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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말씀묵상

예언의 신 인용구들 제11과 시련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6.05|조회수42 목록 댓글 0

# 안식일학교 장년교과 보충교재(예언의 신 인용구들)

 

내 생애가 언제 끝나든 상관없이, 내 저술들은 끊임없이 말할 것이며, 그것들의 역할은 세월이 지속되는 한 계속될 것이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말씀들은 계속 살아서 백성들에게 말할 것이다.”(편지 371, 1907)

 

(1) 이 자료는 대총회 안교부가 매기마다 안교 장년교과와 함께 매일의 공부 내용과 연결하여 새로운 통찰력과 신선한 관점을 얻도록 돕기 위해 관련 예언의 신 구절들을 모은 보충교재(Ellen G. White Notes for the Sabbath School Lessons)를 한글판으로 바꾼 것입니다. (한글번역본이 없는 경우는 게시자가 번역함)

(2) [활용방법] 매일의 교과를 공부한 후, 그날에 해당하는 부분을 연결하여 묵상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2026년 제2하나님과 함께 자라가는 삶>

예언의 신 인용구들 11과 시련

 

<66/, 서론>

 

좁은 문은 들어가기에 어려운 문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예증을 통하여 남녀들이 세상과 세상이 붙들고 있는 애정들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또한 온 마음과 사랑으로써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임을 보여 주셨다. 넓은 길은 들어가기가 쉽다. 그것을 통하여 들어가는 데는 인간의 마음에 쓰라림을 주는 제재가 필요치 아니하다. 넓은 길에는 극기와 자아 희생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는 타락한 식욕과 본래 타고난 경향이 넓은 자리를 차지한다. 또한 거기에는 자아 방종과 교만과 질투와 악한 생각과 돈을 사랑함과 자기를 높이는 것들이 나타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들어가기를” “힘쓰라곧 필사적으로 노력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음과 또한 우리 자신의 지혜와 판단과 힘은 매우 연약함을 느껴야만 한다. 그리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원수를 대적하신 그분을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며 또한 그분이 우리를 돕지 않으시면, 정복당하여 멸망할 것을 아시는 까닭이다. 그대는 어떤 안일하며 평범한 노력으로써 영원한 상급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말라. 그대의 길에는 간교한 원수가 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3:21). 여기에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해야 할 싸움이 있다. 그분의 시험과 시련과 수고와 투쟁의 생애는 우리가 본받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주님이 겪으신 유혹과 시련과 고난과 투쟁의 생애는 그것을 모방하도록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노력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성공은 없다. 위대한 승리자이신 주님의 특별한 도우심 없이 행하여지는 모든 노력은 무익하며 승리는 주님의 공로에 의한 것임을 마음에 깊이 느끼고 무력한 그대로 또한 고통과 필요한 가운데 반석 되신 그리스도께 떨어질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넘어지는 것보다 원수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모든 천사를 보내실 것이다. (그분을 알기 위하여, 304)

 

우리 신앙 생애의 정결함과 견고함은 비단 우리가 받아들인 진리에 의존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귀는 친구와 우리가 호흡하는 도덕적 분위기에도 의존된다. 믿음과 순응성, 활기, 희망, 기쁨, 의심, 공포, 나태, 우둔, 시기, 질투, 이기심, 방종, 타락 등 모두가 우리가 형성하는 교제와 우리가 사귀는 친구와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의 결과들이다.

위대한 의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신자를 위하여 처방을 주셨다. 교인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공급되는 음식을 먹어야만 한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역사하는 믿음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숨 쉬는 공기에 달려있다. 만일 우리가 악한 자와 더불어 사귀면 죄의 말라리아(전염성 열병; 역자주)로 감염된 분위기를 숨 쉬는 것이다. 반면 분명한 것은 온유와 겸손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과 더불어 사귀게 되면 순수하고 거룩한 분위기를 숨 쉬는 것이다. (높은 부르심, 255)

 

<67/, 인생의 풍랑>

 

주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기 전에 유언을 남기셨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남겨주실 금이나 은이나 집은 없으셨다. 이 세상의 소유에서는 그분은 가난하신 분이셨다. 예루살렘에 그분만큼 가난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분은 이 세상의 어떤 군주도 그의 신하들에게 줄 수 없는 더 귀한 선물을 그분의 제자들에게 남겨주셨다. 그분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라고 하셨다.

그분은 자신이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 누리셨던 평안, 가난과 모욕과 박해 가운데서도 그분이 누리셨고 겟세마네의 고뇌와 잔인한 십자가 위에서도 그분이 누리실 그 평안을 그들에게 남겨주셨다.

이 세상에서 구주의 생애는 투쟁 가운데서 사셨지만 평안한 생애였다. 성난 원수들이 끊임없이 그분을 뒤쫓는 중에도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그 어떤 사탄의 분노의 폭풍도 하나님과의 그 완벽한 교제가 주는 평온함을 깨뜨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영혼을 그분께 맡기며, 삶을 그분의 인도하심에 맡기는 이들은 평화와 평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그들 곁에 계심으로 기쁘게 하실 때, 세상 그 무엇도 그들을 슬프게 할 수 없다. 온전히 내어 맡김에 온전한 쉼이 있다. 주께서는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각 사람의 경험은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라는 성경 말씀의 진리를 증거한다. 죄는 우리의 평안을 파괴했다. 인간의 힘으로는 마음을 지배하는 격정을 다스릴 수 없다. 우리는 마치 제자들이 거센 폭풍을 잠잠하게 할 수 없었던 것처럼 무력하다. 그러나 갈릴리의 파도를 잠잠케 하신 그분은 모든 영혼을 위한 평안의 말씀을 전하셨다. 아무리 폭풍이 거세더라도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부르짖으며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영혼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는 그분의 은총은 인간의 격정적인 갈등을 잠재우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마음은 평안을 얻는다.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과 조화를 이룬 심령은 하늘의 평강에 참여한 자이며, 그 복된 감화가 사방에 퍼져나갈 것이다. 평안의 정신은 세상의 다툼으로 지치고 괴로워하는 마음 위에 이슬처럼 내릴 것이다. (그리스도를 나타냄, 278)

 

<68/, 온전할지어다>

 

사단은 파괴자요, 주님은 회복자이시다. 주님께서는 그분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의사로서 일하지 못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너희가 생명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요셉의 터진 무덤 위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선포하신 바로 그분 외에, 다른 모든 곳에서 구제책을 찾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체적 질병에서 나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생활비를 써버린 한 가련한 영혼을 만나셨다. 성경 말씀은 그녀가 많은 의원에게 자신의 돈을 다 허비하였지만, 차도가 조금도 없고 오히려 중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한 번 만지니 오랜 세월 동안 앓던 병이 사라졌다. 이 고통당하는 여자는 그분에 대한 믿음을 갖고, 그리스도의 뒤로 와서 그분의 옷을 만졌다. 그 즉시 그녀는 온전케 되었다.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놀라면서 대답했다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그리스도께서는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이 결코 잊지 못할 교훈을 주려고 하셨다. 그분은 산 믿음의 만짐과 무심코 만짐의 차이를 보이셨다. 그분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여인은 숨길 수 없음을 보고 떨면서 앞으로 나와와 그분의 발 앞에 엎드리면서 자신의 불쌍한 사정을 말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왜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께 나아가지 않는가? 많은 사람이 그분을 스치듯 만지며 그저 그분의 모습을 볼 뿐이다. 그러나 그 여인은 그 이상을 했다. 그녀는 믿음으로 그녀의 손을 뻗었으며 즉시 나음을 입었다. 진리의 친구들은 그들의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그분을 존귀케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영혼뿐 아니라 신체도 회복시키심으로써 자신이 의사임을 입증하실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멍에를 메고, 그들 자신, 즉 몸과 영과 혼을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둘 것이다.

남녀들과 어린이들의 의지는 하나님과 협력함으로 훈련을 받아야만 한다. 영적인 기쁨의 선율과 신체적, 영적 건강이 드러날 것이며, 믿으려는 각 사람에게 주 예수께서 나눠주시러 우리 세상에 오신 그 행복을 증진시킬 것이다. 영적인 기쁨과 영적, 육체적 건강의 선율이 드러나게 될 것이며, 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려 했던 축복을 증진시킬 것이다. (승리하시는 그리스도, 239)

 

<69/, >

 

우울감이 마음을 덮칠 때, 그것은 하나님이 변하셨다는 증거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히브리서 13:8). 의의 태양 빛을 느낄 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먹구름이 마음을 뒤덮을 때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믿음이 어둠을 뚫고 나와야 한다. 마음이 한결같아야 온몸은 빛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항상 마음에 새겨야만 한다. 그분의 사랑이 주는 교훈들을 소중히 여기라. 욥과 같은 믿음으로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지하리라라고 고백하라.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힘든 경험들이 가장 큰 축복이 될 수 있다. 어두운 시기의 특별한 섭리들은 앞으로 사탄의 공격에 맞서 영혼을 격려하고, 하나님의 종이 불같은 시련을 견뎌낼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준다. 그대의 믿음의 시련은 금보다 더 귀중한 것이다. 그대는 기만자의 유혹과 주장으로 당황하지 않도록 하나님 안에 굳센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 주님의 말씀을 연구하라. 그대는 성경의 허락들을 연구하여 그대가 필요할 때 그대의 그대 것이 되도록 해야만 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

믿음은 영혼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존재를 친밀하게 하며, 우리가 오직 그분의 영광만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 우리는 그분의 품성의 아름다움을 더욱더 깨닫게 된다. 우리 영혼은 영적인 힘으로 강해진다. 우리는 하늘 분위기를 호흡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우편에 계심을 깨닫기에 요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한하신 한 분의 임재 안에서 살아야 한다.

거룩한 지혜는 주님을 신뢰하는 자들의 발걸음을 지도할 것이다. 거룩한 사랑이 저들을 둘러싸며 그들은 위로자이신 성령님의 임재를 깨닫게 될 것이다. (높은 부르심, 324)

 

모든 사람의 경험 가운데는 통렬한 실망과 철저한 낙담의 때 곧 슬픈 운명에 처하여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 세상에 태어난 그분의 자녀들을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운 날들, 고통이 영혼을 괴롭혀 마침내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은 것처럼 보이는 날들이 이르러 온다. 이런 때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신앙을 잃어버리고 의심의 노예가 되고 불신의 속박에 얽매인다. 만일 우리가 이와 같은 때에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별할 수 있다면 그 같은 상태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우리의 발을 영원한 산보다 더 튼튼한 기초 위에 세우려고 노력하는 천사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새 신앙과 새 생애가 싹트게 될 것이다.

충실한 욥은 그의 고통과 어두움의 날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 마음에 원하오니 죽는 것이 나으리이다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항상 살기를 원치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이니이다”.

그러나 욥은 지친 생애에도 불구하고 죽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그에게 장래의 가능성이 지적되었고 희망의 기별이 전달되었다. “네가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곧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욥은 실망과 낙담의 깊은 구덩이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하시는 능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높은 경지로 올라갔다. 그는 의기양양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비록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지하리니” (선지, 162-164)

 

<610/, 엠마오로 가는 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그다음 주일의 첫날에 제자들은 그들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울 온갖 것을 갖고 있었지만, 이날이 모든 사람에게 기쁨의 날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에게 이날은 불확실성, 혼란 그리고 당혹의 날이었다. 여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으며 그들 자신이 동산에서 살아 계신 예수님을 보았다는 긍정적으로 확인된 소식들을 전해 주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믿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희망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죽어버렸다. 그리고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이 그들에게 전해졌을 때, 그들이 예상했던 것과 사뭇 달랐기 때문에 믿을 수 없었다. 제자 중에 더러는 목격자들로부터 금요일 사건에 대한 아주 상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눈으로 친히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장면을 보았다. 주일 중 첫날 오후, 제자 중에 두 사람이 속절없고 불행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에 있는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멀리 가지 못해서 한 낯선 사람과 동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울함과 좌절감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던 나머지 그분을 자세히 쳐다보지 않았다. 그들은 대화를 계속하면서 그들 마음의 생각들을 털어놓았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이 사랑 가운데서 그분과 결속되었다는 것을 아셨다. 그분은 팔로 그들을 안으시고 그들의 눈물을 씻어 주시고 그들의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을 넣어 주기를 갈망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먼저 그들이 결코 잊지 않을 교훈을 주셔야만 했다.

그들은 그분께 그들의 주님에 관한 실망을 말했다. 예수님을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실망으로 가슴이 에이고 떨리는 입술로 그들은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라고 말했다.

왜 그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고, 발생했던 그대로 사건들이 성취될 것을 깨닫지 못했던가? 왜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의 마지막 부분이 첫 부분처럼 확실히 성취될 것이라는 것, 즉 제삼 일에 그분께서 다시 살아나실 것을 깨닫지 못했는가? 이것이 그들이 기억했어야 할 부분이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이것을 잊지 않았다. (승리하시는 그리스도, 295)

 

<611/, 예수님을 보다>

 

예수께서 야곱의 우물에서 쉬기 위하여 앉으셨을 때 그분은 그분의 전도가 거의 열매를 내지 못했던 유다 지방에서 돌아오시던 길이었다. 그는 기진하고 피곤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한 여자, 그나마도 이방인이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외인이요 공공연한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여인에게 말할 기회를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소망, 194)

 

그 여자는 예수님과 이야기할 때 그분의 말씀에 감동을 받았다. 그 여자는 수가의 샘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영혼의 갈증을 깨달았다. 자기가 이제까지 접촉하여 오던 어떤 것도 자기의 필요를 이와 같이 크게 깨닫게 해 준 적이 없었다. 예수께서는 그분이 그 여자의 생애의 비밀을 통찰하셨다는 것을 그녀에게 확신시키셨다. 그럼에도 그 여자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는 친구라고 느꼈다. 예수님 임재의 순결이 그녀의 죄를 정죄했으나 그분은 책망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영혼을 소생시킬 수 있는 그분의 은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다른 사람에게 기별을 전하기 위하여 동네로 돌아갔다. 그녀는 마음에 기쁨이 넘쳐서 자기가 받은 귀한 빛을 남에게 전하기 위하여 길을 재촉하였다.

그 여인은 동네 사람들에게,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말하였다. 그녀의 말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여인의 얼굴에는 새로운 표정이 있었으며 그녀의 전체 용모에 변화가 생겼다. 그들에게 예수님을 보려는 마음이 생겼다. (소망, 191)

 

사마리아 여자는 구주를 발견하자마자 다른 사람들을 그분 앞으로 이끌고 나왔다. 그 여자는 자신이 그분의 제자들보다 더욱 능률적인 선교사임을 증명하였다. 그들의 생각은 장래에 이루어져야 할 큰 사업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 바로 주변에 거두어야 할 영혼의 수확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멸시하던 그 여인을 통하여 온 동네가 구주의 말씀을 들으러 나왔다.

이 여인은 그리스도를 믿는 실천적 믿음의 활동을 대표한다. 모든 참된 제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선교사로서 태어난다. 생수를 마시는 자는 생명의 샘물이 된다. 받는 자는 주는 자가 된다. (소망, 195)

 

<612/, 더 깊은 연구>

 

어떤 시험도 구주를 죄짓게 할 수 없었다” (승리하시는 그리스도, 191).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1:8)

광야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시험들을 이겨 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거기서 타락한 천사인 사단의 미묘한 궤략을 직면하셨다. 원수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했던 것처럼 동일한 방법으로 구세주를 몰아부쳤다. 그는 그리스도의 통치권에 의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시작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그 증거를 대라고 말했다.

사단은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지 잘 알고 있었다. 구주께서 가다라 지방에 가셨을 때 악한 영에 사로잡힌 두 광인이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8:29)라고 소리 지른 것을 보면 그가 잘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둘째 아담의 시험을 통과하셨을 때 변형된 그분을 통해 품성의 아름다움이 빛났다. 사단은 자신이 하늘 궁정에서 함께 교제하셨던 거룩하신 분의 영광과 순결을 그분의 인성을 통하여 볼 수 있었다. 그가 그리스도를 보았을 때 그의 마음에는 그 당시 자신의 모습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졌다. 당시에 그에겐 아름다움과 성결함이 있었다. 자아를 높이는 정신이 그를 그리스도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기를 쓰게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에 실패했다. 이제 그가 연약해 진 인성의 모습을 가진 그리스도께 자신이 고안한 생각을 관철시킬 수 있었을까?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아버지께 대한 충성을 한 치만 양보하게 할 수 있다면 온 세상을 자신의 손 안에 휘어잡고 오로지 그의 변화된 영적 속성을 가진 그만이 다스릴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을 쥐고 흔들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사단이 이기려고 하는 대상은 하늘의 주님이셨으며, 시험하는 그의 온갖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사단은 자신이 승리를 쟁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무서운 증오가 마음속에 부글부글 끓었다.

이제 사단은 그리스도를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그분께 그분 자신의 몸을 던지라고 말했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그분이 함부로 속단하는 망상의 죄를 범하게 하려 했다. 그는 그분께 천사들이 하는 일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어떤 시험도 그리스도께서 시험하는 자의 도전을 받아들이시게 할 수는 없었다.

원수는 그리스도를 자기가 좋아하는 곳에 데리고 갈 권한이 있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다음에 그가 그분을 아주 높은 산으로 데려가서 온 세상 왕국들과 그 속에 있는 영광을 그분 앞에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때 인성을 통해 신성이 번쩍였고, 타락한 천사들은 그분이 사단아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 앞에서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님을 보았다.

하늘 궁정의 사령관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의 호위를 받는 데 익숙하셨다. 그분이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에 언제라도 그분은 아버지께 열두 사단 천사의 병력을 요청할 수 있으셨다. 그러나 아무 뇌물도, 아무 시험도 그분이 신성의 특권을 드러내도록 유도하지 못했으며, 그분을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길로부터 이탈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효력 있는 믿음” (하늘에, 10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8:46)

포도나무와 가지의 연결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기만적이며 겉으로만 그러하다.

그리스도를 에워싼 무리는 진정한 믿음으로 그분과 산 결합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세월 큰 고통 가운데 있었고 재산을 다 의원들에게 사용했으나 낫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된 한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만일 그분께 가까이 갈 수만 있다면, 옷자락만 만질 수 있다면 낫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녀의 마음속 모든 것을 아셨고, 그녀가 원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곳에 자신을 두셨다. 그분은 그 행동을 통해 그분을 에워싸며 밀치는 자들의 무심한 접촉과 진정한 믿음의 손길을 구별하고자 하셨다.

그 여인이 손을 내밀어 옷자락을 만졌을 때, 그녀는 이 몰래 한 손길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손길을 알아보시고 그녀의 믿음에 응답하여 그분의 치유의 능력을 베푸셨다. 그녀는 즉시 자신이 나음을 입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는 그러한 믿음을 지나치지 않으셨다. 그분은 곧 몸을 돌이키며 말씀하셨다,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모든 제자가 그분 주위에 바짝 붙어 있었고, 베드로가 말했다, “무리가 밀어뜨리며 미나이다 그런데도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내게 손을 대었도다 나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아노라”(8:45~46).

그 여인은 자신이 숨겨지지 않았음을 보고 떨며 그분 발 아래 엎드려 모든 사정을 말했다. 그녀는 12년 동안 병들어 있었지만, 손가락이 그분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나음을 입었다.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8:48). 믿음의 단순한 손길이 그 보상을 받았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생생하게 연결해 주는 믿음은 우리 편에서 최고의 우선순위, 완전한 신뢰, 전적인 헌신을 나타낸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진정한 순종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그리스도와의 생명의 연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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