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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詩/그림/휴식

<3>-꿈/김화순-

작성자H.Y상위|작성시간15.12.04|조회수48 목록 댓글 0

<1>-동그라미 만드는 여자/김화순-

 

 

그 여자 종종종 저녁을 썬다

파의 동심원들 도마 위를 굴러 고단한 눈물이 된다

푸르고 하얀 슬픔의 방울들

 

베란다 정면으로 고무래공원 보인다

인라인 스케이트 타고 신나게 달리는 아이들

그녀의 눈 쓰윽, 스치고 지나간 아이의

바퀴 속으로 동그라미들 갇힌다

아이는 그녀가 만든 동그라미들 가지고 달아난다

 

노을 지는 그 여자의 빈 가슴으로

귀소 하는 비둘기 떼

동그란 심장은 작은 생명으로 넘친다

손에 다시 힘이 돋고

하얗고 푸른 동그라미들 곰탕 속으로 굴러들어간다

 

알싸해지는 뼈 국물 속, 푹 우려낸 그녀의 생

자꾸 동그랗게 동동. 떠올라 까닭 없이 슬퍼지는데

그녀의 눈결 안에서 파닥거리는 아이

인라인 스케이트 속 동그라미 하나 꺼내준다

 

환해진 그녀

식사 때마다 파 써는 여자

 

<2>-내소사 꽃창살/김화순-

 

 

전나무 숲을 지나

울퉁불퉁 흙길 지나

내 안의 문이란 문 모두 열어제치고야

내소사 앞뜰에 선다

 

대웅보전 문틀 속의

무더기무더기 저 꽃숭어리들

어느 누구의 생의 옹이가 무수히 박혔나

사방팔방 저 꽃창살들

  

꽃잎과 꽃잎 사이

시간의 끌이 파낸 대웅전 창살마다

켜켜이 눈물 진 소원들

꽃잎으로 새겨놓았나

 

산사의 저녁 종소리

하늘 끝으로 붉은 길 떠나는

빈혈 앓는 꽃숭어리들 창백한 미열

아아, 푸른 잎도 달지 못한 채

다시 길을 떠나며 듣는 이 저물녘

내소사 벗어나는 범종소리

 

<3>-꿈/김화순-

 

 

팔순 아버지의 굽은 등에서

사십 년 전 골목길을 본다

 

당신의 귀가시간은 고르지 않았다

버스정류장에 키 작은 풀로 쪼그려 앉아

흙그림을 몇 번이나 그렸다 지워도

당신의 기침소리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 밤이면 강 건너 마을로부터

두꺼운 이불 되어 내 앉은 키 덮어오던 어둠에 갇혀

잇몸 사이로 비어져 나오는 울음 꺽꺽 삼키곤 했다

내 마음의 창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당신의 발자국소리

더 이상 들리지 않았을 때

난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굽은 등 속에는

그만 아는 팔십 년 비밀한 생이 있다

세월로 가득 채운 둥근 방, 천천히 비워가는

당신이 걸어온 길로 그날의 당신을 살고 있는

내가 걸어가고 있다

 

<4>-목욕하는 여자/김화순-

   

 

목욕하는 저 여자 아름답다

이마에 송송 땀이 돋고

손은 참빗 되어 온몸 살뜰히 빗어 내린다

살면 살수록 때타는 세상

마음 속 모래 훌훌 날려버린다

점점 더 가볍고 상쾌해지는 여자

구석구석 스며드는 물의 손길

저 여자 연초록 잎새로 반짝반짝 되살아난다

양볼에 붉은 사과 주렁주렁열리고

가슴에 숲의 향이 남는다

슬쩍 체위 바꾸는

꿈꾸듯 황홀한 물 되어 흔들리는 여자

한순간의 폭풍과 전율 치러낸 후

비 다녀간 초록이 되어 문을 나선다

몸내 향긋하다

가벼워져 하얀 풍선이 된 여자

그녀의 일상 한 가닥 푸른 공기방울 되어

가볍게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5>-미도산에 부는 바람/김화순-

 

 

토요일 오후, 구름다리 건너 미도산에 갑니다

시내를 헤매던 부은 발 촉촉해지고

먼지 낀 얼굴 푸르고 환해집니다

아직 여름을 살고 있는 노루오줌과 비비추 잎사귀는

안색 누렇게 무너지는 굴참나무 속

시간의 살결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툭툭, 어깨 두드리며 자신의 존재

온힘으로 알리는 집 떠나온 상수리며 밤송이들

애써 주워들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썩어서가 아닙니다

아직 내 안의 열매들 푸른 옷 벗지 못하고

누렇게 여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름내 나의 시간도 울창한 푸른 잎으로 살았습니다

초록과 초록이 겹쳐지던 열정의 시간들은

냉정한 가을바람에 무릎까지 시려옵니다

누구나 생의 사계절 제대로 겪어봐야 처음의

환하고 아련한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요

 

그리움의 시간 지나온 산 속 식구들도

지난여름의 뜨거운 초록사랑 보냈겠지요

여위어가는 바람이 온몸 씻어주는 계절

다가올 눈 속 뿌리의 시간으로 살려고

나무껍질마다 아린 길 수없이 그려 넣고 있습니다.

 

 

<<김화순 시인 약력>>

 

 *서울에서 출생.

*2004년 《시와 정신》 신인상으로 등단.

*고려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시집 『사랑은 바닥을 쳤다』(천년의시작, 2006), 『시간의 푸른 독』(천년의시작, 2012).

*논문집 『김종삼 시 연구』(월인, 2011).

*현재 고려대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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