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무도 예외없이 낮과 밤을 맞는다. 낮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밤은 우리에게 쉼을 준다. 낮이 시작되면 지혜로운 자는 하루를 설계한다. 밤이 오면 현명한 자는 조용히 하루를 되돌아보며, 하루에 대한 점검과 반성, 그리고 감사의 시간을 가진다.
더욱 지혜로운 자는 하루를 마치는 시간에 하루의 삶뿐 아니리 일생을 되돌아보며, 일생이란 무거운 짐들을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기며 단잠을 잔다.
무릎 꿇는 낙타
날이 저물면 낙타는 모래 벌판에
무릎을 꿇는다.
온종일 지고다닌 무거운 짐을 내리게 하여
휴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영혼아, 해가 지고 한 날이 저물 때
너도 무릎을 꿇으려므나.
그래야 네 주인께서도 네 짐을 들어 내리시고
네게 휴식을 주실 수가 있으시니까.
만약 그대가 짐을 진 채로
온 밤을 지샜다면,
어떻게 할 일이 태산 같은 내일을
내일로 맞이할 수가 있을까.
날이 새면 낙타는 다시 무릎을 꿇어
그의 주인으로 다시 짐을 지우게 한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사막 길을 힘차게 달린다.
나의 영혼아, 먼동이 트거든 너도 무릎을 꿇어,
네 하나님께서 네게 일과를 주시게 하라.
그 분은 네가 지기에 너무 큰 짐을
결코 지우지 아니하실 줄 확신하여라.
-Anna Temple-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밤을 낭비한다. 밤을 탕진한다. 욕망과 쾌락의 종이되어서 밤을 즐긴다. 마치 그날이 영원히 계속될 것인양 먹고 마시고 취하여 즐긴다. 본능대로 살고, 재물만을 위해 살면서, 하나님과 영원한 사물을 무시하고 흥청망청 인생을 즐기며 사는 사람은 이러한 선고를 듣게 될 마지막 밤을 맞이하게 된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바벨론의 왕 벨사살이 그러했다. 지금 고레스의 대군은 그들을 포위하고 호시탐탐 공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왜 이러한 잔치를 이런 때에 베풀었을까?
백성들은 불안과 염려속에서 떨고 있는데, 그들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켜야 할 왕은 마치 그들의 포위를 비웃는듯, 20년 먹을 양식을 비축해 놓고 있는데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듯, 유브라테스 강물이 바벨론성곽을 두르고, 높고 높은 성벽들이 세겹이나 두르고 있으니 아무 걱정말고 안심하라는 듯, 술을 마시고 흥청 망청 즐기고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두려움들을 술로 달래려고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도 메대와 페르샤의 대군에 의해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되어 불안하고 동요하는 백성들에게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듯, 태연하게 잔치를 함으로써, 그들에게 안도감을 주려는 제스쳐일 수도 있다. 고조되는 불안을 잊고 진정시키기 위해, 여럿이 한 대 어울려 술을 마셔야 할 필요가 절실해진 사람이 바로 벨사살이었다.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그릇을 가져오라고 명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단 5:1-2)
벨사살, 그는 결코 모를리 없다. 다니엘서 2장의 대왕의 꿈, 다니엘서 3장의 금신상, 그리고 다니엘서 4장의 7년동안의 느부갓네살왕의 들짐승같은 생활, 하나님의 회복케 해 주신 축복....
그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바르게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임을 끊임없이 이야기 해주었건만 그는 귀를 막고 현실을 즐긴다. 마치 고집스런 현대인들처럼, 하나님의 분명한 계시의 말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대의 과학들이, 현대 문명들이, 현대의 기술들이 마치 그들에게 죽음을 해결하고 영생이라도 줄것 같은 착각속에 빠져서 현대 문명의 향락을 즐기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게다가 술과 여자들과 더불어 즐기는 가장 추악한 잔치를 위해 가장 거룩한 것을 범하였다. 사람이 술귀신(酒鬼․alcohol demon)의 지배를 받게 되면, 거짓으로 담대해지고 자제력이 약화되고 흐려지면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러한 과정이 벨사살에게서 연출되었는데 그의 부절제(intemperance)는 부적절(impropriety)한 행동을 하게 했으며 그 결과로 불경건 (impiety)한 행동을 서슴치 않아 하나님을 모독하여 우상숭배(idolatry)를 자행하게 했다.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드릴 가장 거룩한 금잔들을 술을 따르고 마시는 부정한 도구들로 사용하다니...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탈취하여 온 금 그릇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과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더라 그들이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단 5:3-4)
가장 거룩한 것이 가장 가증한 것이 썪여 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명수의 맑은 물에, 생명을 앗아가는 독극물을 몇방울 빠트리면 그것은 살리는 생명수가 될까? 죽이는 독극물이 될까? 바로 그것이 마지막 시대에 다시 반복될 온 세상을 유혹하고, 취하게하고, 멸망으로 이끌 음녀의 금잔, 바벨론의 포도주 잔이 되는 것이다.
「. . .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 . . 내가 보니. . .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과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보석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계 17:1-4).
하나님 성전의 금잔으로 우상을 경배하는 자리에서 포도주를 부어 마시는 이 행위는 고의로 거룩한 것(聖)과 속된 것(俗)의 구분을 짓밟아 없애는 최악의 신성모독이다. 그것이 고대 바벨론의 최대의 죄악이요, 현대 바벨론을 파멸시킬 죄악인 것이다. 그때에도, 이 세상에도 가장 어두운 밤에 찬란한 별이 떠올라, 하늘의 경고를 분명히 알려줄 것이다.
이제 간접적으로 듣기만 했던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가 술취한 그의 술잔치의 벽에 나타났다.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 왕이 크게 소리 질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에게 말하되 누구를 막론하고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리니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라”(단 5:5-7)
얼마나 놀랐을까? 벨사살의 극에 달한 고의적인 반역과 신성모독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대응하셨는가. 죄악의 잔이 막 그 한계를 넘친 그 순간 곧 「그 때에」 하나님의 손가락이 나타난 것이다. 손가락이 나타났다는 것을 그 손가락의 주인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보통 사람의 손가락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가락인 것이다. 일찌기 출애굽 당시에 바로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고의적으로 항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재앙들을 보내셨는데 술사들은 이를 가리켜 「하나님의 손가락」이라고 바로에게 고했다(출8:19). 얼마 후 이집트에는 재앙을 내리셨던 하나님의 그 손가락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증거의 두 돌비에 새겨진 거룩한 십계명을 주셨는데, 「이는. .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난 하주)」친히 쓰신 것이었다(출 31:18).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귀신을 쫓아내신 것도 「하나님의 손이었으며 (눅 11:20),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앞에서 스스로 의로운 체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거짓과 죗됨을 드러내시기 위해 땅 바닥에 글을 쓰신 것도 「하나님의 손가락」이었다(요 8:1-9, 렘 17:13). 이제 벨사살은 하나님의 그 손가락을 본 것이며 그 손가락만으로도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 : 8)는 선언을 읽은 것이다.
하나님의 손가락이 나타나 왕궁 벽에 손가락으로 글짜를 쓰는 모습을 모두 다 보고 사시나무 뜰듯, 모두가 한순간에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버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도대체 무슨 글짜인가?
바벨론의 지혜자들 조차도 그글짜가 무슨 글짜인지 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때 다니엘을 부르고 다니엘은 그 글자를 통해 나타난 엄숙한 심판의 경고를 전한다.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단 5:22-23).
느브갓네살의 일대기를 회고한 다니엘은 벨사살을 그와 견주며 변명할 여지가 없는 논리로 죄상을 밝히고 있다. 느브갓네살은 그토록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만심을 품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책망을 받을 때는 즉시 이에 합당한 반응을 보였었다. 그런데 벨사살은 그만큼 위대하지도 못하고, 교만해야 할 아무 조건도 없으면서, 그토록 방자(放恣)히 처신했음은 묵과(黙過)할 수가 없는 터였다. 무엇보다도 큰 죄는 벨사살 자신이 「이 것을 다 알고도」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공공연히 모독하고 거역했다는 사실이었다. 벨사살은 느브갓네살의 행적을 낱낱이 알고 있었다. 그의 후계자로서 그가 마땅히 따라야 할 교훈이 무엇임도 잘 알고 있었다. 모든 죄가 죄지만 죄책에 따른 심판과 형벌은 그가 아는 것에 비례하는 것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느브갓네살은 모르고 교만했지만 벨사살은 알고도 교만했으므로, 그의 죄는 더욱 무거운 것이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롬 1:21), 모든 증거와 징조가 분명한데도 자신들의 주장과 거짓 이론을 내세워 진리를 「부러 잊으려」하는 사람들(벧후 3:5)의 책임은 어떠한가. 다음 번으로 다니엘이 지적한 벨사살의 죄상(罪狀)은 그의 종교였다. 이 문제야말로 벨사살은 물론 바벨론의 뿌리가 되고 있는 근본 문제였다. 자신의 호흡과 생명을 주장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멸시하고 벙어리요, 소경이요, 귀머거리인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일이야말로 인간 도리의 배반이요, 개인과 국가의 불행이요, 수치요, 파멸인 것이다(행 17:24∼29).게다가 느브갓네살에 거듭거듭 주어진 교훈인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을 무시하고 이를 훼방한 죄는 정죄받아야 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신」(행 17:30, 31) 바, 이 날이 벨사살에게는 개인적으로 이른 것이다.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한」것이다(5:24).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단 5:25-28)
인생이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주권자인 하나님이 계신다. 그 하나님은 인생을 땅에 심으시고, 돌보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 수확하려 오신다.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태울 것이다.
인생을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는 자신의 견해가 아니라, 우리를 제대로 알아보시는 하나님의 측량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개인과 나라의 행실을 달아보시는 심판의 저울을 가지고 계시다. 이 하늘의 저울은 공평(公平)할 뿐더러 정확하여서 아무도 속일 수가 없다. 개인과 나라에게 부여된 모든 축복과 편의와 특전에 따라 어떻게 이에 상응하는 처신을 했는가의 여부가 저울의 평형(平衡)을 좌우할 것이다. 바로 이 저울(天秤)에 벨사살이 달려 중량(重量) 미달이 되었으며, 벨사살 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개인적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은 이 말을 벨사살에게 확대하여 풀이하면서,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5:27)라고 적용했다. 참으로 영원한 운명이 선고되는 순간 하늘 법정으로부터 부족하다는 선언을 받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받기 위하여(전 12:14),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엄숙한 일인가(롬 14:10). 나는 그 심판의 저울에 달리울 때 동기까지 보시는 하나님에 위하여 부족하다는 두려운 선고를 받지 않겠는가.
「나는 한 천사가 손에 저울을 가지고 서서 하나님의 백성 특히 젊은이들의 생각과 관심을 달아보는 것을 보았다. 저울(天秤)의 한 쪽에는 하늘을 향한 생각과 관심이 놓여 있었고 다른 쪽에는 세상에 대한 생각과 관심이 놓여 있었다. 이 쪽 저울에는 소설을 읽는 것과 의복과 외모와 허영과 교만들에 관한 생각이 실려 있었다. 저울을 가진 하나님의 천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즉 세상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생각을 달아보는,
아! 이 순간은 얼마나 엄숙한가! 세상에 대한 생각과 허영과 교만으로 채워진 저울판은 그 저울판에서 무게가 자꾸 흔들려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밑으로 쑥 기울어졌다. 하늘로 향한 생각과 관심이 실린 저울판은 반대편 저울판이 내려감에 따라 위로 쑥 올라갔다.
아! 이 것은 얼마나 가벼운지! 나는 이 사실을 내가 본대로 진술할 수는 있지만, 저울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각과 관심을 달아보는 천사를 보는 때, 내 마음에 받은 그 엄숙하고 생생한 인상은 결코 표현할 수가 없다. 천사는 말하기를 ‘이러한 사람들이 하늘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아니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소망은 헛된 소망이니 그들이 속히 회개하고 구원을 얻지 못하면 그들은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라’ 하였다.」 (1T, 124, 125)
바벨론이 아무리 강대하고, 아무리 방비하여도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하룻밤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예언은 이미 150여년전 이사야에 의해, 예레미야는 70여년 전에 바벨론의 멸망을 구체적으로 예언하였다.
이사야의 예언
메대가 에워 쌀 것임. 사 21:2.
강물을 마르게 할 것임, 사 44:27
고레스 앞에 놋 문이 열림. 사 45:1.
고레스에게 막대한 보화가 주어짐. 사 45:3.
쾌락을 즐기다가 파멸될 것임. 사 21:4.
섬기던 우상들과 함께 망할 것임. 사 21:9.
쉽사리 함락될 것임. 사 45:2.
예레미야의 예언
바벨론의 우상을 심판하심. 렘 50:2, 51:47.
북방에서 오는 백성에 의한 멸망. 렘 50:3, 9, 41.
메대가 이르러 칠 것임. 렘 51:11, 28.
바벨론에 대해 기습을 준비하라. 렘 51:12..
함정을 깨닫지 못하는 바벨론. 렘 50:24.
싸우기에 무력해진 바벨론의 용사들. 렘 51:30.
보발군이 함락의 소식을 전함. 렘 51:31.
쾌락을 즐기고 술취하여 망함. 렘 51:39, 57.
바벨론의 멸망은 하나님에 의해 명령되었음. 렘 50:18, 25, 29, 31, 45, 51:1, 8, 24, 25.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6-17)
세상 마지막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론도 무너질 것이다.
말씀위에, 만세반석되시는 말씀위에 인생을 건축하는 자들만 영원을 누리게 될 것이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계 18:4-5)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https://youtu.be/ecqhzKbrht4?list=PLhuKCEBVU714ZhC-Rpbg4i-YwE7-yXWq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