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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오늘 우리 교회에 오신다면?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5.12.03|조회수818 목록 댓글 0

예수님이 오늘 우리 교회에 오신다면?

예수님이 오늘 우리 교회에 오신다면

두렙돈 낸 과부를 칭찬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아름다운 신앙을 보고 칭찬하실까요?

주님을 위해 수고하고 헌신한 귀한 모습을 보시고

말없이 꼬옥 안아주실까요?

아니면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의 안타까운 신앙의 모습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실까요?

 

저도 그도 아니면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에 채찍을 휘두르실까요?

 

미국 북쪽 지방에서 사는 어떤 흑인 직장인 한 명이 먼 지방으로 출장을 갔습니다. 기독교인인 흑인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숙소 근처에 있는 교회를 갔습니다. 예배당 계단으로 올라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문 앞에서 안내를 맡은 백인이 이 흑인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여기 들어오지 못합니다.”

흑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 들어가지 못합니까?”

그러자 백인이 대답합니다.

여기는 백인들만 모여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흑인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 흑인은 하는 수 없이 계단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안에서 들려오는 찬송소리를 들으며 혼자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비몽사몽간에 흰 옷을 입은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흑인의 어깨를 두드리시며 물으셨습니다.

자네는 어찌하여 여기에 혼자 앉아 있느냐?”

흑인은 예수님의 옷을 붙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 저는 예배드리려고 이 교회에 왔는데 제가 얼굴이 검다고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여기 앉아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흑인의 어깨를 다시 두드리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그 예배당에 못 들어갔느냐? 너무 외로워마라. 나도 그 예배당에 들어가지 못했단다.”

주님이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찾아오시면

우리는 주님이시라고 반가이 맞을까요?

 

주님이 낯선자의 모습으로 찾아오시면

우리는 혹 모르는 사람이라고 외면하지는 않을까요?

주님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자로 찾아오시면

우리는 도와줄게 없다고 내 쫓지는 않을까요?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공중봉사를 시작하시면서 최초로 예루살렘 성전에 가셨을때를 생각해 봅니다. 주님은 그 교회에서 큰 감동과 은혜를 받으셨나요? 아니면 고통하셨나요?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셨더니" (요2:12, 13).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요2:14-17).

 

왜 예수님이 이렇게 의분을 내셨나요? 아버지 집이 장사하는 집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교회란 언제나 베풀며 나누는 생명의 통로, 주는 곳이 되어야하는데 이득을 얻기 위해 장사하는 교인들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분의 공중봉사 사업을 시작하는 맨 첫날에 전혀 상상도 못할 일을 하셨는데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그날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날에 예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살펴 보면서 예수께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는지를 주시하도록 해 봅시다. 그곳에는 양과 가축과 비둘기들을 사고 파는 상인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성전에서 사용하는 돈을 사고 파는 것을 도와주는 돈 바꾸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데 종사하는 종교적인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대제사장의 직위를 수 백만원을 주고 사고 파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는 아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수백만원씩에 거래되었기때문에 때때로 돈을 주고 그와 같은 직분을 산 사람은 빚더미에 빠져있게 되어 빚을 갚아야만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 바꾸는 사람들과 사고 파는 사람들에게 와서 약속을 체결하여야 하였습니다. 저들이 사업에서 얻는 이익금 가운데 얼마를 받아서 대제사장이 되기 위해 빛을 얻었던 것을 갚아 나아가야 하였습니다. 이와같은 일들이 예수님 당시에 성행되었으며, 종교는 말할 수 없이 부패되었었습니다

그러한 형편에 제자들이 처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저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저들은 부드럽고 친절하신 예수님만을 보았습니다. 저들은 소년 소녀들과 함께 "부드러운 예수님, 인자하게 어린이들을 보시네"라는 노래를 거의 부를 뻔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저들이 떨었습니다.

 

그날 그분이 행하신 일에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신성이 번쩍이었습니다. 한 인간의 눈이 군중들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동안 찬물을 끼얹는 듯한 숨막히는 고요가 뒤덮였습니다.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 제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화가 치밀어 소리를 크게 지르시면서 그분이 하셔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호된 견책의 말씀을 하실 때 그분의 음성에는 눈물이 섞여 목이 메었습니다.

성전 안에는 또 다른 무리가 있었는데 저들은 개인적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희생물이 되어 두려워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우선적으로 본다면 예수께서 도적들을 몰아내시기 위해서 성전을 정결케 하신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신 것은 가난하고 병들고 저는 자들, 소경된 자들 그리고 낙심한 자들을 성전에 들어오게 하시려고 성전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성전을 정결케 하신 것은 떨며 주저하는 자들을 위해서 하신 것이었습니다

 

저들은 상품(물질) 때문에 팔린 자들이었습니다. 저들은 행함을 통해서 천국에 간다는 개념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양(예수님)과 비둘기 (예수님) 가 공짜로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양을 사고 비둘기를 사야 했습니다.

그와같은 많은 사람들속에는 양을 살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밤잠을 못 이루며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서 과연 영원한 왕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던 자들입니다. 만약 신앙이라는 것이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라면 부자는 살고 가난한 자는 죽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재력이 있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들은 영생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밤에도 단잠을 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가진 영생의 확신은 하나님의 마음을 사기 위해 저들 스스로가 어떤 행동을 하여야 한다는 그릇된 사상에 근거된 거짓 확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조만간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와같은 커다란 기만에 빠져있는 자들을 깨우쳐 주셔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절기때에만 참석하고 떠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오는 사람들을 다시 교육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이 사는 사람들과 영생에 대한 거짓된 확신을 가진 사람들 모두를 접촉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도적들을 몰아내셨습니다.

 

마태가 기록한 복음서에 의하면 내 아버지 집을 장터로 만들지 말고 도적의 소굴로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 21:13 참고). 사람들(지도자들과 장사치들)이 돈만 훔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는 영광을, 사람들로부터는 평안을, 가난하고 무능력한 자들에게서는 영생에 대한 확신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을 몰아내셨습니다.

 

그러나 돈 바꾸는 사람들과 제사장들과 랍비들과 함께 도망치는 대신에 성전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시끄럽고 혼잡했던 장터가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사람들의 찬미와 찬사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소년 소녀들도 이젠 그분을 찬양하는 노래에 가담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예수께서 도적들을 증오하지 않으셨습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저들을 못본체 하셔서는 안되셨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상인도 사랑하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은 종교 지도자들도 사랑하셨습니다. 후에 예수님께서 저들과 함께 잔치에도 가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세리들이 모이는 곳에도 가셨습니다. 그분은 제사장들과 법관들의 등을 어루만져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저들의 불안과 무지에 대해 동정하셨습니다. 그분은 마치 목사들이 허다한 무리들을 접촉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그분의 사랑으로 저들과 접촉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에 언급되지 않은 일이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 무리 가운데 분명히 커다란 기둥 뒤에, 잘 보이지 않는 그늘진 곳에서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홀로 서 있는 사람, 그는 종교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지켜 보았는데 그는 감명을 받앗습니다.

니고데모는 상인들이 도망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이 나나아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는 상들이 뒤집어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는 예수라는 "사람에게서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이 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눈물을 보았고 목이 메인 그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호산나라고 외치는 찬양의 소리도 들었습니다. 병자들이 나음을 입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는 한쪽에 서서 모든 장면들을 보았습니다. 분명 그는 사람들처럼 도망하지 않은 듯하다. 그는 모든 사태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이 사람을 만나 보리라”하고 스스로 속삭였습니다. 인간의 판단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요한복음 3장에서 보는 것처럼, 성전을 정결케 하셨기 때문에 그 결과로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오게 됩니다. 니고데모 자신이 구원의 선물에 대해 듣기 위하여 그분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장터가 되기를 원치 않으시면 왜 우리에게 사라고 하실까요? 그러나 성경의 맨 마지막 책에는 불로 연단한 금과 흰 세마포와 안약을 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 진주를 사기 위해 모든 것을 팔았기 때문에 우리가 꼭 사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자- 우리가 아는 것은 한가지 예수님이 금과 은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금은 별로 귀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모든 거리들이 금으로 깔려 있습니다. 하늘은 우리 자신들의 가진 모든 것을 팔아 치워야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은 아무 쓸데 없는 것임을 인정하고 자아를 의지하는 모든 것을 제거해야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나와서 그분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이 인정하는 선물센터 유통과정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것을 팔아서 밭을 사라고 말씀하실 때 그의 본 뜻은 "네 자신을 포기하라! 네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구원을 행함으로 얻으려는 생각)까지도 포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그대가 위대한 사람이라고 하면, 그와 같은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혹 부자라면 부를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그대가 똑똑하고 재능이 있고 얼굴이 잘 생겼다면 그와같은 이로운 점들을 내세우거나 그런 것을 신뢰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의를 세우기에는 우리가 무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 생애를 그분의 손에 온전히 맡김으로 우리는 하늘의 통화정책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말에 대한 가장 적합한 정의는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는 말로써 "복종한다", "항복한다”라는 말입니다. 신뢰라는 말은 그대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사람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복종하는 것이 늘 쉬운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아를 포기하기 위해 너무너무 노력하다 보면 오히려 더 자아중심적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만 이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합니다. 그것은 선물입니다.

믿음은 선물입니다. 사랑도 선물입니다. 회개도 선물입니다. 승리도 선물입니다. 모든 축복의 열차를 이끌고 오는 비둘기로 표상된 성령 역시 선물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도 선물입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는 확신 역시도 선물입니다.

 

이 이야기(성전 정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또 다른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할 때에 성전 정결에서 주는 커다란 진리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그분의 사업을 착수하시면서 그는 그의 사명이 사람을 영원히 살도록 구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께서 내재하실 수 있는 성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죄로 인해 인간이 하나님의 성소가 되는 일이 중단되었습니다. 빛이 없는 곳에는 어둠이 가득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마음에 주인으로 계시지 않으면 악이 우리 마음에 가득하게 됩니다.

 

주님의 사명은 죄의 더러움에서, 세상의 물욕에서, 이기적인 색욕에서, 영혼을 부패케하는 악한 습관에서 마음을 정결케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셔야만 우리의 마음이 정결을 경험하고, 평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강제로 들어오셔서 이 일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옛날 성전에 들어오셨던 것처럼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들어오는 대신에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계 3:20) 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그대에게 예수님 자신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시는 대제사장 -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대제사장으로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와 자비를 얻고 필요한 때에 주시는 은혜를 발견하라고 초청하십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능력과 권능이 그분 안에 내재합니다. 아무도 그분 없이는 성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과 함께 한다면 실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5-16)

 

수천번 수만번 성탄이 왔다가도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이 내 마음에 왕으로 오셔야합니다. 내 삶의 주인이 되셔야 우리가 그 복음을 누릴 수 있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빈 소년합창단 캐롤

https://youtu.be/k-CUUP-mUrc?list=RDk-CUUP-mUrc

 

 

 

평안한 음악기도

https://youtu.be/5R61QhS2LJA?list=RD5R61QhS2LJA

 

 

 

https://youtu.be/FpmWwvOoArM

https://youtu.be/3XcoShMTlgA?list=PLghoOxePMNT4LB957wQYfAbVZpqpGo-F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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