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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말씀묵상

예언의 신 인용구들 제12과 그분을 전하라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6.13|조회수39 목록 댓글 1

# 안식일학교 장년교과 보충교재(예언의 신 인용구들)

 

내 생애가 언제 끝나든 상관없이, 내 저술들은 끊임없이 말할 것이며, 그것들의 역할은 세월이 지속되는 한 계속될 것이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말씀들은 계속 살아서 백성들에게 말할 것이다.”(편지 371, 1907)

 

(1) 이 자료는 대총회 안교부가 매기마다 안교 장년교과와 함께 매일의 공부 내용과 연결하여 새로운 통찰력과 신선한 관점을 얻도록 돕기 위해 관련 예언의 신 구절들을 모은 보충교재(Ellen G. White Notes for the Sabbath School Lessons)를 한글판으로 바꾼 것입니다. (한글번역본이 없는 경우는 게시자가 번역함)

(2) [활용방법] 매일의 교과를 공부한 후, 그날에 해당하는 부분을 연결하여 묵상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2026년 제2하나님과 함께 자라가는 삶>

예언의 신 인용구들 12과 그분을 전하라

 

<613/, 서론>

 

참된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사단의 올무에서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시험의 광야에서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것과 같은 경험을 할 것이다. 그들은 모든 의의 원수로부터 세찬 공격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기셨듯이 그들 또한 그분의 은혜로 이길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진 시험들을 받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셨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시험을 받아도 요지부동한 상태를 유지한다면 사단은 그들을 떠날 것이며 천사들이 그리스도께 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수종을 들 것이다. 시험받는 영혼이 인내심을 갖고 참았을 때, 그리고 사단이 패배당해 쫓겨갔을 때 그리스도인이 만끽하는 것에 필적할 만한 위로는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기록된 바와 같이"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예수님을 증거했고, 이로써 사탄의 모든 공격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들을 평가 절하하지 말자. 왜냐하면 그들은 모진 시험을 받고 있으며, 파도가 그들의 머리를 막 덮치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시험받는 모든 자를 도우실 수 있도록 모든 일에 우리와 똑 같이 모든 면에서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개인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 우리의 언행은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긴다. 자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사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고,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는 우리의 영향력이 선악 간에 일종의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원기를 북돋우는 빛이거나 멸망시키는 폭풍 중의 하나다.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듯이 서로 사랑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되려면 마음의 모든 능력과 행동은 그 목적, 즉 최대의 선을 행하는 것에 투입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영혼의 귀한 선물을 간직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힘 있게 전할 수 있게 된다면, 선물 주신 분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그것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연결 고리이며 그리스도의 영과 하늘의 속성들을 드러낸다. 보이긴 하지만 자랑하지 않는 성결의 능력은 가장 능력이 있는 설교보다 더욱 웅변적으로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 말해주며, 단순한 말로는 할 수 없는 훨씬 더 강력한 힘으로 남녀 모두에게 그들의 의무를 깨닫게 해준다. (승리하시는 그리스도, 210)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우리가 아는 바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전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한 계단 한 계단씩 예수님을 따른다면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를 인도하신 길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적절한 요점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약속을 어떻게 시험하였으며 그 약속이 얼마나 확실한지 알게 되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관하여 아는 바를 증거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주께서 요구하시는 증거인데, 이런 증거의 부족으로 세상은 멸망해 가고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모든 일에 처음과 나중과 최선으로 삼을 것이다. 야망에 불타는 어떤 동기도 하나님께 대한 그의 사랑을 식힐 수 없을 것이며, 그는 견실하고 끈기 있게 그의 하늘 아버지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에 충실할 때 우리의 충동은 하나님의 감독 아래 있게 되고 우리는 영적·지적 능력을 계발할 수 있게 된다.

거룩하신 주님 예수께서는 항상 그분의 하늘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셨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6:9)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다. 그리고 그들은 영광이 아버지의 것”(6:13)임을 인정하기를 잊지 말아야 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105)

 

<614/, 넘치는 것에서>

 

요셉을 통하여 성경의 종교가 애굽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이 충성된 증인은 왕의 궁정에서 그리스도를 대표해야 했다.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젊은 시절에 교통하셨고 그가 맡게 될 높은 지위에 대한 암시를 주셨다. 요셉의 형제들은 그의 꿈의 성취를 막기 위해 그를 노예로 팔았으나, 그들의 잔인한 행위는 오히려 그 꿈이 예언한 바로 그 일을 현실로 만들게 되었다.

하나님의 목적을 거스르고 그분의 뜻을 반대하는 자들은 잠시 번영하는 듯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일하시며, 그분은 하늘과 땅의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드러내실 것이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 간 일을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큰 재난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보호받을 때는 결코 해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함을 깨달았다. 요셉은 하나님을 애굽으로 모셔 왔고, 그의 슬픔 가운데서도 밝은 태도를 지님으로써 그 사실을 드러냈다. 하나님의 법궤가 이스라엘에 안식과 번영을 가져왔듯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이 젊은이도 애굽에 복을 가져왔다. 이것은 매우 분명하게 나타나서, 그가 섬기던 보디발은 모든 축복을 그가 산 노예인 요셉 덕분이라 여기며, 그를 노예가 아니라 아들처럼 대했다. 하나님의 뜻은 그분의 이름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들도 또한 존경을 받게 하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 드려진 영광이 그들 자신에게도 비치게 하는 것이다.

요셉의 품성은 그가 신임받는 지위로 높여졌을 때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선한 행실을 통해 자신의 덕이 뚜렷이 빛날 수 있는 곳으로 인도되었다. 집 안에서도 밭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이 그에게 함께했다. 보디발의 집안의 모든 책임이 요셉에게 맡겨졌다. 이 모든 일에서 그는 흔들림 없는 정직성을 나타냈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했기 때문이다. (너희가 권능을 받고, 256)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생애를 살면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을 향하여 사랑하는 제자가 행한 것과 동일한 판단을 내릴 권리를 가졌다. 초기 교회의 번영을 위협한 것들과 비슷한 죄악이 이 마지막 시대에도 존재한다. 이 점에 대한 사도 요한의 가르침은 주의 깊이 유의되어야 한다. “너희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라는 부르짖음은 특별히 성화되었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부르짖고 있는 외침이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너무나 순결하여 자복하지 않은 죄를 덮을 수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을 사랑해야 하지만 죄악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반역자들과 연합하면서 이것을 사랑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이 영혼을 멸망시키는 오류들을 반대한 것처럼 이 시대의 그분의 백성에게 의를 위하여 확고부동하게 서라고 요구하신다. 구주의 생애와 죽음에 관한 그의 증언은 명백하고 힘이 있었다. 구주께 대한 사랑으로 넘치는 충만한 마음으로 그는 말했다. 그러므로 어떠한 권세도 그의 말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를 나타냄, 66)

 

<615/, 강요가 아닌 능력으로>

 

그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군중 앞에 나아가 자기들이 아무 해도 받지 않았음을 보여 주었다. 구주의 임재가 그들을 보호해서 해를 받지 않도록 해 주었고 그들을 채운 족쇄만이 불타 없어져 버렸다.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더라.”

사람들은 그처럼 장엄하게 세운 커다란 금 신상을 잊어버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었다. 겸손해진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경험은 느부갓네살이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 터를 삼으라는 조서를 내리게 하였다. 이 조서를 내리는 이유로서 그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라고 확인하였다.

이같이 조서와 말로써 바벨론 왕은 히브리인의 하나님 능력과 권세야말로 최고의 숭배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자기의 확신을 세상 만민에게 널리 알리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분께 경의를 나타내고 충성하겠다는 군주의 고백을 바벨론 온 영토에 널리 알리려고 하는 왕의 노력을 보고 기뻐하셨다.

왕이 공중 앞에서 자복하고 다른 모든 신 위에 하늘의 하나님을 높이려고 노력한 것은 옳은 일이었으나 그의 신하들에게 동일한 신앙 고백을 강요하고 동일한 경외심을 나타내도록 강요함으로써 느부갓네살은 세상 군주로서 자신의 권리를 남용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할 수 있는 세속적 혹은 도덕적 권리가 느부갓네살에게 없음은 그가 금 우상에게 절하기를 거절한 자들을 모두 불 속에 던져 넣으라는 명령을 내릴 권리가 없는 것과 같았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인간의 순종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저희가 섬길 자를 택하도록 놔두신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충실한 종들을 구원하심으로 압박당하는 자들 편에 서시고 하늘의 권위를 배반하는 모든 지상의 권세를 꾸짖으신다는 사실을 선언하셨다. 세 히브리인은 바벨론 전국에 저희가 섬기는 하나님께 대한 저들의 신앙을 선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그들은 시련의 때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43:2)라는 허락을 기억하였다. 살아 있는 말씀에 대한 그들의 신앙은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경이로운 방법으로 높임을 받았다. 그들이 놀라운 방법으로 구원받았다는 소식이 낙성식에 초청받았던 여러 나라의 대표자로 말미암아 각 나라에 전달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의 충성을 통하여 온 세상에서 영광을 받으셨다. (선지, 509-512)

 

<616/, 예수님을 전하는 방법>

 

이제 인류에게는 한 가지 희망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 불화와 타락의 덩어리 속에 새 누룩을 넣는 것, 다시 말해 새 생명의 힘을 회복시켜 세상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다시 가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식을 다시 가지게 하기 위해 오셨다. 그분은 하나님을 아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그릇된 교훈에 빠져 있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오셨다. , 그분의 율법의 성격을 밝힘과 동시에 그분의 품성을 통해 성결의 아름다움을 나타내 보이려고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축적해 두셨던 영원한 사랑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율법을 곡해하도록 만든 모든 부당한 요구를 일소하면서 그 율법이 사랑의 율법, 곧 하나님 은혜의 표현임을 강조하셨다. 그분은 이 율법의 원칙들을 순종할 때 인류는 행복을 누리게 되고, 동시에 그 사회도 안정을 가져오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율법은 독단적인 요구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것은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와 방벽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 율법의 원칙을 받아들이는 자는 누구나 악으로부터 보호받는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에는 사람에 대한 충성심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하여 율법은 모든 인생의 권리와 개성을 지켜준다. 그것은 위에 있는 자가 압제하거나 아래에 있는 자가 불복종할 때 이를 방지한다. 그것은 현세에서는 물론 내세에서도 사람의 행복을 보증한다. 율법은 그것을 순종하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장한다. 왜냐하면, 대개 그것은 영원히 존속될 원칙들을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한 원칙이 사람의 마음을 개심시키는 데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 줌으로써 그 가치를 실제로 증거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분은 또한 이 원칙들을 전개하고 적용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오셨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사물의 가치가 그 외관으로 결정되었다. 종교의 내면적인 힘이 쇠하여짐에 따라 그 외면적인 허식이 성하게 되었다. 그 시대의 교육자들은 과장과 허세로 존경을 받으려고 노력하였다. 예수님의 일생은 이 모든 것들과 매우 현저한 대조를 보였다. 그분의 일생은 사람들이 소위 인생의 요긴한 일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를 실증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환경에서 탄생하여 시골 생활을 하셨다. 한 사람의 장인(匠人)으로 세상의 이름 없는 근로자들처럼 미천한 생애를 사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과 환경 가운데서도 그분께서는 하늘의 교육 계획을 따르셨다. 작은 일을 과장하고 큰 일을 경시하는 당시의 학교를 예수님은 찾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자료들을 통해 교육받으셨다. 유용한 일, 성경 공부, 천연계, 인생 경험, 다시 말해 스스로 손을 내밀고 눈을 떠서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충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교과서들을 통해 직접 배우신 것이다. (교육, 76-77)

 

<617/, 방황하는 자녀>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22:42). 그분은 그대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분이신가? 그대의 믿음은 구속주이신 그분 안에 그 중심을 두고 있는가? 그대는 그분이 그대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그대에게 그분의 의를 전가하신다는 것을 믿는가?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남녀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3:19). 그들은 그들의 행위가 책망 받을까 두려워서 빛으로 오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입장을 취해 왔다. 그들의 이름은 교회 녹명책에 등재되어 있다. 그들은 쳇바퀴처럼 되풀이 되는 의식들을 준수하지만, 그 진리는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문 앞에 서 있는 데 만족해 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면전으로 밀치고 들어가서, 왕 같은 그분의 영광을 그분과 함께 누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의 품성은 그 진리와 조화되지 않았다. 그들은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순결케 하는 그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 험담, 악한 추측, 부정직한 행동들은 그들의 길을 가로질러 어두운 그림자를 던진다. 그들의 믿음은 수치의 그림자 속에 엄몰 되며,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분리되었다고 느낀다. 양심에 찔림이 있고 생애 속에 정죄가 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피하여 숨고 싶은 갈망을 느낀다. 빛이 세상에 왔건만 그들은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이익이 되는 때가 이르러 왔다. 그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그분은 내가 나의 법을그들의 마음에 기록하리라”(31:33)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성결의 거룩한 원리를 창조하신다. 그것은 영혼 안에서 다스리면서 이해력을 밝게 하고 애정을 사로잡을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 28~30)] 이 얼마나 놀라운 초청인가! 세상이 홍수로 말미암아 멸망당하기 전, 그분께서는 에녹에게 이 초청을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이신 것처럼 에녹의 구세주이기도 하셨으며, 그 타락한 시대의 부패함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능력 안에서 에녹은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온전히 갖추게 되었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8:12)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음성은 에녹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시며, 그가 구세주를 따르면 무지의 어둠 속에서 걷지 않을 것이라고 그에게 확신시켜 주셨다.

주님께서는 에녹을 가르치셨고 그를 그분의 파수꾼으로 삼으셨다. 그는 하나님을 위한 신실한 증인이었다. 그는 옛 세상의 주민들에게 가인을 숭배하는 자들의 본을 따르지 말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라고 경고했다. (승리하시는 그리스도, 52)

 

<618/, 그들을 돌아오게 하리니>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파하는 일에 협력하는 천사는 그 영광으로 온 세상을 환하게 한다. 전 세계적 범위의 사업이 비상한 능력으로 성취될 것이 여기에 예언되어 있다. 1840년부터 1844년까지의 재림운동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영광스럽게 나타났다. 첫째 천사의 기별은 세계의 모든 선교지에서 증거되었다. 그리고 어떤 나라들에서는 16세기 종교 개혁 이후 어떤 곳에서 있었던 것보다 가장 큰 종교적 각성이 일어났다. 그러나 셋째 천사의 마지막 경고 아래 이루어질 큰 운동은 그것보다 훨씬 더 뛰어날 것이다.

그 운동은 오순절의 운동과 유사할 것이다. 복음 사업의 시초에 귀중한 씨앗의 발아를 위해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이른 비를 주신 것처럼 그 사업의 종말에는 늦은 비를 주셔서 추수할 곡식을 무르익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6: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2:23).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17, 21).

위대한 복음의 사업은 그 시초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능력 못지않은 큰 능력이 나타남으로 마치게 될 것이다. 복음 사업의 시초에 이른 비가 내림으로 성취된 예언들은 그 사업의 종말에 늦은 비가 내림으로 다시 성취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도 베드로가 기대했던 유쾌하게 되는 날”(3:19)이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3:20).

하나님의 종들은 거룩한 헌신으로 빛나고 얼굴에 밝은 표정을 짓고, 하늘에서 온 기별을 선포하기 위해 이곳에서 저곳으로 분주히 왕래할 것이다. 온 세상은 무수한 음성으로 경고를 받을 것이다. 이적들이 일어나고, 병자들이 고침을 받게 될 것이며, 표적과 기사들이 믿는 사람들에게 따를 것이다. 사단도 또한 거짓 기사들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의 눈앞에서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게 할 것이다(13:13 참조). 그리하여 세상의 거민은 그들의 입장을 분명히 취하게 될 것이다.

기별은 변론으로 전해지기보다 하나님 성령의 깊은 감동으로 전해질 것이다. 변론으로는 벌써 제시되었다. 씨앗은 이미 뿌려졌으므로 이제는 그것이 자라나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선교인들에 의해 전달된 인쇄물들은 감화력을 발휘해 왔다. 그러나 감동을 받은 많은 사람이 진리를 충분히 이해하거나 순종하는 일에 장애를 받아 왔다. 이제는 밝은 광선이 각 곳으로 뚫고 들어가서 진리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정직한 자녀들은 그들을 결박하고 있던 줄을 끊어 버리게 된다. 이제는 혈연관계, 교회 관계가 그들을 붙들어 둘 수 없을 정도로 무력해진다. 진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더욱 귀중하다. 여러 기관이 진리를 대적하기 위해 결속했을지라도 많은 사람이 주님 편에 서게 된다. (쟁투, 611-612)

 

<619/, 더 깊은 연구>

 

그리스도께서 슬픔을 통해 우리를 높이심” (그리스도를 나타냄, 364).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5:17-19).

우리 중에는 환난을 당할 때 야곱과 같이 할 자가 얼마나 될까! 우리는 그것을 원수의 손으로 생각하고 어두움 속에서 힘이 다할 때까지 무모하게 싸우지만, 아무런 위로나 구원을 발견하지 못한다. 새벽에 천사에게 일격을 맞은 야곱은 지금껏 싸우던 자가 언약의 천사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속절없이 울면서 그의 영혼이 갈망하던 축복을 받기 위하여 무한한 사랑을 지니신 분의 품에 안겼다. 우리도 시련이 유익이 됨을 배우며, 주님의 징계를 경시하지 말고, 하나님께 책망받을 때 낙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 못할 슬픔과 아프고 상한 마음으로 짓눌려 있도록 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눈을 들어 그분의 자애스러운 모습을 바라보게 하신다. 거룩하신 구주께서는 눈물로 앞이 가려서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많은 사람 곁에 계신다. 그분은 우리의 손을 꽉 붙잡길 원하신다. 또한 우리가 단순한 믿음으로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했으면 하고 원하신다. 그분의 마음은 우리의 슬픔과 비애와 시련을 향하여 열려 있다. 그분은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애로운 손길로 우리를 감싸 주신다. 우리는 마음을 그분께 바치고 온종일 그분의 자애를 명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매일 당하는 슬픔과 어려움에서 벗어나 평화 가운데서 살게 해 주실 것이다.

고통과 슬픔 중에 있는 자녀들이여, 이것을 생각하고 소망 중에 즐거워 하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의 슬픔을 애달파 하고 그 죄를 슬퍼하여 우는 자들 역시 복이 있다. 이 같은 애통에는 자신을 생각하는 일이 전혀 개재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슬픔을 아는 분이시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을 당하신 분이시다. 그분의 마음은 사람들의 죄악 때문에 찢기고 상하셨다. 그분은 인류의 궁핍과 불행을 해결하기 위하여 무아의 열성으로 일하셨다. 그래서 생명을 얻기 위하여 그분께 나오기를 거절하는 무리를 보실 때는 늘 애석함으로 마음이 무거우셨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다 이와 같은 경험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 줄 때, 그들은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는 그분의 수고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장차 나타날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분과 함께 일하고 그분과 함께 슬픔의 잔을 마심으로 그분의 기쁨에도 참여하게 된다.

주께서는 애통하는 자에게 줄 특별한 은혜를 가지고 계시며, 그 은혜의 능력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영혼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나타냄, 363-364)

 

안팎의 위험들” (투쟁, 358).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요일 4:1)

세월이 흘러 신자들의 수효가 증가할 때 요한은 그의 형제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보다 더한 성실과 열성으로 수고하였다. 그 시대는 교회에 위험이 충만하였다. 사단의 기만이 각처에 있었다. 사단의 사자들은 거짓 진술과 기만으로 그리스도의 교훈들에 대하여 반대를 일으키고자 노력하였으며 그 결과로 의견 충돌과 이단들이 교회를 위태롭게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회의주의와 기만의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요한은 이 유해한 오류가 살금살금 교회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슬픔에 가득 찼다. 그는 교회가 직면한 위험을 알고 신속하고 단호하게 그 위기에 대처하였다. 요한의 편지들은 사랑의 정신을 나타낸다. 이 편지들은 마치 그가 사랑에 적셔진 붓으로 기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면서도 저희가 죄 없이 살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자들과 접촉할 때 그는 그들의 무서운 기만에 대하여 그들에게 경고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생애를 살면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을 향하여 사랑하는 제자가 행한 것과 동일한 판단을 내릴 권리를 가졌다. 초대 교회의 번영을 위협한 것들과 비슷한 죄악이 이 마지막 시대에도 존재한다. 이 점에 대한 사도 요한의 가르침은 주의 깊이 유의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을 사랑해야 하지만 죄악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반역자들과 연합하면서 이것을 사랑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이 영혼을 멸망시키는 오류들을 반대한 것처럼 이 시대 그분의 백성에게 의를 위하여 확고부동하게 서라고 요구하신다.

그는 그가 아는 것, 그가 보고 들은 바를 선포하였다. 구주께 대한 사랑으로 넘치는 충만한 마음으로 그는 말했다. 그러므로 어떠한 권세도 그의 말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그와 같이 참된 모든 신자는 자신들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은 참되시다 하여 인칠”(3:33)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하여 그가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증거할 수 있다. (투쟁, 357-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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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종승 | 작성시간 26.06.13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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