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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부부 관계 이렇게 하면 좋아집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6.14|조회수102 목록 댓글 0

부부 관계 이렇게 하면 좋아집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https://youtu.be/am74w8TW0M8

 

 

제가 가을이 오면 아주 마음이 이렇게… 그런데 제가 더 슬픈 거는 여인들이 팔뚝을 보여주질 않아요. 더 이상 제가, 왜냐하면 제 아내 팔뚝에 반해서 결혼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힘들고 우울할 때 와이프의 팔뚝을 가만히 만지면 마음이 되게 편해져요. 더 막 힘들고 그럴 때는 제 와이프 허벅지를 베고 이렇게 자요, 밤에. 그러면 너무너무 마음이 편해지죠. 그래서 오늘 제목을 제가 원래 이 제목이 아니고, "만질수록 커진다" 이렇게 제목을 붙였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나는 사랑이 커지는 겁니다, 삶의 의욕이 커지고 막 이랬는데 말이죠. 그런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받아들여서 이렇게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많이 중요한 데서는… 그 부인, 저 오영실 아나운서 어딜 찾아… 왜 남의 부인을 바꾸고 그러세요? 저기 진양혜 씨인데요. 아, 그러세요? 그분은 차인표 씨 부인 아니세요? 신애라 씨? 미안합니다. 이게 제가 파마하면서 잡지를 너무 한꺼번에 많은 걸 봐서 동시에 막 헷갈려요.

 

그래서 그 얘기를 했어요. 자기 와이프랑 우리 형님, 제가 생각해도 참 비슷하대요. 어쨌든 주로 이렇게 만지세요. 아, 만지는 거예요. 요즘도 잘 만지세요? 사실 오늘 새벽에도 만지긴 했는데 구체적인 위치를 얘기… 아니, 그런데 사람들이 만진다고 생각하면 항상 특정 부위만 자꾸 생각을 하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이따 설명드리겠지만 만져야 될 부위는 따로 있어요.

 

그런데 왜 우리가 만져야 되냐면 사람들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뭐가 제일 중요하냐 보니까, 상대방의 정서를 공유해 주는 게 제일 중요해요. 21세기 개인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냐면 창의력과 설득력인데, 창의력은 제가 다음 주에 설명을 해드릴 테고, 오늘 핵심은 설득력이에요. 내가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상대방을 설득할 능력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에요. 그런데 21세기 들어 사람들이 얼마나 복잡해졌냐면요, 옛날에는 돈으로 설득할 수 있었고 권력으로 설득할 수 있었는데 요새는 아무도 그런 거에 설득 안 당해요.

 

심리학에 너무너무 재밌는 실험이 있어요. 너무 재미없는 영화를 보여주고 이렇게 그룹을 둘로 나누어서, 여기 계신 분들한테는 "이 영화가 너무너무 재미없지만, 밖에 나가서 이 영화 너무너무 재밌다고 열 사람한테 이야기하고 오십시오. 그러면 100달러씩 주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기 있는 사람들한테는 똑같이 "나가서 열 사람한테 재밌다고 얘기하고 오십시오. 그러면 1달러씩 주겠습니다" 그랬어요.

 

다 영화를 봤어요. 밖에 나와서 영화 재밌다고 딱 얘기하고 왔습니다. 100달러 다 주고 1달러 다 줬어요. 그런데 나가려고 그러는데 제가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영화가 정말 그렇게 재미없던가요?" 그렇게 물어봤더니 두 그룹 중에서 한 그룹에서 "아니요, 영화 재밌었어요! 정말 재밌었어요" 그러는 거예요. 어느 쪽이었을까요? 100달러 받은 쪽이었을까요, 1달러 받은 쪽이었을까요?

 

그렇게 간단하면 안 물어보죠. 1달러 받은 사람이 그런 거예요. 심리학자들도 놀란 거야.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봤더니, 100달러 받은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왜? 아니, 내가 사람 죽이는 거짓말도 아니고 재미없는 영화 보고 재밌다고 얘기하는데 100달러나 주니까, '아이고, 언제든지 또 불러주세요. 아주 좋아요' 하는 기분인 거죠.

 

반면에 1달러 받은 사람들은 기분이 팍 상한 거예요. 왜? 말도 안 돼, 내가 고작 1달러 받으려고 거짓말을 했단 말이야?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열 명한테나? 자존심이 팍 상한 거예요. 여러분, 낮에 기분 나쁜 일 있으면 밤에 잠이 잘 안 오잖아요. 왜 잠이 안 오는 줄 아세요? 기분 나쁜 일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찾아내느라고 잠을 못 자는 거예요. 아무리 기분 나빠도 원인이 분명하면 잘 자요. 그런데 아무리 사소해도 앞집 저 아줌마가 날 보고 "흥!" 이러고 갔단 말이에요. 그러면 밤새 잠 못 자고 고민하는 거예요. '왜 저러지?' 원인을 알 수 없으니까요.

 

1달러 받은 사람들은 지금 잠을 하나도 못 자게 생긴 거예요. 아니, 말도 안 돼. 내가 고작 1달러 받으려고 이 비도덕적인 짓을 했다고? 이 열 받는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은 딱 한 가지예요. 어떻게? '정말로 그 영화가 재밌었다'고 자기 생각을 바꿔버리는 거예요. 봐봐요, 이게요 배가 고플 때는 이런 현상이 안 일어나요. 먹고살아야 하니까 돈 많이 준다고 그러면 다 따라 하고 다 시키는 대로 해요. 권력이 높다 그러면 다 해요. 하지만 요즘은 굶어 죽는 사람 없거든요. 대통령도 마음대로 안 된대요, 사람들 마음이.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사람들을 설득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거냐, 이게 구멍가게 하나를 하더라도 남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움직이는 능력이 없으면 경쟁력이 없어요. 그럼 그 능력이 어떻게 생기느냐 이거예요. 이게 엄마 아빠들의 지금 문제뿐만이 아니고, 엄마 아빠들의 설득력에 따라서 자녀들도 그 능력을 배운단 말이에요. 우리 자녀들이 자라나서 훌륭한 사람이 돼야 될 거 아니에요? 훌륭한 사람이라는 건 뭐예요? 남들한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게 훌륭한 사람인데,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거죠.

 

근데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뭐냐면, 사람들이 논리가 정연하면 설득될 것이라고 착각을 해요.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오는 그 아주 말 잘하는 사람들 보고 있으면 말은 정말 잘하거든요. 근데 듣고 나면 반응이 어떻게 되냐? 논리로 완전히 굴복당하잖아요? 그럼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게 되냐면 이렇게 돼요. "그래, 네 말 다 맞아. 근데 나 너 싫어." 이렇게 된다고요. 그러니까 내가 이해는 했는데 받아들이지는 않아요.

 

이게 무슨 얘기냐면, 논리라는 건 물이에요, 물. 물이 흘러가려고 그러면 수도관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 수도관이 도대체 뭐냐 이거예요, 이게. 바로 정서를 공유하는 '정서 공유의 능력'이 이 수도관이에요.

 

여러분 보세요. 어떤 사람 만나면요, 아침에 처음 만나면 되게 기분 좋은 사람이 있어요. 근데 어떤 사람 만나면 되게 기분 나쁜 사람이 있어요.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하면 아침에 그 인간 만난 것 때문에 그런 경우가 있죠? 있어요, 없어요? 있죠. 그게 무슨 차이인 줄 아세요? 정서를 공유해 주고 안 해주고의 차이예요. 그 비밀이 어디 있느냐, 그걸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아이들이 발달할 때요, 이런 정서를 공유하는 기본 기술을 배워요. 보세요, 이게 지금 기쁜 일이 있을 때 정서를 공유하는 기본적인 행동의 패턴이에요. 기쁜 일이 있으면 서로 껴안고, 슬퍼도 껴안고 이런 것이 문화예요. 여러분, 문화라는 걸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문화란 정서를 공유하는 집단적인 습관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자연스러운 사람이 기분 좋은 사람이에요. 그렇다고 뭐 아무나 껴안으면 안 되지만, 정서 공유는 아주 미세한 부분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보세요.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뭘 배우냐면 정서를 공유하는 기술을 배우는데, 이게 발달심리학적으로 여러 가지 패턴이 있어요. 이게 엄마고 이게 아기예요. 그러면 엄마하고 아기하고 처음에 태어나면 어떤 방식의 인터랙션(interaction)을 하냐면 눈을 맞춰요. 그걸 아이 콘택트(Eye contact)라고 해요. 지난번에 말씀드린 '얼굴 보고 리액션 하기', 이거밖에 안 해요, 눈을 맞추고. 근데 여기에 엄청나게 중요한 과정이 일어납니다. 무슨 과정이 일어나냐면, 엄마와 아기가 뭔가 공유하는 게 생겨요.

 

여러분 보세요. 지금 제가 "사랑"이라고 얘기하면, 여러분들이 이해하시는 사랑하고 제가 이해하는 사랑하고 그게 같다고 누가 보장해 줘요? 그렇죠? 여러분, 우리가 지금 제가 설명을 하면서 많은 얘기를 해요. 무지하게 어려운 얘기지도 하고 막 그러거든요. 근데 그걸 여러분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누가 보장을 해줘요? 아무도 보장 안 해줘요. 그 기원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 이거예요. 자, '사랑'이란 단어를 저 사전에 찾아보면 뜻이 나오는데, 그걸 우리가 읽으면서 이해를 한다고 하지만, 그러면 그 사전을 쓴 사람의 의도하고 내가 이해한 거하고 같다고 누가 보장을 해줘요? 아무도 보장 안 해줘요. 똑같은 영화를 봐도 보는 게 다르더라고요. '아, 저 사람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이걸 알잖아요.

 

도대체 이 소통과 이해의 근거가 어디 있냐 이거예요. 이게 바로 그 기원이 여기에 있는 거예요. 이게 뭐냐? 서로 피부가 맞닿는 경험이에요. 지금 무지무지 어려운 얘기거든요. 근데 지금 무지무지 쉽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세상에 세 종류의 교수가 있어요. 어려운 얘기를 되게 어렵게 하는 교수, 이거 대부분의 교수가 그래요. 근데 어려운 얘기를 되게 쉽게 하는 교수, 이거 되게 드물거든요. 저 같은 사람이죠. 근데 진짜 힘든 교수들이 있어요. 되게 쉬운 얘기를 무지하게 어렵게 하는 교수들. 이 스킨십과 소통의 영역을 대학원에서 엄청나게 어렵게 얘기하면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라고 해요. 어려워요, 어렵죠? 이렇게 학문적으로 접근하면 어려운데, 엄마하고 아기하고 만나지는 이 스킨십 부분을 보면 쉬워요.

 

아기가 어렸을 때 엄마 뱃속에 있잖아요. 그러니까 엄마하고 아기하고 같은 몸이에요. 그러다 세상 밖으로 나오잖아요. 근데 처음에 아기가 나와서는 내가 엄마하고 같은 몸인지 다른 몸인지를 잘 몰라요. 다른 존재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아기가 '어? 엄마하고 나하고 다른 사람이네' 이걸 느끼기 시작해요. 그게 언젠 줄 아세요? 아기가 '간지럼'을 타기 시작할 때예요. 간지럼을 타면 아기가 다른 사람과 내가 구별된다는 걸 느끼는 거예요.

 

아기가 아주 어릴 때는요, 아무리 간지럼 태워도 간지럼을 못 느껴요. 여러분 보세요. 여러분 스스로 자기 몸 간지럼 태우면 간지러워요, 안 간지러워요? 안 간지럽죠. 근데 남이 간지럼 태우면 간지러워요. 그리고 간지럼은 습관화되지 않아요. 언제 해도, 백 번을 해도 간지러워요. 살짝만 손만 가도 간지럽죠, 이렇게. 그게 뭐예요? 다른 사람이 할 때만 간지러운 거예요.

 

그럼 아기가 간지럼을 타기 시작하면 '엄마가 나하고 구별된 사람이구나'를 아는 건데, 이때 엄마하고 아기하고 같이 놀면서 정서의 내용은 같아요. 같이 즐겁단 말이에요. 정서의 내용은 같은데 주체는 다른 사람이다 이거예요. 뭐예요? 두 개의 다른 사람이 만나져서 뭔가 공유하는 게 생겼다 이거예요. 이게 남을 이해하는 나중의 기초가 되는 거예요.

 

이 능력이 나중에 아이한테 엄청나게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아이하고 스킨십을 자주 하면서 아주 그 정서를 공유하는 노력을 많이 해야 돼요.

 

정서는요, '개념 정서'라는 게 있고 '감각 정서'가 있는데, 뭐 어려운 얘기는 아니고 우리가 슬픔, 기쁨 이런 거는 개념적인 거예요. 이건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거고, 그거보다 더 원초적인 게 있어요.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정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볼게요, 제 손을 잘 보세요. 이렇게 되죠? 제 손동작 하나에 따라서 여러분 정서가 탁탁 달라져요. 예, 제가 지금 강의하면서 지금 왔다 갔다 하잖아요. 이러잖아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이러면 여러분들의 정서 상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제가 조율하는 거예요.

 

제가요, 강의 스케줄이 6개월 치가 꽉 차 있어요. 제 강의를 들으려고 그러면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왜 제 강의가 이렇게 많이, 이렇게 인기가 있느냐 이거예요. 아, 지난주에 안 오신 분이라서 이해를 못 하신 건데, 제가 강의하면서 내내 잘난 척을 하거든요. 그거 참고 이해해야 돼요. 그래야 뒤에 다 좋은 얘기가 들리니까요. 왜 그러면 제가 이렇게 인기가 있냐 이거예요. 저보다 좋은 얘기하는 사람 세상에 많이 있거든요. 근데 저보다 얘기를 잘 전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왜? 저는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거든요. 말끝마다 몸짓을 섞거든요. 근데 그게 뭐예요? 여러분들의 감각 정서, 무의식 정서를 제가 지배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모르는 사이에요. 근데 저는 끊임없이 그것을 아주 작전해서 움직이는 거예요.

 

근데 이거를 대한민국에서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딱 한 명 더 있어요. 도올 김용옥 선생이 저보다 잘해요. 예, 그분 강의 어떻게 해요? 내가 대학교 때 그 양반 강의를 처음 들었거든요. 제가 군대에서 복학을 하니까 그분이 미국에서 처음 와서 강의를 해요, 저희 대학에서. 인기가 너무 좋은 거예요. 막 600명, 700명씩 앉아 있는 거예요, 학생들이. 그래서 도대체 비결이 뭔가 하고 맨 앞자리에서 한번 강의를 들어봤어요. 이분이 강의할 때 칠판을 쾅쾅 치고 소리를 지르잖아요.

 

누가 앞에서 계속 이러면 시선이 집중되거든요. 근데요, 신기한 게 청중 중에서 단 한 사람만 딴짓을 해도 이 정서를 공유하는 감각 정서의 흐름이 다 깨져요. 그래서 강의가 제대로 안 된다고요. 여기서 만약 한 명만 졸아도요, 강사가 강의를 잘 못 해요. 신경이 쓰여서 그 리듬이 다 망가져요. 그러니까 이 도올 선생이 강의하다 말고 갑자기 딴짓하는 학생한테 "나가, 이 새끼야!"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왜? 정서를 공유하는 이 수도관이, 이 수도관이 망가지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아주아주 우아하게 움직이지만 남의 정서를 탁 잡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이금희 아나운서를 되게 좋아하는 게, 그 능력이 있어요. 표정과 몸짓이 과하지는 않지만 다 이 정서의 수도관을 만드는 능력이 있다고요, 진짜로. 제가 맨날 보면서 연구해요. 이게 상대방의 정서의 수도관을 착 만들어 주면서, 그 얘기를 안 들으면 안 되게 만들어 줘요. 아주 무서운 여자예요.

 

그런데요, 가끔요 예쁜 여자들을 만나면 정서 공유가 안 되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제가 사실은 예쁜 여자를 되게 좋아해요. 방송국 오면 가슴이 설레고 예쁜 여자들 만나는 기분에 제가 지금도 이렇게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데, 총각 때 예쁜 여자가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래서 미팅을 가면요, 예쁜 여자 앞에 착 앉아요. 그리고 막 이 예쁜 여자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온갖 쇼를 다 합니다. 근데 예쁜 여자는 예나 지금이나 꼭 예쁜 척을 하느라 반응이 없어요. 아, 그러면 한 30분 지나면 맥이 쫙 빠져요.

 

근데 예나 지금이나 예쁜 여자 옆에는 꼭 안 예쁜 여자가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난 예쁜 여자 재밌으라고 재밌게 해주는데, 리액션하고 웃는 건 안 예쁜 여자만 웃어줘요.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내가 처음에 얘기를 예쁜 여자 보고 막 시작했는데, 30분 지나면 나도 모르게 내 자세가 안 예쁜 여자 쪽으로 향해서 막 호응하고 있는 거예요. 속으로 '아…' 근데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지금 그 여자하고 살아요. 지금은 많이 이뻐졌어요. 많이 이뻐지셨어요.

 

보세요, 보세요. 왜 나를 사로잡았느냐? 이게 정서를 공유해 주기 때문이에요. 내 얘기를 들어준다는 게 뭐냐면, 나하고 정서 공유의 관이 참 잘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30분 지나면 예쁜 여자는 하나도 안 이뻐 보여요. 그리고 전혀 안 이뻐 보였던 그 리액션 잘해주는 여자가 너무 이뻐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못생긴 여자도 세상을 잘 살게 돼 있는 거예요. 왜? 웃는 여자는 무조건 이뻐요.

 

그러니까 자기가 스스로 외모가 좀 딸린다 생각하면 무조건 웃으세요. 그러면 이뻐 보여요. 정서를 공유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에요. 얘기할 때 웃어 주기만 해도 공유가 딱 되면서 그대로 이뻐 보인다니까요. 그래서 웃는 여자는 무조건 다 이쁜 거예요. 그런 노래 제목도 있어요. "웃는 여자는 다 이뻐"라는 노래도 있어요. 왜 그러냐, 이게 정서 공유의 관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이게 우리나라에 지금 너무너무 필요한 부분입니다. 근데 한국 사람들이 이 정서 공유가 평소엔 전혀 안 되는 것 같아도, 아주 정서 공유만 특별하게 잘 되는 우리나라 유일한 몇 개의 집단이 있어요. 제일 잘 되는 데가 어디냐면 '해병대 전우회'. 놀랍죠? 이 양반들은 처음 만나도 "악!" 이러면서 무슨 귀신을 잡아야 된다고 그러면서, 하여튼 아주 요새는 동네마다 컨테이너가 있어요. 어떻게 유지되는 건지 모르겠어. 하여튼 우리 명지대학교 안에도 그 컨테이너가 있어, 해병 전우회 컨테이너가. 그게 왜 그래요? 젊었던 시절에 그렇게 힘든 훈련을 같이 받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거에 대한 정서 공유가 끈끈하게 이루어지는 집단이기 때문이에요. 아주 집단 결속력이 강하죠.

 

그 다음에 센 데가 어디냐면 '고대 교우회'. 고려대 나온 사람들은 지들끼리 뭉치는 게 아주 끈끈해요. 저도 거기 나와서 남들이 보면 웃겨요. 근데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마음이 너무너무 편해요. 그 다음에 '호남향우회'. "아따, 형님!" 처음 만나면 정서를 공유하는 특별한 기술들이 이미 개발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집단에 들어가면 너무너무 편한 거예요. 그래서 또 집단주의가 돼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그 패턴을 보면 '아, 정서를 저렇게 공유하는구나' 이렇게 보여요. 진짜 진짜 웃긴 건 뭐냐면, 호남 사람이 고대 다니다가 해병대 갔다 오면 진짜 골 때려요. 제 선배 중에 그런 사람 하나 있어요, 대단해요. 이게 뭐예요? 정서 공유의 능력이에요.

 

근데 그 정서 공유의 기원이 어디 있느냐, 바로 여기에 있어요. 이거를 눈을 맞추면서 이렇게 하잖아요? 좀 지나면 아기가 사물, 물건을 바라보기 시작해요. 물건을 바라볼 때 이제 아기가 물건을 탁 만지고 물건을 보다가 엄마를 툭 쳐도 봐요. 이게 무슨 뜻이에요? "엄마, 저거 봐봐" 하고 같이 보는 거죠. 아기들은요, 처음부터 예를 들면 무서운 개를 봤다 이거예요. 근데 그 개가 무서운 존재인지 아직 몰라요. 그러면 개를 보면 이거에 대한 내가 정서적으로 어떻게 판단해야 될지를 먼저 엄마의 표정을 보고 결정을 해요. 그게 문화가 그래서 아이한테 전수가 되는 거예요.

 

개를 봤단 말이에요. 엄마가 무서워하잖아요? 그럼 아기는 바로 울게 돼 있어요. 근데 개를 봤는데 엄마가 "아이고, 이쁘네~" 그러면 아기도 가서 만지게 돼 있어요. 그게 '사회적 참조(Social referencing)'예요. 엄마의 정서를 참조해서 내 감정을 결정하는 거예요. 이게 문화의 시작이 되는 거예요. 또 아기가 물건을 보면서 "이거…" 이러면 "엄마, 이거 줘. 곰인형 줘" 하고 알아채고 주죠. 그래서 이 아기-엄마-물건 삼각형 구조로 만들어진 이것을 '공동 주시(Joint attention)'라고 해요.

 

같이 뭘 바라본다 이거예요. 이거는 마주 보는 거고, 이건 함께 같은 곳을 보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언어 발달이 시작이 되는 거예요. "이거 뭐야?" 그러면 엄마가 "아, 이거 곰인형~" 그럼 아기가 그다음부터 "아, 곰인형~" 이래서 언어를 배우는 거예요. 여기서 언어 발달이 되려고 그러면 이게 기본적으로 깔려야 한다고, 이 기본적인 정서 공유가요.

 

여기가 되는 거에 기본 기재가 뭐냐? 바로 '스킨십(Skinship)'이에요, 스킨십. 엄마하고 아기하고 만져주면서 피부가 하나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만진다는 건요, 만지는 것과 동시에 만져지는 거예요. 내가 만지지만 동시에 나는 만져지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와 남의 구분이 없어지는 거예요.

 

이 경험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 사회가 서로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아무리 얘기해도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 있잖아요.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이 정서 공유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근데요, 이 정서 공유를 참 잘하는 사람이 있어요. 배우들이 참 잘하는데, 그중에서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냐면 최민식 씨예요. 그분이 정서 공유를 어떻게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광고가 있어요. 그거 좀 가져와서 보여드릴게요. 한번 보세요. 아, 이 광고 진짜 유명했죠? 많이 보셨죠? 네, "그럼요, 달려가야죠." 이 표정 잘 보세요. "마음에 힘이 되는 친구의 노래처럼…" 보셨어요? 이 광고가 기가 막힌 광고예요. 뭐냐면 "거친 들판으로 나의 재산 찾아…" 뭐 그런 노래가 나오잖아요. 근데 맨 마지막에 최민식 씨 표정을 보세요. 이게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아주 묘한 표정을 짓는데, 이 광고는 이렇게 슬픈 일을 당한 친구의 등, 어깨밖에 안 보여주잖아요. 그러니까 시청자들이 마치 최민식 씨로부터 직접 위로받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해 줘요. 그 표정 하나에서 '아, 저 친구야말로 내 아픔을 이해해 주는구나' 이 느낌을 쫙 주잖아요. 나 이 광고 처음 봤을 때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왜냐하면 바로 그 전에 제 와이프한테 한참 구박을 받았었거든요. 이 광고를 보고 눈물이 돌았는데, 이게 바로 정서 공유 능력이에요.

 

보세요, 똑같은 대사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하면 굉장히 슬프고 재미있고 그렇죠? 그래서 따라서 울고 그래요. 근데 어떤 사람이 하면 썰렁하죠. 저기 유머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그런 경험이 있죠? 어디서 재밌는 유머를 들었길래 똑같이 하려고 수첩에 적어서 달달 외웠어. 그리고 딴 데 가서 똑같이 해봤어. 재밌어요? 안 재밌죠. 유머가 뛰어난 사람들은 웃기기 전에 이미 상대방으로 하여금 웃을 준비를 다 시켜놔요. 그리고 무슨 얘기를 해도 웃게 돼 있어요, 그때는. 요즘에 그 <개그콘서트> 같은 데 보면 코미디언들이 나와서 지들끼리 킥킥대고 웃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웃음을 참는 듯한 그런 표정이 있잖아요? 그러면 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웃을 준비를 자기도 모르게 하게 돼 있어요. 왜? 웃음이라는 정서는 전염되고 공유되는 거기 때문에 그래요. 그때는 아무 얘기나 툭 던져도 웃게 돼 있어요. 이게 정서 공유의 기술이에요. 야, 이거 개그맨들의 노하우를 제가 다 밝혔거든요. 거기 그런 기술이 숨어있단 말이에요.

 

그럼 우리는 어떡할 거냐? 말씀드린 대로 설득력이 21세기 우리의 기본적인 경쟁력인데, 이 능력이 어디서 생기느냐 이거죠. 이 정서 공유의 경험들이 자꾸 사라진단 말이에요. 어렸을 때 정서 공유의 경험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가를 잘 보여주는 실험이 있어요. 해리 할로우(Harry Harlow)라고 하는 심리학자가 원숭이를 가지고 실험을 했거든요. 어떤 실험을 했냐면, 이 철사로 만든 엄마 인형과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엄마 인형을 둔 거예요. 철사 엄마한테는 젖병을 달아놓고 우유가 나오게 했고, 천 엄마한테는 아무것도 안 줬어요.

 

그랬더니 아기 원숭이가 하루 종일 어디에 가 있냐면, 밥 먹을 때만 철사 엄마한테 가서 잠깐 먹고 다시 천 엄마한테 가서 붙어 있는 거예요. 그럼 무서운 자극을 주었을 때는 어떡하나 실험해 보려고, 무서운 괴물 인형을 보내서 "우와~" 그랬더니 철사 엄마한테 안 가고 천 엄마한테 달려가서 꼭 껴안는 거예요. 뭐예요? 인간을 포함한 모든 포유류는 기본적으로 피부에 부드러운 감촉, 촉각적 안정감을 원해요. 원숭이도 그런데 인간은 어떻겠어요?

 

그래서 이 부드러운 스킨십 경험이 박탈되면 어떻게 되냐면, 자꾸 구석에서 자기 몸을 이렇게 만지고, 손가락을 빨거나 물어뜯고 이런 행동을 해요. 이게 다 정서적 경험이 부족하다고 하는 표현이에요. 아기들 중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거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그게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되면 그거는 정서적 경험이 어딘가에는 박탈되어 있다 이런 뜻이죠.

 

그래서 이렇게 되면 남들과 정서를 공유하는 데 큰 문제가 생겨요. 이렇게 자란 원숭이의 특징이 뭐냐면 상대방의 표정을 이해를 못 해요. 다른 방의 원숭이한테 고통스러운 표정, 즐거운 표정 이런 걸 보여주면 이 원숭이가 그걸 구분을 못 해요. 그래서 결국 무슨 문제가 생기냐면 짝짓기에 문제가 생겨요. 그러니까 상대방 원숭이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구분을 못 한다니까요. 결국은 이렇게 정서적으로 고립되어 살다가, 더 큰 문제가 뭐냐면 면역력이 떨어져요.

 

새끼 쥐를 데려다가 실험을 했어요. 한쪽 그룹에는 먹을 것만 주고, 다른 한쪽 그룹에도 똑같이 해 주되 부드러운 붓끝에 물을 좀 적셔서 정기적으로 피부를 이렇게 쓰다듬어 줬어요. 마치 어미 쥐가 혀로 이렇게 핥아주는 것처럼요. 그랬더니 이쪽(붓으로 쓰다듬어 준) 쥐는 건강하게 사는데, 먹이만 준 쥐들은 면역력이 떨어져서 다 죽어버리는 거예요. 뭐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피부를 만져주는 게 그렇게 생명 유지에 중요한 거란 말입니다.

 

근데 문화적으로 이 피부를 만져주는 것, 스킨십이 우리 사회에서 자꾸자꾸 사라져 가요. 그게 큰 문제라고요. 학교에서 무슨 성추행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가 되면서, 아예 만지는 스킨십 자체가 오해받을까 봐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사회가 됐다고요. 그러니까 지금 큰 문제인 거예요.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 이걸 같이 고민해야 되는데 말이죠.

 

엄마는요, 애가 태어나면 왼쪽으로 안겠어요, 오른쪽으로 안겠어요? 아기를 안을 때요. 편한 대로 안는다고요? 보통 왼쪽에 아기 머리가 오도록 안는데, 왜냐하면 왼쪽에 심장이 있기 때문에 심장의 박동 소리를 아기에게 들려주려는 본능적인 행동이에요. 역사적인 그림들을 보면 신기하게도 다 아기를 왼쪽으로 안고 있어요. 근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처럼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상을 보면 다 오른쪽으로 예수를 안고 있어요. 문화적으로 이거 왜 이럴까 제가 요새 고민 중인데, 하여튼 엄마는 아기가 태어나면 무조건 본능적으로 왼쪽으로 안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애가 낳자마자 미숙아로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잖아요? 그러면 엄마가 바로 안아주지 못하단 말이에요. 태어난 지 24시간 이내에 애를 안아주지 못하면, 신기하게도 엄마들이 나중에 아기를 오른쪽으로 안는대요. 그러니까 엄마가 본능적으로 왼쪽에 안는 본능을 갖고 태어나는데, 24시간 이내에 그 스킨십 기재를 활성화시키지 않으면 방향 감각을 헷갈려 한단 말이에요. 그만큼 어렸을 때 스킨십이 박탈되면 그런 문제들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원래 스킨십은 인간의 본능이에요. 근데 문화적으로 그걸 못하게 자꾸 막았더니, 오늘날 한국 사회에 이상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문제라기보다는 어쨌든 여러 가지 독특한 산업이 나타나는데, 뭐가 나타났냐면 스파, 안마, 발 마사지, 스포츠 마사지 이런 시장들이 엄청나게 많이 생겨났어요. 저도 스포츠 마사지 진짜 좋아해서 찜질방 가서 가끔 받아보면 기분이 그렇게 좋아요, 그죠? 왜 기분이 좋겠어요? 근육이 풀어지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보다 더 중요한 거는 내 몸에 '스킨십'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래요.

 

근데 이렇게 정상적이고 좋은 것만 있으면 모르겠는데, 음성적이고 이상한 것들도 나타났죠. 그래서 퇴폐 이발소, 퇴폐 안마시술소 이런 것도 나타나요. 여러분, 그 현상을 단순히 "성매매나 불법 행위가 일어난다" 이렇게만 이해하시면 배후를 못 보시는 거예요. 아저씨들이 왜 거기를 자꾸 찾아가는가의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히 성적 욕구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 배후에는 이 일상에서 스킨십이 박탈된 것을 그렇게라도 보원하고 채우고 싶은 욕구가 숨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제가 '스킨십 총량 불변의 법칙'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우리가 채워야 하는 스킨십에는 총량이 있어요, 어느 정도의 필수적인 양이 있다고요. 이게 일상에서 안 채워지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삐뚤어지게 채우려고 하는 거라고요. 요새 저녁때 밥 먹고 나오면 자동차 유리에 별게 다 끼어 있죠? 무슨 이상한 마사지숍, 요새는 여대생 마사지니 어쩌니 하면서 여대생은 뭐가 틀리다고 광고 명함 끼워놓고 말이에요. 왜들 그러냐, 일상에 피부 접촉이, 피부에 이 자극이 없으니까 돈을 주고서라도 그것을 받고 싶어 하는 결핍 때문입니다.

 

근데 이게 재밌는 게 말이에요. 퇴폐 이발소는 인류 역사에 존재하는데, '퇴폐 미장원(미용실)'은 왜 없는 줄 아세요? 진짜 없네요? 제가 그걸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머리를 만져주면요, 머리카락에 'C-섬유(C-tactile fiber)'라고 하는 피부 스킨십에 반응하는 신경 세포가 있어요. 그래가지고 머리카락을 살살 만져주면 기분이 되게 좋아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머리 쓰다듬어 주는 게 다 이게 과학적으로 일리가 있는 겁니다, 본능적으로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다 자라면, 여자가 남자의 머리를 만져주면 남자는 그거를 강한 성적 자극으로 느껴요. 그래서 이발소가 퇴폐 이발소가 되기 쉬운 이유가, 여자가 자기 머리를 만져주면 남자들은 참 단순해서 모든 종류의 스킨십을 다 성적 자극으로 쉽게 치환해 버려요. 여자들은 그걸 잘 구분하는데 남자는 그래요. 그러니까 퇴폐 이발소로 흘러가는 거예요.

 

반면에 퇴폐 미장원은 왜 불가능하냐면, 사회적으로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남자가 여자의 머리카락을 만져주면 여자도 그걸 성적 자극으로 느끼지만, 사회적으로 여성의 성적 일탈이나 표출을 훨씬 더 강하게 억압을 해요. 그러면 큰일 나거든요. 보세요, 남자들은 맨날 도박하다 걸려도 그냥 도박단이라 그러는데, 여자들이 도박하면 꼭 '주부 도박단'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더 매도하잖아요. 그리고 남자들은 맨날 술집 가면 술집 여자들이 당연하게 있는데, 남자 접대원 나오는 술집이 생기면 사회적인 큰 문제가 되잖아요. 사회적으로 여자들이 그러는 걸 제도적으로 막 못하게 한단 말이에요. 더군다나 미장원 같은 오픈된 공간에서는 큰일 나죠.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어떻게 되냐면, 미장원에 있는 남자 미용사들이 행동을 약간 '여자처럼' 나긋나긋하게 행동해요. 그래서 여성 고객들이 그것을 남성성이 배제된 안전한 자극으로 느끼게끔, 성적 자극으로 안 느끼게끔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래서 미장원에 있는 남자 미용사들 행동을 보면 되게 여성스럽게 행동하죠. 그게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그래야 여성 고객들이 안 부담스러운 거예요. 그렇죠? 남자 미용사들이 가서 약간 좀 부드럽게 대할 때 여자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거예요. 왜? 그걸 성적 자극으로 받아들이면 머리를 못 하니까요. 그런 비밀이 숨어 있어요.

 

자, 그러면 우리가 그 스킨십이 나이가 들면서 박탈되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는데, 한국 남자들이 왜 일찍 죽냐 이거예요. 평균 연령이 남자가 여자보다 한 7년 일찍 죽어요. 왜 일찍 죽냐 이거예요. 그리고 노인 부부가 잘, 행복하게 살다가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시면 할아버지는 길게 살아야 1년이에요. 근데 반대로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면 할머니는 평균적으로 한 4년 이상 더 오래 살게 돼 있어요. 왜 남자들은 아내가 죽으면 금방 죽고, 여자들은 남편이 죽어도 오래 사냐 이거예요.

 

그 이유를 잘 조사해 보니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없어도 동네에서 스킨십을 할 대상들이 많아요. 손자들 만져주고, 친구들과 손잡고, 이 손끝의 촉각 감각을 항상 바느질이나 텃밭 가꾸기로 활성화시키고, 항상 이게 살아있단 말이에요. 촉각 자극이 뇌를 항상 활발하게 활동시켜 주는 매개체니까요. 근데 할아버지는 평생 스킨십을 나누던 유일한 통로인 할머니가 죽으면, 세상에 몸을 만질 대상이 아예 없는 거예요. 너무너무 외로운 거예요. 만질 대상이 없다는 거는 내 정서를 공유해 주는 사람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이에요. 여태까지 평생 유일하게 할머니뿐이었거든. 남자들끼리는 징그럽게 만지지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소통의 창구가 사라지니까 너무너무 외로워서 시름시름 앓다 가시는 거예요.

 

근데 노인들만 그런 게 아니고, 중년 부부들도 오래 살면 살수록 스킨십이 사라지죠. 여러분, 남편 몸 만져 보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만져보신 기억이 최근에 있으세요? 왜 웃기만 하세요? 한참 되셨대요.

 

왜 저기 제비들 있죠? 사기 치는 제비들이 왜 성공하는 줄 아세요? 제비들이 무슨 사모님 머리 스타일 칭찬하고 말을 번지르르하게 잘해서 성공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제비들은 여성이랑 '춤'을 같이 추거든요? 춤을 추면 자연스럽게 손을 잡아요. 남편하고는 평생 안 하던 스킨십이 거기서 결핍을 채우며 이루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스킨십이 일어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상대방이 하는 모든 얘기가 부드럽게 좋게 들리게 돼 있어요. 왜? 아까 얘기한 대로 정서 공유의 수도관이 뚫리는 거거든요. 여기엔 무슨 거짓말을 해도 통하게 되어 있어요. 물이 흘러가는 큰 고속도로가 뚫렸는데 다 믿어버리는 거지. 근데 우리 아저씨들은 이런 부드러운 스킨십의 훈련이 하나도 안 됐으니까, 같이 춤 배우자 그러면 막 그냥 아랫도리만 비밀리에 움직이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기본적인 스킨십의 기술을 잘 갖추어야 하는데, 여러분들의 평소 스킨십 상태를 좀 볼 수 있는 '스킨 애무 지수'를 한번 체크해 봅시다. 내가 10가지를 말씀드릴 테니까 속으로 한번 세어 보세요. 내가 도대체 몇 개나 해당되는지 손가락으로 접으면서 체크해 보세요.

 

* 1. 누군가를 만났을 때 말로 하는 인사보다는 악수를 먼저 하는 편이다.

 

 

* 2. 공공장소에서 진한 애정을 나누는 연인들을 보면 보기 좋다.

 

 

* 3. 애인과 혹은 남편과 카페에 가면 마주 앉기보다는 나란히 옆으로 앉는 것이 좋다.

 

 

* 4. 업무나 다른 일로 처음 만난 이성이 악수를 청해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 5. 연인이나 친구, 남편과 길을 걸을 때 늘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낀다.

 

 

* 6. 최근 한 달 내에 부모님을 따뜻하게 안아 드린 적이 있다.

 

 

* 7.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가까운 사람과 간단한 스킨십을 나눈다.

 

 

* 8. 가까운 사람이 슬퍼하면 기꺼이 안아주며 위로한다.

 

 

* 9. 스킨십의 유통기한이 보통 3개월이라지만, 내 경우는 훨씬 더 오래간다.

 

 

* 10. 처음에 귀여운 아기를 보면 만져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자, 이 10가지 중에서 몇 개씩 해당되세요? 7개 이상 해당된다 하시는 분, 손 들어보세요. 야, 이거 아저씨들이 원래 이런 거 높게 나오기 힘든데… 아니, 우리 손범수 아나운서님이 <아침마당> 오래 하더니 점점 아줌마화가 돼가는 것 같아요. 남자들이 이거 7개 이상 나오고 되게 힘든데, 손 아나운서님 8개 나왔대요. 남편분에게 사랑받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에요. 근데 손 드시는 분들 몇 분 안 되시죠?

 

그러면 중간은 가는지 보고, "4개 이하로 해당된다" 하시는 분, 손 들어보세요. 4개 이하는 부끄러워서 손을 안 드시네. 내가 중년 부부들 겪어보니까 사실 4개 이하가 대다수예요. 여러분, 시청자분들도 내가 만약 4개 이하가 나온다면 조금 긴장을 하세요. 왜냐하면 4개 이하가 되신 분들은 정서적 고립 때문에 건강을 해쳐서 일찍 죽어요. 그리고 오래 살아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에요. 왜? 남들과 정서를 공유하는 능력이 퇴화하기 때문에 성격이 갈수록 괴팍해져요. 나이가 들면 가끔 유독 괴팍해지는 노인들 있잖아요. 왜 그래요? 정서를 촉각으로 공유하는 기술이 다 사라졌기 때문에 그래요.

 

기본적으로 스킨십을 통해서 남들과 정서를 교류하는 이 감각이 완전히 메말라 버린 거란 말입니다. 중간 정도 되는 분들도 나이가 들면 이게 갈수록 떨어지게 돼 있거든요. 그래서 별도로 노력하지 않으면 이 정서 공유 능력이 다 사라지게 돼 있어요.

 

근데 요새 보세요, 일부일처제는요 사실 인류 생물학적으로 엄청나게 유지하기 힘든 제도예요. 인류 역사를 하루 24시간으로 줄여서 비유해 보면, 일부일처제 제도가 도입된 시점은 밤 11시 59분 50초 정도에 시작된 거예요. 이 전까지의 역사 동안 인류는 그냥 마구 섞여 살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막 시작한 제도예요, 일부일처제는. 그전까지는 본능대로 마음대로 살았거든요. 근데 인류가 살다 살다 보니까 사회가 안 깨지고 가장 합리적으로 다 같이 잘 사는 방법이 뭐냐 고민하다가, '그래도 일부일처제가 제일 합리적인 제도다'라고 역사적인 필터링 과정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제도이기 때문에 일부일처제가 제일 합리적이에요. 그래야 가정이 유지가 되니까요.

 

그런데 여태까지 수십만 년을 그렇게 본능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 유전자 속에는 일부일처제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원초적인 유전자가 꿈틀대고 있어요. 그래서 일부일처제를 건강하게 유지하려고 그러면 정말 엄청나게 많은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가정이 깨집니다. 근데 이 노력들을 우리가 살다 보면 당연하게 여기고 자꾸 잊어버려요.

 

그래서 행복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려고 그러면 세 가지 측면에 우리가 항상 신경을 써야 합니다.

 

* **첫째는 언어적인 측면:** 남편하고 부인하고 평소에 일상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대화하는 습관이 있어야 해요.

* **둘째는 정서적인 측면(감정적인 측면):** 남편의 감정을 이해해 줘야 하고 부인의 감정을 알아채 줘야 하거든요.

 

어저께 제가 왜 와이프한테 삐졌냐면, 제 감정을 와이프가 평소에는 잘 받아주다가 자기가 피곤하니까 내 감정을 안 읽어주는 거예요. 물론 피곤한 건 저도 이해하지만, 저도 밖에서 피곤하고 긴장된 상태로 오늘 이 중요한 강의 한 시간짜리 하러 가는데 나도 스트레스 받는데 내 감정을 안 받아준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삐지는 거지. 그러니까 정서적 측면을 서로 끊임없이 이해해 주고 받아줘야 관계에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대화나 감정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세 번째 측면이 바로 '신체적인 측면(스킨십)'이에요. 스킨십이 일상에서 끊임없이 은은하게 일어나지 않으면 부부 관계를 길게 유지하기가 생리적으로 무척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착각하는 게 뭐냐면, 스킨십이라고 그러면 꼭 남녀 간의 은밀하고 성적인 행위만 연상을 하는 거예요. 사실 그거는 전체 스킨십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여성 잡지 보면 제가 가끔 겁나는 게 뭐냐면, "남편을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는 22가지 테크닉" 이런 자극적인 거 나오잖아요. 그러면 그런 기술 위주의 조언을 보면 이건 본질에서 완전히 벗어난 잘못된 접근이다 이거예요. 왜? 한 부분의 말초적인 자극에만 집중이 돼 있으니까요. 근데 그거는 부부 생활 전체로 보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요, 제 와이프하고 지금 딱 20년째 같이 살고 있거든요. 20년 동안 한 여자하고만 산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죠. 여러분들 다 아시겠지만요. 자, 그러면 얼마나 중간에 많이 싸웠겠어요? 한 몇 년 전에는 권태기가 와서 참 힘들었어요, 둘이 서로 얼굴도 보기가 싫더라고요. 그럴 때가 있잖아요, 살다 보면. 그리고 무슨 얘기를 해도 상대방이 미워요.

 

근데 제 와이프가 관계를 회복해 보려고 그러다가 갑자기 '발 마사지'를 배우러 다니게 됐어요. 주말마다 발 마사지 학원을 열심히 다녀요. 발 마사지도 무슨 파, 무슨 파가 있나 본데 무슨 맥반석 파인가 거기에 가서 배운대요. 한참 다니더니 심지어 민간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가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대학교수 와이프가 무슨 발 마사지 자격증까지 따야 되냐?" 잔소리를 했는데도 기어코 따겠다고 내려갔어요. 부산에서 1박 2일로 시험을 보는 거예요. 그러고 시험 끝나고 전화가 왔어요. 자기가 전체 수석 합격했대요. 그래서 속으로 '참 별걸 다 수석 합격한다' 했죠. 왜냐하면 그때는 아내가 다 미울 때라 모든 게 곱게 안 보였거든요.

 

근데 서울로 올라왔는데, 그 다음부터 이 사람이 저하고 관계가 조금 서먹서먹해지거나 대화가 안 풀리면 제 발을 잡고 마사지를 해주는 거예요. 근데 신기한 게요, 발 마사지를 한 10분 받고 있으면 마음의 앙금이 스르륵 녹아요. 그리고 제가 워낙 예민한 성격이라 잠을 잘 못 자는데, 아내가 발 마사지를 해주면 시원하고 노곤해지면서 저도 모르게 코를 골면서 자요. 신경이 너무너무 이완되고 편해지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이 사람이 그 다음부터는 저랑 싸울 일이 생기면 발 마사지용 나무 봉이 있거든요? 이거 들고 와서 제 발바닥을 막 찔러요. 근데 이걸 오래 받으니까 저도 모르게 그 촉각적 쾌감을 즐기게 됐어요. 아주 그 건전하고 자극적인 부부만의 취미가 된 거예요. 와이프는 절 찔러대는 걸 즐기는 거고, 저는 시원함을 느끼는 거고. 요즘엔 아주 특정 부위만 집중적으로 찔러대요. 특정 반사구가 효과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도 하나의 부부 사이에 훌륭한 스킨십 통로를 만들어 놓는 기술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 똑같이 발 마사지를 배울 필요는 없지만, 부부만의 신체적 교류 통로는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학자들이 연구를 해봤어요. 우리 몸의 수많은 피부 부위 중에서 뇌의 신경 세포와 가장 다이렉트로, 가장 민감하게 연결된 부위가 어딘가를 조사해 봤습니다. 척수를 거쳐서 내 뇌의 중심부까지 도달하는 신경 전달 거리가 가장 짧고 세포가 조밀한 부위가 어디냐면, 바로 **'손', '눈', '코', '윗입술'** 부위예요.

 

이 부위들이 거리가 제일 짧고 민감해요. 그러면 우리가 정서 교감을 하려면 상대방의 어딜 만져야 되겠어요? 손, 눈, 코, 특히 '윗입술'을 많이 교감해 줘야 해요. 아랫입술은 아닌가요? 아랫입술도 중요하죠. 그리고 이런 허벅지 같은 데는… 아까 제가 와이프 허벅지 껴안고 잔다고 했는데, 그거는 저만 촉각적으로 유리한 거지 와이프의 정서 안정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부위래요.

 

그래서 과학자들이 이걸 가지고, 우리 몸의 각 부위가 감각을 느낄 때 뇌의 대뇌피질이 얼마만큼의 면적을 써서 반응하는가를 기준으로 사람의 몸을 면적 비율대로 다시 그려봤어요. 심리학에서 아주 유명한 그림인데, '호문쿨루스(Homunculus)'라는 뇌 지도 모델이에요.

 

그 모델을 보면 사람 모양이 어떻게 생겼냐면, 손이 엄청나게 괴물처럼 크게 그려져 있어요. 뇌에서 손의 감각을 담당하는 부위가 제일 넓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으로 입술이 윗입술 아랫입술 할 것 없이 엄청나게 뚱뚱하고 크게 그려져 있고, 혀가 크게 그려져 있어요. 그다음이 코와 귀고, 몸통이나 엉덩이, 허벅지 같은 부위는 뇌에서 아주 조그마한 면적밖에 차지하지 않아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적인 특정 부위는 뇌의 면적으로 보면 그렇게 넓지 않아요. 우리가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기 위해 어디를 가장 많이 접촉해 줘야 하냐면, 바로 '손'입니다. 손을 많이 만져줘야 해요. 그래서 남편하고 길을 걸을 때 그냥 팔짱을 끼는 것보다, 서로 손바닥을 맞대고 '손을 잡는 것'이 정서 공유에 훨씬 좋습니다. 손의 촉각 자극은 인간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세포가 퇴화하지 않고 살아있습니다. 입술의 자극도 죽을 때까지 살아있어요.

 

원래 이거를 동물하고 비교해 보면요, 동물들은 뇌 지도에서 '얼굴과 주둥이' 부위만 비정상적으로 커요. 왜냐하면 동물들은 기어 다니잖아요? 얼굴이 몸의 가장 맨 앞에 나와 있어요. 그러다 보니 주위의 위험이나 모든 낯선 환경 정보를 받아들이는 촉각 신경이 얼굴 주둥이에 다 집중되어 있다고요, 특히 수염에요.

 

근데 인간은 두 발로 직립 보행을 하기 시작했잖아요? 그럼 인간의 몸에서 어디가 가장 맨 앞에 나와 있습니까? '손'이죠. 그러니까 손의 신경 자극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거예요. 그리고 얼굴은 기어 다니지 않으니까 수염 감각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동물적인 수염은 퇴화하는 대신, 동물들이 그 수염 하나하나를 미세하게 움직이던 얼굴 근육이 인간에게는 무엇으로 발전했냐면, 바로 '얼굴 표정을 정교하게 짓는 능력'으로 진화한 거예요. 그래서 인간이 정서적으로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얼굴 미세 근육이 엄청나게 발달한 겁니다.

 

그런데이 얼굴 표정 근육은요,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성적으로 통제를 해요. 속으로는 기분 나빠도 겉으로는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을 수 있잖아요. 물론 눈치 빠른 사람은 다 알아채지만 통제가 어느 정도 가능하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 '손'은요, 신기하게도 거짓말을 못 해요. 아무도 손의 미세한 떨림이나 온도를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경험이 많은 노련한 사람은 상대방의 손만 가만히 잡아봐도, 이 사람이 지금 심리 상태가 어떤지, 감정이 불안한지 평온한지 바로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선거철에 시장 다니면서 악수를 부지런히 하잖아요. 제가 정치인들하고 악수를 해보면 그 손끝에서 탁 느낌이 옵니다. '아, 이 사람 이번에 처음 나온 초짜구나', '아, 이 사람 뼈가 굵은 노련한 사람이구나' 정치인들은 수많은 유권자를 일일이 만나서 자기 정치 철학을 말로 다 설명할 시간이 없잖아요.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다 말로 설득해요? 그러니까 악수를 하는 겁니다. 악수를 열심히 하고 다녀요. 그러니까 예전에 박근혜 씨 같은 정치인도 선거철에 손 근육이 다 파열돼서 붕대 감고 다니면서도 악수를 하잖아요. 오래 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악수를 딱 하면요, 이 악수라는 신체 접촉이 왜 위대하냐면, 손과 손이 수평으로 만나기 때문에 거기는 계급이나 위아래가 없어요. 악수를 하는 그 찰나의 순간만큼은 나하고 이 사람하고 동등한 위치에 서는 거예요. 그러니까 평범한 시민들이 대통령이랑 악수하고 나면 왜 기분이 좋은 줄 아세요? '대통령과 내가 그 순간만큼은 인간 대 인간으로 동등해졌다'는 정서적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왜? 상대방을 만짐과 동시에 나도 만져지는 상호 교감이 손바닥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악수를 진짜 잘하는 프로 정치인들은요, 악수하는 짧은 순간에 손아귀의 압력과 온도를 통해 자기의 진심과 감정을 상대방에게 착 전달해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사람과 악수 한 번 나누고 나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 팬이 되게 되어 있다니까요. 손끝의 감각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확 사로잡는 거예요. 손끝의 감각이 얼굴 감각보다 훨씬 예민하다니까요.

 

우리가 연인들이 뽀뽀를 많이 하는 이유는 왜겠어요? 왜 사랑을 표현할 때 꼭 키스를 합니까? 입술의 뇌 신경 감각이 엄청나게 발달했기 때문에 그래요. 동물들은 키스 안 해요, 인간만 키스해요. 왜? 입술로 상대방의 존재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싶어서 그런 촉각적 갈망을 하는 겁니다. 근데 여기 계신 분들, 남편이랑 뽀뽀해 보신 지 다들 오래되셨죠? 민망하니까 왜 다들 손으로 입을 가리세요? 근데 봐요, 혀도 신경이 엄청나게 발달해 있어요. 그래서 남녀가 깊은 키스(Deep kiss)도 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자, 그래서 우리가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와락 껴안아요. 좋은 사람이 있으면 안아줍니다. 왜? 포옹을 하면 피부가 넓게 닿으면서 상대방과 내가 정서적으로 하나가 되고 싶은 거죠. 손을 잡으면 막 손을 비비고 어쩔 줄 몰라 하죠. 왜? 손끝으로 상대를 느끼고 싶어서요. 뽀뽀하고 입술로 느끼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이 손끝과 입술의 부드러운 스킨십 자극을 상대방에게 베풀기를 주저하면 안 돼요. 이거는 부부 건강을 위해서 의무적으로, 억지로라도 하셔야 합니다.

 

위조지폐 감별 전문가들이요, 위조지폐가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단번에 알아차리는 기술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 줄 아세요? 눈으로 돋보기 대고 탁 봐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손가락 끝으로 지폐 표면을 스윽 만져보고 압니다. 우리 손끝의 촉각 세포가 그만큼 미세하게 예민한 거예요. 근데 여자 손끝만 예민한 게 아니고 남자 손끝도 똑같이 예민하거든요.

 

그러니까 아내분들, 집에 가셔서 남편 손을 좀 따뜻하게 자주 잡아주란 말이에요. 직장에서 은퇴하고 사회에서 밀려나서 아무도 손을 안 잡아 주니까 늙은 남편들이 방구석에서 너무너무 정서적으로 외로운 거예요, 진짜로. 누가 손을 잡아주기만 해도 마음이 풀리는데 집에서 아내가 안 잡아주니까, 아저씨들이 엄한 데 돈 주고 마사지숍 가서 손잡고 다니는 겁니다. 왜 안 잡아주냐고 미워도 손을 잡아주라고요. 손을 잡고 부비다 보면 미운 감정이 사라지고 좋은 마음이 생긴단 말이에요.

 

참, 입술도 그렇죠. 나이가 들면 부부끼리 뽀뽀를 안 하게 되죠. 그래서 저도 총각 때는 별명이 '따뜻한 입술'이었거든요. 근데 결혼하고 나니까 이 입술을 도통 쓸 일이 없어지니까 자꾸 차갑게 굳어지면서 별로 쓸모가…

 

자, 혼자 사는 사람의 사망률 통계를 보면 아주 흥미롭습니다. 여성의 경우, 기혼 여성에 비해 혼자 사는 독신 여성의 사망률이 약 1.5배 높아요. 근데 혼자 사는 남자의 사망률은 기혼 남성에 비해 무려 3.5배나 높습니다. 혼남들이 훨씬 빨리 죽어요. 왜 그래요? 일상에서 부드러운 정서적 스킨십이 전혀 안 되기 때문에 그래요.

 

할머니들이 남편 없이 혼자 돼도 오래 살 수 있는 이유가 뭐냐면, 나이가 들면 신체 감각이 노화되면서 촉각 역치(피부가 자극을 느끼는 기준)가 변해요. 학자들의 그래프를 보면 60세 이상의 노년층과 젊은 층의 피부 감각 지도가 다릅니다. 나이가 들면 신기하게 등이나 어깨, 허벅지 같은 부위는 신경 세포가 많이 죽어서 감각이 완전히 둔해져요. 젊은 사람들은 살짝만 두 군데를 찔러도 분간하는데, 노인들은 어깨 같은 데는 감각 거리가 아주 멀어져야 겨우 인식을 해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우리 몸에서 감각이 전혀 변하지 않고 젊은이처럼 생생하게 유지되는 부위가 딱 세 군데가 있어요. 바로 **'손가락 끝', '코', '입술'** 부위예요. 이 부위들은 80세, 90세가 되어도 감각 세포의 정밀함이 20대와 똑같단 말입니다. 이게 무엇을 시사하겠어요? 나이가 들었을수록 늙은 부부끼리 뽀뽀해야 한다는 뜻이고, 나이가 들어도 서로 손을 꼭 잡아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이가 드셨을수록 소외감과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남편의 거친 얼굴도 이렇게 양손으로 만져주고, 손도 잡아주고, 흰 머리카락도 이렇게 쓸어 넘겨주고 만져주는 행동이 너무너무 중요한 거예요. 그래야 뇌 세포가 활성화되고 면역력이 올라가서 오래 건강하게 사는 겁니다.

 

보세요, 일상에서 스킨십이 충분하지 못하면 어떤 병리적 변화가 생기냐면, 아까 할로우 실험의 결핍된 원숭이처럼 자기도 모르게 자기 몸을 스스로 자꾸 만지며 위안을 얻으려고 해요. 로댕의 유명한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 아시죠? 그 생각하는 사람이 턱을 괴고 웅크리고 앉아 있잖아요. 근데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 조각상의 주인공은 지금 철학적인 생산적인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는 상태라는 걸 아세요? 왜냐? 일단 그 자세 자체가 인체 공학적으로 '깊은 생각을 할 수 없는 아주 불편하고 억압된 자세'래요. 그리고 손으로 자기 턱과 뺨을 강하게 압박하며 자기 몸을 만지고 있는 자세는, 창조적인 사색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극도로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강박 증상 징후라는 겁니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고립될 때 본능적으로 자기 몸을 만지게 되어 있어요.

 

인간은 타인과 조율하며 살아야 하는 '자기만의 개인적 거리(Personal space)'가 있습니다. 누구나 내 영역 안에 이 정도 거리는 침범받지 않고 지켜져야 마음이 편안한데, 낯선 타인이 이 바운더리 안으로 불쑥 들어오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안해지면서 방어 패턴이 발동해요.

 

근데 서양 사람들은 이 개인 공간의 바운더리가 되게 넓은 문화고,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뭉쳐 살아서 이게 비교적 좁은 문화예요. 그래서 서양인들이 한국에 와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제일 먼저 불평하는 게 뭐냐면 "한국 사람들은 너무 무례하다" 이거예요. 길 가다 어깨를 툭 부딪쳐도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없이 슥 가버린다는 거죠. 서양 문화권에서는 그 개인 공간의 침범을 사적 프라이버시의 심각한 침해로 보기 때문에, 여기 들어왔으면 당연히 "Excuse me" 하고 정중히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하는데, 한국인들은 좁은 공간에 익숙하니까 그냥 지나가 버리거든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도 대중교통이나 엘리베이터처럼 너무 좁은 공간에 사람이 빽빽하게 차서 이 사적 거리가 강제로 붕괴되면, 자기도 모르게 극심한 밀폐 불안을 느껴요. 그러면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이 다 어떻게 합니까? 시선을 천장의 층수 표시판에만 고정하고, 괜히 손을 꼼지락거리며 비비거나 자기 옷자락을 만지작거리죠? 불안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자기 몸을 만져서 뇌를 진정시키는 메커니즘이에요.

 

우리가 남에게 아부할 때 윗사람 앞에서 손바닥을 싹싹 비비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예요. 왜 긴장될 때 손을 비비겠어요? 내 스스로 마음이 편하지 않고 극도로 불안하다는 신체적 표시거든요.

 

이처럼 남이 내 피부를 안 만져주니까 결핍이 생겨서 자기가 자기를 만지는 건데, 반대로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을 타인이 따뜻하게 만져주면 엄청난 치유(Therapy) 효과가 일어납니다. 우리 피부 감각에는 압력을 느끼는 '압각'과 통증을 느끼는 '통각' 신경이 따로 있어요. 우리가 어디 길 가다 모서리에 무릎을 팍 부딪치면, 아플 때 왜 반사적으로 손이 먼저 가서 무릎을 꽉 움켜쥐며 문지르게 될까요? 왜 손이 먼저 가냐 하면요, 뇌로 통증 신호가 도달하기 전에 손으로 꽉 눌러주는 '압각' 자극을 강하게 주면, 이 압각 신호가 신경 통로를 선점해서 뇌로 가는 '통각(통증)' 신호의 문을 탁 차단해 버려요. 관문 조절설이라는 과학적 원리예요.

 

그래서 옛날부터 내려오는 "엄마 손은 약손~" 하면서 아픈 배를 문질러주면 실제로 배가 안 아파지던 게, 단순히 플라시보 효과가 아니라 엄마 손의 압각 자극이 아기의 통증 통각을 물리적으로 차단해 주기 때문에 일어나는 과학적인 치유 현상입니다.

 

실제로 대형 병원 응급실에서 실험을 해봤는데, 극심한 사고 통증과 불안으로 발작하는 환자가 들어왔을 때, 의사가 약물만 투여하는 것보다 간호사가 곁에서 환자의 손을 따뜻하게 꼭 잡아주고 쓸어내려 주면, 환자의 심장박동수와 혈압이 훨씬 더 빠르게 안정 상태로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여러분, 한국 사람들이 서양 의사(양의사)들보다 한의원에 자주 찾아가서 침 맞는 걸 좋아하잖아요. 왜 한의원에 자주 가시는 줄 아세요? 이 침구학이나 한의학의 원리가 현대 서양 과학으로 100%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은 부분도 많아서 양의사들은 한의학을 맨날 과학적이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아플 때 한의원에 가는 걸 정서적으로 훨씬 더 편안해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한의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이 침을 놓기 전에 일단 내 손목을 잡고 지긋이 '맥'을 잡아주잖아요. 내 손을 잡고 내 몸에 손을 대서 맥을 짚어주는 그 직접적인 스킨십 행위 자체만으로도 환자의 뇌에서는 엄청난 정서적 안정과 치유 호르몬이 분비되어 치료 효과가 일어나는 겁니다.

 

반면에 서양 병원에 가면 어떻게 돼요? 의사 선생님은 저 멀리 컴퓨터 모니터만 보면서 마우스 클릭하고 있고, 내 몸에 대는 거라고는 차갑게 식어버린 금속 청진기 알맹이뿐이잖아요. 청진기 좀 불로 따뜻하게 데워가지고 대줬으면 좋겠어요, 차가워 죽겠는데. 그것도 가슴에 몇 초 대고는 "흠, 숨 쉬세요. 네, 나가서 주사 맞으세요" 하고 끝내버리니까, 환자 입장에서는 '내가 지금 인간으로서 따뜻한 진료 취급을 받은 건가, 기계 부품 취급을 받은 건가' 섭섭한 생각이 든단 말이에요.

 

그래서 환자들에게 명의라고 소문난 뛰어난 내과 의사들은요, 청진기만 대지 않아요. 청진기 대고 나서 따뜻한 손으로 환자의 등을 툭툭 두드려 보기도 하고, 어깨를 짚으며 얼굴을 마주 보고 얘기해요. 그분들이 의학적 기술이 부족해서 손으로 만져보겠어요? 아니에요. 의사 손으로 환자 몸을 직접 촉각적으로 만져주는 행위 자체가 상대방 환자로 하여금 깊은 신뢰감을 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릴랙스 시켜서 병을 고치는 핵심 열쇠라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명의들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만지는 스킨십이 인간 삶에서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는 이 만지는 스킨십이 메말라 버리고 자꾸 사라지니까, 아저씨들이 외로워서 엄한 유흥업소나 음성적인 데 가서 자꾸 돈 주고 만지려고 그런단 말이에요. 그러지 마시고 오늘 당장 집으로 돌아가셔서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의 손을 꼭 만져주시라고요. 아시겠죠?

 

다음 시간에는 몸을 만지는 스킨십보다 더 중요한 주제인, "어떻게 해야 우리가 창의적인 인재가 될 수 있는가",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해야 창의적인 아이로 키울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재미와 창의성'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아주 깊고 유쾌하게 강의하겠습니다.

 

오늘 강의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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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심 요약정리

 

본 강연은 "21세기 최고의 경쟁력인 설득력은 정서적 소통에서 나오며, 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수도관은 바로 '따뜻한 신체적 스킨십(Skinship)'이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핵심 내용을 3가지로 요약합니다.

 

1. **설득의 핵심은 논리가 아닌 '정서 공유(수도관)'에 있다**

* 아무리 논리정연하게 말을 잘해도 상대방과 정서적 유대감이 없으면(수도관이 없으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 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설득력은 상대방의 감정을 읽고 반응해 주는 '정서 공유 능력'에서 시작되며, 대화할 때 잘 웃어주는 리액션만으로도 강력한 정서 공유의 관이 형성됩니다.

 

 

2. **인간은 촉각적 감촉(스킨십)을 갈망하는 생물학적 존재이다**

* 할로우의 아기 원숭이 실험(천 엄마 vs 철사 엄마)과 쥐 실험이 증명하듯, 포유류와 인간은 생존과 면역력 유지를 위해 부드러운 피부 접촉(스킨십)을 필수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 일상에서 스킨십이 박탈되면('스킨십 총량 불변의 법칙'), 면역력이 떨어지고 성격이 괴팍해지며, 심리적 불안감으로 인해 음성적인 산업(퇴폐 업소 등)으로 결핍을 채우려는 사회적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3. **뇌 지도(호문쿨루스)가 보여주는 스킨십의 해답: 손과 입술**

* 우리 뇌에서 가장 넓은 감각 면적을 차지하고 죽을 때까지 감각 세포가 퇴화하지 않는 핵심 부위는 '손가락 끝'과 '입술'입니다.

* 성공적인 부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적인 자극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평소에 서로의 손을 꼭 잡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따뜻하게 뽀뽀를 나누는 일상적이고 신체적인 교류 노력(예: 발 마사지 등 부부만의 스킨십 통로)을 지속해야 부부가 함께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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