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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그 시절 그 노래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09|조회수16 목록 댓글 0

그 시절 그 노래

마을 어귀 초가집 굴뚝에서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아궁이에 장작을 넣으면 타닥타닥 불꽃이 춤을 추고, 저녁밥 짓는 냄새가 골목을 따라 퍼져 나가던 시절이었다. 텔레비전이 귀하던 시절, 사람들은 마당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고, 밤하늘의 별은 지금보다 훨씬 가까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노래도 지금과 달랐다. 화려한 무대도 없었고 눈부신 조명도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선율이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한 곡이 하루의 피로를 씻어 주었고, 들녘에서 일하던 농부들은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으로 고된 노동을 견뎌 냈다.

봄이 오면 진달래와 철쭉이 마을을 물들였다. 초가지붕 곁에 핀 꽃들은 마치 가난한 살림에도 웃음을 잃지 말라는 듯 화사하게 피어났다. 꽃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꽃보다 더 따뜻했다.

비 오는 날이면 할머니는 처마 밑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곤 했다. 빗물이 흙길을 적시고, 빗방울이 채소밭의 이파리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말없이 앉아 계셨다. 그 모습에는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외로움보다는 평화가 더 깊게 배어 있었다.

논에서는 소가 쟁기를 끌었다. 농부의 발은 진흙에 묻혀 있었고, 굽은 허리는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훈장 같았다. 사람들은 가난했지만 땅을 일구며 희망을 심었다. 봄에 뿌린 씨앗이 가을이면 황금빛 벼가 되어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힘든 줄도 모르고 땀을 흘렸다.

해가 지면 마을은 또 다른 세상이 되었다. 넓은 공터에서는 모닥불이 타올랐고, 젊은이들은 불꽃 주위를 돌며 춤을 추었다. 누군가는 장단을 맞추고, 누군가는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음정이 정확하지 않아도 좋았다. 삶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노래는 사람들을 이어 주는 다리였다. 힘들 때는 위로가 되었고, 기쁠 때는 축제가 되었다. 한 곡의 노래 속에는 사랑도 있었고, 그리움도 있었으며, 살아가는 이유도 있었다.

밤이 깊어지면 집집마다 등불이 켜졌다.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불빛은 가족의 온기였다. 장독대 옆을 스치는 바람도 조용했고, 마당 한쪽의 감나무도 잠든 듯 고요했다. 그 시간만큼은 세상이 느리게 흘렀다.

지금은 많은 것이 변했다. 초가지붕도 사라지고, 소가 끌던 쟁기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라디오를 둘러싸고 노래를 듣던 풍경도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시절의 노래는 아직도 마음속에서 흐른다.

그 노래를 들으면 잊고 있던 얼굴들이 떠오른다. 논두렁을 걷던 아버지의 뒷모습, 장독대 옆에서 나물을 다듬던 어머니의 손길, 그리고 저녁놀을 바라보며 웃던 이웃들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세월은 많은 것을 가져갔지만 기억만은 가져가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시절은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아마도 그리움이란 지나간 시간을 사랑하는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바람이 불어온다. 초가집 지붕 위로 스치던 바람과 같은 바람이다. 그리고 마음속 어디선가 오래된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그 시절 그 노래.

그것은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다.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시절, 부족했지만 행복했던 사람들, 그리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던 공동체의 기억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들어도 가끔 뒤를 돌아본다.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곳에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함과 정겨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마음속에서는 오래된 노래 한 곡이 흐른다.

그 노래는 말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고, 함께 웃고, 함께 살아가던 그 시절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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