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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산길에서 만난 달팽이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17|조회수20 목록 댓글 0

산길에서 만난 달팽이

비가 그친 뒤의 산길은 늘 새롭다. 젖은 흙냄새가 숲속 깊은 곳에서부터 천천히 밀려오고, 나뭇잎 끝에 매달린 물방울은 햇살을 받아 작은 수정처럼 반짝인다. 사람들은 대개 산길을 걸으며 큰 풍경을 본다. 푸른 숲을 보고, 멀리 펼쳐진 능선을 바라본다. 그러나 어느 날 나는 아주 작은 여행자를 만났다. 손가락 한 마디만 한 달팽이였다.

달팽이는 나무 계단의 옆면을 천천히 기어오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을 작은 생명이었지만, 그 모습은 이상하게도 나를 오래 붙들어 놓았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진지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달팽이의 등에 얹힌 나선형 집은 작은 우주 같았다. 수많은 비바람을 견디며 살아온 시간이 그 안에 고스란히 말려 들어가 있는 듯했다. 사람은 살아가며 집을 짓고, 재산을 모으고, 관계를 쌓는다. 그러나 달팽이는 태어날 때부터 집을 등에 지고 살아간다. 어디를 가든 자신의 삶을 함께 데리고 간다.

달팽이의 걸음은 느리다. 아니, 어쩌면 느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속도를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빨리 가야 한다고 배운다. 더 빨리 성공해야 하고, 더 빨리 도착해야 하며, 더 빨리 결과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산길에서 만난 달팽이는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그 작은 몸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한 걸음이 아니라 한 밀리미터의 이동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삶의 진실을 말해 주는 철학자 같았다. 숲속에는 달팽이보다 빠른 존재가 많다. 새는 하늘을 날고, 다람쥐는 나무를 뛰어다닌다. 바람조차 달팽이보다 빠르다. 그러나 달팽이는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가야 할 길만 바라본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불행도 비교에서 시작된다. 남보다 늦게 간다고 조급해하고, 남보다 적게 가졌다고 낙심한다. 그러나 자연은 비교를 모른다. 소나무는 소나무의 속도로 자라고, 들꽃은 들꽃의 계절에 핀다. 달팽이는 달팽이의 걸음으로 살아간다. 비에 젖은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오르는 달팽이를 보며 문득 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때로는 인생이 너무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아 답답할 때가 있다. 아무리 애써도 제자리걸음인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돌아보면 그 느린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달팽이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작은 돌멩이 하나도 산이 되고, 마른 나뭇가지 하나도 큰 장애물이 된다. 그럼에도 달팽이는 멈추지 않는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가고, 햇살이 뜨거우면 그늘을 찾아가며 살아간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누구에게나 오르막이 있고, 예기치 못한 장애물이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가느냐일 것이다.

나는 한동안 달팽이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길을 비켜 주었다. 혹시라도 내 발걸음이 그 작은 여행자의 길을 막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응원의 말을 건넸다.

“천천히 가도 괜찮아.”

그 순간 그 말은 달팽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산길에서 만난 작은 생명은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서두르지 않는 법, 자신의 속도를 지키는 법, 그리고 느림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숲은 오늘도 푸르고 바람은 나뭇잎 사이를 지나간다. 그 어디쯤에서 달팽이는 여전히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아주 느리게,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는 걸음으로. 어쩌면 삶이란 목적지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만의 속도로 끝까지 걸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산길에서 만난 작은 달팽이는 그렇게 말없이 내게 생태의 지혜와 삶의 철학을 남기고 숲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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