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9급 공무원 월급이 18,000원 이었다고 합니다.
외국에서는 흔한 풍경입니다.
이래서 주말 교외길은 3천~5천대의 오토바이 물결에 튀겨질듯한 쌍쌍의 젊음들이 스피드에 들떠 내세상이다.갖가지 스포티한 옷차림이 마치 영화에서 보던 외국의 화면같기만한데 오토바이를 타는 젊은이들을 향해 어떤이들은 젊음이 부럽다고 하기도하지만 들일을 하는 농부들은 이떠한 표정으로 이광경을 볼것인가.
K산업은 기아자동차 회사입니다.
오토바이 급증은 K산업이 63년부터 외국과 기술제휴로국내생산,공급한것이 결정적인계기가 됐다. 63년 처음 50cc 오토바이가 처음 생산될때만해도 42만원에 판매되는 일제 250cc는 2백여만원이 넘었으니 사치품일수 밖에. 68년 90cc가 대당 18만9천원에 생산판매되면서부터그해에만 1만 2천여대가 팔렸고 그후 해마다 판매대수가 급증, 70년까지 3년사이에 6만여대개 풀려나왔다.
경향신문 1971/03/27 기사 (기획/연재)
서울 새풍속도 (123) 자동차시대 [24]
(123)
자동차시대
24
스피드의 총아오토바이
전국에 10여만대 굴러
14만원에서 2백만원 넘는것까지
탈선한 젊은이 범죄도구 구실도
부유층 젊은이들의 사치품에서 각종 소규모 자전거 상인들의 필수품으로
스피드의총아라는 오토바이가 자동차법규에는 2륜자동차로 분류된다.
10년전만해도 전국에 고작 1천대(서울4백대, 한국오토바이협회집계)도못되면 오토바이가 현재 전국에 10여만대(서울5만여대)라니 1백배가늘어난 셈인가.
메이커측의말로는 올해도2만대정도가 판매될것이고 그중50%가 서울에 판매될것이라는 예상이고보면 71년서울의 오토바이총대수는 자동차대수(6만1천여대)를 넘어설판이다.
이래서 주말 교외길은 3천~5천대의 오토바이 물결에 튀겨질듯한 쌍쌍의 젊음들이 스피드에 들떠 내세상이다.갖가지 스포티한 옷차림이 마치 영화에서 보던 외국의 화면같기만한데 오토바이를 타는 젊은이들을 향해 어떤이들은 젊음이 부럽다고 하기도하지만 들일을 하는 농부들은 이떠한 표정으로 이광경을 볼것인가.
60년대초의 외국영화화면에서 볼수 있었단 스피드광들. 가죽잠바에 텁수룩한 수염을 기른채 오토바이를 타고 광기같은 엄청난 스피드로 질주하는 비트족(미국), Ps족(독일), 번개족(일본)들이 판치던때만해도 우리나라 10대~20대들은 스피드의 쾌감을 즐기기위해 오토바이를 갖는 것을 동경해왔고 그때만해도 부유층 자식들의 사치로 알아왔었다.
이땅에 오토바이 붐이일고판매경쟁이 벌어졌을때좋지못한 수단으로 고객유치를해타락한상도의의 한단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A상회등에서는 오토바이를빌려주면서 묘령의 아가씨들을 함께 빌려주어 문제가된것이다. 오토바이 대여료가하루5천원에 아가씨서비스료라는명목으로 3천원을 더내 8천원씩을 받는기묘한 아이디어의 대여업이 성업을하기도 했다. 이기묘한 대여업이 성업을한것은여자와 단들이서 하이킹을 간다는것을 순수히 즐기려는것 보다그이상의 관계를 은근히 기대(?)하고 손님들이 몰려들것같다는 상회측 설명이고보면 어이가없다. 더구나 오토바이상회에서는 이 고용한아가씨들에게 수십만원짜리오토바이를 혹시 갖고 뺑소니칠사태에 대비, 감시인노릇도겸하게하는 2중효과를 노렸다니악착같은 상혼이라기 보다는불신사조의 일면을 보는 것같기도해 씁쓸하기만하다..
그런데 10대~20대의 오토바이족들이 즐긴 스피드의쾌감이 탈선해서 범죄의수단으로 비뚤어진 젊은층의 의식의 한모서리를 보게도되어씁쓰레하다. 오토바이날치기사건이 늘어난것이나, 오토바이를타고 퇴계로 남산길등을지나다 부녀자의 핸드백을 날치기하다가 중부서에 붙들린 이모군 (19)은 중류가정에 살면서도 용돈이궁해서 그런짓을 했다고 털어놓아 담당형사는 당황했다는것.
그렇던 오토바이지만 지금은 외국처럼 젊은이들의 스피드를 위한 쾌감이나 레저의 이용물로 늘어났기 보다는 교통난속에서의 밥벌이상비품으로 더욱 이용되고있다는것이 한국적인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교통소통때문에 자전거로 도심지통행을 할수가 없게 돼버리자 자전거를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사용해오던 각종소규모상인들에게는 자전거대신 오토바이로의 대치가 불가피해졌을 것이다.
이래서 시장의 식료품상, 요식업자, 각종전기기재상회, 프로판가스등 소규모메이커상인들은 배달,공급,상거래등을 하기위해서는 10여년전 자전거가 필수품이었듯이 이제는 오토바이가 필수비품이돼버린것이다.
자전거를 밀어붙이고 등장한 오토바이 시대라고할까.
오토바이 급증은 K산업이 63년부터 외국과 기술제휴로국내생산,공급한것이 결정적인계기가 됐다. 63년 처음 50cc 오토바이가 처음 생산될때만해도 42만원에 판매되는 일제 250cc는 2백여만원이 넘었으니 사치품일수 밖에. 68년 90cc가 대당 18만9천원에 생산판매되면서부터그해에만 1만 2천여대가 팔렸고 그후 해마다 판매대수가 급증, 70년까지 3년사이에 6만여대개 풀려나왔다.
이같이 급증하자 오토바이상회가 재미를 보게됐고 오토바이상회가 수지맞는다는소문에 다른 장사꾼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는일.
이래서 상회도 비례해 급증했다. 63년도에는 퇴계로를중심으로 10여군데밖에 안되던 오토바이 상회는 불어나더니 68년 한해만도 40 여개소가 생겼고 현재는 1백70군데로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오토바이상회는 대한국장부근에 처음생겼고 현재는 24개점포가 집결돼있다. 이곳에 상회가 집결된 이유는 7~8년전만해도 이일대는 길이넓고 한산해 연습삼아 타기가편해였다는데 현재는 이일대 1일교통량이 4만여대나되어 붐비는 통에 시운전은 커녕주차할곳도 없어져 버려얼마더있으면 이곳의 상회들도 변두리로 몰려날것같다. 서울의 거리모습도 이래저래많이 변한것이다.
밥벌이의수단으로 14 만원짜리 50cc 오토바이를사지못해 고생하는 상인들이 숱한가하면 취미로 2백만원이 넘는 외제 하레이(1200cc)를 타고 스피드의 쾌감을즐기는 계층이 함께사는게 오토바이시대의 오늘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