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복음카드

요한계시록 12장 세번째 : 선악의 3차대전의 내용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6.05|조회수574 목록 댓글 0

 

우리의 인생도 선악의 싸움의 전쟁을 경험합니다. 우리의 마음안에서, 우리의 인생안에서 우리를 대적하는 자를 만나게 됩니다.

첫번째 전쟁은 하늘에서 있었습니다. 선과 악의 싸움에서 악인 루스벨이 천사1/3과 더불이 이땅으로 쫓겨내려왔습니다.

두번째 전쟁은 이 땅에서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죄를 지어범죄케 하고, 하나님은 창세기3장 15절에 여인의 후손을 약속하고, 아브라함-이삭-야곱-12아들-유다지파로 이어지는 계보를 통하여 메시야가 오시는 길을 용은 막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아기를 해산하고, 메시야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갚아주시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세번째 전쟁은 신약시대의 교회를 향한 사탄의 핍박입니다. 이제 아이를 낳은 여자, 곧 교회를 핍박하는 무시 무시한 공격입니다. 이 잔혹한 용, 사탄, 마귀에 의해 물어뜯겨 순교한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될까요? 그러나 교회는 순교함으로 이겨냈습니다. 순교자는 피는 복음의 씨앗이 되어 더욱 널리 복음을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복음이 무엇이기에 죽음앞에서도 저렇게 의연한가? 자기를 향하여 내리 찢는 도끼날에 향나무가 향을 묻히듯, 수많은 순교자들의 태도와 모습은 주님의 사랑, 절대 희망, 죽음을 이기는 소망을 핍박하는 자들에게 조차 보여주었습니다. 핍박하던 로마마저 기독교로 돌아가려고 하자, 사탄은 급속히 전략을 바꿉니다. 핍박에서 타협책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313년 밀라도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합니다.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망을 품었던 이들이 많습니다. 그 중 한명이 나폴레옹입니다. 그는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여 죽으면서 마지막 유언같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칼로서 세상을 정복하려 했다. 그러나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를 위하여 죽을 이는 아무도 없다. 예수는 사랑으로 온 세상을 정복했다. 그를 위하여 죽을이는 온 세상에 가득하다. 나사렛 예수여! 그대는 진정한 승리자이다.”

복음의 진정한 승리는 사랑입니다. 말씀입니다. 진리입니다. 그것을 잃으면 아무리 번영과 인기를 누려도 패배한 것입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2-13)

 

 

수많은 이교의 문화와 종교를 복음으로 이름으로 변형시켜 버립니다. 순교로 지켜왔던 복음의 순수성이 타협과 풍요 속에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종교와 정치가 결합되자 신의 이름으로 자기와 다른 사상을 가진 이들을 종교재판이라는 이름으로 핍박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잔혹하고 치열했던 3차 대전으로 초대합니다.

[선악의 3차 대전] 여자(교회)와 용(사탄)의 전쟁 - 신약시대의 교회

 

[12:13~16]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계 12:13)

 

초대 교회의 형성과 로마 제국의 박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합심하여 기도하던 120명의 제자들에게 약속된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은 제자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과 유대, 사마리아를 넘어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 제국 전역으로 삽시간에 번져 나갔으며, 그 어떤 세력도 이 도도한 흐름을 막지 못해 마침내 그리스도 교회의 견고한 기초가 세워졌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그러나 서기 100년경을 전후하여 기독교의 확장을 저지하려는 영적 세력의 충동으로 로마 제국의 잔혹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네로 황제를 필두로 베스파시안, 타이터스, 도미시안, 트라얀, 아우렐리우스, 막시미누스, 데시우스, 발레리안, 디오클레시안에 이르기까지 약 10대에 걸친 황제들은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사정없이 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성도가 목숨을 잃고 순교했습니다.

이처럼 엄청난 육체적 박해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쇠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극심한 시련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그들의 믿음은 더욱 순결해졌으며, 목숨을 걸고 주님께 충성하는 이들의 수는 날로 늘어갔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의미했던 이 시대에 성도들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요한계시록 2장 10절의 말씀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견뎌냈습니다. 결국 무력으로 기독교를 전멸시키려던 사탄의 1차 전략은 차질을 빚게 되었고, 이에 따라 새로운 기만책이 준비되기 시작했습니다.

 

▢ 밀란 칙령과 교회의 타락 및 배도

물리적 압박에 실패한 영적 세력은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를 통해 두 번째 전략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콘스탄틴 황제는 서기 313년 밀란 칙령을 공포하여 기독교를 공인하고 모두에게 종교 선택의 자유를 부여했습니다. 이로써 200여 년간 지속되던 몸서리치는 핍박은 멈추었고 교회에는 자유와 함께 물질적인 번영의 물결이 밀려들었습니다. 황제는 성직자들에게 다양한 특권과 권한을 부여했으나, 안타깝게도 이는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속과의 타협이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면서 복음의 순수한 진리는 감추어졌고, 이방 종교의 풍습과 온갖 오류들이 서서히 교회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러한 타락의 정점은 예배일의 변경으로 나타났습니다. 서기 321년 콘스탄틴 황제는 일요일 휴업령을 발표했는데, 당시 일요일(Sunday)은 로마의 이교 신인 태양신 미스라를 경배하는 날이었습니다. 이교의 제도가 교회에 스며들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정당한 예배일인 안식일의 제도가 무너져 내렸고, 교회는 교리적으로도 심각한 배도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진리의 붕괴 속에서 당시 로마 교회 감독의 권위와 영향력은 점점 더 비대해졌습니다. 특히 서기 330년 콘스탄틴 황제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시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기면서, 권력의 공백이 생긴 로마 시에서는 로마 교회 감독이 실질적인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장차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게 될 교황권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무력 박해에 실패하자 교회를 안으로부터 타락시킨 뒤, 그 타락한 교회의 권력으로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을 핍박하려는 영적 세력의 새로운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 중세 종교 암흑시대와 남은 무리의 정조

 

이러한 시대적 조류 속에서 로마 교회 감독은 막강한 권한을 쥐게 되었으며, 그 누구도 이 거대한 흐름을 저지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로마 교회의 세력에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민족인 동고트가 서기 538년에 정복당하면서 온 세상은 로마 교회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이로써 교회사에서 가장 어두운 ‘종교 암흑시대’의 막이 올랐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교회는 1798년 교황 비오 6세가 프랑스 군대에 의해 잡혀가 사망하기까지 12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로마 교회의 잔인한 박해를 받으며 견뎌야 했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은 요한계시록 12장 6절과 14절에서 여자가 광야로 도망쳐 1260일 동안, 혹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뱀의 낯을 피해 양육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으로 정확히 선포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나긴 중세 암흑기 동안에도 핍박을 피해 광야로 쫓겨 다녔던 교회의 명맥, 즉 하나님의 ‘남은 무리’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알비젠스인들과 왈덴스 교도들을 비롯한 무수한 성도가 목숨을 걸고 진리를 수호해 나갔습니다.

 

이후 세대와 시대를 거치며 쯔윙글리, 칼빈, 낙스의 장로교회(1484~1531), 프랑스 개혁파 위그노(16세기), 위클리프의 정신을 이은 영국교회(1558~), 로버트 브라운과 죤 로빈슨의 회중교회(17세기), 죤 스미스의 침례교회(1554~1612),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들(1620~), 죠지 폭스의 퀘이커 교회(1624~1691), 웨슬리 형제의 감리교회(1703~1791), 토마스 캠벨의 그리스도 교회(1807~), 윌리암 부트의 구세군(1829~1912), 카우만과 길보론의 성결교회(1904~), 그리고 19세기 초 윌리암 밀러의 재림 운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믿음의 용사들이 진리의 횃불을 높이 들었습니다. 교회와 세상, 그리고 하나님의 참 백성들과 배도한 교회 사이에 벌어진 선악의 싸움은 참으로 길고 지루했으나, 이 투쟁 역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종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 종교 개혁과 사탄의 반격, 그리고 미국의 출현

 

마침내 1517년 마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 개혁으로 기나긴 중세 종교 암흑시대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성경 말씀에 기초한 개신교회들이 우후죽순 탄생하자, 위기감을 느낀 로마 교회와 세상 정부의 권력은 핍박을 더욱 강화하며 개신교 사상을 말살하려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1540년(혹은 1534년) 이냐시오 데 로욜라에 의해 발족된 ‘예수회(제수이트)’는 철저한 교육 사업과 세계적인 정치 활동을 발판 삼아 개신교회를 매우 잔인하게 박해하며 개혁 운동의 맥을 끊으려 했습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12장 15절에서는 이 긴박한 상황을 가리켜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려” 한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혹한 박해 속에서 개신교 세력은 내부적인 약점도 드러냈습니다. 성경이라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 위에서 종교 개혁이 일어났으므로 말씀에 기초한 하나의 교회로 발전해야 마땅했으나, 교황권에 의해 가려졌던 성경의 진리들이 저마다 하나씩 새롭게 발견될 때마다 개별적인 교파들이 갈라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서로 이질감을 느끼며 반목하는 과정에서 종교 개혁의 전체적인 동력은 오히려 약화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침체기 속에서 잉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등지에서는 국교주의를 강화하며 모든 국민이 엘리자베스 여왕을 교회의 수장으로 인정하도록 강제하는 ‘교식통일령(1559년)’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국교주의 안에는 가톨릭의 교리와 의식적 잔재가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기에, 종교 개혁의 정신을 철저히 따르던 청교도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국가가 이들을 전방위로 탄압하면서 종교 개혁의 물결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깊은 정체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영국의 가혹한 탄압과 종교적 부자유를 견디다 못한 일단의 청교도 무리는 1620년, 윌리엄 브루스터를 지도자로 삼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 일대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현재의 미국 플리머스에 상륙한 성도는 남자 78명, 여자 24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은 척박한 뉴잉글랜드 땅을 개척하고 퓨리타니즘에 기반한 회중교회를 세워 미국 역사에 깊은 영적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이들이 세운 “왕 없는 나라, 교황 없는 교회”라는 이념은 훗날 종교의 자유가 완벽히 보장된 거대한 개신교 국가인 미국의 건국 기초가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6절에서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킨다”고 한 예언은 바로 이 극적인 역사적 사건을 가리킵니다. 예언서에서 ‘바다’가 수많은 사람과 무리가 북적이는 곳(유럽)을 뜻한다면, 그 반대 개념인 ‘땅’은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한적한 신대륙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핍박받는 ‘여자(교회)’를 도운 ‘땅’은 청교도들을 품어 준 미국을 상징합니다. 이로써 유럽에서 완전히 전멸당할 위기에 처했던 참된 교회는 신대륙에서 기적적으로 소생하여 큰 힘을 얻었고, 마침내 전 세계를 향해 마지막 선교의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악의 4차 대전] 여자의 남은 무리(교회)와 용(사탄)의 전쟁 - 최후의 결전

[12:17] 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치열한 4차대전에 대한 내용은 다음에 시간에 더 깊이 연구를 하겠습니다.

 

선악의 대쟁투에서의 승리의 비결

 

성경은 인간의 역사를 단순한 정치적·사회적 사건의 연속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 배후에는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거대한 대쟁투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이 전쟁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요?

1. 어린양의 피를 의지하라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계 12:11)

 

대쟁투의 첫 번째 승리의 비결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붙드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죄를 고발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우리를 변호하십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승리는 우리의 결심의 강도에 있지 않고 십자가의 능력에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라

 

예수님께서는 광야의 시험에서 세 번 모두

"기록되었으되"(마 4장) 라는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싸움은 단순한 감정의 싸움이 아니라 **진리와 오류의 싸움**입니다.

말씀을 읽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무기를 놓고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와 같습니다.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

3. 성령의 능력을 구하라

 

스가랴 선지자는 말합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신앙생활은 인간의 의지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기도는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되는 능력의 통로입니다.

성령께서 마음을 다스리실 때 죄를 이길 힘이 생깁니다.

 

4.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으로 순종하라

 

마지막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고 묘사됩니다.

 

순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의 열매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율법을 무너뜨리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사랑으로 계명을 지킵니다.

 

하나님께서 친수로 기록하신 계명을 인간이 자기의 권한으로 변경하려는 것은 얼마나 큰 하나님께 대한 도전입니까? 성령은 돌비에 기록한 계명을 우리의 심비에 기록하여 우리안에 하나님의 품성, 형상을 회복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당신의 백성을 세우실 것입니다.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 8:10)

 

5. 끝까지 인내하라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

 

대쟁투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입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승리하는 사람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잠 24:1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6-39)

 

선악의 대쟁투의 승리 비결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것이다."**

 

어린양의 피를 의지하고,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능력을 구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으로 순종하고,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마지막 승리의 장면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이렇게 노래합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계 7:10)

 

대쟁투의 승리자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 곁에 끝까지 머문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붙드는 손이 약할지라도, 우리를 붙드시는 그분의 손은 결코 약해지지 않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

 

https://youtu.be/2g7FE8jNPb0?list=RD6fNSs2MkeoA

 

https://youtu.be/pAEAjPjM1sE

 

 

https://youtu.be/vEKq5wIRGso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