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10대는 철이 없고,
20대는 답이 없고,
30대는 집이 없고,
40대는 돈이 없고,
50대는 일이 없고,
60대는 락(樂)이 없다.
70대는 이가 없다
80대는 처가 없다
90대는 시간이 없다
100대는 다 필요없다
참 그럴싸한 이야기 같다.
그런데 다니엘의 삶은 달랐다.
철이 없는 10대에 하나님을 향해 뜻을 정했고,
답이 없는 20대에 꿈을 해석하는 답을 가졌고,
집이 없는 30대에 왕궁에서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락(樂)이 없는 60대에 말씀묵상의 락을 누렸고,
이가 없는 70대에도 건강을 유지하며
일이 없고, 힘이 없을 80대에 당당한 일인자, 넘사벽의 자리에 서 있었다.
바벨론은 망해도, 그는 다음 나라 메대에서 조차도 정치방면 최고의 자리를 유지한다.
무엇이 그의 능력의 비결이었을까?
무엇이 그의 탁월함의 비결이었을까?
그것은 다니엘의 기도의 습관에 있었다. 기도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그 위기속에서도 조금도 흔들림없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열고 기도하는 그의 신실함을 하나님이 아시는 것이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다니엘의 삶의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를 시기하는 자들이 아무리 터집을 잡으려고 애를 써봐도, 먼지 하나 나지 않는 사람, 털어먼지나지 않는 고결한 삶의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그러자 다른 정승들과 지방장관들은 다니엘이 정사에 무슨 실수라도 하지 않는가 눈을 밝히고 보았지만 그에게서 트집잡을 만한 허물은 하나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다니엘은 충직한 사람이었으므로 아무런 허물도 실수도 없었던 것이다.”(단 6:4, 공동)
흔히들 모든 것이 은혜라고 핑계되며, 자신의 허물과 잘못들을 은근슬쩍 눈감고 살아가려 한다. 다니엘은 언행이 그야말로 일치하는 삶이었다. 믿음과 생활이 하나된 삶이었다. 그의 삶의 순결의 비밀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코람데오의 마음 아니었을까? 그리고 우리가 바라봐야할 신앙의 참 모본이 아닐까? 경건이라는 단어 Godliness에서 처럼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존경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이 아니었을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7-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단 6:5)
이 놀라운 약속들이 그의 삶에서 분명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의 삶의 능력의 비결을 어찌 사탄이 모르랴!
그래서 사탄은 다니엘을 무너트리기 위해 그의 힘의 근원 하나님과의 연결된 생명줄, 축복의 줄, 기도의 줄을 잘라 버리려고 계략을 세운다.
그래서 사탄은 그가 사용하는 악한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한 법령을 만들게 한다. 30일동안 어떤 신에게든지 기도금지령을 내리게 한다. 왕의 이기심과 교만을 부추켜 다니엘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말 그들은 스스로의 지혜에 탄복해 했을 것이다. 다니엘이 자신들이 세운 법에 맞추어 기도를 멈춘다면 그의 영적 능력과 총명은 사라질 것이고, 기도를 지속한다면 틀림없이 그것은 죽음이다. 그야 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좋은 방책이라고 스스로들 좋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조서에는 왕의 도장이 찍혔다. 그리고 나중에 다니엘을 신임하고 좋아하는 왕이 다니엘이 죽게될만한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번 반포된 메대와 바사의 법은 고치지를 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단 6:8-9)
이런 위기를 맞으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잠시 쉬었다 기도할까?
아니 꼭 무릎을 꿇어야 기도인가?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 마음으로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다니엘은 달랐다. 그는 조금도 개의하지 않고, 그는 기도의 생활을 지속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기도는 주님께 살려달라는 탄원의 기도가 아니라 주님과의 교제를 누리는 감사의 기도였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자신이 엄연히 나라의 총리인데도, 신앙과 민족적 이질성(異質性)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철저히 따돌림을 당하고, 이제 저의가 분명한 법령을 통과시켜 생명까지 빼앗으려는 살벌한 현실에 처해진 다니엘의 느낌과 처신은 어떠했는가. 두려워하고 근심하여 초조했는가. 자기 연민(憐憫]이나 비하감(卑下感)의 그림자는 조금도 없이, 더더구나 외로워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이,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 · · 전에 하던 대로」 변함 없이 행동한 것이다.
원수들이 자신의 일거일동(一擧一動)을 감시하는 줄 알면서도, 그는 온종일 국무(國務)에 충실했으며, 여전히 제 시간에 집으로 돌아갔고 여전히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으며, 두려워하는 대신 여전히 감사로 가득찬 일과를 보냈다. 세상이 보든 말든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태양처럼, 언제나 변함없이 궤도를 달리고 있는 항성(恒星)처럼,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없이 구름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높은 산 봉우리처럼, 다니엘은 인간 세상의 기상(氣象)변화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전천후(全天候) 인간이었다.
「다니엘은 금령을 만드는 그들의 악의에 찬 의도를 재빨리 알았으나 그의 행동을 조금도 바꾸지 아니하였다. 그에게 기도가 가장 필요되는 때인 지금에 왜 그가 기도하기를 멈출 것인가. 차라리 그는 생명 그 자체를 버릴지언정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그의 소망을 버리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침착하게 방백들의 수령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였고 기도의 시간에는 그의 방에 들어가 평상시의 습관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문에서 하늘의 하나님께 그의 소원을 아뢰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감추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는 그가 하나님께 충성하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동요하지 아니하였다. 그를 멸하려고 음모하고 있는 자들 앞에서 그는 하늘과 자기의 관계가 단절된 것을 나타내는 것까지라도 허락하고자 하지 않았다」(선지자와 왕, 517).
「이와 같이 선지자는 담대하나 침착하고 겸손하게, 세상의 어떠한 권세도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개입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선언하였다. 우상숭배자들에게 둘러싸인 다니엘은 이 진리에 대한 충성스러운 증인이었다. 의에 대한 다니엘의 굴하지 않는 집착은 그 이교의 궁정의 도덕적 흑암 가운데 빛나는 밝은 빛이었다. 다니엘은 그리스도인의 담대함과 성실함의 값 있는 모본으로 오늘날 세상 앞에 서 있다」(선지자와 왕,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7, 18).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그것은 영적 능력의 비결이다. 다른 어떤 은혜의 수단도 이를 대신할 수 없으며 영혼의 건강을 보존할 수도 없다」(GW, 254).
「마귀는 기도를 게을리하는 자들을 어두움으로 가두어 놓는다. 이 원수의 속삭이는 시험은 저들을 죄에 빠뜨리려고 유혹한다. 이 모든 것은 다 저희가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청하실 때에 그 주신 바 특권을 사용치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정로의 계단, 76).
「그런데 기도를 게을리하고는 하루라도 한 순간이라도 안전할 수는 없다. 성경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에는 특별히 기도할 것이다」 (각시대의 대쟁투 하권, 349).
죄짓는 사람은 기도하기를 그칠 것이며, 기도드리는 사람은 죄짓기를 그칠 것이다. 다니엘은 이제 자신의 생명과 바꾸게 될 값 비싼 기도, 그러나 가장 위대한 기도를 드림으로써, 신앙에서의 기도의 효능(效能)과 중요성을 행동으로 입증한 것이다. 다니엘에게 기도가 그토록 시급하고 중요했다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떠한가.
사자굴에 던져 졌으나 하나님은 사자들의 입을 막아주셨다. 다니엘에 대한 염려로 밤새 잠한심 자지 못한 왕은 새벽에 사자굴앞에서 다니엘을 향해 부르짖는다.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단 6:20-22)
다니엘을 참조하던 자들은 사색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도우심의 역사앞에 조롱하면서 “어쩌면 사자가 배가 불러서 먹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랬을 지도 모릅니다. 그때 화가난 왕은 “사자가 배가 고픈지 안 고픈지 네가 들어가 보아라”하면서 사자굴에 던져 넣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단 6:24)
이게 큰 감동을 받은 왕은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온 나라에 선포합니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단 6:26-27)
이 놀라운 이야기는 전설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의 일상에서 경험해야할 과제입니다. 아니 앞으로 우리는 직면하게 될 대쟁투의 모습입니다. 그대는 어떻게 서겠습니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