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6-7)
이 세상은 참으로 경이로운 것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입니다.
하늘에도, 땅에도, 바다에도 수많은 생명체들이 제각기의 삶을 유지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그 생명을 유지해 갈 수 있을까요?
달팽이는 도대체 그런 느린 걸음으로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잘도 살아갈 수 있을까요?
굼벵이는 어떻게 그렇게 둔한 동작으로 이렇게 빨리 변하는 세상을 어엿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바퀴벌레는 수많은 사람의 미움과 욕과 저주를 들어면서도 세상에서 종족을 유지하고 자기들의 영역을 넓혀 나가는 것일까요?
개미들은 어떻게 그 작은 몸짓으로 그 연약함으로 자기들의 왕국을 이루며 단체생활과 사회질서들을 유지해 나갈까요?
“모든 사람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시 145:15-16)
정말 놀라운 시인의 통찰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둥지에서 떨어진 산새를 주어다가 키워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그 작은 주둥이에 넣어주는 작은 물방울, 작은 우유 한방울에 입을 오물거리며 먹는 고 귀여운 생명체들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정말 위대한 자연의 경이로움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누가 인체의 신비와 오묘앞에 저절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누가 저 거대하고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우주앞에 감히 우연히 이 모든 세상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사 40:26)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말하리라 [8]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9]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욥 12:7-9)
아니 멀리 물어볼 것도 없고,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 입니다.
너는 도대체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느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냐?
한번 뿐인 인생,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바른 삶이냐? 너의 주인은 누구이냐? 누가 네게 생명을 주었느냐?
누가 네게 눈을 주어 보게 하였으며,
누가 네게 귀를 주어 듣게 하였느냐?
누가 네게 입을 주어 고함치게 하였으며,
누가 네 발을 주어 달리게 하였으냐?
누가 네게 일생을 주어
태어나고, 생육하고, 자라며 살아가게 하였느냐?
우리의 신체의 모든 세포하나 하나
아무도 제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다 부모님께로 부터 받은 소중한 선물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머리털 하나, 손톱 하나 모두가 부모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그 머리털 하나, 몸에서 난 털하나가 얼마나 소중했으면 우리 조상들은 그 머리털하나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했을까요?
인생이 아무리 큰 소리쳐도 부모님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가장 큰 도리를 알지 못하면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효는 백행지 근본입니다.
오늘날 제 잘났다고 큰 소리 치는 현대인에게 하나님은 명확하고 명백하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7)
네 부모를 공경할 줄 알아라.
네 하나님을 공경할 줄 알아라. 네 생명이 거기에서 시작되었음이니,
네게 매일의 필요를 채워주는 하늘과 땅,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창조주를 경배하여라.
너는 명확히 알아라.
이제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
하늘은 반드시 제 부모를 모르는 불효자들을, 그 큰 은혜와 사랑으로 돌본 한없는 은혜에 대하여 불효막심한 자들을 갈라 내리라.
이 세상이 저절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그 오만하고 철부지 같은 자들을 갈라 내리라.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듯, 창조주를 알고 경외하는 자들은
창조때 부터 예비한 풍성한 하늘의 상으로 채워주고,
이 세상이 저절로 되었다고 하는 이들,
“엄마가 네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냐?” 고함치는 이들에게
내가 준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리라.
너에게 준 나의 옷을,
너에게 준 나의 집들을,
너에게 준 나의 피부를,
너에게 준 나의 시간을,
너에게 준 나의 모든 존재를,
너에게 준 나의 하늘을,
너에게 준 나의 땅을,
너에게 준 나의 생명을 되찾아 오리라.
“그가 만일 뜻을 정하시고 그의 영과 목숨을 거두실진대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욥 34:14-15)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
인간은 아무것도 스스로 창조해 내지 못한다. 누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겠느냐?
인간이 하는 모든 발명품들은 다 창조주의 손에서 나온 것들을 가지고 만드는 것 뿐이다. 마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레고와 같이 창조주는 이미 그 재료와 원리를 천연계 속에서 주신 것이다.
인간의 학문이란 없는 것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주신 그 신비하고 기이한 것을 평생 연구하는 것이다. 하늘을 연구하면 천문학, 땅을 연구하면 물리학, 지리학, 생물체를 연구하면 생물, 물리가 되는 것 아닌가? 인체를 연구하면 의학이 되지만, 이 세상 어느 누가 생명을 만들어내고, 모든 질병을 다 고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말이냐?
남의 병을 고치는 의사 자신도 결국 질병으로 죽어가는 유한하고 제한된 존재인 것을...
하나님은 오늘날 이 세상 마지막 때에 부모를 외면할 것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1-2)
하나님은 오늘날 이 세상 마지막 때에 부모를 외면할 때를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7)
그러면 이제 자식들은 마땅히 그 엄중한 명령앞에 물어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모를 공경할 수 있습니까?
내 마음대로, 내 방식대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부모님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부모님의 방법으로, 부모님이 기뻐하실 만한 것을 깊이 생각하여 부모님을 마음으로 공경하여라.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5-6)
그러면 우리가 그 엄중한 명령앞에 물어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창조주를 공경할 수 있습니까?
내 마음대로, 내 방식대로 창조주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창조주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창조주의 방법으로, 창조주가 기뻐하실 만한 것을 깊이 생각하여 창조주를 마음으로 공경하여라.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그 창조주를 공경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것도 우리가 모르는 체 하지 못하도록 돌비에 친수로 새겨주셨다. 우리가 무슨 변명과 핑계를 될 수 있겠는가?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이 적 그리스도에 의해 변경된 것인 줄로 모르고 신앙을 하는 이들이 많다. 다니엘서에 적 그리스도가 할 일을 이렇게 기록해 놓으셨다.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단 7:25)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법을 변경시킬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십계명은 중세시대에 교묘하게 변경되었다. 정치와 종교가 통합된 중세시대에 이교의 많은 우상숭배를 받아들여,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둘째 계명을 없애버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경배하라는 제칠일 안식일 계명을 태양신을 숭배하는 Sunday, 일요일로 바꾸어 버렸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부, 통치 원리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렇게 하나님의 계명에 대하여 무지하니, 예언서들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11]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12] 또 그 책을 글 모르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이니라 [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 29:11-13)
이제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의 창조주께로 돌아가자.
우리의 부모님께로 돌아가자.
무너진 성벽을 쌓고, 무너진 계명을 회복하여 우리 주님 맞을 준비를 하자.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58:12-14)
https://youtu.be/qzUFWIGTxo0?list=RDqzUFWIGTxo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