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겟돈 전쟁- 양강원 목사
오늘 제목은 '아마겟돈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말씀은 요한계시록 16장 12절로 16절 말씀입니다.
>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또 내가 봄에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오늘 요한계시록 16장 16절에 나오는 '아마겟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대부분 '무시무시하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아마 개돈일 것이다'라고 하는 분도 계실 만큼, 대부분의 경우 부정적인 이미지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아마겟돈에 대해서 우리가 자세히 살펴보고, 그 개념을 다시 한번 재정립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번에 요한계시록의 전체적인 구조(Structure)만 소개를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어떤 관점과 구조를 가지고 요한계시록을 바라볼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특별히 그 구조 가운데서도, 승리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고 계시는가를 바라보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이해가 안 되면 이해가 될 때까지 읽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구약 성경 가운데 '구약의 요한계시록'이라 불리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스가랴서입니다. 스가랴서 1장을 보면 환상(Vision)으로 시작되는데, 총 여덟 개의 이상이 나옵니다.
그 여덟 가지 환상 가운데 첫 번째 이상은 바로 화석류나무(성류나무)에 관한 이상입니다. 우리 올림픽 교회 입구에도 화사한 살구꽃이 피어 있어서 들어올 때마다 한국의 고향처럼 마음이 환해집니다. 이처럼 스가랴서 1장에는 하나님께서 무너진 폐허 가운데서 성전을 다시 세우시며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실 때, 첫 번째 환상으로 화사한 화석류나무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 화석류나무는 히브리어로 '하다사임'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운의 상징'과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행운의 상징이 돼지꿈인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르사임이 꿈에 보였다는 것은 큰 행운이 찾아온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개업을 하거나 이사를 갈 때, 혹은 초막절에 지붕을 꾸밀 때 이 화석류나무로 장식을 합니다. 또한 이 잎사귀에서는 아주 아름다운 향기가 납니다.
성경에 이 '하다사'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한 명 있었습니다.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아가씨였던 '하다사', 곧 에스더입니다. 그 이름을 화석류, 즉 '꽃분이'처럼 불렀던 것입니다. 참 정겹지 않습니까?
그런데 스가랴 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계신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성전 건축의 희망이 사라지고 폐허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야 하는 상황 속에서, 젊은 선지자 스가랴가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서 온 세상을 감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을 때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을 얻었겠습니까?
선지자 스가랴가 본 여덟 가지 환상 중에서 특별히 우리는 네 번째 이상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스가랴 3장에 가보면 이 환상이 다시 등장합니다.
>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시고...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스가랴 3:2-4)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을 때 사탄이 그를 참소하자, 하나님께서는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시며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라고 명하십니다. 이는 놀라운 위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인 타락으로 포로 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회복할 영성의 힘이 부족하던 그들을 하나님께서 응원하고 지지하신다는 위로의 기별입니다.
제가 서두에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엘렌 화잇의 글에 스가랴 3장의 이 환상이 대속죄일의 마지막 장면에 사는 '마지막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의 경험'에 특별한 힘으로 적용된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바로 오늘날 우리의 경험이라는 뜻입니다. 마지막 시대를 사는 백성들이 가장 깊이 연구하고 묵상해야 할 주제가 바로 스가랴 3장의 기별입니다.
최근 우리 교회의 재림 전 심판(조사 심판)에 대한 많은 신학적 도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재림 교회의 근간을 흔들려는 도전은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요한계시록과 예언을 깊이 연구해 보면, 다른 교단의 신학자들도 공통으로 고백하듯이 요한계시록의 핵심 메시지를 분명히 이해하게 됩니다.
그 핵심은 바로 "우리가 지금 하나님께서 입혀 주신 의의 옷을 입고 있는가?"를 날마다 점검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과거에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은총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참소합니다. 이것이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작은 뿔이 하늘을 향하여 비방하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온 우주 앞에서 우리를 신원하시고 구원을 확정하여 선언하시는 과정이 바로 조사 심판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이 심판의 시간은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 시간입니까?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린다"라고 하실 때, 이 두드림은 부드러운 노크가 아니라 '쾅쾅쾅' 강하게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유월절 안에 있는 경험,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의 울타리 안에 안전하게 들어와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시대에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고 있는지를 날마다 확인해야 합니다. 『선지자와 왕』 588페이지에 남은 교회도 마음을 찢고 변치 않는 믿음으로 대언자이신 예수를 통해 용서와 구원을 날마다 호소해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제부터 아마겟돈 전쟁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왜 서두에 이 '흰옷을 입는 것'을 중요하게 강조했을까요? 스포츠 경기를 할 때도 피아를 식별하고 우리 팀임을 확인하기 위해 같은 유니폼을 입습니다. 세마포 옷을 입으신 예수님께서는 요한계시록 16장에서 우리에게 그 의의 옷을 입으라고 초청하시면서, 아마겟돈 전쟁의 승리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사탄의 연합군은 용과 바다 짐승, 그리고 땅에서 올라온 짐승(거짓 선지자)입니다. 이들은 마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악하게 모방하고 있습니다. 이 귀신의 영들이 이적을 행하며 온 천하 왕들을 아마겟돈이라는 곳으로 모아 마지막 대쟁투를 벌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교회,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재앙의 구조가 있습니다. 일곱 재앙은 재림 직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는 사건들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직전, 이 아마겟돈이라는 장소에서 왕들을 모으는 마지막 영적 대쟁투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마겟돈'은 어디일까요? 한국 역사로 비유하자면 6·25 전쟁 당시의 '백마고지'와 같은 곳입니다. 휴전 명령이 내리기 직전까지 고지를 빼앗고 빼앗기며 수많은 젊은이가 피를 흘렸던 치열한 전투지였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아마겟돈은 역사적으로 가장 치열했던 영적·육적 전쟁터를 뜻합니다.
지도를 보면 서쪽에 갈멜산이 있고, 그 맞은편에 나사렛 동네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나사렛에서 눈을 뜨면 바로 이 갈멜산이 바라보입니다. 또한 나사렛 뒤편에는 예수님이 용기를 주시기 위해 재림의 광경을 미리 보여 주셨던 변화산(다볼산)이 있습니다.
이 나사렛 산자락과 갈멜산 산자락이 만나는 거대한 평야가 바로 '이스르엘 골짜기(이스르엘 평야)'입니다. 이곳을 다른 말로 '므깃도 골짜기'라고 부릅니다. '아마겟돈'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하르 므깃도(Har Megiddo)', 즉 '므깃도의 산'이라는 뜻이며, 그 므깃도의 산이 바로 갈멜산입니다.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싸울 때 이 갈멜산을 전투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평야에 있는 모든 백성이 조망할 수 있는 높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예배의 진정성을 가르는 대쟁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엘리야는 번제단 사방에 물을 세 번이나 부었습니다.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온 땅에 가뭄이 극심하여 물의 근원까지 찾아갔으나 물을 구할 수 없었다고 나옵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신 그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엘리야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고,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동역자들과 함께 서 있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단을 살랐습니다.
이 이스르엘 골짜기는 예로부터 비가 오면 진흙 뻘밭이 되는 지형이었습니다. 사사기에서 드보라와 바락이 시스라의 철병거를 물리쳤을 때도 시스라의 병거들이 이 진흙 평야에 빠져 파멸했습니다. 엘리야 역시 손바닥만 한 구름을 보고 곧 비가 내려 뻘밭이 되면 마차가 움직이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아합 왕의 마차 앞에서 말고비를 잡고 초인적인 힘으로 달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므깃도 평원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쟁이 치러진 곳입니다. 바락과 드보라가 시스라를 처부순 곳이며,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패배시킨 곳입니다. 또한 선한 요시아 왕이 애굽 왕 느고와 싸우다 전사하여 온 예로살렘이 슬퍼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그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고 한 이유가 바로 이 치열한 전쟁터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유대 역사에서 므깃도는 의로운 이스라엘 자손이 악한 이방 나라들의 공격을 받았던 장소이자, 하나님과 이방신이 부딪치는 영적 대쟁투의 장소로 익숙한 곳입니다.
아마겟돈이 상상 속의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니라, 영적 대쟁투가 벌어지는 치열한 '전쟁터'의 대명사임을 우리는 이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갈멜산 전투가 끝난 후 엘리야는 이세벨의 서슬 퍼런 위협을 받고 낙심하여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했습니다. 이와 동일하게, 요한계시록 17장에는 영적 엘리야 사건의 연장선으로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큰 음녀 바빌론(이세벨)'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음녀가 결국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라는 승리의 기별을 분명히 증거합니다.
이 적그리스도(음녀)는 세 가지 면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악하게 모방합니다.
1. 시간적 모방: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올 자"라고 표현되어, 예수님의 속성인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를 모방합니다.
2. 제사장직 모방: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표현은 아론 대제사장의 성패를 모방한 것으로, 사람의 죄를 가로채어 관리하는 거짓 대제사장직을 수행함을 뜻합니다.
3. 창조주 모방: 많은 물 위에 앉은 이 음녀는 '여덟째 왕'으로 불립니다. 성경에서 숫자 '8'은 창조의 7일 이후 새로운 첫날, 즉 부활과 재창조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상징하는데 이를 모방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계와 종교계에는 창조론과 진화론을 섞은 '유신론적 진화론(창조적 진화론)'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수십억 년 전에 세상은 창조하셨으나 나머지는 진화의 과정을 거치게 하셨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창조론과 진화론을 모두 포용하여 모든 종교를 바벨론의 울타리 안으로 감싸 안으려는 천주교의 입장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무력화하려는 영적 기만입니다. 베드로후서에도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며 창조의 역사를 부인할 것이라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끝까지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권위를 붙들고 사는 백성들이 있습니다. 바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행위는 단순히 예배드리는 날짜의 문제를 넘어, 나의 생업과 세상의 모든 염려를 멈추고 온전히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에 나의 삶을 맡기는 믿음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생계를 책임지신다는 고백입니다. 마지막 시대가 될수록 안식일에 임하는 특별한 축복을 경험하는 일이 더욱 증가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은 선언합니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이 땅의 음녀와 짐승의 세력을 심판하기 위해 요한계시록 19장에는 백마를 타시고 피 뿌린 옷을 입으신 승리의 미가엘(예수 그리스도)이 등장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최후의 전쟁에서 우리가 입어야 할 유니폼이 바로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흰옷)'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고, 하늘의 군대들도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주님을 따를 것입니다.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며, 주님이 입혀 주신 의의 옷입니다. 날마다 이 옷을 입고 있는지 확인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 엘리우드 킵초게가 인류 최초로 2시간의 벽을 깨고 1시간 59분 40초로 마라톤을 완주했을 때 온 세계가 경탄했습니다. 42.195km를 그 속도로 완주하려면 100m를 17초에 달리는 속도로 2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달려야 합니다.
킵초게가 이 위대한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결정적인 비결이 있었습니다. 그는 혼자 뛰지 않았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바람을 막아주고 페이스를 조절해 주는 '페이스메이커(가이드 러너)'들이 정 오각형의 대형을 유지하며 함께 달렸습니다. 앞에서 맞바람을 다 막아주고, 지칠 때는 뒤에서 격려하며 끝까지 달릴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리고 결승점을 1km 남겨두었을 때 가이드 러너들이 옆으로 싹 비켜주었고, 킵초게는 혼자 힘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대기록을 완성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거대한 선악의 대쟁투라는 믿음의 마라톤을 마칠 때 우리는 결코 혼자 뛰지 않습니다. 다니엘 12장 1절은 약속합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거대한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우리를 사방에서 호위하고 도우며 하늘 가나안까지 달릴 수 있도록 붙드시는 대군 미가엘, 즉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미가엘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으셨듯이, 우리도 주님과 같은 유니폼인 '흰옷'을 입고 깨어 자기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신 의의 흰옷을 입고 믿음의 경주를 할 때, 주님께서 최종적인 승리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이 확고한 재림 신앙을 가지고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계신 하나님 아버지,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를 보호하시고 이 믿음의 여정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라 하셨고,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하늘 군대들이 우리를 도울 것을 약속하셨사오니, 우리가 주님 입혀 주신 흰옷을 날마다 입고 보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신앙의 경주 속에 어떤 시련이 닥칠지라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마침내 약속하신 하늘 가나안 땅까지 넉넉히 들어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생업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와 안식일을 예배하는 모든 가정과 심령 위에 하늘의 축복을 가득 내려주시옵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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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 요약 정리
강연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세 가지 포인트입니다.
1. 아마겟돈 전쟁의 참된 성격 (영적 대쟁투의 전쟁터)
아마겟돈은 상상 속의 괴물이나 막연한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히브리어 '하르 므깃도(므깃도의 산, 곧 갈멜산)'에서 유래한 단어로 역사적으로 가장 치열했던 '전쟁터(백마고지)'를 뜻하는 상징적 장소입니다.
재림 직전 일곱 재앙 중 여섯째 재앙 때 일어날 아마겟돈 전쟁은 육적인 세계 대전이 아니라, 사탄의 삼위동맹(용, 짐승, 거짓 선지자)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진영이 부딪치는 최후의 영적 대쟁투입니다.
2. 적그리스도의 기만과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 (안식일의 가치)
마지막 시대의 적그리스도(음녀 바벨론)는 예수님의 속성과 대제사장직, 창조주의 권위를 교묘하게 모방하여 유신론적 진화론 등으로 창조주의 능력을 무력화하려 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기만 속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는 삶은 단순히 예배일의 구별을 넘어 온 세상에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는 행위이며, 자신의 모든 생계를 온전히 창조주의 권능에 맡기겠다는 가장 강력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3. 승리의 유니폼 '흰옷'과 우리의 페이스메이커 '미가엘'
사탄의 총공격이 감행되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입어야 할 유니폼은 '예수님이 입혀 주신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성도들의 옳은 행실, 의의 옷)'입니다. 날마다 깨어 이 옷을 입고 수치를 보이지 않아야 구원의 영역에 머물 수 있습니다.
이 치열한 믿음의 마라톤을 완주할 때 우리는 혼자 뛰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마라톤 선수의 가이드 러너(페이스메이커)처럼 우리를 호위하고 바람을 막아주시는 대군 미가엘(예수 그리스도)이 계시므로, 주님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전진할 때 마침내 하늘 가나안까지 넉넉히 승리하며 들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