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성 감동 논픽션《구리아들》연재 - 2♡

작성자榮鹿 문태성|작성시간24.01.22|조회수59 목록 댓글 0

 

♡문태성 감동 논픽션《구리아들》연재 - 2♡

 

2. 유년의 봄볕 

 

 제아가 7살이 되던 해, 아버지 구리 아저씨는 어린 제아를 걸려 연당초등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제아는 5살 때 이미 영월발전소 앞마을에 있는 흥월국민학교 팔괴분교에 맡겨졌었으나, 너무 어려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터라 꼭 학교에 보낼 것을 작정하였던 것이다.  

 제아는 어리고 키가 작아 학교로부터 더 커서 오라는 주문을 받았지만 간곡한 부탁으로 국민학교에 입학이 되었다. 

 제아의 담임은 장정근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제아를 내 자식처럼 여기며 ‘엄마 없는 불쌍한 아이’라고 극진히 돌보아 주셨다.  

 가을 운동회 때 런닝구와 검은 반바지 등 당시의 운동복과 모자, 심지어 운동화까지 사 주셨던 걸 기억한다. 

 제아는 후일 선생님을 찾았고, 후일 성년이 되어 이렇게 감사의 편지를 드렸다. 

 

 마음의 편지  

 <장정근 선생님께> 

 

 찬바람이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계절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릴 적 시골마을 공회당 담벼락에 기대서서 따스한 햇살을 기다리던 기억이 스쳐 지나갑니다. 

 봄 햇살보다 더 따사롭게 저희들을 비춰주셨던 선생님. 

 얼마 전 선생님께서 “모두들 살기 힘들다는데 어떻게 지내니? 얘, 시간 나면 애들 데리고 놀러 와. 여기 좋은데 너무 많다.”하시며 이 제자보다 먼저 전화를 주셨을 때, 저는 35년 전 산촌(山村)인 강원도 영월 연당초등학교의 1학년생으로 되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키 1백 9센티미터, 몸무게 16킬로그램로 유달리 여위고 조그만 저에 대한 선생님의 사랑은 각별하셨습니다.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읜 저였기에 선생님은 저에게 어머니셨습니다. 

 선생님은 가을 운동회 날에 운동모자와 흰색 런닝셔츠, 검정 반바지, 검정 운동화를 어머니대신 제게 사 주셨습니다. 

 제가 그 때, 그 운동복과 난생 처음 신어 본 검정 운동화를 신고 달리기를 해서 몇 등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지금까지도 선생님의 따뜻한 보살핌은 선명하게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그 후로 20년의 세월이 지난 1984년 여름, 휴가를 내어 저는 강원도 횡성으로 선생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아버님께서 “오늘의 네가 이만큼이라도 성장한 것은 바로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이신 장 선생님 덕분이다. 나중에 꼭 찾아서 뵈어라.”라고 당부하시기도 했지만, 선생님은 언제나 제 마음의 영원한 어머니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해 늦가을, 선생님은 초등학교 동창회에 오셔서 밤늦게까지 저희와 함께 해 주셨습니다. 저희 동창생 모두가 엎드려 절을 올릴 때, 어느덧 예순을 넘기신 선생님의 주름진 눈가에도 재회의 눈물이 고이셨습니다. 

 선생님!  

 40여 년을 천직으로 여기시던 교단을 교원정년법 개정으로 이달 말 떠나시죠? 저희들도 참스승이신 선생님이 아이들 곁에서 멀어지는 것이 싫습니다. 선생님은 수없이 길러 내신 제자들 가슴속에 영원한 스승으로 남으실 겁니다. 

 “아쉽지만 이제 그만 해야지. 더 좋은 선생님들이 많은데 뭘.”이라고 하시는 선생님께 갈채를 보내드립니다. 

 아직은 춥지만 새봄이 멀지 않았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지금까지 쌓아두신 하늘의 큰 상복(賞福)을 듬뿍 받으시길 기원 드리며 글을 맺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제자 문태성 올림. 

 (국민일보, 1999. 2. 23) 

 
 풍금과 피아노  

 

 제아는 그 당시 대개의 시골학교가 그랬듯 운동장 가운데 놓였던 풍금을 잊지 못한다. 전교생 아침 조회가 끝나면 교실마다 이 풍금은 옮겨져 음악시간에 사용된다. 그리고 운동회 때나 학교 행사에서 이 풍금은 보물이었다.  

 제아가 피아노를 처음 본 것은 읍내에 경필 쓰기 대회를 하러 영월국민학교에 가서 피아노 경연 대회장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창문 사이로 본 것이었다. 크고 웅장해 보였고 부러워 보였다. 

 제아는 음악을 못한다. 혼자서 터득한 하모니카와 기타 외에는 악기를 다룰 줄 모른다. 중학교에 진학해서 영월중 1학년 때 처음 받은 음악점수가 29점이었음이 이를 증거 해 준다. 중 2로 올라가기 전 송재학 담임선생님(미국 거주)은 같은 대학 출신 친구인 음악선생님께 특별한 부탁을 하시기도 했었다. 

 제아는 후일, 자녀 3명 모두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배우게 하였다. 음악에서 샵(#)와 플래시(b) 붙은 계명도 잘 모르는 제아는 20여 년간 교회 찬양대를 하고 있고, 그 사이 찬양대장을 5년간이나 맡았었다. 이제 겨우 음감을 잡아 찬양을 따라서 하는 수준이 되었다. 

 
 새벽밥  

 

 제아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른 마지막 시기의 학생이었다. 인근 읍내의 중학교에 진학하려면 대단한 입시경쟁을 치러야 했다. 관내 수십 개 국민학교에서 배출된 학생은 읍내에 하나밖에 없는 영월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여야 했다. 합격생은 라디오로 관내에 발표되었다. 

 제아는 6학년 때,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어머니가 해 주시는 곤로불에 한 밥을 먹고, 도시락을 가지고 친구들과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서 2킬로미터 떨어진 학교까지 가면 6시 정도다. 제아는 반장이어서 촛불을 켜고 의자 위에 올라가, 수련장 문제집을 칠판에다 가득하게 한 바닥 베껴 놓으면 친구들이 와서 그걸 다시 노트에 적고 푼다. 최상진 담임선생님(대구 거주)은 8시쯤 와서 채점과 함께 60점 미만자는 혼쭐을 낸다. 다시 하루 종일 문제지 훈련이 끝나고 저녁 7시쯤 체력장 연습을 마지막으로 귀가를 한다. 점심을 먹을 때에도, 미국에서 지원받은 옥수수빵을 나눠줄 때에도 시험성적이 안 되면 못 먹는다.  

 이렇게 공부를 한 탓에 중학교 진학률이 좋았고, 지금도 제아는 국민학교 때 제일 공부를 많이 했노라고 할 정도이다.   

 
 제아가 중학교에 진학할 즈음, 춘천에 계시는 고모는 제아에게 춘천에 와서 중학교를 다니도록 했으나 제아의 아버지는 아들을 가까이 두고 싶어 거절했다.  

 영월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고모 문소동 여사는 방학 때 춘천에 온 제아의 옷소매에, 끼고 있던 금가락지를 실로 꿰매어 주며 가지고 가서 입학금을 내도록 하였다. 고모는 춘천에서 강릉여관과 영월여관을 하며 그런대로 넉넉한 편이어서 제아를 돌봐 줄 수 있었으나, 제아 아버지의 완고한 뜻으로 제아를 춘천 중학교로 진학시키지는 못하였다.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문태성 페이스북 연재 보기)

 

https://www.facebook.com/share/p/Ykf1dws2bpAt1g9H/?mibextid=qi2Omg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