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3gUTtroQRq4?si=gfbsd4svJbnifh2U
노우호목사님의 방언 특강 3
https://youtu.be/3gUTtroQRq4?list=PLTQKi25rfwKEeREcMfKoYcNuIS_SHa0UL
요청하신 대로 세 번째 강연 원고에서 타임스탬프와 무대 연출 및 자막 묘사(음악, 웃음, 박수 등)를 지우고, 흐름이 끊기거나 중언부언하는 문장을 매끄럽게 교정하여 원고 전문의 맥락을 그대로 살려 정리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핵심 요약 정리를 덧붙였습니다.
그 교회에 부임한 전도사가 머리를 깍두기처럼 탁 깎고 와서 "처먹고 마당에서 소리 좀 작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싸우자는 말에 져버린 꼴이 되었지요. 자기 낯을 가지고 확성기 스피커처럼 소리를 빨리 사가지고 박살을 냈다며 이야기하는데, "여자들이 돈을 아무것도 몰라도 되지만, 미친년들이 자꾸 싸대기를 때린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성경을 보면 악한 자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진주에서 우리 전도사님이 그렇게 한 건 하고 은퇴를 하셨습니다. 그 뒤로 온 동네가 아주 조용한 거예요. 그래서 때로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디모데 같은 사람도 필요하지만, 디도 같은 터프한 해결사 스타일이 진짜 필요합니다. 거창에 가면 또 그런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가북이라는 교회입니다. 아주 가야산 해인사를 넘어가야 하는 곳에 있습니다. 거기서 유도가 사단장 급인 총각들이 있었는데, 전도사님이 말하는 것마다 통역에서 다 받아치고 하니까 화가 단단히 난 것입니다. 그래서 멱살을 잡으러 가며 말로는 안 되니까 몸으로 부딪치려 한 것이죠.
예전에 고성군인가에 있는 영부교회에서 저와 함께 성경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부임한 전도사님이 아무것도 모르고 전투력만 만렙인 분이었습니다. 덩치가 좀 컸는데, 그 동네 총각 깡패들이 "저 전도사 녀석 손 좀 봐놔야겠다"고 모였습니다. 혼자서는 겁이 나니까 4명이 떼거지로 몰려와 전도사를 손봐주려고 한 것입니다. 전도사님이 보니까 이것들이 시비를 걸어온 것이었죠. 그래서 밖에 나가서 방에 자꾸 들어오려고 하기에, 혼자서 그 장정 4명을 마당에 몇 번 메쳐버리고 항복을 받아내 쫓아버렸습니다. 여러분은 함부로 힘을 쓰지는 마십시오. 아무튼 그렇게 골치 아픈 시골 교회에 마귀가 부추긴 몇 사람을 보냈다가 호되게 혼이 난 사건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가북 교회의 그 전도사님 성함은 장유수라는 분인데, 그 뒤로 거기서 큰 건 하나 해결하시고 은퇴하셨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도 교계에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디도는 고린도 교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깨끗이 해결했고, 나중에 바울이 사역지를 배치할 때 보면 그를 그레데 섬에 배치합니다. 반면 디모데는 비교적 안정된 에베소 교회에 배치하지요. 그 그레데 섬 사람들은 배만 위하는 자들이고 숨 쉬는 것마다 거짓말을 일삼는 거친 곳이었습니다. 제가 볼 때도 학생 시절에 데모도 많이 해보고 운동권 출신처럼 강한 추진력이 있는 해결사 스타일이 필요한 구역이 있습니다.
이제 문법적으로, 그리고 우리말 번역상 잘못된 부분을 짚어보겠습니다. 앞을 보세요. 고린도 교회에서 누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디도가 가서 밝혀내는데, 고린도교회 내부에는 파벌 문제, 음행 문제, 송사 문제, 결혼 문제, 우상 제물 문제, 사도 바울의 사도권 부인 문제, 가짜 방언 문제, 애찬 문제, 여성들의 수건 착용 문제, 육체의 부활 부인 문제 등 10가지의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10가지 중에 대부분은 고린도 교회 자체의 문제였습니다. 고린도 지역의 타락한 문화와 세속적 철학에서 기인한 문제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걸로 시비하거나,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선동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거짓 사도들이 침투하여 거짓 방언을 부추기며 자기들이 진짜 사도인 척 행세하는 모습이 고린도후서에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행해진 것들은 아무 영적 근거가 없는 방언, 거짓말 방언, 알아듣지도 못하는 방언, 통역도 안 되고 교회에 아무런 덕이 안 되는 방언이었습니다. 다시는 이것 가지고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앞서 다 정리를 해드린 내용이고, 제가 성경 본문을 파고 또 파서 명확하게 정리한 실체입니다.
이제는 최종적으로 성경의 번역 비평을 좀 하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3장, 14장의 말씀을 성실하게 읽어보면, 방언 기도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언은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반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은 부정하는 내용으로 시종일관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엄청난 오해를 초래한 원인은 바로 '오역(번역 오류)'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고린도전서 14장의 번역이 가장 심각한 것 같습니다. 신구약 66권 중에 고린도전서 14장만큼 애매하게 오역이 된 곳이 없습니다. 한 장 안에서 무려 네댓 구절이나 오역을 해놓았으니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고 오역된 문장 그대로 성경을 읽으니 당연히 오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습관적으로 진리를 탐구할 때 번역 비평부터 합니다. 진리는 절대 애매모호하지 않고 분명한 것인데, 문맥이 애매하다면 반드시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심각한 오해를 초래하는 구절이 바로 고린도전서 14장 2절입니다. 원어 헬라어 문맥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우선 이 구절을 보십시오. 고린도전서 14장 1절과 2절을 보면,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따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 하면서, 방언은 아예 언급도 안 한 채 "특별히 예언을 하라"고 권장합니다.
그런데 2절 번역을 보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 되어 있어서, 누구든지 읽으면 오해하게끔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기에는 왜 특별히 예언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인 원어상의 '왜냐하면(가르, γάρ)'이라는 접속사가 빠져 있습니다. 성서공회 번역에서 이를 빼먹은 것입니다.
제가 원어의 뜻을 살려 제대로 한번 번역해 보겠습니다.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왜냐하면 가짜 방언을 말하는 자가 그릇되게 말을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반대로 신(하나님)에게 하기 때문에 영으로 비밀을 주절거린다고 하지만 정작 알아듣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직역을 해보면 명확합니다. 왜 특별히 예언을 사모하라고 하느냐 하면, 방언을 말하는 자의 꼬라지를 보니 말을 사람에게 전하지 않고 반대로 신에게 직통으로 한다며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고 떠들지만, 정작 알아듣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 문장은 예언은 적극 긍정하고 방언은 철저히 부정하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기존 번역처럼 문장을 만들어버리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직접 비밀 기도를 하는 고귀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방언의 성격을 긍정적으로 정의하는 꼴이 됩니다. 이것은 완벽한 오역입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되고, 바울이 방언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책망하고 있는 맥락으로 보아야 합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거든 사랑을 따라 구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십시오. 왜냐하면 방언을 한다는 자들은 마땅히 사람에게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반대로 신에게 직접 한다고 난리를 치기 때문입니다.
원어를 놓고 보면 '하나님께'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정관사가 붙지 않았기 때문에 이방 신비 종교의 '신에게'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습니다. 일방적으로 방언을 말하는 꼴을 보니 이방 신에게 주술을 부리는 것 같은데, 본인들은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알아듣는 자가 없다는 고도의 비판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기존 번역이 맞다면 문맥상 말이 안 됩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가 하나님께 영으로 개인의 비밀 기도를 드리는 것이라고 정의해 놓고, 왜 바울은 바로 뒷구절에서 "그 비밀 기도를 온 성도 앞에서 알아듣도록 반드시 통역하게 하라"고 지시하겠습니까? 개인의 은밀한 비밀 기도를 통역해서 대중 앞에 폭로하라는 게 말이 됩니까? 안 되지요. 그러니까 이 구절은 명백한 오역입니다. 제가 가장 충격적인 것은, 마귀 귀신들은 성경이 이렇게 오역된 것까지 다 알고서 교묘하게 활용해 먹는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아무리 정신이 없기로서니, 앞에서는 "개인의 비밀을 기도하게 하는 은사"라고 해놓고, 뒤에 가서는 "다 알아듣고 아멘 할 수 있게 대중 통역을 하라"고 했겠습니까? 집에 가서 깊이 생각을 해보십시오. 세상에 어떻게 목회자가 되어서 성경을 이렇게 경솔하게 해석합니까? 놀랍게도 지난 100년 동안 한국 교계에서 이 부분이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신학자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눈이 어두우니 속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헬라어 원어를 가지고 직접 번역을 해본 것입니다. 원문을 보면 '호 가르(왜냐하면)', '랄론 글로세(방언을 말하는 자가)', '우크(하지 아니하고)', '안드로포이스(사람들에게)', '알라(반대로)', '대오(신에게)'라고 명확히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아쿠에이(알아듣는 자가 없다)', '프네우마티 드(그러나 영으로)', '랄레이 뮈스테리아(비밀들을 말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 어순에 맞추어 깔끔하게 직역을 하면, "왜냐하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말을 사람들에게 하지 아니하고, 반대로 신에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고는 하나 알아듣는 자가 없느니라."가 됩니다. 이 문장의 결론은 "아무도 알아듣는 자가 없다, 고로 그런 짓을 하지 말라"는 책망입니다. 방언이 고귀한 비밀 기도를 드리는 수단이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만약 개인의 영혼이 하나님의 비밀을 말하는 고귀한 통로라면, 그 방언을 통역해서 대중에게 공개하라는 뒷구절의 지시와 심각한 모순이 발생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영적으로 잘못된 것이고, 기도는 하나님께 드릴지언정 방언(지방 언어)의 은사는 본래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주신 것인데 이를 신에게 주술 부리듯 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해 보면 알 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리는 기도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허공에 대고 헛소리하는 것이며, 전투 중에 분별없는 나팔 소리를 내는 것과 같고, 야만인의 주술과 다름없다는 책망입니다. 이런 기초적인 신학적 정리조차 교계에 안 되어 있습니다. 1, 2, 3절을 연결하면 문맥이 더 분명해집니다. 사랑을 따라 구하고 특별히 예언을 하십시오. 왜냐하면 방언을 한다는 자들은 사람에게 말을 하지 않고 반대로 신에게 직접 직통 계시를 받는답시고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고 버무려놓아 정작 알아듣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언을 하면 사람에게 명확한 언어로 말하여 덕을 세우고 권면하므로 알아듣기가 극명합니다. 다르게 번역하면 안 됩니다.
제가 이 직역 번역이 진짜라고 강연을 했더니, 우리 교단의 어떤 젊은 목사가 "노 목사가 성서공회의 정통 번역을 무시하고 지가 하는 번역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방언을 부정하니 이단이 아니냐"라면서 총회에 저를 고발했습니다. 총회가 재판까지 간 것은 아니지만 조사차 저를 찾아왔기에, 제가 한국 교회의 방언이 얼마나 엉터리이고 귀신의 장난인지 녹화해 둔 동영상 자료 30여 개를 넘겨주었습니다. 그걸 보고 나더니 총회 조사관들이 기가 질려서 사건을 흐지부지 무마시켰습니다. 결국 총회 회의록에는 "노 목사는 우리 교단의 개혁주의 신학 노선과 같은 궤를 가지고 있으며, 극단적인 신비주의를 경계하는 입장에서 글을 쓴 것이다. 다만 한국 교회의 방언 현상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성도들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으니 언어를 다소 순화해서 표현하도록 권면한다"는 선에서 종결되었습니다. 공식 회의록에 다 남아 있습니다.
두 번째 오역은 고린도전서 14장 14절입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하거니와'에 해당하는 원어는 '대(δέ)'라는 역접의 접속사입니다. 따라서 순접처럼 번역하면 안 되고 "하지만"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로"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즉, "내가 만약 방언으로 기도한다면 나의 영이 기도한다고는 하겠지만, 반대로 나의 마음에는 아무런 열매가 없을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이렇게 두루뭉술하고 애매모호하게 번역해 놓으니 성도들이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직역을 해서 가짜 방언의 실체를 깔끔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이라고 한 것은 가상법(가정법 현재 부정문)입니다. 즉, 바울이 그때까지 그런 가짜 방언 기도를 했다는 뜻입니까, 안 했다는 뜻입니까? 안 했다는 뜻입니다. "내가 만약 그런 짓을 한다면"이라는 가정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철없는 자들을 깨우치기 위해 가정해서 말한 것일 뿐입니다. 자기 마음도 인지하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소리를 입으로 하나님께 뱉어내는 게 도대체 말이 됩니까?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소리입니다.
세 번째 오역 구절은 15절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 되어 있어서, 마치 바울이 의지적으로 영의 기도(방언)와 마음의 기도를 둘 다 하겠다고 결단한 문장처럼 번역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이 문장은 헬라어 원어상 강한 불만을 담은 반어법적 '의문문'으로 시작합니다. 원문을 보면 '티 운 에스틴(그러면 도대체 무엇이냐? 어쩌란 말이냐?)'으로 시작합니다.
제대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내가 굳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으로 기도하고 동시에 마음으로도 기도해야 한단 말이냐? 내가 굳이 뜻도 모르는 영으로 찬송하고 다시 마음으로 찬송해야 한단 말이냐? 그렇게 번역 사기를 치며 이중으로 피곤하게 해야 한단 말이냐?"라는 강력한 반문입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로 영의 기도를 한답시고 중얼거리면 옆에서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고 아멘도 할 수 없는데, 왜 꼭 그런 짓을 해야 하느냐는 짜증 섞인 질책입니다.
얼마 전 홍혜선이라는 자가 예언을 할 때 한국 사람이 한국 성도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면서 굳이 정체불명의 방언을 한 문장 뱉고 다시 우리말로 통역을 하더군요. 얼마나 우스꽝스럽습니까? 그냥 우리말로 다이렉트로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방언을 섞어서 사기를 칩니까? 제가 일본에 가서 강연을 할 때 제가 한국말로 하면 통역사가 옆에서 일본어로 통역을 합니다. 그러면 강의를 듣는 일본 현지 성도들이 중간 흐름이 끊겨서 얼마나 짜증이 나겠습니까? 그래서 나중에 녹화본을 편집할 때는 제가 한국말로 말한 구간을 다 잘라내고 통역사의 일본어 음성만 쫙 연결해서 오디오 cd를 만듭니다. 의사소통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지요.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회의 그런 짜증스러운 소동에 대고 "내가 꼭 그런 식으로 피곤하게 사역을 해야겠느냐? 도대체 그게 뭐 하는 짓거리냐?" 하고 부정적으로 쏘아붙인 것입니다. 의지의 결정문이 결코 아닙니다.
네 번째 오해를 만드는 구절은 18절입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번역되어 있으니, 성도들이 "아, 바울 사도도 대중보다 방언 기도를 훨씬 더 많이 하셨구나" 하고 착각을 합니다. 여기서 '말한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랄레오(말하다)'이지, 기도한다는 뜻의 '프로슈코마이'가 아닙니다. 그리고 '방언'도 복수형 언어들을 뜻합니다. 즉, "내가 너희 모든 고린도 토박이들보다 헬라어, 라틴어, 히브리어 등 여러 외국어들을 유창하게 많이 구사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19절에 바로 무엇이라 연결됩니까?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극명하게 대조합니다. 니가 아무리 외국어를 많이 구사할 줄 안다 하더라도, 예배 공동체 안에서는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깨달은 마음의 다섯 마디가 뜻 모를 일만 마디 방언 소음보다 훨씬 유익하다는 철저한 방언 부정적 선언입니다.
다섯 번째 오해 구절은 39절입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하니, "방언 기도를 절대 금지하면 안 된다"고 해석합니다. 아닙니다. 여기서 금하지 말라고 한 '방언'은 교회의 방언 기도가 아니라, 고린도라는 거대한 국제 무역 도시의 특성상 수많은 외국인 상인과 나그네들이 빈번히 오가며 자기들의 실제 '외국어'로 말하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지 말라는 뜻입니다. 공동체에 외국인이 와서 소통할 때 그 외국어 사용을 막지 말라는 상식적인 권면입니다. 방언 기도는 앞 구절에서 이미 단단히 자르지 않았습니까? 만약 누가 부득이하게 외국어로 말하거든 반드시 통역할 사람을 세워서 대중이 알아듣게 하라고 질서를 잡았습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로 40절인데, 그나마 이 구절은 개정개정판 성경에서 조금 수정이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한국 성도들이 "아, 방언 기도도 대충 적당하게 섞어서 질서 있게 하면 괜찮은가 보다" 하고 타협을 했습니다. 원어상 '적당하게'가 아니라 '유스케모노스(품위 있게)'입니다.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에 따라 하라"는 뜻입니다. 제가 교계의 방언 현상을 볼 때 가장 품위 없는 짓이 바로 "랄랄랄라, 샤바샤바" 하는 짓입니다. 말도 아니고 의미도 없고 공동체에 유익도 안 되는 가장 추태스러운 행동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때의 심정을 파악해 봅시다. 신학적으로 이를 '교정 서신(Corrective Epistles)의 부정문에 관한 연구'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것만 제대로 파악해도 박사학위 논문 감입니다. 신약의 서신서들은 그 목적과 성격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 기독교의 핵심 뼈대가 되는 핵심 교리를 체계적으로 담은 '교리 서신'이 있습니다. 로마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요한일서 같은 책들입니다. 로마서는 이신득의(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음), 에베소서는 예정론에 기초한 교회론과 기독론, 요한일서는 성도의 참된 교제라는 중대한 교리를 다룹니다.
둘째, 교회의 심각한 변질과 문제가 터졌을 때 이를 뜯어고치기 위해 긴급하게 발송한 '교정 서신'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가 대표적인데, 데살로니가전서를 읽은 성도들이 종말론에 심취해 "예수님이 곧 오신다"며 일도 안 하고 가정을 팽개치고 말썽을 피우니까 사태를 교정하려고 보낸 서신입니다. 갈라디아서도 율법주의 할례파들이 극성을 부리며 "바울은 사도가 아니니 다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선동하는 심각한 교리적 왜곡을 타정하려고 쓴 교정 서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보는 고린도전서와 후서가 바로 가장 강력한 '교정 서신'입니다. 신약에 등장하는 모든 교회 중에 가장 교만하고, 파벌이 심하고, 온갖 못된 짓과 은사 자랑이 난무했던 최악의 교회가 바로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피눈물을 흘리며 사태를 바로잡으려고 애태우며 보낸 교정 문서이므로, 거기 나오는 무질서한 방언 행태는 결코 본받을 만한 은사가 아닙니다. 거짓 사도들이 몰고 온 가짜 방언을 신령한 줄 알고 흉내 내는 참담한 추태를 교정하려는 맥락입니다.
셋째, 빌립보서처럼 "지금 잘하고 있으니 더 잘하자"라고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듯 격려하는 '권면 및 격려 서신'이 있고, 넷째로 내가 곧 방문하겠다는 정중한 예의를 갖춘 '통보 서신'이 있습니다. 다섯째는 베드로후서와 유다서처럼 이단 사이비와 거짓 선생들이 득세할 때 성도들을 지키기 위한 '경계 서신'이 있으며, 여섯째는 신앙이 변질되거나 후퇴할 때 다시 빠르게 권면하는 히브리어, 야고보서 같은 '당부 서신'이 있습니다. 마지막 일곱째는 디모데전후서, 디도서처럼 선배 목회자가 후배 사역자를 지휘하고 멘토링 하는 '지도 서신(목회 서신)'이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고린도전후서는 칭찬 장부가 아니라 타락한 교회를 매섭게 다스리는 '교정 서신'입니다. 성도들이 사탄의 장난에 놀아나 교회를 난장판으로 만드니 무엇부터 교정해야 하겠습니까?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도입부에서 영적인 문제를 고발하는 서두에 "예수는 저주할 자라" 하는 자들을 박살 내며 시작합니다. 고린도 교회 내부에서 방언의 입을 열어 "아나thema 예수스(예수는 저주받을 자다)"라고 외치는 참람한 귀신의 역사가 터져 나왔기 때문에 이 엄중한 어조로 은사 장을 시작한 것입니다. 주석가들을 보아도 고린도전서와 후서의 맥락을 연결해서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 안 보입니다. 왜 거기서 뜬금없이 예수를 저주한다는 말이 튀어나왔는지 본질을 모릅니다.
당시 사탄은 동쪽 갈라디아와 서쪽 고린도 양방향에서 사탄의 일꾼들을 잠입시켜 "바울은 가짜 사도다, 사탄의 끄나풀이다"라며 바울의 사도권을 사정없이 흔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성령께서는 에베소 사역 때 바울의 안수를 통해 오순절과 동일한 표적을 보이시며 바울의 사도권을 변호해 주셨지요. 바울이 쓴 편지를 읽을 때 우리에게 국어 실력이 조금만 있으면 긍정문인지 부정문인지 대번에 분별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방언 행태에 대해 칭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철저하게 부정하며 뜯어고치고 있습니까? 당연히 후자입니다.
바울이 방언 환자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책망한 이유를 요약해 봅시다.
첫째, 방언을 한답시고 신령한 척 입을 열어 예수를 저주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유대인 첩자들이 주술을 부린 것이었죠.
둘째, 그들은 영적인 열매인 사랑과 온유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시기하고 질투하며 스스로 자랑하고 교만하여 사람 앞에 무례하게 행동했습니다. 악한 것을 생각하고 불의를 기뻐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뜻도 알 수 없는 괴상한 소리로 기도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대중 앞에 통역하지도 않았습니다.
네 번째, 자신의 영으로 특별한 기도를 드린답시고 영적 교만을 떨었으며, 개인의 비밀을 기도한다는 감언이설로 교회를 속였습니다. 전혀 공동체의 덕을 세우지 않고 허공에 대고 무책임하게 헛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다섯째, 야만인처럼 무질서하게 굴며 교회의 공적 질서를 완전히 깨뜨렸고, 그 와중에 영적 질서가 없는 여자들이 교회의 전면에 나서서 설치기 시작했습니다.
여섯째, 정작 참된 사도인 바울의 영적 권위와 사도권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신령한 존재인 양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바울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 한 것도 방언을 칭찬한 게 아닙니다. 여기서 '자기 덕(이코도메이)'을 세운다는 것은 영적인 유익을 뜻하는 게 아니라, 자기 혼자 잘난 맛에 도취되어 "영적 자위행위"를 하며 이기적으로 자기 바벨탑을 쌓고 있다는 통렬한 비꼬기이자 책망입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는 교회 공동체에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일관된 부정적 메시지입니다.
저는 한국 교계에서 이 가짜 방언을 선동하는 목사들의 심보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제법 연구를 깊이 한 사람인데, 방언 전도사들의 소리를 들어보면 전혀 분별력이 없습니다. 만약 전쟁이 터져서 군사들이 진격해야 하는데 분별없는 나팔수가 취침 나팔을 불어대면 군대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짜 방언이 딱 그 꼴입니다. 니가 아무리 방언을 지껄여대도 통역하지 않으면 예언보다 백배는 못 한 짓이며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들 분별이 안 되면 야만인의 중얼거리 거림과 무엇이 다릅니까? 니가 방언으로 소리를 지르는데 주변 성도들이 뜻을 모르니 어떻게 기도의 마지막에 감사의 "아멘"을 합동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성도들은 네 소음 때문에 영적인 덕을 전혀 받지 못하고 괴로워할 뿐입니다. 교회에서는 일만 마디 방언 소음보다 깨달은 마음으로 전하는 다섯 마디 설교가 백배 천배 유익합니다. 온 교회가 모여서 다 같이 "랄랄라" 방언으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있으면, 불신자가 들어왔을 때 "미쳤다"고 조롱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봐도 완전히 미친 짓입니다.
방언 신비주의에 미친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은 교회를 이렇게 더럽고 질서 없게 어지럽히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부득이 방언을 하려거든 반드시 통역할 사람을 세우고, 그것도 한 예배에 두세 사람만 차례를 따라 순서대로 질서 있게 하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방언 집회를 가보십시오. 두세 사람이 순서를 지켜서 품위 있게 합니까, 아니면 집단으로 소리를 지르며 난장판을 만듭니다? 집단 광기를 부립니다. 성경의 지침을 무시하고 불순종하면 영적으로 큰 곤란을 당합니다. 본인이 진짜 하나님의 종이라면 성경의 법대로 행하지, 그렇게 마귀 떼처럼 굴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귀의 영에 사로잡혀 부추김을 받는 마귀의 식구들이기 때문에 그런 주태를 부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짓을 교회에서 용납한단 말입니까?
저는 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리고 수많은 임상 검증을 통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백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이들은 성경이 엄히 경고한 '거짓 사도들(프pseudo-apostoloi)'이며 '거짓 일꾼들(에르가타이 돌리오이)'입니다.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정교하게 가장하는 사탄의 수하들(메타스케마티조메노이 에이스 아포스톨루스 크리스투)일 뿐입니다. 안타깝게도 기존의 주석 책들을 보면 악당들이 거짓 방언을 가지고 들어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유린했다는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하고 고린도전서에서 대충 얼버무리고 끝냅니다. 그러고는 고린도후서는 또 별개의 책인 양 다루어버리니 성경의 맥락이 하나도 연결되지 않고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인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과연 바울이 방언을 "그 사람의 개인 영이 하나님께 고귀한 비밀 기도를 드리는 은사"라고 인정한 문장입니까? 아닙니다. 마음의 열매가 전혀 없는 무익한 소음이라고 잘라 말한 바울이, 자기도 뒤에서 그런 무익한 방언 기도를 남몰래 즐겨 했을까요? 아닙니다. 바울이 개인의 은밀한 비밀 기도를 온 회중 앞에 반드시 대중 통역하라고 모순된 지시를 내렸겠습니까? 아닙니다. 바울이 영으로 기도하고 다시 마음으로 기도하는 이중의 피곤한 방언 퍼포먼스를 몸소 실천했을까요? 아닙니다. 바울이 고린도 광신도들보다 "랄랄랄라" 방언 기도를 골방에서 더 많이 기적적으로 수행해서 하나님께 감사했을까요? 아닙니다. 유창한 실제 외국어 구사 능력을 주신 것에 감사한 것입니다. 바울이 방언 기도를 교회의 공적 예배에서 마구 사용하라고 장려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이 방언도 대충 적당하게 버무려서 질서만 지키면 괜찮다고 타협해 준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품위 없는 주술 소동을 완전히 청산하라고 칼을 빼 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 13, 14장뿐만 아니라 고린도후서 12장 끝까지 다 연결해서 고린도 교회의 전체 스토리를 완벽하게 파악해 정리해 보면, 사도 바울은 가짜 방언의 종지부를 찍어버린 사람입니다. 처음에 고린도 교인들이 신령한 은사인 줄 알고 속아서 난리를 치니까, 바울이 주후 55년 말이나 56년경에 사랑하는 동역자 디도를 현장으로 긴급 파견하여 진상을 철저히 확인하게 한 뒤, 완전히 끝장내어 다시는 가짜 방언 주술을 못 하게 엄단한 것입니다.
여러분, 로마서 1장 11절을 성실히 배웠지요? 바울이 로마 성도들에게 편지하며 중대한 은사 문제를 언급합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사도로서 로마에 꼭 가고 싶어 했던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진짜 성령의 신령한 은사들을 제대로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어 교회를 뼈대 있게 견고히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어서 로마서 12장 6절 이하를 보십시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게 나타나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행하고,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카운슬링)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고 은사의 목록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보십시오. 로마서의 공식 은사 목록에서는 '방언의 은사'를 의도적으로 완전히 빼버리고 제외하고 있습니다.
괜히 처음에 방언이 성령의 은사인 줄 알고 대접해 주었다가 고린도 교회가 사탄의 주술 구덩이로 전락하는 꼴을 처절하게 겪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로마서와 에베소서 등 후기 교리 서신에서는 방언이라는 단어 자체를 은사 목록에서 완전히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사탄이 방언이라는 강력한 미끼를 던져 교회를 통째로 어지럽혀 놓았는데, 오늘날의 현대 교회들은 영적 분별력이 얼마나 없는지 마귀가 차려놓은 밥그릇 속에서 완전히 노리개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통째로 마귀의 밥그릇이 되어 버린 참담한 실정입니다. 저는 그따위 가짜 방언의 결론을 대학 구경하듯 아주 명명백백하게 다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장담할 수 있습니다.
실감을 더하기 위해 임상 검증 영상 자료를 몇 개 같이 보겠습니다. 영상을 보시면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제 집회에 참석해 회복된 어떤 자매의 실제 간증 영상입니다. 이 자매가 집회 전날 밤에 꿈을 꾸었답니다. 꿈속에서 이 세미나 자리에서 자신이 방언의 실체를 폭로하는 간증을 하고 내려왔더니, 어떤 음성이 들리기를 "너는 이제 이 교계에서 완전히 매장당하고 쫓겨날 것이다. 그리고 네 남편은 앞으로 목사 목회를 영원히 못 하게 발목이 잡힐 것이다. 그래도 너 계속 이 진실을 폭로할 거냐?"라고 협박을 하더랍니다. 꿈속에서 교회 성도들이 자기에게 수군거리며 손가락질을 하고, 평소 친했던 교회 언니들과 친정 부모님까지 전화가 와서 "너 미쳤냐, 왜 교회를 허물어뜨리는 거짓말을 하고 다니냐? 동네 창피해서 너 내 딸 아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라며 사방에서 압박을 가하더라는 것입니다.
자매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정말 내가 교회에서 완전히 이단으로 매장당하는 게 아닌가, 신학생인 남편의 앞길을 영원히 막아서는 발목 잡는 나쁜 아내가 되는 게 아닌가 두려워서 남편에게 눈물로 털어놓았더니, 전도사 남편이 단호하게 대답하기를 "사탄의 협박이다. 설령 매장당하더라도 진실을 말하러 강단으로 가는 게 맞다"라고 격려해 주어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 자매가 과거 서울의 대형교회에 다닐 때, 어느 날 새벽 4시 반에 몸이 뜨거워지며 깨어나 "일어나 기도하라"는 음성을 들었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에 갔더니 입을 열자마자 "랄랄라" 방언이 유창하게 터져 나왔습니다. 주변의 다른 성도들은 방언을 받으려고 울고불고 몸부림을 쳐도 못 받는데, 자기는 새벽에 성령이 직접 깨워주시고 교회 가자마자 다이렉트로 방언을 주시니, 자기가 하나님께 엄청난 특별 특별 은혜를 받은 신령한 존재라고 굳게 믿고 수년간 방언 기도를 과시하며 다녔던 엘리트 자매였습니다.
그러다가 저의 방언 비평 세미나 소식을 듣고 "노 목사가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나 내 방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 하는 도발적인 마음으로 저희 에스라 하우스 집회에 참석한 것입니다. 자매는 강당 뒤편에 앉아서 강사인 저를 영적으로 제압하겠다며 방언으로 대적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속으로 "아바리 사바리 아바리 싸바리" 하며 방언 기도로 저를 묶으려고 사납게 중얼거린 것이죠.
제가 한참 강의를 하다가 뒤편에 앉은 자매를 정확히 지목하며 단호하게 외쳤습니다. "거기 뒤에 앉아서 방언 대적 기도 하시는 분, 당장 그 입 다물고 그만하십시오!" 자매가 깜짝 놀라 멈추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 방금 속으로 '아바리 사바리 아바리' 하고 중얼거렸지? 그게 무슨 고귀한 하늘의 언어인 줄 아나? 당신은 뜻도 모르고 뱉었겠지만, 영의 세계에서 그 단어는 '귀신들을 떼거지로 불러 모으는 최면 주술 소리'다. 사탄의 도구 노릇 그만해라!"
그 순간 자매의 귀에 끔찍한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온 세상 도떼기시장 바닥의 온갖 소음과 저주, 놋그릇과 양은 냄비 긁어대는 소리,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 등 세상에서 가장 시끄럽고 불쾌한 사탄의 소음이 귀청을 찢을 듯이 동원되어 들린 것입니다. 마귀의 방해가 그 정도입니다. 자매는 머리가 깨질 듯한 환청 때문에 한마디도 못 하고 기겁을 해서 친구 손을 잡고 집회장 밖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나중에 이 자매가 우리 교회 전도사님과 만나 제가 주례를 서서 믿음의 부부가 되었는데, 우리 교회는 평신도든 중직자든 무조건 등록하면 이 9개월 성경 통독 및 분별 코스를 완벽히 수료해야 합니다. 이 코스를 통과하지 않으면 아무 사역도 맡기지 않습니다.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과정입니다. 전도사 남편이 보기에 아내의 증상이 단순한 두통이 아니라 심각한 영적 사탄의 눌림 같아 보였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사탄이 당신을 바른 성경 말씀 공부에 못 가게 하려고 발악을 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마귀에게 지면 되겠느냐? 119 구급차에 실려 가더라도 끝까지 집회에 참석해서 진리를 들어야 한다"고 설득해 다시 차를 타고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주차장 마당에 차가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매의 귀에는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냄비 긁는 소리가 극에 달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배당 안은 정작 아무 소리도 없이 아주 고요하고 조용했습니다. 오직 자매의 머릿속에서만 마귀가 발악을 한 것입니다.
드디어 목요일 저녁에 방언 문제를 신학적으로 송곳처럼 비평하는 이 특강 시간이 되었습니다. 자매가 악을 쓰고 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는데, 강의 도중 자매의 내부에서 귀신들이 지들끼리 웅성거리며 나누는 영음이 들리더랍니다. "야, 큰일 났다. 저 단상 위에 서 있는 노 목사 저 새끼, 우리가 장난치는 비밀을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어떡하냐!"라며 귀신들이 사시나무 떨듯 당황해하더라는 것입니다. 자매가 기를 쓰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 강의를 끝까지 완청하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수년 전 새벽에 가짜 방언을 받은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밤에 깊은 잠을 자본 적이 없던 자매가, 그날 밤 평생 처음으로 가위눌림이나 환청 없이 아침까지 단 한 번도 안 깨고 푹 깊은 잠을 잤다는 사실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사람의 잠이라는 게 이렇게 달콤하고 편안한 것인지 처음 알았다"며 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즉시 간증문을 작성해 와서 저에게 내밀었습니다. 제가 "내일 주일 오후 예배 때 내가 설교를 짧게 할 테니 성도들 앞에서 직접 이 가짜 방언의 실체를 간증할 수 있겠느냐" 묻자, 자매가 담대하게 하겠다고 결단했습니다. 꿈속에서 귀신들이 "간증하면 남편 목회 길을 막고 교회에서 매장시키겠다"고 협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함께 당당히 강단에 서서 마귀의 사기극을 폭로하는 위대한 간증을 완수한 것입니다.
그 자매가 간증 중에 한 눈물 섞인 고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수년간 대형교회를 열심히 다녔지만 성가대의 찬양 소리가 아름답다고 귀에 들려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늘 소음처럼 웅웅거렸는데 가짜 방언의 악령이 떠나가고 나니까 성가대의 찬양 소리가 천사의 음성처럼 그렇게 아름답게 들릴 수가 없더랍니다. 마귀는 성도들이 올바른 복음 설교를 듣지 못하게 귀를 막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찬양을 깨닫지 못하게 방해하는 구조를 만듭니다. 중요하고 본질적인 말씀을 강론할 때 잠이 오게 만들고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게 유도하는 것, 집회 전날 부부 싸움을 붙여 결석하게 만드는 것, 이 모든 방해 공작이 다 악령들의 전공 과목입니다. 귀신들의 주특기입니다. 시간 관계상 간증은 여기까지만 말씀드릴 테니, 실물 영상은 집에 가셔서 유튜브에 '귀신을 불러 모으는 방언의 실체'를 검색해 끝까지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영상 자료를 보겠습니다. 동탄순복음교회의 유치부, 초등부 어린이 집회 현장입니다. 기가 막힙니다. 전도사가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억지로 가짜 방언 주술을 훈련시키고 시키는 현장입니다. 강사가 강단에서 "하나, 둘, 셋 하면 모두 다 방언으로 뜨겁게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 둘, 셋!" 하고 마이크를 대고 소리를 지르니까, 코흘리개 어린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입을 벌려 "랄랄랄라, 샤바샤바" 하며 광기 어린 소리를 냅니다. 제가 기가 차서 아이들의 음성을 정밀 분석해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구사하는 단어는 "다섯 마디"도 채 안 됩니다. 아무 뜻도 없는 무의미한 음절을 대중 최면 음악 비트에 맞추어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주술 훈련입니다.
세 번째 영상을 보겠습니다. 한국 교계에서 "내가 방언을 전 세계에서 제일 잘하고 직통 통역까지 완벽하게 한다"고 큰소리치며 유명세를 떨치는 서모세 목사의 방언 통역 집회 현장입니다. 참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옵니다. 강단에서 본인이 입을 열어 "랄랄랄라 신난다 신난다 신난다!"라고 방언을 뱉고는, 곧바로 자기가 자기 입으로 "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신나게 춤을 추어라"라며 통역을 합니다. 이게 무슨 삼류 무당 굿거리입니까?
집회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드럼과 베이스를 쾅쾅 울려대면 회중들의 혼을 쏙 빼놓습니다. 음악 신호에 맞추어 귀신들의 영을 초청하는 주술 행위를 벌이는 것입니다. 서모세 목사나 조용기 목사 같은 대형 목사들의 방언 통역 현장도 분해해 보면 다 이 모양 이 꼴입니다. 집회 도중 사람들을 앞으로 불러내어 안수를 하면 성도들이 뒤로 벌떡 넘어지고 자빠지며 땅바닥을 떼굴떼굴 구르고 발작을 합니다. 조민경 자매나 영적 분별력이 있는 성도들이 볼 때, 이 쓰러짐과 발작 현상이 성령이 들어가시는 거룩한 성령 충만 현상입니까, 아니면 귀신이 들어가 사람의 육체를 장악해 유린하는 악령 접신 현상입니까? 명백한 귀신 접신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가짜 방언과 최면 주술을 행하는 자들과는 절대로 악수도 하지 마십시오. 영적인 통로를 통해 귀신의 악한 기운과 악령이 흘러 들어가 전염되면 인생이 큰일 납니다. 영적인 전염성이 매우 강합니다.
네 번째 영상 자료는 기독교의 탈을 쓰고 미국 교계를 장악한 '신사도 운동'의 베니 힌(Benny Hinn) 집회 현장입니다. 무대 위에서 베니 힌이 양복 상의를 벗어서 휙 휘두르면 수백 명의 성도들이 도미노처럼 추풍낙엽으로 쓰러지고 자빠집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돈에 미쳐서 사기꾼 목사의 발 앞에 수천, 수만 달러의 헌금 뭉치를 구걸하듯 집어던집니다. 기독교가 어쩌다가 이 지경으로 타락하고 변질되었는지 통탄할 노릇입니다.
그들은 집단 최면에 취해 낄낄거리며 미친 듯이 웃어대는데, 이를 '성령의 거룩한 웃음(Holy Laughter)'이라고 부르며 성령의 술에 취했다고 사기를 칩니다. 이쯤 되면 강단 위의 목사나 회중 석의 성도들이나 영적 분별력은 영프로이고, 완벽하게 귀신이 끄는 대로 끌려가는 마귀의 꼭두각시 무리입니다.
요즘은 또 소리 지르는 방언이 무식해 보인다고 해서, 시끄러운 게 싫다며 조용히 명상하듯 침묵하는 '관상 기도(Contemplative Prayer)'라는 교묘한 신비주의를 들여와 지식인들을 속입니다. 거룩함과 경건함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다 영적으로 얼 빠진 삯꾼 목사들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번영 신학자 케네스 해긴(Kenneth Hagin)이나 하워드 브라운(Howard Browne) 같은 자들이 전 세계 교회를 사탄의 야만적인 주술 영성으로 물들이고 있는 사탄의 일급 종들입니다. 온 세계 교회가 이렇게 썩어가고 있는데, 귀신이 주는 최면 웃음을 성령이 주신 축복이라고 미화합니다.
미국 교회는 이미 복음을 상실하고 사탄의 나라로 전락했습니다. 내일 오전에 우리가 미국 교계가 얼마나 사탄의 주술에 철저히 유린당했는지 그 뿌리를 캐내어 강론할 것입니다. 사실 이 실체를 폭로한 분은 미국에서 25년간 신사도 운동의 핵심 사역자로 깊숙이 활동하다가 영적 모순을 깨닫고 탈출한 정통 신학자입니다. 그분이 가짜 방언과 입신, 쓰러짐의 뿌리를 끝까지 추적해 보니, 기독교의 성령 역사가 아니라 '힌두교의 사탄적 영성'이 미국으로 건너와 성령의 가면을 쓰고 교회 제단을 점령한 것임을 밝혀냈습니다. 그분이 저술한 책 이름이 바로 『쿤달리니 경고(Kundalini Warning)』입니다.
'쿤달리니(Kundalini)'라는 마귀의 정체는 힌두교 요가나 가부좌 명상을 하는 자들의 척추 뼈 밑바닥에 또아리를 틀고 잠자는 뱀의 영을 뜻합니다. 주술적 최면 음악과 호흡을 통해 이 엄지발가락에서부터 뱀 두 마리가 몸을 타고 기어 올라와 척추를 관통해 뇌파를 장악하면 온몸에 불이 붙는 듯한 강력한 신비 체험을 하며 이성을 잃고 미쳐버리게 만드는 악령의 역사입니다. 이 쿤달리니 요가 주술 현상이 단어만 '성령 세례'로 간판을 바꾸어 기독교 부흥 집회로 고스란히 유입되었다는 폭로입니다. 독립영화 『쿤달리니의 징후』 한 장면을 보면 미국의 목회자라는 자가 반바지에 군복을 걸치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며 무대 위에서 성도들의 목에 개 목줄을 채워 개처럼 짖으며 마당을 기어 다니게 만듭니다. 이게 죄를 회개하는 거룩한 성령의 역사입니까? 귀신이 인간을 짐승으로 전락시켜 조롱하는 참담한 악령의 주술 놀음입니다.
여기 화면에 보이는 사도 타드 벤틀리(Todd Bentley)라는 사기꾼 가짜 사도가 있습니다. 온몸에 문신을 도배하고 강단에서 성도들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며 치유 사역을 한다고 사기를 치는 자입니다. 그 밑에서 안수를 받고 떼굴떼굴 구르는 자가 놀랍게도 한국인 목사입니다. '사도 체 안(Ahn Che)'이라고 안재호라는 한국계 신사도 목사인데, 자기가 가짜 사도 타드 벤틀리에게 안수를 받으며 마귀의 하수인이 되어 영역이 전염되자 좋다고 자빠져 있는 모습입니다. 완벽한 마귀의 세계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절대로 인간을 이렇게 추잡하고 무질서하게 다루지 않으십니다. 이런 주태를 성령이 하시는 사역이라고 미화하는 행위는 명백한 '성령 모독죄'이며 성령 훼방죄입니다. 악령의 주술을 성령의 은사라고 가단 하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이런 악한 악령의 영성은 러시아, 남미 히스패닉, 아시아 등 전 세계로 들불처럼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이 화면은 태국의 불교 알파코스 집회 현장입니다. 절간에서 승려들과 불교 신자들이 최면 음악을 틀어놓고 통곡을 하며 뒤로 자빠지고 쓰러지는 모습입니다. 기독교의 신사도 방언 집회와 싱크로율이 100% 일치합니다. 즐겁다고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려놓은 자료들이 온 세계에 넘쳐납니다. 일반 불신자들이 이 영상을 보면 기독교를 향해 "미친 개독교 무당 집단"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데, 저는 불신자들에게 그런 욕을 먹어도 기독교가 싸다고 봅니다. 교회가 스스로 무당 짓을 자처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국에서 유명한 여자 무당인 '빵상 아줌마'의 우주 언어 방언 영상도 보십시오. 기독교 신사도 목사들이 뱉는 방언 소리와 완벽하게 똑같습니다. 방언한다는 사람들의 소리를 녹음해서 정밀 대조해 보면 열 사람이면 10가지가 다 다르고, 백 사람이면 100가지가 다 제각각입니다. 단 한 구절도 언어학적 일치성이 없습니다. 그것은 문법 체계를 갖춘 '언어'가 아니라 자기 생각과 마귀가 주는 대로 내뱉는 정체불명의 주술 소음일 뿐입니다. 유명 연예인이었던 서세원 씨도 연예인 그만두고 가짜 예언자, 가짜 목사 밑에서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어 그런 무당 방언 집회를 하고 다녔습니다. 제가 그 가짜 방언의 뿌리 조직까지 훤히 알고 있습니다.
또 한 명의 심각한 종교 사기꾼의 실명을 밝혀두겠습니다. '경한수 박사'라는 자가 있습니다. 이 자는 제가 강의한 성경 통독 및 방언 비평 강좌의 녹취록과 자료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니까, 그것을 그대로 A4 용지에 인쇄해서 읽어가면서 자기가 강의를 하고 다니는 지독한 표절 사기꾼입니다. 제가 연구해서 빼낸 귀한 신학 자료를 가지고 버젓이 읽어가면서, "내가 독일에서 15년간 피땀 흘려 연구해 터득한 위대한 신학적 진리"라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대형 거짓말을 치고 다닙니다. 더 심각한 것은 전 세계 42개국, 주로 아프리카나 남미 등 후진국 지역에 나가 고생하는 순진한 선교사들을 찾아가서 "박사학위를 주겠다"며 학위 장사를 벌여 1인당 800만 원씩 갈취하고 다닌다는 사실입니다. 그 학위 논문과 강의 내용은 100% 제가 강의한 내용을 토시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복사한 것입니다. 심지어 제가 강연 중에 던진 썰렁한 유머와 농담 쪼까지 원고에 그대로 베껴서 읽더군요. 제가 그 증거 영상 자료도 다 확보하고 있습니다.
어느 해 제가 몽골 선교 20주년 기념 대성회에 주강사로 초청받아 성경 강좌를 인도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저를 강사로 섭외하고 일정을 어레인지한 몽골 선교회 회장 목사님이 제가 첫 시간 강의를 시작하자 단상 아래에서 얼굴이 흑빛이 되어 우거지상을 하고 괴로워하더군요. 강의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사색이 되어 저를 찾아왔습니다. "노 목사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목사님이 하신 성경 강론 내용이, 얼마 전 몽골 선교사들을 다 모아놓고 거액을 뜯어내 박사학위를 주고 간 경한수라는 사람의 강의와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똑같습니다! 도대체 누가 진짜이고 가짜입니까? 가짜 경한수가 너무 진짜처럼 사기를 쳐서 선교사들이 다 속았습니다!"라며 탄식을 했습니다. 더 웃기는 것은 진짜 원본인 저는 원고 한 장 안 보고 성경을 꿰뚫어 강의를 하는데, 가짜 경한수는 제 원고 인쇄본을 코를 박고 읽어가면서 학위 장사를 했으니 몽골 선교 20주년 기념 강좌의 권위가 그 사기꾼 때문에 흙탕물이 될 뻔한 것입니다. 남의 강의를 도둑질해 표절하는 장사꾼 목사들의 실태가 이렇습니다.
나중에 선교사들이 경한수가 가짜 사기꾼이고 저 노 목사가 진짜 원본 저작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는 머리를 치며 통곡을 했습니다. 요르단에 성지순례를 갔을 때도 현지 선교사 한 분이 밤중에 제 숙소로 울면서 찾아왔습니다. 경한수라는 자가 요르단까지 기어들어 와서 목회자 250명을 모아놓고 제가 연구한 에스라 하우스 신학 자료를 그대로 토시 하나 안 틀리고 읽어주며 1인당 수백만 원씩 박사학위 장사를 해 먹었다며 고발을 하더군요. 한국에서는 사기 행각이 들통나서 발을 못 붙이니까 이제는 42개국 선교지를 돌아다니며 국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다못해 우리 에스라 하우스의 신실한 장로님 두 분과 동역자 목사님 한 분이 경한수가 있는 곳을 급습하여 현장을 덮쳤습니다. "당신 왜 노 목사님의 지적 재산권을 도둑질해서 국제 사기를 치고 다니냐?"고 다그치니, 처음에는 발뺌을 하며 뻔뻔하게 잡아떼더랍니다. 그래서 저희가 확보한 빼도 박도 못하는 표절 영상과 녹취록 증거들을 면전에 들이대니까 온몸에 힘이 다 빠져서 사시나무 떨듯 떨더군요. 당장 에스라 하우스 홈페이지에 자필 '공개 사과문'을 게재하게 했고, 자기 사기 단체 홈페이지에 제가 쓴 칼럼들을 지가 쓴 것처럼 올려놓은 도둑질 게시물들을 통째로 내리게 조치했습니다. 완전히 영적인 소탕을 해버린 통쾌한 사건입니다. 지금은 사기 학위 장사질을 가만두지 않아서 완전히 매장되었을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전쟁터에서 기병대 병사들이 말을 타고 전진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말들도 지쳐서 날뛰는데, 한 장군이 장엄하게 "전군 출발!"을 외치며 칼을 멋있게 뽑았다가 다시 칼집에 번쩍 꽂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투레질을 하며 흔들리는 바람에, 칼끝이 칼집에 안 들어가고 자기 허벅지 동맥을 깊숙이 찌르고 말았습니다. 전쟁터라 위생이 나쁘니 그것이 파상풍으로 도져서 고향 집 구경도 못 하고 군영에서 허무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썰렁한 이야기 같지만, 장군 한 명이 멍청하게 칼질 한번 잘못해서 허무하게 죽고 나니 그 밑의 정예 기병대 일곱 장군과 특권층 군대가 통째로 와해되어 버린 역사적 실화입니다. 영적 지도자 한 명의 분별력 없는 주술 행위가 교회를 어떻게 말살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대전 지역에서는 목회자 250명을 모아놓고 가짜 박사학위 장사를 벌였고, 지금까지 이 사기판에 놀아나 돈을 뜯긴 한국 교회의 목회자 수가 무려 15,000명에 달합니다. 그 정교한 가짜 학위를 들고 와서 "나 외국 유학파 박사 목사요"라며 성도들을 속여 대형교회 담임으로 부임해 먹는 정치가 판을 칩니다. 이 사기꾼들이 다녀간 자리가 다 제가 피땀 흘려 정립한 에스라 신학 자료의 찌꺼기들입니다. 광주에 집회를 갔을 때도 어떤 목사가 저에게 와서 자기가 신령한 신학 박사 공부를 했다고 은근히 자랑을 하길래, 제가 같이 밥을 먹으면서 단호하게 팩트를 찔러주었습니다. "당신이 경한수에게 수백만 원 주고 사 온 그 박사학위 논문 소스의 99%는, 여기 서 있는 노 목사의 지적 재산권을 도둑질한 사기 장물이다. 사기꾼의 장물을 돈 주고 사 와서 박사 딱지 붙이고 부끄럽지 않으냐?"라고 면박을 주었더니, 밥맛이 뚝 떨어졌는지 숟가락을 놓고 얼굴이 흙빛이 되더군요. 참 한국 교계 목사들의 영적, 도덕적 세계의 수준이 이 정도 바닥입니다. 완전히 타락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현대 교회의 영성 훈련이라는 프로그램들, 알파코스, 두 날개, G12 등에서 행하는 마지막 단계인 '주말 인카운터(주말 영성 수양회)'는 성도들을 한적한 기도원에 몰아넣고 불을 꺼둔 채 감정을 고조시키는 집단 최면 기법입니다. 그렇게 해서 강제로 방언을 받아내게 유도하는 그 영성 구조의 뿌리는 기독교의 성령 역사가 아니라 '힌두교의 주술 영성'에서 고스란히 베껴온 것입니다.
그 사기꾼들의 신비주의 집회에 수만 명의 인파가 구름같이 몰려들어 돈을 갈취당하고 자빠지는 모습을 보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 간판을 달았다고 해서 목사나 단체를 절대로 무분별하게 믿지 마십시오. 아무나 맹신하면 영혼이 사냥당합니다. 그래서 제가 첫날 강의 때부터 누누이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여기 서 있는 강사 노 목사도 무조건 믿지 마라! 내가 전하는 강론이 성경 66권의 문맥과 하나님의 성품에 정확히 부합하는지 눈을 똑바로 뜨고 따져가면서, 비평적으로 영적 분별력을 발휘해 귀를 기울이라"고 단단히 당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귀의 사기 영성에 영혼을 저당 잡혀 휘둘리지 마십시오. 단단히 깨어 있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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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 요약 정리
성경적 번역 비평을 통한 방언 책망 확증: 강연자는 고린도전서 14장의 심각한 오역들을 지적합니다.
14장 2절: 방언이 고귀한 비밀 기도라는 뜻이 아니라, "왜냐하면 방언쟁이들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이방 신에게 주술 부리듯 주절거려 대중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예언을 사모하라)"는 강력한 방언 부정적 문장입니다.
14장 14~15절: 바울이 방언 기도를 하겠다는 결단이 아니라 가상법과 반어법을 사용하여 "뜻 모를 소리로 영의 기도를 한답시고 중얼거리면 마음에 아무 열매가 없고 회중이 아멘도 못 하는데 내가 왜 그런 미련한 짓을 하겠느냐"는 철저한 책망입니다.
14장 18~19절, 39~40절: 바울의 방언은 골방 기도가 아닌 다국적 외국어 구사 능력을 뜻하며, 공적 예배에서는 알 수 없는 소음을 전면 금지하고 통역을 세워 모든 것을 '품위 있게(유스케모노스)' 행하라는 지침입니다. 고린도전후서는 교회의 타락을 뜯어고치기 위한 '교정 서신'이므로 무질서한 방언 행태를 본받으면 안 됩니다.
가짜 방언의 악령 접신(최면 주술) 실체: 임상 검증(조민경 자매 사례)을 통해 현대 교회의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 기도는 영의 세계에서 '귀신들을 불러 모으는 최면 주술 소리'임이 증명되었습니다. 가짜 방언을 받은 자들에게 가위눌림, 불면증, 환청 등의 영적 억압 현상이 나타나며, 참된 성령의 역사(찬양과 말씀의 깨달음)를 철저히 방해합니다.
이방 종교(힌두교) 영성의 침투 고발: 현대 기독교 신사도 운동(베니 힌, 타드 벤틀리 등)의 쓰러짐, 낄낄거리는 웃음, 광기 어린 방언 집회는 기독교의 성령 사역이 아니라 힌두교 명상 주술인 '인체의 뱀의 영을 깨우는 쿤달리니(Kundalini) 영성'이 기독교의 탈을 쓰고 침투한 사탄의 사기극입니다. 이는 태국 불교의 신비주의 최면 현상과 100% 일치하며 기독교를 무속화하는 성령 모독죄입니다.
교계의 도덕적 타락과 사기 실태 폭로: 대형교회 목사들의 방언 메시지 및 통역은 완벽한 조작과 사기이며, 강연자의 에스라 하우스 신학 연구 자료를 통째로 표절하여 전 세계 선교지를 무대로 거액의 박사학위 장사를 벌인 '경한수'라는 종교 마피아의 실체를 고발합니다. 이처럼 목회자 사회가 영적 분별력과 도덕성을 상실하고 사탄의 영성에 놀아나고 있으므로, 성도들은 맹신을 버리고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철저하게 비평적이고 냉철한 분별력을 가질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