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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말씀묵상

류대균 방송원고 11과 시련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6.05|조회수36 목록 댓글 0

11과 시련

 

 

 

류:

성도들의 교과공부를 응원합니다.

안녕하세요 마석교회 류대균, 이현주입니다.

 

비에 흠뻑 젖은 아이가 집에 옵니다.

창문을 바라보며 아이를 기다리던 아빠가

번개가 번쩍일 때

아이가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 보며 웃는 것을 보고

이유를 물어봅니다.

 

아이는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제 사진을 찍고 계시잖아요~~”

아이는 우루릉 쾅쾅 하는 번개를

사진기 플레시로 생각하고 하늘을 향해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가요?

비오고 번개 치는 것과 같이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잊어 버리시나요?

아니면 비와 번개 치는 것과 같은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사진 찍어 주시네 하면서

웃으며 하늘을 바라 보십니까?

 

11과 교과 시련이란 주제를 공부하면서

믿음을 통해서

시련 중에서도 오히려 그리스도의 충만한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살펴보겠습니다.

 

일요일 교과를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루 종일 갈릴리 호수가에서 많은 군중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폭풍이 올 것을 아셨지만

예수께서는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풍풍 가운데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실 교훈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교훈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마가복음 4장 35절 부터의 말씀입니다.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막 4:35-38)

 

말씀 가운데 보면 예수께서 배의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배의 앞 부분을 이물, 배의 뒷 부분을 고물이라고 하잖아요

예수께서는 배 뒤편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셨습니다.

그런데 베게는 아무나 베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sda 바이블 코메터리를 보면

노를 젓는 사람을 위해서 거친 가죽 쿠션으로 배게를 만들었다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베개 - 이것은 배의 고물에 앉아 노를 젓는 사람을 위해서 거친 가죽 쿠션으로 만들어졌으며 배의 상비 기구 중 하나였을 것이다.”(성경주석, 막 4:38)

 

예수께서 노 젓는 사람을 위해서 만든

베게를 베고 계셨다는 것은 교과의 말씀처럼 예수께서

배의 운전자 자리에서 조종간을 잡으신 채

거기서 잠이 드신 것으로 생각할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밖에는 큰 광풍이 일어나

배에 부딪혀 물이 들어 오는데

배의 운전자 되시는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배게를 배고 주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위기 가운데 제자들은 외칩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고통이나 상실을 겪으면서 때로는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에 의문을 품을 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삶을 제대로 인도하시는거 맞나?

혹 내 삶의 조종간을 잡으신채 예수님 주무시는건 아닌가?

 

그런데 예수께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예수께서 조정 잘하기를 원하셨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애 성난 바람을 꾸짖으시며,

말씀으로 바다를 잠잠케 하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 39절입니다.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고난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빨리 빨리 움직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배의 노를 잡으신 예수께서는

폭풍 가운데 배를 잘 조종하는 방식이 아닌

아에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 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영광됩니까?

배 조정 잘하는 것과

바다를 잠잠케 하는 것중

어느 것이 제자들의 믿음 향상에 더 도움이 되었을까요?

 

배 하나 잘 조종하는 것과

바다를 잠잠케 하는 것중

어느 것이 예수를 따라 간 다른 배와 갈릴리 호수에 있던 배들에게

유익했겠습니까?

 

고난의 순간에도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 주심을 신뢰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월요일 교과를 보시겠습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아픈 딸을 위해서 예수께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와 함께

몰려드는 군중을 헤치며

병든 딸을 고치러 갑니다.

 

그때 의사들을 찾아 모든 재산을 썼지만

아무 효엄이 없고 도리어 병이 더 중하게 된 한 여인이,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옷 자락만 만지면 병이 낳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의 빽빽한 군중들 사이에서

예수의 옷을 만지고 고침을 받습니다.

마가복음 5장 27절입니다.

5: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5: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수많은 인파가 예수와 접촉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고침 받은 사람은 믿음으로 예수를 만진 그 여인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 있습니다.

그녀가 나은 것은 만졌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믿음으로 만지는 것과 무관심한 군중의 우연한 접촉을 구별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만진 그 여인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시대의 소망 344페이지의 말씀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옷을 만지는 행위만으로도 치유하는 능력이 나온다고 주장하는 미신이 생겨날 기회를 허용하지 아니하셨다.  병이 완쾌된 것은 예수와의 외적인 접촉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예수의 거룩하신 능력을 붙잡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시대의 소망, 344, 347).

 

고침을 받은 것은 예수 옷 안에 있는 특별한 능력이 아닌

거룩하신 예수를 능력으로 붙잡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인생의 문제, 내 고난의 문제

주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주님께 나갈 때

우리도 틀림 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살길을 명확합니다.

예수님 믿을 때 삽니다

 

갑자기 에어컨 생각이 나네요

고마운 에어컨에게 부채질 해주고

쓰 다음어 준다고 시원한 바람 나올까요?

 

벽의 플러그에 꽃혀 있지 않으면 에어컨 바람 나오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의 능력은

믿음이란 통로를 통해서

그 여인에게 전달 되었습니다.

시련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살아,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화요일 교과입니다.

노 더 잘 젓는 방식이 아닌 폭풍을 잠잠케 하신 사건을 통해서

그리스도는 더 큰 그림을 가지고

우리를 도우시는 것 살펴보았습니다.

 

또 믿음의 통로를 통해서

예수의 능력이 우리에게 오는 것 살폈습니다.

 

화요일 교과에서는

고난 가운데서도

더 크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간 한 사람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욥입니다.

 

욥은 모든 재산을 잃었을 뿐 아니라

자녀들, 건강까지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아내까지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욥에게 말합니다.

 

욥을 찾아온 세친구도

이런 불행이 욥에게 닥친 이유를 제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욥이 죄를 지어서 어려움이 온다고 말합니다.

욥기 18장 21절 보시겠습니다.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욥 18:21)다

 

시련 때문에도 힘든데

친구는 그게 나의 죄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런 힘든 상황에도

더나가 모든 것을 이해 할수 없는 환경속에서도

욥은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반응했습니다.

 

하나님을 탓하고 싶은 유혹의 순간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욥기 1장 21절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 1:21)

 

욥은 주시든, 거두어 가시든

가장 좋은 거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시련을 믿음으로 반응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시험에 대하여 반응한 욥은

더 큰 은혜를 누리는 사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믿음으로 시험에 반응한 욥은

시험을 당하는 많은 이들에게

너무나 큰 유익을 주는 복된 인생이 되었습니다.

 

욥의 때와 같이 사탄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왜곡하기 위해서

고통, 괴로움, 상실, 역경으로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까요?

믿음으로 반응할 때

병고침을 위해 노력 했던

혈루증 앓던 여인도 나음을 입었습니다.

믿음으로 반응할 때 욥도

회복을 넘어 더 큰 복을 누리게 되었고,

시험을 당하는 많은 이를 복되게 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소망합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거 보다 더 큰 그림이 있음을 바라보면서

가장 막막한 순간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요일 교과를 보시겠습니다.

갑자기 들었던 예화가 생각나네요

어느 날, 어린 손주가 할머니 방에 들어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할머니가 수놓고 있는 자수의 뒷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가 수 놓고 있는 뒷면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온갖 색깔의 실들이 아무렇게나 엉켜 있었고,

매듭은 지저분했으며,

도대체 무엇을 그리려고 하는지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손주는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왜 이렇게 엉망진창인 것을 짜고 계세요? 너무 이상해요."

 

그러자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자수를 뒤집어 앞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곳에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정교하게 수놓아진 황금빛 왕관이 있었습니다.

 

부분만 보고 실망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주실 것입니다.

 

수요일 교과에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유다의 배신으로 재판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린 부분만 보고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혼돈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실망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의 단면일 뿐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자수의 뒷면만 보고 있는 제자들와 함께 걸으셨고

제자들에게 예수의 죽음이 성경에 예언된 것을 풀어

더 큰 계획을 보게 하심으로

제자들의 마음이 뜨겁게 되었습니다.

 

일부만 보면서,

불안해하거나, 염려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님 너무나 정교하게 수 놓아진

앞면을 짜고 계십니다.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결코 실패하지 않는

주님 바라보시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목요일 교과 보시겠습니다.

시험을 믿음으로 반응할 때

예수님의 옷깃을 만진 여인처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구원 받게 되는 것 살폈습니다.

 

어려운일 당할 때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어떻게 생길까요?

목요일 교과를 보시면 예수를 바라볼 때

믿음이 생긴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초기 문집 79페이지의 말씀입니다.

여기 서 안내자는 나에게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온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명하였다. 나는 기꺼이 그것들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는 문을 열고 나에게 들어가라고 하였다.

순간 나는 예수님 앞에 서게 되었다. 그 아름다운 용모를 하신 분을 못 알아볼리 없었다. 그토록 자비롭고 위엄 있는 찬란한 모습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너무나 기뻐서 한 마디의 말도 할 수 없었으나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싸여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렸다. 내가 힘없이 그렇게 있는 동안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장면들이 내 앞을 지나갔으며 나는 하늘의 안전함과 화평에 젖어 있는 것 같았다.

마침내 다시 힘이 생겨 나는 일어섰다. 예수님의 자애로운 눈이 아직도 나를 바라보고 계셨고 그분의 미소는 내 영혼을 기쁨으로 가득 채웠다. 그분의 임재가 내 마음을 거룩한 경외심과 형용할 수 없는 사랑으로 충만하게 했다. …이 꿈은 내게 희망을 … (그리고) 믿음을 주었다.”(초기문집, 79).

 

엘렌 화잇은 꿈에서 예수를 보았을 때에

희망과 믿음을 갖게 됨을 확인 했습니다.

 

꿈에 예수를 보고도 믿음이 곤고해지는데

늘 예수를 바라 보는 사람

믿음이 더욱 곤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요~~ 예수 바라볼 때 우리 믿음은 더욱 큰 믿음 될 것입니다.

해바라기는 철저하게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립니다.

동쪽에서 해가 뜨면 동쪽을 바라보고,

해가 서쪽으로 질 때면 서쪽을 바라봅니다.

컴컴한 밤이 되면 다시 고개를 돌려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를

동쪽을 향해 묵묵히 기다립니다.

식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해바라기가 햇빛을 바라보는 동안

그 빛이 식물 내부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줄기를 곧고 튼튼하게 자라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의의 태양이신 예수를 바라볼 때 틀림 없이

우리의 믿음도 더욱 튼튼한 믿음이 될 것입니다.

 

제11과 시련 교과 정리와 소그룹 토의 주제를 제안드립니다.

매주 방송 대본과 교과 해설 용지를 연합회 안식일 학교에 올려드립니다.

프린터 하셔서 교과 토의 시간에 잘 사용하시면 되겠습니다.

 

일요일 교과에서 광풍이 부는 갈릴리 호수 한가운데서 배의 키를 잡으신 채 베개를 베고 주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주무시는 예수를 본 제자들처럼

우리는 때로 인생의 폭풍 속에서 "주님이 왜 나를 돌보지 않으시나" 의문을 품지만, 주님은 단순히 배를 잘 조종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심으로 더 큰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소그룹 토의 주제입니다: 내 삶에 폭풍이 몰아칠 때, 예수님이 주무시는 것만 같아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에 의문을 품었던 경험이 있었는지, 그리고 주님은 그 폭풍을 어떻게 지나가게 하셨는지 나누어 보겠습니다.

 

월요일 교과에서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스쳤으나, 오직 믿음으로 그분의 옷자락을 만진 혈루증 여인만이 치유의 능력을 경험했음을 배웠습니다. 아무리 좋은 에어컨을 집에 들여놓아도 벽의 플러그에 코드를 꽂지 않으면 시원한 바람이 나오지 않듯이, '믿음' 의 통로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화요일 교과에서 모든 재산과 자녀, 건강을 잃고 친구들의 정죄 속에서도 하나님의 더 크신 계획을 신뢰했던 욥의 믿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간 욥처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한 시련이나 상실을 겪을 때, 원망했던 경험 그리고 어려운데도 믿음을 지켰던 경험들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수요일 교과에서는 엉망진창으로 엉킨 실타래 같은 자수의 '뒷면'이 아닌 전체를 볼 때 모든게 달라지는 것 공부했습니다. 그 때 당시에는 모든게 혼돈 스러웠지만, 시간이 흘러 더 많은 것을 보게 된 후에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 것들 나누어 보겠습니다.

 

목요일 교과에서 시련을 이길 힘인 '믿음'은 결국 예수님을 끊임없이 바라볼 때 생겨남을 배웠습니다. 컴컴한 밤에도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를 동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해바라기처럼, 예수를 바라보는 나만의 좋은 방법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12과 그분을 전하라 주제로 성도들을 다시 찾아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주님안에서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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