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식 성경연구 제20과 하나님과 국가에 대한 충성
서론: 영원한 내 편, 그리고 국가대표의 마음 (아이스 브레이크)
교사: 은혜 님, 한 주간 평안하셨어요? 오늘도 변함없이 성경을 깊이 배우고자 이 자리에 나와 주셔서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 은혜 님의 얼굴을 뵐 때마다 영적인 에너지가 제 마음에 가득 차오르는 것 같아요. 오늘 성경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 삶의 태도와 관련된 흥미로운 질문을 하나 드려볼게요. 은혜 님은 혹시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큰 국제 경기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죽을 힘을 다해 뛰는 모습을 보실 때, 마음에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새신자: 아, 당연히 가슴이 뭉클하고 엄청 뜨거워지죠! 피땀 흘려 훈련한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목이 터져라 응원하게 돼요. 선수들이 나라를 대표해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더라고요.
교사: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자기가 속한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그 마음을 우리는 '충성'이라고 부르지요. 오늘 우리가 함께 공부할 제20과의 주제가 바로 ‘하나님과 국가에 대한 충성’이랍니다.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국민으로서, 동시에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과연 '충성'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성경 속에 담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오늘 함께 찾아볼게요!
1. 충성의 의미
① 맡은 일에 대해 충성을 다할 것임
교사: 먼저 성경이 말하는 충성의 진짜 의미와 대상이 누구인지 알아볼게요. 고린도전서 4장 2절을 은혜 님이 먼저 예쁜 목소리로 읽어주시겠어요?
새신자: 네, 읽어보겠습니다.
(고전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교사: 아멘! 여기 보면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선언하고 있어요. 성경에서 '맡은 자'라는 것은 내 삶과 모든 자원을 내 멋대로 쓰는 주인이 아니라, 주인의 것을 위탁받아 성실히 관리하는 '청지기'를 의미해요. 즉, 충성이라는 것은 청지기가 지녀야 할 가장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의무이지요. 성경 원어인 헬라어로 충성은 ‘피스토스’라고 하는데, 이는 문자적으로 '정직함과 신실성이 겉으로 명백히 발견되는 상태'를 뜻한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자 다른 사명과 역할을 맡겨주셨어요.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4장에서 교회의 다양한 직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지요.
(엡 4:11,12)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새신자: 아, 각자 맡은 자리에서 신실함을 드러내는 것이 충성이군요.
교사: 정확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부르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품성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에요. 베드로전서 2장 9절의 엄숙하고도 영광스러운 선언을 같이 읽어볼까요?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거룩한 신분을 기억하고 내게 맡겨진 작은 봉사에 신실하게 임할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충성의 시작이 된답니다.
② 작은 것에 충성된 자가 큰 것에도 충성함
교사: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충성심을 어떤 기준으로 저울질하실까요? 누가복음 16장 10절을 읽어볼게요.
새신자:
(눅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교사: 주님은 우리에게 “충실한 청지기가 되라”고 요구하셔요. 여기서 말씀하시는 '지극히 작은 것'이란 인간 눈에는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하늘의 영원한 가치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는 것들을 뜻해요. 대표적으로 이 세상의 유한한 재물과 돈이 그렇습니다. 우주의 거대한 하늘 보화에 비교해 보면, 지구의 재물은 과학 단위인 마이크로($\mu$, 0.000001)처럼 보이지도 않는 아주 미미한 조각에 불과하지요.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사는 이 땅에서의 100년 안팎의 삶도, 장차 누릴 영원한 영생의 삶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찰나의 순간일 뿐이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재물의 가치를 너무 과대평가하여 목숨을 걸지 말아야 해요. 대신 나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과 작은 물질, 사소한 기회들을 하나님이 빌려주신 선물로 믿고 감사함으로 성실하게 활용하며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하는 훈련을 해야 한답니다.
새신자: 세상의 재물이 하늘에 비하면 마이크로 같다니, 정말 시야가 확 넓어지는 기분이에요.
교사: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일상에서 “선함과 충성됨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해야” 해요. 앞서 말씀드린 충성이라는 단어 '피스토스'는 성경에서 '믿다, 옳게 여기다'라는 뜻과도 완벽히 통하는 말이에요. 즉, 성경에서 믿음과 충성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완전히 같은 단어이지요. 따라서 내 삶의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내가 버는 재물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속임 없이 정직하고, 소득의 십일조와 봉헌물을 주님의 창고에 정확하게 구별해 드리는 신실한 행동을 말해요. 돈의 노예가 되어 돈의 힘에 지배당하지 않는 굳건한 태도이지요.
그리하여 경제와 재물 생활에 있어서 세상의 타인들과 하늘 하나님께 명백히 인정받고 신뢰받는 당당한 성도가 되어야 해요. 과거 초대교회 시절에는 성도들이 정직하고 당당했으며 동시에 겸손했기 때문에 교회의 재정과 헌금 내역을 온전히 투명하게 공개하곤 했어요. 그러나 최근 현대 교회들이 이를 절대 허용하지 않고 감추려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것은, 물질의 작은 부분에서 정직함의 충성을 상실했기 때문이 아닌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답니다.
하늘 주인의 따뜻한 칭찬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예언자의 보석 같은 글을 인용해 드릴게요. 잘 들어보세요.
“주인의 인정은 성취된 일이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며,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작은 일에 충성한 까닭이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큰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근본 동기인 것이다. 그분께서는 큰일을 성취한 것보다는 선함과 충성됨을 더 귀하게 여기신다.” (교회증언 2권, 510511)
즉, 남들 보기에 거대한 사업을 성취해 냈느냐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작은 골방의 일상에서 내가 어떤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선함과 충성됨을 유지했는지를 주님은 훨씬 더 귀하게 평가하신다는 위로의 말씀이랍니다.
③ 충성된 자는 하나님과 함께 거할 것임
새신자: 와, 결과보다 내 마음의 숨은 동기를 보신다니 정말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네요. 그럼 이렇게 충성된 사람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복이 주어지나요?
교사: 시편 101편 6절에 다윗 왕의 고백을 통해 약속된 축복이 나와요.
새신자:
(시 101:6)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교사: 이 구절은 “충성된 자가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특권”을 선포해요. 하나님은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묵묵히 충성을 다하는 신실한 사람들을 눈동자처럼 특별히 눈여겨 살피셔요. 즉, 충성된 자는 언제나 하나님의 시야와 사랑의 레이더망 안에 안전하게 들어와 있는 것이죠. 그리고 주님은 그들을 당신과 가장 가까운 처소에서 영원히 함께 살자는 거룩한 축복의 자리로 초대해 주셔요. 이 땅에서 충성된 성도들은 내 눈앞의 세상 유흥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 성소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곧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내 신랑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된답니다.
새신자: 하나님의 눈길이 항상 머무는 사람이라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부러운 사람 같아요. 그런데 뒤에 나오는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는 어떤 사람을 뜻하나요?
교사: 완전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타밈’이라고 해요. 이는 구약 제사 때 하나님 제단에 바치던 '흠 없고 정결한 제물'의 상태를 뜻하지요. 즉,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우리가 도달해야 할 거룩한 품성의 최종 표준을 가리킨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시대마다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 완전을 엄격하게 명령하셨어요. 대표적인 세 구절을 소개해 드릴게요.
(창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신 18:1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시 101:2)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새신자: 내 집 안에서 완전한 마음으로 행하겠다는 다윗의 고백이 정말 진지하게 느껴지네요.
교사: 네, 참 엄숙하죠. 그래서 성경은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를 것”이라고 약속해요. 이것은 왕이신 하나님의 궁전에서 제사장으로 임명받아 왕의 거룩한 성소 봉사에 당당히 참여하게 됨을 뜻해요. 오늘날 우리도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이 땅에서 거룩한 선교 사명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야 마당 하지요.
이를 위해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선과 악에 대하여 아주 명확하고 타협 없는 영적 구별법을 배워야만 해요. 왜냐하면 아쉽게도 이 죄악 세상에서는 악한 영향력이 선한 자극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고, 전염 속도가 빠르며, 영혼의 깊은 곳까지 사정없이 침투하기 때문이에요. 영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나약한 심령은, 내 눈과 마음에 거룩하지 못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저급하며 비열한 이기적 욕망을 부추기는 세상의 자극적인 광경들을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데서 쾌락을 느끼는 무서운 죄악의 기질을 지니고 있거든요. 충성된 자는 그 어둠의 광경에서 눈을 돌려 완전한 말씀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2. 국가에 대하여
④ 국가의 권세에 굴복할 것임
새신자: 내 안의 저급한 욕망을 이겨내고 완전한 길을 걷는 것이 충성의 본질이군요. 그럼 이제 구체적인 삶의 영역으로 들어가서, 크리스천들은 내가 속한 세상 국가와 정부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로 충성해야 하나요?
교사: 아주 현실적이고 중요한 질문이에요. 로마서 13장 1절에 바울 사도가 내린 명쾌한 지침이 있습니다.
새신자: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교사: 성경은 우리에게 “내 위의 세상 권세들에게 기본적으로 굴복하고 복종하라”고 가르쳐요. 내가 살고 있는 정부와 국가의 법률, 행정 지침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성경 말씀과 계명에 정면으로 위배되거나 신앙을 강제로 억압하는 악법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인들은 선량한 시민으로서 그 법과 사회 질서를 성실하게 잘 따라야 해요. 왜냐하면 넓은 의미에서 이 세상의 모든 정권과 지도자들은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주권과 역사적 섭리 속에서 허락되어 세워진 것임을 우리가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국가의 권위를 존중하며 선한 정책에는 기쁘게 지지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내 정치적 성향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국가 지도자들을 향해 불필요한 적대감이나 감정적인 비난을 쏟아내며 에너지를 허비하지 말아야 해요. 그런 파괴적인 불평과 폭력적인 감정 소모는, 결국 성도들의 마음속에 내재된 온유하신 성령의 거룩한 역사를 사정없이 약화시키고 지워버릴 뿐이랍니다.
새신자: 아, 국가의 권위도 하나님의 거대한 다스림 속에서 허락된 것이니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군요.
교사: 정확합니다. 주님이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고 하신 진짜 속뜻은, 그 인간 국가 권력 자체가 완벽하고 정당하다는 뜻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 나약한 인간 권력자들의 머리 위에서, 역사의 최종 결정권을 쥐고 우주를 도도하게 경영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인정하라는 깊은 신학적 고백이지요.
또한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할 때, 국가의 합법적인 법을 어겨가면서 정부와 쓸데없는 마찰을 빚어 교회가 불필요한 사회적 오해나 극심한 박해, 불리한 반작용을 스스로 유발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처신하라는 주님의 세심한 안전방책이기도 하답니다.
⑤ 국가의 제도에 순응해야 함
새신자: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는 말씀이 와닿네요. 그럼 세금을 내거나 국가의 제도를 지키는 구체적인 행동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교사: 예수님이 직접 바리새인들의 덫을 깨뜨리시며 주신 유명한 정답이 있어요. 누가복음 20장 22절과 25절을 읽어볼게요.
새신자:
(눅 20:22,25)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교사: 예수님은 먼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셨어요. 가이사는 당시 로마의 황제, 즉 국가 권력을 뜻하지요. 정부가 도로나 치안, 의료 시스템 등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제공하는 순 기능을 정당하게 인정하고, 시민으로서 납세의 의무나 합법적인 의무를 성실히 다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기본적이고 정직한 삶의 자세여야 해요.
만약 국가가 정한 정당한 법과 사회 질서를 "나 교회 다니니까 대충 안 지켜도 돼" 하면서 꼼수를 부리거나 어기는 것은, 내 영혼의 정직한 신앙 양심을 스스로 속이는 부끄러운 행위이지요. 우리는 이 사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요. 이 땅의 교회 또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저 영원한 하늘 천국의 메시지를 전하는 '천국 대사관'의 거룩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지요.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은 자신이 소속된 국가와 사회의 법을 모본이 되도록 엄격히 존중하고 지킬 신성한 의무가 있답니다.
새신자: 네, 세상에서도 손가락질받지 않는 정직한 시민이 되어야겠어요. 그럼 뒤에 나오는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무슨 뜻인가요?
교사: 이것은 국가 권력이 침범할 수 없는 영적인 한계선을 그으신 거예요. 지난주에 우리가 배웠던 십일조와 각종 성물은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세상 가이사가 아닌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 정직하게 구별해 드려야 한다는 뜻이지요.
돈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우리의 소중한 '시간과 생명' 전체가 원래 다 하나님의 소유예요. 우리가 매주 토요일 제칠일 안식일을 철저히 성수하는 것은, 내 시간의 십일조를 주님께 정직하게 되돌려 드리는 믿음의 고백과 마찬가지이지요. 또한 내 몸을 해치는 나쁜 음식을 거절하고 교회가 가르치는 건강 법칙을 신실하게 준수하는 것도, 하나님이 내게 임시로 빌려주신 소중한 생명을 깨끗하게 잘 관리하여 몸으로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려드리는 거룩한 예배의 연장선이랍니다.
새신자: 가이사의 영역과 하나님의 영역이 명확히 구별되어 있네요. 그런데 목사님, 만약 국가의 법과 하나님의 말씀이 정면으로 부딪치고 충돌할 때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교사: 참 무겁고도 치열한 질문이에요. 만약 “국가와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 상충할 때”에는, 성도들은 정교분리의 대원칙 하에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인생의 가장 최우선 기초와 기둥으로 삼아야만 해요.
다만, 국가의 법이 내 신앙을 위협한다고 해서 내 인간적인 혈기와 거친 감정으로 즉각적인 폭력 시위나 무자비한 반발을 일으키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아요. 그 엄혹한 위기의 순간에는, 옛날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먼저 무릎을 꿇고 사자굴과 풀무불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권능을 간절히 구하며 기도해야 해요. 그리하여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하심을 온전히 간구하면서, 인간의 피를 흘리지 않고도 진리를 끝까지 수호해 낼 수 있는 가장 지혜롭고 고결한 '하나님의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한답니다.
⑥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함
교사: 세상 권력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라고 강요할 때, 사도들이 목숨을 걸고 외쳤던 담대한 선언 두 구절을 읽어볼게요. 사도행전 4장 19절과 5장 29절입니다.
새신자:
(행 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행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교사: 사도들은 “세상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천만번 옳다”고 외치며 산헤드린 공회의 서슬 퍼런 투옥 위협과 고문 공포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어요. 그들이 이토록 용감할 수 있었던 진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직전에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앉은뱅이 거지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벌떡 일어나는 엄청난 기적의 표적을 눈앞에서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에요. 그 사건을 통해 부활하셔서 온 우주의 왕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 자신들과 영적으로 완벽하게 함께 숨 쉬고 계심을 세포 하나하나까지 직접 확인했던 것이죠.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태복음 28장 20절에 주셨던 불멸의 약속, 즉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언약을 손으로 잡듯 100% 신뢰했기 때문에 그 어떤 세상 권력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사자처럼 담대할 수 있었던 거랍니다.
새신자: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고백이 제 가슴까지 웅장하게 만드네요.
교사: 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코람데오)”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매 순간 눈에 보이는 세상 사람들의 평판이나 세상 왕의 눈치를 보며 사는 존재가 아니에요. 보이지 않으나 불꽃같은 눈으로 나를 인자하게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면전(코람데오)에 늘 꼿꼿이 서 있어야 하지요. 내 곁에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시퍼렇게 살아계심을 온전히 믿고 확신한다면, 위기의 순간에 우리가 걸어가야 할 순종의 길은 자로 잰 듯 너무나 명확해지지 않겠어요?
사도들이 이 코람데오의 믿음으로 전진했을 때 일어난 영광스러운 역사를 예언자의 글로 읽어드릴게요.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계속해서 전하였고, 하나님의 능력은 그 기별에 나타났다.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왔다.” (교회증언 5권, 713)
세상 권세에 주눅 들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충성할 때, 하늘의 폭발적인 능력이 그들의 기별과 삶에 나타나 세상이 교회를 두려워하고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의 방주로 밀려 들어오게 되었다는 승리의 약속이랍니다.
3. 하나님께 대하여
⑦ 어떠한 역경 중에도 그리스도를 저버리지 말 것임
새신자: 어떤 권력 앞에서도 하나님 편에 서는 신앙을 꼭 배우고 싶어요. 그럼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할 때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이나 역경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요?
교사: 바울 사도는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을 때 사단이 던지는 거친 공격들에 대해 로마서 8장 35절에 아주 리얼하게 기록해 두었어요.
새신자: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교사: 바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외쳐요. “이 세상 그 어떤 무서운 고난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불타는 사랑에서 절대로 끊어낼 수 없다!” 라고 말이죠.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과 사랑의 끈으로 꽁꽁 연결되어 있기만 하다면, 세상의 그 어떤 강력한 독재자나 마귀 권세도 우리를 함부로 대적하여 쓰러뜨릴 수 없어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십자가 피로 깨끗해진 성도들을 감히 정죄하거나 영적인 시비를 걸어 송사할 수 없지요. 성도들이 누리는 영원한 영혼의 안전과 무죄 선언, 그리고 최종적인 구원의 승리는, 내 주먹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맺은 이 단단한 사랑의 연결을 통해 비로소 완벽하게 완성되는 법이랍니다.
새신자: 환난, 곤고, 박해... 단어들이 다 무서운데, 사도 바울이 직접 겪었던 일들인가요?
교사: 네, 바울이 전도 여행을 다니며 몸으로 다 맞아내었던 “성도들이 겪는 실제적인 7가지 도전들”의 목록이에요. 제가 아주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드릴게요.
1) 환난: 내가 재림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 직장이나 이웃들에게 당하는 억울한 불이익과 삶의 고난을 뜻해요.
2) 곤고: 성경 원어로 ‘스테노코리아’라고 하는데, 이는 사방이 꽉 막혀 내 몸과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제한된 상태', 즉 복음을 전하다 차가운 감옥 지하 깊은 곳에 갇히는 신세를 의미해요.
3) 박해: 종교적인 금지령이 내려져 진리를 전하지 못하도록 가해지는 세상 정권의 고소 고발, 가혹한 가사 체벌과 핍박을 말해요.
4) 기근: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키느라 경제적 활동이 끊겨, 당장 오늘 아침에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이 없어 영양실조로 '굶주려 죽어가는 극심한 가난의 경험'을 뜻하지요(고후 11:27).
5) 적신(赤身): 적신이란 붉은 몸, 즉 입을 옷이 없어 발가벗겨진 비참한 상태를 뜻해요. 실제로 바울은 전도하다 옷을 다 빼앗겨 겨울이 오면 몸이 벌벌 떨려 제자에게 어서 겉옷을 가져다 달라고 애처롭게 편지를 쓰기도 했답니다(디후 4:13).
6) 위험: 언제 어디서 강도나 고발자가 나타날지 모르는 지속적이고 불안한 주변 환경, 내 목숨을 노리는 예상되는 끔찍한 불행들을 뜻해요.
7) 칼: 마지막 최후의 순간에 내 목을 치거나 심장을 찌를 세상 권력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사형 도구를 의미한답니다.
바울은 이 7가지 끔찍한 공포가 떼거지로 몰려올지라도, 예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다면 다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충성을 웅장하게 고백한 것이죠.
⑧ 끝까지 견디고, 뒤로 물러가지 말 것
새신자: 옷도 없고 굶주리고 칼의 위협까지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켰다니, 사도들의 충성심은 정말 초인간적이네요. 우리도 그런 위기 속에서 뒤로 도망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교사: 히브리서 서신은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영적인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요. 히브리서 10장 35절과 38절을 읽어볼게요.
새신자:
(히 10:35,38)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교사: 첫째 지침은 어떤 캄캄한 장벽 앞에서도 “하늘이 주신 영적인 담대함을 절대로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라”는 거예요.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도저히 빠져나갈 길 없이 불가능해 보이는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홍해 바다 앞에 섰던 모세처럼 믿음의 눈을 똑바로 뜨고 앞으로 당당히 전진하라는 명령이지요. 그러면 신비하게도 바다가 갈라지듯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능력을 온몸으로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녀야 할 이 담대함의 진짜 근원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귀를 밟고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이에요. 나를 의롭다 하시는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개인의 구원을 얻고, 나아가 예수님이 친히 지니셨던 그 완전한 믿음(예수 믿음)을 우리도 선물로 전수받아, 마지막 때 하나님의 계명을 끝까지 지키는 '남은 자손'의 거룩한 사명을 담대히 이루어 가야 한답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적 담력에 대해 이렇게 보증을 서주고 계셔요.
(히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새신자: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하늘 성소까지 걸어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니 든든하네요. 그럼 뒤에 나오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은 상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교사: 아주 완벽한 짝꿍 같은 말씀이에요.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도 눈물로 당신을 간절히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최고의 상을 주시는 좋으신 분'이셔요(히 11:6). 그 상은 세상의 썩어질 아파트나 돈이 아니라,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끝까지 기다린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흠 없는 온전한 구원과 영생의 축복' 전체를 가리킨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신앙의 절대 공식을 이렇게 선포하지요.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새신자: 아멘! 반드시 상을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겠어요. 그럼 마지막에 "뒤로 물러가지 말라"는 경고는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가요?
교사: 이 경고의 가슴 아픈 주어는 불신자가 아니에요. 바로 예수님의 피로 의롭게 영적인 구원을 경험했던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안타까운 외침이랍니다. 바울 사도와 하박국 선지자는 이 진리를 여러 번 성경에 반복해서 기록해 두었어요.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갈 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리스도인들은 내 시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계에 맞춰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주 속히 이 땅에 오실 것임을 100% 믿고 하루하루를 깨어 살아야 해요. 사단이 주는 핍박이 조금 고되다고 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의 축복 보따리를 풀어주시기 바로 직전에 얄팍한 불신과 두려움 때문에 신앙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세상으로 도망치는 '배교(배신)'의 길을 결코 걷지 말라는 주님의 엄숙한 명령이랍니다.
⑨ 죽도록 충성하라생명이 면류관
교사: 이제 하나님을 향한 충성의 최고 절정인 요한계시록 2장 10절의 순교자적 약속을 은혜 님이 떨리는 감동을 담아 읽어주세요.
새신자:
(계 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교사: 주님은 마지막 때 환난을 당할 백성들에게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죽도록 충성하라”고 격려하셔요. 과연 하늘나라에서 영광스러운 '생명의 면류관'을 머리에 쓰는 주인공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첫째, 그리스도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 다가오는 그 어떤 끔찍한 육체적 고난도 미리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자들이고,
둘째, 사단 마귀가 성도들을 흔들기 위해 감옥(옥)에 던져 극심한 정신적 시험을 가할지라도 믿음의 굳건한 방패로 끝까지 감당하고 이겨낸 자들이며,
셋째, 비록 짧고 정해진 기간(십 일) 동안 혹독한 환난을 받아 목숨을 잃을지언정, 신앙의 정절을 더럽히지 않고 피를 흘려 진리를 증명해 낸 고결한 순교자들이랍니다.
새신자: 고난을 통과해야만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거라면, 환난이 왠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해요.
교사: 당연히 인간의 몸을 가졌으니 두렵고 떨리는 게 정상이에요. 하지만 선지자는 우리가 고난의 터널을 통과해야만 하늘의 상급을 비로소 온전히 즐길 수 있다고 역설적으로 가르쳐 주어요. 주석의 글을 읽어드릴게요.
“고난당하는 일 없이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에 나아갈 수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위하여 고난당한 적이 없다면, 그 풍성한 상급을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영광을 피하여 물러가게 될 것이며, 선한 싸움을 싸우고 인내로 달려갈 길을 가서 영생을 얻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곳에는 모세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더불어 고난받는 길을 택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교회증언 1권, 78)
교사: 만약 아무런 핍박이나 눈물 없이 날로 천국에 들어간다면,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걷고 사자와 칼의 위협 속에서도 인내로 달려갈 길을 완주해 낸 위대한 신앙 선배들 앞에서 오히려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거라는 뜻이에요. 천국에 들어간 모든 의인들은 구약의 모세처럼 세상 왕궁의 화려한 공주 아들 자리를 과감히 걷어차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받는 가시밭길을 스스로 기쁘게 선택했던 진짜 충성된 십자가 군병들이라는 뜻이랍니다.
새신자: 아, 고난을 견딘 자만이 면류관의 가치를 진짜 알 수 있겠네요.
교사: 그렇지요. 이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대로 평생을 살다 멋지게 순교한 역사 속의 인물이 있어요. 바로 초대교회 시절 사도 요한의 수제자이자, 서머나 교회의 위대한 감독이었던 '폴리카르포스(Polycarp)' 목사님 사연이에요.
그분은 평생 40년이 넘도록 서머나 교회를 눈물로 돌보며 충성스럽게 봉사하셨는데, 나이가 아주 많아 늙으셨을 때 로마 정권의 잔인한 기독교 박해 폭풍을 만나 체포되셨어요. 서머나의 거대한 원형 경기장 한가운데로 끌려 나오셨을 때, 로마의 총독 스타투스 콰드라투스는 영감 어린 노 목사님의 인품에 속으로 감동을 받아, 비밀리에 살길을 열어주며 이렇게 속삭였지요. "영감탱이, 내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딱 한 번만 부인하고 저주하소. 그럼 당장 살려서 집으로 보내주겠소!"
그러자 나이 많은 폴리카르포스 감독님은 온 관중이 듣도록 당당하고 태연하게 이렇게 불멸의 대답을 남기셨답니다. “내가 그분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섬긴 지 자그마치 86년이 되었소. 그 기나긴 세월 동안 나의 좋으신 예수님은 나에게 단 한 번도 털끝만큼도 섭섭하게 대하신 적이 없으셨소. 그런데 내가 어찌 나를 죄악에서 구원해 주신 나의 영광스러운 왕을 내 잔명 조금 살겠다고 감히 저주할 수 있으리요!” 결국 목사님은 무시무시한 장작불 위에서 찬송을 부르며 화형으로 순교하셨고, 문자 그대로 '죽도록 충성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쥔' 가장 존귀한 파수꾼이 되셨답니다.
4. 충성의 결과
⑩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새신자: 오성경 부장님... 86년 동안 주님은 나를 한 번도 섭섭하게 안 하셨다는 고백이 제 영혼을 뒤흔드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우직한 충성심을 갖고 싶어요. 그럼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받게 될 충성의 최종 결과는 무엇인가요?
교사: 마태복음 25장 21절에 우리 하늘 주인의 눈물 어린 포옹과 최고의 찬사가 약속되어 있어요. 같이 읽어볼까요?
새신자: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교사: 주님은 우리를 품에 안으시며 “내 즐거움의 잔치에 다 함께 참여하자!”라고 선언하셔요. 여기서 말하는 영광스러운 '주인의 즐거움'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요? 선지자의 웅장한 대쟁투 글을 인용해 드릴게요.
“그들은 그 때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인도한 자들을 보게 되고, 그 인도를 받은 자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고, 그 다른 사람들이 또한 다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여 그들이 모두 안식의 하늘에 들어오게 된 것을 보게 되어, 그들은 주님의 발아래 그들의 면류관을 던지고 영원히 주님을 찬송하게 된다.” (대쟁투, 647)
교사: 하늘나라에 들어갔을 때, 내가 이 땅에서 눈물로 기도하고 전도하여 예수님께로 인도했던 소중한 영혼들이 내 곁에 서 있는 풍경을 직접 내 눈으로 보게 되는 즐거움이에요. 게다가 내가 전도한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영혼을 줄줄이 사탕처럼 줄지어 전도하여, 그 수많은 구원받은 의인들이 하늘 성소의 영원한 안식 공간에 다 함께 들어와 행복해하는 거대한 영적 도미노 기적을 내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기쁨이지요. 그 감격에 겨워 우리는 내 머리의 면류관을 벗어 구원자 주님의 발앞에 감사히 던지며 영원토록 찬송을 올리게 될 것입니다.
새신자: 내가 인도한 영혼들이 천국에 가득한 것을 보는 즐거움이라니, 정말 우주 최고의 상급이네요.
교사: 그렇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을 살 때 “세상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어리석음”을 철저히 경계해야 해요.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 마음에 물질을 채워 넣어 충성심을 갉아먹으려 하거든요. 책망의 글을 정직하게 읽어드릴게요.
“그대의 본성은 바뀌어야 한다. 전 존재가 변화를 입어야 한다. 그대는 말로는 진리를 사랑하지만 행동으로는 그리하지 않는다. 그대는 주님을 조금 사랑하지만 재물은 많이 사랑한다.” (교회증언 2권, 686)
입술로는 "예수님 사랑해요, 충성해요"라고 유창하게 말하면서, 정작 내 지갑을 열고 내 삶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는 돈과 세상 성공을 주님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랑하고 추종하는 가짜 충성에서 속히 돌이켜 내 전 존재가 완전히 거듭나야 한다는 뼈아픈 충고랍니다.
새신자: 제 마음의 우선순위 1번이 언제나 하나님이 되도록 매일 기도로 마음을 확인해야겠어요.
교사: 대단히 훌륭한 다짐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명심할 것은 “예수님이 매 주시는 거룩한 신앙의 멍에를 절대로 잔꾀로 피하지 말라”는 엄숙한 권면이에요. 하늘의 선지자는 자아를 부인하지 않고 편안한 넓은 길만 가려는 안일한 현대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강력하게 경고하셨어요. 마지막 문장을 읽어드릴게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이 그 교회들에게 대량으로 부어질 수 없다.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지 않을 사람, 그분의 짐을 지지 않을 사람, 자기를 부인하지 않을 사람, 그리스도의 십자가을 높이지 않을 자들에게 은혜의 시내가 흘러가게 하는 것은 그분의 영광스러운 성품을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다.” (리뷰 앤 헤랄드 1896. 7. 21)
교사: 날마다 내 이기심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부인하지 않고, 교회가 맡겨주는 선교 사명의 무거운 짐을 "귀찮고 힘들어" 하며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피하는 게으른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강력한 성령 은혜의 시냇물이 결코 대량으로 부어질 수 없다는 뜻이에요. 십자가 고난의 멍에를 기쁘게 메는 충성된 자들에게만 하늘의 은혜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는 약속이기도 하답니다.
새신자: 오성경 부장님! 오늘 마지막 제20과 연구를 통해서, 충성이란 내 감정의 기분대로 하는 얄팍한 의무가 아니라 가이사의 세상 법을 정직하게 지키는 선량한 시민이 되는 동시에, 위기의 순간에는 목숨을 버려 서머나의 폴리카르포스 목사님처럼 오직 창조주 하나님 편에 끝까지 서는 고결한 신앙의 정절임을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세상 재물이나 안일함에 내 영혼의 우선순위를 뺏기지 않고, 주님이 메어주시는 선교의 멍에를 기쁘게 메어 마지막 날 주인의 즐거움 잔치에 당당히 참여하는 충성된 재림 성도가 되겠습니다!
교사: 이은혜 님의 가슴속에 사자처럼 담대하고 정직한 하나님의 구원 도장과 충성심이 온전히 심어진 것 같아 제 마음이 너무나 감격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지난 20과 동안의 모든 성경연구 과정을 아름답게 마치게 하신 하늘 아버지께, 충성의 다짐을 담아 마지막 마치는 기도를 함께 올리겠습니다.
오늘을 위한 기도문
교사 & 새신자 합심 기도:
천지 만물의 주권을 쥐고 인간 역사의 생사화복을 도도하게 주관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20과 동안 부족한 저희들의 발걸음을 성령으로 친히 인도하사 구원의 깊은 성경 진리들을 완벽하게 마스터하게 하시고, 오늘 마지막 과를 통해 국가와 하나님을 향한 성서적인 참된 충성의 대원칙을 깨닫게 하시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 눈앞의 작은 물질에 눈이 멀어 정직하지 못했고, 주님이 맡겨주신 청지기 사명의 무거운 짐을 귀찮다는 핑계로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자아를 부인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게으름과 불충함을 십자가 앞에 온전히 자복하고 회개하오니, 이제는 주님이 찾으시는 가장 선하고 신실한 '피스토스'의 충성된 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동안, 국가가 세운 정당한 법과 사회 질서를 성실하게 준수하여 세상 사람들에게도 양심적이고 정직하다 인정받는 가이사의 모본이 되는 시민이 되게 하옵소서. 그러나 만약 마지막 때에 세상 권력의 법령이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과 안식일을 침범하며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도도한 대쟁투의 위기 순간이 닥쳐올 때는,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외쳤던 사도들의 담대함을 우리에게도 100%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명하신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게 하사, 악의 빠른 영향력에 눈과 귀를 내어주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하나님의 면전에 똑바로 서서 흠 없는 제물처럼 내 집 안에서부터 완전한 마음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장차 우리 신앙의 여정에 사단이 던지는 환난과 감옥의 곤고함, 가혹한 박해와 배고픈 기근, 헐벗은 적신과 죽음의 칼날이 무섭게 몰려올지라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온 몸을 찢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타오르는 사랑의 줄에서 결코 끊어지지 않는 무적의 군병들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최고의 상을 주시는 좋으신 분임을 확신하게 하사, 축복의 문턱 앞에서 비겁하게 뒤로 물러가 배교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서머나 교회의 폴리카르포스 감독처럼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어찌 저주하리요" 고백하며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죽도록 충성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쥐는 진짜 의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입술로만 주님을 사랑한다 말하며 행동으로는 세상 재물을 더 사랑하는 가짜 충성에서 속히 돌이키게 하시고, 주님이 메어주시는 거룩한 선교의 멍에와 자아 부인의 십자가를 어깨에 든든히 메어 하늘의 은혜 시냇물을 폭포수처럼 공급받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마침내 우주의 종말이자 영광스러운 재림의 날 주님의 보좌 앞에 서게 될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눈물 어린 주님의 포옹을 받게 하시고, 내가 눈물로 인도한 수많은 영혼들이 하늘 성소에 가득 구원받은 풍경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최고의 '주인의 즐거움 잔치'에 다 함께 참여하는 영원한 구원의 최종 주인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우리의 영원한 면류관이자 왕이 되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