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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시편 37편 주해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6.15|조회수50 목록 댓글 1

시편 37편 주해

 

 

“[1] [다윗의 시]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12]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가는도다
[13] 그러나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심이로다
[14]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15] 그들의 칼은 오히려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로다
[16]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17]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18] 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19] 그들은 환난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나
[20] 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
[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22]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27]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28]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29]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30]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31]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32]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33] 여호와는 그를 악인의 손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하지 아니하시리로다
[34]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35]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래의 땅에 서 있는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36] 내가 지나갈 때에 그는 없어졌나니 내가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도다
[37] 온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모든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
[38]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미래는 끊어질 것이나
[39]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40]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시 37:)

이제 37편으로 건너갑니다. 시편 37편은 모두 40개의 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37편을 보시면, 각 절을 아무리 자세히 읽어보셔도 중간에 문단이 나뉘는 동그라미 표시(¶)가 별도로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시편 37편은 주제가 바뀌지 않고 40개의 절 전체가 그대로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구태여 문단을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같은 주제가 쭉 이어지면서 진행되어 갑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진행되는지 한 절씩 읽어가며 풀어드리겠습니다. 우선 히브리어 알파벳 글자가 모두 몇 개라고 했지요? 22개라고 했습니다. 시편 150편 중에서 일곱 개의 시가 알파벳 순서대로 시작하는 구조를 가집니다. 이것을 번역해 놓으니 우리는 도무지 모르지만, 히브리어로 읽으면 참 재미있겠지요. 이것을 '답관체(Acrostic)' 시라고 부릅니다.

 

이번 기회에 시편에 나오는 답관체 시가 몇 편인지 한번 기억해 보십시다. 우리 필기해 주시는 목사님들이 워낙 깨끗하게 정리해 주시니 따로 적을 필요는 없으시겠지만, 확인해 보겠습니다. 우선 시편 9편과 10편, 그다음 25편, 그리고 지난주에 말씀드린 34편이 답관체입니다. 그리고 오늘 보는 37편, 나중에 나올 111편, 112편, 119편, 145편 등이 대표적인 답관체 시들입니다. 다만 37편은 한 절씩 알파벳이 바뀌는 게 아니라, 대개 두 절씩 묶여서 같은 알파벳으로 시작하며 진행됩니다. 그래서 알파벳은 22개인데 왜 40절이지? 하는 의문이 해소될 수 있겠지요. 주로 두 절씩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37편 1절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여러분,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는 말 가운데는 무엇이 생략되었겠습니까? '악을 행하는 자들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을 보고 불평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악인들이 사기를 쳐도 잘되고 로또를 사도 맞는데, 교회 다니는 나는 아무리 기도해도 안 되는 모습을 보며 '도대체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악인들이 잘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믿음이 흔들리고 시험에 드는 문제를 주제로 쓴 시가 시편 150편 중에서 딱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가 바로 이 37편이고, 다른 하나는 몇 편일까요? 외우기 아주 쉽습니다. 73편입니다. 시편 37편과 73편, 숫자가 대칭이 되어 외우기 쉽지요? 악인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을 부러워하다가 하나님을 잊어버릴 뻔한 이야기를 다룬 주제가 바로 37편과 73편입니다.

 

1절에서 불평하지 말라고 할 때 '불평하다'라는 단어는 '하라(Charah)'인데, 속이 뜨겁게 부글부글 끓는다는 뜻입니다. 속을 태우며 힘들어하지 마라는 이 이야기가 뒤에 계속 나옵니다. 7절을 보면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라고 했고, 8절에서도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고 하며 계속 불평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자, 그런데 불평하지 말라, 시기하지 말라는 부정 명령어(Do not)로 시작했다가, 3절부터는 긍정 명령어(Do)로 바뀌는 순간이 나옵니다. 1절에서 불평하지 말라고 한 뒤, 2절에서 그들의 운명에 대한 선언이 나오지요.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성소에 들어갈 때 결국 이렇게 된다는 것을 73편에서도 보게 됩니다.

 

그리고 3절부터 긍정적인 권면이 이어집니다. 3절,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4절, "여호와를 기뻐하라" 5절,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7절,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여기 나오는 표현들은 결국 다 같은 의미를 다른 동사를 사용하여 반복하고 중첩하며 점층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4절로 표현하면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고,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은 5절처럼 그 길을 여호와께 맡기는 것이며, 맡긴다는 것은 7절처럼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동사를 바꿔가며 점층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요약하면, 악인이 잘되는 것을 보고 속에서 천불이 나는—설명하다가 딱 맞는 단어가 나왔네요. 한국말로 '속에서 천불이 난다'고 하잖아요? 그 말이 바로 히브리어 동사 '하라'의 의미입니다—그 천불이 나는 상태로 있지 말고, 여호와를 의뢰하고 기뻐하고 맡기고 잠잠히 기다리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3절 뒷부분을 보세요.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악인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뢰하며 하루하루 밥을 먹듯이 성실하게 삶을 살아내라는 말입니다.

 

제가 참 감사한 것은, 목회자이자 교수로서 평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이 저에게 와서 유혹하곤 했습니다. 나름대로 명분을 잘 만들어서 "이렇게 하면 큰 이익이 있습니다"라고 자극하지요. 저는 남을 도와주는 일이라면 기꺼이 고민하지만, "이렇게 해서 이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이기심을 자극하는 순간, 그것은 제가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나 교수들이 그런 감언이설에 속아 투자했다가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가끔 보았습니다. 그냥 성실하게, 성실을 식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실력(實力)의 진정한 의미를 정의해 줄 때가 있습니다. 열매 '실' 자에 힘 '력' 자를 쓰는데, 이 '실'이 무엇이겠습니까? 성실해서 생기는 힘이 '성실력', 진실해서 생기는 힘이 '진실력', 신실해서 생기는 힘이 '신실력'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실력이란 성실하고 진실하고 신실한 사람이 갖게 되는 힘이라고 가끔 풀이해 주곤 합니다.

 

4절을 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절에서 길을 여호와께 맡기면, 6절에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7절에서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라고 하여, 1절에서 시작한 불평하지 말라는 명령이 끝에 가서 다시 반복되며 수미상관으로 앞뒤를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9절부터 보겠습니다.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9절은 악을 행하는 자와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를 대비시켰지요. 10절,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절,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10절과 11절은 한 묶음으로 보셔야 합니다. 9절부터 시작해서 26절까지는 의인과 악인이 서로 다른 표현으로 계속해서 비교됩니다. 악인은 이렇고 의인은 이렇다는 비교가 계속 이어지는데, 9절에서는 '악을 행하는 자'와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 10~11절에서는 '악인'과 '온유한 자'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11절을 보니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읽으니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맞습니다. 산상보훈의 팔복이 생각나시죠? 마태복음 5장 5절을 보시겠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부동산을 많이 얻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기업을 이루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즉, 마태복음 5장 5절에서 예수께서 하신 이 약속은 시편 37편 11절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12절로 가봅니다.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가도다 그러나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심이로다" 14절,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14절에서는 악인과 '정직한 자'로 표현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의인을 부르는 다양한 표현을 정리해 보면, 9절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 11절의 '온유한 자', 14절의 '정직한 자'로 이어집니다.

 

15절을 봅니다. "그들의 칼은 오히려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로다" 16절,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여러분, 이런 16절 같은 구절들을 우리 삶의 가치관으로 붙들고 살 필요가 있습니다. 의인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지요. 시인이 이미 그 시대에 이런 삶의 가치관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17절,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18절, "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여기서 의인을 '온전한 자'라고 또 표현했습니다.

 

19절, "그들은 환난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나 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 그다음 또다시 비교가 나옵니다. 21절,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여기서는 의인과 악인이라는 단어가 명시적으로 대조됩니다. 22절,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의인에 대한 또 다른 표현으로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이 나옵니다. 23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살다 보면 어려움이 생겨서 넘어질 때가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들어 주신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25절은 아주 유명한 구절입니다. 설교자들이 자주 인용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성도들을 심방할 때 위로의 메시지로 자주 전하는 구절이지요. 바로 이 25절 때문에 시편 37편은 다윗이 인생 만년, 노년에 쓴 시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근거가 바로 이 구절입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참 좋은 표현이지요. 믿음대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선언입니다.

 

제가 봐도 이 구절은 맞습니다. 제가 27살 어린 나이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할 때, 개척 교회에 모인 청년들의 학력과 환경은 정말 천양지차였습니다. 서울대, 고대 법대나 의대에 다니는 청년들부터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우유 배달을 하는 청년들까지 다 섞여 있었지요. 하지만 우리는 한 덩어리가 되어 금요일 오후면 목욕탕에 같이 가고, 양동이에 물을 담아 라면과 국수를 함께 끓여 먹으며 지냈습니다. 벌써 4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네요. 그 세월 동안 당시 조금 머리가 좋고 꾀가 있어 보이던 청년들 중 일부는 세월이 지나면서 어디론가 사라져 신앙을 떠났습니다. 반면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청년들은 지금 40~50년이 지나서 보면 다 반듯한 장로님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고, 그 자녀들도 아주 씩씩하고 훌륭하게 자랐습니다.

 

이렇게 신앙을 잘 섬기는 공동체 사람들의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부모 세대보다 자녀 세대의 사회적 신분 상승률이나 삶의 안정도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을 묵상하며 절대 가치를 늘 배우며 산다는 것은 사람의 삶의 지향점을 완전히 다르게 만듭니다.

 

오늘 오후에도 참 기분 좋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영국 런던에 있는 여덟 살 먹은 우리 손자가 성경을 읽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저에게 전화를 합니다. 시차가 있어서 여기 오후 4시가 되면 거기는 아침 8시쯤 되는데, 전화가 와서 "할아버지, 요셉은 왜 애굽 여자하고 결혼했어요?"라고 묻기도 하고, 오늘은 "할아버지, 바벨론을 멸망시킨 다리오하고 다니엘을 사자굴에 집어넣은 다리오가 같은 사람이에요? 페르시아 고레스 2세예요, 1세예요?" 하고 묻는데,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운지 모릅니다. 말씀을 들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삶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25절과 26절,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우리 주변을 살펴봐도 그런 경우들이 참 많습니다.

 

시편 37편은 1절부터 11절까지가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참고 기다리라'는 첫 번째 섹션이라면, 12절부터 26절까지는 의인과 악인의 운명과 삶을 계속해서 비교하는 두 번째 섹션입니다. 의인을 다양한 표현으로 불러가며 하나님을 섬기는 삶과 하나님을 무시하며 사는 삶의 과정과 결말을 가치관으로 비교해 줍니다. 그러니 악인이 잘된다고 불평할 게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기업의 소망이 있으니 꿋꿋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살면 절대로 버림을 당하지 않는다는 위로를 비교를 통해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이제 하단인 27절부터 보겠습니다. 이제는 본격적인 권면이 나타납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러면 영원히 살리니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여기에 '성도'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그러니 불평할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지요. 같은 내용이 반복되면서 하나의 큰 주제로 흘러갑니다. 29절에서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앞서 9절과 11절에서 나온 약속처럼, 이 구원의 기업에 대한 약속이 계속 이어집니다.

 

30절,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31절도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지요.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맞습니다. 우리는 법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겠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비록 우리가 완전하지 못하고 동기가 온전하지 못할지라도, 우리 마음에 순종하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법이 있기 때문에, 그 법이 우리로 하여금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피 흘리기까지 지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다만 그렇게 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이해해야 하는 것이지요.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동력이 우리를 지켜주는 힘이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 그것이 우리를 실족하지 않게 하는 보호막이 됩니다.

 

반면에 32절,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여호와는 그를 악인의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하지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의 재판, 마지막 의가 판단되는 곳에서도 하나님이 그를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권면합니다. 34절,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지금까지 했던 말씀을 종합해서 말하지요. 기다리고, 바라고, 잠잠히 쳐다보는 것이 다 여호와를 바라는 것이고, 그 도를 지키는 것입니다. 시편 37편에서 반복되는 약속인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신약적으로 말하면 바로 '구원'입니다. 구원의 선물을 받고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을, 구약적인 가나안 땅의 개념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35절입니다.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래의 땅에 서 있는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내가 지나갈 때에 그는 없어졌나니 내가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도다" 이 35~36절이 묘사하는 대표적인 역사적 인물이 누구입니까? 다니엘 4장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입니다. 큰 나무로 묘사되었다가 베임을 당하고 날아가 버렸지요. 세상에서도 큰일을 한 사람을 '정치적 거목(巨木)'이라고 나무에 비유하곤 하지만, 그 거목들도 세월이 지나면 다 사라집니다. 제가 대학생 때까지는 대통령이 한 분인 줄 알았고, 그 이후에는 소위 영어 이니셜 두 자로 표현되던 '삼김(3金) 시대'가 세상을 지배하는 줄 알았으나 지금은 다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외에 영원히 남는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인생이 참 사람의 눈으로만 봐도 허무하고 무의미해 보이지요.

 

37절을 봅니다. "온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모든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 계속해서 비교하며 결론을 내려갑니다. 38절,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미래는 끊어질 것이나" 악인을 이제 '범죄자'라고 표현하지요. 39절,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께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시로다"

 

40절, 마지막 결론입니다. 악인이 잘사는 것을 보고 불평하지 말라는 이 시의 마지막 선언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 시편 37편의 결론은 '여호와의 구원'과 '의지', 이 두 단어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되는 구원입니다. 네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여호와께서 너를 도와 구원해 주실 것이니, 악인을 보고 불평하거나 시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위로의 기별입니다. 우리는 이런 삶의 이야기를 실제 삶 속에서, 그리고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확인하게 됩니다.

 

기록을 남겨주시고 인공지능(AI) 이미지 등으로 형상화해서 딱 정리해 주시는 목사님들의 봉사가 참 감사합니다. 단어와 참고 자료까지 넣어서 한눈에 보이게 정리해 주시니 큰 복을 누리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록과 그림으로 보게 되면 37편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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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종승 | 작성시간 26.06.15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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