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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엄마와 캠핑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16|조회수24 목록 댓글 0

엄마와 캠핑

캠핑카 창가에 앉은 엄마의 얼굴에는 오래된 햇살이 머물러 있다. 세월은 머리카락을 하얗게 물들였지만 웃음만은 여전히 소녀처럼 맑다. 옆자리에 앉은 나는 엄마의 어깨를 다정히 감싸 안고 있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목적지보다 함께 가는 길이 더 즐겁다는 표정이 번져 있다. 인생의 행복은 어쩌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순간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젊은 날의 엄마는 늘 바빴다. 새벽이면 가장 먼저 일어나 가족의 하루를 준비했고, 모두가 잠든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엄마의 시간은 늘 자식들에게 먼저 내어준 시간이었고, 자신의 꿈과 여유는 늘 뒤로 밀려나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어 떠나는 여행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라 늦게 찾아온 엄마의 휴가처럼 느껴진다.

차창 밖으로 계절은 천천히 흐른다. 붉게 물든 단풍잎은 지나온 세월을 닮아 있고, 햇살에 반짝이는 잎맥은 엄마의 삶에 새겨진 수많은 이야기처럼 보인다. 바람은 나뭇잎 사이를 스치며 지나가고, 그 소리는 마치 “잘 살아왔다”고 말해 주는 위로의 목소리 같다.

캠핑카는 어느 한적한 시골길에 멈춘다. 길가에는 작은 들꽃들이 피어 있고, 멀리 산과 하늘이 맞닿아 있다. 엄마는 천천히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본다. 어린아이처럼 신기한 눈빛으로 꽃을 바라보고, 나무를 만지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평생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을 잊고 살았던 사람이 이제야 자연과 친구가 되어 걷고 있는 것이다.

산책길에는 하얀 개망초가 바람에 흔들린다. 엄마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천천히 걸어가지만 표정만은 누구보다 환하다. 곁에서는 딸이 엄마의 허리를 감싸 안고 발걸음을 맞춘다. 두 사람의 그림자는 길 위에 길게 드리워지고, 그 모습은 마치 세월이 만든 한 편의 그림 같다.

어릴 적에는 엄마가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넘어질까 봐, 길을 잃을까 봐, 세상이 무서울까 봐 늘 엄마가 앞장서 걸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걷고 있다. 세월은 그렇게 역할을 바꾸어 놓는다. 하지만 손을 잡는 마음만은 달라지지 않는다. 사랑은 방향만 바뀔 뿐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길 끝에 작은 다리가 보인다. 두 절벽을 잇는 출렁다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닮아 있다. 혼자서는 건널 수 없는 삶의 골짜기를 누군가와 함께 건너게 해 주는 것. 엄마는 평생 가족의 다리가 되어 주었다. 힘든 날에는 기댈 어깨가 되어 주었고, 외로운 날에는 돌아갈 집이 되어 주었다.

캠핑은 단순히 자연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이 아니다. 함께 시간을 나누는 일이다. 불편한 의자에 앉아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같은 바람을 맞고,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잊고 살던 소중한 것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저녁이 되면 노을이 산 너머로 번진다. 붉은 빛은 엄마의 얼굴에도 조용히 내려앉는다. 그 빛 속에서 문득 깨닫는다. 우리는 언젠가 이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인생은 길고도 짧다. 젊을 때는 끝이 없을 것 같던 시간이 어느새 뒤를 돌아보게 만들고, 늘 곁에 있을 것 같던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한다. 엄마와 함께 떠나는 캠핑은 여행이라기보다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밤하늘에 별이 하나둘 떠오른다. 엄마는 별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는다. 그 웃음 속에는 지나온 세월에 대한 감사와 지금 이 순간에 대한 행복이 담겨 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 길이라는 것을.

엄마와의 캠핑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그날의 햇살과 웃음, 손을 맞잡고 걷던 길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마치 늦은 봄날 들꽃 향기처럼, 오래된 사진 속 미소처럼,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따뜻한 기억으로. 그렇게 엄마와 함께한 하루는 평범한 여행을 넘어 삶이 건네는 가장 다정한 선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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