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말씀묵상

미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박성하 목사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6.08|조회수49 목록 댓글 0

미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박성하 목사

https://youtu.be/VJNlDIL-ZL0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라 (두 번째 시간): 미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하나님의 말씀 요한계시록 13장 11절을 봉독하겠습니다.

 

> "내가 봄에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라' 두 번째 시간으로, 오늘은 "미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미국 뉴욕시 리버티 섬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미국의 정체성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프랑스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인 에드아르 라불레의 제안으로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고 미국과 프랑스 양국 간의 우호를 다지기 위해서 선물한 겁니다. 이 여신상의 정식 명칭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입니다.

 

그런데 자유의 여신상은 1903년 그 기단부에 엠마 라자루스의 시가 실리면서 전 세계 박해받는 이들의 어머니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라자루스는 이 여신상을 '유랑민들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구세계를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그대들의 지치고 가난한 이들, 자유를 갈망하는 웅크린 무리들, 그대들의 풍요의 기슭에서 버림받은 가련한 이들을 내게 보내라. 세파에 시달려 갈 곳 없는 이들이 내게 오면 나 황금문 옆에서 내 등불을 높이 들리라."

 

이 시는 이민자를 환영하는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은 단순한 한 나라가 아니라 지난 250년 동안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찾아온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이 여신상의 횃불은 어둠 속을 헤매는 항해자들에게는 희망의 이정표였고, 라자루스의 시는 그들에게 이곳이 바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고향임을 알려주는 따뜻한 위로였습니다. 자유라는 고귀한 가치를 지키며 소외된 이들을 가슴으로 품는 미국의 건국 정신은 바로 이 여신상의 횃불과 기단에 새겨진 시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미국의 등장을 주후 100년경에 정확하게 예언했습니다. 계시록 13장은 재림 성도라면 대부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중요한 부분들을 복습하고, 지금 미국이 왜 저렇게 변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미국은 땅에서 올라오는 것으로 상징되었습니다.**

성경 예언에서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 즉 인구가 밀집된 구대륙 유럽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그 반대 개념인 땅은 거주민이 희박한 신대륙, 즉 미국을 상징합니다. 다음에 '올라온다'는 표현은 헬라어 원문의 '아나바이노'인데 마태복음 13장 7절에서는 식물이 자라는 것에 사용됐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폭력적인 정복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평화롭게 성장할 것을 보여줍니다.

 

**둘째, 미국은 어린양 같이 두 뿔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두 뿔 가진 새끼 양으로 묘사했지만, 예언에 나타난 미국을 상징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을 상징하는 새, 즉 국조가 흰머리수리라면 미국을 상징하는 짐승은 아메리카들소입니다. 그래서 아메리카들소로 상징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뿔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 뿔은 미 연방 헌법에 보장된 미국 정부의 두 가지 제도, 곧 시민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상징합니다. 시민의 자유는 정부의 공화주의에 반영되어 있으며, 종교의 자유는 개신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자유의 나라입니다. 첫째는 시민의 자유이고 둘째는 종교의 자유입니다.

 

10여 년 전에 펜실베이니아 집회에 갔다가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을 관광했는데 거기서 자유의 종을 보았습니다. 이 종은 초기에 펜실베이니아 식민지 의회의 의원들을 소환하는 신호로 사용되었고, 1776년 7월 8일 독립선언서가 낭독될 때 이 종을 치며 미국 탄생을 전 세계에 알렸다고 합니다. 이 종에는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는 선언이 새겨져 있는데, 1830년대에 노예제도 폐지론자들이 이것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으면서 '자유의 종'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을 세운 사람들은 종교의 자유와 시민의 자유를 찾아 고향, 친척, 친구, 재산을 다 버리고 신대륙으로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독립 전쟁에서 승리한 후 1787년에 벤자민 프랭클린과 조지 워싱턴 등 건국의 아버지들이 필라델피아에 모여서 헌법 제정 회의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강력한 중앙 정부를 수립하되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지 않도록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 분립 원칙을 헌법에 명시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린양의 뿔 중 하나인 민주공화주의가 탄생합니다.

 

그러나 강력한 연방 정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강력한 중앙 정부가 과거 영국처럼 시민의 권리를 침해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명시되어 있지만, 정부가 침해해서는 안 될 개인의 신성한 권리는 어디 있느냐며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헌법을 만들고 추후 개인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조항들을 추가하기로 약속합니다. 그렇게 연방 정부의 헌법이 발효되고 2년 후에 미국의 권리장전이라고 할 수 있는 수정헌법 제1조부터 제10조까지가 만들어집니다.

 

1791년에 발효된 수정헌법 중에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제1조입니다.

 

> "연방 의회는 종교를 설립하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출판의 자유나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및 정부에 대한 불만 사항을 청원할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이 조항은 유럽에서 수천 년간 지속되었던 정치와 종교의 결합을 끊어 버린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특히 종교에 관해서는 어떤 종교를 믿으라는 법도 만들 수 없고 어떤 종교를 믿지 말라는 법도 만들 수 없게 한 겁니다. 이렇게 해서 어린양의 두 번째 뿔인 종교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받게 된 겁니다.

 

초기 미국은 정말 어린양 같은 모습으로 올라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매력적인 소프트 파워로 세계를 이끌었습니다. 가장 먼저 미국은 브레튼우즈 체제를 통해 달러를 금과 연동시켜 세계 유일의 기축 통화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 경제가 하나의 규칙 아래에서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되었습니다.

 

또한 전쟁으로 파괴된 유럽을 재건하기 위해 마셜 플랜이라는 유례없는 원조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원조가 아니라 유럽의 배고픔을 해결함으로써 공산주의가 침투할 틈을 주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공고히 하려는 고도의 전략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UN을 창설하여 힘의 논리가 아닌 국제적 규범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틀을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나토 같은 군사 동맹을 구축하여 우방국들에게는 안보라는 우산을 씌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진짜 힘은 문화에서 나왔습니다. 교육, 과학, 영화, 그리고 자유라는 가치는 전 세계 사람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억지로 시켜서가 아니라 미국처럼 되고 싶어서 스스로 미국의 방식을 따르게 한 겁니다. 우리는 이것을 '동의를 얻는 리더십'이라고 부릅니다. 정치적으로 미국은 민주주의, 인권, 자유, 그리고 평화라는 양의 말을 사용했습니다. 강압적인 용의 말이 아니라 설득과 포용, 그리고 국제 규범을 중심으로 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여기까지 미국은 참 좋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미국이 변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용처럼 말을 하더라."**

여기 용은 누구입니까?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아담과 하와를 속였던 옛 뱀, 즉 사탄 마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용처럼 말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국가가 어떻게 말을 합니까? 법령과 포령을 통해 말을 합니다. 다시 말해 말한다는 것은 그 국가의 입법, 사법, 행정적 조치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용처럼 말한다는 것은 국가의 법률과 정책이 용의 정신, 즉 강제와 억압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여기입니다. 성경 예언은 이 어린양 같은 짐승이 용처럼 말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매력적인 소프트 파워의 목소리가 강압적인 용의 명령으로 변할 것이라는 겁니다.

 

미국에서 집회를 하면 불과 5, 6년 전만 해도 어떤 분들은 "목사님, 아무리 성경 예언이라도 미국에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 미국이 어떤 나란데요?" 그랬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예언 해석을 부정하는 분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미국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2년 세계적인 지정학 전략가인 피터 자이한이 『세상의 종말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저자는 인류 역사에서 1980년부터 2015년까지는 예외적인 시기였다고 합니다. 이 시기는 풍요롭고 안정적이며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2022년 이후로는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세계화의 종말과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입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세계 질서인 브레튼우즈 체제와 이를 뒷받침한 미국의 소프트파워 리더십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겁니다. 미국이 더 이상 세계 경찰 역할을 수행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자유로운 해상 무역과 공급망이 붕괴되는 탈세계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둘째는 인구 구조의 위기입니다. 중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등 주요 강대국들이 겪고 있는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생산과 소비 시스템을 무너뜨려 현대 문명이 유지해 온 풍요의 시대가 끝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미국의 고립주의와 자급자족입니다. 다른 국가들이 붕괴하는 혼란 속에서도 미국은 지리적 이점과 셰일 혁명을 통한 에너지 자급, 그리고 상대적으로 양호한 인구 구조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렇게 전망합니다. 각 국가나 지역이 자체적으로 물건을 생산하고 식량을 재배하고 에너지를 확보하고 전쟁을 치러야 하는 세계가 도래한다, 즉 각자도생의 시대가 이른다는 겁니다. 이 책은 미래 전망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만, 비평가들도 피터 자이한의 논점들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피터 자이한이 언급한 요인들에 의해 미국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지난 2025년 4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은 판례를 들고 나라별 상호 관세율을 조목조목 설명했습니다. 상호 관세라고 하지만 사실상 특정 국가나 품목에 대한 보복 관세를 때린 겁니다. 중국 등의 적대국뿐만 아니라 동맹국들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미국이 왜 이럴까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이런 말 들어보셨나요? 1992년 미국 대선 때 조지 부시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빌 클린턴은 이 말을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어 승리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US Debt Clock'이라고 하는 미국 부채 현황 시계가 있습니다. 이곳에 미국의 실시간 부채 현황이 표시되는데요. 제가 이 원고를 쓰고 있는 2026년 5월 5일 현재 미국 총 국가 부채는 약 39조 328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경 7,500조 원으로 GDP의 137%나 됩니다. 물론 이자가 나가는 공공 보유 주 부채만 계산하면 약 33조 800억 달러로 GDP의 101%입니다만, 여기에 나가는 이자만 해도 연간 약 1조 달러로 우리 돈으로 1,470조 원이나 됩니다. 미국의 연간 국방비가 9,600억 달러(약 1,400조 원)이기 때문에, 나라를 지키는 돈보다 부채 이자로 나가는 돈이 더 많은 겁니다.

 

또한 이것은 미국 시민 1인당 약 11만 6,516달러, 우리 돈으로 1억 7천만 원씩 빚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아울러 미국의 재정 적자는 약 1조 9,000억 달러(우리 돈으로 2,800조 원)나 되고 GDP 대비 5.8%입니다.

 

이러한 국가 부채와 재정 적자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국은 이자 비용 폭증으로 정부 예산이 고갈되고 국방, 복지, 인프라 등 필수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또한 민간 투자까지 위축되어 장기 성장률이 저하될 것이 분명합니다. 더 나아가 투자자들의 신뢰 상실로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금융 시장 충격과 달러 가치 하락, 또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재정 위기나 글로벌 금융 불안정으로 이어져 경제·사회적 혼란이 커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MAGA, 즉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미국 우선주의가 등장하게 된 겁니다. 그 내용을 보면 세계 패권 유지를 위해 경쟁국 견제, 미국 우선주의로 자국 이익과 국력 회복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불법 체류자 추방 및 국경 장벽으로 국내 일자리 확보, 국가의 기본 관세를 매기고 무역 적자국에는 더 높은 관세를 매긴다는 것입니다. 또 친기업 정책으로 제조업과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교육·문화·언론 분야에서 보수적 가치와 애국심 교육 확대, 군사력 확대와 해외 방위비 분담 재협상을 통해 국방을 강화한다는 겁니다.

 

현재 위기에 빠진 미국에 필요한 정책이고 해야 할 사업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방식입니다. 현재 미국 행정부가 이를 추진하는 방식은 양의 모습이 아닙니다. 확실히 용의 말, 즉 강제, 폭력, 억압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민자의 나라가 이제 이민자를 추방하고 있습니다. 물론 불법 체류자들을 단속해야 하지만 그 방법이 너무 폭력적입니다. 교회나 학교 등 민간 지역까지 단속이 확대되었고, 체포 과정에서도 무장 요원을 동원한다든지 유리창을 파손하고 영장 없는 가택 진입을 시도하며, 이에 항의하는 시민을 살해하는 등 강경한 방식을 사용하여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헥세스 전쟁부 장관은 전 세계 장군 800명을 모아놓고 "오늘부로 새롭게 복원된 전쟁부의 유일한 임무는 전쟁 준비와 승리"라며 "우리의 적들이 어리석게 도전한다면 까불면 다친다는 말 그대로 압도적 폭력과 정밀함으로 짓밟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정말 무시무시한 말입니다.

 

지난 2026년 1월 미국은 전격적인 군사 작전을 통해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과 그의 부인을 체포하여 뉴욕으로 압송했습니다. 마두로가 뭔가 잘못을 했겠지요. 문제는 미국이 더 이상 국제적 규범에 제한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주권 국가의 수장까지 무력으로 생포해 가는 강압적이고 독단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 두어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자면, 지난 2월 28일에 시작된 이란 전쟁도 그렇습니다. 당시 미국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4차 협상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규모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를 포함하여 3,000여 명이 순식간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또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을 통해 전 세계를 뒤흔든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오늘 밤 한 문명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며 다시는 되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다."

 

미국 안에서뿐 아니라 국제 사회는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며 거세게 반발했고, 교황 레오 14세까지 나서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이후에 트럼프 대통령과 교황 레오 14세 사이에 전례가 없는 설전이 벌어졌는데, 그 사건이 갖는 예언적 의미와 성취는 다음 설교 때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2026년 4월 30일 미국 전역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규탄하는 세 번째 '노 킹(No King)'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주최 측은 트럼프 대통령이 강행한 정책들과 이란 전쟁, 이민 단속, 물가 상승 등에 항의하기 위해 800만 명 이상이 참가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주최 측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트럼프는 폭군처럼 우리를 지배하려 한다. 하지만 이곳은 미국이며 권력은 국민의 것이지 왕 노릇 하려는 자들이나 그들의 억만장자 측근들의 것이 아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어린양같이 온유한 외교 수사를 쓰던 미국이 이제 거침없이 용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버드대의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리는 네 가지 핵심 신호가 있다고 합니다.

 

1. **민주적 규범과 제도에 대한 거부**: 헌법, 선거제도, 사법부 독립, 언론의 자유를 공공연하게 깎아내린다.

2. **정치적 경쟁자 즉 야당의 정당성 부인**: 반대 세력을 국가의 적, 반역자, 범죄자로 규정한다.

3. **폭력의 관용 또는 조장**: 정치적 폭력을 눈감거나 정당화하거나 때로 애국적 행동이라고 부추긴다.

4. **언론과 반대자의 자유 억압**: 언론을 적으로 규정하고 비판적 언론인, 법조인, 시민 운동가를 공격하거나 탄압한다.

 

이런 일들이 민주주의 국가이며 자유의 나라로 자타가 인정하던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미국뿐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도, 그리고 전 세계가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에서 보았던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는 종교, 언론, 출판, 집회 그리고 청원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대부분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종교는 어떻게 될까요? 요한계시록 13장 16절로 18절입니다.

 

>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의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재림교회는 전통적으로 짐승의 표는 일요일 휴업법을 의미한다고 이해해 왔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의 첫째 짐승은 다니엘 7장의 작은 뿔과 같은 세력이며 교황권을 의미합니다. 교황권은 다니엘 7장 25절의 예언대로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인데, 하나님의 계명 중에 특별히 넷째 계명인 토요일 안식일을 일요일 주일로 고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미국은 일요일 예배를 강제하는 일요일 휴업법을 제정할 것이며, 이에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매매를 못 하게 할 거라는 겁니다.

 

666에 대해서는 1610년경 독일 개신교 학자인 안드레아스 헬비히가 교황의 라틴어 칭호로 알려진 '비카리우스 필리이 데이(Vicarius Filii Dei)', 즉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라는 글자의 라틴어 숫자의 합이 666이 된다고 처음 제시했고, 1865년경 재림교회의 우리아 스미스가 그의 요한계시록 주석에 인용하면서 재림교회 내에 대중화되었습니다.

 

그러나 2002년 안식일학교 교과를 저술한 대총회 성경연구소 소장인 앙헬 로드리게스 박사는 이 해석에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첫째, 비카리우스 필리이 데이라는 이 칭호가 공식적인지 확실하지 않다. 가톨릭 변증학자인 패트릭 마드리드는 1998년 3, 4월 호인 『엔보이』 표지 기사에서 비카리우스 필리이 데이가 교황의 공식 명칭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둘째로 "이는 한 사람의 수이다"는 '인류의 수'로 번역할 수 있는데,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류의 수를 의미할 수 있다는 겁니다. 분명한 것은 요한이 사람의 수 혹은 인류의 수가 666이라고 했지, 사람의 이름의 합계가 666이라고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셋째, 이름의 합계로 해석할 때 어떤 언어를 사용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은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라틴어 이름의 합계를 666에 대입하는 것은 무리라는 겁니다.

 

로드리게스 박사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666의 의미를 하나님과 분리된 인류의 상징으로 본다. 사람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으며, 그 수는 거룩한 쉼 즉 제칠일 안식일이 없는 인류에 대한 상징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육을 세 번 사용한 것은 강렬한 반역과 하나님으로부터의 전적인 독립에 대한 상징으로 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 것 같다.

 

정리하면 666은 하나님과 분리된 인류와 세속적 제도를 상징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 중복된 육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예배를 조장하는 짐승의 단호한 노력을 암시한다는 겁니다.

 

엘렌 화잇은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정리했습니다.

 

>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위의 표라고 선언하신 제도를 거절하고 그 대신에 로마교가 자신의 최상권의 상징으로 선택한 것, 즉 일요일 주일을 높일 때에 그들은 그로 말미암아 로마교에 충성한다는 표 곧 짐승의 표를 받게 된다."

 

제칠일 안식일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겁니다. 일요일 주일 제도는 교황권이 제정하고 명령한 겁니다. 이것은 단순한 요일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어느 계명을 따르는가가 곧 누구에게 순종하는가를 보여주는 표가 된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린양과 같이 시작된 나라가 용처럼 말하기 시작한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 횃불이 흔들리고 황금문 앞에 새겨진 환영의 시가 지워져 가는 것은 우리를 시험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 작은 것에 타협하고 쉽게 양보한다면, 후일 짐승의 표가 강요되고 이를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매매가 금지될 때 너무나 쉽게 배도하게 될 겁니다. 그때 찬란한 광채로 칭송을 받던 수많은 별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이며, 알곡만 가득한 곳이라고 여겼던 곳에서도 죽정이가 바람의 구름같이 날아갈 겁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우리는 잠시 이 땅에 살다 죽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한 소망을 가진 백성입니다. 죽도록 충성합시다. 작은 것에 타협하거나 양보하지 맙시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킵시다. 그리고 주님 오시는 날 생명의 관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라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기도합시다.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는 눈을 주시고 어떤 권세도 우리를 주님의 계명에서 떼어놓지 못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이 흔들릴수록 반석 되신 주님께 더 굳게 서며, 끝까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충성된 종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