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OO 님,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오늘도 환한 미소로 마주 앉아 성경을 연구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해요. 오늘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아주 가벼운 퀴즈 같은 질문 하나 드릴게요! 혹시 OO 님은 우리 인생에서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의식이나 행사를 떠올려 보시면 어떤 것들이 생각나시나요?
새신자: 음... 학교에 처음 들어가는 입학식이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결혼식 같은 게 떠오르네요!
교사: 와, 정답이에요! 입학식이나 결혼식은 과거의 신분을 뒤로하고 완전히 새로운 삶의 단계로 들어서는 축복의 시간이잖아요? 오늘 우리가 함께 공부할 ‘제10과 침례’가 바로 영적인 입학식이자, 예수님과의 행복한 결혼식 같은 예식이에요. 오늘 우리는 1. 침례의 필요성, 2. 침례의 의미, 3. 침례의 방법이라는 세 가지 중점사항을 통해, 이 예식이 왜 우리에게 그토록 가슴 벅찬 소망을 주는지 친근하게 알아볼게요!
1. 침례의 필요성
① 그리스도의 명령 “침례를 주라”
교사: 많은 분이 침례를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선택 사항’으로 생각하곤 해요. 하지만 성경을 보면 이것은 예수님의 아주 강력하고 준엄한 명령이랍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을 읽어볼까요?
>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새신자: 예수님이 하늘로 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직접 당부하신 말씀이군요.
교사: 맞아요.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침례를 받도록 다정하게 권면하고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는 것 모두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최고의 지상명령이에요. 주님은 단순히 교회를 다니는 사람을 만들라고 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지요. 그런 의미에서 침례는 우리를 옭아매는 규제가 아니라 너무나 아름다운 복음이에요. 구원이라는 소중한 마라톤의 출발선이며, 영원한 하늘나라를 향해 당당히 첫 발걸음을 내딛는 감격스러운 서막인 셈이죠.
여기에 대해 재림교회 기본신조 14번에서는 침례를 아주 명확하고 아름답게 정의하고 있어요. 그대로 한번 읽어드릴게요.
> “침례를 받음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신앙을 고백하고, 죄에 대하여 죽고 새 생활을 살려는 우리의 의도를 나타내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를 주과 구주로서 인정하여, 그분의 백성이 되고 교회의 일원이 된다. 침례는 그리스도와의 우리의 연합, 우리 죄의 용서 성령을 받아들임에 대한 상징이다. 이 예식은 물에 잠그는 방식으로 행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죄를 회개한 증거가 확인될 때 베풀어진다. 침례는 성경을 가르쳐서 그 가르침을 받아들인 후에 시행된다.”
교사: 이 고백처럼 침례는 그냥 형식적인 행사가 아니라, 내 죄가 용서받고 성령을 내 안에 모셔 들였다는 외적인 선포이자 상징이랍니다.
②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음
교사: 마가복음에는 침례와 구원의 관계가 더 직접적으로 나와 있어요.
> (막 16:16)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교사: 성경은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그 증거로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다고 확언해요. 반대로 복음을 믿지 않고 침례조차 거절하는 자는 스스로 정죄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결국 침례와 믿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로 굳게 연결되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유일한 구주로 믿고 영접했다면, 반드시 침례를 통해 그 사랑을 증명해야 한답니다.
새신자: 그렇다면 침례는 언제 받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나이가 아주 많아지거나 성경을 완벽히 다 알 때까지 미루어야 하나요?
교사: 아니요, 침례는 가능한 한 어릴 때 결심하고 받는 것이 참 좋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에 순수하게 세운 신앙의 결심이 평생의 삶을 지탱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때문이에요. 마치 연어가 먼바다를 떠돌다가도 자기가 태어난 고향 강물로 정확히 회귀하듯이, 어린 시절의 거룩한 기억과 결심, 그리고 영적인 환경이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침례를 받는 나이가 율법처럼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에요.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영아 때 너무 이르게 받는 것도 성경적이지 않고, 반대로 마음의 확신이 생겼는데도 완벽해지겠다며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더욱 좋지 않아요. 결심을 자꾸 미루다 보면 영적인 큰 손해를 보게 되거든요. 따라서 개인의 분명한 신앙적 결심과 교회의 따뜻한 동의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침례의 가장 좋은 기준이 됩니다. 교회는 매월 이렇게 성도들이 거듭나는 침례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을 온 교우가 다 함께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야 해요.
실제 교육학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초등학교 6학년 시기가 인생의 첫 결심을 하기에 아주 좋은 적기라고 봐요. 혹은 마음이 성숙한 자녀들은 5학년 때부터 차근차근 침례를 위한 공부와 준비를 시작하는 게 좋지요. 세상 부모들이 자녀의 중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큰 시험을 대비해 학원을 보내듯, 우리 믿음의 부모들은 어린 영혼이 평생 주님을 따르기로 신앙의 결심을 하도록 기도로 준비시켜야 해요. 오늘날 우리 주변의 소중한 자녀들이 정말로 영적으로 거듭났는지 늘 세심하게 점검해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답니다.
2. 침례의 의미
③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그와 함께 일으켜 짐
교사: 이제 침례의 아주 깊고도 신비로운 영적 의미를 살펴볼게요. 골로새서 말씀을 같이 읽어 볼까요?
> (골 2:12)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새신자: 장사된다는 건 무덤에 묻히는 장례식을 뜻하는 거군요.
교사: 정확해요! 침례는 내 옛 사람의 장례식, 즉 ‘죽음’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내가 과거에 좋아했던 모든 죄에 대해서는 깨끗이 죽고,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는 다시 살아나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 아주 감동적인 포인트가 있어요. 나 혼자 죽는 게 아니라, 2천 년 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내 온갖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희생하셨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나도 그 십자가에서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지요. 과거의 비참하고 죄로 얼룩졌던 옛 삶을 물속이라는 무덤에 영원히 장사 지내는 것,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거듭남이며 중생이고 침례의 참의미랍니다.
이 의미를 한마디로 요약해 보면 아주 흥미로워요.
죽음: 내 못난 죄에 대해서는 철저히 죽고, 그리스도의 생명과 함께 새롭게 부활하는 것입니다.
입학: 부끄러운 과거를 씻고 이제는 하나님의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어 하늘을 향해 당당히 첫 발걸음을 떼는 영적 입학식입니다.
졸업: 나를 괴롭히던 이 세상의 악한 습관, 죄, 죽음의 공포, 그리고 마귀의 어두운 권세로부터 영원히 해방되는 졸업식입니다.
출생: 내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예수님 안에서, 그리고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날입니다.
결혼: 이제는 죄악 세상을 뒤로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 가운데서 주님과 평생을 동거동락하기로 서약하며 새 출발을 하는 영광스러운 결혼식입니다.
④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본받는 것임
교사: 로마서 6장에는 이 침례의 시각적인 감동이 더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요. 긴 문장이지만 뜻을 음미하며 같이 읽어볼게요.
> (롬 6:35)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새신자: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동작 자체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온몸으로 흉내 내고 연합하는 거였군요!
교사: 와, OO 님 성경을 이해하는 눈이 정말 깊어지셨어요! 말씀하신 대로 침례의 가장 위대한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온전히 연합할 때, 그 물속 무덤에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새로운 피조물이 탄생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의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처럼 말이죠. 요한복음 8장 44절에 나오던 욕심 많고 비참했던 ‘마귀의 자식’의 신분에서, 요한복음 1:12의 당당한 온 우주의 상속자인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위대한 거듭남(중생)이자, 오직 성령으로 난 자(요 3:8)의 특권을 입는 예식이에요. 예수님이 지신 그 아픈 십자가의 죽음이 바로 ‘나’를 위한 ‘나’ 자신의 죽음이었음을 깨닫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내 옛 모습을 예수를 통해 명확히 발견하는 순간이 바로 침례의 시간입니다.
또한 침례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그대로 본받는 예식이에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차가운 바위 무덤에서 죽음을 깨뜨리시고 3일 만에 장엄하게 부활하셨잖아요? 그 그리스도의 강력한 부활 권능은 그냥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오늘날 침례를 받고 물에서 걸어 나오는 우리의 실제 매일의 삶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게 돼요. 이것은 먼 훗날 우리도 예수님처럼 완벽하게 부활할 수 있다는 우주에서 가장 확실한 영적 영수증이랍니다.
이에 대해 감동적인 신앙의 설명이 있어요.
> “그것은 우리로 새 생명 가운데서(롬 6:4), 즉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 자”(롬 6:11)로 우리를 살게 해준다. (기본교리, 178)”
교사: 이 말씀처럼 우리는 이제 영원한 생명을 가진 몸으로 변화되고 결국 부활할 거예요. 주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더 이상 슬픈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 말씀처럼 우리는 잠시 피곤해서 침대에 누워 잠들듯 잠시 잠들었다가 주님 나팔 소리에 깨어날 뿐이지요. 인류를 향한 무시무시한 죽음의 형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온몸으로 당하신 그 희생 하나만으로 이미 차고 넘치게 충분하니까요.
새신자: 그런데 교사님, 주변을 보면 물을 살짝 뿌리는 ‘세례’를 주는 곳도 많던데, 왜 우리는 꼭 온몸을 물에 담그는 ‘침례’를 고집하는 건가요?
교사: 참 좋은 질문이에요. 최근에는 많은 교단이 예전에 뿌리던 세례에서 성경적인 ‘침례’로 다시 돌아오는 추세예요. 왜냐하면 침례가 성경 본연의 진리와 신앙 고백을 가장 완벽하게 시각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이죠. 성경 원어인 헬라어로 ‘침례’를 뜻하는 ‘밥티스마(βαπτίσμα)’의 본래 단어 뜻을 보면 “물에 푹 적신다”, “완전히 빠트린다”, 심지어 “배가 바다에 완전히 침몰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므로 물을 몇 방울 머리에 뿌리는 약식 세례로는 ‘과거의 내가 완전히 죽어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다시 부활한다’는 영적 고백을 온전히 표현하기가 어렵겠지요? 내 몸 전체를 물속에 완전히 잠갔다가 일으키는 ‘침례’만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고백과 믿음의 표현에 가장 적절하고 올바른 방법이랍니다.
침례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엄숙한 명령이자 친히 보여주신 모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문이에요. 내가 예수님께 나의 모든 삶을 드리고 침례를 받을 만한 확고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지요.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침례를 받는 그 순간, 우리의 이름은 하늘나라 생명책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기록되는 복스럽고 거룩한 우주적 예식이 되는 거랍니다.
⑤ 그리스도로 옷 입혀짐
교사: 침례를 받으면 우리 영혼에 신비로운 패션의 변화가 일어나요. 사도 바울의 멋진 표현을 볼까요?
>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교사: 우리가 믿음으로 침례의 물속에 들어갈 때, 하늘의 성령님이 비둘기처럼 우리 마음에 부드럽게 임하세요.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한없는 은혜와 죄 사함의 권세가 우리 과거의 추악한 죄들을 눈처럼 하얗게 씻어주시고, 영원한 생명의 빛나는 축복이 겉옷처럼 우리 온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 주지요. 이것을 성경은 '그리스도의 의로움으로 옷 입는 의의 두루마기'라고 불러요.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우리의 부끄러운 알몸이나 죄의 흔적을 보지 않으시고, 우리가 입은 예수님의 깨끗한 옷을 보시며 "너는 내 사랑하는 의인이다!"라고 인정해 주시는 거예요.
요한계시록 3장 5절에서도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약속하셨으니 얼마나 든든한가요? 우리가 침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자비, 그리고 복과 형통함으로 삶을 든든히 옷 입게 되면, 우리 마음속에는 절망 대신 천국의 확신과 주님 다시 오실 재림의 찬란한 소망이 매일매일 가득 차오르게 된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아낌없는 십자가 사랑과 희생, 그리고 완벽한 용서를 내 영혼에 전적으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친자녀(요 1:12)가 돼요.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대로 우주에서 가장 귀한 ‘새로운 피조물’로 리모델링 된 것이죠. 영적으로 비참했던 ‘마귀의 자식’(요 8:44)이라는 절망의 가문에서 이탈하여,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요 1:12)로 새롭게 응애 하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거듭남이며, 이 땅에서부터 하늘 은혜의 왕국에 당당한 왕족으로 입성하는 최고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는 통로가 됩니다.
⑥ 물 구원의 표
교사: 베드로 사도는 이 침례의 물을 가리켜 ‘구원의 영수증’이라고 증언했어요.
> (벧전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새신자: "육체의 더러운 것을 씻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네요.
교사: 참 깊은 말씀이죠? 온몸이 물속에 완전히 잠겼다가 다시 하늘을 향해 일어나는 침례 예식은, 생명이 탄생하는 대자연의 원리를 그대로 품고 있어요. 마치 어머니의 따뜻한 태중에서 아기가 물(양수) 속에 안전하게 보호받다가 세상 밖으로 신비롭게 탄생하듯이, 우리의 영적인 새 생명도 차가운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완벽하게 완성되는 예시이지요. 구약 성경의 성소 제도에서도 제사장들이 물로 몸을 정결하게 씻으며 죄를 속했듯이, 침례의 물은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악을 남김없이 씻어내는 예수님의 보혈과 무조건적인 용서를 상징한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베드로는 구원과 침례의 깊은 관계를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옛날 온 세상이 물로 심판받았던 홍수 시절에 방주를 타고 구원받았던 노아의 극적인 경험을 멋진 예시로 사용하기도 했어요.
이처럼 침례는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실한 하늘의 도장(표)이자 증거예요. 방황하던 인간의 거친 양심이 예수님의 사랑에 녹아내려, 비로소 고개를 들고 선한 양심이 되어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간 감격적인 기념일인 셈이죠. 그러므로 우리 교우들은 교회에서 매월 이 감격스러운 거듭남의 침례식이 은혜롭게 거행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제자의 사명을 다해야 해요.
우리 이 감격을 생각하며 친숙한 찬미가 282장 가사를 마음으로 함께 찬양해 볼까요?
>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 예수 피로다
>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이 찬미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샘물 같은 보혈로 정결해지는 거예요. 침례의 영적 진리를 다룬 중요한 논증을 소리 내어 읽어드릴게요. 잘 들어보세요.
> “베드로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듯이, 우리는 침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물론 홍수의 물이 아닌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셨다. 신자에게서 죄를 제거하는 것은 침례의 물이 아닌 그리스도의 피이다(기본교리, 263).”
교사: 맞아요, 우리를 구원하고 죄를 흔적 없이 씻어주는 것은 과학적인 물 성분이 아니라, 오직 그 물속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붉은 보혈의 능력뿐이랍니다.
⑦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하늘에 들어감
교사: 예수님이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하신 구원의 절대 기준을 읽어볼게요.
>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새신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군요.
교사: 그렇습니다. 타협 없는 하늘의 법선이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해야 완벽하게 거듭날 수 있을까요? 성경이 말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에요. 나를 위해 온갖 수치와 피를 흘리신 갈바리의 언덕, 그 십자가를 매일 믿음의 눈으로 묵묵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가만히 쳐다보면서 "아, 저 모진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통해 나의 부끄러운 교만과 숨은 죄악들도 함께 못 박혀 죽었구나!"라는 사실을 가슴 깊이 깨닫고 수용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거듭남의 기적을 매일 보너스처럼 누리게 돼요. 십자가 속에서 온 우주의 창조주가 목숨 바쳐 사랑하는 가장 소중한 대상인 ‘나 자신’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그 처절한 죽음이 다름 아닌 나를 살리기 위한 ‘나 자신의 영적 죽음’이었음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닫고 고맙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듭남의 진정한 주인공이 된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강조하신 ‘물과 성령’의 의미를 풀어서 설명해 드릴게요.
우선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희생과 한없는 은혜를 힘입어, 내 영혼의 모든 더러운 죄를 깨끗하게 씻음 받고 용서받아 완전히 정결해지는 외적인 경험을 뜻해요. 마가복음 10장 38절에서 예수님이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침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하셨고, 누가복음 12장 50절에서도 "나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하셨는데,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본인의 침례는 바로 인류를 위해 당하실 ‘십자가의 모진 고난과 죽음’을 의미했어요. 즉, 침례의 물은 예수님이 온몸으로 겪으신 십자가의 효력을 내 삶에 그대로 적시는 행동입니다.
다음으로 ‘성령’은 그 십자가의 사랑을 부드럽게 받아들인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내적인 변화예요. 내 죄가 완벽히 용서받은 청결한 마음에,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내 마음의 왕좌를 왕처럼 점령하시는 역사이지요. 사탄이나 세상의 염려가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내 몸을 온전하고 거룩한 성령의 전(殿)으로 뚝딱 만들어 주셔서, 매일매일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최고의 삶을 사는 축복을 의미해요. 사도 베드로도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약속하신 것처럼, 물의 침례 뒤에는 언제나 성령의 눈부신 선물이 세트로 따라온답니다.
3. 침례의 방법
⑧ 침례의 방법은 오직 한가지임
교사: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침례를 행하는 올바른 방법은 과연 몇 가지나 있을까요? 성경은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 (엡 4: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
새신자: 주님도 한 분이고 믿음도 하나이듯, 침례의 방법도 성경에 오직 딱 한 가지만 지시되어 있나 보네요.
교사: 맞아요, OO 님! 성경이 인정하는 참된 침례의 방법은 오직 온몸을 물속에 푹 잠그는 한 가지 방법뿐이에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침례의 원어인 헬라어 ‘밥티조(βαπτίζω)’ 자체가 “물에 완전히 잠그다”, “ 깊이 가라앉히다”라는 명확한 물리적 뜻을 가지고 있거든요. 물을 머리에 톡톡 뿌리는 약식 세례는 성경 원어의 뜻을 살리지 못해요. 실제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구원의 침례는 예외 없이 온몸을 물속에 완전히 잠그는 방식으로 실행되었답니다.
그 확실한 증거 세 가지가 성경에 나와요.
(1) 예수님의 침례: 마태복음 3장 16절을 보면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라고 했어요. 물 뿌림을 받으셨다면 굳이 깊은 강물 속에 들어가셨다가 "물에서 올라오실" 이유가 전혀 없었겠지요?
(2) 에디오피아 내시의 침례: 사도행전 8장 36~39절을 보면 빌립 집사에게 복음을 듣던 고관 내시가 마차를 타고 여행하던 중, 몸을 푹 잠글 만한 큰 물가를 만나자마자 마차를 세우고 물속에 함께 들어가 침례를 받았어요.
(3) 침례 요한의 사역: 요한복음 3장 23절을 보면 침례 요한이 아무 데서나 침례를 준 게 아니라, 유독 "물이 많은 애논"이라는 동네를 찾아서 사람들에게 침례를 베풀었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온몸을 담가야 하니 물이 많이 필요한 곳을 찾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요.
새신자: 그런데 성경에 이렇게 명백하게 나오는데, 왜 역사 속에서 물을 뿌리는 세례로 변질하여 많은 교회가 사용하게 된 건가요?
교사: 그 역사적 변질 과정에 대해 기독교 역사를 다룬 아주 객관적인 사전의 기록을 보여드릴게요. 그대로 한번 보세요.
> “초기 교회에 있어서 적어도 12세기경까지 세례는 ‘침례’였다. 그 후 머리에 물을 적시거나 물을 뿌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발전했다. 그 이유로는 병자와 유아를 침수시키기 어렵다는 데서였다.”(대한기독교서회 그리스도교 대사전 1972)
교사: 교회의 기록을 보면 원래 12세기까지는 온 세상 교회가 다 침례를 줬어요. 그런데 중세 가톨릭교회가 지배하던 시절, 심하게 앓아누운 병자나 갓 태어난 어린 아기들을 차가운 물속에 풍덩 빠트리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니 편리함을 위해 인간적인 생각으로 물을 뿌리는 약식을 고안해 낸 것이죠. 또 다른 유력한 역사적 주장으로는, 12세기 중세 십자군 전쟁 당시에 한꺼번에 항복하고 몰려든 수십만 명의 이방인 군인들에게 한 명씩 온몸을 잠그는 침례를 주기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너무 힘들다 보니, 군대를 줄 세워놓고 한 번에 물을 좌르륵 뿌리는 약식 세례가 굳어지게 되었다는 설득력 있는 기록도 전해진답니다. 편리함을 위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형태를 인간이 임의로 바꾸어 버린 안타까운 대목이지요.
⑨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교사: 침례를 집례할 때 선포하는 거룩한 선언문은 처음에 읽었던 예수님의 명령에 기초해요.
>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교사: 우리가 맨 처음 세상을 창조할 때 창세기 말씀을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아버지, 아들, 성령)께서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고"라며 함께 의논하시고 창조하셨잖아요? 마찬가지로 우리 죄인이 과거를 청산하고 완벽하게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영적인 ‘재창조’의 엄숙한 순간에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동시 기립하셔서 우리의 침례를 축복하고 보증해 주신답니다.
그 세 분의 역할을 풀어서 설명해 드릴게요.
(1) 성부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주적인 구속의 거대한 마스터플랜을 짜시고 사랑으로 주관하시는 총감독의 역할을 하십니다.
(2) 성자 아들 예수님: 그 아버지가 짜신 구원 계획에 기쁘게 순종하여,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구속의 완벽한 실체를 몸소 이루신 주인공이십니다.
(3) 성령 하나님: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그 십자가의 구원 효력이 오늘날 내 마음에 믿어지도록 감동을 주시고, 구원의 능력이 내 삶에 매일 지속되도록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해 주시는 인도자이십니다.
이 아름다운 소통에 대해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며 영광스러운 삼위의 축복을 성도들에게 빌어주었답니다.
⑩ 물 있는 곳에서
교사: 이번에는 아까 잠깐 이야기했던 빌립 집사와 에디오피아(구스) 내시의 사막 여행 속 한 장면을 성경 그대로 읽어볼게요.
> (행 8: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교사: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날씨가 더웠기 때문에 보통 단벌옷을 입고 생활했어요. 만약 단순히 머리에 물 몇 방울 뿌리는 세례가 맞았다면, 광야 길을 가던 내시와 빌립이 굳이 귀찮게 마차에서 내려 강물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서 그 소중한 단벌옷을 흠뻑 적실 이유가 전혀 없었겠지요? 에디오피아 왕국의 모든 재정을 맡았던 최고 권력자였던 내시는, 사막을 여행하는 마차 안에 언제든지 마실 수 있는 고급 생수와 물통을 항상 넉넉하게 소지하고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물을 조금 뿌리는 세례가 아니라 온몸을 온전히 잠가야 하는 ‘침례’가 진짜 성경 방법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차 안의 물통을 쓰지 않고 길을 열심히 가다가 마침내 사람 몸이 잠길 만한 큰 물가를 만나자마자 "보라, 여기 몸을 잠글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겠다!" 하고 거리낌 없이 뛰어내린 것이랍니다. 이처럼 물속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야말로 성경이 보증하는 명백하고 분명한 영적 재탄생의 축복 예식이에요.
우리는 물의 침례뿐만 아니라 매일 성령의 침례를 경험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귀한 영적 권면을 그대로 들려드릴게요.
> “우리는 성령의 침례를 받고 영광의 소망인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형성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 믿음과 사랑의 거룩한 대상으로 드러내게 될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할 것이며 그리스도께, 그리고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백성 앞에 그분의 기적, 그분의 자아 부정, 그분의 자아 희생, 그분의 고난, 그분의 십자가에서의 돌아가심, 그분의 부활과 승리의 승천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가려뽑은 기별 3권, 186】
교사: 매일 성령으로 우리 마음이 푹 잠기는 침례를 경험할 때, 우리 입술에서는 세상 자랑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 그리고 영광스러운 승천의 이야기만 기쁨으로 흘러나오게 된답니다.
⑪ 그리스도의 모본
교사: 온 인류의 스승이신 예수님은 말로만 명령하신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물속에 들어가 침례의 본을 보여주셨어요.
> (마 3:16) 예수께서 침례를 받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교사: 원래 죄가 전혀 없으신 예수님은 침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단강 물속에 온몸을 적시며 침례를 받으신 이유는, 주님을 따르는 우리 모든 제자들도 마땅히 이 길을 똑같이 밟아가야 함을 친히 몸소 보여주시기 위한 사랑의 내비게이션이었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감동이 올 때 침례 받기를 주저하거나 두려워 미루면 안 돼요. 오히려 주님의 모본을 따라 적극적으로 침례를 고백하고 베풀어야 하죠.
주님은 우리에게 침례를 주고 나서 그것으로 끝내지 말고,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열심히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당부하셨어요. 침례라는 예식은 나를 쭝쭝 묶던 세상과 죄를 향해서는 완벽한 사망 선언이자 영광스러운 졸업식이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해서는 이제 막 위대한 삶이 펼쳐지는 눈부신 입학식이며 스타트라인이에요. 그러니 주저 말고 속히 시작해야겠지요?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실 때 주저하던 침례 요한에게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3장 15절에 나와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은 침례를 받는 순종의 발걸음이야말로 하나님의 거룩한 ‘모든 의’를 완성하는 가장 아름답고 합당한 행동이라고 칭찬해 주셨답니다.
우리가 이 침례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며 살아갈 때 하늘이 보증해 주는 든든한 보험 같은 말씀이 여기 있어요.
> “우리가 우리의 침례 서약을 충성스럽게 준수할 때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침례 받은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는 침례 후 살아가면서 맞을지도 모를 모든 비상 사태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신적 능력을 얻을 수 있음을 보증하신다(기본교리, 273).”
교사: 정말 엄청난 약속이지요? 우리가 침례 요단강을 건너 주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때, 살다가 마주치는 그 어떤 인생의 벼랑 끝이나 비상사태가 올지라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전능한 신적 능력을 총동원해서 우리 OO 님을 반드시 지키고 도와주겠다고 공식적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쾅 찍어주시는 순간이 바로 침례의 서약이랍니다.
⑫ 구스 내시의 침례, 물에 완전히 잠겼다가 올라옴
교사: 이제 마지막으로 아까 그 에디오피아 고관 내시가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는 최종 피날레 장면을 성경 그대로 확인해 볼게요.
> (행 8:38,39)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베풀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새신자: "둘 다 물에 내려가",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라는 구절을 보니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완벽한 침례네요!
교사: 맞아요! 성경은 아주 세밀하게 두 사람이 물속으로 깊이 "내려갔고", 침례를 마친 후 물 밖으로 "올라왔다"고 두 번이나 강조하며 이것이 약식 세례가 아닌 명백한 침례임을 확증해 주고 있어요. 만약 예전에 성경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세례를 받았던 경험이 있는 분이라 할지라도, 성경을 제대로 깨달은 후에는 오리지널 방법인 침례를 다시 올바르게 받는 것이 영적으로 훨씬 유익하고 올바른 선택이에요. 실제로 성경 사도행전 19장 3~5절을 보면, 에베소에 있던 성도들이 예전에 요한의 세례만 알았다가 바울의 완전한 가르침을 들은 후 예수의 이름으로 올바른 침례를 다시 받았던 은혜로운 사례가 멋지게 기록되어 있거든요.
우리가 이렇게 성경대로 온전한 침례를 받게 되면, 우리 삶 속에는 참 소중하고 달콤한 세 가지 신앙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돼요. 마지막으로 이 침례의 3대 열매를 가만히 읽어드릴 테니 마음에 깊이 저축해 두세요.
> 첫째 열매는 그리스도를 위해 산 생애이다.
> 목표와 포부는 자아가 아닌 그리스도에게 그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골 3:1)
> 둘째 열매는 그리스도 교회를 위해 산 생애이다.
> “우리는 더 이상 고립된 개인들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체들이 되었다. 하나님의 성전은 산 돌들인 우리들로 구성된다(벧전 2:25). 우리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분으로부터 사랑 가운데서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한 매일의 은혜를 받는다(엡 4:16). 우리는 언약 공동체내에서 책임들을 맡으며, 그 구성원들은 새로 침례 받은 자들을 위하여 책임을 진다(고전 12:1226)”
> 마지막 열매는 세상에서 세상을 위하여 산 생애이다.
> 침례 받은 우리들이 하늘의 시민권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빌 3:20).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것은 다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훈련을 받고 세상에 섬기는 종으로 돌아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선교사로서 그리스도의 왕국에 태어났다. 우리의 침례 언약에 대한 충실성에는 이들을 은혜의 왕국으로 인도하는 일이다.
교사: 침례를 받은 성도는 이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이기적인 삶을 졸업해요. 내 삶의 초점을 오직 예수님께 맞추고(첫째 열매), 교회의 소중한 한 지체가 되어 형제자매를 돌보며(둘째 열매), 아직도 방황하는 세상 사람들을 따뜻하게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멋진 선교사의 삶(마지막 열매)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사도행전 22장 16절에 바울에게 주어졌던 이 뜨거운 권고를 오늘 우리 OO 님에게도 들려드리고 싶어요.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이 감격스러운 영적 결혼식의 주인공이 되기를 결심해 보지 않으시겠어요?
새신자: 교사님, 오늘 침례의 참뜻을 배우고 나니 마음이 너무 뜨거워져요. 단순히 물에 들어가는 의식인 줄 알았는데, 예수님과 연합하여 옛 자아를 장사 지내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적 능력을 보증받는 인생 최대의 축복 계약서였군요! 저도 이제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 안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이 영광스러운 침례의 특권을 기쁘게 준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