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싸움, 경배논쟁 & 일요일법령 / 김대성 목사
듣고 배우고 순종하면서 전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제가 세 단어로 요약하겠습니다. 예수를 알자, 예수를 닮자, 예수를 증거하자. 이 세 단어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알고, 깨닫게 된 그리스도의 품성을 닮아가면서 변화되는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게 전도의 효과입니다.
최근에 저희 진리횃불교회에서 목요일마다 영어 성경 학원을 하는데, 꽤 좋은 분들이 와서 영어를 네 단계로 나누어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중 연세가 많은 한 여성분이 교회를 출석하시는데, 남편이 절대로 교회를 못 나가게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부하러 간다는 핑계로 나온다고 하더군요. 공부하러 간다고 하면 봐준답니다. 교회는 절대로 못 가게 하는데, 공부하러 간다고 하면서 때로는 금요일 저녁에도 나오니까 남편이 조금 의심이 생겼나 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언제 알게 되었느냐 하면, 참 사탄이 묘합니다. 침례를 결심하고 침례받기 하루 이틀 전에 남편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남편이 화가 나서 교회에 나가면 죽여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꽤 나이가 있으신 분인데도 아주 지혜롭게 대처했습니다. "내가 교회 나가기 전에는 당신이 말할 때마다 대들지 않았느냐? 그렇지." "그런데 내가 요새 안 대드는 거 아니냐?" "안다." "그게 교회 나가서 그렇게 변화된 거다." 그랬더니 남편이 승낙을 해서 지난 5월 9일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 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뭔가 예수를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뭔가 초점이 안 맞은 것입니다. 저도 늘 부족한 사람이지만, 이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참 오래전부터 깨닫고 지금 나름대로 투쟁을 하며 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주로 설교 내용은 예언을 통해서 이 세상의 형편을 가르치거나 재림 교회의 아주 중요한 진리들을 펼쳐서 전하는 것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강조하는 것이 바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 진리횃불선교회에서는 두 달에 한 번씩 '변화'라는 잡지를 한 12,000권쯤 만들어서 주로 개신교회 관련자들에게 무료로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잡지 이름이 '변화'입니다.
예언의 신 여러 곳에서도 제가 이번에 인용했습니다만, 우리가 예수님 재림하실 때 하늘에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보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된 품성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 우리가 그동안 이 땅에 살면서 이리저리 노력해서 가지고 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재산, 명예, 권력 등 아무것도 가져갈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재산이라는 것은, 돈이라는 것은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굉장히 부자로 살다가 망한 사람을 한번 보았는데, 잠잘 곳이 없더라고요. 권력과 명예도 다 있다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연합회장을 한 6년 정도 했는데, 그거 하는 동안에는 상당히 힘이 있더라고요. 제가 그 힘을 나쁜 데 쓰지는 않았습니다만, 예를 들어 아주 어려운 지역에서 "두유를 한 100상자만 꼭 좀 도와주십시오" 하고 연락이 옵니다. 그러면 제가 식품공장 사장님한테 전화를 해서 어디어디에 두유 한 100상자만 도와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지없이 100상자가 무료로 갑니다. 때로는 병원에서 연락이 오기도 합니다. 환자가 입원했는데 생각보다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 정말 감당할 수 없으니 목사님이 도와달라는 사정을 쭉 들어보고, 합당하면 원장이나 재무에게 전화해서 이러저러한 사정이니 좀 도와줍시다 합니다. 그러면 50%를 할인해 주든지 면제를 해 주든지 그렇게 처리됩니다.
그런데 연합회장 임기가 끝나고 나니까, 유효 기간이 끝나고 나니까 제가 말을 해도 듣지 않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인간이 가지는 모든 권력과 명예 이런 것은 잠시 걸쳐 입은 옷일 뿐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벗겨질 수밖에 없는 옷입니다.
반면에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재산은 바로 품성입니다. 그것은 아무도 뺏을 수 없고 어디를 가나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늘 기도하고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하신 품성을 닮아가는 것을 내 최고의 신앙 목표로 정하여, 늘 주님을 닮아가는 재림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을 데리러 오시는 것이 재림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주님을 닮은 품성을 개발하는 일에 나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고유한 가치입니다. 이번 모든 집회의 결론을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집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마지막 말씀은 선악의 싸움, 경배 논쟁, 그리고 일요일 법령이라고 하는 매우 중요한, 이 시대에 반드시 똑바로 알아야 할 주제를 가지고 잠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을 보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는 것은 어떤 공간적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 영들이 영적인 존재인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사탄과 그 사탄의 영향력에 맞서 우리가 싸운다는 뜻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쎎이라"고 했습니다. 이전에도 지금도 이곳저곳에서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백성들은 삼킬 자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마귀의 공격을 받고 있으며, 이것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세계 역사의 배후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전쟁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전쟁입니다. 선과 악이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늘 두 가지 영이 역사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침례를 받기 전,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했습니다. 마귀의 자식으로 있다가 물과 성령으로 침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서 하나님의 호적에 양자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서는 우리를 양자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원래 사탄의 영이 있던 이 속에 성령이 들어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계속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과 악령의 싸움에서 이기는 길은 악령의 기를 죽이고 성령의 능력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그 성령의 능력을 키워가는 방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이 길고 깊을수록 영이 커지고, 이것이 작고 얕을수록 영은 약해져서 침례는 받았지만 계속 사탄에게 지는 것입니다. 올해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인 투쟁을 하는 성도로서 항상 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선악 간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항상 이 영을 강력하게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텔레비전을 한참 보고 있는 동안에는 성령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스포츠에 열중하고 있는 동안에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상시에 말씀을 머리에 많이 담고 항상 말씀을 품고 살면,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그 속에 저장되어 있는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없는 생각을 주시는 게 아닙니다. 평상시에 내 속에 들어와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생각나게 하셔서 우리가 악을 이기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기도하며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며 살아야 이 선악의 싸움에서 이깁니다.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남은 자손들도 얼마든지 미혹해서 넘어뜨릴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선악의 싸움을 역사적으로 관찰하면서, 이 선악의 싸움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인류 초기의 경배 논쟁 이전에, 하늘에서 먼저 경배 논쟁이 있었습니다. 루스벨의 마음속에 들어온 것은 하나님처럼 자기도 경배를 받고 싶었던 마음이었습니다. 천군 천사가 다 하나님 앞에 굴복해서 찬양하고 경배하는 그 경배를 자기도 받고 싶어 했습니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불의가 무슨 불의입니까?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자기를 높이는 표현이 세 번 연속 나옵니다. "내 자리를 높이리라",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며 자기도 하나님처럼 경배를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참 신비합니다. 제가 하늘에 가서 혹시 질문할 시간을 주시면 이것을 질문하려고 합니다. 죄가 없던 세상인데 어떻게 루스벨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들어갔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비한 일입니다. 어쨌든 루스벨의 마음은 피조물의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좀 더 우리가 깊이 연구해 볼 문제지만, 자기를 높이려다가 떨어진 루스벨은 하와를 미혹할 때도 똑같은 방법을 썼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된다고 미혹한 것입니다.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존중하고, 자기를 인정받으려고 하는 이 본능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습니까?
교만심이 이 속에서 올라올 때, 자만심이 올라올 때, 자기가 잘났다는 생각이 올라올 때 '이것은 사탄의 생각이다. 이것을 표현하면 안 된다. 이것을 극복해야 된다'라는 생각을 가질 정도면 성령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어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최고의 표준에 이르지 못하는 마음속의 갈등이 올 때, 그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겉으로 내놓지 말고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드리는 말씀이 자기 자신과 싸우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안 싸우면 남하고 싸우게 됩니다. 자기를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남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결국 사탄은 그의 사자들, 즉 그를 따르던 추종자들과 함께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라고 했습니다. 성경 원어에는 루스벨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여기 나오는 '계명성'이라는 말의 영어 표현이 루시퍼(Lucifer)입니다. 그래서 루스벨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어쨌든 사탄과 그를 추종하던 많은 천사들, 성경의 표현대로라면 3분의 1 정도가 하늘에서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쫓겨났습니다. 루스벨이 이렇게 하늘에서 쫓겨난 다음에 지구가 창조되었습니다. 『부조와 선지자』에 이 시간적 순서가 정확하게 나옵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쫓겨남이 있었고, 그다음 창조가 있었으며, 창조된 지 얼마 안 되어 사탄이 지구로 들어와 인간을 미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 번 드렸기 때문에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이렇게 죄로 인해서 죽어가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선언된 것이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할 때 '너'는 뱀이 아니라 사탄입니다. 이렇게 해서 선악의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너는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요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것이 선악의 싸움의 결말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예언된 말씀을 역사가 지난 다음에 풀어보면, 발꿈치가 상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것이고, 머리가 상한 것은 마침내 사탄이 완전히 불로 멸망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 땅에 죄악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죄가 시작되자마자 4장에 예배 논쟁, 즉 경배 논쟁이 나옵니다. 아벨이 드리는 예배와 가인이 드리는 예배가 달라진 것입니다. 이때부터 사탄의 영의 역사가 아주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으셨습니다. 가인 역시 다른 신에게 제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고 제사를 드렸지만, 재물을 바꾸어 자기가 농사지어 얻은 농산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벨의 제사는 인간이 스스로 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양이 표상하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만 죄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경배였고, 가인의 경배는 자기의 공로를 의지해서 의를 이룰 수 있다는 행위의 제사였습니다. 『부조와 선지자』에서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 가인과 아벨은 종말 때까지 세상에 있을 두 부류의 사람들을 대표한다. 한 부류는 죄를 위하여 지정된 희생을 이용하지만, 다른 부류는 자신들의 공로를 감히 의지한다. 예수의 공로를 통해서만 우리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피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 그들의 행위로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느끼는 자들은 가인과 동일한 과오를 범하고 있다.
행위로 구원받으려는 믿음의 조상이 바로 가인입니다. 그래서 이방 종교는 전적으로 자기의 행위를 통해 구원을 받고자 노력하는데, 이것이 극단으로 가면 자기 학대를 하거나 인신 제사를 드리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사탄은 이교를 통하여 각 시대의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였고, 특히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그릇된 길로 빠지게 함으로써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교도들은 자신들의 사고를 따라 생각하고 경배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렸고, 따라서 점점 더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그러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행위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하는 원칙은 모든 이방인 종교의 기초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들어와, 행위를 가지고 구원을 얻고자 하는 정신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시대의 경배 논쟁 중 대표적인 두 케이스를 설명하겠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두라 평지에 신상을 세워놓고 경배하라고 한 사건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라는 것, 즉 경배하라는 요구였습니다.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경배 논쟁은 결국 사람의 목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자기를 경배하지 않으면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역사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 13장에 나타나는 것도 짐승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는 내용입니다. 이 정신은 고대로부터 있었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로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경배하면 사자 굴에 던져 죽이겠다는 시험을 겪었습니다. 이것이 경배 논쟁의 굉장히 중요한 핵심 문제입니다. 사탄은 자기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하는 자들을 핍박하고 협박하며, 마지막에는 죽이려고 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정책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두 가지 경배가 존재한다는 것은 성전도 두 가지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스라엘도 타락해서 이방 신을 섬기는 산당을 많이 건축했습니다. 원래는 "여호와께서는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하신 하나님의 성전이 있어야 하는데, 이스라엘이 타락하여 바알의 산당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국가 안에 하나님의 성전과 바알의 산당이 늘 공존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는데, 심지어 인신 제사까지 드린 것입니다.
여러분, 놀랍게도 이 바알의 정신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인신 제사가 암암리에 드려지고 있습니다. 실상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어쨌든 너무나 이상한 세상입니다. 요즘 이유 없이 실종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아이들이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정말 두렵고 무서운 세상입니다.
마침내 아합 왕 시대에는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이때 선지자 엘리야가 나타나서 경배 논쟁을 벌입니다. 누가 참신인지 알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나라 전체가 지금 바알로 기울어져 있는 세대에서 엘리야는 굉장히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이 예배의 결말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믿고 따르던 바알 신이 참신이 아니고, 소수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이 참신이라는 것이 이 제사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이 다니는 교회가 무조건 올바른 교회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이 다니면 무조건 틀렸다는 것도 아니고, 적은 사람들이 다닌다고 항상 옳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충실한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였습니다. 하나님의 참 백성이 다수가 되었던 역사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경배 대상이 있으면 경배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십계명의 두 돌비를 우리가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쪽 돌비에 새겨진 첫 번째 네 계명은 다른 신을 경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는 말씀과 함께, 하나님의 경배일로 안식일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을 때에는 항상 우상 숭배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매우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우상을 섬기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따르며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라"고 했고, "그들이 나의 규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율례를 멸시하며 내 안식일을 더럽히고 눈으로 그 조상들의 우상들을 사모함이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을 올바로 경배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우상들이 들어오고 경배 대상이 바뀌는 것입니다.
저는 사탄이 얼마나 경배를 받고 싶어 하는지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에서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마지막 시험에서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바로 경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구원하러 온 이 세상을 그냥 줄 테니 나한테 경배하라는 요구였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탄이 얼마나 경배를 받고 싶었으면 예수님에게까지 자기를 경배하라고 하겠습니까?
교회 역사가 지나면서 로마 제국과 로마 교회 시대에 드러난 경배 논쟁이 나타납니다. 로마 제국은 주전 168년에 시작해서 서기 476년에 망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부터 유대 나라를 핍박했고 유대 나라에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며,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하신 이후에 이 땅에 남겨진 교회와 성도들을 아주 격렬하게 핍박했습니다. 사탄의 목표는 이 땅에 하나님을 진실로 경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자들을 완전히 멸절시키는 것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황제 숭배를 강요했습니다. 황제 숭배에는 '황제의 날'이 있었습니다. 황제의 날이란 황제나 가족들, 친족들의 생일, 전승 기념일, 온갖 축제일 등을 말하는데, 이래서 1년에 황제의 날로 정해진 때가 한 60회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황제의 날이 되면 모든 일을 손에서 놓고 황제를 숭배하는 의식과 함께 나라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으니 백성들에게는 아주 기분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러니 황제를 숭배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 나오는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라는 구절을 가지고 '주일(일요일) 예배가 여기 있지 않으냐'라며 일요일이 주의 날이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성경을 너무나 모르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 당시에는 일요일 예배는 물론 없었거니와, 주일이라는 요즘 같은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던 시대입니다. 사도 요한이 말한 '주의 날'이란 황제를 예배하고 섬기는 그 황제의 날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는 날인 안식일을 대비시킨 것입니다. 황제를 예배하는 날이 아니라 주님이 주인이 되시는 안식일에 예배하라는 메시지가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당시 이 황제 숭배에 굴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당한 핍박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발각되면 잡혀갔습니다. 제단 앞에 술을 따라서 제단에 부으며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주는데, 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단순한 행위 한 번을 하지 않고 "나 예수 안 믿겠습니다"라는 한마디를 하지 않아서 원형극장에 끌려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이것이 당시의 역사입니다. 이분들을 생각하면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부끄럽고 자주 타협하며 삽니다.
로마 제국 시대가 끝나고 로마 교회가 그 대를 이었습니다. 사탄은 로마 교회 교황을 신격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황(Pope)은 교회의 황제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교황은 사람입니다. 밥 먹어야 하고 화장실 가야 하고, 배고프고 기분 나쁘면 화도 내는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렇게 신격화하고 있습니다. 538년에 교황의 지상권이 확립된 다음, 1798년 교황 비오 6세가 프랑스군의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천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로마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을 거부하고 성경대로 신앙하는 무수히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고문당하고 살해당했습니다.
1512년 제5차 라테란 종교회의에서는 어떤 결론까지 나왔느냐 하면, "교황 당신은 지상에 있는 또 하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배 사상을 지워버리는 게 사탄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황을 신으로 인정하지 않다가 죽었습니다. 당시의 수많은 기록들이 삭제되고 남은 것은 얼마 안 되는데, 그림으로 남아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지 못하게 하던 시대라 비밀리에 성경을 필사하다가 발각되면 사형이었습니다. 이단으로 몰려서 잡혀가면 모든 신문과 고문을 받다가 결국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신앙인들이 하도 힘들어서 산골짜기에 들어가 모여 살다가, 신앙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즉시 군인들이 쫓아가서 그 동네 사람들을 다 죽이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교회가 교인을 죽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절을 보면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에 예언된 이 말은 교황 시대에 1차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사람들을 죽이면서 왜 그렇게 마음 놓고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까요? 한 역사 기록에 의하면 이 긴 세월 동안 교황의 힘에 의해 죽은 자들이 약 5,00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죽이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행하고 있는 교황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니,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어둠의 시대가 지난 다음 지금까지는 큰 핍박과 어려움이 없었지만, 지금도 공산 치하나 여러 아프리카 국가, 중동의 이슬람 국가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핍박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이제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박해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지구 종말 시대의 경배 논쟁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은 인류 지구 역사 마지막에 등장하게 될 경배 논쟁의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이슈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대단히 중요한 장입니다. 계시록 13장은 종말을 가리키는 나침반 같은 것입니다. 지금 계시록 13장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성취되어 가느냐가 곧 지구 역사를 가늠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13장에는 두 짐승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나온 짐승은 교황권이고 두 번째 나온 짐승은 미국입니다. 이 두 짐승이 힘을 모아 온 세계를 하나로 묶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 땅에서 쓸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과 교황청 관계가 별로 안 좋으니까 사람들이 "이 예언이 성취되다가 마는 거냐"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국제 정치에서 적군과 아군은 시시각각 바뀝니다. 특별히 지금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나라일지라도 공동의 목표가 생기면 즉시 하나가 됩니다.
1980년대에 공산주의 소련을 무너뜨릴 때, 당시 1982년에 레이건 대통령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만났습니다. 본래 미국은 헌법상 교황청과 외교 관계를 맺지 못하게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고 레이건 대통령이 바티칸으로 가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만나 밀담을 나누었습니다. 1982년의 일입니다. 밀담의 주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공동의 목표인 소련을 무너뜨리자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세계 패권을 잡으려면 소련이 무너져야 했고, 교황은 공산 치하에 있는 수천만 명의 가톨릭교인들을 살려내야 했습니다. 목표가 같으니 미국과 교황이 딱 하나가 되어, 교황의 모국이자 자유노조가 활발하여 무너지기 쉬운 여건을 가졌던 폴란드부터 시작해서 공산주의를 서서히 무너뜨렸고, 짧은 시간에 공산주의가 다 와해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1984년에 대사를 교환했습니다. 당시에도 미국과 바티칸은 외교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헌법이 살아 있었는데도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대통령이 헌법을 어겼으니 탄핵감이었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듯 신문에 크게 나지도 않고 유야무야 넘어갔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현재 미국과 교황권의 관계가 안 좋다고 해서 예언이 빗나가거나 거꾸로 가는 게 절대 아니라는 점입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같은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연합하게 되며, 역사는 예언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경배 논쟁이 나오지 않습니까?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구원받은 사람들 외에는 다 짐승에게 경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짐승은 교황권을 가르칩니다. 결국 역사의 종말에 가면 경배 대상이 둘로 좁혀집니다. 교황이냐, 하나님이냐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13장이 이것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가르쳐 줍니다. 이것은 종교적 박해를 말하는 것이고, 이 종교적 박해를 위해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종교 연합'입니다.
가톨릭의 1차 목표는 개신교회를 끌어들여 하나의 기독교로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가 개신교와 가톨릭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데, 가톨릭이 개신교를 끌어들여 하나의 기독교를 만든 다음, 이슬람, 불교, 힌두교 등 다른 모든 여타의 종교들과 다 하나가 되어 그 모든 종교의 수장 자리를 교황이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또한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고 했습니다.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이 죽이는 일은 법정에서 판결이 나와야 가능합니다. 그냥 아무나 죽이면 살인이지만, 합법적으로 죽이려면 정치적 도움이 있어야 하므로 정치적 박해가 오는 것입니다.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도록 강요하는 날짜로 일요일 법령(Sunday Law)을 만드는 것입니다. 일요일 법령을 따라서 교황에게 굴복하지 아니하면 정치적 박해를 받고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경고입니다.
그다음에 16절과 17절을 보면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경제적 박해입니다. 이 경제적 박해를 위해서 지금 준비되고 있는 것이 바로 '디지털 화폐'입니다. 이 디지털 화폐가 상용화되면 자기 돈을 가지고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세상이 옵니다. 지금 이것이 아주 신속하게 움직여 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화폐를 가지고 사람들을 통제하고 화폐 사용을 제한하는데, 정부가 이것을 컨트롤하는 시범 국가가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은 거지들도 QR 코드를 가지고 있어야 돈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모든 화폐 시스템이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개인에게 '사회적 신용 점수'를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국가에 대해서 SNS 등에 저항하거나 안 좋은 말을 올리면 사회적 점수가 깎이고, 국가를 찬양하고 좋은 이미지로 비치면 사회적 점수가 높아집니다. 이것을 어디에 쓰느냐 하면, 디지털 화폐가 상용화되었을 때 그 점수를 가지고 한 달에 사용할 수 있는 돈에 락(Lock)을 걸어버리는 것입니다. "너는 점수가 좋으니까 한 달에 300만 원 써라", "너는 점수가 안 좋으니까 50만 원만 써라" 하고 딱 락을 걸면, 자기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50만 원 이상은 못 쓰는 것입니다. 개인이 다 통제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 일요일 법령이 시행될 때 그것을 안 따라가면 사회적 점수가 빵점이 나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마지막 시대에 살아남는 길은 내 목숨과 먹고사는 문제를 인간적인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100%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뿐입니다. 어디로 피하고 도망가고 음식을 쌓아 놓는 것은 거의 소용이 없습니다. 엘렌 화잇의 글에도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중에 핍박이 오고 매매를 못 할 때 먹으려고 잔뜩 쌓아 놓은 사람이 있으면, 거기에 먹을 것이 있다고 소문이 나는 순간 그 집이 제일 먼저 망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쫓아 들어가 행패를 부리며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런 방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아합과 이세벨의 위협 속에서 엘리야가 숨어 있을 때 까마귀가 그를 먹였듯이, 우리가 엘리야처럼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오직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먹여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려면 지금부터 우리는 하루하루 하나님의 법도대로 철저하게 목숨 걸고 순종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하루하루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으면, 나중에 이런 위협이 올 때 믿음이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교황의 경배에 대해서, 하나님 행세를 하는 그림을 하나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교황의 보좌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보좌 양쪽 옆에 천사 조각상이 있습니다. 저 형식은 바로 하나님의 보좌 형식입니다.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룹(천사) 사이에 존재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그 그림은 교황이 지상의 하나님이라는 뜻이고 경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흉내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성소와 지성소를 만들었고, 그 지성소 안 법궤 위에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셰키나(Shekinah)가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법궤 뚜껑 양쪽에는 금을 쳐서 만든 천사(그룹)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법칙인데, 그 흉내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의 마지막 시대에 경배 대상은 둘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대로 교황권에게 굴복하여 그를 경배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경배할 것인가입니다. 경배 대상이 있으면 경배일이 항상 공존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이 지킬 경배일은 하나님의 십계명 속에 명시된 안식일입니다. 반면 교황권을 경배하는 경배일은 천주교에서 바꾸어 만들어 놓은 주일(일요일)입니다. 여러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아무 날이나 하나님을 예배하면 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경대로 십계명에 명시된 안식일에 예배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 이 반대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황에게 굴복하여 그에게 경배하는 표시가 바로 주일(일요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지금 개신교회에 만연해 있지만, 결과적으로 천주교회가 이것을 증거로 삼고 있습니다. 가톨릭의 여러 문헌에는 이런 문장이 많이 나옵니다. "개신교 너희들, 성경대로 한다고 종교 개혁을 통해 이 집에서 나갔느냐? 그렇다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처럼 성경에 명시된 안식일을 지켜라. 왜 우리가 바꾼 우리의 주일에 너희가 예배하느냐?"라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 오는 도중에 공항에서 한국과 통화가 되었는데, 이분이 일요일 예배를 드리는 장로교인이었습니다. 교회에서 가끔 성경 시험을 치는데, 자기는 거의 100점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 시험에 "안식 후 첫날이 무슨 요일인가?"라는 문제가 나왔답니다. 이 사람은 일요일이 안식일인 줄 알고 지켰기 때문에 안식 후 첫날을 '월요일'이라고 답을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틀렸다고 하니, 계속 100점 맞다가 하나 틀려서 기분이 안 좋아 목사님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목사님, 주일인 일요일이 안식일이잖아요. 그러니까 안식 후 첫날은 월요일이 맞는 거 아닙니까?" 했더니 목사님이 아니라고 하더랍니다. "아니, 그럼 안식일이 언제입니까?" 물으니 "성경의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라고 답하더랍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안식일을 안 지킵니까?" 하니까 세상이 다 그러니까 그렇다며 목사님도 답을 못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성경대로 안식일을 안 지키는 것을 보고 그 교회를 안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유튜브를 뒤지며 제가 안식일에 대해 설교한 강의를 듣고 저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은 창조의 기념일로 명시된 안식일에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경배입니다. 주일은 어디까지나 인간에 의해서 변경된 날입니다. 자꾸 십계명이 변경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는데, 십계명 중에 변경될 게 뭐가 있습니까? 계명이 변경되거나 폐지되면 큰일 납니다. 죄라는 것은 법이 있어야 성립되는 것인데, 계명이 폐해졌다면 죄가 없으므로 아무도 심판받지 않을 것입니다. 저 십계명 중에 폐지될 것은 한 글자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어떻게 감히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계명을 고치고 바꿉니까? 변경된 게 안식일뿐만이 아닙니다.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지 말라는 둘째 계명은 아예 삭제했습니다. 마리아상, 베드로상 등 성상을 만들고 숭배해야 하니까 그 계명을 지워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를 지우니 계명이 아홉 개밖에 안 남아서, 열 개를 채우기 위해 마지막 열 번째 계명을 둘로 나누어 놓은 것이 바로 천주교 계명입니다.
조만간 이 교황권을 경배하고 숭배하는 일을 구체화하고 실제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일요일 강제 휴업 법령'입니다. 이 일요일 강제 휴업 법령을 만들 때 내세우는 명분은 굉장히 사회적이고 건설적입니다. 종교적인 전통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경제적 명분으로 접근합니다. 일요일에 휴업함으로써 가족 공동체를 회복하자, 가족들이 다 같은 날 휴식하여 부모의 역할이 강화되고 가족의 화합을 이루어 보자는 것입니다. 교황을 경배하자는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근로자의 쉴 권리와 정신 건강을 위해 휴일을 고정해 놓고, 그날은 다 문을 닫아 소비와 생산에서 해방되어 편하게 살자는 명분을 내세웁니다. 사회 안정과 범죄 예방을 위해 그날 쉬면서 단체 활동이나 봉사 활동을 하면 범죄도 예방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에너지 절약과 환경 정화를 위해 공장과 상점이 휴무하고 자동차 사용을 감소시키면 탄소 배출도 줄어들고 에너지가 절약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얼마나 명분이 그럴듯합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 가톨릭에서는 주일(일요일)의 이미지를 자꾸 구약의 안식일 이미지로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안식일을 엄격하게 지켰듯이 주일을 안식일처럼 지키자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안식일을 범하면 형벌을 받았듯이 주일을 범하면 범법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보자는 움직임입니다. 동시에 국가적, 사회적으로 이러한 법안을 제정하고 추진하는 것이 이제 노골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굉장히 구체적이고 광범위하게 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2기 인수위원회가 작성한 '2025 프로젝트'에 '안식일(Sabbath)'이라는 항목이 들어 있습니다. 또한 2026년 초에는 미국의 상당히 보수적인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에서 일요일 휴업 정책을 제안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가족을 구하는 방법으로 미국을 구하자는 것인데, 그 방법으로 제안된 것이 바로 일요일 법령(Sunday Law)입니다. 일요일에 온 가족이 쉬자는 것입니다. 이때 각종 매체에서 헤리티지 재단의 일요일 휴업 제안에 대해 내놓은 논평은 대개 "안식일 회복, 일요일을 휴식일로 의무화하려는 계획"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선택의 여지 없이 강제로 휴업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2023년 4월 18일 가톨릭 뉴스에서는 '뉴 새버스(New Sabbath, 새 안식일)'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제칠일이 안식일이었지만 일요일도 안식일이라며 일요일을 자꾸 안식일화시키는 것입니다. 안식일 개념으로 자꾸 이미지를 바꾸는 것입니다. 일요일 성찬을 거행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새로운 계약의 표징이라며 일요일을 철저하게 지킬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2기 인수위원회가 만든 정책 제안서의 589페이지를 보면 명확하게 '새버스 레스트(Sabbath Rest, 안식일 휴식)'가 나와 있습니다. '선데이 레스트'가 아니라 '새버스 레스트'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내용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신은 안식일을 휴식의 날로 정하셨으며, 아주 최근까지 유대-기독교 전통은 해당 날에 노동을 도덕적·법률적으로 규제함으로써 그 명령을 준수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나아가 공동의 휴일은 가족과 지역 사회가 파편화된 개인이 아닌 함께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하며, 모두에게 더 건강한 삶의 리듬을 제공합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공동의 휴식일은 소비주의와 세속주의의 압력 속에서 특히 저소득층 근로자들에게서 점차 침식되어 왔습니다.
이처럼 일요일을 보전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요일 법을 공식적인 국가의 법으로 만들려면 결국 연방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 미국 연방 대법원의 구성을 보면, 아홉 명의 대법관 중 일곱 명이 가톨릭 신자입니다. 게다가 대법원장도 가톨릭입니다. 회의할 때 위원장이나 의장의 힘은 상당히 큽니다. 그러므로 이 법안이 나와서 논의가 되면 결의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 대법관들은 종신직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사회적으로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고, 법적으로도 인정할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상태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세계에서는 인권을 침해하는 강제적인 법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강요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점차 전체주의와 사회주의 성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미국 한오버 대학 객원교수인 김성건 교수가 사회 칼럼을 많이 쓰고 있는데, 『더 코리아 헤럴드』 2026년 3월 25일 자에 "민주주의의 세계적인 위기를 바라보며"라는 제목으로 글을 실었습니다. 이 글을 『더 데일리 스타』라는 신문에서 4월 10일에 "민주주의는 죽어가고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같은 내용을 게재했습니다. 그 내용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 우리는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단지 착각일 뿐이며, 사실 우리의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권위주의적·전체주의적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라면 어떠할까? 실제로 우리는 지금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위기를 목격하고 있다. 최근 정치학자들은 민주주의의 쇠퇴를 전 지구적인 현상으로 진단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위태로우면 우리는 결국 억압적이고 강압적인 정책에 시달리는 사회에서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전례 없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지켜보며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학자이니까 걱정으로 끝났습니다. 지금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다가 미래에 어떤 세상이 오겠습니까? 예언은 정확합니다. 가까운 장래에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교황의 권세에 굴복하게 하고, 거기에 굴복하지 않거나 경배하지 않으면 생계가 위협받을 정도의 위험한 법들이 만들어지며 매매도 못 하게 하다가 나중에는 죽이기까지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 법령을 만드는 과정은 상당히 신사적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그런 좋은 명분들을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교회증언 5권』에는 정확하게 짚어 놓았습니다.
> 일요일 운동은 오늘날 암암리에 그 길을 마련하고 있다. 지도자들은 문제의 진상을 숨기고 있으며, 그 운동에 연합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 운동의 저류가 어디로 향해 흐르고 있는지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그 공언하는 명분은 부드럽고 그리스도인답게 보이지만, 그것이 법으로 제정되고 시행될 때에는 용의 정신이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일요일 법령에 감추어진 비밀입니다. 절대로 겉으로 나타나는 명분처럼 좋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언에 의하면 이것 때문에 결국 종말이 오는 것입니다.
이제 끝으로 마지막 경배에 대한 말씀을 몇 가지 더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는 짐승에게 경배하라는 메시지가 나오는데, 바로 그다음 장인 계시록 14장으로 넘어가면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나옵니다. 이 경배 논쟁의 마지막 이슈는 교황을 경배하느냐,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느냐이며 이것이 인간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합니다.
역사를 대충 요약해 보겠습니다. 창조가 있었고, 인간이 사탄의 유혹으로 타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이 인간을 구원하시겠다고 선언하셨고 선과 악의 싸움이 펼쳐집니다. 여자의 후손을 출생시킬 이스라엘은 경배 논쟁의 관점에서 보면 바알 숭배에 빠졌습니다. 이후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님께서 오셨고 초기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예수님 시대부터 초기 교회 때까지는 황제 숭배를 강요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초기 교회가 타락한 풍토 속에서 로마 교회가 나타나는데, 이때가 서기 538년경입니다. 로마 교회는 하나님 대신 교황을 경배할 것을 요구했고, 이 권세는 1798년까지 1260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다음 개신교회 시대가 열렸습니다. 개신교회 시대를 분석해 보면 다른 신을 섬기는 것 같지 않지만, '만몬(Mammon) 신', 즉 돈을 숭배하는 이상한 신이 나타났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진리를 증거하는 대신 돈을 벌고 있습니다. 제가 한 개신교 목사님과 이야기하다가 웃개소리로 그런 말을 했는데, 사실입니다. 앞으로 예수 믿고 구원받는 사람보다 예수 덕에 먹고살다가 죽는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근본적인 진리는 알지 못하면서 예수를 빙자해서 돈벌이를 합니다. 목회자라고 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만난 많은 목사들은 거의 돈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면, 주변에 그 교회를 통해 이득을 보는 장로들이 장막을 칩니다. 그래서 그 목사가 다른 데 못 가게 하고, 목사가 은퇴하면 자식을 목사 시켜서라도 그 카르텔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목사 본인이 하고 싶지 않아도 주변의 이해관계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 제가 솔직하게 들은 이야기들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만몬 신을 섬기며 돈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1929년에 무너졌던 교황권이 라테란 조약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개신교회 시대의 끝머리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명에 충실한 남은 자손들을 다시 세우셨습니다. 이 남은 자손들을 박해하는 또 하나의 힘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다시 나타난 교황권이며 성경에서는 짐승으로 상징됩니다. 계시록 13장에서 또다시 짐승 경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잘 보시면 모든 역사가 경배 싸움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느냐, 바알 신을 경배하느냐, 황제를 숭배하느냐, 교황을 경배하느냐, 만몬 신을 경배하느냐, 짐승을 경배하느냐의 역사입니다. 계시록 13장에는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되어 있지만, 계시록 14장에는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고 했습니다. 명확하지 않습니까? 역사의 마지막에 짐승에게 경배하라는 요청과 함께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요청이 동시에 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선택에 의해서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말씀을 잠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하신 이유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을 다시 다듬으면,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영광을 돌리라는 뜻입니다. 심판의 끝은 예수님의 재림이므로, 재림이 임박한 종말 시기가 되었으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까?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고 했습니다. 이 수식어가 깁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세 자로 줄이면 바로 '창조주'입니다.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긴 설명을 붙였을까요? 요한계시록 14장 7절에 나타나는 이 긴 설명의 근원지는 십계명의 넷째 계명(안식일 계명)입니다. 거기 보면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첫째 천사의 기별은 재림과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 속에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기별은 넷째 계명에 들어가서 확인하라는 뜻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서 안식일을 회복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3장과 14장은 역사의 마지막 종말에 부딪힐 대단히 중요한 주제들이 충돌하는 장입니다. 13장은 교황을 중심으로 세계가 연합하는 모습이고, 14장은 진리를 중심으로 14만 4천 명이 모이는 모습입니다. 13장은 짐승(교황권)을 경배하라고 요청하고, 14장은 창조주를 경배하라고 합니다. 13장은 일요일을 예배일로 정한 것이고, 14장은 안식일에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13장은 짐승의 표를 받으라는 것이고, 14장은 하나님의 인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13장은 인간의 권위를 중심한 인본주의 신앙이며 이것이 바로 가인의 제사입니다. 반면 14장은 하나님의 계명 중심의 신본주의 신앙입니다.
이 선악의 마지막 싸움은 하나님을 안 믿는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잘못되게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싸움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인과 아벨의 제사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쳐 죽였듯이, 마지막 시대에도 하나님을 다르게 믿는 무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명을 지키는 백성들에게 마지막 환난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고 매매를 못 하게 한다는 위협과 박해가 현실로 닥쳐왔을 때,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납니다.
첫째, 이미 계명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하던 자들 중에서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고 품성으로 형성되지 않은 사람들은, 마지막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하나님 경배를 포기하고 교회를 떠날 것입니다. 이로써 자신이 죽정이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둘째, 아직 계명을 알지 못했던 자들이 있습니다. 알면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인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는 남은 자손들의 순교적인 신앙을 통해서 안식일과 계명이 온 천하에 공개될 것입니다. 그때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침내 마지막으로 진리와 함께 계명에 순종하기 위해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내 백성아,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끝으로 요한계시록 12장 17절의 '남은 자손'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구절은 번역이 약간 미흡한 부분이 있습니다. 성경에 '여자의 남은 자손'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실제 원어나 영어 성경을 보면 "여자의 후손의 남은 자손(the remnant of her seed)"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냥 '여자의 남은 자손'이라고 하면 교회에 남은 자손이라는 뜻이 되지만, 원뜻은 '그리스도의 남은 자손'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적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뜻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과 품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단지 계명을 따라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만이 남은 자손의 증거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닮은 품성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남은 자손으로서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고, 그 안에서 사랑을 배워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남은 자손이라는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증거입니다. 아무리 계명을 따라서 안식일을 잘 지켜도 교회에 나와서 미운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남은 자손이 아닙니다.
남은 자손의 특징은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 걸고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고 이웃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계명의 정신입니다. 시기, 질투, 험담, 불평하는 마음이 생길 때 양심에 찔림이 오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죄를 즉시 자복하고 깨끗한 상태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아가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전심전력하여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역사의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평상시 생활에 매몰되어 정신없이 살다 보니 영적으로, 예언적으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별로 생각을 안 하고 살아가지만, 평생 동안 이 예언을 연구한 목사로서 아주 냉철하게 이 세상을 분석해 보면 이 세상은 더 이상 인간이 정상적으로 살 만한 곳이 아닙니다.
이제 로봇과 AI가 다 들어오고 있습니다. 로봇이 들어온다는 것은 굉장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로봇이 공장에 들어와 일을 막 하다 보면 사람들은 일자리를 다 잃어버립니다. 로봇이 일을 하면 인건비가 안 들어가니 물건값은 굉장히 싸지겠지만, 불행하게도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물건값이 싸도 살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돈을 나누어 주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기본소득제'입니다. 국가가 나누어 주는 돈을 가지고 싼 물건을 사는 상태가 되면, 인간은 완전히 국가의 노예가 되는 것이고 국가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가 가고 있는 마지막 징조이며 사탄의 전략입니다. 인간성은 다 상실되고 인간 근본 목적은 사라지며, 하나님 경배 대신 다른 대상을 경배하게 만들다가 세상을 끝내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역사의 마지막에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 예언된 남은 자손으로 살게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정말 천운입니다. 중요한 것은 재림교인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의 남은 자손으로서 매일의 생활 속에서 겸손하고 온유하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습으로 자기를 희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 것을 베풀고 나누어 주며 이타적으로 살 때, 이것이 하늘에 갈 백성으로 준비되는 과정입니다.
말만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모든 정신과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정신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을 다하여 순종함으로써, 끝까지 살아남아 하늘에 이르는 남은 자손이 되기를 바라면서 모든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역사의 마지막 어둡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남은 자손의 빛을 비추어 주시고, 그 빛을 따라갈 길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늘 가는 길목에서 우리 모두는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그리스도를 닮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품성을 이타적인 품성으로, 우리의 교만하고 자만한 품성을 예수님처럼 겸손한 품성으로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그러나 우리는 연약한 존재들이기에 스스로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내가 말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더 이상 육으로 살지 않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영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만 남은 자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의 남은 자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을 가지고 실천하며,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구원하는 일에 우리의 인생을 전적으로 헌신하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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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 요약 정리
강연의 핵심 내용을 5가지 주제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1. 그리스도인의 핵심 정의: '변화된 품성'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알고, 닮고,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재림 시 하늘에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보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된 '품성'뿐이며, 세상의 재산·명예·권력은 잠시 입다 벗는 옷처럼 안개와 같이 사라집니다.
2. 선악의 대쟁투와 마음속 전쟁
인류 역사 배후에는 사탄과 영적 존재들의 거대한 전쟁이 있으며, 이는 우리 마음속에서 성령과 악령의 싸움으로 날마다 재현됩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텔레비전이나 스포츠 같은 세상 유혹을 멀리하고, 평상시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의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3. 역사 속 '경배(예배) 논쟁'의 본질
사탄(루스벨)의 타락 원인은 하나님처럼 경배를 받고 싶어 한 교만이었으며, 이 경배 논쟁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행위 구원 vs 그리스도의 공로), 다니엘 시대의 우상 숭배 강요 등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종교적 박해 역시 하나님을 잘못 믿는 다수가 바르게 믿는 소수를 박해하는 형태(가인과 아벨의 형태)로 나타날 것입니다.
4. 마지막 시대의 이슈: 요한계시록 13장과 14장의 충돌
계시록 13장(사탄의 전략): 교황권 중심의 종교 연합, 미국과의 정치적 연합, 일요일 강제 휴업령(가족 회복, 환경 보호 등 그럴듯한 명분 위장), 디지털 화폐 및 사회적 신용 점수를 통한 경제적 통제(짐승의 표).
계시록 14장(하나님의 기별): 넷째 계명에 명시된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첫째 천사의 기별, 안식일(토요일)의 회복, 하나님의 인을 받는 백성.
5. 그리스도의 '남은 자손'으로 살아남는 법
'여자의 남은 자손'의 원뜻은 '여자의 후손(그리스도)의 남은 자손'으로, 단순히 안식일을 지키는 형식을 넘어 예수님을 닮은 온유, 겸손, 이타적 사랑의 품성을 지녀야 합니다.
마지막 환난(매매 금지 및 사형령) 때 인간적인 방법(음식 비축 등)은 무용지물이며, 엘리야처럼 오직 하나님께 100% 신뢰하고 순종하는 습관이 품성으로 굳어진 자들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