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목재소에서/강희안-
1
어깨 너머 생나무 구르는
어둠의 산 저쪽
습관처럼 바람은 불고
간혹
우리가 사는 세계는
삐걱이는 5월의 창틀 속에서
내력을 알 수 없는
원목을 켠다
산판에서 불어오는 바람
문득 고쳐잡는 대팻날 아래
무엇이 사라지고
또 무엇이 남는 것인가
한 켠에서는 반듯하게 서고
다른 한 켠에서는 발 아래 깔리는
우리의 육신이
부끄럽지 않기까지는
얼마만큼이나 깎아내야 하겠느냐
하겠느냐
2
가슴을 구르는 원목처럼 뒤척이며
둥근 우리들 삶을
정사각형 혹은 직사각형의
모난 삶을 위해
톱질을 한다
몸도 각각
마음도 각각
모난 마음과 둥그런 목숨이 만나
스스로의 덫이 된 우리가
대못처럼 박힌 이유는 무엇인가
몸에 갇혀있는 마음
톱날이 지나가는 먹줄 위에서
팔․다리마다에
튼튼한 못을 치면서
눈물 깊은 뚜껑을 열어라
모난 아름다움이여
3 활발하고 다부진 빛과 빛 속에서 한 치도 틀림없이 목재의 질량을 보듬고 있다. 시외버스 한 대 가 가끔 외지로부터 돌아오는데, 오늘도 여느 때처럼 대패밥만이 풀풀 날리는 목재소
그대여,
우리들이 수천 번 쓰러졌다 일어나는 까닭은
또 다시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무딘 손바닥과 모진 목숨을 가지지 못한 죄로
사각형의 틀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못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2>-겨울일기/강희안-
1
불안한 降雪의 방문마다
입과 눈썹이 살아서
귀를 세우고 있다
연탄가스 매운 얼음방에
쪼그려 앉아
입덧을 움키던 아내
밤을 삼키며
몇 날을 울었지
불면의 울음 닦으며
살갗 속에 닫히는
젊은 과거
나의 어깨는 깨어지는가
관절염으로 드러눕던
하꼬방 골목에
모빌처럼 흔들리는
황달의 아이들과
늑골의 겨울이여
돌아누워 보면
마른 머리칼 쓸며
탄불 갈아넣는 아내의
기침과 만난다
한 장 연탄으로
겨울을 감추는 食率의 방
단식은 끝없구나
2
쓸쓸한 曲調 흐르는 방
불이 꺼졌다
누운 자리까지 따라오는
서른 둘의 겨울과
식솔들의 행방
희망은 너무 아름다워
어둠을 깔고 누웠다
마디 마디 끊기는
환상 소나타 D단조
부르튼 손등으로 꿈꾸는
미래와
속속들이 지워지는
감각의 골마다 귀를 열면
답답하구나
시원의 아이들이
새우잠을 자는 방에
혓바늘 돋는 불면과
각성의 혈기
날마다 죽을 수 없는
理由를 만드는
어지러운 잠자리
손을 더듬어 잡을 수 있는
담배와 희망은
오래 오래 아름답다
<3>-별빛 속으로 지상의 꿈은 흘러가고―아버님께/강희안-
1
별빛 속으로 지상의 꿈은 흘러가고
밤마다 금강 하구로 부려놓은
두 손 분량의 새벽잠 끝에
은밀히 끼어있던 긴 어둠
당신 조선낫 한 획에 쓰러질 때
객지로만 떠돌다 돌아온 나는
안개의 덫으로 누운 벌판의 부피 속을
그리운 당신 이름 부르며
무릎까지 헤매이다가
짧은 혀로만 울다가
쓰러지지 않는 법을 배우던 어느 날
당신의 빈 눈은 내게
바람으로 풀어진 강물처럼 누워
그렇게 흐르라 한다.
2
이제 아무도 당신이 남기고 간 강물의 깊이를 눈치채지 못한다.
석간신문 사회면에 박모 군이 당한 치정의 밤이면, 잠긴 문고리를 다시 한번 만져보는 약관의 부
끄러움이, 문을 잠가도 더욱 거세어지는 우리들 불안이 다시 강 속으로 돌아와 눕는게 아닌지 아
버지, 가야 할 땅의 길은 어딘가요. 저 강으로 닿는.
3
자옥한 밤바람 속에서 아버지는
풀잎처럼 날을 세우고 사셨다.
스스로 가슴 속 휘감은 안개를 털며
밤바람 속을 헤매다 쓰러지신
아버지
내 뼛 속을 흐르는
시린 바람의 물살을 지우며
나는 본다.
사진첩 속의 당신
한 장의 그리움을.
<4>-고성농요론/강희안-
<짧은 등지*>
등 꺾인 山이여
안개 깔린 모판 둘레마다
아침은
깊은 항생 속에 있다.
하늘로 머리를 두고
손톱 불태운 짐승들
영천초목에 호메야손 놀리듯
뉘우침의 물꼬를 트고
가슴 찍힌 눈물이고저
바람이고저
알몸으로 목놓아 푸는
울음 깊은 매듭을.
돌아누워 보면
고사리 같은 손놀림으로
늦봄 못자리 에우며
모의 허리 세울 때
새참 이고 온 어린 소녀는
진달래 붉게 엎질러진
초경의 산을 안는다.
<상사디여*>
등을 돌려 새참을 든다.
解産한 농군의 아낙이
호미날로 돌밭 쪼으며
밑을 감싸안고 있다.
만삭의 몸을 진
벼들은 나의 손등에서
용서의 눈물에 익고
풀들은 소리하고 있다.
아, 어디선가
핏기 절은 알몸으로
가슴을 톱질하는
울음 밑 강물을 본다.
무성한 풀잎들 사이
나는 소리 죽여
갈비뼈를 태우는
꿈을 꾼다.
時代의 옆구리에 그어진
훈장 같은 우리의 아픔
밤새도록 넘어져 있던
가슴 삔 아낙들이
일어서고 있다.
* 짧은등지 - 모찔 때 부르는 노래
* 상사디여 - 김맬 때 부르는 노래
<5>-나무와 사내/강희안-
사내가
전지(剪枝)를 한다
두 끼를 굶은
하루가 무섭다
나무를 자르는 사내
발목이 휘-청
시간 속으로 떨어졌다
시간의 그늘 밑
사내가
조용히 울고 있다
<<강희안 시인 약력>>
*1965년 대전 출생.
*배재대 국문과 졸업 및 한남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90년 《문학사상》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시집 『지나간 슬픔이 강물이라면』, 『거미는 몸에 산다』, 『나탈리 망세의 첼로』.
*문학저서 『현대문학의 이해와 감상』, 『석정 시의 시간과 공간』, 『문학의 논리와 실제』 등.
*현재 계간 『시에』·『미네르바』 편집위원 및 배재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