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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이사야 62장 연구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6.12|조회수39 목록 댓글 0

62장 1절.

 

>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여기서 '나'는 누구일까요? 화자는 누구일까요? 역시 선지자입니다. 일차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이 62장도 또다시 크게 보면 세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6절 보시죠. 6절에 보면 동그라미 표 표시가 있죠? 문단 나누기 제일 쉬운 거는 동그라미 찾으시면 돼요. 이거 굉장히 도움이 돼요. 성경 읽으시다가 동그라미가 나오면 거기서 숨 한번 멈추고 읽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62장 1절부터 5절에서 문단이 진행되다가 6절 앞에 동그라미가 있잖아요. 6절부터 쭉 시작되던 문단이 9절에서 끝나고, 10절 앞에 또 동그라미가 있지요. 그러니까 62장은 1절부터 5절, 6절부터 9절, 10절부터 12절로 문단이 나뉘어져요. 그럼 어떤 내용으로 나뉘어지는지를 문단을 보면서 성경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기 다시 시온의 의, 시온은 예루살렘이잖아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애칭으로 부를 때 시온성, 시온산 이렇게 부르잖아요. 그래서 시온의 의, 예루살렘의 구원, 여기도 또다시 의와 구원이 병행되고 있지요. 시온과 예루살렘이 병행되고 있고, 성경은 끊임없이 구원을 의 혹은 공의와 습관적으로 이렇게 병행시키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봅니다. 이 구원이란 단어의 히브리어 '예슈아'라는 단어를 그대로 헬라어 발음으로 옮긴 게 예수예요. 'Jesus', 그 영어 발음으로 옮긴 게 예수예요. 여기 의는 '쯔데크'입니다. 그래서 시온의 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여러분, 예루살렘이 죄를 지었잖아요. 예루살렘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지금 70년 동안 포로로 황폐하게 버려졌잖아요. 그런데 그 예루살렘을 시온이라 부르면서 그 의가 빛나고 구원이 횃불같이 병행될 수 있는 건 역시 뭐예요? 49장부터 55장까지 나왔던 메시아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죠. 희생이 없이 예루살렘의 죄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요. 죄는 반드시 죽음을 요구하게 돼 있으니까 그 모든 희생을 누가 갚으셨기 때문에? 메시아가 갚으셨기 때문에 그래서 이 회복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됐어요? 의롭게 됐어요. 그래서 시온의 의가 빛같이 나고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예루살렘을 위하여 잠잠하지 않고 쉬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제는 구원을 노래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다 마무리되는 미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 이어지는 거지요.

 

2절.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여기서는 뭐와 뭐가 또 이어졌어요? 공의와 영광이 또 병행됐지요. 공의는 앞서 1절에 나온 의하고 똑같은 단어 '쯔데크'입니다. 이방 나라들이 예루살렘과 시온의 공의를 보고,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라고 병행되고 있잖아요. 이 영광이란 단어는 '카보드'라는 단어인데 이건 구약에서 너무 중요한 단어예요. 구약 전체 내용을 압축하면 카보드로 귀결된다고 표현할 만큼 이 영광이라는 단어는 중요합니다. 그래서 공의와 영광이 병행되는데요, 일단 보세요. 이 예루살렘의 공의가 회복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1절로 이야기하면 의가 나타나고 구원이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2절 하단에 보면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예루살렘이, 시온이 하나님께서 정하실 새 이름을 받는다고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이 '새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죠. 다 함께 요한계시록 중간 내용 다 생략하고 요한계시록 2장 17절을 볼까요?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기별 중에서 요한계시록 2장 17절을 보면,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이랬죠, 그렇죠? 요한계시록 19장 11절~12절도 보시죠. 19장 12절에 보면, 11절부터 보겠습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절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절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아, 메시아에 대한 묘사이구나.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한계시록 19장 13절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예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새 이름이에요.

 

여러분, 그러므로 성경에서, 요한계시록에서 제가 다른 성경들을 더 찾지는 않았습니다만 요한계시록에서 새 이름이란 단순히 이름만 바꾼 새 이름이 아니라, 존재와 그 삶과 품성과 인격 그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져서 소위 복낙원 된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체를 뜻합니다. 우리는 그게 어떤 모습일지를 몰라요. 그래서 뭐라고 흔히 표현해요? '신령체' 이렇게 표현하잖아요. 우리가 다 신령체가 될 것을 나타내 주는 압축된 표현이 새 이름입니다. 이름은 존재의 외연이니까요. '김상래'는 저 자신을 나타내잖아요. 근데 김상래가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될 거야라고 나타내는 표현이 새 이름인 거지요. 근데 그 표현이 이미 어디에 나온다고요? 이사야에 나와요. 이사야 62장에 나와요. 그러니까 이사야는 그야말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묘사해 주고 있는 희망과 소망의 절정을 예연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2절에 보면 그게 뭐예요? 예루살렘과 시온이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다" 지금 죄로 말미암아 끌려가서 바벨론 포로 된 기별을 하고 난 다음에 소망의 회복을 이야기하면서, 거기서 돌아올 하나님의 백성들이 새 이름으로 일컬음 바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거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영감하셔서 주신 기별이 아니면 도무지 볼 수 없는, 역사의 전망을 종말까지 내다보는 성령의 감동으로 주어지는 기별이 아닐 수 없는 거지요.

 

3절 보세요.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여러분, 이거 정말 놀라운 표현 아닙니까? 아름다운 관, 왕관이 여호와의 손에 있어요. 여러분, 이 구절은 좀 어려운 구절이에요. 사실 여호와의 손에 왕관이 될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머리에 왕관이 될 것이라 해야 맞지 않습니까? 왕관은 머리에 쓰는 거잖아요. 왜 머리가 아니고 손인가요?라고 질문할 수 있어요. 근데 왜 여호와의 머리가 아니고 여호와의 손의 왕관인가 하면, 이 왕관은 여호와께서 쓰시는 왕관이 아니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씌워 주실 왕관이기 때문에 그렇죠. 하나님께서 씌워 주실 왕관이기 때문에 그 왕관이 여호와의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손에 있습니다. "여호와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그래서 우리가 어릴 때, 고등학교 때 처음 교회 나가서 성경학교 때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요즘 애들은 그런 거 하라 그러면 오글거려서 부르지도 않고 따라하지도 않겠지만, "면류관 받으리 저 요단강 건너가서 면류관 받으리" 너무 수도 없이 불렀어요. 그 조금 지나니까 세련된 성경학교 노래로 "딸기밭에 딸기가 오돌토돌" 모으시죠? 아시는 분 계세요? "잘도 컸구나 잘도 컸구나 저 혼자서 컸을까 아니야 아니야" 제가 우리 집사람에게 처음으로 고백할 때 이 노래 성경학교에서 많이 했습니다. 그 딸기밭에 딸기가 오돌토돌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쁘게 보이는지, 그것을 쳐다보면서 혼자 속으로 막 이랬던 기억이 이 노래만 부르면 생각이 납니다.

 

자, 여하튼 거기 보세요. 여호와의 손에 씌워주실 왕관이 있습니다. 4절, 아까 61장 6절하고 조금 대비되는 표현이 62장 4절인데요.

 

>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씔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61장 6절의 여호와의 제사장과 하나님의 봉사자라고 하는 호칭에 해당되는 땅에 대한 표현이 62장 4절에서 뭐라고 나오는가 하면, 오직 버림받은 자라 혹은 황무지라 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씔라'라 하리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아까 61장 끝에, 61장 10절에서 그 구원의 기쁨을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았다"라고 하는데, 여기 4절에서 헵시바와 씔라가 나오면서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이라고 합니다.

 

5절.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결혼 비유로 이 구원의 기쁨, 하나님께서 주신 보상과 몫의 기쁨, 영광을 묘사하고 있지요. 헵시바 위에 번호가 있죠. 밑에 보니까 "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 그랬죠. 씔라하고 밑에 보니까 "결혼한 여자"라고 돼 있지요. 헵시바란 말 자체가 사실은 여성에게 주는 이름인데요, 다 함께 열왕기하 21장 1절을 보시면 헵시바를 실제로 자기 이름으로 삼은 여자가 있습니다. 열왕기하 21장 1절에 보면, "므낫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헵시바더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헵시바는 므낫세의 어머니 이름입니다. 므낫세의 어머니이면 누구의 아내예요? 히스기야 왕의 아내예요. 히스기야 왕이 헵시바에게서 낳은 아들이 므낫세예요. 와, 그 점이 아이러니해집니다. 헵시바라는 뜻이 이렇게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데, 히스기야라는 개혁적이고 신앙적인 아버지 밑에서, 이런 좋은 뜻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므낫세가 나왔어요. 역사서 배울 때 정말 제가 열왕기하 21장 1절에서 이거 다 설명했었습니다. 그때 전혀 처음 들으시는 것 같지요? 괜찮아요.

 

이 그래서 헵시바라는 이름 자체가 여자의 이름이에요. 62장 4절에서 그 의미가 너무 좋으니까, 그때 더 이상 버림받은 자의 반대 개념으로 헵시바 혹은 씔라라는 이름으로 불러진다고 예언을 한 것이죠. 그래서 한때 제가 젊을 때 아주 노래 잘하시는 분이 새롭게 합창단을 꾸며 가지고 '헵시바 합창단'이라는 아주 유명한 합창단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지휘자가 미국 이민 가면서 헵시바 합창단 찬양대가 좀 흐지부지돼 버렸죠.

 

그다음 6절을 봅니다. 근데 6절부터는 이렇게 62장 1절부터 5절에서 시온의 의와 영광, 시온의 구원의 기쁨에 대해서 이야기한 다음에, 6절부터는 이제는 그 시온의 영광을 전할 파수꾼의 사명 이야기가 나옵니다. 6절.

 

>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이게 무슨 말이에요, 여러분?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이란 말이 뭐죠? 파수꾼이 하는 역할이 회복될 예루살렘을 지킬 파수꾼의 역할인데, 백성들을 대신하면서 하나님께 백성들의 상황을 아뢰어 알려 주기 때문에 여호와로 하여금 백성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여호와를 계속 리마인드시켜 주시는 역할이 파수꾼의 역할이라는 뜻이에요.

 

계속 보세요. 그래서 7절에 아주 재밌는 표현이 나옵니다.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끝에 뭐라 그랬어요?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그랬어요. 이 파수꾼이 하는 일이 뭐예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잊어버리고 편안하게 계시지 못하도록, 파수꾼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기억하시도록 하나님을 쉬시게 하지 말고 하나님께 계속해서 구하는 거지요. 야, 중보 기도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하나님을 쉬지 못하게 하라니요. 파수꾼의 역할이 뭐예요? 백성들에게 경고하는 것만이 아니고, 여호와로 하여금 쉬지 못하시게 하는 것, 이게 너무 아름다운 결정적인 표현이잖아요.

 

그래서 8절.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양식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이 마시지 못하게 할 것인즉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전제로 해서 파수꾼들은 하나님께서 쉬지 못하도록, 이렇게 분명히 하나님께서 언약하셨으니 하나님께 끊임없이 간구하면서 탄원하여 예루살렘을 지키는 역할이 파수꾼의 역할입니다. 와우, 파수꾼의 역할에 대한 이사야의 새로운 정의, 그게 뭐예요? 누구를 주무시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여호와를 주무시지 못하게 하는 역할이 파수꾼의 역할이다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 다음에 10절부터 이사야는 다시 구원을 선포합니다. 10절, 11절, 12절은 선포입니다.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이제 백성들이 돌아오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역사적인 귀환에 대한 선포지요.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여러분,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의 귀환을 준비하라고 하는 겁니다. 돌아올 길을 수축하고 예루살렘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메시아적으로 보면, 즉 예수님 시대와 교회 시대로 하면 뭔가요? 주의 백성들이, 이방인들이 다 교회로 돌아오도록 첫째 나아가야 합니다. 황폐된 교회로 가서 어떻게 해야 돼요? 길을 닦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돼요? 큰 길을 수축해야 합니다. 뭐 해야 됩니까? 돌을 제하여야 합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치(나팔)를 들고 오라고 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이, 세상의 이방인들이 교회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돌을 제하고 길을 수축하고 길을 닦는 작업들을 해야 하는 거지요. 근데 자꾸 가시가 많아지고 덤불이 많아지고 방해가 많아지고 하니, 이런 일들을 함께 이 사역을 진행해 가도록 끊임없이 환기받아야 되는 거지요.

 

11절.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구원, 상급, 보응이 반복되고 있지요. 히브리 문학의 특징입니다. 반복되고 병행시키고 개념을 선명하게 '클래리파이(clarify)' 한다 그러잖아요. 개념을 선명하게 해 줍니다. 예루살렘의 구원이 이르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상급이 이르는 것이고, 상급이 이르렀다는 말이 뭐예요? 보응이 있다는 뜻이다라고 이렇게 선명하게 설명하고 있지요.

 

12절 이제 결론을 내립니다.

 

>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

 

거룩한 백성, 한자 두 자로 줄이면 뭐예요? '성민(聖民)'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두 자로 줄이면 뭐예요? '선민(選民)'입니다. 그리고 그 선민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원래 기대에 따라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한 선민이 무슨 백성이 되는 것이었어요? 성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죠? 이게 출애굽기의 핵심 개념이에요. 거룩한 백성, 출애굽기 19장에 하나님께서 언약하실 때 거룩한 백성, '고이 카도쉬'라고 나옵니다. 출애굽기 19장 6절에 나오잖아요. 성민을 삼고 싶은 게 하나님의 뜻이었는데, 선민이 타락한 백성이 됐어요. 그래서 출애굽을 시켜 놨는데 바벨론에 끌려갔어요. 바벨론에 끌려갔는데 하나님께서 메시아적 사역으로 다시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는 것, 끝내 성민 삼겠다는 거지요. 그 결론이 62장 12절에서 "사람들이 너를 거룩한 백성이라" 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교회가 어찌 됐든 간에 거룩을 상실하면 본질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은 선하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다 좋지만,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핵심 개념이 뭐예요? '거룩'이거든요. 그래서 이 책을 세상 책하고 다르다는 뜻으로 거룩한 책, 줄이면 뭐예요? 성경(聖經)입니다. 하나님의 예배드리는 장소가 다른 장소하고 다르다는 뜻으로 줄여서 거룩한 장소, 성소(聖所)입니다.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날이 다른 날하고 같지 않다고 해서 성일(聖日)입니다. 이 무리들이 다른 무리하고 구별됐다고 하는 뜻으로 성도(聖徒)입니다. 이 다 성(聖) 자가 거룩할 성 자입니다. 마침내 회복될 백성을 거룩한 백성이라, 그다음 뭐라고 불러요? 그 뒤에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

 

여러분, 이 순서를 반대로 거꾸로 한번 해 보세요. 예루살렘은 원래 버림받아야 되고 잃어버림을 당해서 멸망해야 할 자들인데, 그렇죠? 그런데 이 순서를 떠올리면 버림받지 않고 하나님이 찾으셔서 멸망시키지 않고 구속하여 그 결과로 거룩한 백성이 된 거죠. 그래서 이사야 62장 12절은 기록된 순서를 거꾸로 읽어 보면 하나님의 구원 과정이 나타납니다. 여기 기록 순서는 거룩한 백성이 맨 앞에 나옵니다. 결론이 거룩한 백성이니까요. 그 백성이 하나님의 구속을 받은 백성이에요. 그런데 그들은 사실은 찾은 바 된 백성이고, 그들은 원래 버림받게 된 백성이에요. 근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고 찾아서 멸망시키지 않고 구원하셔서, 그래서 그들이 무슨 백성이 된 거예요?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광의 예루살렘, 영광의 시온,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찬양을 61장과 62장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비전이 이미 이사야에 의해 주어져 있는 거지요. 정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희망의 역사, 약속의 미래, 이것이 성경을 읽는 백성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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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심 요약정리

 

이사야 61장과 62장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유대 백성들의 역사적 해방을 넘어, **메시아를 통해 완성될 최종적인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비전**을 삼중(역사적·메시아적·종말론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의 절정입니다.

 

### 1. 이사야 61장: 메시아의 임재와 복음 선교 사역

 

*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복음 사역 (1~3절):** 주 여호와의 영(성령)이 메시아에게 임하여 가난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 되고 갇힌 자에게 자유를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첫 설교(눅 4장)의 본문으로 삼으신 구절로, 복음의 본질이 사람을 살리고 자유케 하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 (2절):** 초림 예수님은 '은혜의 해'를 선포하시기 위해 본문을 접속사 앞에서 끊어 인용하셨으며, '보복(심판)의 날'은 재림 때 성취될 영적 질서입니다.

* **회복과 새로운 신분 (4~9절):** 무너진 기초가 회복되고, 백성들은 단순히 '선민'을 넘어 이방을 향한 '여호와의 제사장', 즉 '하나님의 봉사자'로 일컬음을 받게 됩니다.

* **구원의 옷과 공의의 겉옷 (10~11절):** 하나님의 구원은 대충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의 희생을 통해 '정의와 공의'가 완벽히 구현된 옷이며, 이는 신랑 신부가 단장한 것 같은 최고의 결혼 잔치의 기쁨으로 묘사됩니다.

 

### 2. 이사야 62장: 시온의 영광과 파수꾼의 중보 사역

 

* **의와 구원의 분출 (1~5절):** 메시아의 희생으로 예루살렘의 의가 빛같이,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전 존재가 완전히 변화된 백성들에게 '새 이름'을 주시며, '헵시바(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 '씔라(결혼한 여자)'라 부르시며 친히 기뻐하십니다.

* **여호와를 쉬지 못하시게 하는 파수꾼 (6~9절):** 성벽 위의 파수꾼(말씀 사역자)들은 밤낮 잠잠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구원을 이루시기까지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며 쉬지 못하시게 하는' 강력한 중보 기도의 사명을 가집니다.

* **구원의 길 수축과 성민(聖民)의 결론 (10~12절):** 만민이 돌아오도록 가시와 돌을 제하고 길을 닦아야(복음 전도) 합니다. 결론 구절(12절)을 역순으로 읽으면 [버림받은 자 ➡️ 찾은 바 된 자 ➡️ 구속하신 자 ➡️ 거룩한 백성(성민)]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은혜와 사랑의 여정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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