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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카드

참된 개혁의 원천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3.17|조회수448 목록 댓글 0

아무리 겨울추위가

강해도

봄날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꽃샘추위가

산천을 흔들어도

꽃을 못피게 할 수는 없습니다.

꽃샘추위를 통하여

오히려는 나무는 자던 잠에서 깨어나고

생명의 물줄기를 뽑아 올려냅니다.

 

오히려 뿌리는 얼어붙어 생긴

틈새를 메꾸며

더욱 튼튼히 새로운 출발을 준비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 하나

빗방울 하나

제 사명을 다하듯

 

허지로 떨어지는 말씀하나

허지로 떨어지는 약속하나 없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55:8-11)

🍀16세기 독일의 수도원에 한 젊은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금식도 했고, 밤새 기도도 했으며, 작은 죄라도 떠오르면 고해실로 달려가 죄를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속에 나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기도할 때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고해를 듣던 신부가 말했습니다.

“형제, 하나님이 정말 화내실 만한 죄가 생기면 그때 다시 오시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전혀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나는 죄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결국 나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에게 “하나님의 의”라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공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 열심히 금식하고 고행하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언제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어느 날 그는 위텐베르크 성의 탑 방에서 로마서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성경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의 눈에 한 구절이 들어왔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는 그 구절을 다시 읽었습니다. 또 읽었습니다. 밤이 깊도록 계속 읽었습니다. 그 순간 그의 마음에 번개처럼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아… 하나님의 의는 내가 만들어 내는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의였구나.”

 

그는 갑자기 모든 것이 이해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심판하기 위해 의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살리기 위해 의를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 순간을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때 나는 완전히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 열린 문을 통하여 낙원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에게 그동안 두려움의 단어였던 “하나님의 의”는 이제 가장 달콤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마틴 루터… 그 깨달음으로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만들지 못합니다. 율법은 단지 우리의 죄를 비추는 거울일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놀라운 선언이 등장합니다.

 

[로마서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이제는…”

 

이 의는 인간이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위로부터 나타난 것입니다.

인간의 의는 태양을 향해 손전등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밝게 비추어도 태양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의 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서 나온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입니다.

 

의로운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받을 때 구원이 시작됩니다.

 

이 의는 죄인을 심판하는 의가 아니라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는 차가운 의가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가장 따뜻한 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더러움을 보시고 정죄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구원의 옷과 공의의 겉옷을 입혀 주시는 분입니다.

이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한 가지 일이 반드시 일어납니다.

 

자기의 의가 무너집니다. 공로주의가 무너지고 자기 자랑이 사라지고 자기 부인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위대한 종교개혁의 외침은 중세암흑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복음의 아침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침은 그냥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렀습니다.

말씀에 목숨을 건 위대한 결단들이 있었습니다.

종교와 정치가 연합되었을 때 무고한 피를 무수히 흘리게 했습니다.

종교재판, 마녀사냥, 십자군운동...

그 위대한 종교개혁의 결과로 개혁자들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프로테스탄트 개신교의 등장입니다.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의 기치위에 탄생한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20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루터교와 천주교(로마 가톨릭)는 과거의 갈등을 넘어 ‘화해와 일치’를 향한 기념비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500년 전의 분열을 반성하고, 신학적 대화를 통해 공동의 유산을 확인하는 과정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1. 핵심 배경 및 화해의 의미

갈등에서 사귐으로: 루터교세계연맹(LWF)과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는 2013년 발표한 문헌 '갈등에서 사귐으로(From Conflict to Communion)'를 바탕으로, 종교개혁을 단순한 분열이 아닌 교회 쇄신의 과정으로 재평가했습니다.

 

공동 기념 예배: 2016년 10월 3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스웨덴 룬트에서 열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예배에 직접 참석하여 루터교 지도자들과 함께 공동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2. 신학적 화해: 칭의 교리 합의

가장 큰 신학적 쟁점이었던 '칭의(Justification, 의롭게 됨)'에 대해 양측은 '의화 교리에 대한 공동 선언(1999)'을 통해 근본적인 일치를 확인했습니다. 이는 루터교의 '오직 은혜'와 가톨릭의 '믿음과 행함'에 대한 이해 차이를 극복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중세를 장악하던 중세교회가 회개하여 주님께로 온전히 돌아온 것일까요? 루터의 개혁의 기치의 손을 높이 들어준 것일까요? 온 세상의 종교는 내 생각, 네 생각으로 버리고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위하여 하나되는 것일까요?

성경은 마지막 시대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대한 운동이 일어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창세기 11장에 하나님을 대적하여 바벨탑을 쌓았던 것처럼, 마지막 시대 종교, 정치, 경제적 연합이 있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은 무너졌으나, 그 무너진 곳에 영적 바벨론이 등장하여, 하나님을 대적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할 뿐만 아니라 교묘하게 자신을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탈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살후 2:3-4)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3-16)

그것은 이스라엘, 중동으로 부터 시작되는 세계3차대전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계명을 대항하여 일어나는 짐승의 표를 받게 하는 영적 세계대전일까요?

이 소중한 시간

우리는 더욱 성경을 깊이 연구하여 요동하지 않는 말씀의 기초위에 신앙의 집을 지어야합니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 5:3-6)

 

https://youtu.be/8VYYplDW4RY

https://youtu.be/0EbSNQM8Lx0?list=PLhuKCEBVU717FY2VR-umJPWOhVE2j9ncW

 

 

 

 

https://youtu.be/u1dJCiedUL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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