 데이비드 프리틀렌더, 헤르츠 갈리비어, 벤자민 골드슈미트, 아브라함 골드슈미트와 같은 유대인 은행가들이었다.
위는 프랑스 인권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묘사한 그림인데, 보시다시피, 윗 부분에 "피라미드에 만물을 내다보는 눈"이라는 일루미나티의 상징마크가 빛나고 있다.
로스차일드의 세계혁명 행동계획
초대 로스차일드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174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게토에서 출생)가 30세 때,프랑크푸르트에 12명의 실력자를 모아 비밀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여기서, 전세계의 맨파워와 자원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계획이 논의되어, 25개 항목으로 구성된 세계혁명 행동계획으로 불리는 어젠다(행동계획서)가 출범했다.
1.폭력과 테러에 호소하면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권력은 힘 안에 존재한다.
2.정치권력을 탈취하려면 "리버럴리즘"을 설파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그러면 유권자는 하나의 사상을 위해 자신의 힘, 권력을 내려놓게 되고, 그 포기된 힘, 특권을 긁어모아 손아귀에 넣으면 된다.
3.대중은 어떻게 자유를 누려야 할지 모른다. "자유"라는 사상을 이용하면 "계급투쟁"을 일으키는 것도 가능하다.
4. 최종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솔직함과 정직함 같은 국민으로서의 훌륭한 자질은 정치에 지장을 주므로, 지배자가 되려는 자는 교활함과 기만에 호소해야 한다.
5. 우리의 권리는 힘 안에 있다. 내가 발견하고 있는 새로운 권리란, 강자의 권리에 의해 공격할 권리이며, 기존의 질서, 규율 모든 것을 분쇄하고,기존의 모든 제도를 재구축할 권리이다.
6. 우리들의 부의 힘은, 어떠한 교활함이나 힘에 의해서도 손상되지 않는 힘을 얻을 때까지, 표면화되지 않도록 유지되어야 한다. 전략계획의 기본노선에서 어긋나는 것은 수세기에 걸친 영위를 헛되게 할 위험이 있다.
7. 군집심리를 이용해 대중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해야 한다.
8.주류, 드러그(약물), 퇴폐적 도덕, 온갖 가능한 악덕을 대리인을 통해 조직적으로 이용하므로서, 여러 국가의 젊은이들의 도덕심을 떨어뜨려야 한다. 뇌물도 사기도 배신행위도,그것이 우리의 목적달성에 도움이 된다면 계속되어야 한다.
9. 그렇게 하므로서 복종과 주권을 확보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주저없이 재산을 빼앗을 권리가 자신들에게는 있다.
10. 우리는 "자유・평등・박애"라는 말을 민중에게 가르친 최초의 민족이다.고임은 난해함 때문에 이 말의 의미와 그 상호관계의 대립을 깨닫지도 못한다. 고임의 자연발생적이고 세습적인 귀족사회의 폐허 위에, 우리는 돈에 의한 귀족사회를 만들었다.그것은 우리가 의지하는 바, 즉 부를 참가자격으로 삼는 귀족사회다.(※고임이라는 것은 고이의 복수형으로, 고이란 비유대인을 가리킨다. 또 가축이라던가 돼지라는 의미도 있다.)
11. 스스로 전쟁을 유발하면서,적대하는 어느 쪽에도 영토획득이 생기지 않는 평화회의를 주도해야 한다. 전쟁은 대립하는 양측 국가가 더욱 부채를 떠안고,우리 대리인의 수중에 떨어지도록 주도되어야 한다.
12. 재물을 활용해, 우리의 요구에 순순히 따라,게임의 말이 되어, 정부를 뒤에서 조종하는 일을 우리가 위임한 사람에게 맡기도록 뽑아야 한다.
12. 비방과 중상,허위정보의 유포로 어떤 파문이 일어나든, 자신은 자취를 감춘 채 비난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대중에 대한 정보의 출구 전부를 지배해야 한다.
14. 빈곤과 공포에 의해 대중이 지배당했을 때에는,항상 대리인을 무대 위에 세우고, 질서를 회복해야 할 때가 오면,희생자는 범죄자나 책임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희생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일을 진행해야 한다.계산된 공포지배가 실현된 시점에서, 범죄자나 정신이상자를 처형하면,우리 자신을 억압받는 사람들의 구세주로 가장할 수 있다. 사실 우리의 관심은 정반대로, 줄이는 것, 즉 고임을 살해하는 것에 있다.
15. 우리의 힘을 행사하면, 실업과 굶주림이 만들어져, 대중에게 다가간다. 그렇게 하면, 확실한 자본지배력이 생긴다.
16. 프리메이슨의 블루로지 내부에 다이토샤(大東社)를 조직해 파괴활동을 실행하면서, 박애주의의 이름으로 자신의 활동의 진정한 의미를 숨기는 것은 가능하다. 다이토샤(大東社)에 참가하는 멤버는,고임사이에 무신론적 유물주의를 퍼뜨리는 데 이용되어야 한다.(※프리메이슨에는 33계급이 있고, 아래로부터 3개가 도제・장인・오야카타라고 하는 계급으로 되어 있다. 이 3계층을 블루로지라고 하며, 즉 일반적인 프리메이슨 회원들의 집회장이라는 뜻이다. 다이토샤라는 것은 영어로 Grand Orient Lodge이며, Grand에는 통괄한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동양을 통괄하는 지부라고 생각된다.현재는 프랑스의 프리메이슨 본부가 Grand Orient Lodge라고 자칭하고 있다.)
17. 대리인은 대중에게 인기있는 슬로건을 만들 수 있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대중에게는 아낌없이 약속해야 하기 때문이다.약속된 일과 반대되는 일은 나중에 항상 일어난다.
18. 공포지배는,가장 빨리 대중을 복종시키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다.
19. 모든 전쟁의 뒤에는, 비밀외교가 주장되어야 한다.비밀외교를 통해, 우리의 대리인이 관여하지 않는 한, 국가들은 사소한 개인적인 합의조차 맺지 못하게 하는 지배권이 확보되어야 한다.
20. 최종목표인 세계정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독점, 막대한 부의 축적이 필요할 것이다.
21. 고임으로부터 그 부동산, 산업을 빼앗기 위해, 무거운 세금과 부당경쟁을 조합해 고임의 경제파탄을 일으켜야 한다. 국제무대에서 고임이 장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가능하다. 즉 원재료의 능숙한 지배, 단시간 노동 및 고임금을 요구하는 노동운동의 보급, 경쟁자의 조성에 의해 그것은 실현될 수 있다.
22. 최종적으로는,우리 운동에 힘쓰는 소수의 부자들, 그리고 우리의 이익을 지키는 경찰과 병사들과, 프롤레타리아트 대중들이 남았으면 좋겠다. 고임을 죽이기 위해 대대적인 규모의 무기증강이 개시돼야 한다.
23. 세계통일정부의 구성원은 독재자에 의해 임명되며, 과학자, 경제학자, 재정전문가, 기업가, 갑부 중에서 선출된다.
24. 대리인은 그 잘못을 우리가 알고 있는 이론, 원칙을 가르쳐 사회젊은층의 정신을 현혹시키고 부패시킬 목적으로, 모든 계급, 모든 수준의 사회, 정부에 잠입해야 한다.
25. 국가법 및 국제법을 이용하면서,고임의 문명을 파괴해야 한다.우리에게 고임이 무장봉기하기 전에 공포의 조직을 여러국가의 각 도시에 조직하도록 합시다.
유대인 학자 크리스토퍼 존 베르크네스에 따르면, 영화(榮華)가 극에 달했던 고대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 때인 BC929년에는, 세계를 평화적으로 지배하는 이론상의 계획이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워털루 전투
1815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네덜란드 프로이센 연합군에 의한 유럽패권을 둘러싼 전쟁. 이때, 영국은 국채를 발행하는 것에 의해 전비(戰費)를 조달. 영국이 패하게 되면, 당연히, 영국의 국채는 대폭락한다. 어느 날,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창백한 표정이 되어, 갑자기 영국국채를 팔기 시작했다.네이선은 독자적인 정보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어, 누구보다 빨리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 표정을 보고 투자가들은 영국이 패했다고 생각해, 영국국채를 앞다퉈 팔기 시작해, 최종적으로 대폭락했다. 그 이면에서 네이선은 비밀 대리인을 이용해 종잇장이나 다름없게 된 영국국채를 마구 사들였다.
다음날, 영국승리라는 정보와 함께 영국국채는 폭등했다.그러나, 그때는 네이선이 영국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인 뒤였다. 이로 인해 많은 투자자와 거의 모든 명문가가 파산한 반면, 네이선은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숫자인 약 100만파운드의 이익을 얻었고, 하루 만의 수익으로 재산이 2500배로 불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후에, "연합군은 워털루 전투에서 이겼지만, 실제로 이긴 것은 로스차일드였다"라는 속담이 되어 유럽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를 계기로 로스차일드의 잉글랜드은행에 대한 지배가 시작됐다.
1820년대에는, 각국의 대장대신이 로스차일드 형제에게 매수되어, 국가의 부채를 만들고, 공채를 발행해, 그 2배에 가까운 금리를 로스차일드 상회에 지불했다고 한다. 로스차일드 상회의 자산총액은, 1815년에는 333만 프랑이었지만, 10년 후인 1825년에는 1억 6000만 프랑으로 커졌다.
스컬&본즈
미국의 명문인 예일대학에 비밀결사인 스컬&본즈가 설립된다. 창설자는 알폰조 태프트와 윌리엄 러셀. 알폰조 태프트는, 율리시스 그랜트 정권에서 법무장관과 육군장관을 지냈다. 아들은 제27대 미국 대통령인 윌리엄 태프트.
윌리엄 러셀은, 로스차일드와 베어링이 지배하는 아편무역의 이권을 나눠 받은 마약무역회사인 러셀사의 일족.러셀사는, 영국이 독점하는 인도산 아편보다 질은 나쁘지만 값싼 터키산 아편을 중국에 들여와, 거기서 얻은 자금으로 매사추세츠 은행(훗날 보스턴 퍼스트 내셔널 은행)을 설립했다.
스컬&본즈는, 1856년에는 "러셀 신탁기금"이라는 이름아래 정규법인격을 취득했다.
윌리엄 러셀이 독일에 유학했을 때, 아무래도 일루미나티와 접촉한 것 같고, 귀국 후에 그 비밀결사의 의식을 본떠 설립된 것이 스컬&본즈다. 일루미나티와의 차이점은 스컬&본즈는 화이트 앵글로색슨 개신교로만 구성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WASP만으로 구성된 미국판 일루미나티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초기의 스컬&본즈는, 아편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얻은 뉴잉글랜드의 유력상가가 중심이었다. 17세기에 최초로 미국에 온 퓨리턴의 후예들이 첫 번째 그룹으로 꼽히며, 휘트니 가문, 로드 가문, 와즈워스 가문, 앨런 가문, 밴디 가문, 애덤스 가문, 스팀슨 가문, 태프트 가문, 길먼가, 퍼킨스 가문 등이 있다.두 번째 그룹은 18세기부터 19세기에 막대한 부를 얻은 명가문으로 해리먼 가문, 록펠러 가문, 페인 가문,다비슨 가문, 필스베리 가문, 웨이야하우저 가문, 그리고 부시 가문 등이다.
윌리엄 러셀이 독일유학에서 가져온 또 하나가, 헤겔의 변증법이다. 스컬&본즈는, 이 헤겔의 변증법을 전략으로서 채용하고 있다. 어떤 것인가 하면, 간단하게 말하면, 우선 테제(정립)를 세우고, 그것에 대해 안티테제(반정립)를 부딪쳐, 진테제(종합)를 도출하는 것으로, 정+반=합이라고 하는 도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자신의 우위를 이끌기 위해 세계속에 의도적으로 대립을 일으켜, 긴장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자신들을 유리하게 이끌 해결책을 제공한다는 방법론이다. 이것도 일루미나티와 같으며, 키워드는 "분열과 혼돈".
스컬&본즈는 교육계에 큰 영향을 미쳐 왔다. 티모시 드와이드가 예일학장. 앤드류 화이트가 코넬대의 초대 학장. 존·록펠러는 록펠러 대학과 시카고 대학을 창립. 대니얼 길먼은 캘리포니아대와 존스홉킨스대 초대 총장이 됐다. 이 길먼이 록펠러들과 일반교육위원회를 설립해 미국 학문의 방향을 잡았다.
또 길먼의 애제자로 존 듀이가 있으며, 듀이는 미국 진보주의 교육운동의 사상적 기둥이 되었다. 이 듀이의 교육사상과 이론은 전후일본의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스컬&본즈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인물이 헨리 L. 스팀슨이다. 스팀슨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윌리엄 태프트, 우드로 윌슨, 캘빈 쿨리지, 허버트 후버, 프랭클린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과 7명의 대통령 측근을 지냈다. 원폭을 제조한 맨해튼 계획의 최고 책임자이기도 하다.
육군장관이었던 스팀슨은, 육군성내에서 스컬&본즈의 플루프(FLOOP)를 결성했다. 존 맥클로이, 로버트 로벳, 맥조지 밴디, 윌리엄 밴디, 딘 에이크슨, 조지 마셜, 애버렐 해리먼, 프레스콧 부시 등 세계대전 시의 중요한 각료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 그룹이, 제2차 세계 대전 전부터 전후에 걸친 중요한 전략정책을 입안하고, 일독 양국의 점령정책의 입안에도 임했다.
또, 이 그룹은 전략사무국(OSS)을 창설해, 이후,그 후진인 중앙정보국(CIA)은 스컬&본즈 인맥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그 외, 스컬&본즈는, 대학, 재단, 은행, 석유 회사등도 산하에 두고 있어 정부기관에도 폭넓게 인재를 보내 왔다.
스컬 앤드 본즈의 1947년의 단체사진, 조지 H.W. 부시는 시계의 왼쪽에 있다
통신지배
1897년 런던에 마르코니 무선회사가 설립되면서, 로스차일드의 통신지배가 시작된다.
이 통신지배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워털루 전투에서 막대한 부를 쌓은 것처럼, 원래 로스차일드 가문은 정보를 무기로 삼아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통신사는 1835년에 설립된 프랑스의 AFP(Agence France Press)인데, 창업자인 유대인 샤를 루이 아바스는 로스차일드에 고용되어 사무소를 개설했다.
아바스의 부하에는 폴 로이터라는 유대계 독일인이 있고, 이 로이터가 1851년에 영국에서 로이터 통신을 설립한다. 세계에 퍼져있는 영국식민지를 오가는 상인네트워크를 통해 로이터 통신에 정보가 도착해, 이 로스차일드의 지배하에 있는 로이터 통신으로부터 전세계에 뉴스가 전달되어 왔다.
또, 그 로이터 통신으로부터 MI5(영국내의 군사정보를 담당하는 과)나 MI6(영국 외의 군사정보를 담당하는 과)가 생겼고, 그 MI6의 지도를 받아 CIA나 모사드 등 각국의 첩보기관이 생겨났다는 경위가 있다.
"정보를 제압하는 자는 세계를 제압한다"는 것이다.
초대 로스차일드의 세계혁명행동계획13. 비방, 중상, 거짓정보를 흘리므로서 어떤 파문이 일어나든, 자신은 모습을 감춘 채, 비난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대중에 대한 정보의 출구 전체를 지배해야 한다
"공산당 선언"
1848년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다. 집필을 의뢰한 바뤼흐 레비라는 인물이 마르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목적을 털어놓고 있다.
"이 새로운 인류의 사회조직 속에서, 우리 유대인들은 어떤 국가에 속하지도 않고, 또 다른 민족의 아무런 저항을 받지않고 지도세력이 될 것이며, 머지않아 그 영향은 전세계에 미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들 중의 몇몇 현자들이, 이러한 노동대중 속에 확고한 지도권을 세우는 데 성공한다면,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로 인해 차례차례 세계공화국의 일부가 되어가는 여러국가의 지배권은, 이들 프롤레타리아를 지도하는 우리 유대인들의 손에 쉽게 들어올 수 있습니다. 요컨대,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는 사유재산의 폐지를 가져와, 이렇게 공유재산이 된 다른 민족의 모든 사유재산은, 공유재산을 관리하는 유대인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 유대인의 메시아가 도래할 때, 유대인은 전세계 백성의 재산을 모조리 다윗의 별 아래서 관장할 것이라고 전해져 온 탈무드의 예언이 실현될 것입니다.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Thomas Blake Glover)
글로버는 중국에 아편을 팔아 아편전쟁을 일으킨 마약무역상사인 자딘 매세슨상회의 대리인으로, 로스차일드 산하의 로이즈보험과 홍콩상하이은행 등의 대리점도 맡고 있었다.
참고로, 이제 세계제일의 금융그룹이 된 홍콩상하이은행에 대해서인데, 로스차일드, 베어링, 새슨, 자딘 매세슨이라는 쟁쟁한 마약무역상이 설립시에 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즉, 중국에 판매한 아편의 대금을 영국으로 송금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홍콩상하이은행이다.
자딘 매세슨이 자금을 대고, 글로버가 길잡이 역할을 했으며, 1863년에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등 5명의 조슈번사(長州藩士)를 영국으로 밀항시켰다. 또한 1865년에는 고다이 도모아쓰(五代友厚)등 17명의 사쓰마 번사도 영국으로 밀항시켜, 후에 그들이 메이지정부의 요인이 되어간다.
무기상인인 글로버는, 사카모토 료마(坂本本龍馬)의 가메야마(龜山)사중(社中)을 통해 사쓰나가(薩長)에게 무기탄약을 제공했다. 글로버는 영어도 가르쳐, 제자였던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弥太郎와 함께 미쓰비시 재벌의 기초를 만들기도 했다.
미국의 남북전쟁
독일의 철혈 재상인 비스마르크는, 1876년에 "남북전쟁은 유럽의 금융권력에 의해 유발됐다"고 말한 바 있다.
<존 콜먼, '로스차일드의 밀모'에서>
"미국을 2개의 연방으로 분할하는 것은,유럽의 대금융권력에 의해, 남북전쟁 훨씬 이전에 결정됐다.그런 은행가들은 미국을 두려워했다. 미국국민이 결속한 상태라면, 당연히 하나의 나라로서 경제적, 금융적으로 독립해 움직일 것이며, 그렇게되면, 그들 은행가에 의한 세계지배는 뒤집어질 것이라고 우려한 것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이러한 지적에 영향을 받아, 그들 은행가는 자신감에 넘치고 자급자족체제를 관철하는 활력있는 미국공화국을 2개의 약소국가로 만들어 부채를 지도록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중략) 링컨은, 어느 날, 자신이 유럽의 악의에 찬 금융가 로스차일드 가문으로부터 그 가문의 계획을 실행하는 인물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감지했다. 북부와 남부는 그들에 의해 분단되기 일보직전이었다. (중략) 링컨은 그들의 계획을 간파했고, 곧 진짜 목표는 남부가 아니라, 유럽의 금융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략) 그래서 그는 공채제도를 확립시켜, 국가에 어떤 중개조직도 없이 직접 사람들로부터 빌리므로서, 국제은행무리를 없애기로 결심했다. (중략) 미국은 지배할 수 없다고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지만,곧 링컨의 죽음으로 문제는 해결된다. 공격을 위한 광신도를 찾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중략) 합중국에, 그의 의지를 계승할 만큼 위대한 인물은 없다. 이스라엘은, 세계의 부를 새롭게 약탈하는 것을 떠맡은 것이다. 악랄하고 뒤틀린 유대인 은행가들이 합중국의 부유한 부를 완전히 지배해, 현대문명을 계획적으로 붕괴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1862년 7월] 잉글랜드은행은, 미국의 은행업자들 사이에 "해저드 뱅킹 회보"를 배포했다.
(역사정보연구소 http://rekishijyoho.seesaa.net/article/20816501.html )
"노예제도는 전쟁의 힘으로 폐지될 것이다. 거기에는, 나도, 나의 유럽친구들도 역시 찬성이다. 왜냐하면, 노예제도는 노동력을 소유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거기에는 노동자를 돌보는 것이 수반된다. 한편, 유럽류의 방식으로는,특히 영국이 선도역이지만, 자본이 임금을 관리하는 것에 의해 노동력을 지배한다. 이것은 통화를 관리하므로서 가능해진다. 전쟁의 결과로 발생하는 막대한 채무는, 자본가들이 처리하게 되겠지만, 통화의 가치를 관리하는 데 쓰여져야 한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은행업무의 기본으로서는, (우리가 발행하는)채권이 사용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지금,재무장관의 의회에 대한 권고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린백으로 불리는 정부발행지폐를 어떤 기간에도 통화로서 유통시켜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것이 두 가지가 적혀 있다. 하나는 노예제가 폐지된 이유였다. 노예제는 노예를 돌봐야만 한다. 강제로 일을 시키려면 폭력으로 위협해야 하므로, 군대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억지로 일을 시키고 있기 때문에 모티베이션이 없으므로 생산성도 나쁘다. 그것보다, 해방시켜서,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하는 편이 알아서 일을 하게되므로 생산성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임금을 관리당하므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제대로 살 수는 없지만....
또 하나는, 돈은 채권이어야만 한다. 정부지폐로는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약점이다. 안타깝게도, 이 약점을 찔렀던 링컨은, 1865년 4월 14일에 암살당했다. 링컨은 "채권은 불필요하며,기원(起源)에 있어 채무가 없는 국가의 부에 비례해 발행되는 지폐만이 허가되어야하는 통화다"라고 국민에게 설파해 1862년 2월부터 정부지폐(그린 백)를 발행했다.쿤 로브 상회(Kuhn, Loeb & Co)
제이콥 시프는 개혁파 유대교도, 즉 프랑키스트. 이 시프는 솔로몬 로브의 딸인 테레사와 결혼해, 1870년, 쿤 로브상회의 총재로 취임, 경영자로서 존 D 록펠러, 에드워드 R. 해리먼, 앤드루 카네기의 후원자가 되어,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 해리먼의 철도, 카네기의 철강제국에 대출해 거대재벌로 육성시켰다. 그 후, 모건가문, 빌드가문, 드렉셀가문이라고 하는 당시의 3대 유력자와 제휴해, 월가의 은행연합을 형성한다.
1974년, 넬슨 록펠러가 부통령으로 지명됐을 때, 개인자산을 공표해야만 했다. 그때 드러난 것은, 록펠러가문의 자산은, 제이콥 시프 이래, 쿤 로브상회가 재무관리하고 있었고, 그 투자는 모두 쿤 로브상회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는 것이다.
일본은행
1877년 마쓰카타 마사요시(松方正義)가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의 재무장관 레옹 세와 회담하고, 레옹 세가 일본에게 중앙은행의 설립을 권유한다. 이 레옹 세의 보스가 바로 프랑스의 로스차일드 가문 4대 당주인 알폰스였다.
원탁회의그룹
1891년, 영국에서 원탁회의 그룹이 결성되었다.
[배경] 로스차일드의 융자를 받아, 세실 로즈의 데비어스사가 전세계 다이아몬드를 거의 독점적으로 지배했다. 로즈는 남아프리카의 철도・전신・신문업도 지배 하에 넣고, 1890년에는 케이프 식민지의 수상이 되어, 남아프리카의 정치・경제의 실험을 완벽하게 독점했던 인물이다.
세실 로즈는, 영국권 사람들을 결집해 전세계의 모든 거주지를 그들의 지배하에 두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으며, 그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비밀 네트워크를 조직했다. 그것이 원탁회의 그룹이다.
창시자 그룹의 간부는, 로스차일드 경, 발포어 경, 그레이 경, 이셔 경, 밀너 경이었다. 로즈의 사후에는, 알프레드 밀너 경이 유지를 이어 비밀 네트워크를 담당할 인재를 육성했다.
알프레드 밀너는, 밀너 킨더가든(밀너유치원)이라는 조직을 갖고 있었는데, 이 밀너킨더가든은 흑인을 노예로 삼아 혹사시키고, 급기야 아파르트헤이트를 만든 그룹이다. 세실·로즈가 남긴 재산은 장학금의 기금이 되어, 이 로즈 장학금을 통해 우수한 인재인 "입도선매(삼성장학금과 유사)"가 행해지게 된다.
미국에서는 로즈 장학금을 본떠 풀브라이트 장학금이 만들어졌고, 유명한 것으로는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蔵)가 이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유학한 경위가 있다. 이 원탁회의 그룹이 발전해, 1919년에는 영국에 왕립국제문제연구소(통칭 채텀하우스)가 설립된다. 이 채텀 하우스의 창설자는 밀너킨더가튼 출신의 라이오넬 커티스다.
1921년에는 미국에서 외교문제평의회(CFR)가 에드워드 맨델 하우스에 의해 설립된다. CFR은 미국을 영국의 영향하에 계속 두는 것을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초대 회장은 폴 워버그이며, 창단 회의에는 제이콥 쉬프, J.P. 모건, 버나드 발크, 아베렐 해리먼, 존 D. 록펠러, 월터 립먼, 존 포스터 덜레스, 앨런 덜레스, 크리스천 해터 등 쟁쟁한 멤버들이 참석했다.
1925년에는 태평양문제조사회(IPR)가 설립된다. IPR은 국제연맹 탈퇴 후, 일본의 유일한 국제창구가 된 NGO(비정부기구)로 태평양전쟁 때는 이 기관을 통해 대일공작이 이뤄졌다. 최근에 들어와 이 조직의 상층부가 모두 소련의 스파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IPR은 채텀하우스의 하부조직이지만, 자금제공은 록펠러재단과 카네기재단이 해왔다. 이 재단의 자금운용을 하고 있던 것이 로스차일드계의 투자은행이었다.
1954년에는, 빌더버그 회의가 개최되었다.
1973년에는,일·미·유럽 3극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제창자는 데이비드 록펠러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다. 록펠러가 빌더버그 회의에, 경제성장을 이룬 일본도 추가하면 어떨까 제안했는데, 유럽세로부터 반대를 받자,독자적으로 설립한 조직이다. 브레진스키는, 헨리 키신저와 함께 CFR의 중진으로, 지금은, 버락 오바마의 고문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카터 정권시부터 미국정부의 기본적인 외교정책은, 브레진스키가 그린 전략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다.현재는 일본의 국제적인 전략적 중요성이 저하되어, 일·미·유럽이 빠져 그냥 "3극 위원회"로 개칭되었다.
러일 전쟁
1904년, 러일전쟁이 개전. 일본이 절대 불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쿤·로브상회의 제이콥·시프로부터 융자를 받아, 전비부족을 보충해, 어떻게든 승리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담이 곧 크게 증가해, 일본은 외국자본에 의한 컨트롤로부터 재정파탄, 그리고 전쟁이라는 길을 걷기 시작한다.
로스차일드의 석유지배
1907년, 로열 더치와 셸이 합병해 로열 더치 셸이 탄생한다. 로열 더치는 네덜란드의 황실이며, 네덜란드는 산유국인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삼고 있었다. 1909년, 지금의 이란에 앵글로-페르시아 석유가 설립된다. 이것은 후에 브리티시 페트리엄이 되었고, 지금은 BP가 되어 있다. 로스차일드는, 바쿠 유전의 권리를 갖고 있으므로, 이로써 러시아, 인도네시아, 이란과 대산유국의 석유를 장악하게 되었다.
현재는, 셸이나 BP, 혹은 록펠러의 엑슨모빌 등, 국제석유자본이 가진 유전의 매장량은 세계전체 매장량의 10%를 밑돌고 있으며, 나머지는 산유국의 국유석유회사가 가지고 있지만, 상품거래소에 의한 가격형성메커니즘을,이용해 그 영향력을 견지하고 있다.
모건 그렌펠(Morgan, Grenfell & Co.)
1910년, 런던·모건상회가 모건·프렌펠로 개편된다.
창업자인 에드워드 그렌펠은,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영국은행의 총재인 헨리 그렌펠의 아들이자, 영국의 오래된 투자은행 브라운 쉬플리사의 중역이었다. 브라운 쉬플리의 브라운 가문은, 미국에서는 해리먼 가문과 결부되어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이 됐다. 이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의 은행장을 지낸 사람이 파파 부시의 장인인 조지 허버트 워커이고, 나치스에 자금을 대던 유니언 은행을 설립한 사람이 애벌 해리먼, 유니언 은행의 사장을 지낸 사람이 파파 부시의 친부인 프레스콧 부시라는 관계다.
모건 그렌펠은, 현재, 도이체방크에 매수된 형태지만, 실질적으로는 도이체방크를 탈취한 것이다.
FRB(연방준비제도) 은행가들의 사유은행 FRB 설립
1913년, 미국에서 연방준비제도(FRB)가 설립된다. FRB는, 1907년의 금융위기를 교훈삼아 탄생했다. 위기의 재발을 막기위해, 폴 워버그가 은행개혁의 필요성을 연일 언론을 통해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설립에 관한 경위를 설명하자면, 먼저 1910년에 J·P·모건이 소유한 조지아주의 지킬섬에서 전국통화위원회 회원들의 비밀회의가 열렸다. 이 밀실회의의 참석자는 다음과 같은 멤버였다.
[FRB 설립을 위한 비밀회의의 멤버]
넬슨 올드리치…공화당 상원의원이자 원내간사. 전국통화위원회 위원장. J. P. 모건의 투자 파트너. 존 D. 록펠러 주니어의 장인.
에이브러햄 앤드류... 연방재무차관. 통화위원회 특별보좌관.
프랭크 반달립…내셔널 시티·뱅크·오브·뉴욕은행장. 록펠러와 쿤·로브 상회를 대표.
헨리·데이비슨··J·P·모건 상회의 공동경영자.
찰스 노튼. J. P. 모건의 퍼스트 내셔널 뱅크 오브 뉴욕의 행장.
벤자민 스트롱... J. P. 모건의 뱅커스 트러스트 컴퍼니 사장. 후에 뉴욕연방준비은행의 초대총재.
폴 워버그... 로스차일드 대리인. 쿤 로브 상회의 공동경영자.
이 멤버 중에서, 중앙은행의 설립에 관여한 적이 있는 사람은, 폴 워버그뿐이었기 때문에, 실무는 거의 그 혼자서 맡았다는 것이다.미국에서는 중앙은행에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기 때문에, 폴 워버그는 중앙은행이라는 명칭을 피하라고 권고했고, 연방준비제도라는 명칭으로 결정했다.
연방준비제도를 만드는 법안은, 공화당의 넬슨 올드리치가 의회에 제출했지만, 올드리치 법안은 민주당의 거센 반대를 받는다.그 논의를 계속하는 동안에, 공화당은 야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자인 우드로 윌슨으로 타깃이 변경된다.
191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현직으로 인기자인 윌리엄·태프트(공화당)가 재선이 확실하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인기인이자 전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공화당을 떠나 혁신당을 창당해 입후보한다. 그 결과, 공화당내에서 표가 갈라져 윌슨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이때, 우드로 윌슨을 지원하던 것이, 폴 워버그와 제이콥 쉬프였다. 윌리엄 태프트를 지원한 것은 펠릭스 워버그. 펠릭스는 폴 워버그의 사촌. 그리고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지원했던 것이 오토 칸.폴 워버그, 제이콥 쉬프, 펠릭스 워버그, 오토 칸, 사실, 이 네 사람 모두, 쿤 로브상회의 공동경영자다.
초대 로스차일드의 세계혁명행동계획 ⑫ 재물을 활용해, 우리의 요구에 순순히 따라, 게임의 말이 되어, 정부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것은 우리가 맡은 인물을 골라야 한다 그렇게 선택된 인물이 윌슨이었던 셈이다.
조종당한 윌슨 대통령
윌슨을 조종한 대표적인 4명.
[에드워드 먼델 하우스(하우스 대령)]
군대경험이 없는데도, 왠지 "하우스 대령"으로 불렸던 에드워드 먼델 하우스는, 윌슨이 "또 다른 나"라고 불렀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하우스 대령은, 링컨암살의 주범격인 토머스 W. 하우스의 조카이고, 로스차일드의 대리인으로서 유럽의 금융자본과 텍사스의 석유업체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
[버나드 바루크]
월가의 전설적인 투기꾼으로 불렸던 버나드 바루크는, 윌슨 하딩 쿨리지, 후버 루스벨트, 톨먼 등 6명의 대통령 고문으로 활약한 인물. 제1차 대전 때는 전시생산국장관이 되어, 군비공장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군사예산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1차 대전 전, 발루크는 100만 달러의 자산을 갖고 있었는데, 전쟁이 끝났을 ,때 그 자산은 2억 달러나 됐다.독일에게 터무니없는 배상금을 지불하도록 결정한 배상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며, 제2차 대전 후에는 유엔의 원자력위원회 미국수석대표를 맡았다.
[유진 아이작 마이어]
유진 마이어는, 전시군수품 및 재정위원회와 전쟁산업위원회의 포스트에 기용돼, 1930년에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이사로 취임, 1931년에는, 재건금융공사의 회장에 오른 인물이다. 이어 1946년에는 초대 세계은행의 총재로도 취임했다.유진 마이어의 아버지는 로스차일드계 투자은행인 라자드 브라더스의 공동경영자였고, 딸 캐서린 그레이엄은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였다. 캐서린 그레이엄은 "일본총리는 캐서린 그레이엄의 허가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덧붙여, 이 마이어가문은 오토칸의 일족이다.
[폴 워버그]
FBR의 설립자인 폴·워버그는 개혁유대교도, 즉 그도 프랑키스트다. 로스차일드의 대리인으로서 도미한 폴은, 쿤 로브상회의 창업자인 솔로몬 로브의 딸인 니나와 결혼해, 제이콥 시프와 마찬가지로, 쿤 로브상회의 공동경영자가 됐다. 폴의 형인 맥스 워버그는, 독일 첩보기관의 리더이자, 나치에 대한 활동자금을 제공했던 인물. 사촌인 펠릭스 워버그는, 레닌을 봉인된 열차에 태워 러시아혁명을 지원한 독일 국방군의 정보부장관으로, 이 펠릭스는, 제이콥 시프의 딸인 프리다와 결혼했다. 또한, 폴의 딸인 펠리시아 시프 워버그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아들인 루스벨트 주니어와 결혼했다.
프랑크푸르트의 게토에서는, 좁은 유대인 거주구 안에, 시프 가문, 워버그 가문, 발루크 가문, 칸 가문, 그리고 로스차일드 가문이 살고 있었다. 시프 가문은 로스차일드와 같은 저택을 반씩 나눠 살고 있었고, 칸 가문은 그 네 집의 옆에 살았다.
우드로 윌슨은, 취임식 직후에 특별회기를 소집해, 크리스마스 휴가로 대부분의 의원들이 고향으로 간 사이에, 민주당이 제출한 오웬 글래스법이라는 연방준비법을 통과시켜 서명했다. 그 오웬 글래스 법안은, 과거, 민주당이 반대했던 공화당의 올드리치 법안과 이름만 빼고는 거의 똑같다는 법안이었다. 게다가, 이 오웬 글래스 법안에 대해 공화당의 올드리치와 밴더립이 거센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희극이 곁들여졌다.
우드로 윌슨은, 말년에 되어 연방준비제도설립에 가담한 것을 후회하며, 이렇게 말했다."나는 얼떨결에, 나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았습니다. 커다란 산업국가는, 그 나라 자신의 신용시스템에 의해 관리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용시스템은 하나의 점에 집결했습니다. 따라서 국가의 성장과 우리의 모든 활동은, 아주 적은 사람들의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문명개화된 세계에서의 지배된 정치, 거의 완전히 관리된 최악의 통치를 하는 나라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1929년 월가의 대폭락을 계기로 세계공황이 시작된다. 그 원인은, 1920년대에 FRB의 지시로 은행들이 신용창조량을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대출담보는 주로 주권(주식과 채권)이며, 그 결과, 주가는 급등,버블이 발생한다. 주가가 피크를 맞이하면, FRB는 일전해 은행의 신용창조를 엄격하게 억제. 돈의 유통량을 의도적으로 줄이므로서 대공황을 일으켰다. 이것은 밀턴 프리드먼을 비롯한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한 바 있다. 이 공황으로 인해 1만6000개의 은행이 도산했고, 그 대부분은 모건과 록펠러가 흡수·합병해 갔다. 또 휴지조각이나 다름없게 된 기업의 주권도 매점매석해, 양측의 독점상태가 된다. 은행과 기업뿐 아니라, 대출금을 갚지 못한 농가도 광활한 땅을 몰수당하고, 대기근이 발생한다. 그 땅의 대부분도 월가의 금융재벌 관련기업에게 헐값에 팔렸다.
1931년 형기회복이라는 명목으로 금(金)의 회수가 행해진다. 징역 10년이라는 벌칙 아래, 미국민 전체가 금화나 금괴를 재무성에서 지폐와 교환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그리고, 1939년말에는 태환지폐가 폐지되어, 지폐와 금은 더 이상 교환할 수 없게 되었다. 즉, 합법적으로 금의 강탈이 이루어진 것이다.
금융위기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FRB였지만, 연방준비제도가 성립되고나서, 1921년, 1929년의 주가폭락, 그리고 1929년부터 1939년의 대공황, 1953년, 57년, 69년, 75년, 81년의 경기침체 이후, 89년의 블랙 먼데이를 겪으면서, 1000%의 인플레이션으로 달러의 구매력 90%가 파괴되었다. 즉, FRB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로스차일드의 세계혁명 행동계획 ⑮ 우리의 힘을 행사하면, 실업과 굶주림이 만들어져, 대중에게 다가간다. 그렇게 하면, 확실한 자본의 지배력이 생긴다.
연준의 폐해에 경종을 울리던 현인들
[린드버그의 경종]
대서양 단독비행을 성공한 것으로 유명한 찰스 린드버그의 아버지는 정치인이었다. 1910년대에 미네소타주 선출의 공화당의원을 맡고 있었지만, 금융자본가의 계획을 눈치채고 있었다.
"금융제도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넘어가 버렸다. 이 이사회는 끊임없이 폭리를 취하는 그룹의 지배로 운영되고 있다. 이 이사회는 사영(私營)으로, 남의 돈을 사용해, 최대의 이익을 올린다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경영되고 있다"고 경고.
그는 두 권의 책을 냈는데, 1913년의 "은행과 통화와 머니 트러스트"와 1917년의 "왜 당신의 나라가 전쟁으로 향하는가?" 양쪽에서, 은행가들의 이익추구에 의해 일반민중이 희생되고 있다고 지적. 후자에서는 제1차 대전에 있어서의 미국의 은행에 의한, 전쟁당사국에 대한 고액의 융자를 비난했다.
[연준을 비판했다가 독살당한 맥패든]
펜실베이니아 주 선출인 공화당 의원으로, 1920년대에 의회의 은행통화위원회 의장을 지낸 루이스 맥패든의 말을 소개한다.1929년 10월 29일의 월가의 주식폭락으로 시작된, 세계대공황이 한창이던 1932년 6월 10일에, 미국의회에서 행한 연설이다. 그는, 이 25분간의 연설에서, 이번 세계대공황은 연방은행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이라는 점과, 러시아 혁명의 성공은 월가의 은행가들이, 미국연방은행과 유럽의 중앙은행을 이용해 자금을 사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전세계에서 과거에 존재했던 수많은 유해한 제도 중의 최악의 것이 있습니다. 저는 연방준비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악마의 제도는, 합중국의 국민을 가난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사실상 합중국정부를 파산으로 몰아넣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사회를 통제하는 부자들의 부패한 책략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이 은행이었고 행장까지 됐다. 그 후, 정계로 전향해 의원이 된 후에도 은행통화위원회의 의장을 맡았으므로, 금융의 구조와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이 반골인 사람은, 세계대공황은 연방은행과 연결된 금융자본가가 일으킨 것을 간파하고, 연방은행에 대한 탄핵결의를 의회에 제출하려던 참에,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는 이 기념할 만한 연설을 한 4년 후, 1936년 10월 1일부터 뉴욕시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감기에 걸렸기 때문에 독감용 약을 복용한 직후, 심장이 정지. 이틀 뒤인 10월 3일에 60세로 생애의 막을 내렸다. 이것은, 감기약으로 속이고 독을 넣어 암살당한 것은 아닐까. 그가 목숨을 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며, 과거 워싱턴에서 두 차례나 위기일발로 살아났다. 한번은 매복당해 택시에서 내리다가 권총을 맞았지만, 다행히 총알은 비껴나갔고, 두 번째는 파티에서 언급한 것에 독이 들어 있었는데, 그 자리에 마침 의사가 있어 즉각 위세척을 해서 목숨을 건진 적이 있었다. 세 번째는 여행지에서 방심하고 있었는 지도 모르지만, 목숨을 빼앗기고 말았다.
[라이트 퍼트맨]
텍사스 주의 선출 민주당 의원으로, 1930년대 의회의 은행 및 통화위원회의 위원을 지낸 라이트 팻먼의 말을 소개한다.
"오늘날의 합중국에는 두 개의 정부가 존재한다. 하나는 정당하게 설립된 정부, 다른 하나는 헌법에 의해 의회에 주어진 통화발행을 관리하는 연방준비제도, 라고 하는 독립된, 통제할 수 없는 협조성이 없는 정부다."
[베리 골드 워터]
1964년에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기도 했던 상원의원 배리 골드워터의 말.
"대부분의 미국인은,국제금융자본가들이 하는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회계는, 아직 이전에 감사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이 이사회는 의회의 통제 밖에 있는 존재입니다. 게다가 다른 나라로부터의 합중국의 신용과 신뢰를 나쁘게 만들고 있습니다."루시타니아호(RMS Lusitania)사건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5년, 아일랜드의 앞바다를 항해하던 영국국적의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독일해군의 U보트에서 발사된 어뢰에 의해 침몰해, 미국인 128명을 포함한 1198명이 희생됐다.
하지만 루시타니아호의 화물에는 173t의 탄약이 실려 있어, 당시의 국제법에 비춰볼 때, 루시타니아호는 공격을 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 독일대사관도 사전에 미국민에게 배를 타지 말라는 경고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윌슨 대통령은 탄약의 적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화물목록을 개봉금지했다.
최근에 실시된 해저조사에서, 침몰한 루시타니아호의 선내에는 불법무기와 화약이 적재되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역시 루시타니아호가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당시의 하우스 대령과 영국 외교관인 에드워드 그레이 경의 대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레이 : "만약 독일군이 미국 여객선을 침몰시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하우스 : "분노의 불길이 미국전역으로 번져, 우리를 확실하게 전쟁으로 이끌 것이다"
독일의 야만적인 공격에 대해 미국의 여론은 비등. 이것에 의해, 그때까지 중립이었던 미국의회에서도 반독일의 분위기가 강해져, 미국도 참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동의 삼구일언(三口一言)외교
1915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지역인 중동에서, 아랍인들의 봉기에 의해 터키를 배후에서 위협하려는 영국의 외교관 헨리 맥마흔이, 아라비아 반도의 유목민이자 성지 메카의 태수인 후세인에게 아랍인 국가의 수립을 약속한다.
이것을 후세인=맥마흔 협정이라고 한다.
1916년
영국의 중동전문가인 마크 사익스와 프랑스의 외교관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가, 예루살렘과 바그다드 라인에 의해 북쪽은 프랑스의 통치, 남쪽은 영국이 통치한다는 비밀조약을 맺는다. 이것은 사익스=피코 조약이라고 알려져 있다.
1917년
영국의 외무부 장관인 아서 발포어가 라이오넬 로스차일드에게 유대국가의 수립을 약속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것을 벌포아 선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해, 영국군이 예루살렘에 입성해, 아랍인의 힘을 빌려 오스만 터키제국에 의한 400여 년의 팔레스타인 지배를 종결시켰다.후세인에게는 아랍인 국가의 수립을 약속하고, 조르주=피코와는 북방의 프랑스 통치를 약속하고, 라이오넬 로스차일드에게는 유대국가의 수립을 약속한다는, 이 "영국의 삼구일언 외교"가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문제의 커다란 원인이 되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맥마흔, 사익스, 조르주=피코, 벌포어는 무려 전원이 로스차일드 가문의 인물들이다.
국제 연맹
1917년, 미국에서 미국 시오니스트 기구가 탄생한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던 비유대인(말라노라는 설도 있다) 법률인가 루이스 브랜다이스(나중에 대법관)가 총재가 되어 시오니스트 운동에 힘을 쏟게 되면서 영향력이 커졌다. 참고로 이 브랜다이스는, 일본헌법의 사실상의 초안자이기도 하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된다. 11월에 윌슨 대통령의 "14개조의 평화원칙"을 독일이 받아들이면서 휴전이 성립된 것인데, 이 "14개조의 평화원칙"은 루이스 브랜다이스가 작성했다. 이 제안 속에 있던 국제평화기구가 나중에 국제연맹이 된다.
1919년에 전후의 배상문제를 결정하는 파리강화회의가 시작된다. 회의에 임하는 윌슨 대통령의 고문단은, 월가의 은행가와 국제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됐으며, 미국의원들은 민주당원 조차 참가하지 않았다. 파리강화조약의 주요 부분을 결정한 것은, 버나드 바루크, 필립 사순 경,조르주 만델(본명 젤로보암 로스차일드) 등 3명으로, 이들은 국제노동자회의를 발족시켜, 배상위원회를 준비해,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에게 주고, 세계연맹과 국제재판소를 만들었다.
1차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전시 배상금으로서 1320억 마르크라는 전쟁 전의 GDP 3배에 가까운 금액을 청구받았지만, 지급처는 모건상회였다. 왜냐하면, 영국이 전쟁 중에 모건상회로부터 고액의 부채를 졌기 때문이며, 독일로부터의 배상금은 그 변제에 충당되었다. 미국과 영국이 만든 배상위원회는 사실상, 대부분이 모건상회 등의 은행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라이히스 뱅크(독일의 중앙은행)는 국채와 교환에 통화를 남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나 1923년에는 물가가 20억 배로 뛰었다.이 경이적인 인플레이션이 히틀러 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진다.파리강화회의에서는, 아랍 대표인 파이살이 발포어 선언을 양해한다는 와이츠만=파이살 협정도 체결됐다. 이에 따라 아랍인들의 반영/반유대 투쟁이 시작된다.
로스차일드의 세계혁명 행동계획 (11). 스스로 전쟁을 유발하면서, 적대하는 어느 쪽에도 영토획득이 생기지 않는 평화회의를 주도해야 한다. 전쟁은 대립하는 양측국가가 더 많은 부채를 떠안고, 우리 대리인의 수중에 떨어지도록 주도되어야 한다.
1920년,국제연맹이 설립된다. 시오니스트 운동의 지도자인 나홈 소로코우는 "국제연맹은 유대인의 발상이다. 25년 전쟁 후에 그것을 만들었다"는 발언을 남겼다.
로스차일드 5개 사
로스차일드 5사는 N·M·로스차일드, 새뮤얼·몬터규상회, 샤프스·픽스레이, 존슨·마세손, 그리고 모카타&골드슈미트다.
일중전쟁
모략에 빠진 일중전쟁
1919년, 모스크바에서 볼셰비키와 유대의 합동회의가 열려, 일지(일본과 지나)투쟁계획안(日支闘争計画案)이 채택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渡部梯治 '유대는 일본에 무슨 짓을 했나' 성갑서방에서)
*일본과 지나의 내부파괴를 획책한다.
*지나에게 반일운동을 일으키도록 한다.
*일지 무력투쟁에서, 소련과 미국이 간섭하는 전쟁으로 발전시켜, 일본을 쓰러뜨린다.
*유럽에 사회혁명을 일으키는 제2차 세계대전을 계획한다.
1924년, 소련은 중국에 국민당의 군관학교를 설립시켜, 교장에 장제스를 임명한다. 1925년, 모스크바에 중국인 학생을 위한 나카야마 대학(中山大学)을 설립. 매년 수백 명의 공산주의자가 중국으로 송환되어, 코민테른의 휘하에서 반일운동을 선동했다.
코민테른은, 주세페 매치니에 의한 청년운동의 흐름을 이어받은, 세계에 혁명을 확산하기 위한 국제적 공산주의 조직이다. 즉, 중국의 패권을 다퉜던 국민당도 공산당도, 모두 코민테른에 의해 설립된 셈이다.
1937년, 일중전쟁의 발단이 된 노구교 사건이 일어난다. 1939년, 흥아원 정무부가 작성한 "노구교 사건에 관한 코민테른의 지령"이라는 자료가 남아 있다.
*어디까지나 국지해결을 회피해, 일지 전면충돌로 이끄는 것.
*모든 수단을 이용해, 국지해결이나 일본에 대한 양보를 통해 지나의 해방운동을 배신하는 요인은 말살할 것.
*하층민중을 선동해, 국민정부를 대일전쟁개시로 몰아갈 것.
*대일 보이콧을 확대해, 일본을 지원하는 국가는 보이콧으로 위협할 것.
나치스 독일
1919년, 독일에서 나치스당이 결성된다.나치스는, 애버렐 해리먼, 프레스콧 부시, J.P. 모건, 워버그 형제, 슈로더 형제 등 월가와 시티의 국제은행가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받았다. 또 국제결제은행도 나치스의 재원확보에 가담했다.
1933년, 독일에서 나치스가 정권을 잡고, 히틀러가 수상에 취임. 이듬해, 총재가 된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나치스 독일은 소련과 불가침조약, 이듬해 독일-소련 통상협정을 맺고, 히틀러는 "비천한 유대인" "저주해야 할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했던 공산주의 소련과 손을잡고, 석유, 귀금속, 곡물을 공급받았다.
독일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석유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독일이 전쟁을 그만두게 하고 싶다면 석유의 공급을 멈추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 소련의 바쿠 유전으로부터 석유를 공급해 전쟁을 계속시킨 것은, 로스 차일드=노벨 재벌의 석유회사인 쉘(적국인 영국국적회사)이었다.
독일과의 기묘한 관계는, 이뿐만이 아니다. 나치스가 유대인을 박해하도록 시킨 것은 시오니스트라는 증언이, 유대인을 중심으로 많이 나오고 있다.(출처: 히브리의 관2 "나치스와 시오니스트의 협력관계"
http://hexagon.inri.client.jp/floorA6F_hd/a6fhd300.html )
[마크 레인](반 시오니즘 유대인)
"히틀러는 유대인 멸종명령을 한꺼번에 내리지는 않았다. 그가 부하에게 명령한 것은 추방하는 것뿐이었다. 그 유대인 추방이 대량에 이르렀을 때, 히틀러는 당시의 시오니즘의 지도자였던 하임 와이츠만(세계시오니스트기구총재, 나중에 초대 이스라엘 대통령)에게 거래를 제의했다. 유대인들을 그쪽으로 넘기는 대신에 독일에 대한 경제원조를 요청한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와이츠맨은 그것을 거절했다. 유대인들이 박해받거나, 죽임을 당하므로서, 그것이 이스라엘 건국의 밑거름이 되고, 또한 전쟁 후의 유대인들이 세계에 어필해 나갈 때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그는 분명히 대답한 것이다
[나임 기라디](유대인 언론인)
"언제든지 역사에서 희생되는 것은 특권계급이 아니다, 부자도 아니다, 지도자들도 아니다, 일반 서민들이다. 나치스 독일에 희생된 것은, 그런 가엾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시오니스트 지도자들은, 그 희생된 유대인들의 위에 서서 자신들의 주의와 주장을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일반 유대인의 희생을 이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빕 시버](이스라엘 건국의 공로자, 훗날 반 시오니스트)
"반유대라는 것은 이 세계의 어디에도 없다. 반유대는 시오니스트들이 자신들의 형편을 위해 만들어내는 소란이다"
[전 나치스 고관]
"아이히만은 시오니스트 유대인에 대해 너무나 많이 알고 있는 남자였다. 히틀러는 유대 문제해결을 위해, 미국이나 영국과 극비리에 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연락책을 맡은 사람이 아이히만이었다. 역할상 그는 국제유대조직의 수장들과 여러차례 대화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극명하게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아이히만은 그들에 대해, 만약 미국도 영국도 유대국가건국에 협력하지 않는다면, 독일로서는 그들을 격리하기 위해 수용소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반대하기는 커녕, 대찬성을 표명했던 것이다. 과연 아이히만도 여기에는 깜짝 놀랐다. 그들 중의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까지 아이히만은 기록했다"
홀로코스트라는 말은,나치스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과 동의어로 쓰이지만, 원래는 "신에게 바치는 희생"이라는 뜻이다. 유대인 600만 명이 나치스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은 과장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전쟁 전의 유대인 인구는 약 1600만명, 전후 는 약 1470만 명으로 인구를 비교하면, 130만명 정도밖에 줄지 않았다. 게다가 소련의 영내에서 100만명의 유대인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요하네스 로스크란츠의 조사에 의해 확인되었다. 타국으로의 이주자도 수두룩했으므로, 기껏해야 수만~수십만 명이 아니면 계산이 맞지 않는다. 강제수용소 내의 굶주림이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도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모종의 유대인이 박해를 받은 것은 사실이고, 시오니즘에 반대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건국을 위해, 바로 "신에게 바치는 희생"으로 여겨진 것 같다.
러시아 혁명의 진상
1917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제정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가 쓰러지고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한다. 혁명을 주도한 레닌과 트로츠키에게 자금을 댄 것이 분트(Bund:유대인 노동총동맹)와 제이콥 쉬프, 폴 워버그 등 국제은행가들이었다. 레닌은 1918년부터 1922년까지 4년 간 4억 5000만달러를 쿤·로브 상회에 변제했다.
1913년 10월에 빈에서 발행된 유대기관지 "해머(망치)"의 기사에는 러시아 혁명이 예언되어 있었다.
"짜르(황제)는 키예프에서 유대인에 대한 철저한 박멸정책을 결의했다. 운명은 이 대투쟁의 결과에 달려 있다. 다만 그것은 유대인의 운명이 아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은 패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짜르의 운명일 뿐이라는 것이다. 짜르의 승리는 그 종언의 발단일 뿐이다. 피할 길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잘 명심해 두어라. 우리는 키예프에서 전세계를 향해 우리에게 굴욕을 주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자.만약 유태인이 지금까지 러시아에 혁명을 일으키는 사실을 숨기는 정책을 폈다면 키예프 사건에 있어서의 짜르의 태도가 밝혀진 오늘,그 정책은 버려야 한다. 이 사건의 결과가 어떻든, 짜르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 유대인들의 결심이다."
소련정부의 각 위원회 구성 소련정부 위원회
총수 유대인 %
인민 위원회 23 17 77. 2
군사 위원회 43 33 76. 1
외무 위원회 16 13 81.2
재무 위원회 30 24 80.0
사법 위원회 21 20 95.0
교육 위원회 55 42 79.2
사회 위원회 6 6 100
노동 위원회 8 7 87.5
적십자 위원회 8 8 100
지방 위원회 23 21 91.0
신문기자 41 41 100
뉴욕의 러시아 망명단체 "유니티 오브 러시아"의 인명부.
공산당 간부들은, 러시아 이름을 썼지만, 사실은 유대인이었다.
[소련 고위위원 중 유대인의 러시아 이름과 본명]
레닌 ⇒ 울리야노프
트로츠키 ⇒ 브론슈타인
카메네프 ⇒ 로젠펠트
지노비에프 ⇒ 아프헬바움
메슈코프스키 ⇒ 골드버그
라제누키이 ⇒ 래쉬맨
스테클로프 ⇒ 나함케스
라덱 ⇒ 조베르손
다세프 ⇒ 드랍킨
스하노프 ⇒ 긴멜
골레프 ⇒ 골드맨
마르토프 ⇒ 제델바움
보그다노프 ⇒ 실버스타인
리토비노프 ⇒ 핀켈스타인
(출처 : 영국 일간지 <모닝 포스트>)
BIS(바젤클럽)의 탄생
1930년,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인 국제결제은행(BIS 통칭 바젤클럽)이 설립된다.
BIS의 전신은, 파리강화회의에서 독일에게 가혹한 배상을 부과한 배상위원회다. BIS는, 매달, 각국의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여, 국제금융상의 이슈, 거시경제의 조정을 논의하는 자리로 알려졌지만, 중앙은행의 총재들이 매달 모일 리도 없고, 실제로는 사무처가 관리하고 있다. 그 사무국장은, 대대로, 로스차일드의 프랑스 "이백가족(二百家族)"에서 나왔다.
세계의 금융지배의 구조로서는, 그 정점에는 시티를 움직이는 로스차일드 일족을 중심으로 한 국제금융카르텔이 있다.
그 아래에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인 BIS. 그 아래에 ECB나 FRB, 거기에 일본은행 등 각국의 중앙은행이 있다. 그 아래가 시중은행. 나아가, 그 아래에 증권이나 상품등을 취급하는 일반 시장이 있다.
각 업종의 성장력을 컨트롤하는 것은 은행융자에 의한 신용창조량이다. 예를들어, 에너지 산업을 늘리고 싶어도, 거기에 돈이 투자되지 않으면 늘어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이 독점하고 있는 석유나 원자력을 위협하는 신에너지 등에는 좀처럼 투자되지 않는다. 반대로, 그들이 늘리고 싶은 산업에 연구비나 설비를 중점적으로 투자하므로서, 그 산업을 늘리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신용창조량을 통해 경제는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주만 공격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에 의한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된다.여론조사에서는, 미국민의 97%가 유럽전쟁참전에 반대했기 때문에, 루스벨트는 대통령선거에서 재선되기 전에 "공격을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지에서의 전쟁에 아들들을 보내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다.그 두 달 후,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인 해리 홉킨스는, 영국수상 처칠에게 "우리가 공동으로 이 전쟁을 이겨낼 것을 대통령은 결의했습니다."라고 전했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적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참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로스차일드의 세계혁명 행동계획 ⑰ 대리인은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인기있는 슬로건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대중에게는 아낌없이 약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약속된 일과 반대되는 일은 나중에 항상 할 수 있다.
일본을 몰아붙여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시키면, 3국협정에 의해 자동적으로 독일·이탈리아와도 싸울 수 있게 된다.
11월 26일, 일본이 일러전쟁 이후에 동아시아에서 쌓아 올린 권리와 이익 전부를 포기할 것을 요구한 "헐·노트"를 들이대, 일본은 미국과의 교섭중단을 결정. 전쟁을 결의한다.
이 "헐 노트"의 작성자는, 재무장관인 해리 덱스터 화이트였다. 국무장관인 코델 헐도 제안서를 썼지만, 부드러운 내용이어서, 더 가혹한 내용의 화이트안을 루스벨트는 채택했다.
후에, 해리 덱스터 화이트는 소련의 스파이였던 것이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그때 드러난 것은, 화이트가 소련의 지시를 받아 "헐 노트"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오니즈카 히데아키 '원폭의 비밀'에 의하면, 화이트는 로스차일드의 혈족이라는 설도 있는 것 같다.)
당시 공화당 의원의 90%, 민주당 의원의 50%가 전쟁에 반대했기 때문에, 루스벨트는 의회 몰래 전쟁을 도발하는 듯한 내용의 "헐 노트"를 일본에 제시했다.
일본은, 개전할 경우 "먼저 진주만 미함대를 두드린다"는 전략을 1941년 1월에는 굳혔는데, 이 정보는 주일대사인 조지프 그루를 통해 국무장관인 코델 헐에게 전달되었다.
참고로, 코델 할은 제이콥 시프의 친척이다.
"헐 노트"를 일본에 들이대기 전 날인 11월 25일에 쓰여진 헨리 L 스팀슨 육군장관의 일기에는, "문제는 어떻게 그들을 유도해 우리가 너무 큰 손해를 보지 않고, 최초의 총알을 쏘게 하느냐다. 이는 어려운 계략"이라고 적혀 있었다.
역시 11월 25일, 루스벨트의 비서인 헨리 심슨이, 루스벨트의 대화기록을 남겼는데, "문제는 어떻게 해서 우리가 일본에게 선제공격을 시키느냐다. 일본에 선제공격을 유도해, 어느 쪽이 침략자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워싱턴 현지시간으로 12월 6일 오후 3시, 일본의 선전포고문이 14부로 분할되어, 순차적으로 워싱턴 주재 일본대사관에 전송됐으나, 이것은 동시에 감청해독되어, 오후 9시 30분에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그러나 ,워싱턴에서 하와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주어지지 않은 채, 12월 7일 7시 52분에 공격이 시작돼, 미태평양함대는 함선 16척이 대파되고, 항공기 188대가 파괴됐으며, 2273명이 숨지고, 1119명이 부상했다.
미국본토에서는, 이것을 계기로 반전분위기가 일전. 다음 날 8일에 미국의회는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결의. 그 3일 후에는 독일·이탈리아에도 선전포고를 했다.
맨해튼 계획
1939년, 원폭 제조를 위한 맨해튼 계획이 시작된다.
우라늄의 조달은, 아프리카의 벨기에령인 콩고, 캐나다의 그레이트베어 광산, 미국의 콜로라도주 카르노 광산에서 이뤄졌는데, 세 곳 모두 로스차일드의 지배하에 있는 광산이었다. 맨해튼 계획의 감독을 맡은 사람이 로스차일드 가문으로, 험브로즈 은행의 찰스 조슬린 험브로다.
또한, 맨해튼 계획은, 핵물리학 및 자원확보라는 면에서 국제적인 작전계획이며, 그 리더는, 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창설하는 베르트랑 골드슈미트였다. 베르트랑 골드슈미트의 아내 이름은 나오미 로스차일드다.
브리튼우즈 회의
1944년,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단계에서, 전후의 국제통화체제에 관한 회의인 브리튼우즈 회의가 열렸다. 영국의 대표는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미국의 대표는 헐 노트의 작성자, 재무차관인 해리 덱스터 화이트였다. 케인스는 페이비안(온건한) 사회주의자이고, 화이트는 국제공산당주의자이다.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협의해 전후의 "자본주의 체제"를 결정한다는 실로 이상한 회의였다.
이 회의를 총괄한 것이, 미국의 재무장관인 헨리 모겐소 주니어다. 헨리 모겐소 주니어는, 일본과 독일에게 가혹한 배상청구를 부과한 모겐소 플랜의 제창자로, 아버지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은행가, 골드스미스 가문, 어머니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광산왕인 구겐하임 재벌 출신이라는 인물이다.
이 브리튼우즈 회의에서,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로 정해졌다. 이 브리튼우즈 회의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창설도 결정됐다. 이 두 기관은, WTO와 함께 글로벌리제이션을 추진하는 중심세력이자, 동시에 개도국을 지배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과거의 식민지는, 전후, 차례로 독립을 이뤄, 공업개발도상국으로 불리게 됐다. 이 이름처럼, 개도국은 원래 자원공급지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공업기술력에서는 상대가 안될 정도로 차이가 났다.게다가, 수송수단과 판로를 이미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선진국처럼 세계 각지에 팔아넘길 수 없다. 무역으로 풍요로워지려면 1차 생산품의 수출을 계속할 수밖에 없고, 백여 개국의 개도국들이 단 30개 정도밖에 안 되는 1차 생산품을 경쟁적으로 수출하는 바람에, 60년대 이후에 가격이 폭락한다. 만성적인 적자를 안게 된 개도국은, IMF나 세계은행에서 부채를 지게되는데, 그 때, 구조조정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조건이 되어, 채무국은 자국의 경영권을 잃게 된다.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긴축재정(의료, 교육, 복지, 보험, 환경정비 예산 삭감, 혹은 공무원 해고, 임금 인하)
부가가치세 등의 증세
공적기업의 민영화(교육기관이나 의료기관도 포함)
생산성과 외화를 향상시키는 산업의 촉진(산림벌채, 댐건설, 환금작물로 불리는 커피, 코코아, 사탕수수 재배 등)
고금리와 통화평가절하
각종 규제완화를 비롯한 금융, 투자, 무역의 자유화
이같은 정책으로 유도하는 것은,
의료, 교육, 복지 등 보조와 환경보호, 공적서비스를 줄여 부채를 갚도록 한다.
증세해 국민으로부터 돈을 모아 부채를 갚게 한다.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공적부문은 매각해, 그 수입으로 부채를 변제시킨다.
자연을 외국기업에 팔아 부채를 갚게 한다.
자국민이 먹을 식량을 만드는 것을 그만두게 만들고, 외화를 벌 수 있는 환금작물을 만들게 해, 그것을 외국에 팔아 부채를 갚게 한다. 부채의 상환은, 달러,유로,파운드, 엔 등, 국제시장에서 다른나라의 통화와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하드캐런시로 해야 하므로, 외화획득을 위해 유일하게 외화를 벌 수 있는 1차 생산품을 생산판매하게 된다. 그렇게 하면 가격은 더 폭락한다. 그래도 부채는 갚아야 하기 때문에 덤핑해 수출한다. 이렇게 해서, 식량등을 만드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굶어죽는 "기아수출"이라는 현상이 일어났다.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수출을 늘리며 수입을 줄여 무역흑자로 만들어, 그 흑자로 부채를 갚게 한다. 그러나, 통화를 평가절하하면, 자동적으로 부채는 몇 배로 불어난다. 이렇게 해서 도상국은 부채지옥으로 떨어져 간다.
그리고, 규제를 완화해 다국적 기업이 진입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한다.
이런 정책을 강요당하면서, 개도국은 다시 채무라는 사슬에 묶인 노예가 됐다.
로스차일드의 세계혁명 행동계획
(21) 고임으로부터 그 부동산, 산업을 빼앗기 위해, 무거운 세금과 부당경쟁을 조합해 고임의 경제파탄을 일으켜야 한다. 국제무대에서 고임이 장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가능하다.
원자폭탄 투하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다. 일본은, 1월에 패전을 확신해, 강화협상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루스벨트 정권은 이를 계속 무시했고, 이어받은 트루먼 대통령은, 원폭의 완성을 기다려, 그 위력을 실증하기 위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했다.
왜 루스벨트가 계속 무시했는가 하면, 전년 9월에 영국 수상인 처칠과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다"라는 약속(하이드 파크 협정)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원폭을 투하했다는 미국의 주장은 거짓이다.
http://web.archive.org/web/20101206144011/http://sites.google.com/site/uranenpyou/home/atomic-bomb
GHQ의 점령정책
미국에 의한 일본점령정책은, 기본원칙인 3R과 중점시책 5D, 보조정책인 3S로 구성되어 있다.
[3R=기본원칙]
복수(Revenge)
개조(Reform)
부활(Revive)
[5D=중점시책]
무장해제(Disarmament)
군국주의 배제(Demilitarization)
공업생산력 파괴(Deindustrialization)
중심세력 해체(Decentralization)
민주화(Democratization)
[3S=보조정책]
스포츠의 장려(Sports)
섹스의 해방(Sex)
영화의 장려(Screen)
우민화 정책인 3S는,대중을 오락에 빠져들게 해 정치에 관심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는 효과와, 매일매일의 노동의 괴로움을 완화하는 진통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정책을 입안한 사람들은,루스벨트 정권 하에서 뉴딜을 실시한, 이른바 '뉴딜러'로 불리는 사람들로, 이들은 국제공산주의자들이었고, 대부분이 유대인들이었다.
일본헌법초안작성의 실무책임자는 GHQ민정국의 차장인 찰스 케이디스로,케이디스의 스승이, 제1차 대전 후의 "14개조의 평화원칙"을 작성한 그 루이스 브랜다이스라는 관계다.
1945년 9월 21일
"일본신문준칙(프레스 코드)"과 "일본방송준칙(라디오 코드)"이 보도관계자들에게 공표됐다.
[일본출판법]
제1조 보도는 엄격히 진실에 준거하는 것을 취지로 해야 한다.
제2조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공안을 해하는 것과 같은 것은 이를 게재하지 아니한다.
제3조 연합국에 관해 허위적 또는 파괴적 비판을 하지 말 것.
제4조 연합국진주군에 관하여 파괴적 비판을 하거나 군에 대하여 불신 또는 분격을 초래하는 기사는 일절 게재하지 아니한다.
제5조 연합국 군대의 동향에 관해, 공식적으로 기사해금이 되지 않는 한 이를 게재하거나 논의하지 말 것.
제6조 보도기사는 사실에 입각하여 이를 게재하고, 어떠한 필자의 의견도 첨가하지 않는다.
제7조 보도기사는 선전의 목적으로 이에 색채를 부여해서는 안된다.
제8조 선전을 강화확대하기 위해 보도기사 중의 사소한 사항을 과도하게 강조하지 말 것.
제9조 보도기사는 관계사항 또는 세목의 생략에 의해 이를 왜곡하지 말 것.
제10조 신문의 편집에 있어서, 어떠한 선전방침을 확립하거나 발전시키는 것이 목적으로 기사를 부당하게 현저하게 작성하지 말 것.
1945년 9월 29일
"신문과 언론의 자유에 관한 새로운 조치"를 발령. 연합국에 불편한 기사는 모두 봉해졌다.
태평양육군총사령부 참모 제2부 민간검열지대 내에 신문영화방송부(PPB)가 신설되어, 주요신문은 사전검열, 나머지 신문은 사후검열이 이뤄진다. 모든 형태의 인쇄물, 통신사, 라디오 방송, 영화, 선전매체에 속하는 다른 오락도 검열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언론은 일본국에 대한 충성의무에서 해방된다. "삭제 또는 게재발행금지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서 30항목으로 구성된 검열 지침이 정리되었다.
SCAP-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에 대한 비판
극동 군사재판 비판
SCAP 헌법초안작성에 대한 비판
검열제도에 대한 언급
합중국에 대한 비판
러시아에 대한 비판
영국에 대한 비판
조선인에 대한 비판
중국에 대한 비판
다른 연합국들에 대한 비판
연합국 일반에 대한 비판
만주의 일본인 취급에 대한 비판
연합군의 전쟁 전 정책에 대한 비판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언급
소련 대 서방국가의 "냉전"에 대한 언급
전쟁옹호 선전
신국(神國)일본 선전
군국주의 선전
내셔널리즘 선전
대동아공영권 선전
기타 선전
전쟁범죄인의 정당성 및 옹호
점령군 병사들과 일본여성들 사이의 교섭
암시장의 상황
점령군에 대한 비판
기아의 과장
폭력과 불온한 행동의 선동
허위 보도
SCAP 또는 지방군정부에 대한 부적절한 언급
해금되지 않은 보도의 공표
죄책감을 심어주는 "워 길드 인포메이션"
워 길드 인포메이션은, 일본인들에게 전쟁의 죄책감을 심어주어, 민족의 긍지와 자존심을 빼앗아, 다시는 미국 및 연합국의 위협이 되지 않도록 무력화, 약체화, 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 민간정보교육국(CI&F)의 계획이다.
검열과 민간정보교육국에 의한 선전이 상승효과를 발휘해, 전쟁 전의 일본인의 역사관·도덕관을 바꿀 수 있었다.
1945년 12월 8일부터 신문각지에서 '태평양 전쟁사'의 연재가 시작되었다. 연합군사령부가 제공한 그 기사는, 일본군이 얼마나 잔학했는지, 일본의 군국주의가 얼마나 무도했는지를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태평양 전쟁사'의 연재개시 일주일 만에 '대동아 전쟁'이라는 호칭은 금지되고, 일본인의 입장에 의한 대동아 전쟁사관을 봉인해, 연합국의 입장에 의한 태평양 전쟁사관이 심어졌다.
민간정보교육국은 '태평양 전쟁사'를 기초로 라디오 프로그램 '진상은 밝히다'라는 방송을 개시. 이 프로그램은 명칭을 바꾸면서 1948년 1월까지 계속된다.게다가, 1945년 12월 31일에 민간정보교육국은, 수신·국사·지리 수업을 즉시 중지하도록 명령. 이듬해 4월, 문부성은 '태평양 전쟁사'를 국사 등 수업정지 중의 교재로 사용하라고 통보해, 태평양전쟁사관이 교육현장에 침투하게 된다.
전후일본의 콘트롤
아베 요시히로(安倍芳裕) "금융구조는 전부 로스차일드가 만들었다" 토쿠마서점 에서 발췌.
1946년,이 해부터 일본의 전후부흥이 시작됩니다. 미국은 점령지역에 대해, 갈리오아(점령지역구제 정부기금)와 엘로아(점령지역경제 부흥기금)라는 2개의 기금을 가지고 있고, 일본은, 이러한 기금으로부터 구제·부흥지원을 받아, 합계 18억 달러(현재가치로 약 12조엔 상당, 그 중 13억달러는 무상)가, 국철,전기통신,전력,해운,석회 등 인프라정비의 원자(原資)가 되었습니다.
1953년부터는 세계은행의 차관수입을 개시. 1966년까지의 사이에, 합계 34건, 합계 8억 6290억 달러의 차관계약을 체결. 인프라 및 기간산업(도로,전력,철강 등)의 정비에 사용되었습니다. 이 세계은행의 채무는, 1990년 7월이 되어서야 모두 변제되었습니다. 이러한 부채에 대해, 어떤 조건이 부과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어떤 조건은 부여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
일본의 역 코스(GHQ의 전략이었던 일본의 민주화와 비군사화에 역행하는 움직임)가 시작됩니다. 권장한 것은 재팬 로비를 위한 미국대일협의회(ACJ)이며, 주모자는 "뉴스 위크"의 기자 해리·F·칸이었습니다. (존 G. 로버츠, 글렌 데이비스 '군대 없는 점령'고단샤에서).
사적인 견해이지만, 역 코스가 시작된 이유는, 미국에서 조지프 매카시의 "빨갱이 사냥"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카시는 의회에서 "일루미나티가 미합중국에 존재하며, 몇 년동안 존속해 왔다는 완전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 곁에 일루미나티의 간부 및 단원의 성명, 나이, 탄생지, 직업 등을 기입한 진짜 리스트가 있습니다."라고 연설했습니다. 즉, 매카시가 고발하고 비난·배척하려고 했던 "빨갱이"란 일루미나티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정권에 둥지를 틀고 있던 국제공산주의자들은,자신들의 정체가 파헤쳐질 뻔했기 때문에, 급거, 공산주의자들을 적대시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덧붙여, 아이젠하워 정권에서 CIA의 심리전국의 간부였던 C·D·잭슨은, 빌더버그 회의에 출석한 후 "매카시가 암살의 총탄에 쓰러지게 하려고, 생체에서 종양을 절제하는 통상의 미국식 절차로 배제되자, 여기에 예언합니다. 다음의 빌더버그 회의 때까지는 그는 미국정치의 전면무대에서 사라져 있을 것입니다."라고 발언했습니다. 그 예언대로, 매카시는 의회에서 배제되어, 실의 속에, 1957년, 사인불명으로 사망했습니다. (알덴 해치 '네덜란드 왕자 H·R·H·베른하르트'에서).
해리 F. 칸이 소속된 '뉴스위크'는, 모건, 멜론, 골드만, 해리먼 등이 대주주로 있는데, 당시 '뉴스위크' 실험을 장악하고 있던 것은 아베렐 해리먼이었다고 합니다.
맥아더는 역 코스에 강력히 반대했지만, 딜런 리드사의 부사장이었던 육군차관 인 윌리엄 H. 드레버가 맥아더를 설득해,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만들므로서 "반공의 보루"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조선전쟁 특수로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경제대국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덧붙여, GHQ와의 교섭을 담당한 대장성의 와타나베 타케시에 의하면, GHQ가 처음에 들고 나온 안건은, 딜론 리드에 대한 변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였다고 합니다(대장성 재정사실편 "와타나베 타케시의 일기 대 점령군 교섭 비록" 동양경제신보사에 의함). 일본은 1931년에는 재정파탄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를 전비가 없어, 딜론 리드로부터 많은 부채를 졌던 것 같습니다. 일본의 대미전쟁도, 딜런 리드사의 돈벌이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딜런 리드의 지배자는 딜런 가문, 오거스트 벨몬트의 벨몬트 가문, 그리고 페리제독의 페리 가문입니다.
국제연합
제2차 대전의결과로,국제연맹의 후진인 초국가기구, 국제연합이 성립되었다. 국제연합은 영어로 말하면 United Nations이며, 즉 전승국인 연합국 그자체다.
유엔본부의 건물부지는, 존 D 록펠러 2세가 기증했다.
국제연합헌장을 기초한 미국무부의 고위 관리인 앨저 히스는, 해리 덱스터 화이트(루즈벨트 행정부의 재무차관보)와 마찬가지로 나중에 소련스파이었음이 발각되어 체포된 국제공산주의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 공산주의자들은 독일의 절반과, 유럽과 아시아의 절반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서독의 막대한 배상금은 이스라엘에 대한 원조에 할당되었다. 이 결과를 보면, 제2차 세계대전의 수혜자는, 공산주의자와 시오니스트였음이 분명하지 않을까.
앨버트 파이크의 미래계획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국가주의자"와 "정치적 시오니스트" 사이의 압도적인 의견차이의 조작 위에 실현되게 된다. 그 결과, 러시아의 영향영역의 확장과,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국가"의 건설이 이루어져야 한다〉
빌더버그 회의
1954년, 제1회 빌더버그 회의가 개최된다.빌더버그 회의는, 매년 한 차례, 미국, 캐나다, 유럽의 국가에서 영향력을 가진 100~150명이 모여, 정치경제와 환경문제 등도 포함한 다양한 국제문제에 대해 토의하는 완전 비공개회의다. 네덜란드 여왕의 부군인 베른하르트 공에 의해 창설되었다. 베른하르트 공은 로열 더치 셸의 중역이었다.
초대회장은 나중에 NATO사무총장이 되는 영국의 피터 캐링턴 경. 캐링턴 경은, 채텀하우스의 소장이자, 로스차일드계 기업인 리오 친트와 버클리 은행의 중역을 지낸 인물이다.
J. F. 케네디의 암살
케네디는 FRB를 사유하는 은행가를 배제하려다 살해당했다! 1963년 6월 4일, 미국 대통령 J. F. 케네디에 의해 정부지폐의 발행을 재무부에 명하는 대통령 행정명령 제11110호가 발령된다.
대통령 행정명령 제11110호 대통령 행정명령 제10289 수정안, 재무부에 영향 있는 일정한 기능이행에 관한 수정
나에게 주어진 권한에 따라, 합중국 조례 3항 301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제1조 수정되는 1951년 9월 19일의 대통령령 10289는, 이에 따라 추가로 수정된다.
(a)그 단락 1의 끝에서 이하의 부단락(j)을 부가한다 : (j)1933년 5월 12일의 조례 43절 단락(b)에 대해서, 대통령 권한에 의해 31USC821(b)로 개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은지금에 대한 은증권, 은 또는 재무부증권의 은본위제 달러에 대해서도 정부증권을 발행하도록. 이 때, 어떠한 발행된 은증권의 태환(상각)을 위해서도 이것이 이용되지 않을 것. 그리고, 해당 은증권의 액면금액을 정하고,그 상각을 위한 표준 달러와 보조 은화폐를 주조하기 위해.
(b)그 단락 2의 부단락(b)과 (c)를 파기(무효로 함)하므로서,
제2조 이 대통령령에 따라 이루어진 수정은, 이 대통령령 이전의 어떠한 시행된 법령, 또는 어떠한 발생할 권리 또는 발생한 권리, 또는 항소 혹은 민형사상의 소송절차가 행해진 것에 대해서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전술한 법적책임은 계속하는 것으로 한다. 그리고, 앞에서 설명한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집행될 수도 있습니다.
J. F. 케네디 백악관 1963년 6월 4일
케네디가 발행을 명령한 지폐는, FRB발행의 은행권과 거의 같은 디자인으로, FRB의 마크가 없는 대신 "United States Note"(정부권)라고 인쇄되었다. 그해 11월 22일, J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텍사스주의 댈러스에서 암살당한다. 재무부가 발행한 총 42억달러의 정부 어음은, 케네디 암살 이후 신속하게 회수됐다.
케네디 대통령은, 비밀결사가 언론을 통제하고 있음을 탄핵하는 다음과 같은 연설을 남겼다.
비밀주의라는 바로 그 말은,자유롭고 열린 사회에 매우 불쾌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원래, 역사적으로도 '비밀결사'의 '비밀맹세'와 '비밀 회의록'에 반대했던 민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 옛날부터 도를 넘은 부당한 관련정보의 은폐는,훨씬 더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고려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 왔습니다. 오늘날, 근거없는 제약으로 인해, 폐쇄사회의 위협에 반대한다는 것은 거의 가치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생존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우리의 전통이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다면 거의 가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보도된 보안강화의 필요성이 공적인 검열과 은폐의 바로 그 범위를 한계까지 넓히기를 갈망하는 자들에 의해, 폐지되는 바로 그 중대한 위험성이 있습니다.
나는 ,내 통제하의 범위에서 이런 일을 허용할 의도가 없습니다.우리 정권의 어떤 직원이라도, 그의 지위가 높든 낮든,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간에, 나의 오늘 밤 여기에서 한 말을, 뉴스를 검열하고 수정하거나 제대로 된 것을 뭉개거나, 우리의 잘못을 호도하기 위해, 언론과 민중이 알 만한 진실을 억제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전세계적으로 반대되는 것은, 주로 영향권을 넓히기 위한 은밀한 수단이 되고 있는,바위덩어리이며 냉혹한 음모에 있습니다. 침입 대신 침투, 선거 대신 전복, 자유의 선택 대신 위협, 일본과 중국의 군대를 대신할 야간 게릴라. 이것은, 방대한 인적 및 물질적 자원을 군사, 외교, 정보, 경제, 과학 그리고 정치적 조작을 위해 결속이 단단한 고성능 머신에 결합하는 징수 시스템입니다.
그 준비는 숨겨지고 공표되지 않습니다. 그 잘못은 묻혀 커다란 특종이 되지 않습니다.그 반대자는 묵살당하고 칭찬받지 못합니다. 경비(經費)는 질의되지 않고, 소문은 출판되지 않습니다. 완전히 비밀은 밝혀지지 않습니다. 어떤 대통령도 시민의 감시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아니라, 감시에서 이해가 생기는 것이고, 그 이해에서 지지나 반대가 생깁니다. 그리고 둘 다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정권을 지지하는 것을 당신들의 신문(언론)에 부탁하고 있지 않습니다.그러나 미국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주의를 불러일으키는 힘든 일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우리의 시민들이 완전히 정보가 널리 퍼졌다고 할 때에는, 그들의 행동과 헌신이 있다는 완전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글비디오 동영상 John F Kennedy speech on the dangers of secret societies를 번역)
통킹만 사건
1964년, 미국이 본격적으로 베트남전쟁에 돌입하는 계기가 되는 통킹만 사건이 벌어진다. 북베트남의 통킹만을 순찰 중이던 미구축함에 북베트남의 초계정이 공격을 가했다고 하며, 그 보복으로서 존슨 정권은 북베트남을 폭격. 이후, 베트남전은 확전된다.그러나, 1971년, 뉴욕 타임즈의 기자가 펜타곤의 기밀문서를 입수. 이 통킹만 사건은 미국이 짜놓은 것이었음을 폭로했다. 1995년에는 당시의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도 "북베트남군의 공격은 없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베트남 전쟁의 장기화에 의해 미국에서는 반전운동이 번성해, 스컬&본즈의 영향력이 저하한,그 틈을 찌르듯이 미정권내에서 친이스라엘 세력이 대두한다.
이스라엘 우파정당 리쿠드 정권
1977년, 이스라엘에 우파정당인 리쿠드 정권이 성립한다.리쿠드의 이론적 지주라고 불리는 것이 '청년 터키' 출신인 블라디미르 자보친스키라는 인물로, 그때까지의 "팔레스타인인을 속여 토지와 권리를 팔게 하려고」라고 생각하고 있던 시온니스트 지도부를 비판해, 충돌을 억제하기 위해서 무력을 사용할 것을 주장한 파시스트다. 자보친스키는 1920년, 오늘 날의 이스라엘 국방군의 기초가 된 군사조직인 하가너의 창설에 관여한다. 히로세 타카시 저 "미국의 보수본류"(슈에이샤)에 의하면, 이 하가너의 창설에는 로스 차일드가 자금을 제공했다. 또, 1923년에는 수정주의 시오니즘 청년조직 "베달"을 설립. 1931년에는, 테러조직 이르군의 창설에도 관여하고, 지도자로 군림했다고 한다.
데일 야신 지역에서 대학살을 자행한 메나헴 베긴, 나치스와 짜고 정통파 유대교도를 박해한 이츠하크 샤밀, 팔레스타인의 난민캠프에서 대학살을 자행한 아리엘 샤론, 그 샤론이 두려워했을 정도로 흉포한 현 당수인 벤야민 네타냐후 등과 같은 역대 리쿠드의 당수들은, 이 파시스트이자 테러리스트인 자보친스키의 왕자들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네오콘
1981년,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대통령이 되자, 네오콘이 정권내에 들어와, 그 영향력이 막강해진다. 네오콘은 Neo conservatism, 즉 신보수주의자라는 뜻인데, 그동안의 보수주의가 경제정책은 산업보호, 사회정책은 전통주의였던 반면, 경제정책은 자유주의, 사회정책은 전통주의라는 것이 신보수주의라고 한다. 이 네오콘은 군산복합체와 결탁해, 공격적·호전적인 매파를 형성해 간다. 미국 신세기 프로젝트는, 1997년에 결성된 싱크탱크로, 다음과 같은 기본 제안에 전념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 미국이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은, 미국에도, 세계에도 좋다.
* 이 리더십에는, 군사력, 외교, 에너지 및 도덕원리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 오늘날의 정치적 지도자의 대부분은 국제적 지도력을 주장하지 않는다.
* 그러므로, 미국정부는, 군사력을 포함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우세를 획득하기 위해, 그 군사우위 및 경제우위를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
PNAC는, 911사건 1년 전, 2000년 9월에 미국 방위재건계획을 공표한 바 있다.거기에는 "미국의 방위체제는 새로운 진주만 공격과 같은 파멸적인 사건을 제외하고는,그 재건의 프로세스는 장기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라고 쓰여져 있었다.
PNAC의 멤버를 살펴보자. 직책은 당시의 것.
어빙 크리스톨(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연구소 창설자)
리처드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존 볼턴 국무부 차관
더글러스 파이스 국방부 차관
엘리엇 에이브럼스 국가안전보장회의 선임부장
리처드 펄 전 국방정책위원회 위원장
루이스 리비 부통령 보좌관
데이비드 풀럼(대통령의 스피치 라이터)
앨리 프라이셔(백악관 대변인)
젭 부시(부시 동생) 외 다수
어빙 크리스톨은 네오콘의 대부로 불리는 인물로 전 트로츠키스트다. 트로츠키스트란 트로츠키의 영속혁명론을 신봉하는 국제공산주의자인데, 사상전환해 네오콘이 됐다고 한다. 크리스톨은 네오콘의 아성이라고 하는 싱크탱크 "아메리칸·엔터프라이즈 연구소"의 창설자로, 이 설립에 자금을 제공한 것이 로스 차일드의 어윈 스텔저다( "미국의 보수본류"에서 발췌).
리처드 체니는 실질적인 부시 정권의 지배자로, 부인도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연구소의 간부를 맡았다. 그 밖에, 부시 정권을 움직이는 쟁쟁한 멤버들이 이름을 올렸다.
강경파인 시오니스트들 중, 재미 집단이 네오콘, 재이스라엘 집단이 우파 정권 리쿠드일 수도 있다. 따라서, 네오콘도 그 뿌리는 파시스트이자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스라엘 우파의 재미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가 압력을 넣어 네오콘을 정권에 들여보냈다.
AIPAC는, 지금 가장 영향력이 있다는 이스라엘로비단체로, 각 의원의 투표행태를 상세하게 감시해, 반이스라엘적이라고 생각되는 의원을 다음 선거에서 대항마를 내세워 들이받아 낙선시키거나, 스캔들을 언론에 유출시켜 몰아붙이는 등으로 의원들을 통제하고 있다.
911사건과 함께 네오콘적인 전략이 조지 W 부시 정권내에서 압도적인 주류를 이루면서, 이스라엘의 위협이 되는 이라크와 이란을 무력으로 무너뜨리는 네오콘의 중동민주화전략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 네오콘적인 전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이, 네오콘의 사상적 원류로 불리는 정치철학자인 레오 스트라우스다. 독일태생으로, 나치스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도망쳐 온 스트라우스는, 시카고대학에서 20년간 정치철학강의를 해왔다.
스트라우스는, "대중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진실은 요설적인 거짓말을 하는 일부 엘리트에 의해 관리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나약하면서도 무지한 일반인의 애국심과 신앙심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 군사국가만이 사람 속에 있는 공격성을 억제할 수 있다. 국민의 다수가 자기도취해 쾌락주의자가 된 지금, 국민을 바꾸는 방법으로서는 "자기 나라를 위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런 애국심은,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노출될 필요가 있으며, 만약 없다면 만들어내면 된다. 말하는 것을 잘듣는 국민을 유지하기 위해, 종교를 도구로 이용하라"는 발언을 해왔다.
이러한 생각은 로스차일드의 세계혁명행동계획④와 상통한다고 생각된다.
〈④최종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 솔직함과 정직함과 같은 국민으로서의 훌륭한 자질은, 정치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지배자가 되려는 자는 교활함과 기만에 호소해야 한다〉〈④최종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 솔직함과 정직함과 같은 국민으로서의 훌륭한 자질은, 정치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지배자가 되려는 자는 교활함과 기만에 호소해야 한다〉
세계를 불행하게 만드는 경제정책
네오콘의 경제정책인 신자유주의를 주창해 온 것이, 슈트라우스와 같은 시카고대학의 교수인 밀턴 프리드먼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자유주의의 원조"라거나 "구조개혁의 원조"로 불려왔다. 그 프리드먼이 1962년에 펴낸 '자본주의와 자유'라는 책에는,폐지해야 할 정책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거론되고 있다.
농산품의 정부에 의한 매입보증가격체계
수입관세 또는 수출제한
산출 규제
집세 통제, 전면적인 물가-임금통제
법정 최저임금과 가격상한
세부에 걸친 산업규제
연방통신위원회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규제
현행 사회보장제도
특정사업·직업의 면허제도
공영주택
평시 징병제
국립공원
수익을 목적으로 한 우편사업의 법적폐지
공영유료도로
스트라우스가 정치학의 시카고학파,프리드먼이 경제학의 시카고학파인데, 현재, 세계를 휘젓고 있는 이론이 둘 다 록펠러의 시카고 대학에서 나왔다는 것은, 아무래도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신자유주의(Neo Liberalism)
베를린 장벽의 붕괴이후, 사회주의의 패배가 드러나고, IMF와 세계은행 ,그리고 거기에 미국정부가 미국류의 신자유주의를 전세계로 확산시키려 하기 시작한다. 신자유주의(Neo Liberalism)란, 국가에 의한 경제적 규제라는 간섭을 완화하여, 시장경제에서의 경쟁을 중시하는 것으로, 경쟁적 시장이야말로 자유, 도덕, 번영을 창출하는,가장 민주주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원래는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연구원 존 윌리엄슨이 발표한 논문에 의한 것으로, 누적채무가 있는 도상국에게 필요한 경제개혁으로서, 미국 재무성, IMF, 세계은행 등의 사이에서 성립된 "의견 일치"라는 의미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한다.
[워싱턴 컨센서스]
재정적자의 시정
보조금 삭감 등 재정지출의 변경
세제 개혁
금리의 자유화
경쟁력 있는 환율
무역의 자유화
직접 투자의 수용촉진
국영기업의 민영화
규제완화
소유권법의 확립
개도국을 지옥으로 내동댕이쳤던 구조조정 프로그램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이 워싱턴 컨센서스를 작성한 싱크탱크인 국제경제연구소에 1989년부터 객원연구원으로 있던 것이, 코이즈미 개혁을 주도한 다케나카 헤이조다. 대국적으로 보면, 이른바 "내부에서 대문을 여는 자"로서 이용되었을 것이다. 이 국제경제연구소의 창설자이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 피터 G. 피터슨이라는 인물이다. 피터슨은, 리먼 브러더스 쿤 로브의 CEO였던 인물로, CFR의 이사장, 뉴욕 연방은행의 이사장도 지낸 거물이다.
참고로 제이콥 시프의 쿤 로브상회는, 1977년에 리먼 브러더스와 합병해 리먼브러더스 쿤 로브가 됐다. 리먼 브러더스나 로브나 대주주는 로스차일드다. 지금은 쿤 로브의 이름이 사라지고 리먼 브러더스만 있다. 호리에몬의 라이브도어에 노하우와 자금을 제공해, 소동을 일으켜 일확천금을 번 것이 바로 이 리먼 브러더스다.
피터 G. 피터슨은, 세계최대의 인수펀드인 블랙스톤 그룹의 창시자이자, 회장도 맡고 있는 인물이다. 즉, 그 정체는 강탈꾼이다. 한편, 국제연구소의 소장을 맡은 것이 프레드 버그스테인이다. 버그스테인은, 클린턴의 유력한 두뇌로서 미일 포괄협의의 시나리오를 쓴 인물로, 경제분야에서는 일본을 조종하는 그룹의 톱 클래스의 멤버다.
그는, 세계의 자유무역과 세계통일정부의 열광적인 창도자이며, 1997년의 빌더버그 회의에서는 "글로벌리즘의 흐름이나"시장의 역학"은 더 이상 정치인이 아무리 저항해도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또, 2008년 1월 5일의 닛케이 신문에서는 "장래의 세계의 통화체제는 달러·유로·위안이라는 3극 통화시스템이다. 일본은 위안화 블록의 일원이 된다"고 발언했다. 이 "일본은 위안화 블록의 일원이 된다"는 말은 흘려들을 수 없다.
1997년의 빌더버그 회의에서는, 새뮤얼 버거라는 인물이 흥미로운 발언을 남겼다. 새뮤얼 버거는, 빌 클린턴 정권의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자, 좌파 유대 로비의 통수자다. 유대로비는 AIPAC와 네오콘의 우파뿐 아니라, 좌파도 존재해 똑같이 미국정부를 통제하고 있다. 새뮤얼 버거는 "중국을 강대한 군사국으로서 신세계질서에 편입하는 것은 가능하다" "중국의 군사력이 강해지지 않으면, 세계정부를 구성하는 주요 3지역의 하나로서, 유럽연합(EU)과 북미연합(NAFTA)과 나란히 성립하는 요건을 충족할 수 없다" "중국에 대한 무역최혜국 대우의 목적은, 군사적으로 강대한 중국의 존재다. 이것을 통해 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의 군사적 위상을 정당화할 수 있으며, 국제금융기구는 미국과 중국 양측의 군비강화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후, 2000년에 미국은, 중국에게 최혜국 대우를 항구적으로 공여하기로 결정했다.
플라자 합의
1985년,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G5(선진 5개국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회의)가 개최되어, 쌍둥이 적자를 안고있는 미국을 구제하기 위해, 엔고/저달러를 유도하는 플라자 합의가 채택됐다. 일본은행은, 엔고에 의한 타격을 받은 수출업계의 구제를 위해, 금융완화를 실시. 초과된 자금이 투기를 가열해, 버블이 발생한다.
이 플라자 합의를 주도한 것이 미국의 재무장관인 제임스 베이커였다. 제임스 베이커는, 군수산업에 대한 투자로 거액의 운용이익을 내는 투자펀드인 칼라일그룹의 선임고문으로, 영국의 투자은행인 브라운·시플리사의 창업자인 알렉선더 브라운의 일족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브라운 가문이 철도왕 해리먼 가문과 합쳐져,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이 되었고, 그 행장이 부시 대통령의 할아버지인 조지 허버트 워커와 관계가 있다. 제임스 베이커의 할아버지는, FRB의 대주주인 퍼스트 내셔널 뱅크의 설립자 조지 F. 베이커다. 또 베이커는 제이콥 시프와도 친척이다.
바젤 합의
1988년, 국제결제은행(BIS)에 의해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에 관한 규제, 이른바 BIS규격(바젤 합의)이 정해졌다. 자기자본비율 8%를 달성할 수 없는 은행은, 국제업무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것으로, 당시, 일본의 금융기관은 해외에서 적극적으로 대출을 하고 있었지만, 자기자본의 비율이 낮아, 경영의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 했다. 이 때문에, 은행은 보유주식을 매각할 수밖에 없어, 주가의 훼손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후의 일본기업매수로 나가는 포석이 된다. 또, 이 BIS규제에 의해, 신용창조량이 축소되어, 은행에 의한 대출거부나 대퇴가 행해졌다.
마에카와(前川)리포트
1986년 4월, 일본은행 총재였던 마에카와 하루오가 좌장이 되어, 일본의 경제구조의 역사적인 개혁을 호소한 "마에카와 리포트"(국제협조를 위한 경제구조조정 연구회 보고서)가 나카소네 수상에게 제출되었다.시장원리중심의 경제구조로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의 이 보고서는, 나중에 이뤄진 고이즈미의 구조개혁과 흡사하다. 이 마에카와 리포트는, 일본은행의 내부에서는 "10년 계획"이라고 불리고 있었다고 한다. 즉, 10년에 걸쳐 일본의 구조개혁을 실시해 나간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해 12월, 버블경기(~1991년 2월)가 발생한다.
제1차 걸프전쟁
1990년 제1차 걸프전쟁이 발발한다. 원래 이 전쟁의 원인은, 쿠웨이트가 이라크를 다음과 같이 도발한 것에 있습니다.
쿠웨이트가 이라크에 무상원조했던 전시국제의 즉시반환을 요구했다. 쿠웨이트와 사우디 아라비아가 국제적으로 정해진 양을 훨씬 넘어선 석유를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이라크의 주요산업과 석유가 폭락했다. 쿠웨이트가 이라크와의 국경에 있는 유전에서 대량으로 석유를 채굴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라크의 움직임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라크의 불온한 움직임에 불안감을 느낀 쿠웨이트가 의향을 타진하자, 미국정부는 "걱정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스라엘과 CIA도 미국정부에 이라크의 불온한 움직임을 보고하고 있지만, 이 보고도 무시되었다. 나아가, 이라크 주재 대사인 글래스피가 후세인 대통령에게 "미국은 이라크의 행동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고, 존 케리 국무부 차관보도 "쿠웨이트가 공격당해도 미국은 쿠웨이트를 도울 책임이 없다"고 공언했다.
이렇게 해서 이라크는 미국의 공인을 받았다고 생각해, 쿠웨이트 침공을 시작한다.
그런데, 미국의 국무장관이 된 제임스 베이커는, 깜짝 놀란 듯이 슈바르나제 소련 외무장관과 공동으로 "유감"을 표명한 후, 이라크를 강하게 비난하는 강경자세로 돌아서, 각국의 지지를 얻기위한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국주도의 다국적군을 형성해 이라크를 폭격했다. 전쟁 중에도, 미국은 쿠웨이트 소녀에 의한 "이라크병사가 병원에서 아기를 바닥에 내리쳤다"라는 증언이나, 바닷새가 중유로 범벅이 된 영상을 세계에 전달해 "이라크가 중유를 유출시켰다"는 등으로 미디어를 사용한 정보조작을 실시했는데, 후에 그것들은 모두 거짓이었던 것이 판명되었다.
빌 클린턴
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든 최대의 지지자는,철도왕인 해리먼의 미망인 파멜라 디그비였다. 파멜라의 아버지가 에드워드 디그비이고, 그 매형이 앨버트 프림로즈. 그 어머니가 한나 로스차일드라는 관계다.
이듬해,제1회 "연차개혁요망서"가 작성됐고, 1996년에는 금융빅뱅이 출범했다. 이 빅뱅에 의해, 현재는 일본주식 매매고의 6할을 외국자본이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유럽중앙은행(ECB)
1998년, 유럽중앙은행(ECB)이 설립된다. 본점은 프랑크푸르트에 있고, 그 빌딩은 로스차일드 부지 내에 서 있다. 초대총재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유럽통화기구의 총재를 지낸 윔 도이센베르크이고, 2003년부터 전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인 장=클로드 트리셰가 제2대에 취임했습니다. 양자 모두 BIS 출신이므로, 즉 로스차일드의 "이백가족"입니다.
유대인이란 누구인가?
유대인은 그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은 이상한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고대 이스라엘의 12씨족 중에서 유다족이었던 사람들이 유대인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복잡한 것이다.
"스패러디계 유대인"
성경의 백성인 유대인. 이스라엘에서 스페인 방면으로 도망쳐 온 유색인종.
"마라노"
기독교로 개종당하거나, 개종한 척 한 숨은 유대인.
"미즈라히"
같은 아시아인에 녹아든 유대인.
호프 유겐(궁정 유대인)
유럽의 귀족계급에 동화되어, 특권을 누렸던 일부 유대인.
"아슈케나지계 유대인"
7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카스피해의 북쪽에서 번성한 유목국가인 하자르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8세기 중반, 이슬람군이 이 하잘 한국(汗国)을 침공해 와 개종을 재촉한다. 하잘의 옆은 기독교 강국인 동로마제국이다. 동로마제국과 우호관계에 있던 하잘 한국의 황제는 고민 끝에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근원이 된 유대교를 국교로 삼았고, 이후 국민 모두가 유대교도가 되었다. 이 유대교도로 개종한 하잘인들이, 후에 아슈케나지(독일계)라고 불리는 백인 유대인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현재, 이스라엘에 있는 스파라디계 유대인은 소수파로, 90% 이상이 아슈케나지계 유대인이다. 피부가 거무스름한 스패러디계 유대인과 백인 아슈케나지와는 혈통적으로 전혀 무관한 민족이다. 따라서, 아슈케나지가 "신이 약속한 땅으로 돌아간다"라는 핑계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전혀 정당성이 없다. 그러나, 세계의 주요 언론사의 주주들을 생각해서인지, 이 사실은 금기로 여겨져, 결코 추구되지 않는다.탈무드
유대교의 성전은 '구약성서'지만, 첫머리의 5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특히 중요하게 여겨져, "모세5서" 또는 "톨라(율법)"로 불린다.
더욱이, 모세가 신으로부터 받 법으로, 성문화되지 않고 구전으로 전해진 것이 있는데, 이 구전은 3세기경에 문서화되어 "미슈나"라고 불린다. 이 미슈나와, 미슈나를 라비가 해석한 "게마라"에서 작성된 일상생활의 규범과 시대에 대응한 삶의 모습을 기록한 것이 "탈무드"다.
탈무드는, 6부로 구성, 63편으로 구성된 문서군으로, 현대 유대교의 주요교파의 대부분이 성전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유대교도의 생활, 신앙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 방대한 문서 중에는 민족적 배타성과 독선적 선민사상이 포함된 문제점이 있어 유대인이 배척당하는 원인이 되어 왔다. 그 일부를 발췌.
유대왕은 진정한 세계의 교황, 세계에 걸친 교회의 총대주교가 된다.
당신은, 당신의 하나님,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다.너의 하나님, 주님은 땅의 면에 있는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선택하셔서, 너를 보물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세계는 오직 이스라엘 사람을 위해서만 창조된다.
이스라엘 사람은 참이고, 다른 백성은 빈 껍질뿐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외에는 민족이 없다. 그들은 모조리 빈털터리에 지나지 않는다.
신이시여, 우리는 우리의 예언자를 짐승에 불과한 우상숭배의 무리를 위해 보낸 것이 아니다. 인간인 이스라엘인을 위해 보내진 것이니라.
인간의 짐승보다 낫지만, 다른 모든 민족보다 낫다. 모든 백성을 잡아먹으며, 모든 백성보다 약탈하는 것은, 그들 모두가 우리들의 권력 아래에 놓일 때 시작된다.
신은 유대인들에게 모든 방법을 사용해 사기, 강력,고리대금, 절도를 통해 기독교인들의 재산을 탈취할 것을 명령한다.그대는 탈무드가 모세의 율법서에 대해 절대적 우월성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탈무드의 결정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다.너희는 인류지만, 세계의 나머지 국민은 인류가 아닌 짐승이다. 너를 죽이지 말라는 법은 이스라엘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고이(비유대인), 노아의 자녀 등 이교도는 이스라엘인이 아니다.
고이가 고이 혹은 유대인을 죽였을 경우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유대인이 고이를 죽인다 해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
고이에게 돈을 빌려줄 때는 반드시 고리로써 해야 한다.
습득물을 분실자에게 반환하라는 계는 유대인에 대해서만 지켜야 할 것이지, 고이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타민족이 가진 소유물은 모두 유대민족에 속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것을 유대 민족의 손에 넣는 것에 지장이 없다.
고이의 재산은 주인 없는 물건과 같다.
고이를 향해 맹세한 자는 도적이든 세자이든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고이에게 우리의 신교를 가르치는 자는, 유대인을 죽이는 것과 같다. 만약 고이가 우리의 교설을 안다면, 그들은 공공연히 우리를 죽일 것이다.
고이가 우리 책에는 무엇인가 고이를 해칠 일이 씌어 있는 것은 아니냐고 물으면, 거짓 맹세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것은 맹세코 쓰지 않았고 해야 한다.
탈무드를 배우는 고이, 그것을 돕는 유대인은 모조리 살려둬서는 안된다.
신자(비유대인)의 피를 흘리는 자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선민사상"과 함께, 또 하나의 특징이 "종말에 있어서 구세주가 재림해, 정의와 평화가 지배하는 이상세계가 온다"는 "구세주사상", 다시 말해 "종말사상"이다.
사바타이파 프란키스트
유대교 역사에 있어서 두 명의 매우 중요한 인물.
사바타이 츠비(1626-76)
사바타이 츠비는 터키 출신의 유대인이다. 심각한 조울증 환자였던 사바타이는, 자신이 메시아라는 자각을 갖고 있었지만, 그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카발라 학자인 나탄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되어, 나탄은 사바타이를 메시아라고 선언했다.신용있는 나탄의 선언으로 사람들은 사바타이를 메시아로 받아들였다.
사바타이는 이슬람교와 기독교 등의 내부에 그들의 편인 척 들어가, 내부에서 썩게 만들어 무력화시켜, 궁극적으로 붕괴에 이르게 한다는 전법을 설파하였다. 이 아이디어는 굴욕적으로 개종할 수밖에 없었던 마라노들에게 희망과 변명을 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 사바타이의 사상은, 많은 열광적인 신자를 획득하고, 유대인들 사이에 대무브먼트를 일으켰다.
야곱 프랭크(1726-1791)
야콥 프랑크는, 폴란드 출신의 사바타이와 같은 자칭 메시아로 유대교의 구세주 사상을 이 세상의 악이나 불행을 인위적으로 정점까지 채우고, 이 세상을 파괴해 버리므로서 메시아를 도래시킨다는 위험한 사상으로 전환시켰다. 야콥 프랑크와 그의 신자(=프란키스트)들은 정통 유대교 랍비로부터 파문당했지만, 프란키스트들은 개혁파유대교로 명칭을 바꿔 유대교에서 일대세력이 되었다.그리고 이 프란키스트가 사바타이파와 결합해, 기독교인, 이슬람교도, 불교도들 속에 섞여들어가 위험한 종말사상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를 지배하는 유대왕 로스차일드가, 단순한 대부호가 아니라, 탈무드를 신봉하고 있고, 게다가 사바타이파=프란키스트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치 지구를 멸망시키려 하고 있는 것 같은 수많은 파멸적인 사건의 이면에는 정치·경제·군사·종교·미디어·교육 등을 지배하는 일족의 의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일반의 선량한 유대인들은, 로스차일드 일족의 모략과는 일절 무관합니다. 혼동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일루미나티
1776년 5월 1일,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의 재정지원 아래, 잉고슈타트대학의 법대학부장인 아담 바이스하우프트 교수가 일루미나티라는 비밀결사를 창설했다.일루미나티라는 말은, 사탄(루시퍼)에서 유래해, "빛을 내건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일루미나티의 목적은, 지적능력을 실증받은 사람들 이 세계를 다스리는 "세계단일정부"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문학, 교육, 미술, 과학, 재정, 산업 분야에서 가장 총명한 사람들을 포함한 2000명의 결사원을 모았다고 한다.
이 일루미나티의 공동설립자로서, 전투적 구세주인 야콥 프랑크가 이름을 올렸다.
결사결성의 날, 바이스하우프트는 "Novus Ordo Seclorum"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이 라틴어의 뜻은 "신세계 질서".바이스하우프트가 내건 일루미나티의 행동강령은 다음과 같다.
모든 기성정부의 폐절(廃絶)과 일루미나티가 통괄하는 세계단일정부의 수립.
사유재산과 유산상속의 철폐.
애국심과 민족의식의 근절.
가족제도와 결혼제도의 철폐와, 자녀의 공동체교육의 실현.
모든 종교의 철폐.
이러한 행동망령이, 훗날 공산주의의 원형이 됐다.
이 반체제적인 위험성 때문에,불과 10년만에 탄압을 받고, 이후, 탄압을 피하기 위해 결사원들은 비슷한 비밀결사 프리메이슨에 잠입한다.그리고, 바이스하우프트는 프리메이슨의 로지에서도 최고위에 올라, 결사원에게 비밀결사(프리메이슨)내에 비밀결사(일루미나티)를 조직하도록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당시, 스코틀랜드 메이슨의 최고지도자였던 존 로비슨 교수는 ,1798년 'Proof Of Conspiracy'를 발표하면서, 바이스하우프트의 모략을 간파, 각국의 메이슨 고위지도자들에게 메이슨 내부에 새터니스트(악마주의자)가 잠입해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Proof Of Conspiracy'는, 영문이지만 인터넷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sacred-texts.com/sro/pc/index.htm
일루미나티의 기본전략은 아래의 3가지가 주를 이룬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그 밖의 문제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는 진영으로 분단시킨다. =분단해서 통치하라 (분단과 혼돈)
대립하는 진영에 무기를 주고, 서로 싸우게 하고, 약하게 하고, 그 국민정부와 종교적 조직을 서서히 자멸하게 한다. =양다리작전(분열과 혼돈)
모든 정부의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 금전적 및 성적인 뇌물을 이용한다. 일단 유혹에 넘어가면 공갈, 경제적 파탄의 위협, 비밀 폭로, 금전적 손해, 살해 위협에 의해 조작한다.
권력자들의 증언
"성장의 과정에서 민족주의에 물든 국민에게 재교육을 실시해, 주권의 일부를 초국가기관에 맡긴다는 생각에 익숙해지는 것은, 뼈아픈 일이다" --빌더버그회의의 창설자, 네덜란드의 베른하르트 전하--
"세계에서 큰 사건이 우연히 발생하는 일은 없다. 국내정치에 관련된 것이든, 통상 문제에 관련된 것이든, 어쨌든 사건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짜여져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사건의 전개는 대부분의 경우, 지갑을 쥔 무리들의 연출의도에 따라 진행된다." --데니스 힐리 전 영국 국방장관--
"빌더버그 회의는 정책 입안의 장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 흔한, 쓸데없는 화제도 때로는 나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얻어진 합의는, 전세계에서 각종 정책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옵서버지'의 편집자 윌 허튼--
"우리는,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타임스, 그리고 타임지를 비롯한 훌륭한 출판사업자들에게 매우 감사하고 있다. 이런 회사들의 경영간부들이 우리들의 모임에 40년동안 참석했고, 더구나 그동안, 쓸데없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지 않고 존중해 주었다. 그 내용이 지금까지 만약 공표됐다면, 우리의 세계계획을 추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세계가 세련된 지금, 세계정부의 수립을 위한 준비는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수세기 동안 고집했던 민족자결의 원칙보다, 엘리트 지식인과 국제은행가에 의한, 초국가적 규모의 통치가, 물론 바람직하다" --데이비드 록펠러--
"우리 미국이 목표로 해야 할 것은 미국이라고 하는 국가의 폐지다. 다른 나라에 불러, 피아의 통치권을 공동행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한 리스크를 무릅쓸 필요가 있다" --킹맨·브뤼스터·주니어 엘 대학 전 학장 전 미국주영대사 CFR멤버--
"만약 당면한 세계정부의 역할을 담당할 유엔헌장의 재검토와, 크게 권한이 강화된 국제재판소를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았을 경우는, 진보할 수 있는 어떤 희망이 있을까? 결국 '신세계 질서에 대한 관심'은 하향식이 아니라, 상향식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중략) 결국, 국가통치권을 소멸시키려면,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서 조금씩 침식하는 방법이 매우 효과적인 것이다." --리처드 가드너 전 미국무부 차관보--
"좋든 싫든, 무력 또는 합의에 의해 세계정부는 수립됩니다" --제임스 워버그(CFR 창설자 폴 워버그의 아들)--
"오늘, 유엔군이 로스앤젤레스에 진주해 치안의 회복에 나서면 미국인들이 격노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이면 감사의 마음을 담아 '훌륭하다!고 외칠 것이다. 사실이든, 그저 단순한 풍문이든, 외부에서의 위협이 배후에 다가와 우리의 생존 자체가 위험하다는 말을 들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때, 전세계 사람들이 지도자에게 악마로부터의 해방을 호소한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것은 정체불명의 위협이다.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라 그 위협을 연출하면, 개인의 권리는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이 포기된다. 세계정부가 가져다주는 행복의 보장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전 미국 국무장관--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대가가 어떤 것이었든, 그것이 성공한 것은 분명하다. 혁명에 의해 보다 능률적이고 헌신적인 정부가 탄생했을 뿐만 아니라, 고상한 정신과 목적지향형의 지역사회가 생겨났다.(중략) 마오쩌둥 주석의 지도하에 전개된 중국의 사회실험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고, 게다가 성공을 거둔 한 예이다."--데이비드 록펠러--
"록펠러와 그 협력자들이, 대규모의 활동을 통해 초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하나의 지붕 아래 통합해 세계통일정부를 수립한다 (중략) 그들은 적어도 50년 이상에 걸쳐, 먼저 미국의 정치지배력을 빼앗고, 이어서 전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경제력을 휘두르는 계획을 신중하게 추진해 왔다."--래리 맥도널드 하원의원--
"지금이 정말로 평화롭고, 서로 의존하는 세계질서를 구축할 절호의 기회다. 이런 기회는 언제까지나 기다려 주지 않는다. 세계는 변혁의 연에 서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당한 중대위기다. 그것이 일어나면 각국은 '신세계 질서'를 받아들일 것이다." --데이비드 록펠러--
"이것은 역사적 순간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긴 투쟁과 냉전의 시대를 끝내는 대진보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후세를 위한 '신세계 질서'를 만들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약육강식이 아니라 법의 지배가 나라를 다스리는 세계. 우리는 이 신세계 질서, 유엔 창설자들의 약속과 비전을 실현시키는 평화유지의 역할을 할 수 는 진짜 기회입니다" --조지 부시(주니어) 전 미국 대통령--
"독립을 포기하는 것이 애국정신이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
"이 금융위기는 세계통일정부수립의 목적으로 25년 전부터 계획되었다" --론 폴 미국 하원의원--
"국제적 협력체제의 새로운 적극적 시대를 바탕으로 '신세계 질서'는 겉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http://web.archive.org/web/20101204061004/https://sites.google.com/site/uranenpyou/koudou-keikaku
놈들은, 우리를 분단하고, 서로 싸우게 한다. 우리가 우리를 "적"으로서 공격하는 동안, 진짜 적인 놈들은 그들의 목적을 간단히 달성하는 것이다. 그 목표인 "신세계질서"라는 것은 지금은 "다극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는 것 같다.
윌리엄 러셀이 독일유학에서 가져온 또 하나가, 헤겔의 변증법이다. 스컬&본즈는, 이 헤겔의 변증법을 전략으로서 채용하고 있다. 어떤 것인가 하면, 간단하게 말하면, 우선 테제(정립)를 세우고, 그것에 대해 안티테제(반정립)를 부딪쳐, 진테제(종합)를 도출하는 것으로, 정+반=합이라고 하는 도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자신의 우위를 이끌기 위해 세계속에 의도적으로 대립을 일으켜,긴장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자신들을 유리하게 이끌 해결책을 제공한다는 방법론이다.
이것도 일루미나티와 같으며, 키워드는 "분열과 혼돈".
3년 전의 코로나 백신 사태,,,, 우리는 "분열과 혼돈"을 누가 만들어내는 지 분명히 목격했는데, 지금은 또 다시 둘로 나뉘어 서로 싸우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