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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4 기독교 신앙의 세 가지 본질 / 김대성 목사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6.16|조회수113 목록 댓글 0

4 기독교 신앙의 세 가지 본질 / 김대성 목사

https://youtu.be/EahtRqFl5ww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십니다. 아멘.

 

제가 지난 목요일에 LA에 도착했습니다. 샌디에이고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려고 LA에 도착했는데, 예정보다 서너 시간 가까이 일찍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라운지에 가서 식사도 하고 작업도 좀 했습니다. 저는 어디 가서 앉으면 꼭 일을 해야 하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일을 좀 하다가 들어가기 전에 전광판에서 확인해 보니 게이트가 23B였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23B 앞에 가서 앉았습니다. 앞에 있는 사인보드나 문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전화도 하고 일도 하면서 사람들이 나가면 같이 따라 나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사람들이 안 나가고 그냥 있는 것입니다. '비행기가 좀 늦어지나 보다' 하고 생각하는데 마침 방송이 나왔습니다. 보통 제 일이 아니면 방송을 잘 안 듣는데, 얼핏 제 이름과 함께 23A로 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얼른 옆에 있는 B 게이트 직원에게 "나를 불렀냐"고 물었더니 안 불렀다고 하더군요. 티켓을 보여주니 샌디에이고로 가는 비행기는 A 게이트라는 것이었습니다. A 쪽을 바라보았더니 이미 사람들이 다 나가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문도 딱 닫혀 있었습니다. 보통 40분 전부터 체크인을 시작해서 10분 전에는 문을 닫아버리는데, 제가 시간을 완전히 놓친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당장 집회를 인도해야 했기 때문에 큰일이 났습니다. 너무 다급한 마음에 문을 밀었더니 원래 잠겨 있어야 할 문이 열렸습니다. 통로를 지나 비행기 탑승 문 앞으로 갔더니 비행기 문은 아직 닫히지 않았고, 한 5분 전쯤 되었는지 직원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딱 나타나자 체크하던 남자 직원이 문이 잠겼는데 어떻게 들어왔냐며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지금 꼭 가야 한다고 표를 건넸습니다. 사실 체크인을 거치지 않고 그 통로로 그냥 들어오는 것은 불법입니다. 하지만 워낙 급하다 보니 불법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왔는데, 직원이 매우 난감해했습니다.

 

그러더니 할 수 없다는 듯이 티켓을 들고 체크인 카운터 쪽으로 가기에 따라가려 했더니, 오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자기가 직접 가서 체크인을 완료하고 표를 들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본래 제 자리가 앞자리 쪽으로 배정되어 있었는데, 승무원들은 제가 안 오는 줄 알고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 이미 앉혀 둔 상태였습니다. 상황이 이미 끝난 셈이었지요. 하지만 그 남자 관리자분이 기존 승객을 원래 자리로 보내고 저를 제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렇게 자리에 앉자마자 비행기 문이 딱 닫혔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미국이나 한국 항공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날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면 정말 난감할 뻔했습니다. 당시 샌디에이고 교회는 옛 구건물을 일요일 교회가 임대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일요일 교회가 그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 교회 목사님과 타협이 잘 되어서 마침 일요일에 있을 그들의 20주년 기념행사에 우리도 갈 테니, 당신들도 우리 집회에 오라고 제안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집회 첫날 가보니 일요일 교회 목사님 부부와 교인들 대여섯 명이 와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안 갔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일요일 교회 목사님 부부와 다른 목사님 몇 분은 계산을 해보면, 우리가 그분들 행사에 한 번 가주었으니 품앗이로 한 번만 오면 되는데 집회 내내 계속 참석하셨습니다. 아멘. 진지하게 기별을 들으시는 모습을 보며 이 뿌려진 씨앗이 때가 되면 반드시 열매로 돌아올 것이라 믿습니다. 아멘.

 

더욱 놀라운 것은 일요일에 제가 그분들의 행사에 잠깐 참석했을 때, 목사님 사모님과 인사를 나누는데 사모님께서 "목사님 방송 많이 듣고 있어요"라고 말씀하신 점이었습니다. 지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정보를 종합해 보면 개신교회의 목사님들과 교인들이 이 방송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시대에 기별을 들을 만한 준비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이 진리를 전하고 계신다고 확신합니다. 아멘.

 

여러분은 늘 전도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전도가 참 어렵다고 생각하시는데, 요즘처럼 전도하기 쉬운 세상이 없습니다.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거나 링크를 공유하면 됩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제가 목사님께 '진리의 빛 300 선교사' 가입 링크를 드릴 것입니다. 여러분의 카톡에 그 링크가 공유되어 가입하시면, 저희가 선교를 위해 채널에 올리는 방송들이 동시에 여러분에게 다 들어갑니다. 단순히 유튜브에서 찾아보는 것과는 시스템이 다릅니다. 가입된 분들에게 전달되는 영상 옆에는 '공유하기' 버튼이 있어서, 설교 하나를 가지고 100명, 200명에게도 쉽게 보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선교 정신 없이 자기만 열심히 교회에 다니면 영적인 성장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에게 손을 펴서 베풀고 나누며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동기와 열망이 속에 있는 사람이 성장하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번 강연 내용은 진지하게 성경을 연구하고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메시지입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남가주 연합 장로님들이 많은 시간과 노력, 재정을 들여 정성껏 준비하셨기 때문에, 원본 영상을 받아 설교 중심으로 썸네일을 만들고 재편집할 예정입니다. 일곱 개의 설교 영상이 완성되어 올림픽 교회 홈페이지에 올라가면, 여러분이 전도용 도구로 쓰시기에 아주 유익할 것입니다.

 

역사의 종말에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오늘 넷째 날은 '기독교 신앙의 세 가지 본질'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제목이 다소 딱딱하지만, 기독교인들이 날마다 반드시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할 대단히 중요한 신앙의 원칙 세 가지를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세 가지 본질은 바로 종말 신앙, 순교 신앙, 그리고 오늘 신앙입니다. 이것이 각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하나씩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불교에서 사용하는 용어 중에 교훈적인 말이 있어서 잠깐 소개해 드립니다. "사람은 대체로 법에 따라 살지 않고 습관에 따라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바르게, 성경 말씀과 원칙대로 살아야 하는데 대개는 자신에게 길들여진 습관대로 산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여러분은 전날 살아온 습관을 오늘도 거의 똑같이 반복하며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신앙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올바른 습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 습관을 잘 만들어야 그 습관을 따라 살아가면서 하늘 시민국민으로 훈련되는 것입니다. 현재 나의 생활 패턴 중 신앙과 영성에 방해가 되는 습관이 있다면 빨리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입각한 실천과 순종이 부족하다면, 빨리 그 말씀을 따라 사는 훈련을 하여 습관을 들여야 올바른 신앙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저녁에 1~2시간씩 뉴스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 습관이 되면 매일 그렇게 하게 되고, 잠들기 전 겨우 3분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매일 3분짜리 기도만 하다가 잠들게 됩니다. 이 습관이 변화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자라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인류의 구원과 관련된 가장 핵심적인 성경절을 구약에서 하나 고른다면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와서 발꿈치를 상하며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대속을 통해 구원받는 원리를 신약에서 핵심으로 요약한 것이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구약의 핵심은 창세기 3장 15절이고, 신약의 핵심은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실 만큼' 사랑하셔서,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믿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하고, 믿으면 영생한다는 뜻입니다.

 

구약 성경은 예수님의 초림과 십자가의 죽음, 부활과 승천에 대한 예언이고, 신약 성경은 하늘로 가신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예언입니다. 신약에만 재림 관련 말씀이 300번 이상 나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신약 성경의 핵심이자 초점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많은 교회가 재림에 대해 거의 설교하지 않거나, 설교하더라도 성경과 다르게 해석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때가 되면 예수님은 오십니다. 그날에 악인은 영벌에, 의인은 영생에 들어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지구상 모든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잠들어 있던 모든 의인은 부활하여 일어날 것이고, 살아 있던 악인들은 재림의 영광으로 멸망할 것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이나,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며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나, 진심으로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사람 사이에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재림의 날에는 영벌과 영생으로 극명하게 갈라집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하루 살 때 늘 그날을 기억하며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 아닙니까? 올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삶의 초점을 그리스도의 재림에 맞추고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처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아갑니다.

 

첫 번째 본질인 종말 신앙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즘 코로나 팬데믹 등을 거치며 세상의 종말이 왔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성경적인 의미를 정확히 짚어보겠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언제쯤 오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습니다.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시대에 자신이 오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구약의 다니엘서 예언에 따르면 2300주야가 끝나는 1844년 이후에야 재림의 역사가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다 알고 계셨음에도 제자들에게 늘 깨어 있으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당장 자기 시대에 오실 것처럼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종말'이 곧 '역사의 종말'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재림을 맞이할 수 있는 상태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성경적으로 예언을 살펴보면, 재림 전의 한 기간을 '말세(The last days)'라고 부르고, 재림의 순간을 '종말(The end)'이라고 합니다. 예언적 징조로 볼 때 말세는 대략 1800년대 전후를 기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서기 2000년의 역사 중 마지막 10%에 해당하는 지난 200년의 시간이 성경이 말하는 말세이며, 우리는 지금 그 말세의 거의 끄트머리에 와 있습니다.

 

과거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그 죽음은 베드로 개인의 종말(The end)입니다. 그런데 이 개인의 종말은 곧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종말과 직결됩니다. 베드로가 눈을 감은 그 상태 그대로 재림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죽는 순간, 그의 시간 속에서는 주님이 오신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장에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소출이 너무 풍성하여 창고를 더 크게 짓고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할 때,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습니다. 아무리 부자로 잘살아도 그날 죽으면 끝입니다 멀쩡하게 살다가도 중병에 걸리면 초라해지고, 숨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따라서 죽음을 대비해 잘 준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최고 최선의 준비는 하나님을 잘 믿고 죽는 것입니다. 죽어도 재림의 날에 부활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들의 죽음을 '잠들었다'고 표현합니다 다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구 역사를 크게 세 등분으로 나누면 초기 부조 시대 2000년, 아브라함부터 십자가까지의 이스라엘 시대 2000년, 그리고 십자가 이후 지금까지의 교회 시대 2000년입니다. 이 교회 시대의 마지막 역사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큰 범위에서 보면 예수님의 초림 이후가 모두 말세에 해당하지만,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마지막 시대인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 그중에서도 계시록 13장의 예언이 성취되어 가는 종말의 때에 살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종말 사상을 가지고 살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더욱 긴박한 종말 사상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두려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를 보고 적절히 대비하여 평안하고 안정된 마음을 갖되, 굳건한 믿음으로 재림을 준비하는 생애를 살라는 의미입니다. 아멘.

 

두 번째 본질은 순교 신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치열한 선악의 전쟁터에 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0절은 마귀의 직업을 '미혹하는 것'이라 했고, 베드로전서 5장 8절은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저나 여러분 모두가 그 대상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마귀가 뿔 달린 괴물처럼 생긴 줄 알지만, 사탄은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고후 11:14).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의 아비입니다(요 8:44).

 

사탄이 사람들을 미혹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무신론, 잡신, 세속화, 광신주의, 박해와 핍박을 거쳐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고문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사탄의 최종 전략은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피를 흘리며 순교를 당했습니다. 악이 선을 죽이는 일은 인류 초기 가인과 아벨 사건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하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중세 시대 로마 가톨릭 교회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대리자라 생각했기에,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성경적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여겼습니다.

 

선악의 싸움의 본질은 하나님을 안 믿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다르게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죄악 세상에서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죽을 각오를 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탄이 죽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결말은 죽음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따르라는 뜻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십자가 지기를 싫어합니다. 예전에 한국의 부활절 행사에서 큰 십자가를 지고 행진하는 사진을 보았는데,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도 얼굴에 힘든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십자가 밑에 바퀴를 달아놓은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앙인의 자세가 이와 같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고 끌고 가며 쉽게 믿으려 합니다. 하지만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 체질이 죄인 체질인 데다 온 세상과 사탄이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기분 좋고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려면 오히려 죽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죄와 싸우다가 죽더라도 다시 살려주실 수 있는 부활의 권능이 있으시기에 "죽도록 충성하라"고 당당히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잡혀가시던 밤에 제자들은 다 도망쳤지만 요한과 베드로는 재판정까지 따라갔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저주하며 예수를 부인했지만, 나중 사도행전에서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무엇이 베드로를 이렇게 바꾸어 놓았습니까?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비참한 죽음을 보고 두려워 숨어 있었으나,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목격하고 자신들도 부활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되자 어마어마한 용기가 생겼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십자가 설교는 두 번 나오지만 부활 설교는 열 번이나 나옵니다 제자들은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채울 때도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을 세웠고,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십자가 대속은 기본이며, 그 위에 부활의 소망을 증거한 것입니다.

 

이 부활의 확신이 있었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카타콤(지하 동굴)에 숨어 살면서 평균 수명이 20~30세에 불과하고 영유아 사망률이 30%에 달하는 비참한 환경 속에서도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귀족 집안의 똑똑한 아이였던 '포리오'라는 소년이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심문을 받았습니다. 재판관이 "황제 제단 앞에서 절 한 번만 하면 내 양자로 삼아 로마의 영광을 누리게 해주겠다"고 회유하자, 소년은 "재판관님의 호의는 감사하나 제 주님은 저를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으신데 제가 어찌 그분을 배반하겠습니까?" 하고 순교했습니다. 2세기의 서머나 감독 폴리카르포스 역시 86세의 나이에 "나는 86년 동안 그분을 섬겨왔으나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하시거나 배반하신 적이 없는데, 내가 어찌 나를 구원하신 왕을 모독할 수 있겠소"라며 화형대에서 순교했습니다. 로마 제국 이후 중세 가톨릭교회 시대에도 성 바돌로매 축일의 학살(두 달간 약 7만 명 순교) 등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성경대로 믿는다는 이유로 고문당하고 죽어갔습니다 이들이 순교할 수 있었던 동력은 오직 부활 신앙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부활 신앙은 있지만, 목숨 걸고 진리를 지키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사는 자들에게 반드시 또 한 번 죽음의 위협과 핍박이 올 것입니다 자유로운 지금 이 시대에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습관이 되고 훈련되지 않으면, 그날에는 속절없이 타협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평행봉을 잘해서 인기가 좋았지만, 지금 하려고 하면 한 번도 안 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계속 훈련해 온 노인들은 지금도 잘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자유로운 때에 목숨 걸고 순종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환난의 때에 육신이 약해 타협하게 됩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아주 소소한 일에서부터 타협하지 않고 말씀에 충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혹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내가 먼저 잠들더라도, 다시 눈을 떴을 때 생명의 부활로 공중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마지막 세 번째 본질은 오늘 신앙입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며 어떤 습관을 만들어 가느냐가 영원한 운명을 결정합니다 오늘까지 길들여진 과거의 습관이 오늘을 지배하고, 오늘의 삶이 미래를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고 오늘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 서로 권면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습관을 지녀야 합니다.

 

재림의 소망을 가진 자들에게 오늘 가장 중요한 것은 죄 없는 정결한 상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합니다(요일 3:2-3). 우리 안의 성령께서는 죄를 깨닫고 자복하게 하시며 용서받고 정결하게 살도록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육으로 살지 않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신앙생활이 중요합니다 기도를 전혀 안 하는 사람은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어설프게 하는 사람은 죄인 줄 알면서도 유혹에 넘어가 버립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죄를 참아낼 수 있고, 기도를 아주 많이 하여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죄를 '참을 필요가 없는' 높은 수준의 신앙에 이르게 됩니다.

 

요양원에서 암 환자들을 만나보면 의외로 착한 분들이 많습니다 착한 사람은 속상해도 참기만 하다가 병이 생기고, 안 착한 사람은 터뜨립니다 하지만 성령과 늘 동행하는 사람은 억지로 참을 필요 자체가 없어집니다 주변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내가 잘 익었나 안 익었나 두들겨 보시는 수박과 같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고 참을 필요가 없는 온전한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실족하더라도 즉시 죄를 자복하고 용서받아, 죄를 품은 채 잠자리에 들지 않는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 없이 사는 최선의 길은 적극적으로 '선(善)'을 행하는 것입니다 죄를 안 지으려고 억지로 노력하기보다 항상 선한 일을 하십시오 남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사람은 죄지을 시간도, 정신도 없습니다 자전거를 탈 때 앞에 전신주가 나타나면 그것을 피하려다가 오히려 들이받곤 합니다 피하려면 전신주가 아니라 다른 갈 곳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죄와 싸우려고만 하지 말고 선을 행하는 데 집중하십시오 그것이 죄를 이기는 길입니다 하루의 삶이 이기심을 채우는 삶이 아니라 베풀고 나누고 전도하는 삶으로 채워지면 죄는 저절로 물러갑니다.

 

저희 어머니는 1929년에 태어나셔서 2012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이 어머니 개인의 종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생을 전도하며 사셨는데, 돌아가실 때도 친구와 함께 여수 요양병원에 쉬러 가셨다가 그 방 침대 위에서 사람들을 앉혀놓고 성경을 가르치시던 중에 돌아가셨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던 그 순간이 개인의 종말이었고, 그 상태 그대로 재림을 맞이하시게 될 것입니다 언제 개인의 종말이 올지 모르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어느 순간에 종말이 와도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준비가 완료된 생활을 오늘 해야 합니다.

 

과거 제가 한국에서 재림 신앙 부흥회를 인도할 때 "주님 오십니다, 준비합시다!"라는 인사말을 정해 전국에 뿌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충청도 교회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인사말을 바꾸었다고 하더군요 "준비해 가다가 미처 준비가 안 된 채 죽으면 큰일이니, 하루하루 준비를 끝내놓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들은 "주님 오십니다, 준비 끝내시오!"라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듣고 보니 참으로 옳은 인사말이었습니다 언제라도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매일 준비를 끝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의 충실한 삶을 위해 매일 저녁 다음 사항들을 점검해 보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살았는가?

마음에 품고 있는 은밀한 죄가 남아 있는가?

다른 사람과 불편한 관계 없이 화목하게 살고 있는가?

오늘 하루를 이기적으로 살았는가, 이타적으로 살았는가?

선교 정신을 가지고 사람을 대했는가?

아침에 성령 기도를 드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랐는가?

말씀과 기도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가졌는가?

 

많은 현대인이 너무 짧고 성급한 기도와 말씀 읽기로 취약한 신앙을 유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구별해야 합니다. 또한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의미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나의 재물과 헌신을 통해 영혼을 구원하여 그 영혼이 하늘에 이르게 하는 것이 보물입니다 둘째, 내 가진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과정에서 나의 이기심이 사라지고 이타적인 품성, 즉 그리스도를 닮은 품성으로 변화되는 것 자체가 하늘에서 발견할 보물입니다.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에게 내일의 희망이 있고, 오늘을 충실하게 살다 잠든 사람에게는 내일의 부활이 있습니다 세 가지 신앙의 본질을 다시 강조합니다. 첫째, 오늘이 나의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충실히 사는 종말 신앙, 둘째, 목숨을 잃을지라도 말씀에 목숨 걸고 충성하는 순교 신앙, 셋째, 오늘 주님이 오실지라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정결하고 이타적으로 살아가는 오늘 신앙입니다.

 

이 땅에서 충실하게 사시다가, 훗날 하늘 유리바닷가에서 한 분도 빠짐없이 기쁨으로 만나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와 함께 살기 원하셔서 오랜 세월 기다려 주시고, 우리를 하늘까지 인도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우리도 속히 아버지를 만나 함께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매일의 생활 속에서 말씀하시는 모든 권면을 잘 분별하고 기억하여 순종하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속히 주님을 만나 고통과 질병과 사망이 없는 그곳에서 영원히 살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오니, 이 자리에 머리 숙인 모든 성도들을 축복하시고 날마다 지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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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 요약 정리

 

강연의 핵심 내용을 4가지 요약 포인트로 정리한 결과입니다.

 

1. 기독교 신앙의 3대 본질 정의

종말 신앙: '개인의 종말'이 곧 '역사의 종말'임을 인지하고,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일 수 있다는 긴장감과 소망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신앙입니다.

순교 신앙: 하나님을 다르게 믿는 거짓 세력이 바르게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선악의 대쟁투 속에서, 부활의 소망을 품고 목숨을 걸어서라도 진리와 타협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오늘 신앙: 과거의 습관이 오늘을 지배하고 오늘의 삶이 미래를 결정하므로, 오늘 하루 동안 죄를 멀리하고 정결함을 유지하는 신앙입니다.

 

 

2. 좋은 신앙 습관과 훈련의 필요성

인간은 원칙보다 길들여진 습관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자유로운 시기인 '지금' 말씀에 순종하고 기도하는 습관을 형성해야 합니다. 평소에 철저히 순종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마지막 환난의 때에 육신의 연약함으로 타협하게 됩니다.

3. 죄를 이기는 적극적인 방법: 선(善)과 선교

죄를 짓지 않으려고 소극적으로 노력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복음을 전하는 선한 일에 삶을 바치는 것이 죄를 이기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선교와 봉사에 집중할 때 이기심이 사라지고 이타적인 그리스도의 품성으로 변화됩니다.

4. "준비 끝내시오!"의 삶

우리의 생명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연약한 존재이므로, "언젠가 준비하겠다"가 아니라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항상 주님을 맞이할 영적 준비를 완전히 끝내놓고 살아가는 자세가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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