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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이사야 58장~60장 종교에서 신앙으로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6.05|조회수70 목록 댓글 0

이사야 58장~60장 종교에서 신앙으로

 

오늘은 이사야 58장에서 60장을 연구해 봅니다. 회복되는 하나님의 사랑의 기별을 듣는 주의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는 개인적인 정서입니다만, 종교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는 조금 꺼립니다. 제 개인적인 오감상 종교는 '내가 필요한 것을 충족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고, 신앙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나타내 주는 용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라는 용어를 쓰기 꺼려집니다만, 여기 그야말로 종교인과 신앙인의 차이를 이사야 58장이 선명하게 대별해 주고 있기에 그 내용들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이사야 58장: 거짓 금식과 참된 신앙

 

이사야 58장 본문을 보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절부터 5절까지는 거짓 금식에 대한 선지자의 고발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고발하시는 내용이지요. 그다음 6절부터 시작해서 12절까지는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행위, 즉 금식과 참된 신앙생활에 대한 내용입니다. 마지막으로 13절부터 14절에서는 안식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한 기별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종교 생활 (58장 1~5절)

 

먼저 58장 1절부터 5절도 조금 구분됩니다. 우선 1절과 2절이 언급되고 난 다음에 3, 4, 5절에서 금식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이 언급됩니다.

 

이사야 58장 1절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이제는 익숙하시죠? '허물'이란 단어가 나오면 히브리어 '페샤'라는 단어로, 가장 악독한 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고 할 때, 죄라고 번역된 단어는 '하타'로 '빗나갔다'는 뜻입니다. 이사야서와 구약 성경 전체가 그렇게 통일되어 있습니다. '페샤'라는 단어는 우리 한국 성경에서 흔히 허물 혹은 죄과로 번역되고, 죄라고 하는 단어는 흔히 '하타'의 번역이며, 죄악은 '아본'의 번역이라는 것이 이제는 익숙하실 줄 믿습니다.

 

58장 1절에서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며 명령문을 사용하십니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입니까?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모든 '너'를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알아서 적용하곤 하죠. 이 시대 모든 성경 독자들이 이렇게 적용해서 읽는 것은 절대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본문 텍스트 세계 속에는 화자와 청자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야훼께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주시는 사명으로 하시는 말씀이지요.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외치라고,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네 목소리를 뭐 같이 높이라" 하십니까? "나팔 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쇼파르'라고 하는 양각 나팔인데, 이 단어에서 유대인들이라면 금세 하나의 뉘앙스를 느낍니다. 당시 히브리 독자들은 이 말을 듣고 곧바로 나팔을 부는 날인 7월 1일 나팔절을 떠올립니다. 즉, 이 말씀이 종교적 절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7월은 참 거룩한 종교적 행사들이 몰려 있는 달입니다. 7월 1일이 나팔절이고, 7월 10일이 속죄일이며, 7월 22일이 장막절입니다. 그중에서도 유대인들의 종교 생활에서 가장 거룩한 날은 7월 10일 속죄일(대속죄일)입니다. 영어로 'Day of Atonement'라고 부르는 속죄의 날, 히브리어로는 '욤 키푸르'라고 합니다. 그날이 임했다는 사실을 밝혀 주기 위해 '쇼파르'라고 부르는 양각 나팔을 '두둥' 하고 부는 주법이 있습니다. 그렇게 알리는 배경을 깔고 여호와께서 선지자에게 백성들을 깨우치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팔 불듯이 확실하게 외쳐서 백성들의 허물을 깨우치고 죄를 알게 하라고 각성시키는 것이지요. 정신 바짝 들게 말입니다.

 

제가 신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종종 그런 말을 합니다. 목사는 두 가지 기능을 한순간에 다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40분 혹은 50분의 짧은 설교 시간을 통해 두 가지 역할을 다 감당해야 합니다. "나는 아무 살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 하고 흔들리는 사람에게는 "아니야, 너는 정말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하고 세워주는 역할을 해야 하고, 동시에 아무 생각 없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너 왜 그렇게 사냐?" 하고 깨워놓아야 합니다. 한 순간에 이 두 가지 기능을 항상 다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젊을 때는 이런 에너지를 실어서 강하게 하니까 학생들이 저를 조금 무서워하기도 했습니다.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데 제 강의에 힘이 많이 들어갔던 모양입니다.

 

자, 여하튼 지금 58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백성들을 각성시키라는 총론을 제시하신 다음에 2절을 보겠습니다.

 

이사야 58장 2절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여러분, 2절을 잘 읽어 보니까 한국말인데도 어렵죠?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칭찬하시는 말씀 같습니까, 아니면 속이 상하셔서 하시는 말씀 같습니까? 후자입니다. 이것을 새번역 성경으로 제가 한번 읽어 보지요.

 

"그들이 마치 공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않는 민족이나 되듯이 나를 찾으며 나의 길을 알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무엇이 공의로운 판단인가를 나에게 묻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기를 즐거워한다고 한다."

 

즉, 이 백성들은 허물을 짓고 죄를 범하면서도, 정작 자기들은 하나님의 길을 다 알고 그것을 즐거워하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공의를 행하고 규례를 잘 지키는 것처럼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한심한데 정작 당사자들은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내 백성의 허물과 죄를 목소리를 아끼지 말고 나팔 같이 외쳐서 깨우쳐라"고 하십니다. 2절은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망 섞인 표현입니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 언급하시는 것이 바로 금식 이야기입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이사야 58장 3절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규례를 저버리지 않고 공의를 행한다고 착각하는 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 근거로 금식을 제시하는 것이죠. 여러분, 금식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기도하겠다고 작정하고 40일 금식해 보십시오. 어떤 분들은 신문 광고나 경력에 '40일 금식 기도 몇 회'라고 넣던데, 저는 참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경력이 됩니까? 저는 전도사 1년 차 때 일주일 금식을 작정했다가 3일 만에 실패했고, 신학생 때도 5일 금식을 선포했다가 이틀 만에 실패했습니다. 후에도 가끔 필요한 일이 있을 때 금식하지만 정말 쉽지 않습니다. 건강을 위한 금식 말고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위한 금식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금식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불평합니다.

 

여기서 그들의 동기가 다 나타나지요. 금식을 왜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알아봐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즉 종교적 행위를 통해 자기 만족을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 예배도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종교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사람들은 금식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지 않으신다고 불평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본질을 콕 짚으십니다. 금식하면서 동시에 행하는 몇 가지 악행을 가지고 그들의 금식 동기와 내용을 지적하십니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첫째, '오락을 구하며'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금식하는 사람이 3절 전반부에서는 "마음을 괴롭게 하되"라고 했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속죄일에 하는 금식의 내용 자체가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속으로는 오락을 구하고 있으니 마음을 괴롭게 한다는 것과 충돌되지 않습니까?

 

둘째,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입니다. 밑에 나나주(각주)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너희 일꾼들을 압제하는도다"라고 되어 있죠. 소위 종과 노예들을 압제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어원 자체의 의미가 각주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나는 금식한다고 하면서 아랫사람들은 압제하고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4절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가장 경건한 종교 형식인 금식을 하면서 첫째 오락을 구하고, 둘째 주변 사람들에게 억지로 일을 시키고, 셋째 논쟁하며 다투고 악한 주먹으로 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가짜 금식의 세 가지 특징입니다.

 

신약성경 야고보서 3장 17절을 한번 보시죠.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하나님의 심정으로부터 비롯된 진정한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합니다. 정말 사람의 죄를 지적할 때도 그 사람을 살려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샬롬의 열매를 맺도록 하는 방식이어야지 성질을 내고 기분 나쁘게 끌어내리는 게 아닙니다. 참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 교회의 역사는 많은 경우 논쟁의 역사였습니다. 오죽했으면 과거 한 선교사가 떠나면서 "한국 교회는 '예수'와 '그리스도'가 싸우는 교회다"라고 했겠습니까? 교파 이름에 '예수교'와 '기독교'라는 명칭을 두고 서로 싸우니까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요. 우리는 이것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다시 본문 5절로 돌아오겠습니다.

 

이사야 58장 5절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겉모양은 기가 막히게 경건한 척을 합니다. 굵은 베를 깔고 재를 뒤집어쓰며 겉으로만 겸손한 척하고, 속으로는 논쟁하고 다투며 오락을 구하는 모습을 지적하십니다.

 

여러분, 다 함께 레위기 16장 29절을 보시죠.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

 

여기서 '괴롭게 하라'는 것은 몸을 해하라는 뜻이 아니라, 마음을 괴롭게 하며 회개하고 자신을 살펴보라는 뜻입니다. 허물과 죄를 살피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일을 시키지 말고 쉬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58장 1절부터 5절까지만 읽어 봐도, 여기 금식에 관한 규례가 단지 금식 그 자체를 말하기보다 거룩한 종교적 의미를 지닌 대속죄일 맞이와 연관된 메시지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금식 (58장 6~12절)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금식하기를 원하실까? 물은 하루에 세 컵씩 마시고 잠은 얼마씩 자라는 식의 내용이 나올까요? 이사야 58장 6절부터 12절까지 나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구약에 나오는 진짜 복음서 같은 메시지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본문이지요.

 

이사야 58장 6절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여기에 번호를 하나씩 매겨 봅니다.

 

1.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죄짓는 행습에 얽매여 있는 결박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2.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남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멍에를 끌러주는 것입니다.

3.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4. 모든 멍에를 꺾는 것.

 

여기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라고 하면서 제시하시는 내용들이 너무나 인도주의적인 이웃 사랑 이야기 아닙니다. 신앙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답입니다. 7절에서는 그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이사야 58장 7절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6절의 표현이 다소 추상적이고 보편적이었다면, 7절은 아주 구체적인 케이스를 진술합니다. 배고픈 사람 먹이고, 집 없는 사람 재워주고, 헐벗은 자 입히고, 내 가족과 이웃을 외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람 사랑'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신앙은 깊은 산속에 들어가 홀로 도를 닦는 종교가 아닙니다. 혼자서 얼마나 경건하게 양심을 가다듬느냐로 끝나는 종교가 아닙니다. 물론 개인의 경건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역사적 배경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이사야 58장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 돌아올 때를 겨냥해서 주는 기별이기도 합니다. 당시 유대 백성들이 날짜를 정해서 하던 금식이 있었습니다. 다 함께 스가랴 8장 19절을 가보시죠.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여기에 4월, 5월, 7월, 10월 금식이 나옵니다. 이 금식들은 대단히 슬프고 괴로운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유대력 4월 9일에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었고, 5월 10일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7월에는 유대인들을 다스리던 총독 그달리야가 살해당했으며, 10월 10일에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처음으로 포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포로 공동체 시절에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 파괴를 회개하고 슬퍼하며 이 정기 금식들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금식을 하는 가슴 아픈 역사적 교훈은 다 잊어버리고,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행하고, 일꾼들을 압제하고, 서로 논쟁하며 다투고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그런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이웃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종교적인 행위가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과 따뜻함으로 발현되지 않으면, 그것은 성경적 의미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개인의 욕망 충족을 위한 종교 행위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참된 신앙생활을 할 때 주어지는 약속이 8절에 나옵니다.

 

이사야 58장 8절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여기 '치유'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아루카'는 온전한 건강 회복을 뜻합니다. 이웃 사랑이 나의 명예뿐만 아니라 나의 육신과 정신의 건강에도 축복이 된다는 언급이 이미 이사야서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사야 58장 9절

"내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9절 중간에 문단이 나뉘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진정한 신앙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육신적으로 배고픈 사람, 심리적으로 괴로운 사람을 향해 긍휼히 여기는 심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11절의 축복이 임합니다.

 

이사야 58장 11절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그 유명한 '물 댄 동산'이라는 표현이 여기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하시고 채워주시는 삶입니다. 이런 약속을 받게 되는 공동체의 역사적 배경이 12절에 밝혀져 있습니다.

 

이사야 58장 12절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오래 황폐된 곳, 파괴된 기초는 바로 무너진 예루살렘 성과 파괴된 성전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것을 복구하고 회복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처럼 참된 신앙생활의 사례로 금식을 언급하셨지만, 이것은 헌금을 드리든 절기를 지키든 모든 신앙생활에 다 적용할 수 있는 원칙입니다.

 

안식일의 참된 의미 (58장 13~14절)

 

그런데 금식 이야기를 하다가 13절에서 뜬금없이 안식일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사야 58장 13절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도대체 왜 금식 이야기 끝에 안식일이 나올까요? 아까 레위기 23장 32절에서 대속죄일(7월 10일)을 가리켜 "이는 너희가 쉴 안식일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 안식일은 일차적으로 대속죄일 안식일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속죄일에 금식한다고 하면서 정작 안식일로서의 거룩함은 지키지 않고 종교적 행사로만 치르는 포로 공동체를 향한 지적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제7일 안식일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면서 종교 행위의 껍데기만 남고, 정작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잃어버렸습니다. 따라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복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건물을 재건하는 것뿐만 아니라, 안식일을 올바르게 지킴으로써 창조주 하나님 신앙을 제대로 되찾아야 한다는 영적 재건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로 14절의 복을 약속하십니다.

 

이사야 58장 14절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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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사야 59장: 죄의 고백과 하나님의 구원

 

58장에서 참된 신앙의 본질을 언급했다면, 59장은 죄가 가져오는 열매를 묘사합니다. 59장은 뚜렷하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8절은 백성들의 죄가 가져온 결과를, 9~15절 전반부는 백성들의 죄 자복을, 15절 후반부~21절은 하나님의 구원 기별을 담고 있습니다.

 

죄가 가져온 단절 (59장 1~8절)

 

59장 1~2절은 우리가 많이 아는 익숙한 구절입니다.

 

이사야 59장 1~2절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여기서 '죄악'은 히브리어 '아본'이고, '죄'는 '하타'입니다. 기도 응답이 없을 때 하나님이 왜 침묵하시나 원망하지 말고, 먼저 자신을 돌아보며 이 말씀을 적용해 보아야 합니다.

 

3절부터 8절까지는 히브리어 원문으로 읽으면 대단히 문학적이고 아름다운 시적 병행 구절로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59장 3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내려라"

 

손과 손가락(행동), 입술과 혀(말)가 짝을 이루며 인간의 죄가 구체적인 행위와 언어로 나타나고 있음을 고발합니다. 4절에서도 공의와 진실, 소송과 판결이 짝을 이룹니다.

 

5절에서는 이것을 비유로 표현합니다.

 

이사야 59장 5절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죄를 짓는 행위가 독사의 알을 품는 것과 같고 거미줄을 짜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독사의 알을 품고 있다가 그것이 터지면 남을 해치고 자신도 죽이게 됩니다. 거미줄은 왜 짭니까? 남을 걸려들게 해서 잡아먹으려고 짜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종교 행위를 하면서 속으로는 남을 해치려 하고 함정에 빠뜨리려는 자들의 모습을 선지자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잠시 쉬어가는 마음으로 제 목회 시절 경험담을 하나 나누겠습니다. 제가 수원에서 목회할 때인데, 어느 날 지역 목회자 모임에 갔더니 연세 많으신 목사님이 "지난주에 어떤 해군 대령이 찾아왔는데, 내 50년 목회 중 가장 보람 있는 일을 했네" 하며 간증을 하셨습니다. 사연인즉슨, 아내가 바람이 나서 도망을 가 사방으로 찾으러 다니다가 낙심하여 교회를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지를 걷어 올리는데 다리에 칼자국이 가득하며 "그 인간들 만나면 죽이려 합니다" 하더랍니다. 목사님이 깜짝 놀라 그를 붙잡고 밤새 위로하고 달랬는데, 나중에 그 대령이 "지갑을 두고 와서 차비가 없다"고 하여 거금을 쥐여 보냈다는 스토리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 모인 목사 여덟 명 중에 다섯 명이 똑같은 사람에게 똑같은 스토리로 사기를 당한 상태였습니다. 교인들의 정직하고 순진한 마음을 이용해 거미줄을 치고 독사의 알을 품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8절에는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이사야 59장 8절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할 것이라"

 

평강(샬롬)과 정의가 없고 굽은 길을 간다는 이 구조는 양끝에 '평강'을 배치한 교차대칭 구조입니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한다는 말을 뒤집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열매는 결국 '샬롬(평화)'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백성들의 자복과 회개 (59장 9~15절 전반부)

 

9절부터는 주어가 '우리'로 바뀝니다. 백성들이 스스로 죄를 자백하는 내용입니다.

 

이사야 59장 12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언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

 

백성들의 고백 속에 세 가지 죄의 종류가 다 언급됩니다. '허물(페샤)', '죄(하타)', '죄악(아본)'을 다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정의(미슈파트)'가 없고, '공의(쯔다카)'가 없고, '성실(에메트)'이 없고, 정직이 없다고 자복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전신갑주 (59장 15절 후반부~21절)

 

이렇게 자복하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십니다. 이 구절들 때문에 이사야서가 구약의 복음서라고 불립니다.

 

이사야 59장 16절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죄지은 백성들을 위해 중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팔로 능동적으로 구원을 베푸십니다. 17절은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의복에 비유한 유명한 구절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서 6장에서 언급한 '전신갑주'의 구약적 배경이 되는 말씀이지요.

 

이사야 59장 17절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고"

 

하나님께서 공의의 갑옷, 구원의 투구, 심판(보복)의 속옷, 열심의 겉옷을 입고 백성들을 위해 싸우십니다. 18절 원문에는 '행위대로 갚으시다'의 명사형과 동사형인 '게물라'라는 단어가 세 번 반복되며, 원수들을 심판하시고 백성들을 기필코 회복시키시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20~21절에서 구속자가 임할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사야 59장 20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여기서 구속자는 '고엘(기업 무를 자)'을 뜻합니다. 21절에서는 아주 중요한 약속을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뜻입니다.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에서 '과'는 동격을 나타내는 '즉'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누리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바쁘고 험한 현실 속에서 말씀을 사모하여 모인 자들에게 성령의 감동이 함께하는 축복이 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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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사야 60장: 시온의 영광 (구원 찬가)

 

60장은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구체적인 찬양입니다. 그래서 '시온 찬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약속들은 역사적으로 바벨론 귀환 당시에 온전히 성취되지 않았고, 메시아 시대의 십자가 사역을 거쳐 마침내 종말론적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궁극적으로 성취될 소망의 말씀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60장 1~3절)

 

이사야 60장 1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이 명령을 받는 대상은 59장에서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영과 말씀의 약속을 받은 시온의 백성들입니다. "네 빛이 이르렀다"고 할 때 이 빛은 우리 자체에서 나오는 빛이 아닙니다. 바로 뒤의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다"와 병행을 이룹니다. 즉, 내 빛은 내가 소유한 자체 발광이 아니라,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빛'입니다.

 

우리는 달과 같습니다. 태양 되신 주님의 빛을 받아 비추는 반사체일 뿐입니다. 자체 발광체가 아니라는 자기 신분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하라"고 하신 말씀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빛을 반사하라는 뜻입니다.

 

이사야 60장 2절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이 표현은 역사를 단절시키는 종말론적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출애굽 때의 흑암 재앙처럼, 혹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종말의 징조처럼 역사의 비상시기에 어둠이 덮일지라도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 위에 임재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 빛을 보고 3절 말씀처럼 나라들과 왕들이 비치는 광명으로 나아오게 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만민을 구원하는 빛의 도구로 사역하게 된다는 축복입니다.

 

열방이 시온으로 돌아옴 (60장 4~16절)

 

4절부터는 구원의 구체적인 결과가 묘사됩니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아들딸들이 먼 곳에서 돌아오고, 5절에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시온으로 밀려옵니다. 세상의 모든 중심이 하나님의 공동체로 모여들게 된다는 센터(Center)의 약속입니다.

 

6절과 7절에는 미디안, 에바, 스바 사람들이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하고, 게달의 양 무리와 느바요의 숫양이 제단에 드려집니다.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이스라엘을 넘어, 하나님의 교회가 온 세상의 중심이 되어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둘 것을 예언합니다.

 

9절에 나오는 '섬들'과 '다시스의 배들'은 땅끝과 온 세계를 가리키는 이사야서의 독특한 표현입니다. 온 세상이 은금을 싣고 와서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며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당시 이사야 시대에 오늘날처럼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강원도 깊은 산골짝에서 태어난 제가 줌(Zoom)을 통해 여러 성도님들과 이 말씀을 나누고 있는 이 현실 자체가 이미 이 예언의 성취입니다.

 

10절과 11절을 봅니다.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들의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라...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인종적 한계를 넘어서서 이방인들이 교회를 구성하고 성벽을 쌓습니다. 성문이 항상 열려 있다는 것은 모든 제한과 장벽이 사라졌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역사는 다쳐 있던 마음의 문, 관계의 문을 여는 역사입니다.

 

15절에는 역사적 반전이 일어납니다.

 

"전에는 내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전에는' 버림을 당했으나 '이제는' 영원한 기쁨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16절 하반부에는 하나님의 세 가지 이름이 등장합니다.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건져내시는 '구원자(야슈아)', 대가를 다 지불하신 '구속자(고엘)', 그리고 그것을 행할 힘이 있으신 '전능자(아비르)'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영원한 빛이 되시는 여호와 (60장 17~22절)

 

17절부터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대조적으로 묘사됩니다. 놋 대신 금을, 철 대신 은을, 나무 대신 놋을, 돌 대신 철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인간이 줄 수 있는 것과 비교가 안 되는 훨씬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또한 화평으로 관원을 삼으며 공의로 감독을 삼으십니다.

 

그 결과 18절 말씀처럼 다시는 강포한 일이 땅에 들리지 않고, 황폐와 파멸이 없을 것이며 성벽을 '구원'이라, 성문을 '찬송'이라 부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9절과 20절은 완전히 종말론적인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로 넘어갑니다.

 

이사야 60장 19~20절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 21장 23절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는 말씀과 그대로 겹칩니다. 물리적인 빛보다 근본적인 빛이신 하나님 자체가 백성들의 영원한 보상이 되시어, 우리 삶의 모든 슬픔의 날이 끝날 것이라는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이 구절을 우리의 삶의 목표 구절로 암송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다양한 사연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보증입니다.

 

21절에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기업)을 차지할 것이며, 22절 말씀처럼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며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궁극적 성취를 선포하십니다.

 

이 어두운 포로기를 눈앞에 둔 시대에, 선지자는 메시아 시대의 십자가 승리와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적 희망을 바라보며 이 영광스러운 메시지를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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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창밖에 갑자기 포구가 막 쏟아집니다. 이 빗소리가 이제 마칠 때가 되었다고 재촉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사야 58장, 59장, 60장의 첫 절들이 다 너무 유명했습니다.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이 아니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 유명한 구절들의 의미를 마음 깊이 새기며, 주의 임재 앞에 나아가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사야 58장, 59장, 60장을 살피면서,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끝까지 구원하시고 기회를 주시며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의 심정과 의지를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주님이 그런 분이심을 정말 감사합니다.

 

"전에는 이랬지만 이제는 이러하리라" 하시며 끝까지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주님, 2026년 이 시대 전 세계 이곳저곳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그 하나님의 심정과 약속을 동일하게 신뢰하게 하옵소서. 그 약속을 붙잡고 주님 안에 살아감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셨던 구원과 의와 공의와 정의, 그리고 샬롬의 축복을 마침내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하루하루의 삶 속에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여러 가지 여의치 않은 상황 속에서도 늘 말씀을 사모하여 이 자리에 모여드는 소중한 분 한 분 한 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개인의 사정과 처해 있는 현실적 장벽들이 만만치 않을지라도, "이 말씀이 너와 네 자손과 네 자손의 자손에게 영원히 있으리라"고 약속해 주셨던 것처럼, 이 말씀이 그들의 마음과 입에 늘 머물러 성령의 감동으로 승리하는 귀한 백성들 되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이렇게 말씀으로 만나게 해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다음 주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의 현실 삶을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옵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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