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겟돈 전쟁의 이슈 / 요한계시록 16:14-16
오늘 저녁 말씀의 제목은 '아마겟돈 전쟁의 이슈'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 나누기 전에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시는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저희들의 아버지 하나님, 저희가 하나님 말씀을 나눌 때에 성령 하나님 저희들에게 역사하여 주시고, 또 이 저녁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저희 모든 믿음의 성도들 되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한 시간 내내 함께해 주시옵기를 예수님의 귀하신 이름으로 감사드리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오늘 저녁 말씀의 제목은 '아마겟돈 전쟁의 이슈'입니다. 여러분 아마겟돈 많이 들어보셨겠죠? 또 우리 재림교인이라면 아마겟돈에 대한 내용을 꽤 많이 들어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계는 전쟁 중에 있습니다. 이 전쟁이 언제쯤 맞춰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설령 이 전쟁이 맞춰진다 할지라도 또 다른 전쟁이 계속해서 발발할 것입니다.
『마지막 날 사건들』 24쪽의 말씀인데 제가 한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우리 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광포를 대항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말씀은 어느 때보다도 이런 징조들을 볼 때에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더욱더 믿음을 가지고 준비해야 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 "주께서는 일어나시어 무섭게 지구를 흔드실 것이다. 우리는 사방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볼 것이다."
여러분, 세계 곳곳에서 많은 분쟁들이 있을 것입니다. 전쟁도 있을 것이고 많은 소요도 있을 겁니다. 많은 데모도 있을 것입니다. 그다음에 여기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 "수천 척의 배가 깊은 바닷속으로 침몰할 것이다. 군함들이 물속에 빠지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희생될 것이다."
마지막이 될수록 전쟁은 많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참으로 임박했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떤 전쟁보다도 가장 치열한 전쟁이 있습니다. 그 전쟁에 대해서 요한계시록에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요한계시록 16장 14절의 말씀입니다.
>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그다음에 이런 말씀이 이어집니다. 15절의 말씀입니다.
>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다음에 16절의 말씀입니다.
>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여러분, 이 아마겟돈 전쟁은 이 세상에 예수님의 중보가 끝나고, 다시 말하면 은혜의 시기가 끝나고 여섯 번째 재앙이 내릴 때 있게 될 선악의 대쟁투입니다. 여기 14절에 보니까 천하 왕들에게 가서 그들을 모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16절에 왕들을 모으더라는 내용이 반복됩니다. 왕들을 모아서 마지막 대쟁투를 치르는데 그 가운데 어떤 말씀이 끼어 있습니까? 15절의 말씀이 끼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권력이 총동원되어 하나님 백성들을 공격할 때, 어떤 하나님의 백성들이 끝까지 살아남을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여기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러분, 제가 이 구절을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가 있어요. 혹시 성경을 보시면, 신약 성경 가운데 빨간 글씨로 표시된 것은 누구의 말씀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직접적인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직접적인 말씀은 이렇게 빨간 글씨로 표시가 되어 있어요. 물론 모든 성경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가 보는 성경은 그렇게 빨간 글씨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5절의 말씀이 빨간 글씨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 이전에 빨간 글씨는 어디에 나와 있을까요? 혹시 보셨습니까? 이 말씀 이전에 또 빨간 글씨로 표시된 곳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어디에 있냐면, 바로 요한계시록 3장 18절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 3장 18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직접 말씀하시고, 이제 한참 지나서 계시록 16장에 와서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이 두 말씀에는 아주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게 우리의 생명과 너무도 연관되어 있는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 보세요. 16장 15절에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에 관한 것이죠? 옷에 대한 말씀입니다. 자, 그런데 3장 18절은 무엇에 대한 말씀입니까?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이 두 말씀의 공통점은 바로 '옷'에 대한 내용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마겟돈 전쟁의 핵심은 무엇에 관한 것이다? 바로 '옷에 관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16장 15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때 생사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관점은 옷에 대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옷이 무엇일까요? 성경은 옷을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61장 10절의 말씀입니다.
> "내가 여호바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옷은 무엇을 상징한다고요? '구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표현을 쓰면 '의(義)'에 대한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 선악의 대쟁투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자들은 누구인가 하면 옷을 입은 자들인데, 이 옷이 바로 구원의 옷, 의의 옷을 입고 있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옷을 입고 있는 것과 벗고 있는 것에 대해서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옷을 입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인지 고린도후서 5장 4절을 보겠습니다.
>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여기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벗는 게 무엇이고 입는 게 무엇인지를 사도 바울이 분명히 설명을 하고 있어요. 벗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옷을 벗김을 당합니다. 아름다운 옷을 다 벗기고, 전혀 몸에 맞지 않는 배옷(수의)을 입히지 않습니까? 벗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입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라며 그것이 바로 '생명'이라고 설명합니다.
바울의 마음속에 정말 하나님 안에서 얻기 원했던 은혜는 벗는 것이 아니라 입는 것이었습니다. 벗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입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선물로 얻게 되는 생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때, 선악의 대쟁투에서 살아남을 자들은 의의 옷, 생명의 옷을 입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지키는 자들이란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언제까지 이 옷을 확보해야 될까요? 우리에게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머지않아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징조들이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임박했음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6장 15절에 그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언제까지 우리가 옷을 챙겨 입으면 되냐면, '예수님이 도둑 같이 오시기 전까지'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게 도둑 같이 올 거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그 전까지 우리가 옷을 확보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과연 이 옷을 입고 있고, 지금도 계속해서 보존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도둑 같이 오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도둑 같이 온다'는 표현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 저녁 이게 정말 중요한 내용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몇 사람이나 예수님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까? 성경은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비밀스럽게 도둑 같이 오시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도둑 같이 온다는 표현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교회증언 2권』 190쪽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3장 35절에서 37절의 말씀을 인용한 다음에 영감의 글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새벽을 밝히시러 오는 분이 홀연히 오셔서 우리의 자는 것을 보시지 않게 하려고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고대하고 있다."
그분이 홀연히 오시는 도둑 같이 오는 때가 과연 언제인가 하면, 그리스도께서 하늘 구름 가운데서 나타나셔서 잠자는 사람을 발견하시는 재림의 때가 아닙니다. 바로 '하늘 성소의 지성소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실 때', 즉 '은혜의 시기가 끝나는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성소에서 나오시는 때는 우리의 모든 중보 사업이 끝나고 이제는 사람들의 운명이 완전히 결정되어 버린 때입니다. 재림은 이미 구원받기로 결정된 사람들을 데려가기 위해서 오시는 것뿐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이 은혜의 시기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몰라요. 은혜의 시기가 오늘 끝날지 내일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마치 '도둑 같이 온다'고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도둑이 예고하고 옵니까? 예고하고 오는 도둑은 도둑이 아닙니다. 이 은혜의 시기는 성경 어디를 봐도 단서가 없으며, 언제 끝날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의 시기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에 순식간에 끝난다는 의미에서 도둑 같이 온다는 표현이 맞는 것입니다.
그다음 영감의 글을 읽어 보겠습니다.
> "즉 그분께서 제사장의 예복을 벗으시고 복수의 옷으로 갈아입으신 후에 다음과 같은 명령을 발하실 때를 말씀하는 것이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이게 바로 은혜의 시기가 끝나고 하늘이 선고하는 말씀입니다. 은혜의 시기가 끝나면 운명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이게 예수님 재림 전에 먼저 오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언제 이를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날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리 옷을 준비하고 생명의 옷을 챙겨 입으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옷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닙니다. 이 옷은 예수님께서만이 지으실 수 있는 옷이며, 하나님이 제공해 주신 옷입니다. 사람의 어떤 노력으로도 이 옷을 만들어 입을 수는 없습니다. 이 옷을 제공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놀라운 희생을 치르셨는지를 잠깐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3절의 말씀입니다.
>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여러분,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달려 돌아가실 때 옷을 입고 돌아가셨습니까, 벗고 돌아가셨습니까? 그림에는 옷을 입은 것으로 나와 있지만,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죄수들은 완전히 벗김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수님도 완전히 다 벗고 돌아가셨습니다. 아까 제가 벗는 게 뭐라고 말씀드렸죠? 죽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완전한 죽음을 당하신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에게 입혀 주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게 생명의 옷, 구원의 옷을 입혀 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다 벗고 돌아가신 겁니다. 우리가 죽어야 할 그 자리에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입고 있는 이 구원의 옷은 우리에게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지만, 이 옷을 제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신 것입니다.
자, 질문 하나 드릴까요? 여러분, 이 옷을 입고 계십니까?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벗어 주신 그 옷을 여러분은 입고 계십니까? 입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입고 있지 않은 것 같기도 해서 자신감이 없으십니까? 만약 입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빠른 시간 내에 결심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마지막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옷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말씀해 주고 있어요. 요한계시록 3장 17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입었습니까, 벗었습니까? 입고 있다고 착각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마지막 교회의 백성들이 다 벗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아까 벗는 게 뭐라고 말씀드렸습니까? 죽음입니다. 즉, 영적으로 죽어 있는 것입니다. 재림을 기다린다고 고백하는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전히 벗고 있는 거예요.
왜 벗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를 잘 아시면 다시 옷을 챙겨 입는 방식도 이해하시게 될 것입니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97년 1월 26일 자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의 오심을 막연히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있지 않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죄에서 정결함을 입지 못하였다. 그들은 이기적이고 교만하며 그들의 경험에는 그리스도가 없다. 그들은 아주 눈이 멀어 있기 때문에 죄와 교만의 미묘한 역사를 간파할 수가 없다. 그들은 자기의 의라고 부르는 누더기 옷을 걸치고 영적으로는 눈멀어 있다."
특별히 왜 이 교회가 벌거벗었는가 하면, 이유는 간단해요. 예수님이 안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문 밖에, 내 가정 밖에, 심지어 우리 교회 밖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기적이고 교만하며 그들의 경험에는 그리스도가 없다." 이게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여전히 구원의 확신이 없고, 그리스도의 의를 깊이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험에 자주 넘어지고 유혹에 자주 굴복하는 것은 우리가 이 의의 옷, 생명의 옷을 입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주 화를 내고, 자주 짜증을 내며, 마음속에 미운 마음이 들고 시기심과 질투가 끊어지지 않는 것 역시 예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18절입니다.
>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유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흰옷을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이게 구원의 옷이자 생명의 옷, 의의 옷입니다. 그런데 이 옷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서 입으라'고 하십니다. 값이 얼마입니까? 값을 알아야 살 거 아닙니까? 한 천만 원 할까요, 아니면 1억쯤 할 것 같습니까? 성경에 왜 사라고 말씀하셨는지 그 이유를 우리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사야 55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의의 옷은 돈을 주고 사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왜 사라고 하셨을까요? 사라는 말은 '거래'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거래가 무엇이냐면 "네가 가진 이것을 주면, 내가 이 옷을 줄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요? 잠언 23장 26절의 말씀입니다.
>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여러분,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마음을 달라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세상에 지금까지 주었잖아. 이제 세상에 더 이상 주지 말고 내게 줘."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을 달라고 하실까요? 『정로의 계단』 46쪽의 말씀입니다.
> "그러면 우리가 모든 것을 드린다고 할 때 우리는 무엇을 내어 드릴 것인가? 곧 죄로 오염된 마음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옛날 동요 중에 "두꺼비야 두꺼비야 헌집 줄게 새집 다오"라는 가사가 있었죠. 예수님이 이걸 요구하시는 겁니다. "내가 너에게 구원의 옷을 줄 테니, 네 죄로 더럽혀진 마음, 세상에 물든 그 마음을 그대로 내게 달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깨끗하게 씻어서 우리에게 '새 마음'으로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흰옷을 입는 경험입니다.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하나, 우리의 죄로 더럽혀진 그 마음을 예수님은 갖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녁에 예수님의 이 음성을 다시 한번 새겨들으시면서, 세상에 지금까지 빼앗겼던 그 죄로 오염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예수님께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리할 때 예수님께서 이 마음을 취하시고 우리에게 그분의 옷을 제공해 주겠다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옷을 입는 자들이 세상 마지막 때에 영적인 대쟁투가 아무리 심각하다 할지라도 거기서 온전히 살아남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러분, 나는 옷을 입었습니까? 오늘 저녁 우리의 죄된 마음을 예수님께 드림으로 이 옷을 제공받는 우리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일단 이 옷을 부여받으셨으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옷을 깨끗하게 보존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깨끗하게 보존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날마다 빠는 것입니다. 날마다 이 옷을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는 것입니다. 놀라운 소식은 머지않아 하늘 세탁소의 문이 닫힌다는 사실입니다. 문이 닫히기 전에 부지런히 옷을 빠셔야 합니다. 세탁소의 문이 영원히 다치기 전에 부지런히 여러분의 옷을 빠셔서 깨끗하게 보존하심으로, 영적인 최후의 대쟁투에서 살아남는 하나님의 귀한 백성들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빨간 글씨로 된 가장 마지막 말씀이 요한계시록 22장 20절의 말씀입니다.
>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사도 요한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재림에 대한 가르침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예수님 빨리 오십시오" 하고 반응했습니다.
제가 예전에 출장을 참 많이 다녔습니다. 한 달에 거의 보름 가까이 출장을 다녔던 것 같아요. 한국은 물론이고 여러 나라에 회의차 출장을 다녔기 때문에 집을 자주 비우게 되었습니다. 제가 출장을 갈 때마다 제 아내가 꼭 하는 얘기가 있어요. 한 번도 그 말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뭐라고 했을까요? "여보, 빨리 와요." 제가 출장을 떠날 때마다 항상 하는 얘기가 그것입니다. "여보 사랑해"라는 말은 한 번도 못 들어봤는데, 꼭 "여보 빨리 와요"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 "빨리 와요" 하는 그 말이 제게는 "여보, 나 당신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귀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빨리 오세요"라고 기도해 보셨습니까? 그렇게 기도하고 계시는지요? 정말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자들은 그렇게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 빨리 오세요"라는 말은 "예수님, 정말 예수님 사랑합니다.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라는 표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진정으로 기다리며 그분이 빨리 오시기를 고대하는 사람마다, 가장 중요한 준비인 '옷을 날마다 챙겨 입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을 진정으로 기다리면서 주님의 속히 오심을 믿으시고, 날마다 이 옷을 빠짐없이 준비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라면서 오늘 저녁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아멘.
(이어서 성도들과 함께 찬미가 566장 '주 예수님 다시 올 때'를 부른 후, 목사님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습니다.)
---
## 💡 핵심 요약 정리
강연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세 가지 포인트입니다.
1. 아마겟돈 전쟁의 핵심 이슈: '옷'
아마겟돈 전쟁은 지구 역사의 은혜의 시기가 끝나고 여섯 번째 재앙이 내릴 때 벌어질 최후의 선악 대쟁투입니다.
요한계시록 16장 15절과 3장 18절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권면(빨간 글씨)의 공통점은 '옷'에 관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옷은 '구원과 의(義)'를 상징하므로, 마지막 대쟁투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기준은 예수님이 입혀주시는 '의의 옷(생명의 옷)'을 입고 끝까지 지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2. '도둑 같이 온다'는 표현의 참된 의미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사람이 눈으로 보게 되므로 비밀리에 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도둑 같이 온다'고 표현한 것은 재림 직전에 있을 '하늘 성소의 중보 사업(은혜의 시기)이 끝나는 시점'을 인간이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시기가 끝나 선악 간에 운명이 영원히 고정되기 전에, 우리는 영적으로 벌거벗은(영적 죽음) 상태에서 벗어나 속히 의의 옷을 갖추어 입어야 합니다.
3. 의의 옷을 사고 보존하는 방법
사서 입는 법: 이 옷은 돈이나 인간의 행위로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값은 우리의 '죄로 오염된 마음'입니다. 더럽혀진 마음을 있는 그대로 예수님께 전적으로 드리는(거래) 자에게 흰옷이 거저 주어집니다.
깨끗이 보존하는 법: 한번 제공받은 의의 옷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피)로 부지런히 빨아서 깨끗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은혜의 문(하늘 세탁소)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날마다 자아를 굴복시키고 재림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