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말씀묵상

시편 38편 주해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6.15|조회수26 목록 댓글 0

시편 38편 주해

 

“[1] [다윗의 기념하는 시]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2]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3]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4]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5]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내가 우매한 까닭이로소이다
[6]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나이다
[7]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8]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9]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10]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11]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12]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미오나
[13]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14]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15]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16]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그들이 나 때문에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스스로 교만할까 하였나이다
[17]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18] 내 죄악을 아뢰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19]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부당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많으며
[20] 또 악으로 선을 대신하는 자들이 내가 선을 따른다는 것 때문에 나를 대적하나이다
[21]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22]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시 38:)

 

함께 살펴볼 다음 시는 38편입니다. 시편 38편은 시편 150편 중에서 개인의 죄나 문제 때문에 여호와께 간절하게 부르짖는 '탄원시(Lament)' 혹은 '참회시'에 속합니다. 시편 제1권을 마쳐가는 차제에 대표적인 탄원시들을 언급해 드리겠습니다. 개인의 병 문제로 '뼈가 민망하다'며 하나님 앞에 고통을 토로했던 시편 6편, 다윗이 죄를 회개하며 드렸던 32편, 오늘 보려는 38편, 그리고 유명한 51편, 그다음 102편, 130편, 143편 등이 대표적인 참회·탄원시로 분류됩니다. 구조에 따라 다른 분류에 포함되기도 하므로 숫자가 늘어나기도 합니다만, 이 시들이 대표적입니다.

 

시편 38편도 모두 22개의 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시도 주제 구분이 뚜렷하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표제어를 보면 '다윗의 시, 기념하는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기념한다'는 것은 꼭 좋은 일만 기억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전의 삶을 기억하면서 반성하고 회개한다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38편 1절부터 10절은 다윗이 그의 죄로 인한 질병과 심신의 고통을 아주 적나라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내용입니다. 그다음 11절부터 14절은 죄와 질병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겪게 되는 소외감입니다. 마치 욥기를 읽는 것처럼 모두가 고개를 돌리고 만나기를 꺼리며 떠나가 버리는 처절한 소외감이지요. 요즘 젊은이들 말로 '왕따'를 당하는 내용입니다. 15절부터 22절 마지막까지는, 그런 깊은 소외감 속에서 인간들을 향해서는 말을 멈추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극복해내는 신앙 고백이 반복됩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1~10절은 '고통의 신음', 11~14절은 '소외감 속의 침묵', 15~22절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절부터 10절을 읽으며 시인이 겪은 고통이 얼마나 큰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1절,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여기 노함과 분노라는 표현은 시인이 겪게 된 심신의 고통이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징계라고 이해한 자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힘든 게 다 하나님께서 노하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2절,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몸과 마음이 아픈 것을 하나님의 화살이 찌르고 주의 손이 누르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 원인을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고통의 원인이 자기 죄 때문이라는 자의식입니다. 몸과 마음이 아프니까 '다 내 눈 내가 찔렀지, 내가 그때 그런 잘못을 했기 때문이야' 하고 죄의식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4절,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죄가 머리에 넘친다고 고백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죄악'으로 번역된 단어는 대개 중한 죄를 뜻하는 '아온'이고, 3절의 '나의 죄'라고 번역된 단어는 과녁을 벗어났다는 뜻의 '하타(Chatah)'입니다. 하타와 아온을 둘 다 고백하며 죄의식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5절부터는 고통의 증상에 대한 고백입니다.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니 내가 우매한 까닭이로소이다" 6절,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나이다" 아프고 구부러진 것은 몸의 고통이고, 슬픔 중에 다니는 것은 마음의 고통이니 심신이 최악의 고통에 빠졌음을 보여줍니다. 7절,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허리에 열이 펄펄 끓는 증상입니다. 8절,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이제는 몸의 아픔을 넘어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9절,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10절,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1절부터 10절까지는 이렇게 시인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하나님 앞에 가감 없이 털어놓는 고통의 신음입니다.

 

11절부터 14절은 이런 처참한 상태에 이르게 됨으로써 겪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즉 소외감에 대한 묘사입니다. 11절,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철저한 소외입니다. 12절,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미나"

 

여기에 대한 시인의 반응이 13절에 나옵니다. 바로 '침묵'입니다.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원수들이 음모를 꾸미고 친구와 친척들이 멀리할 때, 시인은 입을 탁 닫아버렸습니다. 이것이 '너희들 내가 힘들 때 나를 떠났지? 나도 너희랑 말 안 해' 하는 기싸움이나 마음을 닫아버린 오기였을까요? 시인이 귀를 막고 입을 다물었던 진짜 이유가 그다음 구절들에 나옵니다.

 

여러분, 15절부터 18절까지는 우리말 번역이 조금 아쉽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으로 읽으면 이 구절들은 전부 '왜냐하면'을 뜻하는 접속사 '키(Ki)'로 시작합니다. 즉, 내가 왜 인간들의 말에 입을 다물고 침묵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구조입니다.

 

앞에 '왜냐하면'을 넣어서 읽어보겠습니다. 15절,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사람들이 자기를 떠나고 비난해도 입을 닫은 첫 번째 이유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응답하시고 말씀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16절, 두 번째 이유입니다. "또 왜냐하면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그들이 나 때문에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스스로 교만할까 하였나이다" 시인 자신의 연약함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섣불리 대답했다가 실수라도 하면, 원수들이 "말은 잘하더니 결국 저렇게 될 줄 알았다"며 하나님을 모욕하고 교만해질까 봐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인의 동기가 참 분명하지요.

 

17절, 세 번째 이유를 설명합니다. "또 왜냐하면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차라리 입을 다물고 기다리겠다는 방식입니다.

 

18절, 마지막 네 번째 이유입니다. "또 왜냐하면 내 죄악을 아뢰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시인이 자기 자신의 죄를 깊이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워 죽겠는데 사람들은 떠나가고 철저한 소외감을 느낄 때 섭섭한 마음이 들기 마련입니다. '내가 저들에게 어떻게 해줬는데 인간이 이럴 수 있나' 싶지요. 섭섭함으로 치면 베풀어준 사람이 더 섭섭한 법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시인처럼 못 사는 것 같습니다. 저도 살면서 제자들이나 친척들이 기대에 못 미치면 섭섭한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가끔 스승의 날에 제가 먼저 연락해서 능청스럽게 "잘 지냈어? 오늘 스승의 날이라 생각나서 전화했어"라고 말하며 섭섭함을 표현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믿음의 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했습니다. 자기도 부족한 죄인임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인간 앞에서는 침묵한 채, 19절부터 하나님을 향한 신앙 고백을 이어갑니다. 19절,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부당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많으며" 여기서 원수가 활발하다는 표현은 '기세가 등등하며'라고 번역하면 가장 좋습니다. 20절, "또 악으로 선을 대신하는 자들이 내가 선을 따른다는 것 때문에 나를 대적하나이다" 원수들이 선을 악으로 갚으며 대적한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아뢰는 방식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면서 21절,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시인의 결정적인 모습은 사람들에게서 받은 소외감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나아감으로써 완전히 극복해 낸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22절의 선언이 무엇입니까?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37편의 결론과 같습니다. 37편도 '구원하심'으로 끝났는데, 38편도 "주 나의 구원이시여"로 끝을 맺습니다. 시인은 극심한 몸과 마음의 고통 중에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하나님을 믿어봐야 아무 소용 없다'며 무력감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최악의 소외감 속에서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관념이 아니라 전적으로 인격적인 관계, 살아 있는 생명의 관계임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릴 때 감사헌금을 드리는 일은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38편 1~10절에 나온 것처럼 심장이 뛰고 기력이 쇠하며 눈의 빛마저 떠나가고, 그 증상 때문에 사람들마저 다 떠나버린 최악의 상황에서 "주는 나의 구원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과 실제적인 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고백입니다.

 

 

 

 

오늘 시편 제1권의 막바지 세 편을 살펴보았습니다. 36편에서 시인이 간절히 드렸던 기도, 37편에서 악인의 형통을 절대로 불평하지 말라는 권면, 38편에서 개인이 드린 깊은 탄원의 교훈이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마무리 기도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저녁에 진실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러내며 토로했던 다윗의 시 세 편을 함께 읽어보았습니다. 주님, 우리가 38편을 묵상하며 깨닫는 것은, 그 극심한 고통 중에도, 사람들에게마저 소외당하고 무시당하는 중에도 '내가 하나님을 잘못 믿었나'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십니다"라고 고백했던 다윗의 신앙입니다. 이것은 관념이나 억지 의지로 붙잡은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과의 온전한 인격적 관계의 열매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주님, 우리의 신앙도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환경이나 기분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주님을 온전히 섬기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지켜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교회에 다니지 않고도, 성경을 읽지 않고도 멀쩡히 잘 살아가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인생에서 성공하고 일이 잘 풀리는 듯한 그들의 모습이 다윗에게도 시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그 시인에게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잠잠히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악인의 결국과 의인의 결말을 선명히 비교해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셨사오니 주님 감사합니다. 그 삶이 우리의 삶이 되게 하시고, 그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 하나님을 언제나 바르게 섬기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36편에서 시인이 노래했듯이, 악인들이 마음속으로, 입술로, 행동으로 죄를 계획하며 범하여 세상에 죄가 가득한 것 같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하늘과 땅에 충만함을 외쳤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도 어떤 경우에든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의와 공의가 하늘 위에, 땅 위에 충만하다는 신앙 고백을 주님 앞에 드리게 하옵소서. 주님의 날개 아래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바른 가치관으로 꿋꿋하게 살아가는 우리들 되게 하시고, 주의 보호를 받는 믿음의 가족들이 되도록 지켜 주옵소서.

 

한 주 동안 우리 모두를 안전하게 지켜 주시고, 다음 주에 또다시 기쁜 얼굴로 만나 주의 말씀 안에서 서로 교제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것을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아유, 고맙습니다.

 

 

 

💡 핵심 요약정리

 

강연에서 다룬 시편 36, 37, 38편은 '세상의 악과 고난 속에서 대면하는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이라는 하나의 큰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편 편수핵심 주제주요 신학적 단어 및 개념성도들이 지녀야 할 삶의 태도
시편 36악인의 죄악 고발과 하나님의 여전한 인자하심 찬양여호와의 종, 페샤(의도적인 죄), 헤세드(인자), 에덴의 강물, 생명의 빛세상에 악이 가득해도 하나님의 공의는 천지간에 가득하므로,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는 신율(Theonomy)의 삶을 살아야 함.
시편 37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인내하라는 노년의 지혜답관체(알벳순), 하라(속에서 천불이 남), 온유한 자가 차지하는 땅(구원의 기업)악인의 일시적인 잘됨에 불평(하라)하지 말고, 여호와를 의뢰·기뻐·맡김·기다림으로써 '성실'을 인생의 먹거리로 삼아야 함.
시편 38질병의 고통과 인간적 소외 속에서 드리는 철저한 참회탄원시/참회시, 하타·아온(죄악), 침묵과 자각, 주 나의 구원육체적 고통과 사람들의 배신(왕따) 앞에서 인간에게 변명하지 않고 침묵하며,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자각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구원으로 바라봄.

 

📌 최종 핵심 기별

 

세상이 악하고(36편), 악인이 잘 먹고 잘살며(37편), 정작 의인인 나는 몸과 마음이 병들고 사람들에게 버림받을지라도(38편), 하나님의 인자와 공의는 변함없이 신실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이나 사람을 바라보며 섭섭해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신율의 삶)를 붙들고 "주는 나의 구원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꿋꿋한 신앙의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