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왜 거기서 나와" 라는 노래보다 더 충격적인 장면이 성소에서 나오는 일곱천사입니다. 왜 성소에서 나오는 일곱천사의 손에 일곱재앙의 대접이 들려있을까요?
요한계시록 14장에서 영원한 복음이 선포되고, 14장 이후에는 세천사의 기별 영원한 복음에 대한 반응에 따라 두 길로 나누어집니다. 똑 같이 열을 가하지만 아이스크림은 녹고, 계란은 딱딱해집니다. 열이 가해진 것은 같으나 다른 결과가 오는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물질의 특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정말로 이것보다 더 크고 놀라운 복음은 없지만, 반대로는 이보다 더 엄숙한 기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받아들이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지만, 거절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없음 곧 사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복음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거절한 결과를 거절한 본인이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의 봉헌식 때 성령 충만한 시므온은 아기를 안고 이렇게 선포합니다.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눅 2:3435)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를 통하여 사람의 마음의 은밀한 생각들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교만과 겸비가, 그들의 성품의 어떠함이, 신앙의 어떠함이, 인간됨의 어떠함이 낱낱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열매는 나무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심판은 열매에 따라 처분하는 것입니다. 곧 열매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햇빛은 열매를 만들어가는 수고입니다.
하늘의 복음은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열매, 신앙의 열매를 만들어주지만,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사람에게는 메마름과 죽음을 가져다 줍니다.
똑 같은 비가 내리지만, 생명의 근원과 연결된 가지에게는 생수가 되고, 생명의 근원과 분리된 가지에게는 썩음의 원인이 되는 당연한 이치와 같습니다.
영원한 복음은 우리의 신앙의 실상,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우리의 본질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주님앞에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를 새롭게 창조해 주십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그것이 변화입니다. 햇빛이 가을의 수많은 열매를 만들어가듯, 주님의 복음이 우리의 신앙의 열매를 만들어갑니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이것이 심판의 시간입니다. 그때에 모든 가지와 같은 우리들이 어디에 시간을, 마음을, 애정을 쏟고 살아왔는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것이 열매입니다. 그것이 결과입니다.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눅 12:34)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고, 우리의 운명도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 최고의 보물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사모하는 모든 것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 2:9)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3)
영원한 복음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행복입니다. 그것은 곧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5장은 일곱재앙을 말하면서 돌연 구원받은 자들의 승리의 노래를 공개합니다. 그들이 부르는 한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구원의 노래를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결국 그들이 받는 재앙은 그들의 죄 때문이 아니라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길,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재앙을 받는 원인을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의 축복과 행복을 소개하면서 또 다른 운명의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계 15:24)
모세가 부른 노래는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15장에 나옵니다.
“[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출 15:13)
모세 한 일은, 백성들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출 14:13)
그들은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기만 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의 원수들을 바다에 던지시고, 다시는 영원히 보지 않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싸우시는 용사이고,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십니다. 이름을 걸고, 전 인격을 걸고, 우리를 구원해 내시겠다는 주님의 선포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를 경험하게 될 자들이 부를 노래가 “어린 양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의 군사들을 물에 장사시키셨던, 하나님이 모든 악과 죄들을 불에 사루시며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실 것입니다. 다시는 악과 고통, 눈물이 없는 새세상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부를 찬송과 돌릴 영광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계 15:3)
예수님이 빛이시고, 참된 심판자이시고, 구원의 길이요, 빛과 어둠을 분별하는 기준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전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참된 종교 지도자인줄로 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참 빛이신 예수님이 나타나시니 그들의 실상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9)
결국 그들을 향하여 주님은 이렇게 선고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
얼마나 무섭고 놀라운 선고입니까?
이제 이 마지막 시대 일곱재앙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비밀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악인과 의인을 구별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맡기지 않으신 선악의 구별을 하나님이 명확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것이 심판이요. 그것이 일곱재앙입니다.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계 15:1)
일곱재앙은 일곱천사를 통하여 이 땅에 쏟아지고 그 천사들이 든 일곱대접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담겨져 있습니다. 흔히 이 세상의 진노는 폭력과 파괴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무엇일까요? 나님의 진노는 이성 없는 폭력이 아니라, 성소의 율법이 요구하는 가장 공의로운 판결입니다. 구원의 기회를 끝까지 짓밟은 악에 대한 ‘거룩한 공의의 집행’이자, 피 흘리며 고통받던 성도들을 건져내시는 ‘사랑의 극치’가 바로 대접에 담긴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온전한 실현이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0절에는 이 진노를 가리켜 “하나님의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고 표현합니다.
섞인 것이 없는 진노: 인류 역사상 내려진 모든 심판(홍수, 소돔과 고모라 등)에는 항상 죄인을 회개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자비(Mercy)'가 섞여 있었습니다.
대접 재앙의 진노: 그러나 일곱 대접에 담긴 진노는 앞선 질문에서 다루었듯 하늘 성소의 은혜의 문(중보)이 완전히 닫힌 후에 내리는 심판입니다. 자비가 전혀 섞이지 않은, 오직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의 요구대로만 집행되는 최종적이고 실재적인 형벌을 의미합니다.
왜 일곱재앙을 가진 천사들이 성소에서 나올까요?
“[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7]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계 15:58)
요한계시록 15장에서 일곱 대접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소(Heavenly Sanctuary)’로부터 나오는 장면은 성소 진리와 구속사의 흐름에서 매우 엄숙하고 결정적인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크게 세 가지 이유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은혜의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선언 (중보의 종료)
성소는 본래 하나님이 죄인과 함께 거하시며, 제사장과 재물의 피를 통해 죄를 씻고 용서하시는 ‘은혜와 중보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계시록 15장 8절을 보면 매우 두려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소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소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과거 모세의 성막이나 솔로몬의 성전이 완공되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쉐키나)이 가득 차서 제사장들이 능히 서서 봉사하지 못했던 것처럼, 하늘 성소에 하나님의 영광의 연기가 가득 찹니다. 이는 더 이상 죄인을 위한 대제사장의 중보 기도가 없으며, 회개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은혜의 기간(Probationary Time)’이 공식적으로 끝났음을 공포하는 것입니다. 중보가 끝났기 때문에, 그 성소에서 이제는 은혜가 아니라 최종적인 형벌과 심판(재앙)이 흘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2. 심판의 공의로움과 출처를 증명
천사들이 성소에서 나온다는 것은 이 재앙이 하나님의 감정적인 보복이나 우연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하늘 성소의 법정에서 결정된 공의로운 심판임을 보여줍니다.
계시록 15장 5절에서는 이 성소를 특별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소’라고 부릅니다.
증거 장막: 강연에서 다루었듯, 성소의 가장 깊은 곳(지성소) 언약궤 안에는 하나님의 공의의 기준인 십계명(증거판)이 들어 있습니다.
심판의 기준: 일곱 대접 재앙은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고, 끝까지 회개하기를 거부하며, 성도들을 핍박한 세상을 향해 율법의 공의에 따라 집행되는 판결입니다. 즉, 율법이 보관된 성소로부터 심판이 시작됨으로써 이 재앙이 정당하고 공의롭다는 것을 온 우주에 선언하는 것입니다.
3. 천사들의 의복이 가진 ‘제사장적·사법적’ 의미
성소에서 나오는 천사들의 모습 역시 성소 봉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계시록 15장 6절에 그들의 용모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소로부터 나와 맑고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세마포 옷과 금 띠: 이는 구약 시대 성소에서 봉사하던 대제사장의 의복이자, 계시록 1장에서 심판장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이것은 천사들이 단순한 파괴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소 공의를 집행하는 거룩한 사법관이자 대리자들임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성소의 거룩함을 수호하기 위해 악을 청소하는 임무를 띠고 나오는 것입니다.
💡 요약하자면
성소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이 시작된 곳(칭의와 성화)이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그 은혜를 거절한 세상을 향해, 이제 성소는 구원의 문을 닫고 최종적인 공의의 판결(영광화 직전의 악인 심판)을 집행하는 장소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극적인 장면입니다. 천사들이 성소에서 나온다는 것은 곧 "은혜의 은닉처였던 성소가 이제 심판의 발원지가 되었다"는 가장 엄숙한 선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며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빛을 따라 믿음의 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주님께 온전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자들은 주님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사 2:5)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시 95:1)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https://youtu.be/aotADtrVAbk?list=RDTRcIEMgppK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