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 또 다른 이름으로 피어나다
꽃은 이름으로 피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누군가가 붙여 준 이름으로 살아가지만, 삶의 깊은 곳에서는 각자 또 다른 이름 하나를 품고 살아간다. 어머니, 아버지, 친구, 스승, 연인, 이웃. 세월이 흐를수록 본래의 이름보다 삶이 붙여 준 이름이 더 많아진다.
초여름 뜨락에 접시꽃이 피어난다. 붉은 꽃은 타오르는 정열처럼 피어나고, 하얀 꽃은 새벽 안개처럼 맑다. 분홍빛 꽃은 수줍은 소녀의 미소를 닮았다. 같은 접시꽃인데도 저마다 다른 빛깔로 피어난다. 마치 같은 세상을 살아도 각자의 사연과 운명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접시꽃은 한꺼번에 피지 않는다.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꽃망울을 열고 위를 향해 오른다. 이미 핀 꽃 곁에는 아직 피지 못한 꽃봉오리가 있고, 시들어 가는 꽃도 함께 매달려 있다. 한 줄기 안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셈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꼭 인생의 모습과 닮아 있다. 젊은 날의 우리는 가장 화려한 꽃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 믿는다. 남보다 빨리 피어야 하고, 더 크고 더 아름답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월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화려하게 피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자기답게 피어났는가라는 사실을.
접시꽃은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다. 난초처럼 귀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담장 곁에 서서 긴 여름을 묵묵히 견딘다. 비가 와도 서 있고 바람이 불어도 서 있다. 누구에게 박수를 받지 않아도 제 자리에서 꽃을 피운다. 삶도 그렇다. 세상은 늘 특별한 사람을 주목하지만,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가족을 위해 새벽을 여는 사람,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하는 사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몫을 감당하는 사람들. 그들은 접시꽃처럼 조용히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붉은 접시꽃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한다. 어쩌면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여러 번 이름을 바꾸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는 꿈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청춘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중년에는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노년에는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 모든 이름 아래에는 변하지 않는 하나의 본질이 있다. 자기 삶을 끝까지 살아내려는 의지다.
하얀 접시꽃은 순수라는 이름으로 피어나고, 붉은 접시꽃은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피어난다. 분홍빛 접시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피어난다. 꽃은 같은 뿌리에서 자라지만 서로 다른 빛깔로 세상을 물들인다. 사람도 그렇다.
같은 세상에서 태어났지만 누구는 시인이 되고, 누구는 농부가 되고, 누구는 교사가 되고, 누구는 여행자가 된다.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지만 결국 모두 자신의 꽃을 피우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인생은 경쟁이 아니라 개화(開花)인지도 모른다. 남보다 먼저 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계절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꽃은 서두르지 않는다. 계절이 오면 피고, 때가 되면 진다. 그 자연스러운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사람만이 자꾸 서두른다. 더 빨리 성공하려 하고, 더 빨리 인정받으려 하고, 더 빨리 행복해지려 한다. 그러나 접시꽃은 말없이 가르쳐 준다. 꽃은 피어나는 속도가 아니라 피어나는 이유가 중요하다고. 어느 날 꽃은 진다. 하지만 접시꽃은 꽃이 진 자리마다 또 다른 꽃망울을 남긴다. 끝이 아니라 이어짐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접시꽃의 삶은 소멸이 아니라 순환이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한 사람의 사랑은 또 다른 사람의 희망이 되고, 한 사람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위로가 된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이름으로 피어난다. 초여름 바람이 접시꽃 곁을 지나간다. 붉은 꽃잎이 살며시 흔들린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이 미소 짓는 얼굴 같다.
문득 깨닫는다. 접시꽃은 꽃이라는 이름으로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기다림이라는 이름으로, 인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피어난다. 그리고 사람 또한 사람이라는 이름으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이 되어 살아간다.
결국 인생이란 자기만의 이름 하나를 꽃처럼 피워내는 여정이다. 오늘도 접시꽃은 또 다른 이름으로 피어나고 있다. 마치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 속에서 또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