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석아우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55세, 세상을 버리기엔 아까운 나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하늘에도 착한놈들이 별로 없어서인지 요즘에 하느님은 착한사람들부터, 선착순으로 집합시키는 모냥이다.
춘석이는 오랜 내친구 장익화의 친한동생으로 큰화랑에서 판화실장으로 근무한, 판화전문가이며 화가인 친구인데, 최근에 판화를 제작하는 작가들이 없다시피하여, 거의 몇년간을 생활이 되지않은 어려운 생활을 하고살았다. 내게는 일산의 같은동네에 살아서, 자주 만나고 그림도 거래하는 좋은사이의 동생이었다.
건강을 타고났다할만큼,튼실했던,춘석아우는 가끔은 일산에서 걸어서 연신내공방까지 출근하기도하고, 자전거롤 다고 다니기도해서 나는 심근경색"으로 공방에서 홀로 외롭게 죽을줄은 정말 몰랐다. 한치앞을 일수없는인생살이"의 "縮刷版을 보는듯해서, 영,마음이 괴롭다.죽기 며칠전에도 공방에 즈나걸어서 점심을 하자고 헸더니, 마음이 편치않아, 안나온다고 해서, 얼만가의 돈을 보내고, 송광연화가의 평론을 부탁해서, 아무개평론가도 소개한일이 있어서 그만, 그런 사고로 세상끈"을 놓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춘석이량 같이 마시던, 공방근처 시골순대국밥집과 마음착한 누님집식당의 술자리가 어른거린다. 춘석아우야 부디~근심걱정없는 저세상"에서 안식을 누리시게, 우리도 오래지읺아 우리 다같이 그곳에서 만나 한잔할날이 있을걸세,
어제는 태백시에 있는 화가,황선생에게 그림을 돌려드리고 오는길에 고속도로에서 보이는 석양의 누런해를 보았다. 마침 돌아오는길이었기에 한참동안 산허리에 걸린해를 보다가, 기형도 詩人의 추도사를 쓰신 김현선생의 글한줄이 떠올랐다, "춘석아 그곳에도 누런해가 뜨더냐? 지상에 걸린해들은 저녁이되면, 지는법이 아니더냐 지상의 슬픔과 괴로움도 모두가 無化되는곳"이 그곳이라니, 근심과 걱정으로 살던, 이세상"에서의 삶을 접고, 저세상에서 平和와 安息을 누리시길 빈다. 지상의 힘겨운생활은 이런 위로의 글조차 오래 쓸시간이 적어 이만, 총총 줄이네, 다행, 아우의 안식처"청아공원이 일산집에서 멀지않으니, 가끔 술한잔을 부으러 가겠네, 아우가 따르고 친했던 이수언형도 많이 슬퍼하셨네 같이가서 살았던것처럼 술한잔을 나누세나, 정유년의 끝무렵, 30일 아침에 부실했던,동네형 노광래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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