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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

작성자kimpd|작성시간02.01.10|조회수6,180 목록 댓글 0
한국 휴먼 다큐멘터리의 현황

1) 최근 방송 환경과 휴먼 다큐멘터리의 생명성


(1) 휴먼 다큐멘터리의 개념

다큐멘터리와 휴먼 다큐멘터리의 개념을 어디까지 규정지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여기에서는 최근 3개월에 걸쳐 자료를 보고 또 관련자들과 인터뷰를 실시했다. 특히 휴먼 다큐멘터리 표현양식의 다양성에 대해 견해를 구했다. 여러 논란들이 있겠으나, 대별하면 다양성 지향파와 정통 고수파로 나눌 수 있다.
장윤택 PD는 특히 프로그램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다. "휴먼 다큐멘터리가 인간을 소재로 해서 휴머니즘 구현을 목적으로 할 때 포맷은 그 다음 문제이다. 당대의 사회현상을 분석 대응 발전시키는 사회적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이동석PD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를 들었다. "시대의 흐름을 중요시해야 한다. 메시지 전달 수단에 유리하다면 표현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또 영국의 리차드 킬본(Richard Kilborn)은 "다큐멘터리에 오락 요소가 가미되면서 혼합 포맷과 새 스타일들이 도입된다"고 증언했다. 외국의 프로그램 심사에서도 장르 구분보다 효과를 기준 삼는 경향이었다. 단 다큐멘터리에 있어서 기본적인 리얼리티는 고수하고 있었다.
한편 정통 고수 의견으로서 김우룡은 다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실재성(Actuality)과 현실성(Reality)이 생명이며 해법저널리즘, 주장 저널리즘의 훌륭한 수단"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수웅PD는 NHK의 내부 자료에서 한국 방송의 들뜬 분위기를 비판하는 글을 읽고 당황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자제하기 시작하는 다큐의 재연 방식, 리포터의 지나친 등장, 센세이셔널리즘의 만연 등이 한국 TV에 유행하고 있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김윤영PD는 명쾌하게 단언한다 "정통 다큐는 정통성을 지켜야만 생명성이 있다" 강대영PD는 "낙엽 떨어지기를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가? 취재 대상자 안에 내재하는 진실을 발견해서 함께 자연스럽게 끄집어내어 창조하는 과정이 아닐까?"하는 고민을 내비치면서도 비교적 정통을 고수하는 입장이다. "뉴미디어, 새 표현 수단의 발달로 다큐의 정체성(Identity)이 훼손됐다. 이럴 때일수록 근본적인 원점을 응시하는 다큐멘터리스트의 혜안이 절실하다".
여기에서 얻는 교훈이 있다. 다양한 표현 방식의 시도와 정통고수 모두 소중하다는 인식이다. 그것은 마치 한국 전통 예술 문화를 고수 계승하는 노력과 시대에 맞는 변형 대중화 및 창작노력행위 모두 필요한 작업이라는 인식과 마찬가지이다. 휴먼 다큐멘터리 역시 한편에선 고수해 나가며 동시에 또 실험해 가는 과정 중에서 새로운 가치와 양식이 정착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 과실은 역사 발전의 의미이며 제작자와 시청자가 함께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따라서 이 글에서 다루는 휴먼 다큐멘터리는 정통적 개념을 기준으로 하되 연구자의 입장에서 변형 휴먼 다큐멘터리까지 언급하기로 하지만, 단, 왜곡 과장 조작 성향이 있는 프로그램은 단호히 배격하고자 한다.

(2) 최근 각 장르 프로그램들의 공통적 제작 경향과 배경

휴먼 다큐멘터리의 존재이유와 좌표를 설정하려면 작금의 TV편성과 대표적 제작 경향들을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한국 TV 프로그램의 내용과 그 내용에 반응하는 시청자들의 대표적 특징은 선정성, 흥미 추구, 그리고 새로운 권력으로서의 연예인 우상 주의가 될 것이다.
우선 기존 권력 매개체로서의 뉴스는 연성화와 단순화로 특징 지워졌다. 뉴스 아이템의 연성화는 표현 방식의 발달에 힘입어 시청자가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고도 영상과 소리 모두 완벽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만큼만 다룬다. 사건의 배경과 의미는 잘라 내고 대신 그 노력을 충격적 영상편집, 발달된 CG, 단정적 멘트와 소리지르는 발성 연습에 기울인다.
뉴스 시청률까지 좌우하는 드라마는 연성화뿐 아니라 자극성과 감각성을 더 보탠다. 주인공의 직업은 여류 극작가들의 한계인지, 광고, 디자이너, 방송인들이 너무 많이 등장하며, 남녀관계는 비윤리 비현실적으로 서로 꼬여서 아침이나 저녁이나 가족 시간대마저 무시한 결과로 시민 단체의 항의를 자주 받고 있으나 정작 시청률은 오히려 높다. 남자 배우는 코믹을 표방한 우스갯짓으로, 여자 배우는 예쁨을 표방한 섹시함으로 연기력과 무관하게 드라마가 끝나기도 전에 관련 CF에서 수입을 올리게 되고 담당 PD마저 중심 잡기보다 그런 배우를 키우거나 섭외를 잘하면 능력 있는 PD라고 인정받게 되었다. 드라마 삽입곡도 감각적 카메라워킹 배경에 자주 틀어 주기만 하면 음반 판매량에 직결되므로 이제 "뜨는 PD"는 별도의 시장에서 호가되고 있다. 따라서 휴먼 다큐멘터리와 성향이 비슷한 단막극은 PD 작가 출연자 모두 아무리 작품성과 예술성 추구에 애를 써도 "뜨지" 못한다.
버라이어티 쇼는 더욱 심각하다. 출연 연예인들은 매니저에 의해 만들어진 (HOT, 젝스키스, SES) 경우들이 돈을 벌뿐 아니라 특이한 사실은 가창 실력은 거의 중요하지 않다는 시장분석이다. 리얼리티와 무관한 출연자들이 역시 리얼리티와 무관하게 우리 청소년들의 희망과 좌절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음악 프로그램인데도 음악은 녹음테잎으로 들려준다. 현란한 춤, 헤드폰과 색안경, 이유 없는 스모그, 문법을 무시한 카메라 운영, 길들여진 방청객 교성이 프로그램 구성 요소들이다. 토크는 매일 보다시피 연예인 신변잡기로 편하게 채울 수 있으므로, 연예인 초빙 전담 작가를 따로 파견하고 있다. 즉 내용구성과 무관하게 "누가 나오냐?" 만 따지는데 PD나 시청자나 입장은 마찬가지이다. 20여년전 황정태, 진필홍, 이재휘PD들이 생연주를 연습시키고 콩트를 도입하며 무용수들과 안무를 구성하던 노력들이 새삼 기억된다.
방송의 오락 기능은 매우 큰 역할이긴 하나 앞으로 이 나라의 기둥이 될 10대들이 연예인을 새로운 권력자로 인식하는 신경향이 너무 만연하기 때문에 방송의 사회적 기능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리얼리즘과 휴머니즘의 추구는 휴먼 다큐멘터리보다 드라마와 쇼 PD들이 더 깊이 인식해야 할지도 모른다. 왜? 접촉도와 영향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대표적 예로 '직업의 세계'를 연출하는 김병민PD의 심각한 걱정거리를 들고자 한다. "직업으로서의 쇼프로 백댄서를 다뤄 달라는 청소년 요청이 쇄도했다. 직업의 귀천과 무관하게 물어 보았다. 직업이라면 백댄서를 몇 살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스물 다섯이 넘으면 못하겠지요, 해서 그러면 그것이 직업의 종류가 되겠느냐고 했더니, 그 후에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
휴먼 다큐멘터리 역시 시대 조류의 영향을 받고 있다. 아이템의 선정성과 표현 방식의 다기화(多岐化)이다.

(3) TV는 사람 매체이고 휴먼 다큐멘터리의 생명은 리얼리티

TV는 사람매체이다. 비록 제도나 기계를 다룰 때에도 그 목적은 사람을 위해서이다. 또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영상적으로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과, 음성적으로 사람의 말, 각종 소리가 TV화면에 하나도 버릴 데 없는 자원이 된다. 기술적으로 표현하기에 적합하고 결과적으로 감동 주기에도 알맞은 매체이다. 그래서 휴먼 다큐멘터리는 시청률의 상대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이나 시청자나 모두 부끄럽지 않게 각자의 역할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휴먼 다큐멘터리의 생명은, 사람의 가치가 진실성과 신뢰도에 있듯이 리얼리티에 달려 있다. 가령 사람이 진실하면 옷맵시와 언어 표현에 크게 좌우되지 않듯이, 휴먼 다큐멘터리 메시지 자체에 리얼리티가 있다면 별도의 화려한 표현 양식은 오히려 군더더기가 될 것이다.
여러 학설과 이론들을 본고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휴먼 다큐멘터리 촬영분 안의 영상과 소리로만 진솔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가장 선명한 표현 양식이다. 특히 시청자 중의 일부는 여러 형태의 프로그램 포맷들을 대하다가도 담박한 리얼리티를 접하고 싶어서 다큐멘터리를 찾는 경우가 많다. 가령 잡다하게 차려진 부페음식을 먹다가 담박한 맛이 우러나는 곰탕을 찾게 되는 경우와 같다. 이때 그 곰탕에 잡고기를 넣거나 우유나 콩가루를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유나 콩가루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단순한 담박함을 원하는 입맛에 맞지 않으리라.
당연히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는 더 자주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그 감동은 가공의 감동이요 현실도피의 감동이다. 한편 이산가족이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와 닿는 감동의 깊이가 다른 것은, 그것이 다큐멘트이기 때문이며 더구나 인간사를 꾸밈없이 드러낸 휴먼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 아닐까? 책을 읽을 때에도 마찬가지 경우가 있다. 소설 <태백산맥>의 문학적인 감동도 대단했지만, 수기 <남부군>에서 빨치산 생활의 사실적 체험 기록은 더욱 큰 전율로 다가왔다. 헨렌 니어링 (Helen Nearing)이 책으로 펴낸 휴먼 다큐멘터리 '사랑 그리고 마무리' (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가 잔잔한 생활의 기록뿐임에도 불구하고 촐랑대지 않는 묵직한 감동을 주는 까닭은 첫장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표현 방식의 질박함에 있다. "여기 나오는 사람, 장소, 사건들은 저자가 지어낸 것이 아니다. 실제 사건, 지명, 살아 있거나 죽은 사람들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한 진실하게 기록한 것이다."
대중문화가 상업주의와 연결되면서 가속적으로 심해지는 선정성은 영화, 광고계 뿐 아니라 순수 예술 장르에 속한다는 연극계에서조차 부끄러울 정도이다.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과독점하고 있는 방송사의 휴먼 다큐멘터리만이라도 원초적 진실을 지킴으로써 그 생명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2) 휴먼 다큐멘터리 제작 현황

(1) 한국 휴먼 다큐멘터리의 흐름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방송개발원이 설립되고 '방송 개발'창간호 (1992.12)를 낼 때 특집이 '만든 이들이 말하는 다큐멘터리'였는데 그 내용의 절반이 휴먼 다큐멘터리에 관한 것이었다. 그만큼 비중이 있었다는 뜻이겠다.
강대영PD는 한국TV다큐멘터리 변천을 정리하면서 1960년대 영화감독들에 의해 TV다큐가 탄생되는바, 1968년 KBS의 <인간승리>가 최초의 휴먼 다큐멘터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1976년 TBC의 <인간만세> 시리즈 역시 인간승리와 같이 의지의 인간들을 주테마로 삼았고 1980년 직전 ENG가 도입되기 전까지 필름으로 찍었다. 따라서 현장음 채음이 부실한 까닭에 나레이션과 음악이 많이 동원되었다.
1985년 KBS의 <사람과 사람>에 이어 MBC의 <인간시대>가 선보임으로써 휴먼 다큐멘터리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특히 <사람과 사람>이 편성상 이동을 자주 하다가 1988년부터 <현장기록 요즘 사람들>로 변신 한데 비해 <인간시대>는 골든 타임인 저녁 8시대를 고수하면서 MBC교양제작국을 살찌우는 PD수급의 중심 축일뿐 아니라 능력 있는 작가 확보의 교두보 역할도 해냈다. 인물 선정과 주제도 1970년대보다 다양해져서 평범함과 비범함을 구분하지 않았으며 편성 분량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보통 사람들의 시대를 열었다고 할 것이다. 특히 <현장기록 요즘 사람들>은 당대 시대상황과 그에 대응하는 인물상들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사회성을 표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0분내에 세 아이템을 다루었는데, 확고부동의 위치를 점하던 <인간시대>도 빠른 스피드를 위해 여러 아이템을 취급하더니 1995년 간판을 내리고 말았다. 한편 상기 정규 프로그램들 외에도 간간이 특집 휴먼 다큐멘터리들이 방송되어 사회적으로 감동을 나누기도 했다.

(2) 최근 휴먼 다큐멘터리의 종류, 내용 및 여건 분석

휴먼 다큐멘터리의 제작동원 인력, 제작비의 의미, 그에 따른 시청률을 파악하기 위해 가능하면 프로그램을 시청한 뒤 제작진과 직접 인터뷰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을 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의 제한적 요인에 의해 조사의 한계가 있었다. 제작비는 직접제작비와 간접제작비가 방송사의 운영(인사·총무행정의 하청여부 등) 방식에 따라 다를 뿐 아니라 개별 인터뷰에서도 액수가 서로 상이한 경우가 많았다.
인력 역시 PD, AD, FD, 보조원 및 작가 등 현장 업무 분장에 큰 역할을 하는 일꾼들이 다양하나 PD와 AD를 합쳐 PD로만 표시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예전에 비해 FD나 작가의 역할이 매우 커진 게 사실이다. 또 시청률도 경우에 따라 들쭉날쭉일 수 있고 동시간 대 경쟁 프로들을 감안해야만 제대로 의미를 따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외주 프로그램의 경우 위의 몇 가지 수치가 잘못된다면 원하지 않던 오해를 살수도 있음을 조심스럽게 밝힌다. 이러한 여러 자료들은 현업 종사자로서 제작여건 분석에 필수적인 자료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관념적인 주장보다, 제작현장을 이해하면서 편성하는 것이 곧 '편성의 경영개념'이기 때문이다.
현재 방송중인 프로그램은 정통 휴먼 다큐멘터리가 아니더라도 진지하게 인간을 다룬 경우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 한다.

① <사람과 사람들> : 1998년 후반에 폐지. KBS1TV 수요일 22:15∼23:00
직접제작비 700만원, PD 8명, 시청률 10∼12% 그 동안 방송되었던 <사람과 사람>, <현장기록 요즘사람들>의 맥을 이었는데, 꾸밈이 없는 것은 전작들과 같고, 만남의 현장을 강조하면서 그 현장 여건에서 포착되는 사회적 진실들을 포착했다.

② <이것이 인생이다> : KBS 1TV 목요일 19:35∼20:30
직접제작비 2,100만원, PD 7명, 시청률 17%, 진행자(송지헌)가 현장에 찾아가기도 하고, 주인공이 스튜디오에 초대되며 대역을 활용한 재연 장면도 있다. 프로그램 안내 광고에서 "굴곡 많은 삶을 감동적으로 살아오신 따뜻한 이야기의 주인공" 이라고 주제를 나타냈는데, 재연 부분에서 사실과 정확히 부합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는 모니터 보고가 있다.

③ <영상기록 병원 24시> : KBS 2TV 수요일 23:10∼24:00
외주프로그램, 외주제작비 1,600만원, PD 9명, 시청률은 일요일 저녁에는 15%였으나, 현재 10% (동시간 대 SBS는 <김혜수의 플러스유> MBC는 <생방송 데이트 11>를 유지. 6mm 디지털 카메라로 PD가 직접 촬영하며 병이 쾌유되는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평균 3주이상 촬영기간을 보낸다. 특화된 휴먼 다큐멘터리로서 기획의 개가라고도 할 수 있으며 특히 98년 6월 이후 "어느 119구조 대원의 죽음"을 비롯, 손창호 타계, 성전환수술자, 장기 기증 릴레이 등 의 감동이 증명한다. 6mm 카메라에 적격이며 구성작가(김주영)가 제작 CP를 맡은 실험적 시스템이다.

④ <현장르포 제3지대> : KBS 2TV 월요일 23:05∼24:05
외주프로그램, 외주제작비 1,300만원, PD 7∼8명, 시청률 6∼9%(동시간대 MBC <21세기 위원회> SBS <추적-사건과 사람들>), 아이템 중의 절반 가량이 휴먼 다큐멘터리로서 가능하면 자주 보이지 않는 소외 지역을 찾되, 그 인간사회를 만드는 환경에 초점을 맞춘다. 6mm카메라로 찍는데 보통 2명이 출동하고 대개는 그중 1명이 카메라맨 출신이다. 즉 촬영을 더 정교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이 프로 역시 구성 작가인 박은희씨가 이동석PD와 함께 제작 CP를 맡고 있다.

⑤ <일요스페셜> : KBS 1TV 일요일 20:00∼21:00
직접제작비 2,000만원, PD 12명, 시청률 5∼20% (평균 10%), 아이템 중 일부가 휴먼 다큐멘터리인데, "성덕 바우만"은 골수 기증 확산운동에 기여한 (골수기증협회 5년간 1만명 회원이었는데 방송후 2만5천명으로 급증) 대표적 사회적 기능 프로가 됐다.

⑥ <다큐 이사람> : EBS 일요일 19:20∼20:00
직접제작비 450만원, PD 7명, 시청률은 EBS가 MSK상품을 사지 않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이 프로는 현재 방송되고 있는 정통적 휴먼 다큐멘터리물로서 유일하다. 특히 특별한 사람이나 유명인, 연예인이 아닌 평범한 이웃들의 진솔한 삶을 재연이나 별도 토크 없이 그대로 편집하고 있다. 1998년에 신설돼, 짧은 다큐연출 경력 때문에 촬영과 편집에서 노련함이 못 미치고 감정을 앞세운 나레이션이 큰 흠이긴 하나 PD들의 열의와 애정이 대단해서 급속히 안정돼 가고 있다.

⑦ <다큐멘터리 성공시대> : MBC 일요일 22:30∼23:25
직접제작비 2,600만원, PD 7명, 시청률 17%,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진행자(변창립) 설명도 많고 재연사이를 잇는 출연자 토크도 직접적이다. 주인공은 보통사람 수준이 조금 넘어 어느 정도 알려진 사람들이어서 그 사람의 성공 배경에 관심을 자아내기도 한다. 성공 비결을 TV모니터에서 재정리해 주는 등 보기 쉽게 포장한 형식이다. 단 출연자의 인터뷰 내용을 재연으로 확인하는 구성이어서 작위적인 느낌을 완전히 없애기는 힘들다는 반응이 있다.

⑧ <다큐스페셜> : MBC 목요일 23:00∼23:50
직접제작비 1,000만원, PD 12명, 시청률 8% <일요스페셜>처럼 일부가 휴먼 다큐멘터리이다. 신설된지 1년이고 "10·26의 진상을 밝힌다" 가 큰 반응을 얻었다.

⑨ <스타다큐> : MBC 월요일 19:30∼20:25
직접제작비 1,200만원, PD 5명, 시청률 22%, 대상인물이 연예인으로 특화 되어 있고 장르는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원 타이틀은 <김국진의 스타다큐>였는데 바뀌었다. 청소년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일상생활과 연예정보가 주 내용이다.

⑩ <박상원의 아름다운 TV얼굴> : MBC 화요일 24:10∼01:00
직접제작비 2,500만원, PD 6명, 시청률 12%, "셀프카메라" "스타 모놀로그" 등 4코너를 진행(박상원) 하는데 ENG 촬영은 매우 현란하다. <아름다운 TV얼굴>이 무엇을 말하는지 조금 낯선데 각자 성실하게 사는 주인공들을 뜻한다고 한다.


3) 변화시대 휴먼 다큐멘터리 제작의 제 문제

(1) 소재 찾기의 한계

촬영 대상인물을 발굴해서 지속적으로 정규 프로를 만들어낼수 없다는 점이 전술한 주옥같은 휴먼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폐지 이유이다. 따라서 소재의 한계에 부닥칠 때 포맷의 변형이라도 더욱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 방송사 내부 횡적 종적 부서 조직들의 아이템 교환 내지 공유를 통한 네트워크 시스템이 안돼 있고, 소재은행 같은 공동 운영 제도가 마비되어 있음으로써 PD나 작가의 개인 능력의 용량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가장 강력한 정보원이자 동시에 검증의 대상인 신문 잡지를 이용하게 된다.
그 결과로 방송사마다의 소재 특화가 안될뿐더러 심지어는 같은 방송사 내의 보도국, TV제작국, 라디오국이 따로 취재원에 접근함으로써 "어제 왔다 가시고는 왜 또 오세요"하는 소리를 듣지만 시스템이 안돼 있기 때문에 못들은체 하고 또 찍는다.
더구나 신문 잡지에서 찾은 인물을 직접 만나보면 절반 이상이 진실과 다르다는 경험들은 제작PD면 누구나 겪었을 것이다.

(2) 연출의 한계와 조작의 문제

다큐멘터리 제작에 있어서 연출의 한계 논의는 줄곧 화두가 되어 왔기 때문에 본고에서 장황하게 언급할 수는 없다.
강대영PD는 다큐멘터리 제작의 원조이자 동지관계인 로버트 플레허티(Robert Flaherty)와 존 그리어슨 (John Grierson)의 견해를 대비해서 인용했다. "플레허티의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에서 에스키모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던 것은 PD가 나누크가족과 2년 넘게 공동 생활을 하면서 결국 연기자가 되도록 유도했다는 비판에 대해 플레허트는 '다큐멘터리스트와 취재대상이 서로 의논해 가며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 바로 다큐멘터리' 라고 주장했다. 한편 그리어슨은 '살아 있는 자연 발생적 이야기가 훨씬 큰 효과를 낸다' 고 하면서 주제 의식을 강조했다". 이러한 1920년대 고전적 논의가 아니더라도 1993년 NHK 민방 프로그램 윤리위원회 역시 "방송이라는 특별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일탈을 해도 용서된다는 사고방식과 교만을 버려야 한다" 면서 연출의 한계를 극소화했다.
한편, 버섯, 게, 패류 등 일련의 수작 자연 다큐멘터리를 빚어낸 윤동혁PD는 "표현을 전달하기 위한 연출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자신의 제작방식을 솔직히 밝히면서 "어떤 기자가 BBC나 NHK에선 세트촬영 사실을 꼭 표기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자막을 본적이 없다"고 기자 출신답게 정면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공통적 견해는 조작의 유혹만은 단호히 배격한다는데서 일치한다.
디지털 편집기의 발달은 조작을 유혹할 수 있다. 특히 권력자(거의 모든 독재자들 특히 히틀러를 비롯 김일성에 이르기까지)들은 영상을 조작해서 대중조작에 악용했다. 당장 막대한 임팩트를 주고 있는 CF에서의 디지털 편집 조작은 각종 동물들과 유아의 동작을 원하는 대로 합성해 내고 있는데 초기에는 산뜻했었지만 이젠 그 효과가 반감되면서 질박한 리얼리티에의 회귀를 바라는 반응들이 나타나고 있다. 김명준 감독은 '뉴미디어시대의 다큐멘터리'에서 디지털 비디오 비선형 편집시스템의 발달이 다큐멘터리의 제작철학 약화작용과 더불어 표현의 발전을 재촉할 것을 동시에 예측하고 있다.
아울러 프로그램 소비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배려가 새로운 조작을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즉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음성변조나 화면지우기 등을 자주 하고 있는데, 이럴 때 제작자는 꼭 필요한 대목을 끼워 넣거나 조작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 "있을 수 있는 상황이고 구성의 맥을 잇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이런 유혹은 이미 인쇄 매체에서 익명이나 가명의 인터뷰를 싣거나 남의 이름을 빌릴 때 기자 자신이 스스로 작문을 감행해 온 경우들과 같다.

(3) 장르변화 그리고 득(得)과 실(失)

표현방식의 다양성 논의는 전술한 바와 같이 항상 필요한 것이며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정통성 여부 논의에서 지금까지 거론한 현장PD나 학자들이 경력 25년 안팎의 중견 및 대가들이라면 경력 10년 내외의 두 소장파 PD의 의견을 경청하고자 한다. 편성관련업무를 수행하는 한정석PD는 "지나친 시청률 경쟁은 편성에서 다큐의 수량적 감소뿐 아니라 질적변화를 초래, 정통다큐의 퇴조 및 시사물의 범람 현상이 우려된다" 면서 영화작가 고다르(Jean Godard)가 "순수다큐는 성숙한 지적토향과 문화역량이 있는 사회에서만 개화한다"는 말을 인용했다. 특히 그는 표현방식의 정통성 고수를 강조하면서 "첨단 그래픽의 활용도 다큐의 흥미를 끌지는 몰라도 참된 가치를 높이지는 못한다"고 단언하였다.
반면에 송희일PD는 "다큐장르 논의에 매달리는 이유는 그 우월성을 전제로 하는 것 같다. 심지어는 장르간의 사회적 순위를 매겨 사회적으로 더 가치가 있다거나 하는 논의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의 논문의 대부분은 원용진교수의 별도 논문을 답습한 것으로서 원교수의 "다큐의 작가주의적 색깔론 필요" 논의를 뒷받침하고 있다.
아뭏튼 휴먼 다큐멘터리의 장르 변화는 크게 나누어 MC나 리포터의 등장, 재연도입, 직접적 토크방식 채택으로 대별될 수 있겠다. 앞에서 분석한 KBS의 <이것이 인생이다>와 MBC의 <다큐멘터리 성공시대>, <스타다큐>, <박상원의 아름다운 TV얼굴>등이 그러한 예이다.
결론적으로 그 배경은 앞의 자료에서 드러나듯 순수 다큐멘터리에 비해 시청률 향상, 제작인력 절약에 기인하며, 직접제작비는 오히려 더 많이 들지만 한편 간접제작비를 감안해야 할 것이다.
김학천교수는 특히 재연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크게 우려했다. "시청자에 따라서 해석력 수용력이 못 미칠 경우 사실과 재연과 픽션을 구분 없이 받아들인다. 특히 방송의 독점권은 스스로 골라 보는 비디오와 다르다는데에 유의해야 한다"

(4) 소재, 대상의 특화와 일인 제작 시스템 문제

비디오 저널리스트 등장의 획기적 의미는 뒤에서도 대책으로 제시하겠지만, 특히 아이템의 특화와 잘 부합되어 새로운 소재주의에 불을 붙인 셈이 되었다. <영상기록 병원24시>와 <현장르포 제3지대>의 예에서도 보고 있다.
일인 제작 방식의 필요성과 별도로, 문제점으로써 접근한다면 김명준감독의 지적처럼 "노동시장에의 충격은 차치하고라도, 노동역량의 분산과 조직작업이 획득할 협의와 검증과정 결여" 가 우려된다고 할 것이다. 즉 소재 상업주의에 대한 집착뿐 아니라 급작스럽게 발달한 테크놀로지가 준비 안된 다큐제작 경험 및 유치한 철학과 결합하여 기형아를 낳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4) 휴먼 다큐멘터리의 대안 및 개선방안

(1) 편성 경영진의 책임

우선 명분이 있고 방송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인데 시청률이 걱정된다는 프로그램의 경우, 편성 경영진의 고민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왕 하기로 결정한 것, 그렇다면 고정 시간대를 지켜 주어야 하지 않을까? 전술하였듯이 <사람과 사람>과 <인간시대>의 성패 결과는 편성의지에 따라 갈라지지 않았던가? 그 비슷한 예로 KBS의 <문화가산책>도 금→토→일요일 등 수시로 이사 다녀서 주소지를 못 찾아 편지 배달이 안되는 꼴을 맞더니 문닫아 버리고 말았다 (지금 갑자기 4배의 노력을 들여 '문화탐험 오늘의 현장'으로 부활시켰지만).
아울러 흔히 "재미있느냐?"를 편성의 잣대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그 "재미"란 것이 꼭 가벼운 오락에만 있는 것인가? 말하자면 "관심"(Interest)을 유발하여 시청 동기부여를 한다면 단순 재미보다 금상첨화가 아닐까? 리얼리티는 그 자체가 관심의 대상일뿐 아니라 추구 과정도 흥미를 자아낼 수 있음을 편성철학으로 삼아야 한다. 그 예로 <아우성>의 구성애씨는 그 인간이 갖추고 있는 리얼리티 덕분에, 또 메시지 전달 방법의 리얼리티 덕분에 수많은 교수, 심리학자, 의사들이 남의 다리 긁는 얘기만 하고 있을 때에 폭발적 감동을 주었다.
앞으로 공중파 방송의 외주 의무 비율이 30% 가량으로 확대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자회사 비율과의 상관관계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어디서 제작했든 우리 채널로 나가는 우리 프로"라는 개념이 정착되어야 한다. 진정 그래야만 편안하고 객관적 계약 개념에서 출발, 단순 가격 출혈 경쟁과 충성도 경쟁을 극복하고 작품 완성도 경쟁사회가 가능할 것이다. 특히 휴먼 다큐멘터리는 외주제작사가 가장 할 만한 제작여건(스튜디오 시스템 불필요, 소재의 다양화)을 갖춘 장르이다.


(2) 제작진 책임

표현방식의 다양성은 추구하되, 기본적으로 리얼리티는 명분이자 동시에 상품이다. 제3공화국 시대에 발아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오랜 군사정권하에서 권력의 프로파간다(propaganda)에 이용돼 오다가 이제 우리에게 맡겨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템 기획에선 우선 신문 잡지를 보더라도 꼭 확인할 것, 사건이나 상황만 좇지 말고 그 뒤의 '사람'을 확인하고 살릴 것, 진실하고 신뢰가 깔린 인간관계가 또 다른 인간을 만나게 한다는 확신을 가질 것 등이 전제돼야 한다. (내 경우, 중요한 작품의 단초와 작품질은 진실한 '사람'과의 만남에서 담보되었다) 취재 대상에 따라 성공한 인물이나 연예인등에선 도피, 가공의 감동이 있고, 불우한 사람들에선 동정의 감동이 있을 수 있으나, 그 굴곡 심한 시선들이 내 진정한 이웃의 눈높이로 맞춰져서 우리 모두의 존재의 보람으로 나누어져야 한다.
기획에서부터 종합편집까지 일관된 컨셉에 따른 표현방식이 창출되어야 한다. 그 훈련방법의 하나를 제시하고자 한다. 어떤 아이템을 선정할 때 '무엇'(What)을 택했느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왜'(Why)택했느냐를 항상 자문해야 한다. 왜 나는 수달을 택했나? 왜 나는 성문제를 다루려 하는가? 그 의문에 명확히 답할 수 있어야, 그렇다면 '어떻게'(How) 제작 진행과정을 밟아야 효과적인가를 알게 된다.
위와 같은 자기 철학이 정립됨으로써, 가령 촬영은 안정된 그림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현장을 파고들 것인가? 편집은 특수 효과들을 쓸것인가, 담백하게 갈 것인가? 대본은 미사여구를 다듬을 것인가, 말 수를 줄이고 메시지 암시만 할 것인가? 나레이터는 기름진 성우를 쓸것인가, 투박하지만 취재자가 직접 할 것인가 등등이 기획정신에 따라 결정되어, "억지로 꾸며지지 않았지만 일관되게 기획된" 작품이 만들어지도록 해야한다.
영원한 과제인 소재 찾기를 위해서는 사내 외를 막론하고 네트워크 시스템과 소재은행을 운영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시민단체나 주부들의 고급 아이디어들을 활용, 제공받을 수도 있겠다.



(3) 현업인의 재교육과 직업의식 교육

산업발전에 따라 방송직종도 세분화될 것이라고들 했었지만, 본 연구자는 통합화 될 것이라고 믿어 왔다. 간략히 말해 인건비의 한계, 기자재의 발달, 소재의 개성화 그리고 꾸밈보다 현실성을 선호하는 신세대의 요구가 직접 경험의욕과 부합되기 때문이다. 비디오 저널리스트는 그 상징적 예이다.
지금까지의 직종이 무엇이었냐는 묻지 않아도 좋다. 지금까진 작가는 24시간 PD와 붙어있어도 편집을 할 수 없었고, PD가 마이크를 들려면 어색해 했으며, 카메라맨은 큰 카메라를 권력처럼 생각하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 창의력, 구성력, 표현력만 있으면 혼자 해낼 수 있게 됐다.
특히 휴먼 다큐멘터리는 일인제작에 유리한 장르이다. 아마 평범한 엄마가 자기 아이의 성장과정을 가끔씩만 찍어 둔다면 일정기간후 그만큼 리얼한 선물이 없을 것이다.
방송사 안팎의 인력구조 및 시장 재편이 일어날 것이고 일어나야 한다(현재는 노조의 반대가 있다는 뜻이다). 특히 제작자의 직업의식 교육은 끊임없이 절실하다.
이 나라에 지식 기술자가 부족해서 이런 국가적 어려움을 겪는게 아니지 않는가? 리얼리티와 철학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우선 사회적 공기(空器)인 전파를 내가 국민을 위해 빌려쓴다는 책임의식이 바닥에 깔려야 한다. 그리고 PD는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 좋은 편집 기술자이기 이전에 제발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지금처럼 일반 시청자들의 전화를 그렇게 거만하게 받아서야 어디서 진정한 휴먼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겠는가?
최근 소위 언론고시라 하여 일류대학 출신자들 위주로 신입사원을 뽑고 그것을 자랑삼는 방송인들이 많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 방송은 머리보다 가슴을, 지식보다 지성을, 그리고 고호봉의 완장의식보다 리얼리티에 천착하는 장인의식을 가진 사람을 갈구하고 있다.
한편, 현실적으로 다매체 다채널 시대의 마케팅 개념이 제작진에게 절실하다. 제작진은 모두 직접관리비외에 일반관리비 개념을 훈련받아야 한다. (케이블 방송이나 프로덕션사의 경우를 참고) 특히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를 위한 국제표준 제품을 확보해야 한다. 그 동안 휴먼 다큐멘터리의 수출이나 출품할 경우가 있을 때마다, 대본 및 취재자료, 클린테이프, 음악효과 분리 등이 준비되지 않아 애를 먹어 왔다.

(4) 다매체 다채널시대 시청자의 몫

김기태는 그 동안의 "시청자"나 "수용자"라기 보다, 이제 다매체 다채널 시대엔 "이용자"나 "가입자"라는 용어로 바꾸어야할만큼 수용자관이 급변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렇다. 일방적 송출시대로부터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시대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논의는 휴먼 다큐멘터리에만 해당하지는 않는 것은 물론이다.
그 동안 시청자 운동은, 우선 방송매체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시작하여, 방송 모니터 운동으로 발전하기도 하는 한편, 시민운동의 일환으로 방송 구조개선을 지향하는 캠페인으로 다양화하기도 하더니, 이제 소비자 보호 개념에서 시청자운동을 전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운동은 제작 송출자 입장에서도 매우 고마운 일이다. 어떤 질책의 경우 당장은 가슴 아픈 지적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방송사에서 용역비를 대주며 부탁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실천적으로 시청자의 방송참여는 제작자에게도 고마운 수혈활동이 될 수 있다. 요구, 격려, 질책뿐 아니라 편성의 아이디어, 또 제작상의 출연참여, 내용참여 등으로 협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자재 활용의 용이성에 힘입어 완제품으로 제작에 동참할 수도 있고 종합편집 부문만 PD와 협업할수도 있다. 그래야만 단순한 거마비 지출로 요식 보고행위를 마치고 손을 씻는 구습을 극복할 수 있다(학자들을 동원한 각종 위원회가 지금도 가끔 그러하듯).
끝으로 매체교육이 절실하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특히 휴먼 다큐멘터리 제작진으로서는 "기다렸다가 골라서 보는 프로"로 선택될 수 있어서 좋고, 편성책임자에게도 명분과 기준을 제공할 수 있어서 좋다. 리모콘 남용과 다채널 시대엔 더욱 절실하다. 시청자 가족 입장에서도 당연히 필요한 교육이다. 입시일변도 교육이 유난히 극성스러운 우리 가정에서 학부모가 학생들과 TV시청문제로 싸우는 수고를 덜어 주어야 한다. 가령 일주일에 한 번쯤 엄마와 자녀가 편성표를 보며 각자 볼 것을 상의한다면, 쓸데없는 신경전도 없을 것이요 부산물로 TV가 바보상자가 아니라 화제를 제공하는 얘깃거리 상자가 될 것이다. 더구나 하루 일과 중 서너 시간을 앗아가는 한 매체를 여하히 유익하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는 이미 학교 커리큘럼으로 채택되어야 할만큼 중요한 사안이라고 판단된다. 특히 오늘날의 TV는 청소년층에게는 정서적 영향뿐 아니라 직업관 가치관까지 영향을 미치고, 중 노년층에게는 절대적인 생활동반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람'이야기를 하였다. TV는 사람매체이고 다큐멘터리는 리얼리티를 추구하며 휴먼 다큐멘터리는 리얼리즘과 휴머니즘의 만남이다. 각박한 세태, 만연된 비리, 급변하는 물질 만능화시대 일수록 진정한 사람이 그립다. 그리고 그 사람은 우리 눈만 맑게 씻는다면 이곳 저곳에 존재한다. 거기에 휴먼 다큐멘터리의 생명성이 있다.


4. 한국 변형 다큐멘터리의 현황

1) 문제제기

다큐멘터리가 죽어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해 정통 다큐멘터리가 시들고 있다. 최근 일 이년 사이에 공중파 방송 3사가 제작 방송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프로그램의 제작 편수에서도 그렇고 편성에서의 대우도 그렇고 시청률 또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대신 소위 변형 다큐멘터리가 선을 보이기가 무섭게 강인한 생명력을 보이고 있다.
이유는 자명하다. 변종이 정통보다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면 변종이 더 재미있고 만들기도 쉽다. 재미있다는 것은 볼 만하게 만든다는 뜻이고 그러면서도 만들기 쉽다는 것은 소재가 더 풍부하고 구성하기가 더 편하다는 제작 상의 용이함을 말한다.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있겠지만 변형 다큐멘터리는 일단 안정된 포맷만 정하면 그 후의 작업은 훨씬 수월하다. 물론 포맷작업엔 많은 시행착오가 따르긴 하겠지만. 그에 비해 정통 다큐멘터리는 매번 특집을 만드는 품을 요구한다. 제작비, 제작기간 그리고 제작진의 인건비까지 따지면 생산성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시청률이라도 좋아야 할텐데 안타깝게도 사정은 그렇지도 못하다.
시청률 경쟁으로 치닫는 작금의 방송환경에서 정통 다큐멘터리가 가라앉고 변형 다큐멘터리가 떠오른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에서 비교적 보수적인 포맷을 고집하는 정통 다큐멘터리의 입지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2) 변형 다큐멘터리의 제작현황

다큐멘터리는 사실(fact)에 대한 기록이다. 영상과 음향을 통해 실제 있는 그 무엇(reality)을 기록하고 그 무엇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다 진실 되게 때로는 제작자의 의도에 맞게 보여주기 위해 음악과 내레이션을 첨가한 일종의 보고서다.
무엇을 기록하느냐에 따라 일반적으로 시사, 휴먼, 역사, 자연, 모험, 스포츠, 과학 다큐멘터리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언급하는 변형 또는 유사 다큐멘터리라는 용어는 사실(fact)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 전통적인 기법에서 벗어나 재연이나 스튜디오 구성 부분이 많이 삽입된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굳이 다큐멘터리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는 이유는 다루는 주제나 소재가 허구(fiction)가 아닌 사실(fact)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최근 이 삼 년 안에 방송된 것 중에 변형 다큐멘터리로 분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살펴보자. 우선 시사 고발 프로그램으로는 <추적 60분>, <그것이 알고 싶다>, <시사 매거진 2580>, <추적 사건과 사람들>, <제3취재본부>를 변형 다큐멘터리로 분류할 수 있다.
둘째, 재연 프로그램으로는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 <경찰청 사람들>, <긴급구조 119>, <토요 미스터리 극장>, <다큐 사건 파일>, <공개수배 24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는 단순한 상황재연을 넘어서 대사 위주의 드라마 부분이 주를 이루는 <경찰청 사람들>은 다큐멘터리로 분류하기에는 억지스런 구석이 있다. 다만 허구가 아닌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고 간간이 삽입된 현장취재 장면과 인터뷰, 그리고 상황을 설명하는 내레이션 덕분에 유사 다큐멘터리로 일단 분류해 보자.
셋째, 휴먼 다큐멘터리로는 <인간 시대>, <사람과 사람들>이 정통 다큐멘터리로 본다면 재연이 많이 삽입된 <다큐멘터리 성공시대>, <이것이 인생이다>, <스타 다큐>와 같은 프로그램을 변형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그밖에 <역사 스페셜>, <미스터리 추적>, <체험 삶의 현장>, <도전 지구탐험대> 등도 넓게 보면 변형 다큐멘터리에 포함시킬 수 있다.
위에 언급한 프로그램을 모두 변형 다큐멘터리의 범주에 넣게되면 소위 교양 장르로 분류되는 프로그램 중 상당수가 포함되게 된다.
그에 비해 정통 또는 순수 다큐멘터리로는 KBS의 <일요 스페셜>, <제 3 지대>, <네트워크 기획>, <세계는 지금>, 그리고 MBC의 <다큐 스페셜>만이 정규 프로그램으로 방송되고 있다. 여기에다 계기특집이나 창사특집 다큐멘터리가 간간이 제작되고 있는 실정이다.
SBS는 일년에 서너 편 만드는 특집 다큐멘터리가 전부다. 98년에 자체 제작한 다큐멘터리는 8.15특집 <이용운 일가의 북한 탈출기(2부작)>,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한국의 패류"(2부작)>뿐이다. 그리고 디지털 조선일보와 공동 제작한 <히말라야의 사나이> 시리즈와 지역민방과 외부 프로덕션에서 만든 몇 편의 다큐멘터리가 밤 12시가 넘은 심야 시간대나 평일 한낮 시청사각지대에 편성 방송된 적이 있다.
이상과 같이 양적으로만 비교해도 최근 일 이년 사이 정통 다큐멘터리가 수그러들고 대신 소위 변형 다큐멘터리가 뚜렷하게 약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변형 다큐멘터리 중에서도 재연 프로그램이 수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3) 변형 다큐멘터리 확산의 배경

변형 다큐멘터리의 확산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한국 방송에 있어 다큐멘터리의 변천사를 간단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변형 다큐멘터리의 출현은 다큐멘터리의 발전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TV 다큐멘터리는 대부분이 뉴스기획 취재로 보도국에서 필름으로 제작되었고 그 편수도 미미한 실정이었다. 그러다가 70년대 말 ENG 카메라의 출현과 함께 제작의 활기를 띠게된다. 이렇게 해서 KBS는 <초분>, <석남사>, <월요기획-신라 천년의 신비 시리즈> 등 우리 고유의 풍속과 역사, 문화재와 관련된 수작들이 1980년대 초반에 빛을 보게 된다.
이처럼 다큐멘터리가 활기를 띠게된 바탕에는 NHK가 제작한 <실크로드>의 영향이 컸다. <실크로드>는 다큐멘터리도 정말 볼만하고 재미있다는 인상을 강력하게 남긴 것이다. 이후 KBS는 <한국탐구 시리즈>,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등 연속기획, 장기기획 프로그램에 인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다큐멘터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
KBS는 시사 다큐멘터리의 영역도 개척해 나간다. 83년에 첫선을 보인 <추적 60분>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PD들이 만드는 심층 취재 프로그램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추적 60분>은 TV 저널리즘을 정착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취재 PD가 직접 스튜디오에 출연, 리포트하는 일종의 변형된 포맷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후 다큐멘터리는 정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고 국내는 물론 해외 장기 취재를 요하는 다양한 기획들이 선을 보이면서 공영방송 KBS의 이미지를 이끌어왔다.
다큐멘터리 하면 KBS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킨 것은 MBC의 자연 다큐멘터리다. 자연 다큐멘터리 하면 동물의 왕국만 떠올리던 시절, MBC는 1984년 <한국 야생화의 사계>를 시작으로 <한국의 나비>, <한국의 물고기>같은 일연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시청자의 눈길을 잡기 시작했다. 보도제작국에서 시도하던 자연 다큐멘터리에 교양제작국도 발을 들여놓자 MBC는 그야말로 자연다큐멘터리의 왕국이 된다. <어미 새의 사랑>, <곤충의 사랑법>, <갯벌은 살아있다> 등 단순한 자연기록을 넘어서서 인간과의 관계를 심도 있게 그려나간 수작들이 많이 탄생했다.
그리고 1985년에는 다큐멘터리의 대중화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휴먼 다큐멘터리 <인간시대>가 막을 연다. <인간시대>를 시작으로 다큐멘터리에 자신감을 갖게된 MBC는 문화 다큐멘터리에도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한다. <명작의 고향>, <명화의 고향>, <명곡의 고향> 등 세계의 문학과 예술의 산실을 찾아가는 고향 시리즈와 <세계의 대학>, <세계의 교육-그 현장을 가다>등 교육관련 프로그램을 연속 기획 방송함으로써 MBC 특유의 다큐멘터리 전통을 쌓아나간다. 이로써 다큐멘터리는 MBC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제까지 정통 다큐멘터리의 대약진을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다큐멘터리와의 관계를 조명해 보기 위해서다. 역사적 관계를 살펴보면 왜 지금은 잘 나가던 정통 다큐멘터리가 고사할 위기에 처해 있고 변형 다큐멘터리가 득세하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방송사에 있어 다큐멘터리의 전성기는 아마도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약 10년이 아닌가 싶다. 제작 편수나 프로그램의 완성도 그리고 시청률에 있어서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1980년대 중반은 정치적으로는 5공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갔고 국민들도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올림픽 유치라는 고양된 분위기에 들떠 있던 시기다.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을 이룩하자 국민들은 선진국 진입을 열망하게 되고 나아가 문화민족이라는 자부심을 키워야 하는 시대적 요구가 팽배하기 시작한다. 질풍 노도와 같은 국민적 역량을 집결하는데 가장 영향력 있는 대중 매체인 텔레비전이 나서게 된다. TV 프로그램이 한민족의 역사적 문화적 발전 동인을 반영하고 나아가 새롭게 창조해 나가는데 앞장을 서게된 것이다. 당연히 국민 계도적인 장르인 다큐멘터리가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외국의 다큐멘터리만 볼게 아니라 우리 자연에 대한 우리 식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구가 싹트고,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고, 세계 속의 한국을 부각하는 다큐멘터리가 넘치도록 제작되기 시작했다. 각 방송사는 지금 돌이켜 보면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 부으며 다큐멘터리를 지원했다. 국민들도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되자 문화적 취향도 고급화하는 경향을 띠게되었고 문화 예술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고정 시청자까지 생기게 되었다.
91년에 탄생한 민방 SBS도 "그것이 알고 싶다"를 필두로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함으로써 다큐멘터리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다.
시사 다큐멘터리는 <추적 60분>, <PD 수첩>,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이 보다 충격적인 소재를 찾아 취재 경쟁을 벌이고, 휴먼 다큐멘터리는 <사람과 사람들>, <인간 시대>, <푸른 일기>는 보다 감동적이고 극적인 인생을 찾아 나서고, 해외기획 <양자강>,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 <아마존 대탐사>는 지구가 좁다할 정도로 오지를 누비고 다녔다.
이제 인간사와 관련된다면 하수도 구멍까지 찾아 들어가고, 색다른 삶이라 해서 외딴 섬마을 사람까지 다 훑어간다. 신기한 풍물을 찾아 아프리카, 남미, 시베리아 그리고 북극, 남극, 에베레스트산, 극지까지 카메라로 뒤지다 보니 이제 더 갈 곳이 없을 지경이다.
EBS까지 가담한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 경쟁은 방송사의 자존심이 걸릴 정도로 치열해졌다. 그 와중에 자연 다큐멘터리의 순수성을 의심케 하는 소위 수달소동도 터지고 만다.
어찌됐건 근 10년간 다큐멘터리는 좋은 시절을 보냈다. 반면에 그 많던 소재는 어느새 고갈되고 제작기법도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다. 만드는 사람 쪽에선 일종의 자폐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소재주의에 안주하던 일부 다큐멘터리는 더 이상 설 땅을 잃고 말았다. 시청자 쪽에선 다큐멘터리의 전성기가 남긴 양적 포만감에 질리고 말았다.
그 동안 다큐멘터리를 통해 웬만큼 지적 즐거움을 충족시킨 시청자는 이제 색다른 즐거움을 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청자의 욕구를 눈치챈 방송쟁이들은 색다른 즐거움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공해 낸다. 그 키워드의 하나는 '재연'이고 또 하나는 '체험'이다. 1993년 MBC는 <경찰청 사람들>로 KBS는 <체험 삶의 현장>으로 다큐멘터리의 자폐 현상을 뚫고 나왔다.
이전에도 재연과 체험을 이용한 다큐멘터리는 있어 왔지만 이 기법을 본격적으로 활용한 것은 이 두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누가 원조인가가 아니다. 손님은 누가 더 맛있게 만드는가를 따질 뿐이다. 이렇게 이 두 프로그램은 기존의 소재를 가지고 가공과 포장을 달리하여 소비자를 찾아간 것이다. 어찌됐건 색다른 재미를 원하던 시청자의 입맛에 맞는 포맷을 개발한 것이다. 그러자 많은 모방 프로그램이 뒤를 따랐다. 변종의 약효가 순종보다 낫다는 게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울어 가던 정통 다큐멘터리가 나름대로 돌파구(돈과 시간을 투자해야만 가능하다)를 마련하기 전에 IMF가 터지고 만다.
1997년 말 IMF 한파가 닥치자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유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세상살이가 고달픈데 차분히 보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며 반추해야하는 다큐멘터리가 환영받을 리 없다. 그냥 별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그러면서도 현실의 시름을 잊을 수 있는 보기 편한 프로그램을 찾게 되는 건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루하루가 숨가쁘게 흘러간다. 이젠 모든 프로그램이 호흡도 짧아지고 논리도 거칠어진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빨리 밝혀야 한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표현은 감각적이어야 한다. 논리로 통합되기보다는 파편화해도 느낌으로 다가오는 걸 시청자는 원한다. 이제 모든 것이 해체되고 만다. 다큐멘터리도 그 해체의 길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이템 하나를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전개하는 것보다 짧은 서너 개의 아이템을 스피드하게 보여주는 포맷이 먹혀 들어간다. 시청자의 수용 태도가 변하자 그 변화를 비교적 발 빠르게 수용한 변형 다큐멘터리가 자연 호응을 받게된 것이다.

4) 변형 다큐멘터리의 포맷 분석

(1) 경찰청 사람들

<경찰청 사람들>은 실제 일어난 사건, 주로 범죄와 관련된 절도, 강도, 강간, 치정, 사기 사건 등을 재연을 통해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사건현장을 뛰는 강력계 형사나 일선 경찰관의 활약상에 포커스를 맞춘 듯 했다. 아마도 기획의도에는 범죄예방의 효과와 격무에 시달리는 경찰의 사기 진작과 활약상을 담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잘 뜯어보면 경찰의 수사과정보다는 범인들의 범죄행각이 자세히 그려지고 있다. 다시 말해 경찰보다는 범인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실제 상황을 취재하는 부분은 실종되고 범행과정의 재연이 주가 되게 된다. 문제는 이 재연부분이 더 재미있다는 점이다.
픽션이라면 엉성하기 짝이 없는 구석이 많지만 진짜 발생했던 사건이라는 프리미엄 때문에 대역배우의 세련되지 못한 연기와 실제 형사의 쑥스러운 재연이 그런 대로 받아들여지고 나아가 색다른 재미까지 주고 있다. 사실(Fact)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낯설음이 오히려 이 프로그램의 장점으로 수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생명력을 설명할 수 있는 또 한가지의 요소가 있다. 바로 사건 속에 인간이 용해되어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사건의 전말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에 연루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의 인간을 나름대로 밀도 있게 그려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루는 모든 사건이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인간적인 측면이 범죄수법을 자세하게 묘사해 모방범죄를 부추긴다는 비판 그리고 폭력과 섹스관련 소재의 선정성 논란을 버텨내게 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물론 제작하는 쪽에서는 공개수배를 통해 범인검거에 일조를 한다는 명분을 더 내세울지는 모르지만.
종합하면 경찰청 사람들은 담당 수사관의 상황 설명이 재연의 리얼리티를 확보해 주면서 상황 속의 인간을 그려나가는 극적 구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성공적인 결합이 바로 경찰청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KBS에서 만드는 <긴급구조 119>는 조난에 처한 인간을 그리기도 하지만 주로 구조대의 활약상만을 부각하다보니 금방 식상해지고 말았다.
SBS가 시도했던 <다큐 사건파일> 또한 사건의 재미만을 추구하다 인간을 놓친 격이다. 또한 표현방식이나 포맷 상에 있어 <경찰청 사람들>과 차별화 하는데 실패하여 모방 프로그램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KBS의 <공개수배 24시>는 범행재연과 현장취재의 적절한 배합에다 생방송이라는 긴박감이 가미되어 나름대로 프로그램의 독자성을 확보에 성공한 예라 할 수 있다.

(2) 체험 삶의 현장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다. 사실 그럴까? 아니다. 오히려 직업에 귀천이 있기에 이 프로그램은 성립한다. 막말로 귀티 나는 삶의 현장이 소개된 적이 없다. 소위 3D 업종이라 할 수 있는 일터에 유명인을 투입해야만 볼거리가 생긴다. 인기연예인, 스포츠인, 정치인, 지식인 등 저명인사를 주로 육체 노동을 요구하는 삶의 현장에서 하루동안 체험을 시킴으로써 시청자는 가학적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사실 '체험'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는 다른 방송사에서도 구체적으로 검토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결정적인 반대 이유는 지금 생각하면 일면 순진한 측면이 있다. 하루 동안의 체험으로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애환을 더듬어 본다는 게 너무 안이한 접근이고, 결국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호도하고 마는 게 아니냐하는 교양 PD의 결벽증이 작용했던 것이다. 너무 잘난 체 하다 좋은 포맷을 놓치고 만 꼴이다. 사실 하루동안의 체험으로 그들의 삶의 일부만 엿봐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동안 잘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무심했으니까.
<체험 삶의 현장>에 나오는 일터나 생활현장은 그 이전에도 휴먼 다큐멘터리나 생활 정보 프로그램에서 다루어 왔었다. 하지만 같은 소재라도 유명인사의 체험기라는 포장으로 또 다른 재미를 창출해낸 것이 바로 <체험 삶의 현장>이다. 그리고 출연자의 고통을 즐기는 가학적 재미에 그치지 않고 일당을 받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장치를 가미함으로써 이 프로그램은 삶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자존심도 살려주고 있다. 성공한 프로그램은 이래저래 뜯어보면 장점이 많기 마련이다.
<도전 지구 탐험대>는 <체험 삶의 현장>의 해외판이라 할 수 있다. 그 동안 자주 소개되었던 풍물 다큐멘터리가 도전이라는 체험 형식으로 변형된 것이다.
체험이라는 장치가 기존의 다큐멘터리보다 더 깊은 맛을 준 사례로는 MBC의 <에스키모와의 100일>을 들 수 있다. 이젠 PD도 체험의 현장에선 카메라 뒤에 숨을 필요가 없어졌다. 아니 노출되어야 다큐멘터리는 힘을 받는다. 체험자 본인이 제작자가 될 때 전달하는 느낌은 더 생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

어릴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 얘기는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런 재미를 TV프로그램에 도입한 게 바로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다. 어머니가 동네 마실 갔다 들은 이야기, 아버지가 장터에서 주어들은 이야기, 그 이야기가 동네 우물가 빨래터에서 부풀려지고 또다시 복덕방 장기판으로 퍼져나가 꼬리를 단 소문으로 나돌았던 이야기를 안방 텔레비전으로 옮겨놓았다. 사실 흉가, 저주, 괴담, 귀신에 관한 체험이나 들은 이야기, 웃지 못할 실수담 등 귀가 솔깃할만한 이야기는 늘 주변에 있어왔다. 그런 이야기를 단순히 재연으로만 옮기는 게 아니라 이야기의 주인공을 취재하고,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감으로써 이야기의 리얼리티를 확보해 나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재미는 어쩌면 역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체험자가 사실(FACT)이라고 주장하는 이야기와 과학적으로는 규명하기 힘든 현상(사실일리 없다)과의 괴리, 즉 불가사의한 사건에 대한 흥미가 이 프로그램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사실을 추구하는 다큐멘터리가 전설의 고향으로 순례를 떠나 재미를 건져내 온 꼴이다. 그러다 보니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미신을 조장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의 성공은 저녁 8시에서 밤 11시 이후로 방송시간을 옮긴 편성의 덕을 보았다. 옛날에 대한 향수라는 정서를 공유하는 40대 이상의 성인 층이 주 시청층을 이루는 심야시간대로 옮겨오면서 프로그램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역시 옛날 이야긴(?) 밤에 들어야 제 맛이 나는 모양이다.
SBS의 <토요 미스터리 극장>은 미스터리와 괴담 쪽으로 특화 하면서 다큐멘터리 요소를 벗어 던지고 아예 현대판 "전설의 고향"으로 떠나버렸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는 재연보다는 다큐멘터리식의 취재를 통해 신기한 사건, 사람들을 발굴 소개하는 스튜디오 진행 형식으로 가족시청 시간대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순간포착>은 아이템 자체도 흥미 있는 소재지만 같은 소재라도 어떻게 가공, 포장하느냐에 따라 맛깔이 달라진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우선 아이템의 접근법이 예능적이다. 정보성 보다는 재미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피사체를 담아내는 카메라 앵글, 성우의 멘트, 자막 삽입 등에서 기존 정보 프로그램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사실(fact)의 원재료를 그대로 드러내 흡인력이 떨어질 경우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감각일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소재의 감각적인 요리솜씨가 공허한 맛만을 남기지 않기 위해선 그 소재 원래의 맛, 바로 사실(fact)의 두께와 실재(reality)의 깊이가 살아 있어야 한다. 아무리 황당한 이야기라도 사실로 포착될 때만이 재미의 여운과 감동의 진폭도 기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4) 다큐멘터리 성공시대

대표적인 휴먼 다큐멘터리 <인간시대>가 막을 내리자 <사람과 사람들>만이 외롭게 남아 TV에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기더니 그나마 KBS가을 편성에 빠지고 말았다.
인간이란 예술이나 문학, 아니 세상만사의 영원한 주제이자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영원하고 무한한 만큼 인간을 정면으로 다루기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신 인간시대>로 휴먼 다큐멘터리의 재기를 노렸던 MBC는 시청률이라는 괴물에 또다시 물리고 만다. 안타깝게도 보통 사람들의 평범치 않는 인생살이에 사람들은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정말 휴먼 다큐멘터리가 설 땅은 없는 건가?
사실 다큐멘터리의 엘리트주의를 혁파한 것은 바로 <인간시대>였다. <인간시대> 이전에는 다큐멘터리는 소위 배운 사람, 문화적 의식이 높은 사람들이 주 시청자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만드는 사람 또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잘난 사람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이다. <인간시대>는 작은, 평범한, 초라한, 실패한, 외로운 사람, 누구든 간에 모든 인생은 나름대로 뜻깊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PD들 또한 하늘에서 땅으로, 사무실에서 시장으로, 말 그대로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감히 <인간시대>는 사람이 사람을 보는 눈을 넓혀준 TV의 작은 혁명이었다고 평가한다.
시간의 파괴력 앞에서는 <인간시대>도 어쩔 수 없어 근 10년의 장수를 누리고 세상 밖으로 떠났다. 그리고 틈틈이 부활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다가 새로 얼굴을 내민 것이 바로 <다큐멘터리 성공시대>다. 이번엔 <신 인간시대>와는 달리 새로운 감각으로 포장을 하여 내놓았다. 우선 <다큐멘터리 성공시대>의 차별화 전략을 살펴보자.
첫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보통사람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대상을 축소했다. 평범한 사람들로는 별 재미를 못 본 <신 인간시대>의 쓰라린 경험을 잊지 않았다.
둘째, 욕심을 줄였다. 남녀노소 모든 사람이 시청하길 바라기보다는 소위 타겟 오디언스인 성인층을 겨냥해 일요일 밤 11시대로 방송시간대를 찾아갔다. 주말의 드라마, 버라이어티, 시사고발, 영화 등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 빠져 있다가 마침내 자신을 돌아 볼만한 시간, 바로 일요일 밤 11시대에 성공한 인생이라는 카드를 끼어 넣은 것이다.
셋째, 포맷의 변화를 모색했다. 스튜디오 진행자가 성공한 주인공에 관해 주석을 다는 형식이다. 이미 <송지나의 취재파일, 세상 속으로>에서 시도한 바 있어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주인공이 보통사람일 경우엔 사족처럼 들릴 얘기도 성공한 사람의 경우에는 의미 있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스튜디오 진행자의 역할이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넷째, 구성이 명확하다. 한 인간의 총체적인 삶을 제한된 시간 안에 망라하기보다는 "성공비결"을 몇 가지로 압축 제시하는 구성을 택한 것이다. 성공한 사람이기에 나름대로 인생관으로 내세울만한 덕목은 꼭 있을 것이다. 그 덕목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과거의 인생 전환기를 재연으로 처리하여 일방적인 내레이션이 줄 수 있는 교훈적인 인상을 배제했다.
그리고 컴퓨터 화면의 돌출자막은 휴먼 다큐멘터리의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는 적절한 신세대 감각으로, 구성의 흐름을 유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성공비결"을 구성의 축으로 잡은 것이 바로 이 프로그램의 성공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IMF시대를 맞이하여 세상살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별로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한 사람들이 이제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성공비결을 잘난 놈이 하는 소리라고 외면할 오기를 부릴 때가 아니다. 그만큼 세상은 절박해졌다. 힘겨운 이웃을 보면서 공감하기에도 지쳐버렸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성공시대>는 시기적으로 성공한 기획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 하다.
사람 얘기지만 기구한 운명의 사람들만 소재로 택한 프로그램이 <이것이 인생>이다. 스튜디오에 주인공과 재연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은 연기자가 출연해 뒷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일종의 변형된 휴먼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스타 다큐>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스타들의 뒷 얘기를 재연과 인터뷰로 감각적으로 포장해 신세대의 입맛에 다가가고 있다. 반면에 <TV 명인전>은 외길을 걸어온 명인들을 비교적 정통적인 기법으로 따라가고 있어 역시 지루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워낙 편성 상 심야에 쳐 박혀 찾아주는 이가 별로 없기도 하지만.
이제까지 살펴본 대로 사람을 다루더라도 포맷상 변형된 다큐멘터리만이 먹혀들고 있다. 어찌 보면 인스턴트식의 준비된 감동과 포장된 정감만이 참을 줄 모르는 시청자를 찾아 나서고 있는 서글픈 형국이다.
점점 각박해지는 현실과 마주칠 때 우리는 때때로 <인간시대>에서 볼 수 있는 진한 눈물, 질퍽한 웃음, 찡한 감동을 그리워한다. 그 그리움도 이젠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감정의 사치인지도 모른다. 재주를 피지 않아도 사람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휴먼 다큐멘터리는 아마도 사람들이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의 시대에만 가능할 지 모르겠다. 그 날이 다시 오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5) 변형 다큐멘터리의 대안 및 개선방안

위에 언급한 변형 다큐멘터리의 예는 모두 성공한 프로그램들이다. 모두 다 다큐멘터리를 변형해서 성공했다고 보기에는 논리의 비약이 있을지 모른다. 다른 요소가 더 많이 작용했을 수도 있으니까. 분명한 건 다큐멘터리도 변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변화는 다큐멘터리의 정체성의 파괴과정이자 새로운 것의 끊임없는 생성과정을 의미한다.
이제 변형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의 정체성의 경계가 확장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변화를 수용해야지만 다큐멘터리도 그 표현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 변형 다큐멘터리를 다큐멘터리의 진화의 한 양태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단지 변종의 범람이 정통 다큐멘터리를 수장시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 본다.
첫째는 방송사가 정통 다큐멘터리 기획 자체를 포기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민방에선 벌써 그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통 다큐멘터리는 시간과 인력 제작비를 투자해야만 그 성과를 거둘 수 있는데 기획 자체를 줄이는 추세이다 보니 그 전망은 더욱 어둡기만 하다. 그 결과 다큐멘터리 문제작과 대형기획이 실종한다면 우리 방송의 레퍼토리는 분명 빈약해 보일 것이다.
둘째, 이런 추세라면 정통 다큐멘터리 고유의 장점을 드러낼 기회조차 갖지 못할지 모른다. 다시 말해 변형된 포맷에 치중하다 보면 다큐멘터리의 내재적인 힘을 개발하는 노력을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다.
셋째, 정통 다큐멘터리 특히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에 필요한 노하우의 단절을 초래할 수 있다. 10년간 공들여 가다듬은 제작 노하우는 우리 방송의 자산이다. 살찌우지 못할 망정 사장시켜서는 안된다.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는 정통이 변종보다 확실히 앞선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가 아닌가.
넷째, 재연프로그램이 범람하다보면 다큐멘터리 정신이 실종하고 만다. 사실이라는 선입감을 이용해 사실을 흥미 위주로 재구성하다 보면 사실을 왜곡하는 결과에 이르기 쉽다. 실제로 <경찰청 사람들>과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이런 류의 왜곡이나 허구적 구성이 적지 않다.
다섯째, 순전히 주관적인 견해지만 정통 다큐멘터리가 실종됨으로써 방송의 힘이 약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드라마가 시청률을 선도한다. 하지만 영향력 면에서는 다큐멘터리가 앞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다큐멘터리는 가장 힘있는 방송 장르다. 변형 다큐멘터리로는 소화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내재돼 있다.
아직 정통 다큐멘터리의 조종은 울리지 않았다. 무협소설이나 영화에서 마주치는 주인공은 언제나 장검을 지닌다. 그의 무기는 오로지 그것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무림을 평정한다. 수많은 무림의 강호들은 별 요상한 무기와 비술로 무장해도 결국은 장검 하나로 버티는 주인공을 이기지 못한다. 물론 그런 조연들이 있기에 주연은 더욱 빛난다. 분명한 건 정통은 외로워도 언젠가는 진짜 힘을 발휘한다. 정통 다큐멘터리가 살아나야 한다는 바램에서 사족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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