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졌을까?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제가 진리횃불교회의 존재와 구조는 잘 알지만, 이 교회에 와서 직접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밖에서 진리횃불교회에 대해 들은 정보는 '정말 말씀이 마르지 않는 교회', 그리고 '목마른 사슴들이 모이는 교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신자들이 많고,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모습을 보면 순수 그 자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번 안식일에 제가 이 진리횃불교회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게 된 자체 부가 큰 기쁨이자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여하튼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곧 오실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죠? 동감하시죠?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이때에 여러분들의 심령과 감정은 두려움입니까, 아니면 설렘입니까? 재림 성도들이라고 한다면 어느 것이 정상일까요? 두려워하는 것이 정상일까요, 아니면 설레는 마음을 갖는 것이 정상일까요? 당연히 설렘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죠?
예수님이 오실 것임에 틀림이 없고 임박했음에 틀림이 없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하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8절입니다.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세상뿐만 아니라 재림 교회 안에서조차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 재림하실 때 이 교회의 모습 속에 '믿음의 문제'가 있을 것을 말해 주고 있으며, 반면에 우리 예수님은 정말 보고 싶어 하시는 믿음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이 말씀 가운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들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를 향하여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문제가 있다고 예수님이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믿음이 있고, 또 마귀의 믿음이 있습니다. 마지막 성도들이 세 천사의 기별을 정말 받아들이고 참하나님을 경배하는 모습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여기에 분명히 '예수 믿음'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소유해야 할 믿음은 바로 이 믿음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야고보서 2장 19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습니다. 마귀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믿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믿음과 마귀의 믿음은 분명히 차이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떠한 차이가 있습니까? 마귀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순종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또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차이입니다.
우리는 정말 이 시대에 아주 투명하고 정체성이 뚜렷하게 예수의 믿음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께서 오실 때 여러분 모두가 하늘에 입성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저녁 시간에, 예수님께서 오늘날 특별히 재림 성도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진리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하여 "야, 인자가 올 때에 너희 중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며 믿음의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도대체 그것이 어떠한 문제인지 구약 성경에 나타난 한 사건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사무엘상 4장 1절과 2절에 있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사무엘이 선지자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무렵,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족속인 블레셋 사람들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싸움의 결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긴 것이 아니라 비참하게 깨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사건이지만, 우리가 영적인 안목으로 볼 때는 참 이해하기 힘든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편에서 선택을 받은 백성들입니다. 이방 모든 족속이 바라볼 때 두려워 떨던 족속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백성들이기 때문에 이방 족속들과 싸워서 패배를 경험해 보지 않은 족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싸움에서는 졌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무엘상 4장 3절에 보면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족속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고 짐승 취급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블레셋 사람들에게 4,000명이나 죽임을 당하면서 비참하게 패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용납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장로들의 울부짖음을 보십시오. "어찌하여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라며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이렇게 고민하다가 한 장로가 정신을 차리고 옆에 있는 장로의 옆구리를 칩니다. "야, 이번 전쟁에 나갈 때 우리가 여호와의 법궤를 가지고 나갔냐?" "아니, 여호와의 법궤는 지금 실로에 있는데." 그러니까 물었던 장로가 무릎을 탁 치면서 말합니다. "그러면 그렇지! 우리가 여호와의 법궤를 가지고 나아가지 않았으니까 졌지."
이 생각은 맞는 말일까요, 틀린 말일까요? 여러분이 보실 때 맞는 말 같습니까? 당시 그들에게는 맞는 말이었습니다.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완의 법궤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단순한 이론적인 믿음이 아니라 삶의 경험적인 믿음이었습니다.
민수기 31장 6절과 7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그들이 전쟁에 나아갈 때 성소의 기구인 법궤를 메고 나아가면 항상 승리했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여호수아 3장과 4장에 있는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요단강 물이 범람하고 있었지만 여호와의 법궤를 앞세워 나아갔습니다. 제사장들이 맨 여호와의 법궤가 강물에 들어서자마자 물이 쫙 갈라졌습니다. 이 여호와의 법궤를 뒤따르던 백성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 놀라운 광경을 눈으로 목격하고 몸소 경험했습니다. "야, 저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들어가자마자 물이 갈라지는가!" 하며 감탄했습니다. 이론이 아닌 철저한 경험적 믿음이었습니다.
가안 땅에 들어가서도 난공불락의 성인 여리고성을 맞닥뜨렸습니다. 그들이 두려움 가운데 벌벌 떨고 있을 때, 하늘 상황실에서 작전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야, 여호와의 법궤가 있잖아. 겁먹지 마, 두려워하지 마. 여호와의 법궤를 앞세워 성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라." 그래서 여호와의 법궤를 앞세워 여리고성을 돌았는데, 사람 손끝 하나 닿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견고한 성이 완전히 박살이 났습니다. 여호와의 법궤를 줄지어 쫓아가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며 그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도대체 저 법궤가 무엇이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이 역시 이론적인 믿음이 아니라 경험적인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니 '법궤를 가지고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실로에 있는 법궤를 다시 가지고 와서 싸우러 나아가자"라고 결정을 내립니다.
사무엘상 4장 5절을 보면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어떠한 함성이었겠습니까? 이겼다는 함성이었습니까, 아니면 졌다는 함성이었습니까?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저 법궤가 왔으니 우리는 이제 살았다, 이겼다!"라는 확신 속에서 미리 지르는 승리의 함성이었습니다.
반면에 블레셋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4장 7절과 8절입니다.
>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이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전쟁터에 여호와의 법궤가 들어오자마자, 그것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리의 함성을 질렀고, 반대로 블레셋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우리는 이제 죽었다, 어떡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자타가 공히 이스라엘의 승리를 장담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싸움의 결과는 어떻게 끝이 났습니까? 성경을 보셔서 잘 아시지 않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격렬하게 싸웠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무려 3만 명에 달했습니다. 처음 법궤 없이 나갔을 때 죽은 4,000명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패배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법궤를 가지고 나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비참하게 깨지고 만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범람하는 강물을 가르고 난공불락의 요새를 박살 내며 승리를 이끌었던 여호와의 법궤를 앞세웠는데도 이토록 비참하게 패배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그 이유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바로 '그들은 왜 졌을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졌을까요?
세상의 수많은 기독교 종파가 있을지라도, 오늘날 여호와의 법궤(하나님의 참된 계명)를 가지고 있다고 신앙적으로 주장하는 교회는 우리 재림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궤를 가졌다고 하는 이 재림교회가, 정말 세상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고 존경할 만한 넉넉한 영적인 힘을 가지고 하나님을 증거하며 나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초라하고 연약한 모습에 머물러 있습니까? 왜 여호와의 법궤가 있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정통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연약하게 살아가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결국 법궤를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었고, 이 비통한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뒤로 자빠져 목뼈가 부러져 죽었습니다. 게다가 비느하스의 아내는 아이를 출산하던 중 이 소식을 듣고 숨이 끊어지며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라는 뜻입니다. 정말 비참한 현실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했을까요? 그 영적인 원인이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예언의 신 《선지자와 왕》 416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은 그들의 악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법궤가 있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에 대한 승리가 보증되어 있다고 헛되이 생각하였었다”
여러분,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분명 그들은 여호와의 법궤를 손에 쥐고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율법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그들의 삶과 품성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삶 속에는 악한 행위가 여전히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호와의 법궤를 가졌으니 구원받을 거야, 승리할 거야"라는 막연하고 헛된 독선적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결국 비참하게 패배한 것입니다.
오늘날 재림교인들이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재림교회가 성경 예언적으로 볼 때, 요한계시록 12장 등을 연구해 보면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붙들고 계시는 예언적인 진리교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이 진리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 자체, 혹은 안식일을 문자적으로 지키고 십계명을 머리로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가졌고 다른 교파는 진리가 없으니 우리만 구원받을 거야"라는 식의 막연한 선민의식을 가지고 생애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 될 것입니다. 결국 생명의 길인 줄 알고 걸어갔으나 마지막에 사망을 경험하게 되는 비극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일이 우리에게 결코 없기를 바라며 이 말씀을 함께 공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계명을 수호하는 백성들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계명대로 삶을 살아내야만 그것이 살아있는 생명력 있는 믿음이 됩니다. 로마서 2장 23절과 24절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율법을 자랑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작 율법을 범함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모독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안식일 준수 정신은 어떠한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안식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얼마나 복음적이며, 그 안에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얼마나 풍성하게 담겨 있는지 잘 압니다. 단순히 문자적인 계명에 억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재림교회 안에서 이 안식일을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 철저히 구별하여 준수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거룩하게 구별하기를 원하시는데, 정작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우리가 안식일을 세속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진리횃불교회는 이름 그대로 진리의 횃불을 든 교회이니 안식일 시간 동안 매매 행위를 하거나, 식당에 가서 세상적인 회식을 하는 등의 일은 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허다한 교회들에서 목회자와 성도들이 안식일 일몰 시간도 되기 전에 식당에 모여 희희낙락하며 회식하는 모습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풍조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영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결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2장 13절은 말씀합니다.
>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길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성도라면 이 성경 구절을 읽을 때 전혀 어색함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잠언 28장 9절에는 아주 강력한 경고가 나옵니다.
>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부분적으로 불순종하는 것 역시 결론적으로 율법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생애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도저히 듣지 못하고 토해내고 싶으신 가증한 기도가 된다고 성경은 엄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지 않으면 그 어떤 화려한 예배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이 되어 하나님 전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우리의 심령이 정말 신령한 마음으로 계명을 준수하는 삶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형식적인 예배를 받으실 수 없으며 영광을 받으시지도 않습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시대에 우리 주님께서 아주 애절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호소하시는 기별이 있다면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들어야 할 기별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을 보면, 우리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살려 하늘로 데려가시기를 원하시기에 끊임없이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돌이켜야 한다. 이제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간곡히 외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영적인 힘을 얻고 성령 충만한 능력을 소유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기별 그대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작은 말씀이든 큰 말씀이든, 내가 중요하게 여기든 소홀하게 여기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아멘'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특별히 마지막 때의 남은 교회인 우리에게 허락된 선지자 엘렌 화잇을 통해 주신 예언의 신 기별대로 생애해야 합니다. 역대하 20장 20절 말씀처럼 여호와를 신뢰하고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유일한 기준과 표준, 그리고 이정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의 신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 말씀에 깊이 감동되어 삶을 변화시키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각 시대의 대쟁투》에는 다음과 같은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 “하나님의 율법이 다시 그 정당한 위치를 회복할 때에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초대교회가 가졌던 믿음과 경건의 부흥이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의 율법이 정당한 위치를 회복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말씀처럼 여러분을 택하신 이유는 무너진 데를 보수하고, 무너진 안식일의 경계를 회복하는 사명을 이루기 위함이 아닙니다란 말입니까? 세 천사의 기별을 위탁받아 땅끝까지 증거하라고 부름받은 사명자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그러한 우리가 말로는 안식일을 외치면서 삶 속에서는 안식일을 파괴하는 일에 앞장선다면 그것이 어찌 말이 되겠습니까? 오늘날 재림 성도들은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신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삶이 기록된 말씀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말씀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도, 능력도, 교회의 진정한 부흥도 결코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적 계몽이 아니라 '영적 혁신'입니다. 말씀을 하나 깨달았다면 그 깨달은 말씀 그대로 생애해 내는 순종의 원리가 우리의 삶을 이끌어야 합니다. 그러한 영적 혁신이 일어나야 합니다. 인간의 영혼이 회개하는 문제는 결코 가볍게 다룰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거룩한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가장 큰 이적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와 죄를 깨닫고 슬퍼하며 돌이키는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이 행하실 수 있는 이적 중의 이적입니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믿음을 통해서만 실제적인 결과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실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게 될 때 우리의 심령이 정화되고 정결해집니다. 그리스도의 선한 마음을 품게 됩니다. 또한 주님의 거룩한 안식일을 철저히 지킴으로 우리는 성화됩니다. 우리가 흔히 성화를 이야기하지만, 안식일을 철저히 준수하는 삶 속에서 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끈기 있게 기다리며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려고 열렬히 노력할 때, 우리는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내 힘으로 구원받으려는 행함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감사하고 감동되어 죄를 떨쳐버리고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참된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 이적 중의 이적인 참다운 회개가 여러분 모두의 삶 가운데서 경험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방법은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동일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 에덴동산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율법에 온전히 순종하고 완전한 의를 소유한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영생은 그 외에 다른 방법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진정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살리시기 위해 모든 죄 값을 지불하셨다는 그 구속의 공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면, 이제는 죄와 상관없고 마귀와 상관없는 변화된 선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전진하는 생애를 살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누어 받게 됩니다. 믿음을 통해 은혜를 얻고, 그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줍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절대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면 능히 지킬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붙잡는 도구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자 은사이지만, 그 믿음을 선택하고 행사하는 능력은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의지적으로 그것을 행사하지 않으면 그 믿음은 결국 소멸되고 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은혜와 자비를 굳게 붙잡는 우리의 손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시죠? 이러한 원리를 여러분들이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신다면, 세상에서 믿음과 행함에 대한 그 어떤 신학적 논쟁이 있을지라도 결코 흔들리거나 헷갈리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한 마지막 진리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온전히 지키는 자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귀한 은혜와 섭리 가운데 이 마지막 진리 백성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일원이 되지 않았습니까? 진정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었다면,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깊이 기억하고 그 목적에 합당한 생애를 살기 위해 늘 힘쓰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 말씀을 전하며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여러분,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참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지 스스로 매순간 시험하고 확증합시다. "아, 내가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대로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구나" 하고 매일 자신을 돌이켜볼 때, 나날이 믿음이 성장하고 우리의 품성이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참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변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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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 요약 정리
본 강연은 "임박한 재림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참된 믿음의 본질과 순종의 필요성"을 구약의 역사적 교훈을 통해 일깨워 줍니다.
* **문제 제기 (형식적인 선민의식에 대한 경고):**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삶 속에 악행을 버리지 않은 채 "법궤가 있으니 무조건 승리할 것"이라는 헛된 착각 속에 살다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3만 명이 죽고 법궤를 빼앗기는 비참한 패배를 당했습니다.
* **오늘날의 적용 (말씀과 삶의 일치):**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남은 교회이자 진리교회에 속해 있다는 사실(안식일 준수, 십계명 지식 등) 자체가 구원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가졌다고 자랑하면서 정작 안식일 시간을 속되게 쓰거나 계명을 범하는 모순된 신앙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 **필요한 영적 개혁 (영적 혁신과 참된 회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한 말씀이라도 그대로 살아내는 '영적 혁신'입니다. 죄를 슬퍼하고 진심으로 돌이키는 참된 회개야말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가장 큰 이적입니다.
* **믿음과 행함의 관계 (은혜로 말미암는 순종):** 인간의 힘으로는 율법을 지킬 수 없으나, 믿음이라는 손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을 때 그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계명을 지킬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능동적으로 행사하여 하나님의 뜻에 즐겨 순종해야 합니다.
**결론:** 성도는 매 순간 "내가 참된 믿음 안에 있는가"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온전한 순종의 삶으로 나타낼 때, 비로소 우리의 품성이 그리스도를 닮아 변화되며 임박한 재림을 두려움이 아닌 설렘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