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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재림을 소망하는 사람들 (남수명 한국연합회장)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6.16|조회수86 목록 댓글 0

 

재림을 소망하는 사람들 (남수명 한국연합회장)

https://youtu.be/ATf0A1m8mKw

 

먼저 성경 말씀을 읽겠습니다. 레위기 16장 29절에서 30절에 있는 말씀을 먼저 읽도록 하겠습니다. 레위기 16장 29절에서 30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아멘.

 

복된 안식일을 맞이하여 진리횃불교회 우리 온 가족들과 함께 안식일을 보낼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주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의 축복이 풍성하게 넘쳐나는 오늘 이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많이 행복하십니까? 정말로 그러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며 그냥 지나치는 시간들이 있지만, 사실 이렇게 이 날을 기억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모이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절대로 가벼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귀한 일입니다. 저 바깥에서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절대로 누릴 수 없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권임을 여러분 잊지 마시고 날마다 주님 안에서 더 많이 행복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따가도 말씀을 드리겠지만 복잡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를 소망하면서, 주님이 오시면 영원히 주님과 함께할 그날이 있음을 마음속에 생각해야 합니다. 최소한 우리 진리횃불교회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주님을 영광 중에 맞이하여, 우리 모두의 삶이 영원으로 이어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나는 글쎄, 될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으니, 다른 염려는 다 내려놓으시더라도 그 약속만은 굳게 붙들고 믿음의 삶을 이어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얼마 전에 김대성 목사님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제가 진리횃불교회를 한 번도 방문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흔쾌히 가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은 다른 곳에 출타하신다고 말씀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우리 성도님들을 뵙고 반갑게 이 안식일에 오게 되었습니다. '진리횃불교회'라는 이름을 보며 다른 곳에서는 어떤 교회일까 생각하겠지만, 저는 진리를 세상에 높이 드높이고 드러내는 교회라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맞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정말로 복된 하나님의 성도임을 꼭 기억하고, 이 특권을 늘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우리의 삶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잠깐 말씀을 나누자면, 제 고향은 영남입니다. 영남합회에서 목회를 오랫동안 했습니다. 목회를 하다가 합회에서 청소년부장도 맡았고, 13년 전에는 한국연합회에 와서 총무부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5년 전 총회에서 시조사 사장 직임을 맡기셔서 감당했고, 또 주님의 뜻으로 지금은 연합회장으로서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제 경험도 사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너무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고, 주님의 이끄심을 따라 우리의 길을 걸어가면 분명히 주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가지고 살아가는 백성임을 저는 확신합니다.

 

사실 제가 설교 시간에 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만, 왠지 우리 가족들에게는 잠깐 이야기를 나눠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고향을 떠나 부모님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고, 이 병원 인근에서 아주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이 동네 병원 옆에서 다녔습니다. 교회에서 믿음의 생활을 하던 고등학교 시절,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저희 교회가 참 작아 보입니다. 사회에서 좀 더 영향력을 발휘하고 큰 힘을 나타낼 수 있으면 좋겠고, 제가 그런 역할을 하며 쓰임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거기까지는 기특한 생각이죠. 고등학생이 그렇게 생각을 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제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교회가 세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판사나 검사 같은 법조인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어려울 때 무언가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법과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하고 공부했습니다. 4년 동안 공부하고 고시 공부도 거친 후, 군대를 다녀왔는데 어느 순간 저도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신학대학원에 자리하게 되었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우리가 잘 압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고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목회 여정 속에서 깊이 느끼며 연합회장의 직분을 맡게 되었습니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많은 과제와 도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사도행적》 9페이지를 보면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일들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이 진리횃불교회도 여러 성도님의 헌신과 노력으로 든든히 서고 복음의 터가 되었지만, 그 뒤에는 이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계십니다. 분명한 뜻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교회의 주인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마시고, 한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온 교회 가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분명히 그 역사에 주님께서 함께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 안식일에 저는 '재림을 소망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이 시대에 재림을 소망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예전에는 재림에 대하여 저희 교회가 가진 열정과 관심이 엄청나게 컸습니다. 제가 어릴 때인 1960년대에는 예수님 재림하신다는 이야기로 교회가 얼마나 떠들썩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너무 어려서 잘 몰랐지만, 역사를 통하여 보면 그때 분위기가 굉장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10년, 20년이 지나 1980년대에도 역시 예수님 재림하신다고 하여 교회가 정말 준비해야겠고, 주님의 오심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주님께서 곧 다시 오실 것이라 하셨으니,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믿음을 가진 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며 우리의 최종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내고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기 시작하면서, 재림에 대한 이야기가 저희 교회에서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2000년대까지만 해도 김대성 목사님과 홍명관 목사님이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전도회를 굉장히 많이 하셨고, 재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설교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그 소망이 점점 작아지는 것 같습니다. 202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이 재림의 문제 속에서 정말 근본적인 질문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정말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가? 정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운데 또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교인들에게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를 살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하면, 대부분 "마지막 때를 살고 있죠"라고 답했습니다. 성경을 조금 더 깊이 연구한 분들은 "대속죄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기억나십니까? 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대속죄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매년 연말 기도주일을 대속죄일의 의미로 생각했습니다. 대속죄일에 우리의 죄를 다 내려놓고, 한 해 동안 지은 모든 죄를 주님께 회개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연말 기도주일에 '대속죄일'이라는 표현을 쓰는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경과 예언의 신을 놓고 바라보면, 우리는 분명히 지금 대속죄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에 나와 있는 제사 제도와 절기들이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고 구속의 역사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모든 희생 제사 과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되었고 우리에게 구원이 다가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절기를 보면, 한 해가 시작되면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여 첫째 달에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고 난 다음 무교절을 지켰고, 유월절이 지나고 3일째 되는 날에 첫 열매를 드리는 초실절을 지켰습니다. 초실절이 지나고 일곱 안식일이 지난 50일째 되는 날에는 오순절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가을로 넘어와 일곱째 달 첫날에 대속죄일을 선포하는 나팔절을 지켰고, 열흘째 되는 그달 10일에 오늘 본문 말씀처럼 대속죄일을 맞이했습니다. 대속죄일이 끝나고 나면 한 해의 마지막 절기이자 기쁨의 축제인 초막절을 지키면서 모든 절기가 끝납니다.

 

이것이 신약 시대로 넘어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성취됩니까? 성경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셋째 날에 부활하셨는데, 그 부활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며 초실절과 연결시킵니다. 사도행전 2장으로 가면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고 나서 예언 성취에 따라 1830년대에 대속죄일이 다가온다는 나팔절의 기별이 울려 퍼졌고, 1844년 이후 우리는 대속죄일의 기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대속죄일이 끝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는 영원한 초막절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구원의 계획입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대속죄일 기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며, 그렇다면 이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구약 시대 대속죄일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대속죄일이 얼마나 엄숙하고 복잡한 날이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속죄일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 대제사장은 집에서 나와 성소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일주일 동안 성소에 머물며 대속죄일을 준비하기 위해 기구들을 닦고, 분향하며, 예물을 드렸습니다. 극도의 긴장감을 가지고 일주일을 보낸 것입니다. 1년에 딱 한 번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이기에 너무나 긴장되는 날이었습니다. 혹시 그날 아침에 잠에서 깨지 못할까 봐 대제사장을 깨우는 사환까지 둘 정도였습니다. "자, 동이 텄습니다" 하고 소리를 내어 대제사장을 깨우며 그 엄숙한 날을 시작했습니다.

 

그날은 하루 종일 매우 복잡했습니다. 대제사장은 아침 상번제를 드리는 것을 시작으로, 그날 하루 동안 전신 목욕을 다섯 번 하고, 손발을 열 번 씻었으며, 옷을 여섯 번 갈아입었습니다. 얼마나 엄숙하고 철저한 날인지 알 수 있습니다. 평상복을 입고 있다가 대속죄일이 되면 황금 예복으로 갈아입고 아침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제사가 끝나면 다시 흰 세마포 옷으로 갈아입고 지성소에 들어갈 준비를 했습니다.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손발을 씻고 목욕을 하며 완벽하게 예식을 진행했습니다. 여기에는 다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제사가 두 가지 있었습니다. 먼저 성막 남쪽에서 수송아지를 제물로 드렸는데, 이는 대제사장 자신과 권속의 죄뿐만 아니라 1년 동안 성소에 쌓인 모든 죄를 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북쪽으로 가서 염소 두 마리를 준비했습니다. 하나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이고, 다른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였습니다. 제비를 뽑아 여호와를 위한 염소의 목에는 붉은 줄을 매고,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뿔에는 홍색 줄을 달아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마다 옷을 갈아입고,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 속죄소 위와 앞에 일곱 번 뿌리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아시는 대로 광야 밖으로 끄집어내었습니다. 성소에서 약 20km 떨어진 먼 광야로 미리 정한 사람을 통해 내보냈고, 마지막에는 벼랑에서 떨어뜨려 죽게 하는 예식을 행했습니다.

 

그동안 백성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대제사장이 그 복잡하고 엄숙한 예식을 행하는 동안 백성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겠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성막에서 성소와 지성소를 오가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대제사장의 모습을 바깥에서 일제히 집중하여 바라보았습니다. 대제사장이 움직일 때마다 그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했고, 성소와 지성소를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모습에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저 제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했습니다.

 

또한 대제사장의 움직임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시는 대로 대제사장의 겉옷 아래 가장자리에는 방울이 달려 있었습니다. 청색, 자색, 홍색 실로 만든 석류와 금방울이 번갈아 달려 있었는데, 대제사장이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났습니다. 백성들은 지성소 안에서 그 소리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만약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대제사장이 온전하게 예물을 드리지 못해 죽은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대제사장의 발목에 줄을 묶어 두었다가 소리가 나지 않으면 밖에서 끌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백성들은 귀를 기울여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대속죄일에 백성들은 오직 대제사장에게만 초점을 맞추었고, 그가 하는 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며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오직 대제사장에게 집중하며 그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영적 대속죄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맞이한 우리 백성들은 과연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 역시 대제사장에게 초점을 맞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지 생각해 보십시오. 혹시 하늘 보좌에 앉아 팔짱을 끼고 '저 사람이 구원받을 만한가 아닌가' 판단하며 평가만 하고 계시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우주의 선과 악의 문제, 그리고 우리의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시기 위해 여전히 중보하고 계십니다.

 

성경 히브리서 8장 1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을 살아가며 이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또한 히브리서 4장 14절부터 16절에서는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굉장한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6장 19절과 20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믿음 안에서 하늘의 소망을 가진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대속죄일을 살아가는 이 기간에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 많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제사장의 모습에 늘 집중하여 그날을 보냈던 것처럼, 이제 우리의 삶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기록했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재림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첫 번째로 마음에 새겨야 할 고백은 바로 '예수를 바라보자'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사셔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의 많은 사람은 나름의 방식대로 바쁘게 살아갑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들은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여러분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어디입니까? 때로는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가 참 많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모습을 바라볼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어떤 분들은 오늘 교과 말씀처럼 '내가 이만큼 살았으니 그래도 사회에서 인정받을 만하지 않나' 생각할지도 모르고, 또 어떤 분들은 '내가 왜 이것밖에 살지 못했을까' 하며 후회와 한탄에 젖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스스로의 삶이 힘들게 느껴지실 때마다 자신을 바라보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을 바라보며 힘들고 지친 시간 속에서, 그리고 연약함 속에 머물러 있을 때마다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당한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잘살고 성공하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비교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믿음의 가족 여러분, 다른 사람을 바라보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늘 주님께서 우리 곁에 계심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옛날 백성들이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을 깊이 바라본 것처럼, 우리는 날마다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증언보감》 3권 120페이지에서 엘렌 화잇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예수를 바라보자가 항상 우리의 표가 되어야 한다." 참 좋은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 삶에 많은 일이 일어날 때에도 오직 예수만 바라보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실 때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재림을 소망하는 백성들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로 그래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삶을 보면 우리의 머리와 마음을 가득 채우는 잡생각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의 하루를 한번 돌이켜 보십시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여러 복잡한 것들을 생각합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매일 "오늘 뭐 먹지?" 하는 고민을 하십니다. 자녀들이나 남편들은 그 수고를 잘 모릅니다. 그냥 식탁에 앉으면 밥이 나오는 줄 알지만, 어머니들은 늘 메뉴 걱정을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집사람도 아이가 다 자랐고 둘 다 60이 넘었는데도 저녁때만 되면 늘 "오늘 뭐 먹지?" 하고 묻습니다.

 

이처럼 일상의 사소한 염려부터 시작해서 자녀 양취 문제까지 복잡한 일들이 우리의 삶을 가득 채웁니다. 특별히 이곳 삼육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놓고 나면 학비 부담도 크고, 아이를 영어도 시켜야 하고 중국어도 시켜야 하니 더 복잡해집니다. 아이들이 왜 그렇게 일찍부터 영어와 컴퓨터와 중국어를 배워야 하는지 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세상의 흐름 속에서 부모들의 머리는 복잡해져만 갑니다. 예전 우리 세대에는 초등학교 들어갈 때 글을 미리 배우는 일이 어디 있었습니까? 학교에 들어가서 배우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입학 전에 글을 모르면 부모가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참 할 말이 많습니다만, 아침부터 밤까지 우리의 삶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이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눈뜨자마자 만지는 것도, 잠들기 직전까지 보는 것도 스마트폰입니다. 유튜브 동영상을 켜놓고 내용도 잘 모른 채 계속 화면을 쳐다봅니다. 길을 걸어갈 때도, 신호를 기다릴 때도, 지하철을 탈 때도 온통 스마트폰만 바라봅니다. 온갖 정보와 잡다한 생각들이 우리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땅에 살면서 재림을 소망한다는 생각이 점점 뒤로 밀려나게 됩니다. 마지막 때나 예수님의 오심을 깊이 묵상할 여유를 세상이 주지 않는 것입니다. 온갖 정보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생각하십시오.

 

여러 복잡한 일들과 수많은 정보가 끊임없이 다가와 우리의 생각을 흔들지라도, 우리는 주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신 그 사랑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교훈을 더 많이 묵상하며 살아가는 것이 재림을 소망하는 자들의 마음에 합당한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화가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재미있는 동영상이나 프로야구 같은 스포츠를 하루 종일 본들, 화면을 끄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허무함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 마음을 가지고, 마지막 주님을 기다리는 백성답게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생각하고,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 안에서 역사하시는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제사장이 성소와 지성소를 오가며 움직일 때 그 의미를 깊이 묵상했던 것처럼, 오늘 이 시간 우리도 날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며 삶을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에 충만할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시는 성도 여러분, 자녀를 어떻게 키울까 너무 깊이 염려하며 밤잠을 설치지 마십시오. 지나고 나면 다 깨닫게 되지만 결국 주님의 은혜 안에 다 머물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인위적인 노력이나 극성스러운 염려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이들을 성장시킵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 바로 서 있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잘 자라나 각자의 몫을 온전히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 양육이나 생업의 문제에 너무 깊이 함몰되어 염려하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루하루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주님의 백성 된 도리입니다.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제사장의 방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발걸음에 온 신경을 집중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시편 95편 7절은 말씀합니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삶을 살아가면서 주님의 음성이 들리십니까? 참 어려운 질문이지요. 만약 여러분이 저에게 같은 질문을 하신다면 저 역시 깊이 고민할 것입니다. 속으로 '주님의 음성이 들리긴 들려야 할 텐데' 하고 생각하시지요?

 

제가 예전에 목회를 할 때 제 자신에게 솔직하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너는 진짜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느냐?' 들릴 때도 있고 희미할 때도 있다면, 도대체 왜 잘 들리지 않는 것일까를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한 가지 영적인 원리를 깨달았습니다. 왜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한 청년의 비유를 통해 말씀드리겠습니다.

 

20대의 한 청년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며 놀고 있었습니다. 온종일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스마트폰만 보며 시간을 보내는 청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속이 상하지만 장을 보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양손 가득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낑낑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들이 집에 있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두드려도 문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점점 화가 나서 문을 더 세게 쾅쾅 두드리고 아들의 이름을 크게 불렀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습니다.

 

결국 어찌어찌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더니, 아들은 어머니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요? 소파에 누워 발을 탁자에 얹어 놓은 채, 귀에는 헤드폰을 끼고 음악 소리를 가장 크게 틀어둔 상태였습니다. 눈으로는 TV를 보면서 손으로는 게임을 하고, 입으로는 과자를 집어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가 밖에서 아무리 문을 부서져라 두드리고 소리를 지른들 들리겠습니까? 귀를 막고 다른 것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있으니 문 두드리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지금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세상의 복잡한 일들과 잡다한 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그 음성을 듣지 못할 뿐입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 크고, 관심 두는 세상일이 너무 많아서 주님의 세미한 음성이 묻혀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세상의 복잡한 것들을 이제 조금 내려놓으십시오. 물론 세상 속에서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해야 하고, 우리 아이들은 부지런히 공부해야 하며, 각자 맡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일이 우리의 삶을 온전히 주관하게 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성취가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재림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과 깊이 교제하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3절과 4절에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이것이 과연 어느 시대를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정확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온갖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바른 교훈은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귀가 가려워서 돈 버는 방법, 주식 투자 비결 등 자신의 욕심을 채워줄 세상 스승들의 이야기에는 열광합니다. 그러면서 정작 진리에는 귀를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쫓아갑니다.

 

이어지는 디모데후서 4장 5절에는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온갖 허탄한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세상이지만, 재림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백성 여러분은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새로운 마음을 품고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일곱 교회에 기별을 보내실 때마다 마지막에 항상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대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간다면, 조만간 주님께서 천사들과 함께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기쁨으로 그분을 맞이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삶은 영원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주님께서는 오래전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제가 작년 재작년에 대총회에 참석했다가 대총회 본부 홀에 가보니, 사진이 아니라 구속의 역사를 장엄하게 그려놓은 성화들이 벽에 쭉 걸려 있었습니다. 설교할 때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제가 직접 찍어온 그림들입니다. 대총회 홀에 있는 이 그림들을 바라보는데 마음속에 얼마나 큰 감동이 밀려왔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그 이후로 교회의 역사가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왔고, 주님은 남은 백성들을 통하여 세상에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역사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대속죄일의 최종 기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는 백성들입니다. 이 영적 대속죄일 기간에 우리 주님은 하늘 보좌에서 뒷짐 지고 계시지 않으며, 늘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진리횃불교회 가족 여러분,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날마다 주님을 더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렇게 신실하게 삶을 살아가신다면, 천만 천사와 함께 영광 중에 이 땅에 오실 그 주님을 우리는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며 영원한 하늘 저택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영광스러운 구원의 날이 임할 것을 확신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의 여러 일들이 때로는 우리를 시험하고, 넘어뜨리려 하며, 힘들게 할지도 모릅니다. 순간마다 염려와 두려움이 우리 마음을 엄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절대로 잊지 마시고, 대제사장이신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날을 사모함으로 준비합시다. 주님의 능력으로 마침내 영광 중에 주님을 맞이하시는 진리횃불교회 온 가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핵심 요약 정리

 

강연자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영적 대속죄일 시대를 살아가는 재림 성도의 삶의 태도"이며, 세 가지 실천 과제로 요약됩니다.

 

시대적 배경 (영적 대속죄일): 현재 우리는 구속사적 시간표에서 1844년 이후 '대속죄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 백성들이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의 움직임에 모든 전심을 쏟았던 것처럼, 우리도 하늘 지성소에서 중보하시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실천 1 — 예수를 바라보자 (시선의 고정): 자신을 바라보며 낙심하거나 타인과 비교하며 불행해하지 말고,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을 삶의 표대로 삼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실천 2 —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생각의 구별): 스마트폰, 미디어, 세상의 잡다한 정보와 염려(자녀 양육, 생업 등)에 생각을 빼앗기지 말고,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실천 3 —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관심의 전환): 세상의 허탄한 소리와 사욕을 따르는 소리에서 귀를 돌려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과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결론: 세상이 주는 염려와 두려움을 주님의 능력으로 극복하고,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그분의 음성을 따를 때, 마침내 영광 중에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하여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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