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6일 (Nov 6th)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Programme of belief)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6)
마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녀는 주님이 계셨더라면 나사로를 치유하셨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었고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든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을 더욱 친밀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르다의 믿음은 미래에 성취되는 것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인도하여 그녀의 믿음을 인격적인 소유로 만드십니다. 그 후 서서히 그 믿음을 특별한 유업과 합치십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11;27)
주님께서 당신을 다루실 때에도 이러한 면들이 있습니까? 당신이 주님과 인격적인 친밀함을 맺도록 주께서 가르치십니까? 주께서 마침내 이 질문을 하십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당신을 의심케 하는 시련들은 무엇입니까? 마르다처럼 미래만을 향했던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처한 상황 속에서 당신을 사로잡는 말씀으로 인해 주님을 향한 인격적인 믿음으로 바뀌었습니까? 개인적인 문제가 발생해 개인적인 필요가 생길 때까지 이런 일은 발생할 수 없습니다.
믿는 것은 전적으로 맡기는 행위를 위미합니다. 예를 들어 지적인 학문 분야에 나 자신을 맡기면 나는 학문 분야와 관련이 없는 것은 모두 배제합니다. 어떤 개인적인 신념에 나 자신을 맡기면 실제로 내가 가지고 있는 확신에 몰입하며 타협을 거부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에 나 자신을 맡기면 영적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오로지 그분의 지배를 받기로 결심합니다.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때 주님은 내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나는 그때 믿음이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신뢰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던가를 깨닫고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I find that faith is as natural as breathing and I am staggered that I was so stupid as not to trust Him bef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