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식일학교 장년교과 보충교재(예언의 신 인용구들)
“내 생애가 언제 끝나든 상관없이, 내 저술들은 끊임없이 말할 것이며, 그것들의 역할은 세월이 지속되는 한 계속될 것이다. …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말씀들은 계속 살아서 백성들에게 말할 것이다.”(편지 371, 1907)
(1) 이 자료는 대총회 안교부가 매기마다 안교 장년교과와 함께 매일의 공부 내용과 연결하여 새로운 통찰력과 신선한 관점을 얻도록 돕기 위해 관련 예언의 신 구절들을 모은 보충교재(Ellen G. White Notes for the Sabbath School Lessons)를 한글판으로 바꾼 것입니다. (한글번역본이 없는 경우는 게시자가 번역함)
(2) [활용방법] 매일의 교과를 공부한 후, 그날에 해당하는 부분을 연결하여 묵상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2026년 제2기 – 하나님과 함께 자라가는 삶>
예언의 신 인용구들 - 제13과 영원으로
<6월 20일/안, 서론>
◎ 우리가 이땅에서 하는 사업은 곧 마칠 것이며, 각 사람은 자기의 수고에 따라 상을 받을 것이다. 나는 성도들의 상급 곧 불멸의 유업을 보았으며, 진리를 위해 가장 많이 참고 견디었던 사람들은 그들이 어려움을 겪었다고 생각하는 대신에 하늘은 너무나 값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았다
매일매일은 다하지 못한 의무, 소홀함, 이기심, 기만, 사기, 그리고 지나친 욕심에 대한 기록이라는 짐을 지고 있다. 최후의 심판을 위해 얼마나 많은 악행이 쌓이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의 상은 그와 함께 있고, 그의 행적은 그 앞에” 있어,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그때 얼마나 놀라운 사실이 드러날 것인가! 역사의 페이지 위에 그들의 생애가 적혀 드러날 때, 어떤 이들은 얼마나 당황해 얼굴을 붉히게 될 것인가.
모든 선행과 악행,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끼친 감화가 인간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 곧 모든 비밀을 아시는 분에게 나타난다. 또한 행동을 일으키게 한 동기에 따라서 보응이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으며, 그날이 매우 급히 다가오고 있다. 일할 시간은 단축되어 가고 있으며 남녀들은 멸망해 가고 있다. …
우리에게는 우리를 깨우쳐 멸망해 가고 있는 세상의 필요를 깨닫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개심시키시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대들에게 주는 내 기별의 목적은 ‘주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고 준비하라’는 것이다. 그대들의 등을 준비하여 진리의 빛이 길과 산울가로 비쳐 나가도록 하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경고를 받아야 할 세상이 있다. …
새로운 회심을 추구하자.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거친 정신이 사업에 나타나지 않도록 우리에게는 성령의 임재하심이 필요하다. 나는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전적으로 지배하시기를 기도한다. 하나님과 의논하고 그분의 계획을 따라 행할 준비를 갖춘 하나님의 자녀들처럼 행동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실 것이며 우리의 열심을 목격한 사람들은 ‘아멘 아멘’이라고 말할 것이다. (마라나타, 312)
◎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추종자에게 그들의 영향력과 재산으로 다른 이들을 축복하는 의무를 분명히 명하신다. … 다른 이들을 위해 일할 때, 달콤한 만족과 내적 평화가 경험될 것이니, 그것이 충분한 보상이 될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선을 행하려는 고귀한 열망으로 움직일 때, 그들은 삶의 다양한 책임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가운데 참된 행복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은 단지 지상의 보상만이 아니다. 모든 신실하고 이타적인 의무의 수행은 천사들에게 인지되고 생애의 기록에 빛난다. 하늘에서는 아무도 자기 자신을 생각하거나 자기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순결하고 참된 사랑으로 주변의 거룩한 존재들의 행복을 구할 것이다. 우리가 새 땅에서의 삶을 갈망한다면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늘의 원칙에 따라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하늘에, 233)
<6월 21일/일, 오늘을 살라>
◎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생명과 빛과 기쁨의 근원이시다. 태양에서 발하는 광선과 같이 샘에서 흘러내리는 개천물과 같이 모든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그분의 온 피조물에게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의 마음 안에 있으면 그것이 넘쳐흘러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복을 줄 것이다.
우리 구주의 기쁨은 타락한 인류를 향상시켜 구원하시는 데 있었다. 그분은 이 기쁨을 인하여 그분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십자가의 고난을 참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 이와 같이 천사들도 항상 남의 행복을 위한 일에 종사하고 있다. 이것이 저들의 기쁨이다.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자들이 수치스러운 봉사라고 여길 만한 일, 즉 비참하고 모든 면에서 성격과 지위가 열등한 자들을 섬기는 일은 죄 없는 천사들의 일이다.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적 사랑의 정신은 온 하늘에 충만한 정신이니 그것이 곧 하늘 행복의 요소이다. 이 정신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가져야 할 정신이요, 또 이 일은 그들이 하여야 할 일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음속에 있으면 마치 좋은 향기 같아서 그것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이 사랑의 거룩한 감화는 우리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이 받게 될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정신은 마치 사막 가운데 있는 샘과 같이 흘러서 모든 사람을 시원케 할 뿐 아니라 죽어가는 자들에게 생명수를 마시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만든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인류를 복되게 하고 향상시키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표현될 것이다. 이 사랑은 또한 우리 천부께서 돌보시고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랑과 온정과 동정을 일으킬 것이다.
구주의 지상 생애는 안일과 자신만을 위한 생애가 아니었고 잃어버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꾸준히 열렬히 피곤함을 모르는 노력으로 수고하는 생애였다. 그분은 말구유에서 갈바리에 이르기까지 극기의 길을 걸으셨으니 힘든 일과 괴로운 여행과 심신을 소모시키는 수고와 노력에서 조금도 벗어나려고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그분 생애의 큰 목적이었다. 그 외의 것은 다 둘째 것이요 부수적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사업을 마치는 것이 그분의 양식이었다. 자신과 사욕은 그분의 일 가운데 조금도 섞이지 않았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그분께서 위하여 죽으신 자들이 하늘의 선물을 얻도록 하기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하기를 기뻐할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을 그들이 살기에 더욱 좋게 만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정신은 참으로 회개한 자에게는 필연적으로 생긴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누구나 그의 마음속에 예수님 안에서 얼마나 소중한 친구를 그가 만났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소망을 품게 되며, 구원과 거룩함을 주는 진리는 그의 마음속에 가둬 둘 수 없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고, 그분의 내재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이 우리 속에 충만해질 것 같으면 우리는 잠잠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주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다면 우리는 무엇을 말할 것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빌립이 구주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다른 사람을 구주께로 인도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점과 내세의 보이지 않는 실재를 그들에게 보여 주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 있는 자들이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을 보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될 것이다.
남을 복되게 하려는 노력은 우리 자신에게 복이 돌아오게 한다. 구속의 경륜 가운데 우리에게 한 역할을 담당케 하신 하나님의 뜻은 여기에 있다. 그분은 먼저 사람에게 신의 성품을 가질 수 있는 특권을 주시고, 다음으로 저희 동포들에게 복을 전해 주는 특권을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영예요 최대의 기쁨이다. 이렇게 사랑의 봉사 사업에 참여하는 자들은 저희의 창조주께 가장 가까이 이르게 되는 것이다. (정로, 77-79)
<6월 22일/월, 마침내 대면하여 만날 때>
◎ 더러운 것은 아무것도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곳 거민이 될 사람은 모두 이 세상에서 마음이 청결해져야 할 것이다. 예수님에 대해 배우고 있는 사람에게는 부주의한 행동과 무례한 말과 조잡한 생각을 멀리 하는 경향이 차츰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마음 가운데 거하시면, 말과 생각과 행동이 순결하고 고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다만 세상에서 이해하는 의미의 순결, 다시 말해 감각적인 것에서 벗어나고 육욕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의 은밀한 목적과 동기가 진실하며, 교만과 자아 중심에서 벗어나 겸손하고 사심이 없고 어린애같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
성령께서 내주하심으로 정결해진 마음에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런 마음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모세는 주님의 영광이 그에게 나타났을 때 바위틈에 숨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숨어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된다.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잠 22:11).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믿음을 통해 왕이신 하나님을 바라본다. 매일의 경험 가운데서, 그분의 섭리에 나타나는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본다. …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구원자로서 새롭고 사랑스러운 관계 속에서 바라본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이 지닌 순결함과 아름다움을 깨달으며, 그분의 형상을 닮고자 간절히 소망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회개하는 아들을 품에 안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로서 바라보며, 그들의 마음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으로 가득 차게 된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창조주의 위대한 손길이 닿은 작품들, 즉 우주를 이루는 아름다운 만물 속에서 창조주를 알아본다. 그들은 기록된 말씀 속에서 그분의 자비와 선하심, 은혜에 대한 계시를 더욱 선명하게 읽어낸다. …
세상 지혜에 밝은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진리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고자 하는 순수하고 어린아이 같은 소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드러난다. 우리는 스스로 신성한 본성에 참여함으로써 진리를 깨닫게 된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그들에게 주신 시간 동안 마치 그분이 눈앞에 계신 것처럼 생애한다. 그들은 또한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이야기할 때 그랬던 것처럼 장차 불멸의 상태에서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고전 13:12). (그리스도를 나타냄, 378)
<6월 23일/화, 신부>
◎ 아담에게 하와를 돕는 배필로 주신 분께서는 혼인 잔치에서 그분의 첫 이적을 행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친구들과 친척들이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있는 잔치 자리에서 그분의 공중 봉사를 시작하셨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결혼을 그분이 친히 제정하신 제도로 인정하심으로 그 결혼을 시인하셨다. 그분께서는 남녀들이 신성한 결혼으로 연합하여 자신들의 가족을 돌보고, 영광스럽게 되어 하늘의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결혼관계를 그분과 구속받은 그분의 백성과의 연합을 상징하게 하심으로써 영광스럽게 하셨다. 그분 자신은 신랑이시고 교회는 신부인데, 그분께서는 그분이 택하신 신부에 대하여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라고 말씀하신다(아 4:7).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엡 5:25-28).
가족의 유대는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가장 긴밀하고 신성하다. 그것은 인류에게 축복이 되도록 계획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혼 서약이 지혜롭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결혼에 따르는 책임이 정당하게 고려되어 성립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축복이 된다. (치료, 356)
◎ 혼인 관계는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 사이에 존재하는 부드럽고 신성한 결합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예수께서는 혼인 잔치의 기쁨을 그분의 신부를 데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가시는 날, 구원받은 자들이 구주와 함께 어린양의 혼인 잔치의 식탁에 앉을 그날의 기쁨을 예표하는 것으로 여기셨다.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 오직 너를 헵시바라 …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 것임이니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사 62:5, 4; 습 3:17)라고 그분은 말씀하신다. 사도 요한은 하늘의 사물에 대한 이상을 보고 이렇게 기록하였다.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계 19:6~7, 9). (소망, 151)
<6월 24일/수, 어린양을 따르라>
◎ 주님께서는 땅 위에 한 백성을 두셨는데, 그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간다. 그분께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수천 명이 있다. 이러한 자들은 시온산에 그분과 함께 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땅에서 전신갑주를 입고, 멸망하려는 자들을 구원하는 일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서야만 한다. …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변화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위에서 어린양을 따르게 될 것이지만, 그것은 여기서 그분을 따른 자들에게만 해당된다. … 우리는 변덕스럽게나 자기 유익이 될 때만 그리스도를 따라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분을 따르기로 선택해야만 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양 떼가 믿고 목자를 따르듯 그분의 본을 따라야 한다. 우리는 그분을 위해 고난을 받으며, 걸음마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리라”(욥기 13:15)라고 말해야 한다. 그분의 삶의 방식이 우리의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그분을 닮아 가고 우리의 의지를 그분의 뜻에 맞추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그분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꿈결 같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속하신 분께 충성을 다하는 사역에 부름받은 그리스도의 군사들이다. 구원받아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을 때 하늘 본향에서 우리의 모습은, 지금 이 땅에서의 우리의 품성과 거룩한 봉사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시험의 장소인 이땅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우리의 충성을 증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늘에, 298)
◎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 앞에서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하고 마음의 순결을 위하여 탄원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서 “더러운 옷을 벗기라”는 명령이 내리고,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슥 3:4)라고 용기를 주는 말이 있게 된다. 흠 없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은 시험과 유혹을 받으면서도 성실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입혀진다. 멸시받은 남은 자들은 세상의 부패로 더 이상 결코 더럽혀지지 않을 영광스러운 옷을 입게 된다. 그들의 이름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각 시대의 충성된 자들과 함께 그곳에 보존된다. 그들은 기만자의 간계를 저항해 왔고, 용의 포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충성을 버리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유혹자의 간계에서 영원히 안전해진다. 그들의 죄는 죄의 창시자에게로 옮겨진다. 그리고 남은 자들은 용서받고 가납되었을 뿐 아니라 영광스럽게 된다. “정한 관”이 그들의 머리에 씌워진다. 그들은 왕들과 같이 되고 하나님께 대하여 제사장이 된다. 사단이 그의 비난을 강요하고 이 무리를 파멸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동안 보이지 않는 거룩한 천사들은 이곳저곳으로 왕래하면서 그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치고 있었다. 그들의 이마에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이 사람들은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 위에 서는 자들이다. 그들은 땅에서 구속받은 14만 4천명 외에는 아무도 배울 수 없는 노래를 보좌 앞에서 부른다. “이 사람들은 …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4~5). (높임, 377)
<6월 25일/목, “오라!”>
◎ 그곳에서 영화롭게 된 새 땅의 수도 새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사 62:3)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계 21:11).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계 21:24). 주님께서는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사 65:19)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저희 하나님이 되시리라.”(계 21:3, 흠정역)
하나님의 성에는 “밤이 없”다. 아무도 휴식을 필요로 하거나 원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는 데 피곤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신선하고 유쾌한 아침의 기분을 언제나 느낄 것이다.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계 22:5). 고통스러울 정도로 눈이 부실 정도는 아닌 찬란한 빛이 태양 광선을 대신할 것이다. 그러나 그 광도는 오늘날의 정오의 밝음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이 거룩한 성을 끊임없이 비춰 준다. 구속받은 자들은 태양이 없을지라도 언제나 낮의 빛 가운데로 다닐 것이다.
선지자의 계시에서 죄와 무덤을 이긴 사람들은 이제 태초에 사람이 하나님과 이야기했던 것처럼 하나님과 함께 자유스럽게 이야기를 나눔으로 그들의 창조주 앞에서 행복하게 보였다. 주께서 그들에게 명하신다.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사 65:18~19). …
선지자는 죄와 모든 저주의 흔적이 없는 하나님의 도성 안에 있는 구속받은 자들의 거처를 바라볼 때 큰 기쁨으로 부르짖는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사 66:10).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369)
<6월 26일/금, 더 깊은 연구>
◎ “환난 중에 기뻐함” (그리스도를 나타냄, 350).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우리의 연약함을 실제적으로 느끼고 계시는 동정적이시고 온유하신 대제사장을 모시고 있음을 주께 찬양하라. 우리는 이곳에서 안식을 기대하지 않는다. 아니다. 하늘로 가는 길은 십자가를 짊어진 길이며 그 길은 협착하고 좁다. 그러나 우리는 영광의 왕께서 우리 앞에서 이 길을 먼저 밟고 지나가셨다는 것을 알고 기쁨으로 전진할 것이다.
우리는 길이 거칠다고 불평해서는 안 되며 이것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그분의 추종자들을 온유하게 할 것이다. 주께서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한 한 인간이셨다.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심은 그분의 가난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었다. 우리는 환난 중에 기뻐할 것이며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상급으로 받게 될 것임을 마음에 간직할 것이다.
우리는 시련 당한다고 불평하지 말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은 항상 시련을 당하지만 이곳에서 모든 시련을 견딘다면 영광중에 우리는 부요케 될 것이다. 나는 고통과 작별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나는 고난 없이는 하늘에 가지 못할 것이며 우리의 기업을 더욱 풍성하게 하시기 위하여 값을 주고 우리를 사신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셨음을 안다면 또한 진리와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을 안다면 고난을 참을 것이다. 고난을 통하여 나는 완전하게 되리라.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에 참여한다면 그분과 함께 그분의 영광에도 참여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본이시다. 우리의 생애가 가능한 그리스도 같이 되도록 힘쓰자.
내 영혼이 살아 계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나의 모든 것이 그분을 갈망한다. 오, 그분의 사랑스런 형상이 완전하게 반사되기를 원한다! 그분께 전부 드리기를 원한다! 자아가 죽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는 모든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온전한 구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 우리는 날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라고 말할 수 있는 주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내 자신을 숨길 수 있다. 영광은 하나님께 있다. 나는 나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인 것을 안다.
휘장이 걷히고 나는 성도들을 위하여 쌓아두신 풍성한 상급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내세에 있을 기쁨을 맛보고 이 세상의 부패함을 보았다. 나의 애정, 나의 관심과 소망, 나의 모든 것은 하늘에 있다. 내 영혼이 사랑하는 그분, 그분의 아름다움을 뵙기를 간절히 원한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나는 그곳에 있기를 갈망하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기를 몹시 애타게 기다린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불사와 영원한 생명의 좋은 소망을 주신 주님을 찬양하라.
◎ “그리스도의 초청을 반복함”(그분을 알기 위하여, 33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예수께서는 “듣는 자도 오라”라고 말씀하신다.
통회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은 하늘의 기별을 받아들일 것이며, 천사의 말을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초청의 말씀을 들은 모든 사람이 할 일이다. 예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그 말씀을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0-14).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그 말씀을 믿는 자들로 말미암아 반복되어야만 한다. 참된 믿음을 가진 자들은 흑암 가운데 있는 영혼들을 위하여 일함으로써 그 믿음을 증거로 삼을 것이다. … 그들은 경고와 권면의 말을 하며 또한 이 세상 골짜기의 낮은 냇물에서 갈증을 없이 하고자 애쓰는 자들에게 레바논의 찬물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피묻은 깃발 아래 모인 군사들을 일하러 나가도록 부르신다. 그분은 그분의 사자들이 멸망하는 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거룩한 권능으로써 옷 입히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죄 많은 인생과 고통당하는 세상을 위하여 샘을 열어 놓으셨다. 거룩한 자비의 음성이 들린다.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로 와서 마시라.” 그대들은 생명수를 값없이 마실 수 있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원하는 자는 누구나 다 오라고 하라.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영혼이 이 기별을 울리게 하라. 그리하면 이 일은 이 땅의 황무지로 퍼져 나갈 것이다. 성경 말씀은 성취될 것이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골짜기들에 샘들을 여실 것이다. “사막에 강들”이 생기고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긷게 될 것이다(사 41:18; 43:19~20; 12:3).
살아 있는 증인들의 대열이 온 세상에 그 초청을 전해야 한다. 그대는 이 위대한 사업에서 그대의 몫을 행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