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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츠쿠 3]스타열전⑩전설의 대투수 사와무라 에이지(澤村榮治)

작성자다음이름임.|작성시간05.11.09|조회수926 목록 댓글 0
출처:baseball2i.com



스타열전에서 소개한 투수 가운데 '사와무라상(賞)'을 수상한 선수가 적지 않다. 사와무라상은 일본프로야구 초창기에 활약한 전설적인 대투수 사와무라 에이지(澤村榮治)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상(賞)이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부동의 에이스였던 사와무라는 일본프로야구 출범 초기에 투수부문 타이틀을 석권하며 실로 경천동지(驚天動地:세상을 몹시 놀라게 함)의 대기록을 수립한 불세출의 대투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두번씩이나 군에 소집되어 결국은 전화(戰禍)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군국주의의 희생양이기도 하다.

1917년 미에현(三重縣)에서 태어난 사와무라는 교토(京都)상업학교 재학중 강속구 투수로 전국에 명성이 자자했다.

34년 시즈오카(靜岡)에서 벌어진 '제2회 메이저리그선발팀 초청경기'에 중학생 신분으로 일본대표팀에 발탁된 사와무라는 그 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나섰다.

베이브 루스를 필두로 쟁쟁한 메이저리거를 상대한 어린 투수는 주위의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와무라는 전설적인 대타자 루 게릭에게 홈런 한방을 맞았을 뿐 가공할 타력의 메이지리그선발팀을 단 1실점으로 막아냈다.

이 놀라운 호투로 그는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에까지 이름을 떨치게 됐다.

베이브 루스와 맞선 17세의 소년 투수

중학을 중퇴하고 자이언츠에 입단한 그는 유연하면서도 화려한 투구폼에서 뿜어내는 강속구와 드롭볼을 무기로 일본프로야구를 평정해 나갔다.

첫번째 쾌거는 출범 첫해인 36년 추계리그에서 라이벌 오사카 타이거즈(한신 전신)를 제물로 일본프로야구 제1호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일이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37년과 40년에도 오사카와 나고야(名古屋, 주니치 전신)를 상대로 연거푸 세번이나 노히트노런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일본프로야구 사상 노히트노런을 세번씩이나 기록한 투수는 사와무라와 소도코바(外木場義郞, 히로시마) 단 두명 뿐이다.

38년 육군에 소집된 사와무라는 전투 중 왼손바닥 관통상을 입어 투수생명이 끝나는 듯 했으나 부상을 딛고 기적적으로 재기하여 세번째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사연이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사와무라의 명성은 끝나고 말았다. 총상으로 인해 공의 위력은 점점 떨어졌다. 투구스타일을 사이드드로우로 바꾸어 보기도 했으나 결국 옛날 구위(球威)를 회복하지 못한 채 43년에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는 44년 두번째로 소집영장을 받았다. 그리고 전선(戰線)으로 실려가던 중 대만해역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수송선이 격침되는 바람에 태평양의 수중고혼이 되고 말았다. 27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5년동안 3번의 노히트노런

사와무라는 군에 소집됐던 38년과 39년 시즌을 빼면 다섯 시즌 동안 활약한 셈인데 그 짧은 기간 동안 63승22패 방어율1.74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남겼다.

또한 최우수승률 1회, 최우수방어율 1회, 최다승리 2회, 최다탈삼진 2회의 타이틀을 획득하고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았다. 거기다가 노히트노런을 세번씩이나 기록했으니 불세출의 대투수로 추앙받고도 남을 만 하다고 하겠다.

일본프로야구계는 뛰어난 성적을 남기고 아쉽게 요절한 그를 기리기 위해서 '사와무라상(賞)'을 제정하여 매 시즌 가장 뛰어난 투구성적을 거둔 투수에게 수상하고 있다.

사와무라는 1959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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