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식 성경연구 제23과 일요일 준수의 부당성

작성자변영기|작성시간26.06.11|조회수43 목록 댓글 0

대화식 성경연구 제23과 일요일 준수의 부당성

 

교사 (오말씀): 은혜님, 안녕하세요! 일주일 동안 평안하셨나요? 오늘 대구 하늘이 아주 맑고 쾌청하네요. 혹시 이번 주말에 특별한 계획 있으신가요? 보통 주말이 되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밀린 가사를 하며 휴식을 취하잖아요. 은혜님은 일주일 중 어떤 날을 가장 기다리시나요?

 

새신자 (이은혜):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아무래도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일요일로 이어지는 주말이 가장 기다려져요. 밀린 잠도 자고 좋아하는 취미 생활도 할 수 있어서요.

 

교사 (오말씀): 맞아요, 주말은 누구에게나 단비 같은 시간이죠. 그런데 가만히 보면 세상의 많은 교회가 일요일을 '주일'이라 부르며 예배를 드리고 있잖아요. 반면에 성경은 제7일 안식일, 즉 토요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명시하고 있고요. 은혜님은 혹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시면서 "왜 성경의 안식일은 토요일인데, 대부분의 교회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릴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으셨나요?

 

새신자 (이은혜): 안 그래도 그 부분이 정말 궁금했어요!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예수님이 일요일에 부활하셨으니까 일요일로 바뀐 거야"라거나 "구약의 안식일 법은 신약에 와서 폐지되었어"라고 하더라고요. 성경에 정말 그렇게 나와 있나요?

 

교사 (오말씀): 많은 분이 그렇게 오해를 하곤 하죠. 그래서 오늘은 제23과 <일요일 준수의 부당성이라는 주제로, 일요일 준수나 안식일 폐지를 주장할 때 흔히 잘못 인용되는 성경 구절들을 하나씩 짚어보며 반증해 보려고 해요. 성경의 진실이 무엇인지 두 가지 중점사항을 통해 자세히 알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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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요일 준수를 주장할 때 사용되는 성경절 반증

 

① 유대인들이 두려워 제자들이 숨어 있었던 것임

 

교사 (오말씀): 먼저, 많은 사람이 "제자들이 부활을 기념하여 일요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며 인용하는 요한복음 20장 19절을 읽어볼게요.

 

(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교사 (오말씀): 성경은 이 날을 '안식 후 첫날 저녁 때'라고 기록해요. 요한복음은 당시 통용되던 로마의 시간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 시간은 명백히 '일요일 저녁'을 뜻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모여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기쁘게 부활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고 있었나요?

 

새신자 (이은혜): 아니요, 유대인들을 두려워해서 문들을 닫고 있었다고 나오네요.

 

교사 (오말씀): 맞습니다! 이 모임은 정기적인 예배나 집회가 아니라, 산헤드린의 군사들이 언제 자기들을 체포하러 들이닥칠지 몰라 불안에 떨며 문을 굳게 잠그고 숨어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심지어 이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슬퍼하던 중이었습니다. 부활을 알지도, 믿지도 못하고 두려워 떨던 제자들이 부활을 기념해서 일요일 예배를 드렸다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죠.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일요일 예배와 전혀 무관합니다.

 

그런데 참 감동적인 것은, 그렇게 무서워 떨며 문을 닫아걸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셨다'는 사실이에요. 예수님이 찾아오시면 그곳에 진정한 평강, 즉 '샬롬'이 이루어집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가 두렵고 힘들 때 먼저 다가오셔서 평안을 주시는 분이에요. 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의 평안은 주변 상황이나 조건이 만족스러워서 얻는 일시적인 안녕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느끼는 영원한 평안이자, 결코 빼앗기지 않는 안식인 것이죠.

 

② 안식일 예배 후 계속된 토요일 밤 집회

 

새신자 (이은혜): 아, 제자들이 예배를 드린 게 아니라 무서워서 숨어 있었던 거군요! 그럼 바울 왕래 중에 떡을 떼며 밤늦게까지 설교했던 사도행전 20장 7절, 8절은 어떤가요? 이 구절도 일요일 예배의 근거로 많이 쓰이던데요.

 

(행 20:7,8)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가 모인 윗 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교사 (오말씀): 네, 이 구절도 자세히 뜯어볼 필요가 있어요. 성경의 하루 기준(저녁부터 다음 날 저녁까지)에 따르면, '그 주간의 첫날' 즉 안식 후 첫날 밤은 오늘날의 '토요일 저녁(밤)'을 의미해요. 실제로 현대어 번역인 <새번역 성경에는 이 날이 '토요일 저녁(on Saturday evening)'이라고 아주 정확하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즉 이 모임은 드로아에서 마지막 안식일 낮 예배를 다 마치고, 그날 저녁부터 밤중까지 지속된 사도 바울의 '송별회'였던 것이지, 정규 일요일 낮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성경도 모임의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어요.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강론을 밤중까지 계속했다고 하잖아요. 다음 날 떠나는 목회자를 아쉬워하며 밤새도록 이어진 송별 집회였던 것이죠.

 

새신자 (이은혜): 아! 토요일 밤에 모인 송별회였군요. 7절에 나오는 '떡을 떼려 하여'라는 표현이 성찬식이나 예배를 뜻하는 것은 아닌가요?

 

교사 (오말씀): 당시 제자들은 만나면 함께 식사하며 친교를 나누는 것이 일상이었어요. 밤늦게까지 집회가 이어지니 때가 되어 다 함께 식사(식탁 교제)를 한 것이지, 이를 정규적인 일요일 예배나 성찬식으로 볼 성경적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이 집회 중에 등불을 많이 켜둔 다락방 창가에서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다가 떨어져 죽는 큰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바울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를 다시 살려내며 모임은 은혜롭게 마쳤죠.

 

이 부분에 대해 탁월한 교회 역사가인 아우구스투스 네안드로스(Augustus Neander)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습니다.

 

“사도의 임박한 출발은 사랑어린 송별 식사로 그 작은 교회를 연합시켰을 것이며, 이때 사도는 그의 고별사를 했지만 이 경우에 특별하게 일요일을 기념한 것은 아니었다.”(The General History of the Christian Religion and Church, vol. 1, 1851, 337).

 

교사 (오말씀): 역사가의 말대로, 이것은 사도의 임박한 출정 때문에 모인 사랑의 송별 식사였을 뿐, 일요일을 거룩한 날로 기념하여 모인 예배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③ 첫날 일할 소득을 구제 연금으로 미리 떼어 놓으라는 것임

 

교사 (오말씀): 다음으로 고린도전서 16장 2절부터 4절을 볼게요. 일요일에 교회에 모여 헌금을 걷은 근거라고 주장하는 구절입니다.

 

(고전 16:2-4)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교사 (오말씀): 사도 바울이 매주 첫날(일요일)에 연보(헌금)를 모아두라고 하죠? 문맥을 보면 이 헌금은 일반적인 교회 운영비가 아니라, 극심한 기근으로 고통받던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신자들을 돕기 위한 특별 '구제 헌금'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4장 17절과 고린도전서 16장 1절에서도 사도 바울이 여러 해 만에 민족을 구제할 제물을 가지고 왔으며,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고린도 교회도 그렇게 준비하라고 명령한 내용이 나와요.

 

중요한 건 헌금을 거두는 방법이에요.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라는 말은 영어 성경이나 원어를 보면 '각자 자기 집에 따로 저축해 두라(lay by him in store)'는 뜻입니다. 즉, 일요일에 교회에 모여 걷으라는 게 아니라, 매주 첫날에 한 주간 일할 계획을 세우거나 일주일 동안 번 소득을 계산하여 구제 헌금으로 쓸 몫을 집에서 미리 떼어 보관해 두라는 권면입니다. 만약 그날이 오늘날의 주일(예배일)처럼 거룩히 구별되어 아무 노동도 하지 않는 날이었다면, 첫날에 수입을 계산하고 돈을 떼어 놓는 정산 작업을 하라고 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일요일이 평범한 노동의 날이었기에 집에서 차분히 돈을 정돈해 두라고 한 것이죠.

 

④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날 주의 날

 

새신자 (이은혜): 설명을 듣고 나니 성경 구절들이 완전히 새롭게 보이네요! 그럼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 사도 요한이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었다고 고백하잖아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을 '주의 날(주일)'이라고 부르는 게 여기서 유래한 것 아닌가요?

 

(계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교사 (오말씀): 참 많은 분이 이 구절의 '주의 날'을 당연히 일요일일 것이라고 짐작하곤 해요. 하지만 성경 전체를 통틀어 신구약을 막론하고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켰다거나 일요일이 주일이라는 기록은 단 한 군데도 없으며, 당시의 그 어떤 역사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경에 일요일 예배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첫날'이나 '주의 날'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어떻게든 일요일과 연결 지으려고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성경이 정의하는 진짜 "주의 날"은 무슨 날일까요? 글자 그대로 주님께서 '주인이 되시는 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2장 28절에 명백하게 선포하셨어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요.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예수님이 손수 주인이 되시는 날은 오직 '제7일 안식일'뿐입니다. 복음서(마 28:1; 막 16:1,2,9; 눅 24:1; 요 20:1) 곳곳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안식 후 첫째 날'이라고 언급하긴 하지만, 이는 모두 연대기적인 사실을 기록한 것일 뿐, 그날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일요일이 주의 날로 변경되었다는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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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식일 폐지를 주장할 때 사용되는 성경절 반증

 

⑤ 안식일을 변경시켜도 된다는 말은 아님

 

새신자 (이은혜): '주의 날'이 일요일이 아니라 주님이 주인 되시는 안식일이었군요! 그럼 두 번째 중점사항으로 넘어가서, "안식일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성경 구절도 짚어주세요. 마가복음 2장 27절, 28절 말씀은 안식일 제도가 사람을 위한 것이니 우리 마음대로 편하게 바꿔도 된다는 뜻이 아닌가요?

 

(막 2:27-28)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교사 (오말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말은, 유대인들처럼 수많은 까다로운 규칙들로 사람을 얽매어 괴롭게 하려고 안식일을 만든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쉼과 행복, 영적인 축복을 주시기 위해 안식일을 선물로 주셨다는 의미이지, 사람이 주인 마음대로 날짜를 변경하거나 파괴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신 게 아닙니다. 십계명 중 넷째 계명인 출애굽기 20장 8~11절을 보면 '여호와의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셨지, 사람 편의대로 바꾸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라는 말씀은 깊은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에 보면 예수님은 온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우주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창조의 기념일로 구별하신 안식일의 진짜 주인공이 되십니다. 은혜님, 생일날에는 그 날 태어난 사람이 주인공이 되듯이, 안식일에는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셔야 해요. 그리고 그 창조의 아름다운 결과물이 바로 우리 인간이잖아요? 우리는 예수님 창조 사역의 보람이자 사랑의 대상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주인공들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주인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경배하는 것은 피조물의 당연한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⑥ “율법조문의 직분”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고, 계명이 폐지 됐다는 것이 아님

 

새신자 (이은혜):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시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네요. 그런데 고린도후서 3장 7절에 나오는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이라는 표현 때문에, 십계명이 우리를 죽게 하는 법이라 이제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 구절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고후 3: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교사 (오말씀): 네, '율법 조문'은 헬라어로 '그람마(γραμμα)'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돌비에 새겨진 문자나 글자'를 뜻해요. 그리고 '조문의 직분'이란 율법이 가진 고유한 역할을 말합니다. 율법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바로 거울처럼 우리의 숨은 죄를 들추어내고 지적하여, 우리 스스로는 살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죄를 깨달아야만 비로소 십자가의 용서와 은혜가 필요함을 절실히 알게 되니까요.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 7절, 8절에서 이 사실을 아주 잘 설명하고 있어요.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율법이 기준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분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잖아요? 율법 조문(글자)은 죄를 지적하고 죄인에게 사망을 선고하는 직분을 가졌기 때문에, 바울이 이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법 자체가 악해서가 아니라, 죄를 지은 인간에게 죽음을 선고하기 때문에 '죽게 하는 직분'이 된 것이죠.

 

과거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 돌판을 받아 40일 만에 내려왔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했기에 그 얼굴에서 눈부신 광채가 났던 것(출 34:29-35)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처럼 죄인을 정죄하는 직분조차도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기에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율법은 본래 선한 것이며, 우리를 생명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영적 이정표이자 거울과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은혜와 용서가 빠진 채 계명만 붙들고 있으면 결국 사망의 선고만 남게 되죠.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 10~12절에 이 모순과 율법의 선함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즉, 죄 때문에 법이 나를 죽이게 된 것이지, 법 자체는 영원히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는 뜻입니다. 결코 십계명이 폐지되었다는 말씀이 아니지요.

 

⑦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은 유대인의 규례와 유전적 법칙임

 

새신자 (이은혜): 아, 율법 조문의 직분이 죄를 깨닫게 하고 정죄하는 역할이라 '죽게 한다'고 표현한 거였군요. 율법 자체는 선한 것이고요! 그럼 에베소서 2장 15절에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는 구절은 무엇이 폐지되었다는 뜻인가요?

 

(엡 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교사 (오말씀): 네, 단어가 비슷해서 참 헷갈리기 쉬운 부분이에요. 앞서 고린도후서 3장 7절의 '율법 조문'은 돌판에 새겨진 문자를 뜻하는 '그람마'였지만, 여기 에베소서 2장 15절에 쓰인 '법조문'은 헬라어로 '도그마(δογμα)'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십계명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의식적으로 지키던 '규칙이나 규례, 의문(儀文)의 법'들을 뜻해요.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기 육체로 못 박아 폐하신 법은 도덕법인 십계명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가로막고 갈등을 유발했던 유대인들의 복잡한 전통 규칙과 제사 제도(의식법)였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9절을 보면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인해 임시로 더해진 법에 대해 이렇게 말해요.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인간이 범죄한 이후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표상으로 주어졌던 성소의 제사법과 의식들이, 원형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 본질적으로 완성되고 폐지된 것입니다.

 

도덕법인 십계명은 우주의 기초이기 때문에 결코 폐지될 수 없어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17절, 18절에 직접 못을 박으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만약 사랑과 공의의 기본 뼈대인 십계명을 폐지해 버린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무법천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는 법이 없어지면 평화가 올까요, 혼란이 올까요? 세상의 간통법이 폐지된 이후 도덕적 해이가 늘어난 것처럼, 하나님의 도덕법이 사라지면 온 우주는 파멸하고 맙니다. 십계명은 영원히 유효합니다.

 

⑧ “법조문으로 쓴 증서”- 예수께서 도말하신 죄의 빚 문서

 

교사 (오말씀): 골로새서 2장 14절도 같은 맥락에서 오해를 많이 받는 구절이에요.

 

(골 2: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교사 (오말씀): 여기서 '증서'는 헬라어로 '케이로그라폰(χειρογραφον)'이라고 하는데, '손으로 직접 쓴 문서' 즉 우리가 죄를 지어 하나님께 지게 된 '죄의 빚 문서(채무 차용증)'를 뜻합니다. 사탄은 이 죄의 문서를 들이밀며 우리를 끊임없이 고소하고 괴롭혔죠.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가 치러야 할 죄의 빚을 대신 다 갚아주시고, 우리를 대적하던 그 빚 문서를 깨끗이 문질러 지우시고(엑살레이프사스) 제하여 버리셨습니다. 십계명을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버렸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어떻게 살인이나 간음을 금하는 법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 신명기 31장 2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로 폐해질 임시적인 의식법과 영원한 도덕법인 십계명을 보관 장소부터 철저히 구분하셨어요. "이 율법 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고 하셨죠. 표로 정리해 보면 그 차이가 아주 명확합니다.

 

| 구분 | 십계명 (도덕법) | 제사법 (의식법 / 의문의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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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자 |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 (출 24:12) | 모세가 기록 (신 31:9) |

| 기록 매체 | 영원한 돌판에 기록 (출 31:18) | 종이 책에 기록 (신 31:24) |

| 보관 장소 | 법궤 속에 소중히 보관 (신 10:5) | 법궤 옆(곁)에 보관 (신 31:26) |

 

교사 (오말씀): 보시는 것처럼 십자가로 지우고 제하여 버리신 것은 법궤 옆에 두었던 모세의 의식법(제사법)이지, 법궤 속에 영구히 보관된 하나님의 도덕법인 십계명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동물 제사를 드리는 의식법 아래 있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은혜 아래서 도덕법을 기쁘게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⑨ 유태인의 폐지된 7대 절기 안식일

 

새신자 (이은혜): 와, 법궤 속과 법궤 옆에 보관한 법이 달랐다니 정말 놀랍네요! 그럼 골로새서 2장 16절에 나오는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요? 여기에 대놓고 '안식일'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골 2: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교사 (오말씀): 네, 아주 결정적인 질문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한 '절기나 초하루(월삭)나 안식일'이 무엇인지 구별해야 해요. 절기(헤오르테)는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가 지켜야 했던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같은 세 가지 큰 절기를 뜻하고, 초하루는 매달 첫날 달이 뜰 때 지키던 예식입니다. 그리고 여기 나오는 '안식일(들)'은 매주 돌아오는 제7일 안식일이 아니라, 구약의 7대 절기 속에 포함되어 있던 '절기 안식일'들을 의미해요.

 

흥미롭게도 성경 원어와 철저한 번역 과정을 보면, 십계명에 명시된 제칠일 안식일은 성경 전체에서 대문자 "안식일(Sabbath)"로 존중되어 59회나 번역되었습니다. 반면에 오직 이곳 골로새서 2장 16절에서만 소문자 "안식일(sabbath)"로 번역되었어요. 이는 번역학적으로도 이 날이 십계명의 안식일이 아니라 구약 절기에 속한 날들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구약의 절기 안식일은 요일에 상관없이 날짜에 따라 찾아오는 안식일로, 총 7가지가 있었습니다.

 

1. 1월 15일 - 유월절 안식일

2. 1월 21일 - 무교절 마지막 날 안식일

3. 3월 5일 - 오순절 안식일

4. 7월 1일 - 나팔절 안식일

5. 7월 10일 - 대속죄일 안식일

6. 7월 15일 - 초막절 첫날 안식일

7. 7월 22일 - 초막절 마지막 날 안식일

 

이 절기 안식일들은 모두 다가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역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표상) 역할을 하던 날들이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표상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어진 것이죠.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10절, 11절에서도 유대교적 의식에 다시 얽매이려는 신자들을 향해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고 경고했던 것입니다. 제7일 안식일은 죄가 생기기 전, 에덴동산 창조 때부터 인류에게 주어지신 영원한 복날이므로 이런 절기 안식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⑩ 구원받은 자는 제7일 안식일을 지킨다는 뜻임

 

교사 (오말씀): 이제 히브리서 4장 7절부터 10절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히 4:7-10)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교사 (오말씀): 이 구절은 오히려 구원받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안식할 때'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선포하는 귀한 말씀이에요. 성경은 과거 '여호수아의 안식'을 언급하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친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여 누린 안식을 뜻해요. 하지만 가나안 땅에서의 정착은 모형일 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누린 눈에 보이는 안식은, 하나님께서 장차 그분의 자녀들에게 선물해 주실 영원한 '하늘의 안식'에 대한 거룩한 상징(상징물)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9절에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안식할 때'의 원어인 '삽바티스모스(σαββατισμος)'는 단순히 쉬는 날을 넘어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안에서 누릴 고차원적인 영적 안식을 의미해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장 28~30절에 말씀하셨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에 온전하고 완전한 영적 안식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고 10절 말씀처럼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 즉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 후 제7일에 쉬심과 같이, 주님의 본을 따라 자신의 세속적인 소생의 일을 쉬고 안식일을 구별하여 준수하게 됩니다. 비록 지금은 죄악 세상의 험난한 여건과 타협의 요구 때문에 온전한 안식을 누리는 데 방해와 도전을 받기도 하지만, 참된 성도들은 매주 안식일을 지키며 장차 하늘나라에서 눈물도 고통도 없이 영원히 누리게 될 완전한 안식을 미리 맛보고 예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⑪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킴

 

새신자 (이은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다'는 말씀이 참 든든하네요. 그럼 누가복음 16장 16절에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라는 구절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이 구절 때문에 요한 이후로 구약의 모든 법과 십계명이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눅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교사 (오말씀): 아, 그 구절도 표현의 배경을 알면 쉽게 풀려요. 유대인들의 관용적 표현으로 '율법과 선지자'라는 말은 십계명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모세오경(율법)과 그 외의 구약 성경(선지자) 전체를 가리키는 서술적 문구입니다(마 5:17, 7:12 참조).

 

그렇다면 "요한의 때까지요"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마태복음 11장 12절에 보면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했고, 마태복음 3장 1절, 2절에는 침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구약 성경(율법과 선지자)이 예언하고 가리켰던 메시아의 시대, 새로운 천국 복음의 시대가 침례 요한의 등장과 함께 비로소 본격적으로 도래하고 성취되기 시작했다는 선포입니다. 구약 성경이 폐기처분 되었다거나 십계명이 무효가 되었다는 뜻이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예수님은 바로 다음 구절인 누가복음 16장 17절에 강력하게 덧붙이셨어요.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으리라"고요. 하나님의 법은 결코 획 하나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단지 침례 요한의 외침을 시작으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는 위대한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죠.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 23절 말씀처럼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고 묘사해요. 이 역동적인 표현은, 복음의 문이 이제 혈통적 유대인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전면 개방되었다는 영광스러운 선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처럼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천국 복음의 주인공이 되는 특권을 얻게 된 것이죠. 예수님의 초림을 통해 이 땅에 이미 '은혜의 왕국'이 현실화되어 도래했습니다.

 

이에 관해 깊이 있는 교회 서적의 한 구절을 읽어드릴게요.

 

“구주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버리시고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면서 운명하심으로 구속의 경륜을 완전히 성취하셨다.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부부에게 허락된 구속의 약속은 이제 확증되었다. 하나님의 허락으로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은혜의 왕국이 그때에 세워졌다.”(대쟁투, 348)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은 죄와 반역으로 충만해 있는 마음들이 그분의 사랑의 주권에 날마다 굴복함으로써 지금 건설 중에 있다.”(산상보훈, 108)

 

교사 (오말씀): 인용문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어린 주권과 십계명의 법에 날마다 기쁘게 순종하며 굴복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이 지금 이 순간에도 아름답게 건설되고 있는 것입니다.

 

⑫ “이날 저날”-유대인의 금식일과 관련된 날임

 

교사 (오말씀): 마지막으로 로마서 14장 5절을 함께 확인해 보겠습니다. 일요일 준수론자들이 "날짜 구별은 이제 의미가 없으니 아무 날이나 지키면 된다"며 가장 즐겨 쓰는 구절이지요.

 

(롬 14: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교사 (오말씀): 여기서 '이 날, 저 날'이라고 하니 마치 제칠일 안식일을 포함한 모든 날을 대충 편하게 생각해도 되는 것처럼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로마서 14장의 전체 문맥을 보면, 사도 바울이 다루고 있는 핵심 쟁점은 안식일 문제가 아니라 로마 교회 내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 사이의 '음식 문제'와 '절기 관습'에 관한 갈등이었습니다.

 

로마서 14장 2절, 3절을 보면 음식 문제의 정황이 잘 나와요.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당시 시장에서 파는 고기들이 우상 제물에 바쳐졌을까 봐 염려하여 채소만 먹는 예민한 자들이 있었고, 또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월요일과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행하던 '금식일'이나 유월절파와 요제절파 간의 대립 등, 유대교적 전통 날짜들을 중히 여기는 풍습이 얽혀 있었습니다. 바울이 확정하라고 한 '이 날 저 날'은 바로 이러한 유대인들의 사적인 금식일이나 풍습의 날들을 뜻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법인 제칠일 안식일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내린 결론은 로마서 14장 6절에 아주 명확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핵심은 형식적인 날의 논쟁이나 음식의 종류 자체보다, 주님을 향한 중심과 '감사함'이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새신자 (이은혜): 그렇군요! 유대인들의 사적인 풍습이나 금식일 때문에 생긴 오해였네요. 그럼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는 누구를 뜻하나요?

 

교사 (오말씀): 아주 유익한 질문이에요. 이에 대해 성경 주석 사전은 다음과 같이 정밀하게 해설하고 있습니다.

 

“연약한 자: 제물 먹는 것에 민감한 상처를 입기도 하고, 날들을 지키는 것을 중히 여겨 거기에 매달리기도 하는 예민한 신자들. 바울은 이들을 책망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은 받으신다.

강한 자: 우상제물이나 절기 준수 같은 문제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문화나 관습적인 차이 때문에 그런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형제들을 업신여기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롬 14:3), 강한 믿음으로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롬 15:1) 하는 자들이다.” (신약성경 난해절 해설사전, 481).

 

교사 (오말씀): 해설처럼, 믿음이 조금 연약하여 전통적인 관습이나 음식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신자들을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믿음이 깊고 강한 자들이 넓은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의 약점을 친절히 담당해 주며 서로 화평을 이루라는 것이 사도 바울의 진짜 본심이었습니다. 결코 안식일을 대충 지키거나 폐지하라는 자유 방임의 메시지가 아니었던 것이죠.

 

오늘 참 많은 양의 구절들을 심도 있게 반증해 보았는데, 은혜님 어떠셨나요? 오해가 많이 풀리셨나요?

 

새신자 (이은혜): 네, 선생님! 늘 마음 한구석에 짐처럼 남아있던 성경 구절들의 의문이 오늘 명쾌하게 다 풀렸어요. 사람들이 앞뒤 문맥을 자르고 단어만 떼어서 자의적으로 해석하니까 일요일 준수나 안식일 폐지 같은 오해가 생겼던 거군요.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온전한 십계명과 안식일을 귀하게 깨닫게 되어 정말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교사 (오말씀): 은혜님이 진리를 올바르게 분별하고 기뻐하시니 성령님께서 오늘 큰 은혜를 주신 것 같아 저도 너무나 뿌듯합니다. 그럼 오늘 연구를 마치는 기도를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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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는 기도

 

교사 (오말씀): 하늘에 계셔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소중한 은혜님과 함께 성경의 깊은 말씀들을 상고하며,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 구절들의 진실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의 성령으로 인도해 주셔서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람의 유전과 전통에 따라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 법을 가벼이 변경하거나 폐지하려는 거짓 주장들 속에서, 은혜님이 흔들리지 않는 명확한 성경적 진리의 닻을 내리게 하셨사오니 이 진리가 은혜님의 영혼을 늘 자유케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친히 안식일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죄의 불리한 빚 문서들을 깨끗이 도말해 주셨음을 늘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속에 매일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이 신실하게 건설되게 하시고, 세상의 헛된 관습이나 변명에 타협하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의 영원한 도덕법인 안식일을 기쁨으로 구별하여 순종하는 복된 삶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우리 영혼의 진정한 안식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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