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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여행? 맛집? 제발 그만 다니세요 | 이재철 목사 핵심설교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6.12|조회수48 목록 댓글 0

예전에 제가 호주 시드니를 갈 때마다 만나 뵙는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제 학교 직계 대선배님이셔서 그분이 늘 제 숙소를 찾아오셔서 격이 없는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분을 시드니에서 마지막으로 뵌 것이 10년 전인데, 그때 그분의 연세가 80세였습니다.
https://youtu.be/l_XsJNG40rU
80세 되신 장로님이 저를 만나서 이야기하던 가운데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저는 매일 저녁 5시면 저녁 식사를 끝냅니다. 그리고 밤 8시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듭니다. 매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골프를 칩니다. 일부러 한인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집을 정하고 낮에는 사람도 만나지 않고 독서와 산책으로 소일합니다. 매일 이렇게 살다 보니까 제 나이가 80살인데도 도무지 피곤하지가 않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제가 장로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장로님보다 한참 어리지만 저도 장로님처럼 살면 도무지 안 피곤하겠습니다. 그런데 장로님, 장로님께서 지금처럼 계속 살아가신다면 장로님은 장로님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십니까? 어느 순간에 부지불식간에 장로님의 코끝에서 숨이 멎을 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가시면 그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시드니를 떠나는 날 아침에 다시 숙소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장로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생 말기를 맞은 제게 인생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생각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전에 대학 입시 학원을 만들고 영어 학습서를 만들어서 명성을 떨쳤던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쓴 영어 학습서가 얼마나 유명했던지 저도 고등학교 때 그 학습서로 영어를 공부했고 제 또래, 제 위, 제 아래 거의 모두 90% 이상이 그 학습서를 썼습니다. 그분이 연세가 든 뒤에 건강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매달 건강 잡지를 발간하면서 건강에 대한 단행본도 여러 권 발행했습니다. 건강에 대한 그분의 강연 내용이 얼마나 영향력을 미쳤는지 서울에서 발행되는 전국적으로 발행되는 모 일간지는 매 주일 한 번씩 한 면 전체를 그분의 칼럼으로 채웠습니다. 건강 칼럼이었습니다. 그분은 그 건강 칼럼을 통해서 자신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장수하는 사람이 되어서 기네스북 기록을 경신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분의 주장도 시드니에 사시던 장로님하고 비슷했습니다. "저녁은 5시에 먹어라. 잠은 8시에 자라. 그래야 자는 동안에 위장이 깨끗하게 청소가 된다. 잠은 새벽에 깨라. 그리고 하루 종일 낮 동안에 일정한 시간을 두고 정기적으로 운동을 해라. 그러면 누구나 장수한다." 그분의 가르침대로 하려고 하면 모든 직장인은 사표 내야 합니다. 어느 직장인이 5시에 저녁 먹고 8시에 잠자리에 들 수 있습니까? 이웃이 어떻게 되든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상관없이 오직 네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올인해라. 이게 핵심 내용이에요. 고작 몇십 년 살다가 썩어 문드러질 이 육체의 고깃덩어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올인하는 인생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분의 글을 계속 읽으면서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장수해서 기네스 기록을 갱신하겠다고 호언장담하셨던 그분은 1999년도 86세를 일기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이 교통사고로 숨이 멎는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기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는 2013년도에 전립선 말기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34차례 방사선 치료를 받고 2년에 걸친 호르몬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과정 중에 강원도 홍천에 있는 요양소에서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다. 그 요양소는 입소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느 방에서 명상에 대한 프로그램이 열린다고 공지가 되어 있길래 도대체 명상 같은 것은 어떻게 하는 건가? 그 방을 찾아가 봤습니다. 참석자는 저를 포함해서 남자 청년 한 명, 여자 청년 한 명, 중년 부인 모두 다 네 명이었습니다. 남녀 청년과 중년 부인이 앞자리에 앉고 저는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여성 강사가 앞자리에 앉은 세 분들에게 "언제 행복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무도 대답을 못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여성 강사가 자기 제일 오른쪽에 있는 남자 청년 눈을 들여다보면서 '너 대답 안 하면 안 돼' 하는 표정으로 "청년은 언제 제일 행복하십니까?" 물었습니다. 이 청년이 한동안 침묵하다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강사가 "제가 기다릴게요. 생각해 보세요." 그랬더니 또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이 남자 청년이 "일이 잘 풀릴 때가 행복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강사가 그 옆에 있는 여성 청년에게 "당신은 언제가 행복합니까?" 물었습니다. 이 여성 청년은 남성 청년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으니까 대답을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질문이 주어지자마자 "맛있는 것을 먹을 때가 행복합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중년 부인에게 강사가 물었더니 "공기 좋은 숲속을 트레킹할 때가 행복합니다."라고 물었습니다. 강사가 뒷줄에 있는 제게 물었습니다. "언제 행복하십니까?" "제 삶에 절대적인 의미를 느낄 때 저는 행복합니다."

여러분, 현대인의 삶은 몇십 년 전에 이 땅을 살던 사람들의 삶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옛날에는 하루 종일 걸어도 닿지 못할 거리를 지금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지하철을 타거나 자동차를 타고 출퇴근을 합니다. IT 기계의 발달로 한 사람이 처리하는 일의 양은 수십 년 전에 수십 명이 처리하던 일을 혼자서 합니다. 젊은이들이 그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쌓아야 할 스펙은 끝이 없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니는 그 삶의 소용돌이가 나의 행복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지, 행복이 도대체 무엇인지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있어서 행복은 뭡니까?"라고 질문을 던지면 답을 못 하거나 행복이 전혀 아닌 것을 행복이라고 답합니다.

젊은 남자 청년은 일이 잘 풀릴 때 행복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것도 한참 생각한 뒤에. 여러분, 인생을 살아보니까 어떻습니까? 일이 잘 풀릴 때가 많습니까? 일이 안 풀릴 때가 더 많습니까?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하자고 하면 인생은 일이 풀리지 않는 끝없는 여정입니다. 그 남자 청년이 일이 잘 풀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한 그 청년은 평생을 불행하게 살 것입니다. 여성 청년은 맛있는 것을 먹으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맛있는 것을 사 먹을 수 있는 경제적인 여력이 없어져 버리면 어떡하죠? 아니 돈은 있는데 맛있는 것이 옆에 있는데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병원에 심방 가 보십시오. 돈이 태산처럼 쌓여 있는데 문병 온 사람들은 맛있는 것 먹는데 한 숟갈 한 젓가락도 못 먹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만약에 그 여성 청년이 그런 형편을 맞는다면 불행하게 살 것입니다. 중년 부인은 공기 좋은 숲속을 트레킹할 때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서울은 중국발 미세먼지 황사 때문에 일주일씩 창문을 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공기가 좋은 숲속을 트레킹해야 행복한 여자가 서울에 살면서 일주일 동안 창문도 못 연다. 우울하겠죠. 공기가 좋은 숲속을 트레킹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창문을 못 열면 대단히 우울할 것입니다. 병들면 어떻게 해요? 아니 병들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의 육체는 쇠퇴합니다. 나이가 들면 병들지 않아도 트레킹 더 이상 못 합니다. 그 여인이 나이가 들어서 트레킹을 하지 못하는 육체가 될 때 황혼처럼 가장 아름다워야 할 그 여인의 만년은 불행으로 끝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 있다가 내일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는 가변적인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물질적인 것 속에서 생성되는 것도 아닙니다. 행복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도 아닙니다. 행복은 삶의 절대적인 의미 속에서 둥지를 트는데 인간의 삶의 절대적인 의미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만 주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젊은 시절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 연행, 투옥시키는 것을 천직으로 삼던 교회의 대적자였습니다. 그날도 예루살렘에서 213km나 떨어져 있는 다메섹에 있는 크리스천들까지 색출해서 예루살렘으로 연행해 오기 위해서 다메섹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다가 길 위에서 주님의 빛에 사로잡혀 꼬꾸라졌습니다. 주님께서 그 길 위에서 바울을 사로잡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바울 혼자 있지 않았습니다. 바울 혼자 있었다고 하면 또 별로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없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길 위에는 바울의 일행이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러 사람들 가운데에 주님의 구원은 마치 핀셋으로 집어내듯이 바울 한 사람만 집어내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구원 못 받았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바울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는 죄인 중에 괴수였습니다. 그 일행 중에서 바울이 가장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색출해서 연행하는 우두머리였습니다. 그날도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는 그 체포영장을 바울이 손에 쥐고 가고 있었습니다. 가장 비도덕적이고 가장 비윤리적인 인간인데 하나님께서 그 인간 한 명을 핀셋으로 집어내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만을 구원하셨을까?" 바울이 주님의 은혜 속에서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그가 찾은 믿음의 답이 이렇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을 새번역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내가 뭘 잘해서, 내가 뭘 잘나서,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 행동을 해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도 전에 온 세상이 혼돈하고 온 세상이 흑암에 묻혀 있을 때 그때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아시고 나를 선택하셨다는 거예요. 그때 나를 사랑하셨다는 겁니다. 그때 나를 흠 없이 거룩하게 세우셨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을 때에 다메섹 도상에서 그 일행 가운데에 자기만 하나님께서 뽑아내셨다고. 이것이 바울이 얻은 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도 전에 바울을 먼저 보시고 그 바울이 아득한 미래에 태어날 때 그 바울을 기억하시고 그 바울을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에 핀셋으로 뽑아내신 것. 이것이 하나님과 바울의 관계대요. 바울이 그 사실을 알고 창세전부터 자기를 택하시고 자기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께 자기의 삶을 드릴 때 그 바울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자기를 선택하시고 사랑하신 그 주님께 자기의 삶을 드릴 때 그 주님 안에서 자기 삶이 절대적인 의미를 지닐 때 그때 바울이 누렸을 행복을 누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 영상에서 *이재철 목사*가 전하는 핵심 주제는 **'진정한 행복의 근원과 삶의 절대적 의미'**입니다.

강연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세상적 가치관의 한계 (0:00 - 13:33)**: 단순히 육체의 건강을 관리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일이 잘 풀리는 것만을 행복의 조건으로 삼는 삶은 가변적이며, 결국 허무함과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현대인이 추구하는 무한 경쟁이나 스펙 쌓기 또한 본질적인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합니다.

2. **행복의 본질 (13:33 - 14:18)**: 행복은 외부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며, **'삶의 절대적인 의미'**를 깨닫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3. **절대적 의미의 발견 (14:18 - 19:11)**: 인간 삶의 절대적인 의미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스스로를 '죄인 중의 괴수'라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창세전부터 하나님께 택함받고 사랑받았음을 깨달았을 때 자신의 삶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창조주와의 관계 안에서 비로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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