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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일요일 휴업령-예언의 시계가 움직인다- 이충환목사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6.08|조회수45 목록 댓글 1

일요일 휴업령-예언의 시계가 움직인다- 이충환목사

 

https://youtu.be/sU30nxXdx3s

 

 

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지난주에 소개해 드린 것처럼 "일요일 휴업, 예언의 시계가 움직인다"라는 제목으로 일요일 휴업과 관련된 여러 말씀들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 하면서 일요일 휴업에 관련된 다양한 말씀들을 접하고 또 살아가고 있는데, 최근 들어서 나타난 여러 징조들을 중심으로 해서 성경과 예언의 신, 그리고 역사적으로 시도됐던 여러 일요일 휴업령의 사건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우리가 이 주제에 대하여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의 모든 일 가운데 예언의 내용을 주목하고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의미가 있고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냥 도덕적으로나 삶의 위로를 얻는 것만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세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바라보고 또 앞으로 어떻게 될 일까지도 예언적인 내용을 통해 생각하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개인적인 경험과 전체적인 사회적, 국가적인 여러 일들을 우리가 예언의 시기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될지를 준비하는 데 중요한 도움이 되는 것이죠.

 

최근 2026년 1월 8일입니다. 미국에서 유명한 헤리티지 재단이 미국 정부 정책을 제안하기 위해 만든 보고서가 있는데, 여러분들이 보시는 것처럼 『Saving America by Saving the Family』라는 제목으로 향후 250년을 위하여 정부가 어떤 정책을 가지고 이 미국을 이끌어 가야 할 것인가라는 내용으로 이 정책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Saving America by Saving the Family』라는 제목, 너무나 제목이 좋잖아요. "가정을 살림으로써 이 미국을 구하자." 얼마나 멋진 구호입니까? 이 내용 가운데 몇 가지 우리가 좀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고, 그중의 한 가지가 오늘 우리의 주제와 연결이 돼 있기 때문에 살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정책 보고서에서는 몇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첫 번째는 가족 중심 세제 인센티브를 확대하자**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면 미국이 지금 이렇게 국가적으로 어려운 여러 상황을 겪게 된 배경에는 가정을 돌보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죠. 일단 출산율이 너무 낮고, 가정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가족 중심의 세금 인센티브를 주자는 겁니다. 그래서 자녀가 많은 가정에 대해서 세액 공제 혜택을 더 확대하고, '신생아 저축 계좌'라는 걸 만들어서 자녀가 태어나면 정부가 그 계좌에 금액을 넣어 주자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조건에 만족하면 더 큰 혜택을 주어 재정적인 지원을 더 확대하자는 것이죠. 그래서 가족들이 아이도 더 많이 낳고, 그와 같은 재정을 통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도록 하자는 것이 첫 번째 정책 제안입니다.

 

**두 번째는 혼인 및 부모 교육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신설하자**는 것입니다. 역시 가족에 관련된 것이죠. 부부 갈등 관리라든지,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에 대한 부모 교육 등을 정부 차원에서 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인을 장려하고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는 정책들을 입안해야 가정들이 좋은 혜택을 받고 부모들이 자녀들을 잘 양육하여 가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가 이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인데, 일관된 휴식일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입니다. 일관된 휴식일(Uniform Day of Rest)입니다. 우리가 지금 가정에 관련된 여러 모임이라든지 종교 생활을 강화하는 사회문화적인 환경을 조성해 나가자는 거예요. 물론 상업적이고 경제적인 이슈와 관련된 일들이 있습니다. 일시에 문을 닫고 상업 활동을 중단하면 경제적으로 많은 유익함이 있어요. 예를 들어 전기를 사용하는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한 날 전기를 다 사용하지 않으면 훨씬 더 많은 전기를 아낄 수 있죠. 누구는 문을 닫고 누구는 문을 열고 하면 일관성 없이 유지가 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상업적, 경제적인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이 일관된 휴식일에는 가족 중심의 시간을 갖자는 것입니다. 물론 정기적인 종교 모임을 강화하는 것도 이 일관된 휴식일의 개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온라인 문화 규제를 통해 가족의 가치를 지키자**는 것입니다. 온라인 데이트라든지 온라인 음란물에 접근하는 제한을 강화해서, 혼인과 가족 가치를 약화시키는 문제를 규제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휴식일에는 온라인 상업 행위 등도 좀 자제하자는 여러 내용이 이 정책 안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복지 제도를 재설계하자**는 것입니다. 사회 복지 제도를 혼인 촉진과 노동을 장려하는 일로 잘 디자인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혼인과 일자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복지 제도를 재설계하자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는 연방 정책의 영향을 평가하자**는 내용이 있습니다. 연방 정부의 정책이 혼인과 가족 중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평가해서 다시 정책에 반영을 시키자는 것이죠.

 

이 여러 가지를 정책 보고서에 담았는데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휴식일 제도죠. 물론 일요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관된 휴식일을 제정함으로써 상업 활동을 중단하고 가족 중심의 사회를 만들며, 정기적인 종교 활동을 통해 이 사회가 보다도 건전하고 도덕적인 사회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의 미국을 위하여 훨씬 더 좋은 정책이라고 제안을 하는 것이죠.

 

이와 같은 일에 대해서 우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북미지회는 지난 1월 18일 홈페이지에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워싱턴 D.C.에 자리 잡고 있는 이 헤리티지 재단에 대해서 통일된 일관된 휴일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강제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모든 미국인의 종교 자유를 심각하게 무시하는 행위이자 종교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가 권력을 사용해서 종교적 목적을 추진하려는 이런 모든 일들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사실을 명백히 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1월에 있었던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중심으로 성경과 예언의 신, 그리고 역사적인 여러 과정들을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무슨 신호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13장 3절의 말씀입니다.

 

>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사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종교적인 예언 속에는 로마 가톨릭을 중심으로 전 세계 질서가 재편되고 일관된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이 예언되어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른다고 했습니다.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낫고 오히려 예전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자신의 권세를 나타내며, 세계 정부라는 정책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나타내고자 하는 이와 같은 일들이 역사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가적인 일요일 휴업이 되는 것이죠.

 

성경과 예언의 신은 이 국가적인 일요일 휴업령에 관련된 말씀을 우리에게 대단히 많이 말하고 있는데요, 과연 국가적으로 일요일을 강제로 쉬게 하거나 일요일에 교회에 가게 하는 이와 같은 일들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진행되어 왔을까요?

 

첫 번째는 서기 321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칙령을 반포합니다.

"태양의 존귀한 날에 도시의 모든 재판관과 시민들은 쉬어야 하며 모든 작업장은 문을 닫아야 한다."

내가 일요일에 문을 닫든 토요일에 문을 닫든 월요일에 문을 닫든 무슨 상관입니까? 하루도 문을 안 닫을 수도 있고, 자신이 비즈니스를 하고 어떻게 살든 다 개인의 자유죠. 그런데 그런 개인의 자유가 국가적인 권력에 의해서 "어느 날 쉬어야 한다"라고 규정되며 국가적으로 일요일에 쉬라고 하는 이와 같은 일들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서기 321년이라는 것이죠. '태양의 존귀한 날'이라는 특정 요일, 즉 일요일(Sunday)입니다. 당시 로마는 태양의 날에 태양신에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날 다 쉬게 한 것입니다. 물론 이때는 이미 교회가 이 태양의 날에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공식적으로 그 이후에 결의를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은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라오디게아 공의회라는 것을 통해서 교회가 공식적으로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라는 것을 결정하게 되죠. 364년의 발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안식일에 쉬며 유대인처럼 행하지 말고 그날에 일해야 하며 주님의 날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유대인처럼 안식일에 쉬지 말고 그날에 일해야 하며, 주님의 날 즉 주일을 존중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서기 321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일요일에 문을 닫으라고 국가적으로 일요일 휴업령을 반포한 것이 첫 번째라면, 교회는 뒤이어 "일요일에는 모두 다 교회에 가라"는 것을 발표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런 역사적인 내용들을 살펴보면서 미국으로 좀 주목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에는 과연 이와 같은 일들이 어떤 형태로 진행되어 왔을까요?

 

식민지 시대인 17세기를 중심으로 미국이 신대륙으로서 자리를 잡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에 블루 로(Blue Law)라는 법이 선포가 됐습니다. 뉴잉글랜드 지역을 중심으로요. 뉴잉글랜드라는 것은 저기 보스턴이 있는 매사추세츠 등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던 지역을 말하지요. 17세기 뉴잉글랜드 식민지는 청교도 신앙을 사회 질서의 중심에 뒀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 전반에 흐르는 사상은 청교도 정신이었습니다. 미국이 건국될 때 성경에 손을 얹고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는 것도 다 이런 배경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죠.

 

이처럼 청교도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교회 출석과 주일 준수는 공동체 정체성의 일부로 여겨졌어요. 그래서 이 블루 로라는 법은 도덕과 종교 규율을 교회에서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법으로서 규정해 버린 것입니다. 그 핵심은 일요일 준수와 공공도덕 유지였습니다. 강제로 이와 같은 일들을 시행했다는 말이에요.

 

당시의 사회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중심의 신정 통치를 받아들였던 것처럼 청교도 중심의 신정적 사회 구조였습니다. 교회 출석과 주일 준수는 안 하면 이상한, 그 당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정체성의 일부분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교회를 나가던 시대였단 말이에요. 그래서 블루 로는 종교적 경건을 유지하고 공동체의 도덕을 통제하며 사회 질서를 안정시키는 그런 목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첫째로 주일 활동을 철저하게 제한했습니다. 모든 상업 활동이 금지되었습니다. 장사, 거래, 노동이 다 금지되었고 오락, 게임, 스포츠 등도 다 금지였습니다. 매사추세츠 식민지에서는 주일의 불필요한 노동이나 오락을 금한다고 법으로 정했습니다. 둘째는 교회 출석 의무였습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불참하면 벌금을 내야 됐어요. 버지니아 식민지법에는 모든 주민은 주일 예배에 참석해야 된다고 법으로 정했단 말이에요. 또한 음주, 욕설, 외설 행위 등 도덕적 해이를 단속했고 복장 규제까지 포함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를 위반하면 벌금을 물거나 공개 질책을 당했고, 반복해서 위반하면 구금시켜 교도소에 가두기도 했습니다. 이런 블루 로가 미국 사회 초기에 공동체 질서를 유지했고, 일요일에 모두 함께 쉰다는 공휴일의 개념을 처음으로 정립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1888년 '블레어 일요일 법안'이라는 것으로 발전합니다. 헨리 블레어라는 미 상원 의원이 법을 발의했는데, 뉴잉글랜드의 몇몇 주에서만 일부 시행했던 것을 미국 전역 연방 차원의 일요일 휴식일 제도로 확립하자고 상정치 한 것입니다. 일요일을 국가 공통 휴식일로 지정하여 연방 관할 영역에서 상업을 중단하고 우편 및 정부 업무도 일요일에는 모두 중단하고 쉬자는 것이죠.

 

물론 배경이 있습니다. 19세기의 미국 상황은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노동 시간은 점점 많아졌으며 도시화가 점차 심해졌습니다. 그러면서 기존의 청교도 중심의 종교 문화가 다소 약해졌어요. 이에 위기감을 느낀 여러 개신교 종교 단체들을 중심으로 바로 이 블레어 일요일 법안이 상원에 발의가 됐던 것입니다. 이 법안의 목적은 사회가 조금 더 건강한 사회가 되도록 일요일에 문을 다 닫고 교회에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개신교 단체가 찬성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반대했을까요? 1888년이면 정식으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대총회가 조직(1863년)된 이후입니다. 이 법안이 발의되어 청문회(Hearing)가 열렸을 때, 재림교회 대표자로 에이 티 존스(A. T. Jones) 목사님이 참석하게 됩니다. 1888년 미니애폴리스 총회 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전했던 그 존스 목사님이 청문회에 참석한 것입니다. 존스 목사님은 정부가 종교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맞지 않으며 종교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일요일 법은 종교를 강제하는 것이라는 논리들로 강력하게 반대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물론 유대교도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기 때문에 반대했겠지요. 그래서 결국은 이 법안 통과가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블루 로로 시작된 일요일 강제 휴업령은 1888년 블레어 법안을 통해 연방 차원의 법안으로 상정되면서 전 미국을 상대로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언급할 '맥고완 대 메릴랜드' 사건은 1961년도 연방 대법원에 있었던 판결을 이야기합니다. 이 내용은 일요일에 노동 금지, 상업 활동 금지, 스포츠 및 오락 금지, 여행 제한, 사냥 금지, 광고 금지, 외국 신문 반입 금지, 공공질서 위반 및 공공 집회 금지(교회 가는 것 외의 집회 금지), 야외 활동 금지 등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걸 어기면 1불에서 50불의 벌금을 물렸는데, 1960년대 당시에 50불이면 얼마나 큰돈입니까? 이처럼 일요일 준수에 관련된 내용이 법적으로 집행되는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당시에 메릴랜드에서 일요일에 상업 활동을 했던 사람이 결국은 이 법에 의해서 구속이 되고 벌금을 물고 처벌을 받는 일이 있었던 것이죠.

 

우리가 살펴보는 모든 일들은 실제로 미국에서 일어났던 정식 법안과 재판의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미국 헤리티지 재단이 발표한 정책 보고서를 통해서, 과거의 블루 로나 다른 일요일 제한 정책들이 더 확대되고 적용되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좀 살펴보니, 헤리티지 재단은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싱크탱크 재단인데 과거 트럼프 1기 정부 때 이 단체에서 제안한 정책의 약 65%가 실제 정부 정책에 반영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정책 제안이 다 반영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높은 정책 반영률을 보인 단체에서 일요일 휴식일 제도를 제안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가 먼 미래로만 여겼던 국가적인 일요일 휴업령이라는 사건이 우리가 살아가는 어느 시점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마지막 날 사건들』 224페이지에는 이렇게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요일 준수는 아직 짐승의 표가 아니다."

일요일에 그냥 단순히 예배드리러 가는 그 일만으로는 짐승의 표를 받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예요. 오늘날 어느 교회를 다니든지 일요일에 예배하러 간다고 해서 "당신은 짐승의 표를 받은 거야"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거죠. 사람들이 이 우상 안식일을 경배하도록 법령이 내려질 때 비로소 짐승의 표가 될 것입니다. 국가적인 일요일 휴업령이 법령으로 내려져서 강제로 일요일에 예배드려야 하는 그 사건이 일어날 때, 그때 비로소 그것이 짐승의 표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증언 6권』 352페이지 말씀입니다.

"이날의 경배를 강요하는 법령이 온 세상에 선포될 것이다."

사실 저는 이 예언을 함께 연구하고 나누면서, 예언이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며 성취되어 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정치적인 여러 변화들은 우리에게 그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가 과거와는 다른 많은 변화를 겪고 있죠. 그 모든 정치적인 변화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있었던 코로나 팬데믹 사건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라는 문장을 모두가 공유하고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모든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일들을 우리가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코로나 때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었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거나 거부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그럴 수 있다고 다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가 침해받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요.

 

그런데 만약 이 논리가 일요일 휴업법과 관련되어 생각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요일 휴업령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오지 않습니다. 가정 문제, 경제 문제, 기후 문제 등 모두의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다 함께 이날 하루는 쉽시다"라고 이야기하며 다가올 것입니다. 그때 "아니요, 저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신앙의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토요일에 성경대로 안식일 예배를 드립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언제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사건이나 여러 국가적인 조치들을 되돌이켜 보면, 언젠가는 이 일요일 휴업의 문제도 그렇게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요일 준수 강제는 마지막 시험이 됩니다. 개신교회들이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것은 곧 교황권, 곧 짐승에 대한 경배를 강요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주요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교리들을 중심으로 연합하여 국가로 하여금 그들의 법령을 시행하게 하고 그들의 제도를 지지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때, 그때에 가서야 미국의 개신교는 로마 교계 제도의 형상(짐승의 우상)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정치 지형을 보면 미국의 개신교회들은 공화당을 서포트하는 상당한 배경이 됩니다. 선거 때가 되면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여러 선거에서 많은 지지를 보냅니다. 미국의 개신교회들이 이처럼 정치적인 후원과 선거 운동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거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선거에 당선되면 나를 지지한 사람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정책에 반영을 시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13장에 나타난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 관련된 여러 예언들이 마지막 때에 로마 교황권과 배교한 개신교, 그리고 강신술이라는 이 삼중 연합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모든 일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법과 제도를 통해 나타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어떠한 시대인지를 깊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죠.

 

저는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14장 12절의 말씀을 읽고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번 주님께 고정하고자 합니다.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을 통해서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세상의 마지막이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우리에게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무엇을 분별할 것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시기가 어느 때인지를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순간순간 선택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예언을 통해, 말씀을 통해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가 그렇게 분별하여 살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과 구별하시고 저 영원한 하늘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주의 백성으로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뜻을 따라 분별하고 살아가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분별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마치는 참미로 다 함께 찬미가 166장 「주의 나팔 소리」 부르시겠습니다.

 

**(찬미가 166장 - 주의 나팔 소리)**

 

1. 주의 나팔 소리 나도 세상 끝이 이르면 영광스런 아침 동이 트겠네. 구원받은 성도들을 사방에서 모으고 호명할 때 나도 참여하겠네.

(후렴) 성도 명하실 때에 성도 명하실 때에 성도 명하실 때에 나도 거기 가서 참여하겠네.

2. 광명하고 맑은 아침 자던 성도 일어나 영화로운 새 생명을 얻겠네. 주의 택한 모든 성도 하늘 집에 모으고 호명할 때 나도 참여하겠네.

3.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를 위해 일하며 귀하신 그의 사랑 전하세. 이 땅 위에 우리 할 일 모두 마친 후에 호명할 때 나도 참여하겠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바라보면서, 예언의 시계가 마지막을 향해 조금씩 움직이며 가까워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 하늘 아버지, 세상에 일어날 일들을 분별하면서 주님의 뜻을 깨닫는 우리 모두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는 하늘 백성으로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징조를 주실 때 그 사인을 분명히 깨닫는 지혜로운 주님의 백성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이제는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머리 숙여 기도하는 모든 주님의 백성들에게 영원히 함께해 주시옵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함께 마치는 참미로 218장 「내 주님 오시리 확실히」 부르시겠습니다.

 

**(찬미가 218장 - 내 주님 오시리 확실히)**

 

1. 내 주님 오시리 확실히 오시리 내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겠네. 내 구주 예수 확실히 오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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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감사합니다. 장창희 집사님이 오셨나 봐요. 반갑습니다, 집사님 오셨네요. 오늘도 감사드리고 집사님 오늘 얼굴이 좋아 보이십니다. 아유, 감사합니다. 요즘 날씨가 많이 풀렸지요? 제법 따뜻하네요.

 

제가 다음 주에는 팜스프링스 교회에 참석을 합니다. 그래서 다음 안식일 사회는 제가 직접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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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종승 | 작성시간 26.06.09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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