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기 11과 교과토의 핵심통찰 by CT Park.
제목: 시련(Setbacks)
기억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3-5) “And not only that, but we also glory in tribulations, knowing that tribulation produces perseverance; and perseverance, character; and character, hope. Now hope does not disappoint, because the love of God has been poured out in our hearts by the Holy Spirit who was given to us” (Romans 5:3–5, NKJV).
(서론)2026년 2기 전체 주제는 *하나님과 함께 자라가는 삶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함(Growing in a Relationship With God)”입니다. 이번 기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체된 것이 아니라 '성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11과에서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무거운 질문을 다룹니다. “내가 기도를 열심히 하고, 신실하게 살아가는데도 왜 내 삶에 폭풍이 몰아치고 영적인 침체가 찾아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성경 속 인물들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진정한 음성을 듣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맥짚기> 시련이 그대의 믿음을 약화시키나요? 아니면 더욱 강하게 합니까? 시련과 고난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약화시킵니까? 아니면 더욱 성장시킵니까?
이번 기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하고(하나님을 앎, 겸손, 말씀, 기도, 믿음), 그 관계를 유지하며(회개와 용서), 마침내 그 관계를 세상에 나누는(12과 선교, 13과 영원) 일련의 영적 성장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11과 “시련(Setbacks)”은 믿음과 회개를 통과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인생의 폭풍'과 '영적 내리막길'을 조명합니다. 영적 성장은 늘 직선으로만 우상향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뒤로 물러서거나 가라앉는 듯한 '시련의 순간'을 통과하며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이번 과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 성경적·역사적·신학적 문맥 >이번 과의 성경적 배경은 갈릴리 바다의 폭풍 속에서 잠을 청하셨던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야기(마가복음 4장),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의 절박함(마가복음 5장), 이유를 알 수 없는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낸 욥의 고백(욥기),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낙담하여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의 이야기(누가복음 24장)를 관통합니다. 신학적으로 이는 '신정론(의인의 고난 문제)'과 '하나님의 부재(Absence of God) 감정의 경험’을 다룹니다. 우리 인생의 운전대를 잡으신 듯한 주님께서 결정적인 순간에 침묵하시거나 주무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가 가져야 할 참된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악과 해악으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을 확신을 가지고 기대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시고 복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민 6: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땅의 삶에서 여전히 병들고 불의와 압제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우리만의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성경은 고통받으며 도움을 부르짖었던 하나님의 신실한 남녀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편은 악에서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경건한 자들의 간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 71:4, 시 97:10). 특별히 욥기는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줍니다. 욥은 경건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모든 신실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환난과 슬픔을 겪었습니다. 욥은 자신이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고뇌 속에서 그는 거대한 불의처럼 보이는 상황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욥의 사례는 우리의 주목을 끌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욥은 행복과 고통이라는 극과 극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이 험난한 갈등의 경계선 안에서 욥은 소망하는 법을 배웁니다.
(질문) 이번주 교과를 공부하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믿음과 두려움의 갈림길
치유받은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야이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인간적인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혔을지 모릅니다. (주님, 제 딸이 지금 당장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여인과의 대화는 돌아오는 길에 하셔도 되지 않습니까?) 바로 그때, 야이로에게 절망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의 딸이 방금 죽었다는 전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예수님을 더 번거롭게 해 드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상황이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야이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 두려움은 믿음의 파괴자입니다.
* 야이로는 방금 전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하신 말씀, 즉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온전케 하였다)"라는 선언을 똑똑히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도 동일한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소녀의 방에 들어가셔서 그녀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그들은 즉시 반응합니다!
소녀는 즉시 일어나 걸었고 온전히 나음을 입었습니다. 이는 육체적 치유뿐만 아니라 영적인 생명력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리십니다 (골 2:13).
*우리는 삶의 가시와 폭풍, 그리고 야이로처럼 "너무 늦었다"고 여겨지는 절망적인 시련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아시고 몸소 체휼하시며 온전한 치료와 부활의 소망을 선물하십니다. 두려움을 물리치고, 오직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음으로 바라봅시다.
<<2>> 은혜의 경험 (The Experience of Grace)
욥기는 욥의 위대한 덕망에 대한 강조로 시작합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한" 자였습니다 (욥 1:1). 또한 욥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로 여겨졌습니다 (욥 1:3). 하나님께서도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세상에 없느니라" (욥 1:8)고 말씀하시며 그의 독보적이고 독특한 신앙을 증거하셨습니다. 욥에 대한 모든 평가에 따르면 그는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기서의 마지막에 욥은 하나님께 응답하며, 자신이 "완전하다"고 평가받던 시절의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지 초보적인 단계에 불과했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욥 42:5). 그리고 욥은 고통을 경험한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5)라고 덧붙입니다. 이처럼 욥은 처음에 자신이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게 가로막았던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성경 본문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특히 "까닭 없이(“for nothing) 또는 “값없이(for free)”를 뜻하는 히브리어 '키남(kḥinam, “아무 이유 없이”)'이라는 단어의 반복적 사용이 이 질문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키남'이라는 단어는 사탄이 욥의 경건함을 칭찬하시는 하나님께 대답하는 질문 형식으로 욥기에 처음 등장합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키남]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욥 1:9). 사탄의 논리는 하나님께서 욥을 지나치게 과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사탄은 하나님께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그의 소유물에 손을 대어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욥 1:11). 사탄은 그렇게 하면 욥이 틀림없이 죄를 지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모든 소유를 사탄의 파괴적인 권세 아래 두도록 허락하십니다.
스바 사람들의 습격, 하늘에서 내린 불, 그리고 거센 바람이 그의 소유를 휩쓸어 갔습니다 (욥 1:13-19). 파멸의 여파 속에서 욥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비록 욥은 슬퍼했지만, 죄를 짓지는 않았습니다 (욥 1:22).
하나님은 사탄이 참소할때에 욥의 주위에 울타리를 두르셨다고 비난하며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단어 '키남'을 사용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키남] 그를 치게 하였어도" (욥 2:3)라고 하십니다. 욥은 나중에 자신의 상처에 대해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키남' (까닭 없이) 상처를 더하신다고 불평할 때 이 단어를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욥 9:17).
은혜를 뜻하는 ‘헨(khen; Grace)'에서 유래한 '키남'이라는 단어는 욥의 운명을 특징짓는 중요한 핵심 단어입니다. 한편으로 욥은 "까닭 없이"(키남) 고통을 받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욥은 이기적인 동기와 번영에 대한 갈망 때문에 하나님을 섬긴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사탄의 이러한 참소는 욥의 친구들의 의심 속에서도 그대로 메아리칩니다 (욥 34:9, 욥 35:3). 사실 욥 자신도 자신의 선행을 열거하고 (욥 29:12-17, 욥 31:1) 그에 대한 보상을 기대한다고 선언할 때 이러한 사상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욥 29:18).
그러나 욥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결여되었던 것은 바로 '은혜의 경험'이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선물을 깨닫기 위해 아무런 대가나 유익을 바랄 수 없는 "까닭 없는"(값없는; for free, 키남) 고통의 터널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3>>. 고통의 문제 (The Problem of Suffering)
욥기는 인류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원인 제공자가 바로 사탄임을 강조합니다 (욥 1:12). 하나님은 친히 사탄이 욥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십니다 (욥 2:6).
엘렌 G. 화잇 역시 욥의 고통에 대해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 명확히 밝힙니다. "욥의 역사는, 고통은 사단에 의해 가해지며 자비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역이용됨을 보여 주었다.”(시대의 소망 471.3, DA 471.3) ). 예수님께서도 고통의 원인을 원수에게로 돌리십니다 (마 13:28). 그렇다면 하나님이 자신의 고통에 책임이 있다고 암시하는 욥의 주장은 틀린 것일까요?
욥기는 책 전체에 걸쳐 하나님을 자신의 압제 (욥 10:3)와 자신을 꺾어뜨리신 (욥 16:12) 책임자로 묘사합니다. 욥은 심지어 "그가 아니면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냐?" (욥 9:24)라고 변론합니다. 그러나 욥기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은 창조의 역사들을 열거하심으로 욥의 주장에 응답하십니다 (욥 38, 39장). 자신이 파괴자라는 욥의 주장에 대해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주'이심을 밝히시며 변호하십니다. 따라서 욥이 고통의 근원에 하나님을 두었을 때, 그는 사실 인류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이 오직 한 분 하나님, 하나의 권세에만 있다는 유일신 사상적 확신을 표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 사상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신 32:39). 이 역설이 바로 욥이 가진 신앙의 본질이자 깊이를 형성합니다.
욥의 유명한 고백처럼,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리라" (욥 13:15, NKJV 직역). 히브리적 신앙인은 인생의 악한 상황과 처지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의 실재를 알고 신뢰하기 때문에, 좋은 것뿐만 아니라 나쁜 것도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며 하나님이 모든일을 주관하신다는 확신을 가집니다 (잠 16:4, 창 50:20, 롬 8:28).
<<4>>. 부활의 소망 (The Vision of Resurrection)
욥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무덤으로 내려가 마땅한 악인으로 몰아세우는 빌닷 (욥 18장)에게 욥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욥 19:25).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in my flesh) 하나님을 보리라" (욥 19:26). 이 두 구절에서 욥은 세상 종말에 살아 계신 "나의 대속자"가 "마지막에 땅 위에 서실 때" 일어날 자신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확언합니다 (욥 19:25). 이처럼 욥은 고통받는 육체 안에서 다음과 같은 소망의 역설을 이끌어냅니다.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in)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욥 19:26 개역). “And though after my skin worms destroy this body, yet in my flesh shall I see God:”(KJV)
이 구절에서 욥은 현재 삶에서 일어나는 실존적 경험이나 죽음 이후 영혼의 불멸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사건은 "땅"과 관련된 우주적 사건이자, 먼 미래 ‘후일에,마침내’—마지막 날을 의미하는 '아하론(acharon)’, 즉 '마지막 날'에 일어날 종말론적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다름 아닌 죽은 자들의 부활이며, 그때에 그는 자신의 "육체" (욥 19:26)를 입고 자기 눈으로 직접 하나님(그의 대속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욥 19:27).
빌닷의 마지막 말 (욥 18:21)을 반어적으로 받아치며, 욥은 엄숙한 경고로 말을 맺습니다. "너희가 심판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욥 19:29). 이처럼 욥의 부활 소망은 다니엘서(단 12:1-3)에서와 같이 심판의 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부활하던 날 마르다의 마음에 이 소망을 상기시키셨고 (요 11:23), 바울은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이 복된 소망을 전파했습니다 (고전 15:12-19). 이 소망은 성경의 마지막 기별이기도 합니다. 즉, 상처 입은 세상과 우리 개인의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해결책은 하나님께서 재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이며, 그곳에는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계 21:1, 4).
<< 5>> 욥의 생애와 종말론적 예표의 평행 (19가지-Job-Prophetic Parallels)
욥의 고난과 승리의 생애는 개인의 역사에 머물지 않고, 마지막 시대 대쟁투의 혹독한 시련을 뚫고 승리할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의 경험을 미리 보여주는 거울이자 놀라운 예언적 모형(Prophetic Parallels)입니다.
번호 욥의 생애와 경험 (Job) 마지막 때 남은 백성과 그리스도의 표상 (Prophetic Parallels)
1.욥(Job)의 이름의 영적 의미.
욥(Job)의 이름의 히브리어뜻은 "미움받는 자"입니다. (Strong's #H347) 마지막 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든 나라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마 24:9)
2.욥의 흠 없는 완전함.
욥은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perfect) 자였습니다. (욥 1:1) 대쟁투의 끝에 하나님의 비밀이 마쳐질 때 나타날 마지막 남은 백성들의 거룩함을 표상합니다. (계 10:7)
3.겸손한 자기 인식.
욥은 온전하다고 칭함을 받았으나 결코 스스로 완전하다고 자랑하지 않았습니다.겸손. (욥 9:20) 주님 앞에 무릎 꿇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철저히 인식한 선지자들과 같습니다. (단 10:8)
4.강력한 기도의 용사.
욥은 날마다 제단을 쌓고 자녀들과 이웃을 위해 늘 기도하는 중보자였습니다. (욥 1:5) 하루 세 번 목숨을 걸고 기도했던 기도의 용사를 표상합니다. (단 6장)
5.지상 유일의 하나님의 대리자.
욥은 당대 지구상에서 하나님을 참되게 대변하는 유일한 증인이었습니다. (욥 1:7, 8)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마지막 시대의 남은 무리 예표입니다. (계 14:12; 17:1)
6.마귀의 집요한 참소.
욥은 사탄에게 끊임없이 참소(Accused)를 당했습니다. (욥 1:9-11) 우리 형제들을 밤낮으로 참소하던 자인 사탄의 공격을 받는 성도들 예표입니다. (계 12:10)
7.하나님의 품성을 옹호하도록 선택됨.
욥은 하나님의 품성을 온 세상과 우주 앞에 옹호하도록 택함받은 자였습니다. (욥 1:12) 어린양과 함께 서서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입은 진실한 자들입니다. (계 17:14)
8.경제적 안전망의 완전한 박탈.
욥은 재산을 몰수당해 경제적 안전망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욥 1:14-17) 짐승의 표로 매매 권리를 박탈당하는 마지막 경제적 금령의 시련을 통과할 성도들의 경제적 시련을 예표합니다. (계 13:16, 17)
9.사탄이 유발한 자연재해의 타격.
욥의 삶은 사탄이 내리친 ‘자연재해(하늘의 불과 바람)’로 타격을 입었습니다. 마지막 때 사탄이 이적을 가장하여 도처에 일으킬 무서운 재난을 예표합니다. (눅 21:11)
10.바벨론 세력들의 조직적인 삼각 공격.
욥은 갈대아인(바빌론 군대)의 세 갈래의 공격을 당했습니다. (욥 1:17) 마지막 때 세 개구리 같은 더러운 영(용, 짐승, 거짓 선지자)의 삼각동맹의 연합 공격을 시사합니다. (계 16:13, 19)
11.생명의 가차 없는 위협
사탄은 욥의 뼈와 살을 쳐서 그의 생명 자체를 죽음의 위협 앞에 놓았습니다. (욥 2:3, 4)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죽이게 하는 사형령 예표입니다. (계 13:15)
12.예수의 믿음을 굳게 지킴
욥은 모든 것을 빼앗긴 극한의 상황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주님의 통치권에 굴복하는 순전한 신뢰를 지켰습니다. 욥은 끝까지 ‘예수 믿음(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굳게 붙잡아야 했습니다. (욥 1:21, 22) 환난 날에 성도들이 지녀야 할 예수의 믿음의 실제적 모델입니다. (계 14:12)
13.혼돈으로부터 건짐받은 아내
욥의 아내는 영적인 시험과 깊은 혼란(Confusion) 속에서 믿음을 저버릴 위기에 처했으나 결국 돌이켰습니다.(욥 2:10) 바벨론의 무서운 죄악의 혼란에서 빠져나오라는 하나님의 호소입니다. (계 18:1-4)
14.가장 가까운 친구들의 가혹한 정죄
가장 위로해 주어야 할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가장 아픈 원수가 되었습니다. (욥 13:4; 16:2) 마지막 날에 형제와 가족들이 서로를 넘겨주고 배신할 것에 대한 예표입니다. (마 24:10-12)
15.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깊은 깨달음
욥은 혹독한 변론과 고난의 끝에, 자신의 공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과 믿음으로 얻는 의를 깊이 깨닫고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았습니다
(욥 40:4, 5; 42:4, 5) 세 천사의 기별의 본질인 영원한 복음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성취입니다. (계 14:6-12)
16.바다와 땅의 괴수로부터의 구원
하나님께서는 욥을 땅의 짐승인 '베헤못(Behemoth)'과 바다의 리워야단(Leviathan, 용)의 지배력에서 완전히 해방시키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을 이기고 승리할 자들 예표입니다. (계 15:2-4)
17.영감받은 전령의 조력
욥의 눈을 열어주기 위해 하나님의 영을 소유한 엘리후가 젊은 기별자로 보내져 참된 진리를 증언해주었습니다. (욥 32:8) 마지막 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언(예언의 신)을 가진 교회입니다. (계 12:17; 19:10)
18.하나님의 웅장한 영광을 목도함
욥은 시련의 끝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찬란한 계시를 목도했습니다. (욥 38-42장). 폭풍우 한가운데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광을 마주한 욥은 눈으로 주를 뵈옵는 무상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종말의 날에 부활하시고 하늘 지성소에 계신 영광스러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계 1:10-18)
19.상실했던 모든 것의 온전한 회복
시련을 믿음으로 통과한 욥에게는 이전의 모든 소유와 영광이 갑절로 회복되었습니다. (욥 42:11-17)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아담이 잃어버렸던 에덴의 모든 복과 기업을 상실 없이 회복할 것입니다. (계 21:1-5)
<<6 >> 예수님을 보라.(See Jesus)
Q 여러분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보고싶습니까?
* 단순히 이론이나 신학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장막이 걷힌 그분의 영광스러운 임재 속에서 실제로 보기를 원하십니까?
*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반드시 그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1) 예수님을 보리라는 약속 (The Promise of Seeing Jesus)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확실한 소망을 보증해 줍니다.
* 주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입니다.
* 주 안에서 죽은 자들과 살아남은 신실한 자들이 구름 속으로 끌려 올려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 이것은 부활의 소망에 굳건히 기초를 둔 장래의 확실한 약속입니다.
(2) 마음의 상태 (The Condition of the Heart)
마태복음 5:8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약속을 더해 줍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경험은 단순히 종말론적인 사건(세상 끝에 일어날 일)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관계적'인 사건이며, 우리의 마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3) 여정의 길목에서 만나는 예수님 (Seeing Jesus Along the Way)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21에서 이 약속을 더욱 확장하십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여기서 "나타내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원어 '엠파니조'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 나타나게 하다 (to cause to appear)
* 분명하게 보이게 하다 (to make plainly seen)
* 공공연히 드러내다 (to reveal openly)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미래에 보게 될 시각적인 재림뿐만 아니라, 오늘날 현재의 삶 속에서도 친히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4) 길 위에서 아들을 맞이하시는 아버지 (Meeting the Father on the Road)
이 기별은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집 문 앞에 가만히 서서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 아버지는 멀리서 아들을 보고 달려가 맞이했습니다.
* 두 사람의 감격적인 만남은 아들이 미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길 위에서 먼저 일어났습니다.
*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믿음의 여정이 다 끝나기도 전에,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의 길목으로 몸소 찾아오셔서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5) 환난 중에 즉시 만나 도우시는 하나님 (God’s Nearness in Trouble)
시편 46:1은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하나님은 세상 종말이 올 때까지 저 멀리 숨어 계시거나 침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지금, 바로 이 순간 우리 곁에 현존(Present)하십니다.
(6)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방법
예수님께서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오늘도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통해
* 천사들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나 섭리적인 보호를 통해
* 이웃이 베푸는 따뜻한 친절과 사랑을 통해
* 삶 속에서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은혜의 경험을 통해
* 때로는 그분의 무한한 지혜와 우리의 극심한 필요에 따라, 보다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선명하게 드러내시기도 합니다.
(7)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헌신의 간증 (A Testimony of Divine Nearness)
교과 교재는 엘렌 G. 화잇이 경험했던 한 꿈(계시)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은 영적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가장 깊은 필요와 절망에 처해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찾아오십니다.
* 주님의 임재는 우리 마음에 변치 않는 확신과 용기, 그리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 우리를 만나 주시는 주님의 방법은 각 사람마다 다를지라도, 그분의 약속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신실합니다.
(소결론) 영원한 보증 (Final Assurance)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세상 끝 날에 단 한 번 일어날 먼 미래의 사건으로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 우리는 마침내 그날에 그분을 온전히 대면하여 볼 것입니다.
* 그리고 그분의 풍성한 은혜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매 순간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저 멀리서 기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오늘,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우리를 향해 그 길 위로 직접 걸어오시는 분이십니다.
<<7>> 요일별 교과 Key Points:
이번 주 교과에서는 우리 생애에 찾아오는 "시련(역경)"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미칠 수 있는 영향과, 이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어떤 영적 결과를 가져오는지 살펴봅니다.
①그리스도인들은 '시련(역경)'을 예상해야 합니다 (일요일-금요일)
② 시련은 품성 형성의 일꾼(하청업자)입니다 (화요일, 수요일)
③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최종적인 통제권을 쥐고 계십니다 (목요일)
① 그리스도인들은 '시련(역경)'을 예상해야 합니다 (일요일-금요일)
(Christians should expect ’setbacks.)
* 성경의 선언: 성경은 이 세상의 삶 속에서 누구나 예외 없이 고난과 환난을 겪게 될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마 5:45; 전 9:11; 요 16:33; 행 14:22).
* 물질적 번영주의의 경고: 오늘날 기독교계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최선의 것을 주시기 원하시므로, 우리를 물질적으로 번성하게 하시고 모든 고통과 시련으로부터 언제나 건져주실 것"이라는 가르침이 널리 퍼져 가고 있습니다 (요 10:10; 고후 8:9; 시 37:4; 요 14:14 및 요일 5:14 참고).
* 외견상의 모순(이분법): 이러한 번영주의적 교리와 현실의 고난이라는 극명한 모순은 시련 한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깊은 혼란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막 4:38 참고).
"예수님은 폭풍이 올 것을 아셨지만 그래도 가자고 하셨다. 예수님은 가장 가까운 제자들에게 중요한 인생의 교훈을 가르쳐 주고자 하셨다." (교과 일요일 교재, 2단락)
* 지체되는 구원의 예들: 이번 주 교과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시는 길에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치시느라 지체하시는 예수님의 사건을 조명합니다 (막 5:21-43). 또한 친구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비보를 접하고도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기로" 자처하신 예수님의 지체하심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요 11:6).
* 바울의 육체의 가시: 사도 바울 역시 고통스러운 질병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매달렸으나, 그 고통을 거두어 가시는 대신 이를 견디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고후 12:9)
* 질문: 왜 이 모든 믿음의 영웅들의 생애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간절히 바라고 예상했던 즉각적인 구원과 건지심을 베풀지 않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② 시련은 품성 형성의 일꾼(하청업자)입니다 (화요일, 수요일)
(Trials are God’s character subcontractors)
하나님께서는 왜 시련을 허락하시는지의 영적인 목적과 이유를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시련이 우리를 영원한 하늘 본향에 적합한 존재로 준비시키기 위한 강력한 도구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 야고보의 권면: 야고보 선지자가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권면한 이유는, 그 시련이 결국 우리 안에 빚어내는 고결한 품성(인내와 온전함) 때문입니다 (야 1:2-4 참고).
* 일시적인 환난과 영원한 영광: 바울은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잠시 동안의 가벼운 환난이 결국 지극히 크고 영원한 품성(영광의 중한것)을 우리 안에 이루어 가고 있다는 사실로 우리를 격려합니다 (고후 4:16-18).
* 예수님의 모본: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인성을 쓰신 가운데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습니다 (히 5:8).
"우리는 고난 속에서 우리의 소유가 될 수 있는 축복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은혜를 놓쳐 버린다. 우리의 모든 고난과 슬픔, 모든 유혹과 시련, 모든 슬픔과 애통, 모든 박해와 결핍, 한마디로 우리의 생애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연합하여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일한다. ... 모든 경험과 형편은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일꾼들이다. 구름 뒤에 숨겨진 밝은 빛을 바라보자." (My life Today 185.4, ML 185)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천국이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일터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들은 거룩한 하늘의 흠없는 천사들과 연합하기 위해서 준비되고 있다." (교회증언 2권, 187, 2T 187)
③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최종적인 통제권을 쥐고 계십니다 (목요일)
(God always had ultimate control)
* 욥이 보여주는 역설: 인류 역사상 "고난"의 가장 혹독한 대명사인 욥의 이야기는, 정작 고난을 받는 당사자인 욥은 하늘의 대쟁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시련을 허락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욥 1, 2장)
* 고통의 배후와 주권: 사탄이 욥의 시련을 일으킨 실질적인 장본인으로 명확히 묘사되어 있는 반면 (욥 1:12; 2:6), 욥은 일관되게 하나님을 그 고난의 책임자로 인식하며 (욥 10:3; 16:12), 심지어 "그가 아니면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냐?" (욥 9:24)라고 선언하기까지 합니다.
* 욥의 유일신적 신앙의 확신: > "욥이 고난의 근원을 하나님께 돌릴 때, 그는 실제로 인류에게 일어나는 모든 실존적 사건에 최종적인 책임을 지시는 단 한 분의 하나님, 즉 유일한 권세만이 존재한다는 웅장한 유일신적 확신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 이 믿음의 역설이 바로 욥이 가진 신앙의 본질과 독보적인 격조를 대변한다." (교과 교사용 주석 영문, 147쪽)
* 시련 속에서도 욥이 붙잡은 세 가지 확신: 욥은 개인적인 극심한 파멸과 시련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1.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의 최종적인 통제권을 쥐고 계신다.
2. 그의 이 뼈아픈 개인적 고난의 경험이 결국 그를 정금같이 하늘에 적합한 존재로 빚어가고 있다.
3. 시련과 눈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머지않아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서게 될 것이다 (욥 23:8-12).
* 변치 않으시는 사랑: "우리는 여전히 고통과 고난으로 가득한 죄악된 세상에 살고 있으며 우리 각자는 삶의 어느 시점에선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드는 어려움을 직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삶의 역경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돌아볼 때 그런 시련 속에서 우리가 보이는 대응이, 변하지 않으시고(말 3:6) 그 사랑이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동행을 더욱 굳건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교과 금요일 교재, 마지막 단락)
▣ 결론 (Conclusion)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7, 18).
바울의 눈은 항상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영원한 것에 고착되어 있었다. 그가 초자연적 능력을 대적하여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며 이로써 그는 힘을 얻었다. 영혼의 힘과 활력을 얻고 마음과 성품에 미치는 세상의 힘을 깨뜨리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말미암는다. “ (사도행적 363.1, AA 363.1)
<한줄요약>: 시련은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이며, 역경은 믿음을 단련하는 과정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주권을 가지시며, 우리의 고난을 통해 영원한 목적을 이루신다.
<<8>>핵심사항 6가지 정리
(1) 인생의 폭풍 속에서 주무시는 예수님 (마가복음 4:35~41)
* 내용: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베테랑 어부들이었으나, 자신들의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폭풍을 만났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배 고물(stern)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고물은 배의 방향타가 있는 곳으로, 인간적인 눈으로 보기에 예수님은 배의 키를 잡으셔야 할 자리에서 '졸고 계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위기의 순간 제자들은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며 주님의 품성과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 "의혹과 공포가 그들을 엄습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을 버리셨는가? 질병과 사귀와 사망까지도 정복하셨던 그분께서 이제 당신의 제자들을 구하실 힘이 없으시단 말인가? 비탄 가운데 있는 그들을 왜 돌아보지 않으시는가?” (시대의 소망 334.4, DA 334.4)
(2) 자아의 무력함을 깨닫는 순간의 믿음
* 내용: 제자들은 폭풍을 만났을 때 처음에는 자신들의 오랜 항해 기술과 힘을 의지하여 배를 구하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노력이 완전히 실패하고 절망의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영적 침체와 시련은 우리의 인간적인 자아가 깨어지고 오직 주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만드는 통로가 됩니다.
* "자신을 구원하려고 노력하는 데 열중한 그들은 예수께서 선상(船上)에 계신 것을 잊어버렸다. 저희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죽음만이 앞에 놓인 것을 깨닫자 저들은 누구의 명령으로 바다를 횡단하기 위하여 출발하였던가를 기억하였다.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님에게 있었다." (The Desire of Ages, p. 334)
(3) 절망 속에서 드리는 믿음의 만짐 (마가복음 5:25~34)
* 내용: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으며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의사들에게 괴로움을 당했던 여인은 사회적, 영적, 신체적으로 완벽한 '침체(Setback)' 상태에 있었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 밀고 다녔지만, 오직 이 여인의 '절망적이고도 전적인 믿음의 손길'만이 예수님께로부터 능력을 이끌어내어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시련은 주님을 단순히 밀치는 군중이 아니라, 그분의 옷자락을 붙잡는 참된 예배자로 우리를 바꿉니다
* “그분께서는 당신의 옷을 만지는 행위만으로도 치유하는 능력이 나온다고 주장하는 미신이 생겨날 기회를 허용하지 않으셨다. 치료가 이루어진 것은 그분과의 외적인 접촉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그분의 거룩하신 능력을 붙잡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시대의 소망 344.3, DA 344.3)
* “그리스도에 관하여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어야 한다.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유일한 믿음은 곧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것, 곧 그리스도의 공로를 우리들 자신의 것으로 삼는 믿음이다. … 진정한 믿음은 생명이다.“ (시대의 소망 347.1, DA 347.1)
* “It is not enough to believe about Christ; we must believe in Him. The only faith that will benefit us is that which embraces Him as a personal Saviour; which appropriates His merits to ourselves. Many hold faith as an opinion. Saving faith is a transaction by which those who receive Christ join themselves in covenant relation with God. Genuine faith is life.” (The Desire of Ages 347.1,)
(4) "왜(Why)"가 아닌 "누구(Who)"를 바라보는 욥의 신앙 (욥기 19:23~27, 23:8~12)
* 내용: 욥은 자녀와 재산, 건강을 모두 잃는 최악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자신이 왜 이런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Why)'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끝내 그 고난의 배후에 있던 사탄과의 대쟁투를 설명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이 동쪽과 서쪽, 남쪽과 북쪽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품성의 침묵 속에서도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고백하며, 고난의 원인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존재(Who)' 그 자체를 신뢰했습니다.
* “욥은 실망과 낙담의 깊은 구덩이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하시는 능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높은 경지로 올라갔다. 그는 의기양양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비록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지하리니...그는 역시 나의 구원이 되리라” (영문 KJV).( (선지자와 왕 163.6, PK 163.6)
* “희망과 용기는 하나님의 사업을 이루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이것들은 믿음의 열매이다. 낙담은 죄요 옳지 않은 행위이다. “. (선지자와 왕 164.3, PK 164.3)
(5) 낙심 속에서 찾아오시는 주님 (누가복음 24:13~27)
* 내용: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소망을 잃고 슬픈 빛을 띠며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영적 대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곁에 오셨으나 낙심과 슬픔의 수건이 눈을 가려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감정을 먼저 책망하지 않으시고, 모세와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성경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예언했는지를 풀어주심으로 그들의 차디찬 마음을 다시 뜨겁게 녹이셨습니다.
* “예수께서는 그들을(엠마오로 가는 두제자) 위로하실 마음이 간절하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슬픔을 아셨으며 그런 굴욕을 자청해서 받으신 분이 과연 그리스도이실까 하는 생각 때문에 저희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투쟁과 혼란한 생각들을 이해하고 계셨다. 그들은 슬픔을 억제할 수 없어서 울었다. 예수께서는 저희 마음이 당신의 마음과 사랑으로 묶여진 것을 알고 저희 눈물을 씻어 주며 그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가득 채워 주고자 하셨다. (시대의 소망 795.2, DA 795.2)
*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누가복음 24:16)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 가까이에 계십니다.
우리는 시련의 골짜기를 지날 때, 예수님께서 곁에서 함께 걷고 계신다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립니다.
(6) 환난이 만들어내는 소망의 영적 연쇄 반응 (로마서 5:3~5)
* 내용: 사도 바울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인격/성품)을, 연단은 마침내 부끄럽지 않은 하늘 소망을 이뤄내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찾아오는 시련과 역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는 증거가 아니라,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폭포수처럼 부어주시는 영적 용광로입니다.
* “이와 같은 일들이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시련과 장애는 주님께서 택하신 훈련의 방법이며, 또한 그분께서 정하신 성공의 조건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성품을 그들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잘 아신다.” (치료봉사 471.1, MH 471.1)
* "시련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우리 성품에서 거친 모서리들을 제거하고 다듬기 위해 주어지는 영적 연단이다."
<<9>> 교훈요약 및 적용
(1)내 삶의 '방향타'를 주님께 온전히 맡기십시오: 인생의 거친 풍랑이 일 때, 내가 가진 경험이나 물질, 인간적인 지혜의 노를 저으려다 절망하지 말고, 처음부터 주님께 부르짖으며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십시오.
(2”)왜?”라는 질문에 막힐 때 "누구인가"를 묵상하십시오: 인생의 고난에 대해 명쾌한 이유(Why)를 찾을 수 없을 때,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고 신실하게 영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Who)의 성품을 바라보며 잠잠히 신뢰하십시오.
(3)낙심의 자리에서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십시오: 영적 침체가 찾아와 기도가 막히고 영안이 어두워질 때, 엠마오 제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던 성경의 약속들을 다시 펴고 읽으며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찾으십시오.
(4)시련을 성품 변화의 기회로 환영하십시오: 현재 겪고 있는 고통과 영적 내리막길을 실패로 규정하지 말고, 순금과 같은 성품을 빚어내기 위해 나를 다듬어 가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인큐베이터로 받아들이십시오.
<시련을 통과하는 있는분들에게 전하는 세 가지 격려>
첫째, 시련이 하나님의 버려두심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 제자들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순간에도 예수님은 그들 곁에서 묵묵히 걸으셨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시련 속에서도 변함없이 함께 걸어가십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8)
둘째, 우리의 인간적인 혼란이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무산시키지 못합니다.
* 제자들은 상황을 완전히 오해하고 낙심했으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분의 구원 계획을 묵묵히 성취하고 계셨습니다.
셋째, 우리의 연약함은 끝이 아니라 더 깊은 신뢰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는 막연한 이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에 충분한 실제적인 공급입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예레미야 애가 3:22, 23)
*엠마오로 가던 길의 제자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참된 믿음이란 결코 질문이나 아픔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마음이 무거울지라도 묵묵히 그 길을 계속 걸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고 불안해질 때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아픈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계십니다. 지금 지나고 있는 이 눈물의 골짜기가 당신 인생의 마지막 장이 아닙니다. 제자들의 가장 큰 절망을 영광스러운 부활의 소망으로 바꾸신 하나님께서, 오늘 당신의 삶 속에서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구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계십니다. 그분과 함께 걸으십시오.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10>> 묵상
만약 당신이 지금 힘겨운 시련과 역경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하나님께로 달려가십시오. 성경책과 공책 한 권을 들고, 인공적인 소음에서 벗어나 깊은 자연 속으로 나가 하나님과 단둘이 마주 앉으십시오.
그리고 조용히 로마서 5장 3~5절의 말씀을 정성껏 적어 내려가며 이 구절 속에 담긴 은혜의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깊이 명상해 보십시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세심한 돌보심이야말로, 이 요동치는 세상에서 당신의 발을 굳게 붙잡아 줄 가장 확실하고 요지부동한 생애의 닻임을 가슴 깊이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의 고통스러운 장은 결코 마지막이 아닙니다.
<<11>> 교사를 위한 질문제언들:
1. 욥처럼 아무런 명백한 이유 없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할수 있을까요?
2. 병들거나 아픈 사람들의 경건함과 종교적 헌신을 의심하는사람들에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3. 반원들에게 다음 질문에 답하도록 하십시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드린 치유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 하더라도, 여러분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유지되겠습니까?"
4.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고통(질병, 시험 낙방 등)에 대해 여러분은 하나님께 감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함께 토의해 보십시오.
5.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가 그들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탓하십니까? 설명해 보십시오.
6. 여러분이 겪은 실패가 당연한 대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논리로 반박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기대하는 대로 모든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이며, 신실한 자들의 삶에는 늘 성공만 따를 것"이라는 대중적인 생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7. 왜 하나님의 우주적인 '새 창조'의 역사만이 우리 개인의 문제와 상처 입은 세상의 모든 고통을 해결할 유일한 해답일까요?
< 실천 활동 (Activities)>
* 활동 1: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의 장례식에서 낭독할 설교문이나 추모사를 작성해 보십시오. 그리고 유가족에게 위로차 보내 보십시오.
* 활동 2: 고통스러운 시간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던 개인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십시오. 인생의 좋은 일뿐만 아니라 나쁜 일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 활동 3: 병원에 있는 아픈 친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환자를 방문해 보십시오. 그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하시겠습니까?
<적용질문>
[이해를 위한 질문] 갈릴리 바다의 폭풍 속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원망 섞인 질문을 던졌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도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보다 그분의 '사랑과 품성'을 의심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눔을 위한 질문] 욥처럼 인생에서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이유 없는 고난이나 영적인 침체(Setback)를 경험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때 여러분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가"라는 질문에서 어떻게 벗어나 하나님을 계속 신뢰할 수 있었는지 개인의 경험을 나누어 봅시다.
[적용을 위한 질문] 현재 낙심하여 영적으로 엠마오로 내려가는 것처럼 마음이 무겁고 식어버린 구도자나 이웃이 내 주변에 있습니까? 그들의 눈을 열어주기 위해 이번 주에 우리가 예수님처럼 다가가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위로와 격려의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감동 나눔 질문]: 오늘 배운 내용 중 나의 신앙생활에 가장 큰 힘이 되었던 한 문장이나 구절을 공유하고, 그 이유를 나누며 마칩니다.
샬롬!
인생의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한 배에 타고 계시다는 사실보다 더 큰 위로는 없습니다. 이번 교과 토의를 통해 성도님들의 상한 마음이 치유되고, 어떤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순금 같은 믿음이 고백되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교사 여러분의 뜨거운 헌신을 응원합니다!
—끝—
(오늘도 긴글 끝까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어요^^ 하나님께서 복 주실 거에요^^ 꼭 먼저 교과를 공부하시고 참고용으로 보세요.
-기도의 동산, 말씀의 동산, 영성회복의 동산에서, 재림연수원 교수, 박정택(CT. Park) 드림-)
**바쁘신분들을 위하여 위의 긴 주해를 A4한장 요약본으로 해서 첨부합니다.^^
[A4 한 장 요약] 제11과 시련 (Setbacks)
2026년 2기 교과토의 핵심 통찰 / 작성자: CT Park
<기억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로마서 5:3-5)
1. 개요 (문맥)
<대주제와의 연결>: 2026년 2기 주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함'입니다. 영적 성장은 정체되거나 늘 직선으로만 우상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뒤로 물러서거나 가라앉는 듯한 '시련의 순간'을 통과하며 오히려 믿음이 더 단단해집니다.
<11과의 신학적 핵심>: 본과는 "내가 신실하게 살아가는데도 왜 인생에 풍랑이 불어닥치고 영적 침체가 찾아오는가?"라는 신정론(의인의 고난 문제)과 '하나님의 부재(Absence) 경험'이라는 무거운 실존적 질문에 답합니다.
<성경적 배경>: 갈릴리 폭풍 속에서 주무시던 예수님(막 4장), 야이로의 딸과 12년 혈루증 여인(막 5장), 까닭 없는 고난을 통과한 욥(욥기), 낙심하여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눅 24장)의 절망과 회복의 역사를 관통합니다.
2. 핵심 통찰 및 키포인트 (Core Insights)
① 달리다굼의 믿음과 장벽 (마가복음 5장)
*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딸의 사망 소식에 절망한 야이로에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파괴자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소녀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을 외치심으로 육체적·영적 생명력을 즉각 회복시키셨습니다.
② 까닭 없는 고난(Kḥinam)과 값없는 은혜(Khen) (욥기)
* 욥의 영적 터닝포인트: 욥은 온전하고 정직한 자였으나(욥 1:1), 고난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귀로 듣던 초보적 신앙"에서 "눈으로 주를 뵈옵는 은혜의 신앙"으로 도약했습니다(욥 42:5).
* 키남(kḥinam, 까닭 없이/값없이): 사탄은 욥이 "어찌 까닭 없이(키남)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 1:9)라며 번영을 바란 이기적 신앙이라고 참소했습니다. 욥은 "까닭 없는"(키남)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는 대가 없는 신뢰를 증명해 냄으로써, 마침내 하나님의 "값없는"(키남) 거저 주시는 은혜(Khen)의 본질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③ 유일신적 주권과 고난의 배후 (욥기)
* 고난의 배후: 고통을 주는 실질적 원수이자 참소자는 사탄입니다(욥 1:12; 2:6). 그러나 욥은 고난의 근원을 하나님의 손에 둠으로써, 우주에 오직 단 한 분의 주권자만이 모든 일을 통제하신다는 위대한 유일신적 확신("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리라", 욥 13:15)을 표명했습니다.
④ 부활의 소망과 마지막 날(Acharon) (욥 19:25-27)
* 육체 밖(in my flesh)에서 주를 보리라: 욥은 사후 영혼불멸이 아니라, 세상 종말의 날인 '아하론(acharon, 마지막 날)'에 대속자가 땅 위에 서실 때 입게 될 실제적인 '육체의 부활'을 선언했습니다. 이 소망은 심판의 날 및 "새 하늘과 새 땅"의 재창조(계 21:1-4)와 직결됩니다.
⑤ 길 위에서 먼저 찾아오시는 예수님 (요 14:21, 눅 15장)
* 엠파니조(Emphanizo):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친히 "나타내시겠다"(엠파니조: 분명히 보이게 하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길 위로 달려 나와 아들을 맞이한 것처럼,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신 주님은 우리의 믿음의 여정이 끝나기 전, 오늘 겪는 시련의 길목에 먼저 찾아오십니다.
⑥ 욥의 생애와 종말론적 예언의 평행선 (19가지 대비)
* 욥은 '미움받는 자(Job)'라는 이름의 뜻처럼 미움을 당하고(마 24:9), 온전함(계 10:7)을 표상하며, 사탄의 참소(계 12:10)와 경제적 박탈(계 13:16-17), 자연재해(눅 21:11), 바벨론(갈대아인)의 삼각 공격(계 16:13,19)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믿음(계 14:12)으로 인내하며 두 짐승(베헤못과 리워야단)에게서 건짐을 받았고(계 15:2-4), 갑절의 회복(계 21:1-5)을 얻는 과정은 마지막사건 및 남은자손들의 경험과 평행을 이룹니다 .
⑦ 요일별 교과 Key Points
* 일~금요일: 그리스도인은 시련을 예상해야 합니다. 기복적인 번영주의는 허구입니다.
* 화~수요일: 시련은 품성을 하늘 성전에 어울리게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일꾼(하청업자)입니다.
* 목요일: 사탄이 흔들어도, 최종 통제권과 주권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습니다.
3. 실천을 위한 적용 (Application)
① 인생의 키를 주님께 양도하십시오: 풍랑 속에서 나의 인간적인 어업 기술(자아)을 의지하려다 절망하지 말고, 배 고물에서 주무시는 듯한 주님께 즉시 방향타를 맡기십시오.
② "왜(Why)" 대신 "누구(Who)"를 묵상하십시오: 시련의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을 때, 고난의 원인 분석에 빠지기보다 변치 않고 신실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품성 그 자체를 바라보십시오.
③ 말씀을 펴고 엠마오의 뜨거움을 회복하십시오: 슬픈 빛을 띠고 영적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낙심의 감정에 갇히지 말고 성경의 약속들을 깊이 연구하며 마음을 다시 뜨겁게 녹이십시오.
④ 시련을 품성의 연단 기회로 삼으십시오: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을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내 품성의 거친 모서리들을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적 작업장(Workshop)으로 기쁘게 수용하십시오.
4. 토의를 위한 질문 (Discussion)
* Q1 (사랑과 주권): 갈릴리 풍랑 속에서 제자들이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원망했던 것처럼, 우리도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보다 그분의 '사랑과 품성'을 불신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Q2 (고난의 태도): 욥의 친구들처럼 타인의 고난과 실패를 보고 "인과응보"나 "믿음 부족"의 잣대로 정죄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고난당하는 이들을 향해 어떤 그리스도인적 시선을 가져야 할까요?
* Q3 (부활과 소망): 욥이 뼈와 살이 썩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부활의 날(마지막 날)"에 육체로 주를 뵈리라는 확신을 가졌던 것처럼, 성경이 약속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오늘 내가 겪는 현실의 고통을 이기게 하는 실제적인 해답이 되는지 나누어 봅시다.
* Q4 (실천 적용): 현재 낙심하여 영적인 침체(Setback)를 겪으며 엠마오로 가듯 걸어가는 내 주변의 구도자나 이웃은 누구입니까? 그들을 따뜻하게 동행하며 눈을 열어주기 위해 이번 주에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5. 결론 (Conclusion)
성도에게 찾아오는 일시적인 시련의 경한 것은 장차 임할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 안에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입니다. 사도 바울이 초자연적인 대적들의 공격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힘의 비결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에 시선을 고정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을 믿음으로 굳게 바라볼 때, 이 세상이 우리 마음에 미치는 부정적인 권세는 완전히 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인생의 배가 아무리 흔들려도, 최종 통제권을 쥐신 주님께서 우리와 한 배에 타고 계십니다. 신실하신 주님의 약속 위에서 안식하며 끝까지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