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에서 네게브 사막까지
뉴욕 출발 팀, 시카고 출발 팀, David Park 목사님 팀, 그리고 김 우현 감독 촬영팀 등 합쳐 77명이 넘는 대부대(?)가 애굽을 떠나는 날은 흡사 출애굽의 여정과 닮아 보였다. 당시 지구 문명의 중심지였던 이집트의 나일 문명은 사탄의 권세와 거짓 종교의 위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신화 (하늘과 비의 신 누트, 태양신 라, 저승의 신 오시리스, 오시리스의 아내 신 이시스, 오시리스의 아들로 파라오와 동일시된 호루스)는 사후 세계와 부활을 믿게 하는 미혹의 영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모세의 영도하게 살아계신 참 하나님의 힘과 역사를 보여주어 요셉과 그의 가족 70명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 “너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는 말씀의 성취가 바로 출애굽이 아닌가? 아브라함보다 300년 앞섰다는 가장 큰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보면서 당시의 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지적 능력이 온갖 기술과 문명의 발달의 이점을 누리고 있는 우리에게도 분명 경이로운 일로 비쳐지며 고대7대 불가사의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와 에베소의 아데미 신전과 기자의 피라미드는 가히 돋보이는 건축물임에는 분명하다. 이 시대의 많은 건축물들이 세워져 명멸해 가고 있지만 수천 년을 견디며 여전히 서있는 피라미드는 현대 문명 기술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음을 보여 준다.
사막 어디서나 보이는 높다랗게 솟아있는 불가사의한 인간이 만든 구조물인 피라미드, 불가능하기만 이 거대한 Monument을 탄생시킨 이집트 고대 문명에는 토목 공학, 관계 수로, 기하학, 천문학과 공학, 경영, 계획, 도시, 종교 등이 집대성 되어 만든 결정체라는 설명이 합당하다 하겠다. 나일 강물을 수로로 끌어 들여 농업과 생활수로 이용할 뿐 아니라 산업의 근간으로 이용한 고대 도시는 지금 이집트 도시의 초라한 모습에 견줄 때 과거가 더욱 빛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 지역에서 6,700km 에 달하는 나일강의 물을 이용하여 목축과 농업 기술 발달을 가져 온 것이다. 이는 가장 위대한 문명을 꽃 피운 그들의 지혜와 기술과 공학은 비단 순수 과학 분야와 응용 과학 뿐 아니라 종교적 영역에서도 태양신 라, 부활의 신, 농경의 신, 나일의 신, 죽음의 신, 부활의 신을 만들어 냈다. 즉 문명을 배태시킨 나일강의 축복에는 이를 종교적 해석을 가미해서 탄생시킨 정교일치가 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십계 영화에서도 설명되는 바와 같이 공주의 지명을 받은 단 한 명의 왕자만이 파라오가 되고 나머지 왕자들은 사제가 되었다는 사실은 정치와 종교가 절묘하게 만들어낸 이집트 문명의 일면목을 보여 준다. 그러한 정교 일치의 지배 구조에는 복잡다단한 음모와 술수 그리고 술사와 마법이 성행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리라. 정치, 경제, 산업, 종교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의 주체인 파라오와 그의 세력과의 정면 대결을 통해 아브라함의 후손을 광야로 이끌어낸 사건은 인류 최초의 Great Awakening 이며 인류 구원을 위한 구속사의 힘찬 행진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당시 최고 문명의 혜택과 특권을 누리고 있는 이집트인들에게 그리고 파라오(바로)에게 만약10대 대재앙을 주지 않았다면 결코 굴복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 눈으로 보고서야 이해가 된다.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문명을 능가한 것은 당연히 이집트 문명이었다. 당시 유럽 대부분은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이집트 문명 이후, 헬라 문명, 로마 문명 그리고 로마 문명의 아류라 할 수 있는 유럽 문명이 창출된 이후 놀랍게도 인류를 번성하게 한 문명의 배후와 영적 대결은 많이 닮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이집트 문명과 다를 바 없는 현대 문명의 이기 속에 사는 우리에게 수많은 물질 숭배, 미혹의 영, 세속주의 그리고 과학만능주의가 지배하는 구조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문명의 이기가 주는 편안함 속에 인간이 좋아하는 부도덕, 성적 타락, 이기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세속주의를 부추기는 현대 사회는 또 다른 단면의 이집트 문명을 보여 주는 듯 하다. 인간이 만들어 무조건적 맹종에 가까운 신뢰를 받는 과학주의와 지식, 정보, 그리고 과학 기술은 강력한 사탄의 무기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재림 직전에 운명적이고 불가피한 사탄의 세력과의 대결을 앞두고 있다. 이 땅의 주의 택한 백성들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사탄의 세력을 대적하여 그 백성들을 이끌어 내는 진정한 영적 각성 온 지구촌에 일어나기를 이번 여행에서 기도해 본다.
1. 출애굽 여정
1진은 피라미드 방문 이후 곧장 시내 반도로 출발하고, 시카고에서 온 2진은 고고학 박물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들러 시내 반도로 와서 캐서린 수도원 근처에 있는 플라자 호텔에 여장을 풀고 만나기로 하였다. 우리는 성지 순례의 일정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났던 고센을 갈 수 없었다. 고센 지역과 비돔 지역을 제외한다면 우리가 가는 여정은 성경이 말하는 출애굽의 여정을 많이 닮았다. 우리는 우선 애굽을 지나 마라의 쓴 물로 추정되는 지역을 지나, 르비딤 광야를 방문하고 플라자 호텔로 가게 되었다. 이스라엘을 이끄시는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인도하신 그 여정을 따라가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도 아름다운 여행임에는 틀림이 없다. 출애굽기 13:20 에 따르면 당시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장정만 60만 명이었다고 하니 족히 200만에서 300만이 되는 거대한 인구임에는 틀림이 없다. 함께 애굽인과 외국인은 그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거기에 수많은 생축이 함께 하였다. 우리가 가는 길을 중심으로 성경이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경로는 다음과 같다.
고센 지역 라암셋 (출 13:20) – 비돔 또는 숙곳(Succoth, 민 33:5-6) – 에담 (출 13:20) – 홍해 – 마라의 쓴물 – 르비딤
출애굽의 경로를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시기를 바랍니다. 용량이 커서 전송이 되지 않아 부득불 링크를 연결해 드립니다.
참조 사이트 http://www.daejeon.ac.kr/board/bbs/board.php?bo_table=sub06_06&wr_id=5
출애굽이 시작된 지점은 고센 지역의 라암셋이다. 이곳은 애굽 왕 바로의 압제하에 신음하며 노역을 하던 곳이다. 애굽의 라암셋에서 시내 반도를 지나 팔레스타인 지역, 즉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그중 가장 빠른 길은 일명 “블레셋 사람의 길(출 13:17)” 이다. 이는 우리에게 해변길로 잘 알려진 길이다. 이 길에는 천하무적 애굽 군대가 배치된 곳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성경은 “많은 믹돌들”이 있었다고 했다. 믹돌이라고 불리우는 군사 기지는 시내 반도로부터 들어오는 외세의 침입을 막고 대상로를 보호하는 곳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길은 팔레스타인이나 아라비아 반도로의 정벌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군사 주둔지가 위치한 길이다. 이러한 빠른 길을 놔두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블레셋의 길을 가지 말고 시내 반도를 남행하는 우회로로 가도록 인도하셨다. 고센에서 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은 수르 길이다. 일명 술 광야 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미 소개해 드린바 와 같이 김승학님이 쓴 “떨기나무”라는 책에 나오는 경로는 시내반도와 아라비아 반도 사이의 홍해(아라바 만)를 건너 아라비아 북부를 통해 가나안으로 들어 간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글을 비행기 상공에서 쓰는 관계로 만약 보스톤에 돌아 가면 스캔해서 나중에 자료를 보내 드릴 예정임) 어째튼 고센 지역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최상의 빠른 길을 택하기 보다는 도리어 시내 광야로 가는 험란하고 힘든 길로 인도하셨다. 인간적인 시각에서 보면 어리석은 선택처럼 보이는 이 경로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혹독하게 훈련시켜 애굽에 묻은 모든 우상숭배와 죄악의 뿌리를 뽑고 가나안 정복 시 이스라엘을 제사장 국가 삼으시려는 큰 섭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시내 광야의 여정을 통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성취하시고, 이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막과 제사와 절기와 율법을 주신 것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언제나 자신의 안위와 편안함을 추구하는 속성을 가진 우리를 깨트리고 훈련시켜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상기시키시고 또한 성취하셨으며 이제는 모세를 통해 “율법,” “제사” “성막”과 “절기”와 같은 언약과 표징을 주사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자기 계시를 시내 광야를 본격적으로 보여 주셨다는 사실이다. 비록 버스로 달려 가며 당시의 여정을 돌아보는 길이지만 당시 출애굽을 연상할 때에 성경의 모든 사건이 마치 눈에 살아나 보이는 것 같았다. 그 황량한 사막 길에, 모래 바람이 몰아칠 때 눈코 뜰 수 없는 달구어진 모래 벌판으로 그리고 바위산 널려 있어 짐승도 기피하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영문도 모른 채 출애굽한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안락함을 빼앗긴 채 주리고, 목마르고, 피곤함을 느낄 때 불평하고 원망하는 그 모습은 자동차로 달려 가며 보이는 척박한 그 땅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이 그런 우리의 모습을 대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모든 출애굽의 여정을 상상하며 더듬어 오는 길에 홍해 바닷가에 있는 유황 동굴에 잠시 들르게 되었다. 바위 아래 뜨거운 온천수가 흘러 나오고 아주 단순한 동굴이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훈기 가득한 것을 체험한 것도 색다른 일이었다. 이제 다시 달려 가는 길에 듬성듬성 오아시스가 반갑게 맞이한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뜨거운 햇빛 아래 그늘 주고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는 오아시스는 사막을 횡단하는 이들에게는 분명 축복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달리고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황량한 모래 벌판에서 마을을 보는 일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지하수를 개발해 연결한 수도관이 공급되는 곳에 들어나는 무슬림 마을은 인공의 오아시스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마을에만 가끔씩 보여지는 야자수, 종려나무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마을은 모스크를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고, 지붕도 아예 없거나 초라한 창문만 덜렁 갖춘 가난한 집들이 볼품없이 도열해 있다. 저 모스크가 교회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역사들이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마음이 들어 버스 안에 함께 한 분들 일심동체가 되어 더욱 기도 목소리를 높이었다. 마을 집들의 외벽이나 지붕은 꼭 짓다만 모습이지만 일년 내내 비가 오지 않기에 굳이 외장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가는 길에 조금씩 체험해 보는 사막을 걷는 일은 당시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을만한 고생을 짐작하게 해준다. 고센 땅에서 맨발로 허둥지둥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그들의 고생이 대단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난다. 뙤약볕에 11시30분 걸으면 인간이 생존할 수 없다는 guide 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내가 이러한 척박한 환경에서 얼마나 멀리 그리고 오래 걸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단 20분, 30분을 걸어도 다리에 힘이 빠지고, 혀끝이 타오름을 느낀다.
2. 시내 광야로 들어 가며
카이로에서 총 8시간 내지 9시간을 달리고 달리는 시간이 계속되는 가운데도 여전히 두 대의 버스는 은혜의 도가니가 된다. 우리 팀들은 버스를 타면 찬양과 경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리고 계속해서 그 땅을 위해 손을 기도하였다. 지나가는 마을을 바라보며 손을 주를 찬양하며 기도하는 것은 prayer walk 가 아니라 prayer drive 이며, 달리는 버스는 가장 효과적인 교회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우리 일행이 이집트에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찬양도 부르지 못하도록 비밀경찰에 의해 제재 당하고, 정부에서 장총으로 무장한 군인과 함께 동행했기에 마음껏 부르짖어 기도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우리 모든 분들은 간절한 소망은 그 땅에 임하실 하나님의 임재와 주권적 역사를 위해 자유롭게 기도하는 것이었다. 특히 미국이나 한국에서 우리가 아무 제약 없이 예배와 찬양 그리고 기도를 드릴수 있음이 보통의 축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팀들은 마라의 쓴물을 지나게 되었다. 마라의 쓴 물은 홍해를 건너 온 이스라엘 백성이 마실 물이 없어서 기갈중에 있을 때 마라라고 하는 지역에서 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물은 써서 마실 수 없을 때 모세가 나무를 던저 단물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출 14:21-25). 멀리 뒷편에는 수에즈 운하가 보이고 우물 두 개가 덜렁 보이는 곳에 조그마한 표지판만 서 있을 뿐 역사적으로 그리고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3. 예ㅅㄱ 목사님의 놀라운 간증
우리 팀이 탄 버스에는 북한에서 내려 오신 예ㅅㄱ 목사님이 함께 하셔서 구수한 평양 말씨에 순교자의 삶을 사시는 너무나 놀라운 간증을 듣게 되었다. 북한 최고위층 인사도 호위 호식하다가, 갑자기 남편을 부음을 듣고 그의 일생은 고난의 길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모든 지위와 조건을 다 빼앗기고 허름한 시골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어느 날 평양 공안 당국의 호출을 받고 기다리던 중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던 그가 쇠사슬에 묶인 한 여죄수가 터벅터벅 다가와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왜 두려워하십니까?”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교회를 가본적도 없고,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던 그, 밤이면 밤마다 한적한 곳에 가서 잘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기적 같은 방법은 두만강 도하에 성공하고, 주님의 음성 따라 생존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두 11번 북한과 중국을 넘나 들며 오직 주의 복음 증거하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한 아들도 순교자로 바치고 옥에 갇힘과 수많은 고난과 환란을 겪었다고 한다. 예 목사님의 모든 말씀 다 들으면서 8시간이 걸려도 부족하리라 생각된다. 생명을 드려서 한 영혼을 구원하는 순교자의 삶이 여기 있나이다.!
4. 시내산 앞에서
어느새 버스는 수에즈 운하 바닥을 통과하여 이집트령 시내 반도를 들어간다. 시내 반도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아온 북아프리카 이집의 사막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와 이 땅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 주시고 직접 계시하신 시내 광야구나!”라고 생각하니 크나큰 감동이 하수처럼 밀려온다. “와 이 땅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 주시고 직접 계시하신 시내 광야구나!”라고 생각하니 크나큰 감동이 하수처럼 밀려온다. 홍해 건너 편에 위치한 시내 반도의 “시내”는 “수풀”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곳에서 모세는 십계명과 율법을 받게 된다. (출 20:1-17)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섬기던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여 모세의 진노를 불어 일으켰다. (출 32:4, 행 &;30, 46) 이곳에서 백성의 수를 계수하였으며, 아비후가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불로 분향함으로 심판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처음 친 곳이기도 하다. (민 1:18, 레 10:1-2, 출 26:30) 현재 지구상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로 쓰인 성경 사본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1859년 독일학자 디신딥이 캐서린 수도원에서 오래된 성경 사본을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이 사본은 AD 30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Codex Sinitus 라고 하는 데 현재 러시아의 피터스그라드의 정교회 교회당에 보관되어 있다. 이미 지나번 편지에 언급한것처럼 시내산의 위치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다. 시내 반도 호렙산맥의 최고봉은 “모세산” (아랍명 무사산 Jebel Musa, 2286m), 그리고 서남쪽에 위치한 “카타린 산” (아랍명 Jebel Katarin, 2621m)과 서북쪽에 위치한 “라스 에스 사프사페 산” (Ras es-Safsafeh, 1993 m) 과 마지막으로 지금의 사우디 아라비아의 산(?)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도착한 것은 11일 길(신 1:2) 지난 이후이며, 시내산에 오른 것은 출애굽 1년 3월 15일째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제 이 년 이월 일일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 1:1) 시내산에 여호와 하나님이 강림하시고, 이스라엘은 시내 산자락에 장막을 치고 거주하였다. (출 19:1-2)
5. 시내산 기도 성회 (플라자 호텔에서)
홍해 바다를 건너 끝없이 달리는 시내 광야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과연 이곳에서 사람을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지금은 이집트 정부에서 지하수를 개발하여 곳곳에 수도관이 배설되어 있는 것이 보이지만 그래도 황량한 돌산밖에 없었다. 곳곳에 선 군 초소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마을들은 콩크리트 건물에 자그마한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끔씩 보이는 종려 나무가 반갑게 맞이한다. 시내 광야에서 보이는 나무는 싯딤 나무(조각목 나무) 그리고 가끔씩 볼품없는 나무가 축 처진 모습으로 반기는 듯 하다. 돌산과 척박한 광야,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기 어려운 땅에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 남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쭈삣쭈삣 뾰족하게 솟아 오른 바위 산들은 오랜 세월 메마른 모습으로 방치된 지 수천 년, 수만 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은 마치 버려진 지구상의 가장 처량한 모습일 것이라는 상상이 된다. 구비구비 파도처럼 펼쳐지는 바위 산을 들어 가면 흡사 10계 영화 속으로 들어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찰톤 헤스톤 주연 영화 “10계”가 이곳에 촬영되었고, 우리가 묵게 될 플라자 호텔 바로 뒤의 시내산이 영화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 시내산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 이메일에 보내 드린 것처럼 “떨기나무”라는 책에서는 십계의 위치가 지금의 시내 광야의 시내 산이 아니고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다는 것도 부연 설명하여 모든 것을 균형 있게 볼 수 있도록 말씀을 나누게 되었다.
6. 시내산 등정과 주일 예배
늦은 시간 여장을 풀고, 저녁을 마치니 어느새 밤 10시를 훌쩍 넘겼다. 모두 다 피곤에 지친 것은 사실이나 얼굴에는 주의 은총이 가득하다. 온 주변이 깜깜하지만 그래도 호텔은 깔끔하고 제법 사람들이 붐빈다. 오고 가는 다른 팀들 중에 평소에 만나 뵈었던 분들과 조우하는 것도 또한 새로운 여행의 기쁨이다. 성경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조명하고, 중동 지역에 발흥하게 된 이슬람의 배경과 앞으로 세계 정세에 관한 성경적 관점을 나누다 보니 자정이 훨씬 넘어 1시 가까이 되었다. 현재의 사정상 3개의 봉우리는 시내 반도에 위치하고 있으나 나머지 중 하나인 무사산(?)은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어서 그곳을 가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우리 일행이 등정하는 산은 모세산으로 알려진 시내산이다. 모두1시 30분에 모여 2시부터 등반을 시작하였다. 많은 목사님들과 70세 되시는 유효명 장로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아무런 사고 없이 등반하여 시내산 정상 기도회를 하시고 은혜롭게 하산하게 되었다. 돌아 오는 길에 캐서린 수도원이 마침 주일이어서 문을 열지 않아서 함께 방문할 수 없었음이 아쉬웠지만 다음 기회에 방문하기를 소망해본다. 만약 내가 이 산을 등반하면 계속되는 수많은 일정을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아 시도하지 않기도 했다. 다녀 오신 분들의 보고에 의하면 한라산보다 더 높은 그 산을 칠흑같이 어두운 그곳을 앞만 보고 올라가서 보니, 밝은 아침 내려 오는 길에 보니 아찔하리만치 고봉에 깎아 지르는 절벽이 천하절경이었다고 하신다. 다녀 오신 많은 분들의 간증을 듣고 모두가 크게 고무되었고, 시내 반도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이승종 목사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름 부으심이 함께 하는 그런 예배였다.
7. 시내 광야를 떠나며
이제 우리 팀은 1진 2진으로 팀을 재구성하여 시내산을 떠나게 되었다. 모두 다 수면이 부족하고 여독이 풀리지 않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하다. 암만에서 내려서 카이로로 날라 온 우리가 이제 육로로 이스라엘로 들어 가는 국경선이 있는 타바(Taba)로 출발하였다. 황량한 광야를 벗어나니 비로소 홍해 바다가 보인다. 너무나 맑은 바닷물이 반긴다. 수에즈 운하가 있는 홍해 바다 보다는 아라비아 쪽 홍해 바다가 훨씬 맑고 아름다워 보인다. 이 국경선을 건너면 중간 지점에서 아내와 딸 그리고 최언집 장로님을 만나기로 했다. 이스라엘 국경선으로 들어와 이민국 심사와 세관 검사로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이민국 넘어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에 홍해 바다가 보이는 깨끗한 물은 투명한 거울을 보는 것 같다. 이 물을 보는 순간 시상이 떠오른다. 40년 광야 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바닷물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단 5분의 시간이라도 이 바다를 보며 그간의 여독을 풀어본다. 버스에 타서 시간을 내어 시를 써 보려 하는데, 우선 이민국 통과 사람부터 1진으로 떠나자고 한다. 아 글을 쓸 시간도 충분치 않구나!
8. 이스라엘로 들어 오면서
아 성경이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 우리는 이 땅을 가나안 복지라고 말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어떤 땅일까? 그렇게 아름다운 땅일까? 하지만 눈에 보이는 네게브 사막은 시내 광야에서 볼 수 없는 모래 바람에 듬성 듬성 메마른 풀과 싯딤 나무만이 반겨주는 그런 척박한 땅이었다. 오 주여! 우리가 이 땅에 들어 왔나이다!
광야의 끝 길에 (Taba 에서)
깍아 낸 뼈에 사라진 것
곧고 뻣뻣한 목
고운 빛깔로 빚어 내어 남은 것
영롱 구슬 해산하는 타바 수정 해변
첨탑 같은 바위 산맥 멀어지면
물끄러미 내려보는 코발트 빛
하늘 원근구도에 잡혀오고
이방인의 시선 붙잡는 끝점이 머무는
홍해의 안자락엔 푸른 바다 깊어
아! 물이랑 따라 요동치는 눈길
움직임의 즐거움
구슬에 굴렁 비치는 지나간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
심호흡 가다듬는 청정해역에
가나안 진입할 그 모습 보여 주려
잠시 발목 묶어 두었는가?
세월이 나면 사람이 나고
산이 깍이면 돌이 남고
무릎 깍이면 하늘 통로 남나니
고된 연단이 남긴 축복
둥글둥글 자잘스런 조약돌인가?
낙타무릎은 고집 원망 꺽는 지름길
가시밭길은 세상 편안함 깨는 지렛대
부르튼 발목은 잘 닦여진 하늘 길목
헤어진 샌들은 하늘 가는 신데렐라 구두
이 땅의 것 걸러내고
하늘 바라보는 안목 갖는 길목 이려나
닳고 단 걸음에 빛나는 결정체
너슬너슬 청초록의 환희
불퉁거림의 종착역
더 뽀쪽해지는 모롯바위
다 깍이도록 기다리는 장인
얼마나 애간장이 탔을까?
날카로우면 더 뜨거워지는 땡볕
불평하면 더욱 더 움켜지는 주린 뱃가죽
어두울수록 깊어지는 초승달의 기울임이여
외로움도 덩달아 우짖는 승냥이 울음에 깊어지는 것
깨어지지 않는 자아 붙잡고 세는 광야의 밤
어느 세월에 하늘 음성 들으려나?
고단한 걸음걸이에 채이는
파리한 생명들
걸거질수록 늘어지는 지루한 황야길
갈무리에 새긴 비툴어진 마음
깎이고 닳도록
살그락거리며 누운 자리
세월의 진자리 여울목은
빛고을 빛잔치리?
처량하고 서글퍼도
무던히 받아주던 바위 초롱
모난 바위 기대만큼
둥글둥글 너그럽고
뜯겨 나고
발가 벗긴
초라한 이 모습 보려
그 기인 세월 손꼽았던가!
버릴 줄 알아 남긴 유산
붉은빛 품어대는 화강암
해 오른 멧기슭
감사의 사탑 쌓이는 곳
모래 터울 긁어내는 현무암 너럭 바위
삐쭉 힐쭉 날카로움도 너덜거리고
뽀쪽 날쭉 볼품없는 바위 구비라도
둥글둥글하면
이제야 주 뜻대로 굴러 가려나?
걷는 뒤축 자리
파묻힌 존재감
보드랍게 밟히고 밟힐 줄 알아
빚어진 내 모습 이대로
고운 물로 말갛게 씻어내고
덜렁이는 바다이랑
출렁이는 물결 따라
섭쓸리고 굴렁거린 내얼굴
물노을따라 내비칠때
반드러운 이 모습 시련의 종착점인가?
모래톱에 시작되는 물결머리
연둣빛 빛깔 덧칠하러
연초록, 청초록, 진초록, 진진초록
멀어질수록 얼굴의 곁그림 그리며
물능선 끝으로 하나씩 멀어져도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얼굴빛
바람굽이 밑그림되어
똑바로 보면 더 높아지는 하늘 끝으로
분명히 떠오르는 동그란 얼굴들의 잔치
광야의 고난만이 빚어내는 보화이지 않던가?
까치노을에 진군하는 물마루
춤을 추며 내 몸에 덮치나
넘치지 않고
투명할수록 멀어지는
동오그란 해님도
물섶으로 쇠잔하고
이글거리는 신기루
하늘의 병풍 깔아 주기에
맑은 거울 바다
비추어진 내 얼굴
광야 40년이 빚은 모습
뭍에서 물살에 메찬
바다 꽃 되었네
출처 :두 증인 미니스트리 네트워크 원문보기▶ 글쓴이 : 주님나라 지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