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말씀묵상

이사야 64장 주해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6.19|조회수27 목록 댓글 0

이사야 64장 주해

이사야의 별명은 참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별명이 뭔가요? 바로 ‘작은 성경’이라고 하는 별명입니다. 성경이 총 66권인 것처럼 이사야는 6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구약이 39권인 것처럼 이사야 제1부는 39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이 27권인 것처럼 이사야 제2부는 40장부터 66장까지 총 2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제1부인 1장부터 39장은 아시리아 시대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지요. 마치 구약처럼, 곧 다가올 북방 이스라엘의 멸망과 아시리아의 침입을 예고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경고하면서 “회개하라!”라고 외치는 기별이 그 핵심 내용입니다. 반면 이사야 제2부인 40장부터 66장까지는 앞으로 있을 바벨론의 침입을 미리 예고하면서, 이사야 시대로부터 150년 후에 있을 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미리 그 내용을 선포하여 백성들을 위로하고, 마침내 회복된다고 하는 복음의 기별을 전하는 것이 이사야 제2부의 핵심 내용이죠.

 

우리가 석 달 동안 함께 살펴보는 이 이사야 제2부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 40장부터 48장까지는 ‘위로의 기별’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위로의 책’이라는 별명으로 부릅니다.

둘째, 49장부터 55장까지는 소위 ‘메시아장’이라고 부릅니다. 고난받는 종의 기별이 담겨 있죠. 그래서 이사야서를 ‘구약의 복음서’ 또는 ‘구약의 에베레스트’라고 부르게 만드는 핵심 내용이 바로 여기에 속합니다.

셋째, 56장부터 66장까지는 새 하늘과 새 땅, 곧 완전한 회복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놀랍게도 이사야 제2부의 시작인 40장 1절은 마태복음 3장에 나오는, 광야에서 외치는 침례 요한의 소리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이사야 66장 마지막 부분(22~23절)은 요한계시록 21장, 22장처럼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내용으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는 지난 6개월 동안 이사야 66장을 장에서 장으로, 절에서 절로 한 절도 빼놓지 않고 다 읽으면서 지금 완독하는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여기 함께하신 여러분에게 우선 제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찬사와 격려를 보냅니다. 정말 수고하셨고 잘하셨습니다. 이런 경험은 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전체를 한 절도 안 빼고 이렇게 함께 살펴보는 일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7, 8, 9월 목요일 강좌는 제가 물리적인 사정으로 잠시 쉽니다만, 금년 마지막 제4기(10, 11, 12월) 저녁 시간에는 예레미야 강좌를 다시 시작할 겁니다.

 

오늘 그 마지막 시간으로 64장, 65장, 66장을 살펴보게 될 터인데, 조금 길게 해서 제1차시를 1시간 15분 정도 진행하며 세 장을 다 압축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친 다음에는 브레이크 없이, 이번 이사야 제2부의 위로와 회복의 기별을 통해 큰 깨달음과 은혜를 받으신 분들의 간증을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물을 드시거나 다녀오실 분들은 자유롭게 다녀오시면 됩니다. 자, 그럼 64장을 보시죠.

 

시편 64장: 절박한 좌절 속에서 드리는 연대적 회개 기도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64장 전체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65장은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1인칭 응답입니다. 66장은 선지자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마지막으로 이사야 전체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64장 1절을 보시죠.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이 기도는 사실 앞장인 63장 15절에서 시작되어 64장 12절까지 이어집니다. 63장 15절을 보면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라고 구합니다. 바벨론 포로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여호와의 사랑과 자비를 구하는 마지막 기도이지요.

 

그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은 63장 18절에서 “우리의 원수가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라고 표현되고, 64장 11절에서는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라고 이야기합니다. 성소(미크다시)는 거룩함을 강조하는 표현이고, 성전(베이트)은 하나님의 집, 즉 거처를 뜻합니다. 성소가 유린당하고 성전이 불탔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적 가치와 정체성이 완전히 허물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이 좌절 속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강림을 기도하는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기도합니다. 64장 3절의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때에”에서 ‘그때’는 바로 출애굽 당시 신내산 강림의 장면을 말합니다. 그때 강림하셔서 인도하셨던 하나님, 지금 바벨론 포로 상황에서도 다시 임재해 달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사람을 두 가지로 묘사합니다.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성경에서 이렇게 나란히 서는 것은 같은 의미를 반복해 개념을 강화하는 방식입니다. 즉, 주님을 기억하는 자가 공의를 행하고, 공의를 행하는 자가 주님을 기억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63장 15절부터 64장까지의 기도에서 거의 매절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입니다. 63장 16절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64장 8절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이 기도는 철저하게 자신을 포함시킨 민족적 회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제3자의 기도가 아니라 나를 포함시키는 ‘나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백성들은 구원받을 자격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64장 5절 뒷부분에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라고 나옵니다. 여기서 ‘현상’이라는 단어는 성경 전권에서 우리말 번역으로 여기 한 절밖에 안 쓰인 표현입니다. 원어상 번역이 까다로운 난해 구절인데,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나 있는 바벨론 포로 된 증상을 너무나도 잘 살려준 번역입니다.

 

이어서 인간의 의가 얼마나 누추한지 보여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6절,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옷을 해 입었지만 햇빛에 말라버린 것처럼, 인간 스스로의 의는 더러운 옷 같다는 고백입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오려는 백성들은 “나 정도면 괜찮아”라는 생각을 버리고, 이처럼 철저히 자기 의가 없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8절에서는 다시 관계의 회복을 청원합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토기장이 비유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할 때 쓰입니다. 9절에서는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라고 탄원합니다. 언약 관계 안에서만 할 수 있는 표현이지요. 12절,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라며 다니엘의 기도처럼 간절하게 끝을 맺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