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기 12 과 교과토의 핵심통찰 by CT Park.
제목: 그분을 전하라.(Share Him)
기억절: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사 50:4).‘The Lord God has given Me the tongue of the learned, that I should know how to speak a word in season to him who is weary. He awakens Me morning by morning, He awakens My ear to hear as the learned’ ” (Isaiah 50:4, NKJV).
(서론)2026년 2기 전체 주제는 *하나님과 함께 자라가는 삶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함(Growing in a Relationship With God)”입니다. 이번 기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체된 것이 아니라 '성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성장은 모든 생명체가 그러한 것처럼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의 특성이다.”
어떻게 성장 중에 있는지요? 이제 한 주를 남겨놓고 있는데 2기를 시작하던때보다는 더 성장했을까요?
<맥짚기> 우리는 앞선 과들을 통해 우리의 영적 실상을 점검하고, 성경과 기도, 믿음, 율법과 복음, 그리고 회개와 용서를 거쳐 시련의 영적 침체(Setbacks)를 극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번 제12과 ‘그분을 전함(Share Him / Sharing Jesus)’은 이렇게 하나님과 깊어진 수직적 관계가 어떻게 수평적인 선교와 증거의 삶으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주는 결론적 위치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는 내면에만 머무를 수 없으며, 반드시 타인에게 그분을 전하는 동력으로 흘러넘치게 됨을 강조합니다.
<성경적,신학적 문맥>
우리는 지난주 교과를 욥의 구속주에 대한 이상, 즉 "그가 후일에(마침내) 땅 위에 서실 것" (욥 19:25)이라는 고백으로 마쳤습니다. 이번 주에는 이 놀라운 계시를 이 땅의 사람들과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배울 것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 우리는 성경의 매우 중요한 두 구절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첫 번째 본문은 마태복음 28:16–20입니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 그리고 우리에게 '지상 대사명(The Great Commission)'을 위임하십니다.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말씀을 기록한 이 본문은 마태복음 전체의 최고 절정을 이룹니다. 이는 모든 나라에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전파해야 하는 우리의 책임을 일깨워 주는 중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신성한 권세에 기초한 이 사명은 우주적 범위를 지니며,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함께해 주실 것을 보증합니다 (마태복음 28:20).
두 번째 본문은 베드로전서 3:8~18, 21, 22입니다. 여기서 사도는 우리에게 개인의 품성을 형성하는 일에 힘쓰라고 촉구합니다. 또한 그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일하며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이를 통해 세상에 복음의 기쁜 소식을 나눌 영적 준비를 갖추라고 권면합니다. 이 사역은 교회 안의 연합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박해의 시기에 교우들이 시련을 견뎌낼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북돋워 줍니다
(질문) 이번주 교과를 공부하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 1>> 내적 동기와 증거의 태도 (월요일)
(1)전도(증거)의 동기
(2)전도(증거)할 때의 온유함 (강요없이 증거하는 방법)
* *이 두 가지 개념은 '사랑' 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 우리 안에서 타인을 향해 흘러가는 그분의 사랑
(1) 증언(전도)의 진정한 동기들
① 사랑 (Love)
*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요일 4:19).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힘은 이 주님의 선제적인 사랑에서 기인합니다.
* 고린도후서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compels)..."
* 그리스도의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고, 입을 열게 만드는 유일한 구동력(Motivating factor)입니다.
② 동정심 / 민망히 여기심 (Compassion)
* 마태복음 9:35, 36: 예수님은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셨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moved with compassion)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 '불쌍히 여기다'의 헬라어 원어는 '스플랑크니조마이(splagchnizomai)'입니다. 이는 "내장이 요동치다,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다, 깊은 동정을 느끼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총 12회 등장합니다.
* 이는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역사하시는 감정으로, 인간의 온 내면세계가 뒤흔들려 결국 '자비로운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도록 이끄는 강력한 영적 유동성을 의미합니다.
* 이 동사(splagchnizomai)는 복음서에서 거의 예외 없이 오직 예수님의 치유와 회복 사역에만 사용되었습니다. 즉, 동정심(긍휼)은 인간의 처절한 필요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을 연결해 주는 강력한 영적 힌지(Hinge,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 예수님의 선교 패턴: 주님이 보시고(See) ➔ 민망히 여기사 가슴 아파하시고 (Moved with compassion) ➔ 치료와 구원의 행동을 하십니다(Act).
* 원어상 나타난 3가지 예외 (예수님 외에 이 마음을 가졌던 예):
1.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마음 (눅 15:20)
2. 길가에 쓰러진 자를 도운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 (눅 10:33)
3. 귀신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의 절규 (막 9:22) -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 이처럼 참된 동정심은 단순한 '느낌(사랑)'의 영역에서 우리를 이끌어 내어 구체적인 '행동(봉사와 구령 사역)'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③ 경험(생생한 체험) (Experience)
* 사도행전 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 베드로와 요한은 산헤드린 공회 앞에 끌려가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엄한 경고를 받았습니다.
* 그들은 비록 세상적인 학문이 없고 말주변이 투박한 평범한 범인들이었으나, 예수님을 깊이 체험했기 때문에 그 은혜를 도저히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 요한일서 1:1-3: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우리가 들었고, 눈으로 자세히 보았으며, 손으로 만졌다고 사도 요한은 확언합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 들은 바요(Heard): 귀를 기울여 똑똑히 청종함.
* 본 바요(Seen): 눈을 크게 뜨고 경이롭게 뚫어지게 바라봄(to stare with wide open eyes).
* 자세히 보고(Looked): 가까이 다가가 세밀하고 깊이 있게 관찰함.
* 만진 바라(Handled): 손으로 만져 그 실재를 촉각적으로 완전히 검증함.
* 이처럼 전도는 내가 철저히 개인적으로 맛보고 확인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이웃에게 그대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④. 불붙는 마음의 강권 (Compulsion)
* 예레미야 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 이 고백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여섯 번째 독백(Confession)'에 포함된 말씀으로,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깊은 실존적 뇌고를 보여줍니다.
*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기별과 선지자로서의 부르심을 조롱하고 비난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고통스러운 박해에서 벗어나고자 잠잠히 입을 다물고 선교를 멈추려 했습니다.
* 그러나 그의 마음에 타오르는 말씀의 불꽃과 부르심의 무게가 침묵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하나님의 불붙는 말씀을 내면속에만 가두어 두려 할 때, 기별자는 오히려 내적으로 타들어 가고 소멸하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우리는 내면에서 세차게 불타오르는 주님의 강권하시는 말씀 때문에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 2). 부드러운 증언 — 강요 없이 전하는 방법 (Gentleness in Witnessing)
우리는 자칫 영적인 전도 사역을 할 때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기 쉽습니다:
* 의무감이나 정죄함으로 (Obligation)
* 강압적으로 (Force)
* 상대방에게 죄책감, 수치심, 정죄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Guilt / Shame / Condemnation)
*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음으로써 (Nagging)
* 공포감과 두려움을 자극함으로써 (Fear)
그러나 주님이 가르쳐 주신 참된 증언의 태도는 전혀 다릅니다:
① 사랑으로 말하십시오 (Speak with love)
* 에베소서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진리)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 진리를 말하되, 반드시 '사랑의 분위기' 안에서 말해야 합니다. 사랑이 빠진 거친 진리는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곧 참된 진리이십니다 (요 14:6).
② 성령이 지시하시는 때에 말하십시오 (Speak when called)
* 전도서 3:1, 7: 천하 만사가 다 시기가 있고 기한이 있습니다.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 마태복음 28:18-20: 주님께서 부르시고 가라 하실 때 가고, 가르치고,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 마태복음 5:16: 우리의 선한 행실을 통해 세상에 자연스럽게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 사도행전 1:8: 주님은 우리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그분의 '증인(Martys, 마르투스 - 직접 목격한 자)'이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 에베소서 6:19 / 고린도후서 5:20: 우리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도록 부름받은 주님의 '대사(Ambassadors, 외교 전령)'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통해 세상을 향해 간청하시는 것처럼 일해야 합니다.
③ 선택의 기회를 주고 그에 따른 결과를 제시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Speak with choice + consequences)
성경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결코 인간의 자유 의지를 꺾거나 억지로 굴복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선택권을 주시고, 그에 따르는 엄숙한 결과와 함께 당신을 향한 '신뢰(Trust)'를 요구하셨습니다.
* 아담과 하와: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되,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선택권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뱀의 거짓말보다 "하나님이 더 선하시다"는 사실을 온전히 신뢰했어야 했습니다.
* 노아 시대 사람들: 방주 안으로 들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한 번도 내린 적 없는 비와 홍수 예언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한 보호하심을 신뢰해야 했습니다.
* 아브라함: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는 믿음의 여정을 떠날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 앞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품성을 끝까지 신뢰해야 했습니다.
* 에스더: 죽음을 무릅쓰고 규례를 어기며 왕 앞에 나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자기 생명을 주님의 손에 전적으로 의탁하며 신뢰를 보였습니다.
* 엘리야: 갈멜산의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의 비웃음과 고문,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홀로 여호와의 편에 설 것인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 마리아: 처녀의 몸으로 메시아를 잉태하라는 천사의 예언에 순종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참된 음성임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 바울: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있었습니다 (행 9장).
"이 모든 성경의 역사 속에서 '선택'의 본질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귀결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우리는 기꺼이 그분의 길을 선택할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전도라는 것은 결국 '아름답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나누는 것 입니다.
* 여호수아 24:15: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 소요약 및 결론 (Summary)
* 우리가 전도해야 하는 뜨거운 동기:
1. 사랑: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우리 마음을 세차게 흔들기 때문입니다.
2. 불쌍히 여김(동정심): 성령이 주시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긍휼함이 우리를 행동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3. 체험: 내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예수의 은혜를 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4. 강권하심(불붙는 마음): 내 안의 골수에 사무치는 말씀의 불꽃이 침묵을 깨뜨리기 때문입니다.
* 강요 없이 부드럽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
1. 진리를 외치되, 반드시 따뜻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하십시오.
2. 성령께서 입을 열라 하시는 하늘의 시기를 분별하여(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담대하게 증언하십시오.
3. 선택과 결과를 제시하십시오.강요하거나 윽박지르지 말고, 상대방에게 스스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의 기회를 제공하십시오. 선택에는 늘 ‘신뢰’가 따릅니다.
*핵심: 강압이 아니라, 신뢰할 만한 하나님의 성품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을 반사하는 거울일 뿐입니다.
<<2>>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God Gives the Ability) : 화요일
(1)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신다.(이사야 50:4)
"주 여호와께서 ... 내게 주사"
여기서 '주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나탄(nātan)'입니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매우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는데, 주로 "허락하다, 위임하다, 공급하다, 아낌없이 베풀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복음을 나눌 것인지 고민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예언자에게 어떤 능력을 무장시키시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 곤고하고 지친 자들에게 말할 수 있는 능력
* 상대방의 형편에 알맞게 말하는 능력
* 하늘의 완벽한 타이밍에 맞춰 말하는 능력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4장에서 선포하셨던 당신의 사명 선언문, 즉 상처받고 억눌린 자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선언과 아름답게 공명합니다.
(2)예수님을 전하는 다양하고 넓은 범위 (Maximum Latitude)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전도의 능력을 획일화된 공식이 아니라 아주 넓은 폭(Latitude)으로 부여하셨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 우리의 개성(Personality)이 쓰일 자리가 있습니다.
* 우리의 기질(Temperament)이 쓰일 자리가 있습니다.
* 우리 각자에게 주신 다양한 은사(Gifts)가 쓰일 자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세상에 증언하는 일은 단 하나의 정형화된 스타일이나 특정 성격 유형(예: 외향적인 사람)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예화> 교회의 한 여성 성도님은 대형마트 같은 곳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 단순히 이렇게 말하는 타고난 은사가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교회에 가요. 큰 복을 받으실 거예요.”
그것이 그분의 은사였습니다. 반면 다른 이들은 이렇게 느낄지도 모릅니다.
"저는 남들 앞에 나서는 복음전도자 체질이 아니에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계 안에 당신의 사업을 가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종종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어 우리를 확장시키십니다.
<예화>한번은 더그 배첼러(Doug Batchelor) 목사님이 인도하는 전도회 집회 중에 난데없이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모든 음향 기기와 조명이 꺼졌고, 집회 전체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한 청년이 조용히 뒤에서 나와 묵묵히 기계 장치들을 점검하더니 문제를 해결했고, 전력이 복구되어 설교가 무사히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모든 회중은 깊이 깨달았습니다.
"바로 저 청년이 오늘 저녁의 위대한 전도자(Evangelist)다!"
하나님은 복음의 전진을 위해 그 청년의 기술적 재능을 '넓은 영역'의 전도 도구로 역동적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3)믿음의 변호: 증언으로서의 변증
때로 예수님을 전한다는 것은 우리의 소망을 설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격적인 방식이 아니라 신실하고 성실하게 말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3:15-16)
사람들은 이 구절을 흔히 '신앙의 변호(변증)'라고 부르지만, 성경이 말하는 본질은 '신실한 삶의 간증(Testimony)'에 훨씬 가깝습니다.
①싸우지 마십시오 (Don’t Fight)
* 논쟁하고 싸우는 것은 그리스도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 격렬한 논쟁은 상대방(불신자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듭니다.
* 호전적인 태도는 우리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품성을 가려버립니다.
* 우리의 가장 강력한 설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삶 그 자체 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대신 싸워줄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은 스스로 일하며 증명하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②그럼에도 준비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항상 준비하라”는 명령은 다음을 의미합니다.
* 우리는 반드시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해야 합니다.
* 우리는 진리안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날마다 성령으로 거룩하게 유지(성화)해야 합니다.
* 우리가 개인적으로 철저히 경험하여 알지 못하는 것을(은혜) 다른 사람과 나눌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③온유와 두려움으로 하십시오 (Meekness and Fear)
성경은 우리에게 소망의 이유를 말할 때 반드시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권면합니다.
* 온유(Meekness): 방향을 잃은 나약함이 아니라, 철저히 통제되고 다듬어진 영적인 힘을 뜻합니다.
* 두려움(Fear): 상대를 겁주는 위협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경외심과 존중'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직면하는 가장 교활하고 미묘한 영적 위험이 있습니다:
"내가 맞고 진리를 소유했다"는 영적 우월감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칫 이 교만에 빠지면 우리는 영적인 높은 말(High Horse) 위에 올라타 다른 이들을 굽어보며 정죄하기 쉽습니다.
(4)영적 우월감(교만)을 피하는 비결: 바울의 간증
그 해답은 사도행전 26:1~23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권력자인 아그립바 왕 앞에 섰을 때, 교리적인 논쟁이나 공격적인 신학 변론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간증'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 1단계: "나는 과거에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행 26:9-11 - 과거의 연약함과 무지 고백)
* 2단계: "그런데 길 위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행 26:12-13 - 초자연적인 회심 경험)
* 3단계: "그 이후로 내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품성 반사)
간증(Testimony)은 우리의 자아를 낮추고 겸손하게 만듭니다.
①간증이 지닌 힘
여러분의 개인적 간증은:
1)하나님께서 과거에 나를 어디서 건져내셨는지를 스스로 기억하게 합니다.
2)우리의 영혼이 교만과 영적 우월감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방어해 줍니다.
3)이성적인 논리와 거친 신학적 변론으로는 결코 뚫을 수 없는 불신자의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을 엽니다.
간증은 전하는 우리 자신의 영혼을 먼저 성장시키며, 동시에 듣는 이들의 마음에 감동을 자아내어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길을 예비합니다.
②여러분만의 살아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간증을 항상 준비해 두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쥐어주신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고 강력한 사랑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그대에게 세상과의 말싸움에서 이겨 오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그대의 삶 속에서 주님이 행하신 아름답고 선하신 일들을 소박하고 정직하게 나누라고 그대를 은혜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3>> 방황하는 자녀 (A Wandering Child)-수요일
<방황하는 자녀를 둔 부모의 아픔>:
영적으로 든든한 신앙의 가정에서 정성껏 양육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저버리고 세상으로 떠나버린 자녀를 보며 깊은 슬픔과 마음에 사무치는 고통을 겪고 계신 부모님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성경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았던 이스라엘(특히 북방 왕국을 대표하는 에브라임) 역시 이처럼 주님을 등지고 멀리 방황의 길로 떠났습니다.
(1). 에브라임의 죄와 영적 영양실조
“선지자는 에브라임에 대하여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얼룩할지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싫어버렸”다고 증언하였다. “재판의 압제를 당하”고 저희 악한 행위에 대한 비참한 결과를 분별할 수 없어 이스라엘 열 지파는 곧 “열국 가운데 유리하는 자가 되”어야 하였다(호 7:9, 8:3, 5:11, 9:17).” (선지자와 왕 280.1, PK 280.1)
(선지자 호세아는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에서 배도에 앞장섰던 에브라임을 배도한 나라의 상징으로 자주 언급했습니다.)
* 호세아 4:17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 SDA 성경주석 (호세아 4:17): 에브라임은 북방 이스라엘 왕국의 가장 주요한 지파였기에, 이 이름은 종종 북방 왕국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다’라는 이름은 남방 왕국을 가리켰습니다. 북방에서 가장 수효가 많고 강력했던 에브라임 지파에서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배출되었기 때문에, ‘에브라임’은 왕국 전체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2). 호세아 7장이 고발하는 에브라임의 상태
* 호세아 7:1~4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둑질하고 밖으로 떼 지어 노략질하며 내가 모든 악을 기억하였음을 그들이 마음에 생각하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에워싸고 내 얼굴 앞에 있도다 그들이 그 악으로 왕을, 그 거짓말로 지도자들을 기쁘게 하도다 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라 과자 만드는 자에 의해 달궈진 화덕과 같도다 그가 반죽을 뭉침으로 발효되기까지만 불 일으키기를 그칠 뿐이니라”
* 호세아 7:8~9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뒤집지 않은 전병 (A Cake Unturned)의 의미>
SDA 성경주석 (Hosea 7:8): 여기서 ‘전병(Cake)’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우가(ugah)’는 재나 뜨거운 돌 위에 재빨리 구워내는 얇고 둥근 빵을 뜻합니다. 오늘날의 달콤한 케이크와는 다르며 팬케이크에 가깝습니다. 이 전병은 빨리 뒤집어주지 않으면 한쪽은 새까맣게 타버리고 다른 쪽은 익지 않은 축축한 반죽 상태로 남아 결국 망치게 됩니다.
이는 영적인 모순과 변덕스러움을 보여주는 생생한 은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입으로는 여호와를 경배한다고 공언하면서도(한쪽 면), 실제로는 이방인의 우상 숭배에 깊이 관여(다른 쪽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적 잡종이 되어버렸습니다.
* 호세아 7:9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
(3). 통곡하는 라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더 나아가 성경은 에브라임의 할머니 격인 라헬이 에브라임이 주님을 떠난 것 때문에 메타포(은유)적으로 통곡하고 있다고 기록합니다 (렘 31:15).
하나님께서는 라헬의 깊은 슬픔에 대해 예레미야 31장 16, 17절에서 다음과 같은 희망의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
예레미야 31:16~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방황하는 자녀를 두고 눈물 흘리는 라헬에게 하나님은 울음을 그치고 ‘소망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건져내어 다시 약속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4)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호세아 11:3–8)
* 하나님은 에브라임을 팔에 안아 걸음을 가르치고, 사랑의 줄로 이끌며, 먹을 것을 주셨음.
*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시는 마음 (호세아 11: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타오르도다"
* 변론하여 구원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 우리는 주님을 떠나 세상 방황 가운데 유리하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자녀를 바라볼 때 깊은 마음의 고통, 좌절, 피로감을 느끼며 때론 그들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원망 어린 부정적인 말을 내뱉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교과를 통해 우리에게 명백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결코 방황하는 그 아이를 잊지 않았단다!"
* 그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그들을 향해 "창자가 들끓는 듯한(내장이 요동치는) 깊고도 절박한 사랑"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열망하시며, 그분의 긍휼과 용서의 자비는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4>> 방황하는 자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목요일
실제적인 삶의 현실 속에서,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등지고 세상으로 떠나버린 사랑하는 가족이나 자녀를,구도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소통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은 참으로 눈물겹고 고단한 일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복잡한 생각들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 "내가 그때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후회와 죄책감)
* "이제 나랑 전혀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 사람과 대체 무슨 말을 섞어야 할까?" (소통의 장벽과 절망감)
* "저러다 크게 다칠 텐데... 왜 저렇게 계속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며 고집을 피울까?" (좌절감과 무력감)
이러한 인간적인 생각과 감정들은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더 구주 예수님과 단둘이 보내는 골방의 시간 속에서 내 영혼을 먼저 하늘의 은혜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우리의 삶과 입술에서 나가는 권세 있는 기별은 억지로 쥐어짜 내는 잔소리가 아니라, 구주와의 깊은 교제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은혜(Overflow)"의 결과물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가 연약하여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배반할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정죄하는 대신, 그의 믿음이 아주 파선하지 않도록 뒤에서 눈물로 중보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실패를 경험하고 뉘우쳐 돌이켰을 때, 그 아픈 실패의 경험마저도 방황하는 다른 형제들을 단단하게 굳세게 해주는 귀한 사역의 도구로 승화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방황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과 하나님을 떠난 구도자를 둔 성도님들이여, 주님이 여러분의 그 아픈 눈물과 기다림의 세월을 통해 마침내 방황하는 그 영혼을 돌이키시고, 우리 모두를 더 단단한 믿음의 거장으로 세워주실 것을 확신하십시오.
<<5 >> 지상 대사명 (The Great Commission - 마태복음 28:16–18)
예수님의 부활 (마태복음 28:1–7)은 지상 대사명의 직접적인 배경을 형성합니다. 이 문맥 속에서 세 가지 사건이 보고됩니다:
① 경배의 사건: 여인들 (마태복음 28:9)과 뒤이어 열한 제자 (마태복음 28:16, 17)가 예수님을 경배합니다.
② 거짓 보고의 사건: 그리스도의 무덤을 지키던 로마 군인들이 대제사장들을 방문하여 일어난 일을 보고합니다 (마태복음 28:11–15).
③주님의 임재의 사건: 앞선 두 사건이 일어나는 전 과정에 걸쳐 예수님께서 친히 임재하십니다.
이 세 가지 사건은 지상 대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길을 예비하며 그 정당성을 입증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경배하는 모습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마태복음 28:18)를 가지신 주님의 신성한 선언을 예견합니다.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이 대제사장에게 뇌물을 받고 퍼뜨린 거짓 소문은, 구원의 언약이 이스라엘이라는 독점적 수혜 대상에서 벗어나 지구상의 "모든 민족(모든 나라)" (마태복음 28:19)을 향한 '우주적 언약'으로 확장되는 대전환의 계기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여인들과 제자들 곁에 실제로 존재하셨던 예수님의 실제적 임재는, 그분의 교회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20) 하신 약속을 성취할 수 있도록 든든히 무장시킵니다.
(1)예수님의 권세(The Authority of Jesus)
열한 제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자마자 그분께 엎드려 경배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사망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으며 (요한계시록 1:18 참고), 곧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말씀을 소개하는 "말씀하여 이르시되" (마태복음 28:18)라는 히브리적 표현은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반복해서 사용되던 핵심 구절의 대칭적 재현입니다 (출애굽기 6:10; 출애굽기 6:29, 7:8 등과 비교).
예수님의 말씀은 그분의 신분과 "하늘과 땅"에 미치는 신성한 권세에 대한 제자들의 이해를 확증해 줍니다. 그분의 권세의 영역은 피조 세계 전체를 포괄하며, 그분께 창조주로서의 우주적 주권을 부여합니다 (창세기 1:1). 창조의 기사가 완성되는 장면 (창세기 2:1–3)에서처럼, 지상 대사명의 결론부에서도 "모든(All)"이라는 단어가 세 번 반복됩니다 (마태복음 28:18, 19, 20).
* 예수님께 '모든' 권세가 주어졌기에,
* 그분은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에게 가라고 명령하실 수 있으며,
* 그분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권세를 부여하실 수 있습니다.
(2)우주적 언약 (The Universal Covenant)
이러한 논의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사람들을 우리 자신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제자를 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즉, 우리는 목회자나 교사, 전도사로서, 혹은 특정 교회로서 우리 개인의 추종자를 모으거나 파벌을 형성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모든 나라 위에 뛰어나시며 장차 오셔서 자신의 백성을 모으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제자들에게 침례를 베풀어야 합니다.
침례는 새로운 생명으로의 전환을 알리는 영적 신호입니다. 침례 의식은 태초의 혼돈스러운 물속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신성한 창조 행위 자체를 상기시키며, 이를 통해 창세기 첫 장들에 나타난 여호와의 생명 창조 사역을 가리킵니다.
동시에 침례는 인자가 오신 후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의 미래적 창조를 바라보게 하는 예식이기도 합니다. 침례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징이자 영적 거듭남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 (마태복음 28:20) 예수님의 임재가 확실히 보장되어 있음을 선포하는 종말론적 표징입니다.
하늘 구름을 타고 인자로서 재림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먼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신 임마누엘이십니다. 따라서 지상 대사명은 바로 지금, 이곳에 계시는 예수님의 임재에 대한 복된 소망으로 끝을 맺습니다 (마태복음 1:23과 비교).
<< 6 >>복된 소식을 나눌 준비 (Preparation for Sharing the Good News - 베드로전서 3:8–15, 21, 22)
베드로는 이 단락을 "마지막으로(telos)"라는 단어로 시작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교회의 증거를 다루었던 이전 섹션 (베드로전서 2:11–3:7)이 마무리에 이르렀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교회의 선교적 사명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지상 대사명의 텍스트가 우리가 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지(Why)를 다룬다면, 베드로의 편지는 그 선교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를 준비시켜야 하는지(How)에 초점을 맞춥니다. 베드로는 먼저 믿는 자들의 공동체 내부의 관계적 문제를 다룬 후 (베드로전서 3:8, 9), 우리와 영적 목표 및 삶의 가치관을 공유하지 않는 불신자들과의 관계적 도전을 다룹니다 (베드로전서 3:13–17). 베드로는 고난 속에서도 선을 행하며 견뎌낼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을 제시합니다 (베드로전서 3:18).
(1)연합과 사랑을 향한 호소
베드로는 복음 전파를 위한 준비 과정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힘든 부분부터 다룹니다. 그는 "너희가 다" (베드로전서 3:8)라는 표현을 통해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대하는 관계적 방식을 개선하라고 초대합니다. 이를 위해 베드로는 연합과 사랑의 절대적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베드로는 교회 안에 파벌을 만들고 분열을 일으키는 다툼의 해결책이 '형제 사랑'이라고 말하며, 이를 단순한 감상적 감정으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사랑의 정신으로 하나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섯 가지 성품적 형용사로 묘사합니다:
① 마음을 같이하며 (Of one mind): 서로가 영적 조화와 일치를 이루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② 동정(체휼)하며 (Sympathetic): 서로의 필요와 고뇌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고 공감해야 합니다.
③ 형제를 사랑하며 (Love as brothers): 한 가족의 형제자매 사이에 흐르는 끈끈한 친절과 애정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공통의 맥락 안에서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④ 불쌍히 여기며 (Compassionate):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에게 자비를 베풀고 기꺼이 용서하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⑤ 겸손하며 (Humble): 베드로가 제시한 마지막 기준입니다. 겸손은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이는 기꺼이 내 형제자매를 나보다 더 낫게 여기는 마음가짐을 포함합니다.
이어지는 구절들은 이러한 자질들의 실제적인 삶의 적용을 구체화합니다. 사랑의 실천이란 나에게 해를 끼친 형제자매에게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전서 3:9). 오히려 예수님께서 권고하신 대로 복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29).
이 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베드로는 험담이나 모욕을 일삼는 '혀의 치명적인 해악'을 경고한 시편 34편을 인용합니다 (시편 34:13). 베드로는 이러한 말의 해악을 평화를 구하는 자들이 누릴 축복과 극적으로 대비시킵니다 (베드로전서 3:11, 12). 교회 구성원들을 연합시키는 참된 평화(Shalom, 샬롬)는 하나님의 복을 가져올 것이며, 이를 통해 세상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독생자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22, 23).
(2)박해를 견뎌냄
사상의 흐름을 이어가며, 베드로는 신앙 때문에 악한 불신자들의 손에 박해를 당하는 성도들의 상황을 고찰합니다 (베드로전서 3:13, 14). 설령 억울하고 무죄하게 고난을 당할지라도 결코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되는 두 가지 강력한 이유를 제시합니다:
* 첫째, 의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축복이며, 하나님이 당신의 편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 둘째, 고난과 시련의 시간은 도리어 우리가 가진 신앙의 소망을 세상에 강력하게 옹호하고 증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3:15).
베드로는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훨씬 낫다고 선언합니다 (베드로전서 3:17). 이 권면의 밑바탕에 흐르는 도덕적 원칙은 "억압자로서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보다, 차라리 의로운 피해자로서 고난을 겪는 것이 영적으로 승리하는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거룩한 고난의 긍정성을 입증하기 위해 베드로는 불의한 자들을 위해 친히 고난을 당하시고, 그 고난을 통해 불의한 자들에게 구원을 선물하신 '의로우신 분'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베드로전서 3:18). 그 결과 그리스도는 지극히 높아지셔서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7>> 핵심사항 4가지 정리
(1).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사명.
:우리는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바를 전하는 증인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선교는 거창한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삶에 행하신 일을 신실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 성경 구절: 마태복음 28:18~20, 베드로전서 3:15
*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우리가 아는 바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전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한 계단 한 계단씩 예수님을 따른다면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를 인도하신 길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적절한 요점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약속을 어떻게 시험하였으며 그 약속이 얼마나 확실한지 알게 되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관하여 아는 바를 증거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주께서 요구하시는 증거인데, 이런 증거의 부족으로 세상은 멸망해 가고 있다.” (시대의 소망 340.1, DA 340.1)
(2). 아침마다 주시는 하늘의 가르침과 언어의 능력
: 지치고 연약한 영혼들을 말로 돕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하나님의 교훈을 경청하는 ‘학자의 귀’와 ‘학자의 혀’가 필요합니다.
* 성경 구절: 이사야 50:4 , 베드로전서 3:15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나누어주시기 위하여 항상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 14:24),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마 20:28) 함이라고 하셨다. 그가 사시고, 생각하시고, 기도하신 것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요 남을 위함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여러 시간 동안 아버지와 교통하심으로 하늘의 빛을 사람에게 나누어 줄 준비를 하셨다. 그는 날마다 성령의 새로운 침례를 받으셨다. 주님께서는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일어나셔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하여 자기의 심령과 입술에 은혜의 기름을 바르셨다. 그분은 하늘 조정으로부터 새로운 말씀을 직접 받으셨는데 그 말씀은 피곤하고 학대를 받는 자들에게 하실, 경우에 합당한 말씀이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사 50:4). (실물교훈 139.1, COL 139.1)
(3). 일상 속에서의 그리스도인적 감화력
:우리의 말과 행동은 타인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깁니다. 선교는 강단에서뿐만 아니라 도로 위에서의 운전 태도, 일상의 사소한 친절 속에서 먼저 나타나야 합니다.
* 성경 구절: 베드로전서 3:8~12
* "우리는 모두 개인적인 감화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긴다. 이기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유익을 위해 살고, 감정이 아니라 원칙에 의해 지배받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Review and Herald, 1887년 5월 17일 자 )
* “인간의 심령을 감싸 줄 수 있는 어떤 감화력도 이타적인 생애의 감화력과 같은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없다. 복음을 위한 가장 강력한 논증은 상냥하고 친절한 그리스도인이다. (치료봉사 470.1, MH 470.1)
* "복음을 전파하십시오. 그리고 정말 필요할 때에만 말을 사용하십시오." (Preach the gospel - use words if you have to.)
(4). 잃어버린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
: 하나님께서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자녀들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시고,그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우리 역시 낙심하거나 시험에 든 형제들을 정죄하기보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 성경 구절: 호세아 11:8, 스가랴 10장 6-8,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8>> 교훈요약 및 적용
(1) 경험적 신앙이 최고의 전도지입니다. 신학적 논쟁보다 더 강력한 전도는 내가 만난 예수님을 개인의 이야기(Testimony)로 들려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삶 속에서 어떻게 시험했고 어떻게 신실함을 경험했는지 나눌 때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2) 선교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집니다. 목회자나 선교사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삶의 현장에서 감화력을 발하는 빛입니다. 짜증 나기 쉬운 일상(예: 교통 체증, 사소한 갈등) 속에서 품성을 지키는 것이 전도의 시작입니다.
(3) 하나님의 인내를 닮아 영혼들을 대하십시오. 우리가 수없이 넘어질 때 주님께서 오래 참아주셨던 것처럼, 우리 주변에서 방황하거나 영적으로 미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이들을 향해 조급해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4)구체적인 권면: 이번 주에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주님, 오늘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게 하시고, 지친 영혼에게 건넬 위로의 말을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운전을 하거나 가게 직원을 대할 때 의식적으로 먼저 미소 짓고 친절한 언어를 사용해 보십시오.
<<9>> 묵상: 하나님을 떠난 사랑하는 이를 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에브라임과 고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은 ‘언제나 소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방황하는 백성을 거듭 책망하시지만, 그분의 자비와 나침반은 결코 고장 나지 않으며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난 자녀나 가까운 사람들을 보며 큰 고통과 좌절, 낙심을 느끼고, 때로는 그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나는 그 방황하는 자녀를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아니라,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내 장부가 들끓는다(장부가 요동친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십니다.
<<10>> 교사를 위한 질문제언
(1): 경배에 대한 묵상 (예레미야 애가 3:29 읽기)
"왜 하나님을 참되게 '경배'하는 경험이 내 안에서 타인에게 다가가 복음을 나누고자 하는 열정적인 동기를 유발할까요?
(2): "가라!" (마태복음 28:19)
• 주님의 명령인 "가라(Go)!"는 말씀은 당신에게 어떤 도전과 영감을 줍니까?
* 예수님의 명령인 "가라"와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인 "가라(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를 비교해 보십시오. 두 명령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 리스트를 만들어 보십시오. (예시: 아브라함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장소'를 향해 나아갔지만,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나아갑니다 등..)
(3):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복음 28:20)
*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행하라고 명령하신 "분부하신 것들"의 목록을 적어 보십시오. (예: 사랑하라, 은혜를 베풀라, 그분의 진리를 기억하라 등) 이 목록에 또 어떤 실제적인 의무와 기별을 추가할 수 있을까요?
* 이번 한 주 동안 이 구체적인 명령들을 내 가정과 일터에서 어떻게 실제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모아 보십시오.
(4): 혀를 지키기 위한 기도 (시편 141:3, 시편 19:14 읽기)
* 하루 일과를 마칠 때 스스로에게 질문하십시오: "오늘 하나님은 내가 혀를 지키고 말을 조심하도록 어떻게 도우셨는가? 오늘 하루 내가 뱉은 말 중에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부정적인 언어가 있었는가?"
* 매일 우리의 언어생활과 타인과의 소통 속에서 더 나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기로 헌신하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내 입술의 모든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께 열납되기를 원합니다.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 주시고, 성령의 감화로 내 마음에서 나가는 모든 말들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아멘."
(5): 신앙의 변호 (베드로전서 3:15 읽기)
* 다음 세 가지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성경적 기초 위에서 나의 확신을 담아 스스로 답해 보십시오:
1. 당신은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2. 당신은 왜 수많은 기독교단 중에서 굳й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입니까?
3. 당신은 왜 대중적인 영혼불멸설을 거부하고, 성서적인 '조건적 불멸(잠자는 상태)'을 고백합니까?
* 누군가 당신의 신앙적 정체성과 교리에 대해 질문해 올 때, 지혜롭고 온유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말씀의 기초가 약한 부분을 찾아 성경 연구로 든든히 보완해 두기로 결심하십시오.
(6)[경험 나누기] 최근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나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여 타인에게 '나만의 이야기'로 전했던 경험이 있다면 서로 나누어 봅시다.
(7)[품성 성찰] 일상생활(직장, 가정, 도로 위 등) 속에서 나의 '감화력'이 타인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내지 못하도록 방해했던 순간은 언제였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영적 훈련이 필요할까요?
(8)[학자의 귀] 이사야 50:4 말씀처럼 지친 사람들을 말로 돕기 위해, 우리는 매일 아침 하나님의 음성에 어떻게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나만의 효과적인 아침 묵상 방법을 공유해 봅시다.
(9) 오늘 배운 내용 중 나의 신앙생활에 가장 큰 힘이 되었던 한 문장이나 구절을 공유하고, 그 이유를 나누며 마칩니다.
—끝—
(오늘도 긴글 끝까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어요^^ 하나님께서 복 주실 거에요^^
-기도의 동산, 말씀의 동산, 영성회복의 동산, 재림연수원에서, 박정택(CT. Park) 드림-)
**바쁘신분들을 위하여 위의 긴 주해를 A4한장 요약본으로 해서 첨부합니다.^^
[A4 한 장 요약] 제12과 그분을 전하라 (SHARE HIM)
2026년 2기 교과토의 핵심 통찰 / 작성자: CT Park
기억절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이사야 50:4)
1. 개요 (문맥)
* 대주제와의 연결: 2026년 2기 주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함'입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은 내적인 경건과 시련의 극복(11과)을 지나, 마침내 하나님과의 깊어진 수직적 관계가 수평적인 선교와 증거의 삶으로 확장되는 '그분을 전함(Share Him)'의 선교적 성장으로 귀결됩니다.
* 12과의 신학적 위치: 지난주 욥이 가졌던 영광스러운 부활의 이상(“구속주가 마침내 땅 위에 서실 것”)을 오늘날 이 땅의 영혼들과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구체적인 길을 제시합니다.
* 성경적 배경: 지상 대사명의 위임을 선포한 마태복음 28:16–20과, 개인의 품성 형성과 교회 안팎의 사랑의 연합을 촉구한 베드로전서 3:8–15을 양대 축으로 삼고, 호세아와 스가랴서의 애타는 구속사를 관통합니다.
2. 핵심 통찰 및 키포인트 (Core Insights)
① 전도의 내적 동기와 증거의 태도 (월요일)
* 사랑과 동정심(Splagchnizomai): 전도의 참된 구동력은 그리스도의 선제적인 사랑(롬 5:8, 고후 5:14)과 성령이 주시는 동정심입니다. '불쌍히 여기다'의 원어 '스플랑크니조마이'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다'라는 뜻으로, 인간의 한계적 처지와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을 연결하는 영적 힌지(Hinge)입니다. (보시고,->민망히 여기사 가슴아파하시고,-> 치료와 구원의 행동: 예수님의 선교 패턴임)
* 생생한 체험(Experience): 전도는 내가 들었고(Heard: 귀 기울임), 눈으로 자세히 보았으며(Seen: 경이롭게 응시함), 만진 바(Handled: 촉각적 검증) 된 생명의 말씀을 나누는 개인적 간증입니다(요일 1:1-3). 예레미야처럼 마음에 불붙는 말씀의 강권함(렘 20:9)으로 침묵할 수 없는 영적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 강요 없는 부드러움: 강압과 죄책감(Guilt/Shame) 대신, 사랑 안에서 참된 진리를 말하며(엡 4:15), 성령의 적절한 때(Called)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늘 그러하셨듯, '선택권과 결과'를 정직하게 제시하며 상대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②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다양한 은사 (화요일)
* 나탄(Nātan)의 능력: 여호와께서 '주사(나탄: 허락·위임·공급하다)' 곤고한 자를 시기적절하게 도울 귀와 혀를 무장시키십니다(사 50:4).
* 은사의 다양성(Maximum Latitude): 전도는 획일적 공식이 아닙니다. 개인의 개성(Personality), 기질, 은사에 따라 넓은 영역에서 사용됩니다(예: 대형마트에서 초청하는 성도, 전도회 정전 시 기계 장치를 수리하는 청년 등).
* 논쟁하지 않는 간증(Testimony):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온유와 두려움(Meekness & Fear)으로 답하되(벧전 3:15-16), 영적 우월감(교만)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3단계 간증("과거의 나 \ 예수님을 만남 \ 변화된 삶")을 준비하는 것이 논쟁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③ 방황하는 자녀와 포기하지 않는 사랑 (수요일)
* 뒤집지 않은 전병(A Cake Unturned): 우상과 연합하여 영적 영양실조에 빠진 에브라임은 한쪽은 타고 한쪽은 설익은 '뒤집지 않은 전병(우가)'과 같았습니다(호 7:8). 입으로는 여호와를 경배하나 실제로는 세속과 혼합된 영적 모순을 가리킵니다.
* 통곡하는 라헬의 약속: 방황하는 자녀를 보며 통곡하는 라헬에게 주님은 "눈물을 멈추라. 소망이 있으리니 자녀가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고 위로하십니다(렘 31:16-17).
* 창자가 들끓는 긍휼: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호 11:8). 주님을 떠난 자녀를 보며 우리는 낙심하고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한순간도 잊지 않으셨으며, 그들을 향해 장부가 요동치는 절박한 자비와 긍휼을 품고 계십니다.
④ 방황하는 자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목요일)
* 은혜의 흘러넘침(Overflow): 후회나 죄책감, 윽박지르는 잔소리는 상대를 밀어낼 뿐입니다. 구주와 골방에서 보내는 깊은 개인적 교제를 통해 내 영혼에 먼저 은혜를 가득 채울 때 비로소 영적 영향력이 흘러넘칩니다.
*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중보: 베드로의 배반을 미리 아셨던 예수님은 그를 정죄하는 대신,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32)며 중보하셨습니다. 우리의 아픈 눈물과 기다림의 세월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방황하는 이들을 굳세게 할 거룩한 약재가 될 것입니다.
⑤ 지상 대사명과 우주적 언약 (금요일)
* 모든(All/Pas) 권세: 예수님의 지상 마지막 대사명(마 28:16-20)에는 '모든'이라는 단어가 세 번 반복되어 창조주로서의 주권을 확증합니다.
* 그리스도의 제자 삼기: 전도는 우리 자신이나 특정 파벌의 추종자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는 일입니다. 침례는 창세기적 재창조의 표징이자 세상 끝날까지 임마누엘로 함께하시겠다는 종말론적 언약의 보증입니다(마 28:20).
3. 실천을 위한 적용 (Application)
* 나만의 '3단계 개인 간증' 준비하기: 이성적인 신학 논쟁을 피하고, 나의 과거 무지했던 삶과 예수님을 만난 뜨거운 첫사랑, 그리고 주님이 바꾸어 주신 삶의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준비하여 이웃에게 들려주십시오.
* 일상의 일터와 도로 위에서 설교하기: 복음을 입으로 전파하기 전에, 교통 체증 속에서의 운전 태도, 마트 직원이나 이웃을 대하는 상냥하고 친절한 미소를 통해 먼저 품성적 설교를 하십시오. "복음을 전하십시오. 그리고 필요할 때만 말을 사용하십시오."
* 아침마다 '학자의 귀'로 깨어나기: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가장 먼저 주님의 음성에 청종함으로 내 심령과 입술에 은혜의 기름을 바르십시오(사 50:4). 그래야만 낮에 만나는 곤고한 영혼들에게 건넬 하늘의 새로운 말씀을 직접 전수받을 수 있습니다.
* 방황하는 자녀를 위한 중보 기도의 제단 쌓기: 낙심과 원망, 잔소리를 멈추고 하나님의 타오르는 긍휼(호 11:8)과 예수님의 중보적 기도(눅 22:32)를 굳게 신뢰하며 자녀를 향해 축복과 사랑의 품성을 일관되게 보여주십시오.
4. 토의를 위한 질문 (Discussion)
* Q1 (선교적 동기):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느끼셨던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스플랑크니조마이)'의 동정심이 내 안에서 일어나, 실제로 영혼을 돕는 구체적인 '행동과 봉사'로 이어졌던 개인적인 은혜의 경험을 나누어 봅시다.
* Q2 (뒤집지 않은 전병): "뒤집지 않은 전병"(호 7:8)처럼, 한쪽 면으로는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하지만 다른 쪽 면으로는 이방인의 세속적 가치관과 혼합된 채 살아가는 우리 내면의 모순된 영적 상태는 무엇입니까?
* Q3 (겸손한 변호): 베드로전서 3:15-16에서 신앙의 이유를 묻는 불신자들에게 온유와 두려움으로 대답하라고 한 권면과 관련하여, 우리가 "진리를 소유했다"는 영적 우월감(교만)이라는 '높은 말(High Horse)'에서 내려와 겸손히 간증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 Q4 (실천과 위로): 현재 내 주변에 영적으로 낙심하여 엠마오나 방황의 길로 멀어진 영혼(자녀, 구도자)은 누구입니까? 그들을 향해 잔소리를 멈추고 내 개인의 영적 교제를 통한 '은혜의 흘러넘침(Overflow)'으로 다가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5. 결론 (Conclusion)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연합 속에서 자라가는 성장(Growing)의 삶은 결코 우리 내면에만 갇혀 있을 수 없습니다. 참된 전도와 선교는 가혹한 종교적 의무나 강압적인 수단이 아니라, 아침마다 학자의 귀로 깨우침을 받아 심령에 가득 채워진 구주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방으로 흘러넘치는 은혜의 결과물(Overflow)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상냥하고 아름다운 성품을 반사하는 거울이 될 때, 세상은 비로소 우리의 친절한 삶과 진실한 간증 속에서 사망을 이기시고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구속의 약속 위에서 끝까지 낙심치 말고 영혼들을 돌이키는 참된 증인의 삶을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