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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詩/그림/휴식

<3>-은행나무 아래 늙은 여자/권규미-

작성자H.Y상위|작성시간15.10.28|조회수40 목록 댓글 0

<1>-희고 맑은 물소리의 뼈/권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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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젖은 발들을 불러 북두의 별이 뜬 제 심연을 보여주는 소리의 뼈들, 희고 맑다

 

  천 년 녹음 두른 묵묵한 관음의 화신, 말에도 뼈가 있고 바람에도 뼈가 있으니 무릇 생명의 으

뜸은 뼈대라고 서둘러 일필휘지

 

  어디서 굴러온 지 모르는 개뼈다귀 같은 생, 가망 없는 은총 속에 스스로 내몰린 듯 남루를 거

울삼은 눈부신 저녁이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말, 외로운 시인의 강짜라 여겼더니 부끄러워라 저 무량한 빛의 하염없

는 하강을 쓸쓸히 베끼는 물소리 적막하다

 

  팔만 사천 꽃잎의 이마들이 동동동 희고 맑은, 새들도 쉬어 넘는다는 새재에 와서 제 몸속에 차

곡차곡 뼈를 쌓는 어리디 어린 물소리를 본다

 

<2>-다정한 그림자놀이/권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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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어요 우유부단한 사람들이 때때로 죽은 척 눈만 감을 뿐이죠 아침의

햇빛을 수의처럼 두르고 룰루랄라 무덤 속을 빠져 나오죠 하늘과 땅 사이를 콩닥콩닥 굴러 넘는

붉은꼬리여우처럼 태양은 자신의 심장마저도 믿지 않아요 죽음은 먼 옛날 삼엽충이나 맘모스보

다 먼저 우주를 다녀간 별의 종족이라고 누구나 믿었죠 문명은 늘 제 그림자에 가려 울기만하는

갓난쟁이여서 무언가를 발명하기에는 슬픔이 턱없이 모자랐죠 와글와글 그릇 부딪는 소리와 젖

은 책장 넘어가는 소리 먼지로 쌓이는 무덤 속 죽은 줄도 모르고 희희락락이에요 방부액에 담그

지 않은 부장품처럼 문득 바스라지는 영혼을 처음엔 죽음이라 부를까 망설였어요 심장에서 스

며나와 발바닥에 매달린 서로서로의 죽음위에 엔터키를 치고 스페이스바를 두드리면 무덤을 두

른 희미한 그림자들이 심해어처럼 떠다녀요 죽음은 아직 발명되지도 않았는데 달그락거리는 뼛

조각을 끌며 달이 떠오르네요, 귀신처럼

 

<3>-은행나무 아래 늙은 여자/권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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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만 걸음을 걸어 몸 하나에 도달했을까 나무는 한 채의 다정한 집이다 사방이 벽이고 사방이

문인 낯선 신전이다

 

  삼백 살은 되었을 법한 여자, 한 세상을 기차놀이하듯 지나왔을까, 몇 개의 간이역과 몇 개의

강, 들판을 가로질러 몇몇 계절에는 눈이 내리고 꽃이 피기도한 멀고 먼 이방의 가여운 마을이다

 

  나무는 몇 줄 햇살처럼 애잔해지고 성큼성큼 몇 계절을 순식간에 지나 화르르 물든 은행잎의

방이란 방들 고요하고 눈부시다

 

  하늘과 땅 사이 남루한 굴욕의 낮과 밤을 적막한 피륙의 꽃수처럼 무심히 짜 늘이며 심장의 박

동을 꺼내 비춰보는 거울같이

 

  마른 연못의 물고기들이 시시각각 제 몸속으로 걸어드는 것처럼 몸 밖의 기관들을 다시 안으로

불러들이는 금빛나무 아래

 

  풍경과 시간 사이 다시 맨발인 여자, 미물과 미물들 사이의 나무처럼 참 속절없는 경계인이다

어디를 가도 새로운 경계를 낳는

 

<4>-産室에서-아들에게/권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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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한때 불후의 문장이었다 뜨겁고 단정한 겹문 이었다 잠시, 강림하는 신의 통로였다 밀림으

로 북소리 나르는 무지개였다 아득히 둥근 수평선을 업고 춤추는 원시부족을 인도하던 그때 나

는 가여운 메시아였다 아침과 저녁이 겨울징검다리처럼 뒤뚱거렸고 지하 수천 미터를 흘러 내

게와 닿는 북소리의 행진으로 발을 놓치고 손을 놓친 한 척의 돛배처럼 둥둥 떠다녔었다 죽은 할

머니와 죽은 아버지들이 안개처럼 하얗게 질려 아가야 아가야 소리치며 쫓아오고 직립의 나무

들 초록날개를 펼쳐 흩어지는 별의 눈물을 받았다 진흙세상 몸으로 뚫고 연꽃 피었다고 견디는

데까지는 견디어보자고 때때로 바람이 이마를 쓸다가고 너와 나 필사의 한 몸이었던 그 잠시 동

안, 참으로 나는 불후의 문장이었다

 

<5>-황금메기/권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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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를 여기서 만나다니, 생산이 없으면 죽음이라는 말씀의 두릅들 마른 명태처럼 겹겹이 쌓인

나라

 

  살아 적빈을 자랑하더니 죽어 금물을 뒤집어 섰네 그려 아무도 고백하지 않으니 스스로 고백하

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고

 

  자네 원래 자본주의라는 건가 어디 날 한번 가르쳐 봐 거짓말 해봐 꽃핀 적 없는 그 꽃못들에

대해 약속해봐

 

  죽어 천 년이 지나도 제 마음을 여의지 못하는 것들의 머리위에 거짓말처럼, 달디 단 거짓말처

럼 촛불을 켜봐

 

  사유의 위독함은 식민지의 역사처럼 유폐되었고 진흙바닥에 꼬리를 펴 제 이름을 낳는 미물들

처럼 빗방울 빗방울들의

 

  화담, 여기서 그대를 만나다니 물빛 부유한 호반의 숲 더군다나 황금의 세속 구차하고 가여운

만만세라니 참,

 

 

<<권규미 시인 약력>> 

 

​*경북 경주에서 출생.

*2013년 월간 《유심》에 <희고 맑은 물소리의 뼈> 외 4편으로 등단.

*2012년 경주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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