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은 발명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되었지만 문명의 발전과는 거리가 먼 발명도 있다.
살아생전 영웅으로 추앙받았지만 죽어서 인류에게 큰 피해를 입힌 발명가로 추락한 한 남자가 있다.
1886년 독일 칼벤츠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휘발유자동차, 이후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이 앞다투어 휘발유자동차를 개발해 20세기 초에 휘발유자동차는 급격히 대중화되었다.
그런데 경사진 길을 오르지 못했던 당시의 자동차는 완만한 경사에도 밀려 사고나기 일쑤였다. 또 엔진이 멈추거나 폭발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던 이유는 노킹현상 때문이다.
노킹현상은 연료가 비정상적으로 연소될때 엔진이 과열되면서 망치로 두드리는듯한 폭발음이 나는 현상이다. 노킹현상이 발생하면 엄청난 소음을 일으키고, 엔진출력을 저하시키며, 노킹현상이 계속될경우 엔진은 큰 손상을 입어 결국 폭발하게 된다. 노킹현상은 질이 좋지 않은 연료를 사용할때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20세기 초 정제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 매우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에 자동차 생산업체는 노킹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지만 해결책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 자동차 제조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사의 찰스 케터링 역시 조수와 함께 노킹문제를 놓고 연구를 거듭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노킹현상에 유난히 열의를 보였던 찰스 케터링의 조수 토머스 미즐리, 그는 코넬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제너럴 모터스에 기술자로 입사해 자동차 업계의 대부라 불리는 찰스 케터링 교수 밑에서 조수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날 그는 원소주기율표를 보며 노킹문제을 해결할수 있는 물질을 찾고 있었다. 요오드는 노킹문제를 해결시키지만 엔진을 부식시켜서 안되었고 납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른 그는 납을 이용해 연구를 시작했다. 1921년 12월에 테트라에틸납을 휘발유에 첨가했더니 노킹현상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가 개발한 테트라에틸납이 첨가된 휘발유가 유연휘발유(有鉛揮發油)이다.
노킹현상을 억제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됬던 유연휘발유의 발견은 자동차역사에 큰획을 긋는 중대한 사건으로, 고출력 내연기관의 발전을 이끌어 미국 자동차산업 성장의 도화선이 되었다. 자동차 제조회사는 이후 오일회사와 합작해 유연휘발유를 대량으로 생산하였다. 이 과정에서 독성이 있는 납(鉛, 납 연)(유연휘발유) 대신에 에틸이라는 이름을 붙혀 에틸가솔린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했다. 에틸가솔린은 자동차 뿐만 아니라 군용전투기에도 사용될 정도로 그 효능을 인정받았다. 그는 미국 화학협회에서 주관하는 윌리엄 H 니콜즈 상을 수상하며 돈방석에 앉았고 국가적 영웅으로 떠올랐었다.
토머스 미즐리는 우연히 냉장고 냉매사고 기사를 읽고 안전한 냉장고를 만들기 위한 연구도 시작했다. 당시 사용된 냉장고 냉매는 암모니아로, 암모니아는 강한 독성과 인화성을 갖고 있는 위험한 물질로 화재나 질식사를 일으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도록 만든다. 암모니아를 냉장고 냉매로 사용중이던 때에는 냉장고는 위험기기로 분류되어 보급이 어려웠고, 당시 안전한 냉매가 새로 개발되지 않는 이상 냉장고의 보급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전한 냉매를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토머스 미즐리는 그날 이후 다시 연구에 몰입했다. 냉장고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당시 사람들의 염원이 안전한 냉매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1930년 발표회장에서 토머스 미즐리는 안전한 냉매를 선보였다. 그가 개발한 안전한 냉매는 염소, 불소와 탄소를 결합해 만든 염화불화탄소, 그는 염화불화탄소 덩어리를 입에 물고 깊게 흡입한 다음 뱉어내어 촛불을 끄는 실험을 선보이며 새로운 냉매의 안전성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발표회장이 발칵 뒤집어졌다. 당시 염화불화탄소의 우수성은 무독성, 불에 붙을 위험이 없으며, 다른 물질과 쉽게 반응하지 않고, 기계를 부식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새로운 냉매를 꿈의 신물질이라고 불렀고 미국 최대의 화학회사 듀폰사는 냉장고 외에도 차량, 선박의 냉매, 단열제 포장제, 의류용 발포제, 분사제, 세정제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냉매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냉매의 개발은 위험한 기기로 분류되었던 냉장고를 안전한 기기로 인식시켜 냉장고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냉장고가 대중화되면서 상한 음식으로 인한 설사병이 크게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의료분야에서도 일대혁신을 일으켰는데 실온에서 보관하면 곧 효력이 없어지는 백신을 냉동보관할수 있게된 것이다. 사회전반에서 유용하게 사용된 새로운 냉매의 개발로 토머스 미즐리는 또한번 국가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사람들은 토머스의 발명이 인류역사엥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새로운 냉매가 개발되고 59년이 흐른 1989년, 미국 전역에서 토머스가 개발한 새로운 냉매인 염화불화탄소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었다. 염화불화탄소가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이유때문이었다. 세계 전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꿈의 물질 염화불화탄소는 프레온가스였던 것이다. 프레온가스의 유해성을 알지 못했던 당시 사람들은 프레온가스를 사회전반에 반드시 필요한 매우 유용한 물질로만 생각했다. 후에 오존층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를 시작으로 1989년 미국 전역에서 프레온가스의 생산과 사용이 규제된 것이다. 그리고 1995년 미즐리의 또다른 발명품인 유연휘발유 역시 미국 전역에서 사용이 금지되었다. 유연휘발유가 인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는 연구결과에 따른 방침이었다. 실제로 유연휘발유를 생산했던 공장에서 많은 근로자들이 비틀거리며 걷고, 기억력을 상실하는 등, 이상증세를 보이며, 심지어 사망하기까지 했다. 그 원인은 휘발유에 포함된 납때문이었다. 이렇게 납의 유해성이 공공연하게 드러나면서 유연휘발유 사용자체가 인류의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연휘발유의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가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토머스 미즐리는 영웅에서 역적으로 전락한 자신의 모습을 알지 못했다. 프레온가스의 사용이 금지되기 45년전인 1944년 자신의 집에서 사망한것이다. 1940년 51세의 나이로 척수성 소아마비 진단을 받아 허리 아래쪽을 완전히 쓸 수 없게 된 그는 이번에는 본인 스스로를 위한 발명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막대와 도르래, 밧줄로 침대를 오르내릴수 있는 정교한 장치를 만들었는데, 미국 화학협회장으로 선출되며 생예 최고의 해를 보냈던 1944년에 자신이 설계한 장치의 밧줄에 목이 졸린채 사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후에 그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사였는지 자살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살아생전 유연휘발유와 프레온가스를 개발하면서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토머스 미즐리, 하지만 그가 발명했던 것은 인류에 큰 해를 입혔고, 결국 그는 역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MBC TV 서프라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