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아래 싸리비가 옛 향수를 부른다
시골집 담장 아래에는 늘 싸리비가 기대어 서 있었다. 마당 한쪽에 무심한 듯 놓여 있었지만, 그것은 집안의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작은 도구였다. 새벽이면 어머니는 싸리비를 들고 마당을 쓸었고, 저녁이면 떨어진 낙엽과 먼지를 모아 하루를 정리하곤 했다.
연둣빛 풀숲을 바라보다 문득 그 싸리비가 떠오른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가느다란 잎들이 마치 오래전 싸릿대의 기억을 불러내는 듯하다. 지금은 보기 힘들어진 풍경이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시절 마당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가족의 웃음이 머물고 계절이 머무는 삶의 무대였다. 봄이면 꽃잎이 떨어지고, 여름이면 풀잎이 자라났으며, 가을이면 낙엽이 쌓였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싸리비로 마당을 쓸며 계절의 흔적을 정리했다.
신기한 것은 마당을 아무리 깨끗하게 쓸어도 다음 날이면 또 먼지가 쌓이고 낙엽이 떨어진다는 사실이었다. 어린 마음에는 그것이 헛수고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삶도 마당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사람의 마음에도 매일 먼지가 쌓인다. 걱정과 욕심, 서운함과 미움이 낙엽처럼 내려앉는다. 그대로 두면 마음은 금세 어지러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마음의 마당을 쓸어야 한다.
어머니가 싸리비를 움직일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평화로웠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섞여 아침을 깨우는 음악이 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소리는 단순한 빗질 소리가 아니라 살아가는 소리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싸리비 하나를 가지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책을 읽으며 마음을 쓸고, 누군가는 여행을 하며 먼지를 털어낸다. 또 누군가는 글을 쓰며 마음속 묵은 낙엽을 정리한다.
담장 아래 자란 초록빛 풀들은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다.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한 무리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마치 이웃과 가족의 모습 같다. 혼자서는 약하지만 함께 있을 때 더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예전 마을에는 담장이 낮았다. 담장 너머로 이웃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밥 짓는 냄새가 오갔다. 싸리비를 들고 마당을 쓸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었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웠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높은 담장과 닫힌 문이 익숙한 세상이 되었다. 편리함은 많아졌지만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담장 아래 무성하게 자란 초록빛 풀숲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그 안에는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이 숨어 있고, 어머니의 손길이 숨어 있으며, 마당을 쓸던 아침의 햇살이 숨어 있다.
향수란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감정이 아니다. 그 시간 속에서 내가 얼마나 사랑받으며 살았는지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 어머니의 싸리비는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그 소리는 아직 마음속에서 들린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그 소리는 세월을 쓸어내는 소리가 아니라 삶을 다독이는 소리였다. 오늘도 담장 아래 초록빛 싸릿대는 바람에 흔들린다. 그리고 그 작은 흔들림은 잊고 살았던 추억의 문을 조용히 열어 준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라는 듯, 마당 한가운데 서서 어머니의 따뜻한 등을 다시 바라보라는 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