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음악/詩/그림/휴식

<3>-시간의 무게/한경용-

작성자H.Y상위|작성시간15.11.20|조회수65 목록 댓글 0

<1>-빈센트를 위한 만찬/한경용-

 

​

지네를 자른다.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린다.

지하실의 복도는 마디가 있다.

후미진 달이 갇힌 창문이 내 안으로 길쭉하게,

깨진 유리창 속의 기억이 소름 끼친다.

지네를 자르듯 잘라 버려야지

긴 손가락으로 질끈질끈 자르듯 묶으니

살아 있는 피가 뚝뚝 떨어지며 목도리에 묻힌다.

죽어가지 않을 것 같다.

뒤돌아본 내 지하실 복도

지네는 마디로 산다.

나는 죽지 않는 마디가 무섭고 열 개의 손가락이 무섭고

그보다 더 어울려 그려져 잊힌 목도리가 무섭다.

나의 닫힌 유리창을 열어보곤 언제나 목을 조른다.

목이 긴 해바라기를 바라보다 쏟아진 핏자국의 양귀비

아이리스에 젖어,

데이지 꽃잎으로 몰아쉬던

언덕마다 노을이 채색된다.

수도원의 첨탑 위로 달 조각이 걸리면

까마귀 나는 밀밭풍은 또다시 이글거리는가.

젖은 불빛 아래 카페에서

압생트*로 칵테일한 눈동자의 자화상을 그린다.

내 노오란 집이 떠가는

강물은 마디가 없다.

 

* 고흐가 그린 에메랄드 빛깔의 술, 가난한 예술가들이 즐겨 마셨다 한다.

 

<2>-달랑/한경용-

​

​

  장모님은 눈이 크시다. 금방 울어 버리신다. 그 눈에 아이샤도우를, 곱게 옷을 입고 악어 핸드백 들고 당당하게 개업한 사

위의 여행사에 나들이 오신다. 봉봉 쌕쌕 두 박스를 들고, 장인 어르신과 같이 후배와 같이 쓰는 신설동 골목의 보증금도 없

는 사무실, 달랑 책상 두 개 전화 두 대, 장인은 중국 여행에 대해서만 열심히 물어보신다. 여기저기 사무실을 보다가 전화통

을 보다가, 장모님의 큰 눈동자에 눈물이 고인다. 얼른 감춘다. 달랑 맨 몸뚱어리로 결혼한 사위의 자존심을 위하여 얼른 웃

어야 한다. 눈물이 보이지 않기 위하여 큰 눈을 껌뻑껌뻑 거르신다. 그래, 눈물은 안으로 들여 넣어야지 눈물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여 넣는 것, 골프투어 상담을 마치고 “전화는 그래도 좀 옵니다.”라고 말하니 장모님은 젖은 눈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공중으로 얼굴을 돌리신다. 네 살배기 아들과 갓 돌이 지난 딸을 둔 저 불안한 외줄을 탄 사위 놈, 기죽일라. 벽에

는 달랑 거울 하나, 폼페이유적 사진의 관광 캘린더가 뜨거운 나의 여름을 태우며 위태위태 걸려 있었다. 그 캘린더 를 구경

하는 척, 거울을 보는 척, 눈 화장을 고치는 척, “사무실이 참 아담하네. 하고 너스레 떠신다.

 

  검은 눈물은 하늘에도 있다. 베수비어스 산정에서의 화산 폭발로 석고가 된 엎드려 절규하는 임산부, 몇 백 년째 쪼그려 기

도만 하는 남자 폼페이는 그날 이후 잿더미에 갇혀 검은 비만 내렸다.

 

  여행사 책상 위에 있는 계간 문예지를 보시더니

 

  아이라인이 뭉개진 눈 속으로 검은 눈이 반짝인다. “내 딸 세끼 밥만 먹여주고 시를 쓰든 말든 해주어.”내게로 흐르기 전에

커피에 타서 그렁그렁 마신다.

 

<3>-시간의 무게/한경용-  

 

 

내가 강의하던 사유의 무게가 0

허공에 놓으면 그대로 떠서

샤갈의 그림처럼 공중부양을 하게 된다.

시간강사 20년 차 가슴도 무중력이다.

불이 붙었다고 하더라도 곧 꺼지고 만다.

빨대로 물속에 거품을 불어서 넣어도 기포가 올라오지 않으니

벌교 물방개가 보면 기막힌 사연이라고 말하겠지.

혈액도 무중력을 받으면 무게가 없어지므로

나를 불러주는 머리 쪽으로 피가 올라가

보이스 피싱을 듣게 되는 현상,

나는 우주비행사가 되어 귀가 부어

세상을 척도하는 기준이 갑자기 카오스 세계로 몰입된다.

위아래를 구별할 방법이 없는 내가

“거꾸로 서 있을 수 있다.”라는 표현은 적절치 못하다.

나사를 돌리면 나사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반대 방향으로 돌게 될 것이라

한 줌의 흙이면 연단 위에 피울 베고니아의 권리조차 허용 않는 허무,

시리얼로 적신 중년이 우주인이 되는

검은 비밀 봉지가 일산역 앞 포장마차에 걸려 있다.

 

<4>-달지기/한경용-

   

 

달은 밤에 비치는 것이 아니라 박혀 있는 것이다.

누구도 알 수 없이

내면에서 올라온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자정 무렵 퇴근길에서 보면

구만리 하늘에서 보내는 눈빛인지도

내가 한세상 돌아간 후에도 당신은 지켜보리라.

나의 등이 쓸쓸하다 생각하여

당신은 마음을 달구어 존재를 내밀고 있는가.

어느 날 문득 가방이 무거울 때

어깨를 잡아주는 지하철의 손잡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목구멍 모양으로 뻗은 손을 잡아주다 가방을 내려놓자

하루살이들이 내 등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가방 속에 달라붙는 것을 보았다.

가로등도 밤에는 등골이 아프겠지

아파트로 가는 길목마다

멀리서 자기를 보며 하루의 생을 끌고 가는 달지기가 되는 것인가.

병든 측백나무가 밤에 금빛같이 보이는 것은

얕은 땅에 박고 사는 영혼이 흐르는 것이라 한다.

 

 

<<한경용 시인 약력>>

​

*​2009년 시집 『잠시 앉은 오후』로 등단.

*2010년 《시에》, 2014년 《현대시》로 작품 활동.

*2014년 시집 『빈센트를 위한 만찬』 출간.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